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ON

Cyphers

[BLUEMOON] 1장. 작은 불씨

  정보를 취급하는 이들에게 익숙한 이름이 하나 있다. 해리 하워드 홈즈. 랭커셔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설탐정으로, 자신이 가진 최면 능력을 활용하여 다양한 정보를 얻으며 명성을 쌓았다. 그는 얼마 전 한 가지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자신이 신출내기 탐정이었을 때부터 인연을 맺은 의뢰인과의 거래를 파기하기로 한 것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해리가 의뢰에 따라 찾아낸 정보는 의뢰인이 제시한 금액보다 훨씬 더 값어치 있는 것이었다. 의뢰인은 정보의 가치를 속였을 뿐 아니라 그를 의심하여 사람을 붙이는 실수까지 저질렀다. 모든 정보는 그만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해리의 철칙이었다. 의뢰인의 실수는 거래 파기의 좋은 사유가 되었다.

새로운 만남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해리가 가진 정보를 탐내며 거래를 제안해왔지만, 아직 성사된 것은 없었다. 만족스런 대가를 지불할 사람을 만나지 못한 탓이다. 해리는 충분히 젊었고,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이들이 제시하는 금전은 매력이 없었다. 또 다른 이들이 말하는 인류애와 정의를 값으로 치르기엔 재미가 없었다. 해리는 금전도 치르고 재미도 줄만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리가 새로운 의뢰인을 만난 것은 그때 즈음이었다. 그는 지하연합의 수장인 앤지 헌트의 소개로 찾아왔다고 했다. 해리는 예전에 랭커셔 카운티에 찾아왔던 앤지 헌트와 사소한 대화를 나누다가 최근 주목 받는 한 능력자의 이름을 들었다. 눈 앞의 의뢰인을 보며 입 속에서 그 이름을 한 바퀴 굴리는데, 마치 짜맞추듯 의뢰인이 그 이름을 대며 자신을 소개했다.

  “알고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어떤 것들 말입니까? 말씀해 보세요. 당신이 궁금해하는 것들이 제게도 가치가 있다면 좋겠군요. 물론, 불가능한 것은 없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아마도 그가 궁금해 하는 것들이 그 답을 줄 것이다. 해리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의뢰인이 알고 싶어 할 법한 정보들을 떠올렸다. 연합의 수장이 소개한 인물이니 회사에 대한 정보를 원할 수도 있고, 소속을 가질 생각이 없다면 용병으로 활동할 시의 보수에 대해 알고 싶어 할 수도 있었다. 또는 이 복잡한 세상에서 잃어버린 연인이나 가족을 찾아 달라는 얘기일 수도 있다. 가진 정보와 이후에 얻게 될 정보의 가치를 가늠하며 해리는 의뢰인을 향해 싱긋 웃었다. 무엇이든 알아낼 수 있다는 여유를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우선 어떤, 단체…에 대해서입니다. 기도를 통해 능력을 증폭해준다며 사람을 모았다고 합니다. 그 단체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차분한 얼굴로 얘기하는 의뢰인은 해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정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최고의 탐정이 되기 위해서는 작은 정보도 놓쳐선 안 되기 때문이다. 해리는 ‘물푸레나무 펜듈럼’이라는 이름 모를 단체에서 붙인 포스터를 떠올렸다. 비싼 테라나이트 장비 없이 기도를 통해 영구적으로 능력을 증폭시켜준다는 터무니없는 포스터엔 당신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시답지 않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포스터는 등급조차 받기 어려울 정도로 시시한 능력을 가진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좋습니다. 조만간 다시 연락을 드리죠.”

  해리는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의뢰인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 금전적인 이득은 몰라도 최소한 가치 있는 정보를 생산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와의 거래를 조금 더 이어 나가기로 했다.

사전 조사
  물푸레나무 펜듈럼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단체였다. 뒷골목에 위치한 펍이나 구직공고가 잔뜩 붙어 있는 낡은 게시판에 언제부터인가 임상 시험에 참여하면 능력을 증폭시켜준다는 포스터가 붙었다. 누가 붙였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아침에, 혹은 새벽에 자고 일어났더니 붙어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전부였다. 하지만 동시에 붙은 것으로 보아 다수의 사람이 붙이고 간 것은 분명했다. 사람이 많이 동원될수록 정보가 새기 마련인데, 일했다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아 내부 사람을 이용한 것 같았다. 해리는 이름 없는 단체가 큰 규모의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에 의심을 품었다.

