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ON

Cyphers

[BLUEMOON] 2장. 빛이 있으라

  가족도 연고도 없는 사람의 흔적을 찾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그의 몇 안 되는 흔적에서 이 사람이 추적당하는 것 같다는 의심스러운 정황을 발견했다면, 작정하고 숨어 버린 능력자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해리는 이미 알려진 것 외에 팀 스티브 울프에 대한 어떤 정보도 찾을 수 없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사실 팀 스티브 울프의 마지막 족적을 찾아낸 것만해도 자부심을 가질만한 일이었다.
  끈질긴 탐문과 조사 끝에 영국 글래스고가 있었다. 해리는 글래스고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3년 전 발생한 공동주택 화재 사건에 대한 기사를 확인했다. 가늠할 수 있는 피해에 비해 기사는 매우 형식적이고 간결한 수준이었다. 작은 집이 밀집된 공동주택에서 늦은 밤 발생한 화재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원인 불명의 화재로 사망했다고 기록되었다. 어디에도 팀 스티브 울프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 사건, 그리고 사라진 불 능력자. 아귀가 딱 들어 맞았다.

생존자
  글래스고 공동주택 화재 사건의 현장은 놀랍도록 깨끗이 복원되었다. 화재 진원지는 소박한 꽃이 피어 있는 공원이 되었고, 함께 피해를 입었던 근처 주택은 모두 새로운 외장을 갖췄다. 자금은 이유 없이 흐르지 않는다는 지론에 따라 해리는 주택가를 복원한 자금의 출처를 확인했다. 안타리우스. 일부러 알리지는 않았지만 찾아보면 쉽게 나왔다. 마치 누군가 발견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해리는 모험을 즐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뻔히 보이는 함정을 밟지 않고 지나갈 만큼 재미 없는 타입도 아니었다. 그 순간만큼은 즐거운 기분으로 글래스고 공동주택 화재 사건에 대한 안타리우스의 지원사업을 검토한 끝에 참혹한 화재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은 생존자가 현재 안타리우스의 유력인사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안타리우스가 팀 스티브 울프의 소재를 확보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비능력자에게는 종교단체로 알려져 있지만, 능력자들 사이에서는 조금 위험한 이름으로 언급되는 안타리우스. 해리는 접근 방법을 고민하다가 시드니 크리스토퍼 젤러즈니가 최근 안타리우스 내에서 외부활동이 가장 활발한 구원회 단장이라는 데 희망을 걸고 정공법을 택했다. 안타리우스 재림회 단장이라면 절대 통하지 않을 방법이었지만, 시드니라면 인터뷰를 거절하지 않을 거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해리는 랭커셔 포인트 지의 수습 기자가 되어 글래스고 공동주택 화재 사건과 팀 스티브 울프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했다. 예상대로 시드니는 해리의 요청을 수락했다. 만남은 공개적인 곳에서 이루어졌다. 해리 말고도 초대 받은 언론사가 많았다.

  “그는 불안정했어요. 도와주고 싶었지만 당시의 제 힘으로는, 역부족이었죠. 그래서 그날 밤…… 그가 폭주하는 걸…… 막을 수 없었어요.”

  시드니는 부드럽지만 강약이 확실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부분에서 철저히 계산된 응대였다. 시드니가 한 마디를 할 때마다 곳곳에서 셔터가 터졌다. 감동에 벅찬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가련한 표정을 지었던 시드니는 고개를 들고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이젠 사람들을 구원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해리에게서 시선을 돌린 시드니는 그에게로 향한 수많은 눈동자를 앞에 두고 말을 이었다.

  “티모시, 내 소중한 친구……. 내가 널 구원해 줄게. 부디 날 찾아와줘.”

  그것은 정보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과시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밝게 웃는 얼굴의 시드니가 내일 신문의 1면을 보기 좋은 말로 장식할 것이다. 해리는 쏟아지는 질문에도 당당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에게서 몸을 돌렸다. 그는 팀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팀을 찾고 있었다. 해리와의 만남을 이용할 정도로.
  더는 그에게서 얻을 것이 없었다.

