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ON

Cyphers

[ECLIPSE] 3장. 격변의 시대

  회사와 연합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여정이 쉽지는 않았답니다. 신대륙에서는 일부 초인을 사칭하는 자경집단이 치안유지를 빌미로 오히려 민간에 피해를 입히는 사건이 발생해 능력자들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또한 러시아에서는 '피의 일요일 사건'에 휘말린 일부 능력자들이 군대와 대치한 후, 현재까지도 탄압을 받고 있지요. 때문에 러시아의 능력자들, 그 중에서도 적기사들을 주축으로 한 무리는 러시아를 떠나 세계를 떠돌 수밖에 없게 되었어요. 게다가 동유럽에서 연속된 방화 사건의 범인으로 불을 다룰 줄 아는 능력자가 지목되어 수많은 능력자들이 죄 없이 마녀로 몰려 사형된 사건은 능력자와 비능력자 모두에게 집단 공포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경종을 울렸죠.

  이렇게 능력자들에 대한 핍박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심해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우울한 소식만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명왕과 흑염이라는 두 걸출한 인물들의 노력이 서서히 결실을 맺어가고 있었거든요.

베른 비밀조약과 능력자 등록제
  어떻게 해서라도 능력자들의 권리가 제도 내에 자리잡기를 바랐던 명왕은 막강한 자금력을 이용해 대규모의 로비활동을 벌였던 모양이에요. 그리고 오랜 교섭 끝에 유럽 각국 정부 대표와 비밀리에 조약을 맺는 성과를 올릴 수 있었죠. 스위스의 수도에서 맺어진 이 조약에 따라 마침내 각국 정부는 공공연히 행해지던 능력자 사냥을 중지해달라는 회사측의 요청을 수락했습니다. 대신 명왕은 회사 소속의 모든 능력자에게 코드명과 등급을 부여하고 정부에 등록, 관리하기로 했어요. 이른바 능력자 등록제가 실시된 거죠.

  등급에 대해서 알고 계신가요? 능력자의 등급은 1급부터 시작하며 능력이 강할수록 높은 등급을 받게 됩니다. 필요에 따라 등급과 상관 없이 혼자서 다수의 적을 상대할 수 있거나 특별한 자질을 갖춘 능력자를 에이스로 분류하기도 하죠. 또 흔치 않은 능력자로 어느 등급으로도 분류하기 힘든 능력자는 조커로 분류됩니다. 조커 등급의 능력은 물리력이 없을 수도 있고 통제가 안 될 수도 있고 심지어 능력이 맞기는 한 건지 의심이 가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그 위력과 용도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방심할 수는 없죠.

  어찌되었건 「베른 비밀조약」의 결과로 회사는 각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적절한 등급의 능력자를 제공할 의무를 지게 되었습니다. 의뢰 내용에 따라서는 떳떳하다고 하기 힘든 일도 떠맡아야 했죠. 비록 입장은 곤란해졌지만 이 일을 계기로 헬리오스사는 각국 정부의 비호 아래 합법적으로 세력을 확장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어요.

흑염의 카리스마
  명왕이 정치 수완으로 능력자들의 권리를 키워나갔다면 제 아버지 흑염 하이드는 특유의 카리스마를 통해 입지를 다져나갔다고 할 수 있어요.

  조금 전에 얘기했다시피 능력자들에 대한 핍박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고 능력자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피난처가 필요했죠.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이들이 이목을 피해 살아가기에 가장 좋은 곳이 어딜까요? 그래요, 도시의 뒷골목이나 빈민가, 이른바 지하세계라고 불리는 바로 그런 곳이에요. 힘만 있다면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곳,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을 숨겨야만 했던 능력자들은 이런 우범지역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범죄집단을 이루곤 했죠. 흑염은 그들을 하나씩 굴복시켜 나갔어요. 그리고 그들이 보다 ‘덜 파괴적인’ 활동을 통해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네? ‘덜 파괴적인’ 생계유지 방법이 뭐냐구요? 그건 그러니까, 말하자면 자급자족이 가능한 협동조합 같은 거라고 보면 돼요.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활용해 일정량의 노동을 하는 조건으로 조합으로부터 생필품을 보급 받았죠. 처음엔 어려움도 많았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대부분의 생필품을 조합 내에서 생산, 가공할 수 있게 되었어요. 필요한 경우엔 마피아의 인맥을 동원해 추적 불가능한 경로로 유통을 하기도 했죠.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이런 생활방식은 많은 부분에서 당시 유행하던 공산주의의 이상과 비슷한 형태였기에 나중에 수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연합에 합류하는 데 좋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답니다.

  이렇듯 능력자에 대한 핍박이 심해질수록 역설적이게도 연합의 세력과 결속력은 크고 단단해져 갔어요.

세계대전
  1914년, 사라예보에서 울린 두 발의 총성을 계기로 전 세계가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어요. 그 전까지의 전쟁이 나라와 나라간의 분쟁을 의미했다면 이것은 역사상 최초로 국가의 규모를 넘어서 이념 대 이념이 싸운 세계규모의 전쟁이었죠. 이를 계기로 세계 정치의 무대는 좁은 유럽을 벗어나 전 세계로 확장되었어요. 역사는 그야말로 대격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남은 것은 비극뿐이었어요.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고 너무 많은 것이 파괴되었죠.

  능력자의 입장에서 이 전쟁이 남긴 영향들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전쟁기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한 군수과학으로 인해 비능력자들도 능력자만큼 치명적인 전투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에요. 뿐만 아니라 혼자 활동하는 것에 익숙한 능력자들에 비해 전쟁과 전투를 경험한 비능력자들의 조직력은 그야말로 놀라운 성과를 낼 수 있었지요.

  전쟁의 규모가 컸던 만큼 경제적 여파도 만만치 않았죠. 전쟁 이후 능력자 비능력자 할 것 없이 모두 먹고 살기가 힘들어졌어요……. 그래도 그 때가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때까지만 해도 설마 단순히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경제적 대 재앙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하고 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