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의 바쁜 하루가 시작되었다.
짧을수록 좋은 아침식사
제네럴 웨슬리는 소소한 대화 상대로는 적절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활동 중인데, 영국에 올 때마다 한 번씩 해리와 만나 정보를 공유하는 중이었다. 오늘 아침 해리는 그와 마주 앉아 아침 식사 대신 커피를 마시기로 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들 사이에 친목은 없는 것이니까. 해리는 웨슬리에게 신문을 보여주었다.
“더 호라이즌 대표의 인터뷰를 보셨습니까? 이제 막 도버로 들어왔어요.”
신문에는 플래시에 익숙한 젊은 여성의 얼굴이 실려 있었다. 머리기사는 [더 호라이즌, 팔티즌 연합과의 만남 무산…영국에서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라고 적혀 있었다. 해리는 해당 여성이 팔티잔 연합과 만남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헬리오스와 지하연합의 수장과 회담까지 성사시켰다는 걸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실상 배가 들어온 것은 어제가 맞지만, 재뉴어리는 그 전에 이미 영국에 있었던 것이다.
“이제 막? 자네들은 그 전부터 연락을 취하고 있었겠지?”
“그건 또 어떻게 아셨답니까? 아무래도 배달부 문제가 있으니까요.”
“배달부는 어디로 가나?”
“그것만은 저희에게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하연합과 헬리오스가 각각 지원인력을 파견하기로 한 이상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일 겁니다.”
같이 가면 어련히 알게 될 것을 왜 미리 알아야 하냐며 의뭉스럽게 질문하던 붉은 눈의 여성을 떠올리던 해리는 왠지 모르게 오싹한 기분이 되어 한차례 몸을 떨었다. 그것은 표현의 방식이 다를 뿐, 자신과 동등하지 않은 자에 대한 완고한 배척에 가까웠으니까. 해리가 무슨 몸짓을 하든 말든 웨슬리는 무덤덤하게 신문을 넘기다 휴이 롱스태프의 얼굴이 실린 면을 가차 없이 구기며 건너뛰었다. 휴이 롱스태프는 겉으로 보기에는 제프 케이트의 휘하에 있는 더 호라이즌의 지원을 받아 영국에 왔으니 크게 보자면 웨슬리와 같은 진영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세계대전 당시 유명한 저격수가 있었어. 사이퍼 세계에서도 명성이 꽤 자자하지. 카인 스타이거라고 아는가?”
“물론 압니다. 말씀하신 대로 유명한 군인입니다.”
“전직 군인. 어쨌든 그가 프랑스에서 남하하는 게 목격되었어. 여러 명이 중무장하고 이동하는 것이 심상치 않은데.”
“지금 인식의 문과 관련해 한몫 챙기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의도는 불분명하지만 그도 문을 찾는 자 중 하나가 아닐까요? 루사노에서 안타리우스의 재건이 선포되던 그날에도 그는 현장에 있었다고 하는군요.”
“왜지?”
“듣기로는 레나라는 여성과 연관이 있다고 하는데, 그 여성이 안타깝게도 안타리우스에게 개조당한 강화인간이랍니다”
“아, 그도 참…”
“안타리우스와 관련된 여성이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건데, 열망하는 이사벨의 소식 들으셨습니까?”
“놈들이 홍보하는 라자루스 프로젝트의 결과이자 기적이라는 것 말인가?”
“네에, 도버 해협을 건너 프랑스로 건너와서는 스위스를 가로질러 남하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알프스 산맥을 넘어갈 때는 거의 걸어가다시피 땅에 붙어 나는 듯하다네요. 이동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고 합니다.”
“고도가 문제인가? 바다도 건너온 날개가 왜 힘을 잃었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면에 가까워진 그자를 포획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괴물의 공격을 받아 본체와 접촉한 사람은 아직 없는 상황입니다. 과연 어떤 용사가 원인을 알아낼 수 있을지 궁금하군요.”
그들은 그렇게 정보만을 나누며 간단하게 커피를 마셨다. 앞으로도 친목은 없을 예정이었다.
