혹시 펄프 매거진을 보시나요? 아시다시피 펄프 매거진은 능력자 간의 싸움이나 로봇에게 지배된 미래 세계, 오싹한 심해와 우주에 대한 이야기들을 싣는 삼류 잡지예요. 다른 건 모르지만 능력자를 소재로 한 소설은 조금 불편한 감이 있을 정도로 허황된 이야기가 많아서 저는 즐겨 보는 편은 아니지만요. 하지만 이번에 기고된 소설은 읽지 않을 수 없었어요. 소설의 내용이 우리가 잘 아는 곳을 떠오르게 했거든요.
펄프 매거진 - 비명의 탄생
소설 ‘비명의 탄생’은 바다 한가운데 있는 범죄자 수감시설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작은 바위섬을 통째로 이용하고 있는 곳이었죠. 그곳은 비능력자뿐 아니라 능력자까지 가둘 수 있도록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뛰어난 교도관을 배치하여 철저한 감시·감독이 이루어졌어요. 섬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는 하늘의 별이 내려앉은 것 같은 등불이 가득한 대도시여서, 글을 읽는 동안 섬은 더욱 쓸쓸하고 외로운 곳으로 느껴져요.
주인공은 늑대에게 물린 뒤부터 이상한 증세를 보이는 한 청년이었어요. 주인공은 강한 정신착란에 시달렸지만, 인간의 신체 능력을 뛰어넘는 힘을 가지게 되었고, 그 증세는 달의 차고 기우는 주기와 맞물려 있었습니다. 정부와도 인연이 있는 거대한 군수업체가 오로지 전쟁을 위한 군대를 만들 목적으로 주인공을 감금하고 주인공을 이용해 실험을 시작하죠. 주인공의 광증을 이용해서 고통과 공포를 느끼지 않고,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군인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 과정에서 많은 실험체가 사망하고, 여러 인물이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관계된 기업의 여러 중역이 서로의 입장을 좁히지 못하고 반목하다 제거되는 이가 나오기도 하죠. 그렇게 수많은 비명으로 얼룩진 실험을 견디던 주인공은 노력 끝에 섬에서 탈출하고, 바다를 건너 도시로 숨어들면서 소설은 끝이 나요.
반향
일반인은 접근할 수 없는 수감시설에서 진행되는 비인도적인 능력자 실험. 시선을 끌 만한 소재였지만 이 단편소설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어요. 꾸며낸 이야기가 가득한 삼류잡지, 능력자가 주인공인 소설은 잠깐의 이야깃거리로 소비될 뿐이었죠. 물론 예민한 일부 비능력자들은 혹시 알카트라즈에서도 능력자 범죄자가 탈옥하면 어떻게 하냐며 불안을 호소했지만, 그것도 다음 달 매거진이 나오면서 사라졌어요. 저 역시 삼류 잡지의 허황된 소설 내용에 큰 관심을 두지 않으려 했죠. 기고자의 이름만 아니었다면 그랬을 거예요.
기고자의 이름은 M. 헤이스팅스, 소설 내용 중엔 실험에 반대하다 제거된 어떤 기업의 사장이 등장하기도 했죠. 그건 마치 메이어 헤이스팅스를 가리키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다들 J. 헤이스팅스가 격렬하게 불쾌감을 표현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정작 J는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았어요. 목숨을 아낄 줄 모르고 J 앞에서 펄프 매거진을 흔들어대는 사람들에게도 말이에요.
소설 속 단서
광증을 추출하여 다른 이에게 주입해 공포와 두려움을 모르는 군대를 만든다는 건 허황된 내용이지만 광증을 하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그렇게 보자면 소설은 능력자가 가진 능력을 추출하여 다른 비능력자에게 주입하는 이야기였어요. 그래서일까요? 저는 머릿속에서 헤이스팅스와 능력자 수감시설, 실험, 그리고 금문교 주탑에서 찍힌 늑대인간의 사진을 지울 수 없었어요. 출처를 알 수 없는 기묘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트리비아가 제게 어떤 논문을 보여주었습니다.
전염
한 의사가 루마니아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능력의 전승에 대해 연구한 논문이었습니다. 의사는 연구를 위해 루마니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오래 체류하기도 하고, 꾸준한 연구를 진행하며 관련해서 논문도 여러 개 썼어요. 제가 읽은 것 역시 그 당시에 작성된 논문이었습니다. 논문은 특정 인물이 자신의 능력을 타인에게 전염시키는 방식에 대해 적혀 있었어요. 그 인물의 이름은 드라큘라. 30년도 더 전에 출판된 소설의 주인공으로 더 유명하죠. 당시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논문이라며 어린 학생의 장난을 본 것처럼 웃어넘겼어요.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으니까요. 하지만 펄프 매거진의 단편소설은 의사의 논문을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마치 논문의 내용이 우리가 사는 현재, 우리가 아는 곳에서 일어난 것처럼요.
관련해서 논문이 여러 개 있었다고 했었죠? 드라큘라와 비슷한 맥락이지만 트랜실바니아에 전승된 흡혈귀, 달을 보면 늑대가 된다는 인간 등 여러 주제가 있었어요. 공통점이 느껴지시죠? 그 의사는 자신의 능력을 특정한 행동을 해서 타인에게 그대로 혹은 자신에게 준하는 상태로 전염시킨다는 전설에 집착했던 것 같아요. 트리비아는 다른 논문들 역시 비슷한 연구 목적을 가지고 작성된 것들이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논문을 작성한 의사의 이름을 알려주었습니다. 까미유 데샹. 맞아요, 그건 바로 닥터의 연구였어요.
울프 메싱
소설을 보다 보니 최근 유럽에 신경 쓰이는 움직임이 생각나네요. 소설 속 군수업체가 만들려던 군대와 같다고 볼 순 없지만, 변이능력자로 구성된 무리에 대한 소문이죠. 무리의 리더는 울프 메싱, 루나티즘 전염병 을 극복하고 능력을 얻게 되었다는 이 능력자는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사람의 마음을 읽고 예언을 하는 등의 공연을 하고 있답니다. 마인드리더인가 싶으면서도 최면술사 같기도 하고, 정확한 능력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어요. 그는 코드네임을 받지 않았거든요.
그런 울프 메싱을 중심으로 한 능력자 무리가 생겼고, 그들은 자신을 숨길 생각 없이 존재를 드러내고 있어요. 특이한 점은 울프 메싱은 변이능력자가 아닌 것 같지만 이상하게 그를 따르는 무리 중에는 변이능력자가 많다는 점이에요. 최근 울프 메싱의 공연장을 지키는 건 이제 스물이나 되었음 직한 갈색 곱슬머리의 남자인데, 늑대로 변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요. 그를 포함해서 울프 메싱과 함께 어울리는 무리는 다들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식 억양을 사용한다고 해요. 그래서 더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는 다른 의미로 그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급격하게 세력을 불린 집단이 있었으니까요. 울프 메싱의 무리가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