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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MOON] 5장. 빌로시티 회담

  아시다시피 회사와 연합은 현재 포트레너드의 자치권을 두고 대치하는 상황이에요. 그걸 핑계 삼아 정부는 이 문제가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내비치며 우리가 이 일을 맡아 처리하기를 바랐습니다. 회담 날짜가 잡혔을 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의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연락을 해왔죠. 물론 그 선은 정부에게 손해가 가지 않는 선이겠지만요.

  사실 우리는 지쳐 있었어요. 평화의 시대는 짧았지만, 그 후에 이어진 혼란은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현실은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번 사건이 서로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포트레너드에 사는 모두를 위한 회담이기 때문이죠.

시장의 제안
  회담은 포트레너드의 시장 퀸시 N. 제임스의 제안으로 시 청사에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영국 정부의 생각을 다시 한번 전달하며 이 회담을 조심스럽게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어요. 대신 회담의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제안을 덧붙였지요. 우리는 시장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이런 결정에는 퀸시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그는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지만 혼란스러운 포트레너드를 잘 이끌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어요. 비능력자이면서도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능력자들을 배려하려 했고 이 신비로운 도시에서 회사와 연합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도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인물이죠. 그런 퀸시가 빌로시티에 진출한 여러 기업과의 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영국 정부의 상황을 설명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거예요.

  우리가 제안을 받아들이자 정부는 포트레너드의 자치권을 회사와 연합 중 하나의 세력에게 넘기기로 했다는 것을 이유로 들며 공식적으로 이 회담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어요. 정확히는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이었지만, 정부의 간섭 없이 회사와 연합이 빌로시티의 문제에 접근할 수 있었으니 서로에게 나쁘지 않은 결정이었죠.

  우리는 정부의 상황을 고려하여 그랑플람 재단의 입회하에 소수의 인원이 시 청사에서 만나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연합의 회계사들
  저는 회담을 진행할 사람들을 신중하게 골랐어요. 빌로시티 뿐 아니라 포트레너드에 사는 모든 이들을 위한 회담이니까요. 아마 회사도 같은 고민을 했을 거예요. 고심 끝에 연합의 회계사인 마리엘르 질레와 에일린 맥길리브레이에게 이 일을 부탁했습니다. 오, 이 두 사람 역시 연합의 자랑이지요. 두 사람의 전문적인 지식뿐 아니라 마리엘르의 절대 기억 능력과 에일린의 투시 능력은 이 회담에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했답니다. 다행히 두 사람은 모두 흔쾌히 쉽지 않은 역할을 수락해 주었습니다.

회담의 결과
  두 사람이 약속한 시각에 맞춰 시 청사에 도착하자 퀸시의 비서인 케이던스 월쉬가 직접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고 해요.

  네? 케이던스 윌쉬에 대해 처음 들으신다고요? 아, 저런, 당신이 아직 포트레너드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걸 거예요. 여기에서는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답니다. 그녀는 옥스퍼드 출신의 재원으로 퀸시가 제일 신뢰하는 수석비서예요. 업무수행능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만을 보고 접근하는 사람들을 철저히 짓밟는 덕에 시청의 여신이라고 불리고 있어요. 하지만 케이던스의 진가는 따로 있답니다.
  그녀는 말 한마디로 대상의 행동을 멈출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가진 힘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그녀의 말을 들으면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사람들은 케이던스를 포트레너드의 조련사라고 부르기도 해요.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고 회담을 무사히 끝내기 위한 담당자로 그녀만한 사람은 다시 없겠죠.

  케이던스의 안내를 받아 회담 장소에 도착한 마리엘르와 에일린은 그랑플람 재단의 엘리어트 레너, 헬리오스의 헨릭 반 스월과 아틀라티코 드라군인 돌로레스 로페스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헨릭은 비능력자이긴 하지만 재정에 밝고 배려심이 뛰어나 헬리오스의 복지문화부 부장으로 오래 일해 왔어요. 그의 제안서를 명왕이 모두 수락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정받은 사람이죠. 그만큼 헬리오스도 이 회담을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라서 마음이 놓였어요.