안 먹어도 배부른 점심식사
해리는 명왕과의 약속 시간보다 이르게 헬리오스에 도착했다. 최근 친해진 인사부장 로버트 콜린스와 점심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벼운 분위기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은밀하게 최신 정보를 수집하려는 속셈이었다.
“용기사들이 스페인으로 돌아간 거는 공식 발표된 내용이라 그렇다 쳐도 어째 한층 더 썰렁한데요?”
“지하연합의 요청으로 다이무스 홀든이 독일군에 납치된 수인 구출 작전에 차출되었죠. 아, 앨리셔 캘런 양도 자리를 비웠어요, 개인적인 용무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알려주지 않았어요. 윌라드 이사님은 아는 것 같았지만.”
“인력난이군요.”
“비슷한 시기에 여러 요청이 들어오는 건 그만큼 상대방에게 특례를 뜯어내 회사의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찬스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번에는 이게 개인 사적인 이탈과 맞물려 회사에 예상치 못한 큰 공백이 발생한 거예요.”
콜린스가 햄샐러드를 뒤적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며칠째 용기사의 이동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심하던 차였다. 작년에 레오노르 경이 헬리오스를 찾아 면담을 할 때 용기사를 이베리아로 소환할 수 있다는 것은 전달받았다. 그러나 레오노르 경이 벨져의 여정을 잠시 따랐던 틈을 타 안타리우스의 끄나풀들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다시 한번 난동을 부린 것이 결과적으로 전체 용기사의 소환으로 이어질 줄이야.
“스페인 내 상황이 정리되면 용기사들이 다시 헬리오스로 돌아올 예정이고 더 호라이즌의 인원 추가 차출 요청은 역사학자로 일하던 분을 보내서 망정이지, 언제까지 인원 돌려막기가 가능하진 않다고요! 나시멘투 교수가 차출됐으면 더 끔찍했을 거야…”
브뤼노가 좀 더 마음을 넓게 열고 스카우트를 했으면 좋겠다는 콜린스의 투덜거림이 이어졌지만, 해리는 그것까지 들어주면 밑도 끝도 없을 상황임을 곧바로 인지하고 빠르게 식사를 마쳤다. 헤나투가 1년짜리 자문위원인 건 동네방네 알려진 사실인데 그를 실무에 투입하는 본새가 여간내기가 아닌 것이 정보를 쉽게 얻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손 떨리는 티타임
약속 장소에는 헨리 밀러와 헤나투 나시멘투 교수가 앉아 있었다. 위압감이 느껴지는 조합이라 해리는 한층 공손해지는 것을 느꼈다. 가벼운 사담이 오가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배달부를 이송하는 과정은 순조롭네. 물론 액자의 도착 장소를 알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배달부의 조심성이 드러나는 모습이긴 하네만, 우리에게도 경계가 과한 듯 해 아직 완벽한 신뢰를 쌓기엔 어려운 게 사실이야. 어쨌든 그건 넘어가고, 자네도 알다시피 액자가 인식의 문을 여는 매개체가 될 거라고 분석한 멜빈 리히터, 그리고 여기 나시멘투 교수의 추론처럼 이 사태를 분석 중인 지식인들은 인식의 문이 어떤 장소에서 우리 세계에 명확히 열린다고 추측하고 있네. 그러니까 지금은 라자루스라는 걸 부르짖는 안타리우스와 우리의 목표가 일시적으로 일치한다고 볼 수 있어. 문이 실체화되는 장소를 찾는 것 말이야. 그런데 정작 안타리우스는 지금 뭘 꿈꾸고 있는 걸까? 그 의도를 좀 더 명확히 하고 싶어 탐정으로서의 해리 홈즈를 부른 걸세.”
“아이고, 제가 탐정이 맞긴 하죠. 저도 잊고 있었습니다만…”
해리의 두뇌가 가동된다. 단서, 연결, 조합.
“그러니까 최근 스페인에서의 난동을 포함해 빛으로 뛰어들라는 지시가 다시 반복됐고, 독일과의 협력 시도 정황이 확인됐다는 말씀이시죠?”