  의심스러운 단체의 의심스러운 시험. 임상 시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어떨까. 해리는 사회에서 밀려난 능력자들이 모여 있는 펍과 골목을 찾아다녔다. 그들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배척받았지만, 정작 그 능력이 미비하여 능력자로서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도 못했다. 연합의 일원으로 합류하라는 제안마저 거부하고 도시의 어둑한 곳으로 숨어든 이들의 다수는 허황된 꿈을 꾸고 있었다. 언젠간 자신의 능력으로 도시를 활보하는 이들을 놀라게 하겠다는, 그런 꿈. 그리고 임상시험은 실제로 그들의 허황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왔다.

  물잔 하나를 겨우 옮겼던 염동력자가 커다란 바위를 옮기는 능력을 얻고 돌아왔고, 컵을 겨우 채우던 물능력자가 임상시험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공터에 아이들을 위한 작은 수영장을 만들었다. 신문, 잡지에서 본 기적의 미쉘은 아이거 산의 고도를 바꾸고, 격류의 샬럿은 피크 디스트릿에 거대한 호수를 만들었다는데 그에 비하면 대단치도 않은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커다란 변화였다. 거리의 능력자들은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로 술렁였고, 이내 유행처럼 임상시험에 지원했다. 그것은 아메리칸 드림을 닮아 있었다.

  “새로 얻은 능력으로 일자리를 알아본다고 했어요. 아침에 나갔죠.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어요.”
  ”쓰레기를 버리고 온다고 했습니다.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새로운 삶을 살 기회라고 했어요. 그이는… 살아있는 거겠죠?”

  임상시험에 지원한 이들의 정보를 모으던 해리는 지원했던 이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능력이 증폭되어 돌아온 사람도, 임상시험에 지원한 사람도, 모두. 정보가 끊어진 것이다.

시작점
  경찰은 사라진 사람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했다. 사라진 이들에게서 더 이상의 정보를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한 해리는 노선을 바꿨다. 모든 연구에는 시작이 있다. 시작점을 알아낸다면. 해리는 자연스럽게 노트를 펼치고 가설을 정리했다.

  - 임상 시험 대상을 모집한 것으로 보아, 능력 증폭 연구는 최종 단계에 이르렀다.
  - 참여할 능력자의 인원엔 제한이 없었다. 연구 시설의 규모는 거대할 것이다.
  - 지금까지 능력 증폭은 테라나이트 장비나 증폭 능력자만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들은 테라나이트 장비가 필요 없다고 했었다.
  - 외부인으로 임상 시험을 진행하기 전에 최소 1건 이상의 성공 사례가 있을 것이다.
  - 포스터에 적힌 단체의 이름이 가짜라면 이름을 숨겨야 하는 사정 또는 이유가 있다.

  펜을 빙글빙글 돌리며 해리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곧 사무실에 있는 이들에게 각각의 자료를 요구했다. 거대한 연구 시설을 가진 곳과 최근 이름을 밝히기 어려운 문제에 휘말린 곳, 그리고 능력 증폭과 관련된 사건들에 대한 자료였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쁘게 돌아가는 사무실을 보며 해리는 작은 것 하나라도 나오면 그다음엔 쉽게 풀릴 거라 자신했다.

팀 스티브 울프
  정리가 완료된 자료들 속엔 다양한 정보들이 있었다. 이제 이 정보를 모아 길을 만드는 것은 해리의 몫이었다. 능력의 변이와 증폭에 대해 실험을 하고 있었던 로커드 마틴, 갑자기 능력이 강해져서 커다란 호수를 만들어낸 회사의 어린 여자아이, 한 마녀의 폭주가 가져온 델피 화재. 이 커다란 사건 중에서 해리의 시선을 끈 것은 연쇄적으로 발생한 작은 화재였다.

  공원의 나무를 태우고, 가게 간판에 불을 붙이고, 조금 전까지 앉아 있었던 레스토랑의 의자와 테이블을 태운 이 별 볼 일 없는 화재들은 지역 신문의 한구석에 범인의 이름과 함께 실려 있었다. 팀 스티브 울프. 과거 가십 페이퍼의 기자인 클리브 스테플이 낸 작은 기사에 실린 이름이기도 했다. 해리는 기억을 더듬어 당시의 신문을 찾아냈다. 가십으로 가득한 신문 구석엔 한 청년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할 수 있는 건 손가락 끝에서 만들어 내는 희미한 불꽃이 전부였던 청년이 아인트호벤 고아원에 방화를 일으킨 범인이라고 고백하는 기사였다.

  기사를 모두 읽은 해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뢰를 해결할 작은 정보를 발견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