  그렇게 엘리어트의 중재 하에 회담을 시작한 회사와 연합은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빌로시티에 조사관을 파견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조사관은 각각 10인, 조사관을 보호하는 전투 인원은 노동자들이 위협을 느낄 것을 우려해 각각 두 명씩으로 제한하기로 하고요.

조사관 파견
  회사와 연합은 예정된 일정에 따라 합동 조사본부를 구축하고, 각각 10인의 조사관을 파견하여 상황을 파악한 뒤에 피해를 수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사부 다이 로와 빌로시티 노동자들과도 친분이 있는 데미언 도일에게 조사관들의 안전을 부탁했고, 헬리오스는 플래쉬 필리프와 쾌검사 잉게보르크 홀든을 파견했어요. 하지만 우려와 달리 빌로시티는 차분하게 조사관을 맞이했고, 우리는 무력충돌 없이 중개업체의 비리를 파헤칠 수 있었습니다.
  중개업체들은 폭동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노동자들이 시간 외 근무를 했다며 비용을 처리한 뒤 중개료라는 명목으로 40%에 달하는 수수료를 떼어가고 있었어요. 이런저런 명목과 이유가 붙어 노동자들은 평균 14시간 일하고 약속된 급여의 52%밖에 받지 못했죠.

  이런 조사 결과에 대해 업자들은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이라며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했어요. 계약서요? 자기 이름이나 겨우 쓸 줄 아는 사람들에게 제공한 쓸모없는 서류뭉치겠죠! 그들은 일부러 어려운 법률 용어를 이용해서 한 번에 읽기 어려울 정도로 두꺼운 계약서를 만들었고,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노동자들도 계약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정도였어요. 오, 이 비열한 사람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중개업체뿐 아니라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한 일부 업체도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폭동의 조력자
  노동자들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마저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었죠. 그렇게 빌로시티는 가난이 만들어낸 공포가 가득한 곳이었고, 벗어나는 방법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어요. 한 남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요.
  그 남자의 이름은 론. 언제 이곳에 도착했는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어느새 그는 그들의 동료가 되어 있었죠. 어느 날 론은 친하게 지내던 석공조합의 존에게 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해요. 존은 처음엔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지만 희망의 씨앗이 싹 텄고, 론이 어딘가에서 가져오는 자료들은 존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죠. 결국, 그들은 결정적인 자료를 보고 행동하기로 결심하게 되었죠. 그건 바로 그들의 노동계약서였어요. 중개업체가 기업과 맺은 계약서 내용은, 노동자들이 서명한 것과는 사뭇 달랐던 겁니다.

빌로시티 노동조합
  폭동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석공조합의 존 벤클리프는 자신들을 찾아온 조사관에게 기업들이 빌로시티에서 어떤 짓을 벌였는지 설명하고, 기업들이 공황을 핑계 삼아 대금의 지급도 미루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체계적으로 나열된 자료들이 기업들의 횡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죠.
  방대한 자료 앞에서 회사와 연합은 방관할 수 없었습니다. 에일린과 헨릭은 여러 조합을 방문하여 최우선으로 처리해야 하는 안건을 정리하고, 노동자들에게 포트레너드 시 의회에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노동조합의 창설을 제안했어요. 또한, 회사와 연합에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연락망을 구축하고, 노동자들에게 불리하지 않도록 표준 계약서를 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존 벤클리프가 조합장으로 선출된 뒤 정식 활동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포트레너드 시의 도움을 받아 부당하게 착취당한 임금을 지급할 것과 이면계약서를 보유하고 있던 기업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 목록에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제 막 빌로시티에 진출한 더 다이아몬드의 이름이 그 어떤 기업보다 막대한 양의 증거와 함께 있었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