“그래. 안타리우스라면 자신들의 성물인 액자가 유럽으로 넘어왔음을 알아챘을 테니 액자 탈취에 최선을 다할 텐데 흐로닝언에서 패한 이후로는 아직까지는 잠잠하단 말이지. 미국에서 심판관이라는 자가 넘어왔는데도 말이야. 그러다 빛에 뛰어들라는 지시 하에 신도들이 분란을 일으키는 중인데 각 나라들이 바보도 아니고 혼란을 방치하지는 않겠지. 당장 스페인이 군인을 투입할 준비를 마치지 않았는가. 어쨌든 안타리우스가 처지에 맞지 않는 구호 활동과 신문 인터뷰 등을 중단하고 평소처럼 폭력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덕분에 우리의 운신이 매우 편해졌고, 액자 배달 지원을 하는 김에 겸사겸사 지하연합의 팔티잔 지원 과정에서 큰 위협으로 파악했던 독일과의 연계를 약화시키기 위해 다이무스와 이글을 추가로 투입했지.”
명왕의 말대로 스페인의 상황은 어쩌다 정치권이 연계되어 용기사가 소환된 바람에 그렇지 애초부터 이들의 난동이 아직까지 국가 전복 수준의 규모로 이어지는 건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전력 손실이 발생할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불에 뛰어드는 나방 같은 행위가 장려된다? 그리고 독일과 안타리우스의 협력은 갑자기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급부상했는데, 팔티잔 연합을 일시적으로 반토막 내는 등 단기간에 성과를 보였지만 이 과정에서 독일군과 안타리우스 실무자들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파멸적인 관계였다는 풍문도 들려오는 차였다. 해리는 이 상황을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조심스러운 생각이지만 제 생각으로는 일종의 미끼 같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로 목적이 불분명한 활동의 연속이었지만, 최근에 무리수라고 보일 정도의 움직임들이 단기간에 집중된 건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밑 작업으로 보입니다. 그게 액자 탈취를 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그것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해. 녀석들이 원래부터 얌전히 있을 녀석들은 아니지 않은가? 1월 5일 이후 하던 일이 자신들의 성격에 맞지 않아서 집어 치운 것일 수도 있어. 다만, 만에 하나 만약 이게 자네 말처럼 이목을 돌리려는 짓이라면 다이무스를 지금이라도 귀환하게 하는 게 맞지 않나?”
명왕의 걱정에 차를 홀짝이던 헤나투가 슬쩍 말을 얹었다.
“헨리, 홈즈. 여기는 제가 설명하죠.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독일과 안타리우스가 어린 능력자들을 납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혀내고 이를 저지할 경우 국제 사회 여론에 충분히 정치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고, 협력 가능성을 원천 봉쇄해 잠재적인 큰 걸림돌을 제거할 수 있을 테니까요.”
먹어도 허한 저녁식사
결과를 명확히 도출하지 못한 논의를 마친 후 해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오늘 마지막 일정은 얼마 전 누군가의 현재 위치를 파악해달라는 의뢰 결과를 전달하는 일이었다. 간략한 신원 조회와 함께 그와 접선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까지 가이드라인을 알려달라는 건이었는데, 쉽다면 쉬운 일이지만 묘하게 까다로운 점이 있었다. 의뢰인과 조사 대상자 때문이었다.
자신을 EC라고 소개한 남자는 충분한 금전 이외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정보는 철저히 은폐한 채였고, 대상인 여성은 러시아의 몰락 귀족으로 현재로서는 의심스럽기로 손꼽히는 달의 서커스단에 속해 있었던 경력이 있는 기구한 생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이상한 점은 조사 결과를 오스트리아의 한 사서함으로 보내라는 요구였다. 보통은 결과를 직접 듣기를 원하는데, EC는 자신의 노출을 최소화하려는 듯 처음 접선지인 프랑스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 결과지를 받고자 했다.
의문은 풀리지 않았지만 해리는 의뢰를 수행했다. 누군가의 인적 사항을 조회하는 것은 가장 흔하고 기본적인 의뢰였으므로 찜찜한 기분에도 거절할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탐정의 감은 생각보다 날카로운 것이었다. 얼마 후 해리는 가판대를 뒤덮은 잘츠부르크 습격 사건 기사를 보게 되었다. 이 때 해리는 아직 그 둘 사이의 연관점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