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ON

Cyphers

[SUPERMOON] 3장. 가려진 눈

  화이트 클라프가 실제로 미국 내에 거주하는 능력자들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는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글쎄요, 확실하게 말씀 드리기 어렵네요.

  정부의 지원 덕분인지 뉴스나 신문에서 사이퍼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나 비평은 사라졌어요. 하지만 인기 영화에서 그들은 여전히 능력을 악용해서 선량한 시민을 괴롭히다가 경찰이나 군에 사살당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었죠. 작중 역할이 은행강도건 청소부였건 상관 없이 말이에요!

  오, 정말 한심한 눈가림이죠. 마치 화이트 클라프의 마술처럼요.

마술이 필요한 곳
  말이 나온 김에 화이트 클라프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를 해볼까요? 화이트 클라프가 가진 매력이 비능력자와 능력자 사이를 좁히는 일에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미국 정부는 그를 더 많은 곳에 활용했어요. 바로 마술이 필요한 곳에 말이에요.

  농담처럼 들리지만 정말 미국은 마술이 필요했어요. 경제 공황으로 인해 정부는 많은 원성을 사고 있었고, 신뢰는 무너진 지 오래였죠. 정부는 상황을 반전시킬 해결책이 필요했지만 그럴 여력이 없었어요.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바로 대중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일이었죠. 그 일에 화이트 클라프만큼, 혹은 그보다 더 알맞은 사람은 없었죠.

이면
  화이트 클라프는 그가 가진 능력을 제외하더라도 정말 인기 있는 정치가에요. 광장 연설이라도 할라치면 인파가 운집해서 항상 경찰이 동원될 정도였죠. 연설의 내용이 뭐였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요.

  그가 하원에 당선되었을 때도 그랬어요. 로드아일랜드의 자랑, 잘생긴 외모와 현란한 언변으로 그 콧대 높은 상류층의 인정을 받아냈죠. 사실 거기 사는 그 사람들이 무슨 걱정이 있겠어요? 그저 눈에 보기 좋은 것을 고르면 되죠. 제 언사가 좀 거칠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저는 미국인들의 그런 사고방식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아무튼 화이트 클라프는 미국 정부의 아이콘 역할을 톡톡히 해냈어요. 그의 화려한 마술쇼도 함께 말이에요.

  어느 누가 이런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겠어요? 한쪽에선 공황으로 인해 궁핍해진 부모가 아이를 버리고, 다른 곳에선 화이트 클라프의 화려한 마술쇼와 현란한 언변에 환호하는 광경을요.

환영술사 존
  하지만 모두가 화이트 클라프에게 빠진 것은 아니에요. 미국에는 또 다른 인물이 활동하고 있었으니까요. 그의 이름은 존 딜린저. 환영을 다루는 사이퍼이자,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은행강도였죠. 상원의원과 은행강도, 마술사와 환영술사. 재미있는 조합이에요. 미국인들이 주목할 만한 소재이기도 하고요.

  그들은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법이 없어요. 표면에만 집중하죠. 그 안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존 딜린저도 그랬죠.

  그는 은행강도였고 갱스터였으며, 지금 가장 유명한 무법자이자 사이퍼예요. 오만하고 대담무쌍한 성격으로 경찰을 따돌리며 은행을 털었고, 경찰은 그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매번 놓치고 말았어요. 덕분에 언론은 좋은 이야깃거리를 얻었고, 연일 존 딜린저에 대한 기사를 썼답니다. 그만큼 대중의 반응도 뜨거웠어요. 정부에 대한 반감이 커가는 상황에서 공권력을 조롱하는 듯한 존 딜린저의 행각에 푹 빠진 거죠. 잘생긴 외모, 대담한 행동, 거기에 시민의 돈은 건드리지 않고 인질도 해치지 않는 모습까지. 대중에겐 그가 의적으로 보였을 거에요.

  한 번은 존 딜린저가 은행을 털 때 은행원이 겁에 질려 자기 돈을 내어놓자 ‘난 은행을 털러 왔지 당신 쌈짓돈이나 훔치러 온 게 아니야.’ 라며 거절했다고 해요. 와, 훌륭한 대본이네요. 덕분에 그의 인기는 날로 높아졌고 언론은 존 딜린저가 FBI를 우롱하고 있다는 둥, 잘생긴 의적이라는 둥 사람들 사이에서 그를 화젯거리로 만들었어요. 그럴수록 미국 정부는 존 딜린저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될 수 밖에 없었죠.

  미국 정부는 대중의 신뢰를 위해서라도 존 딜린저를 빨리 잡아야만 했어요. 그래서 한 강도이자 사이퍼를 잡기 위해 FBI는 영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고, 드디어 존 딜린저를 처리할 수 있었죠. 여기서부터는 저의 추측일 뿐이지만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겠죠.

비밀 거래
  미국은 능력자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로 알려져 있어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변화를 거친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대부분이었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능력자에 집중할 이유가 없었다고요. 하지만 그건 드러나 있는 모습일 뿐, 미국은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부터 능력자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어요. 전쟁 중에 위기의 순간마다 갑작스런 기상 이변이나 출처를 알 수 없는 현상들이 미군을 보호했다는 이야기들이 바로 그 증거죠. 물론 미국은 인정하지 않았지만요.

  영국 정부는 FBI와의 협업을 통해 미국 정부와 거래를 했을 겁니다. 미국 정부는 능력자를 활용할 줄 알았지만, 그들을 제압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으니 MI7이 가진 정보들은 그들에 아주 유용했을 거에요. 그리고 기꺼이 영국 정부가 원하는 값을 지불했겠죠. 그리 좋은 결과란 생각은 들지 않네요.

  이 거래를 통해 미국 정부는 능력자를 보다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을 거에요. 지금도 계속 능력을 가진 범죄자를 검거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신문의 일면은 여전히 화이트 클라프의 연설이 차지하고 있네요. 비능력자와 능력자가 함께 이 위기를 이겨내야 한다는 제목과 함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