키를 돌려, 전진
     해리는 이쯤에서 의뢰인에게 의뢰 결과를 전달했다.

  “현재로서는 물푸레나무 펜듈럼은 충분한 자금과 규모를 가진 특정 단체가 위험한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 본래 이름을 숨길 용도로 만들어낸 가상의 단체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그래요, 실험. 그들이 하고 있었던 것은 실험이었습니다. 능력 증폭 연구에 대한 유효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 무차별 임상시험을 진행한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기도가 아니었군요. 마치 신이 주는 것처럼 포장한 그 실험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었어요. 아마도 실종된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는 어렵겠죠.”
  “그렇습니다. 그들은 희생되었다고 봐야할겁니다.”
  “이 뒷부분에 있는 이름들은 익숙하네요. 팀과 시드니.”
  “그런가요? 이거 참, 절 여러 번 놀라게 하시는군요. 대체 당신 정보원이 누굽니까?”

  해리는 설명을 위해 앞으로 숙이던 몸을 펴고 편하게 다리를 꼬았다. 눈 앞에 앉은 이 의뢰인은 해리가 아닌 경로로 정보를 얻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이 시점에서 조사를 더 진행할지 확인하시려는 거군요.”
  “아니, 말돌리기에요? 그래요, 정보원은 됐어요. 의뢰로 돌아가죠. 지금까지의 결과를 공유 드린 건 말씀하신 대로 결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팀 스티브 울프를 계속 추적할 수도 있겠지만 성과 없이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조사를 마무리할 수도 있고, 조사한 내용 중에 원하는 정보를 더 파볼 수도 있지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보고서 안에는 기도의 힘으로 능력을 얻었다는 인물이 있지요. 안타리우스라는 이름이 얼마나 위험한지, 당신은 알겠지요? 그런데도 제가 그와 관련된 의뢰를 드려도 될지 고민해봐도 될까요?”
  “아, 이런.”

  해리는 이마를 짚었지만,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렇게 날 자극하다니요. 좋아요, 의뢰를 받아들이죠.”

공간의 문
  구원이란 무엇일까? 대영박물관부속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안개비를 바라보며 해리는 상념에 빠졌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주고 받을 수 있으며, 현재의 상태와 상관없이 모두가 공평하게 바라는 것이다.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사람이 원하는 것도 구원이며 부유하고 행복한 사람이 원하는 것도 구원이다. 구원을 향한 인류의 열망은 끝이 없다. 가진 자는 더 가지기 위해, 가지지 못한 자는 하나라도 갖기 위해. 열망 앞에선 공포마저도 없다. 아니 오히려 공포는 구원에 대한 열망을 부추기는 요소다. 현재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현재가 계속될까 공포를 느끼고, 현재 상태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현재가 끝날까 공포를 느낀다. 어쩌면 구원은 공포를 시련으로 치환해서 이기는 과정 또는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리우스가 말하는 구원은 좀 더 물질적인 면이 있었다. 해리는 추적자 로버가 슈퍼문 현상이 발생한 다음 날, 자신에게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공간의 문이 열렸어요. 그 틈으로 검은 그림자들이 빠르게 나타났습니다. 문을 통해 나온 자들은 거리를 활보하다가 어떤 건물 입구 앞에 멈춰 섰어요. 간판을 보니 슈트르트 홀트라고 적혀 있더군요.

  그날 열렸던 공간의 문이 바로 안타리우스가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분명했다. 성공했을까, 아니면 실패했을까? 스스로를 구원자라 칭하는 시드니는 공간의 문을 통해 힘을 얻은 것일까? 진실은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정보를 모아 짜맞추고 정답이 아닌 모든 것을 제거하면 진실에 근접해질 것이다. 해리는 책상 위에 쌓인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구원, 그리고 문. 구원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강한지 사료가 끝이 없었다.

문의 역사
  해리는 한동안 도서관 근처를 떠나지 못했다. 도서관 첫 방문객이었으며 마지막까지 앉아 매일 저녁 사서와 어색하지만 다정한 눈인사를 나눴다. 점심은 매일 런던대학 구내식당에서 때우니 학교를 두 번 다니는 기분이었다. 가십이 실린 잡지부터 지은이도 알 수 없는 동화까지 모두 읽었다. 동양의 책들은 초능력과 관련된 것들을 구해 돈을 들여 번역을 맡겼다.
  책에 담긴 문에 대한 정보는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었다. 그 명칭이나 존재가 확실하지 않은 탓이었다. 문과 흡사하게 묘사된 것들은 때론 탄압의 증거로 사용되고, 위대한 존재의 후광이 되기도 했다. 무엇 하나 같은 의미를 가진 것이 없었고, 지역을 가리는 법도 없었다. 유럽의 하늘이 열리기도 했고, 아시아의 땅이 갈라지기도 했다. 아마존의 수풀 속에서 어둠처럼 숨어 있다고 표현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였다. 문은 사건이나 인물의 배경이 되었을 뿐, 그것에 초점을 맞춘 것은 없었다.

  책을 읽는 것에 지쳐갈 때쯤, 해리는 ‘빛이 있으라’ 라는 제목의 낡은 소설을 발견했다. 가진 것이 없던 한 소녀가 신의 은총으로 바라던 것들을 하나씩 얻어가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마지막에 사랑하는 남자를 얻는 흔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었지만 표지 안쪽에 적힌 글은 해리의 시선을 끌만큼 독특했다.

  그것은 하나의 전설에서 시작한다.
  먼 옛날, 지금은 사라진 어느 왕조에서 수많은 사람이 하나의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문이 열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중략)
  그들 모두 이쪽 세상을 부수고 싶어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글은 거기까지 였다. 소설의 일부처럼 위장한 것으로 보이는 글은 공간의 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작성자는 해리가 아는 그 누구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대로 해리는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소설을 쓴 사람을 수소문했다. 해리가 본 책은 어느 영세한 출판사가 임의로 번역한 것이었다. 출판사는 영업을 중단한 지 오래 되었지만 해리는 출판사 사장의 손자를 찾아냈다. 워낙 영세한 업체여서 어떤 사람이 번역했는지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고 심지어 원래 어느 나라 소설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해리는 이 책이 몇 년도에 발행된 것인지를 알아냈다. 그리고 세계 각지의 출판사에 연락해 비슷한 시기에 번역된 책을 수소문했다. 그는 많은 노력 끝에 프랑스의 한 귀족 가문이 이 소설의 초판을 발행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제는 사라진 가문은 능력자들에게 아주 익숙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플람. 바로 전설적인 탐험가 그랑플람의 가문이었다.

그랑플람
  모든 능력자들이, 아니, 세계의 모든 이들이 알고 싶어할 최고의 정보를 쫓던 해리의 조사는 그랑플람의 이름 앞에 멈춰 섰다. 그랑플람에 대한 정보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그랑플람 재단에서도 아는 것이 매우 적었다. 해리는 가만히 있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소름이 돋았다. 전 세계에서 그랑플람과 문을 연결 지을만한 정보를 아는 것은 자신뿐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 잠도 오지 않았다.
  이제 의뢰는 최우선 사항이 아니었다. 해리는 자신의 새로운 의뢰인을 잊고 눈앞의 거대한 정보에 몰두했다. 그는 그랑플람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또 모았다. 세상에 알려진 정보가 전부였지만 그 틈새에 숨어있는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다. 게다가 해리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정보를 볼 수 있는 깨달음을 얻은 참이었다. 그의 모든 행적이 새롭게 보였다.

  때마침, 그랑플람의 선원이 작성한 일지를 가진 사내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치 신이 해리를 돕기 위해 준비한 것 같았다. 적어도 해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1890년 포트 벨을 떠난 뒤로 베일에 싸여 있던 그랑플람의 흔적이 일부나마 최초로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랑플람의 행적을 뒤쫓고 있을 때 해리는 한 발 빠르게 그의 여정이 목적지가 없을지언정 목적이 분명하다는 걸 깨달았다. 해리는 아직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일지의 소유주와 만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