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리우스는 고통스러운 삶의 휴식처이자 나침반이에요.
안타리우스는 신도들에게 희망을 줍니다. 아아, 안타리우스를 광신하는 일부 무리가 있다는 거 알아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었고요. 하지만 그건 어느 종교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안타리우스에 대해 말하고 싶다면 이 종교를 이루는 근간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해야죠. 희망 말이에요.
자, 희망은 무엇일까요? 희망은 고통스러운 거예요. 사람은 희망이 있어서 절망하고 좌절하고 괴로워하죠. 그런데도 사람은 희망을 품어야 살 수 있어요. 그 고통을 감내하지 않고서는 살아도 산 게 아니랍니다.
대체 희망이 무엇이길래? 한마디로 희망은 바라는 것이에요. 바란다는 건 내가 아닌 것이 되고 싶다는 것이고, 내가 아닌 것이 되고 싶은 이유는 나와 그것이 다르기 때문이죠. 다르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요? 나와 다른 무언가, 이렇게 말하려면 나와 내가 아닌 무언가가 필요하죠? 다르다고 말하려면 나, 그리고 내가 아닌 것이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해요. 그리고 내가 아닌 것이 있으려면 내가 있어야겠죠? 지금까지 말한 걸 거꾸로 해볼까요? 내가 없으면 내가 아닌 것이 없고요. 내가 아닌 것이 없으면 나와 내가 아닌 것이 다르다는 걸 모르겠죠? 그러니까 내가 없으면 희망이 없어요. 희망이 없을 땐 내가 없지요.
안타리우스가 알려주는 희망, 그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안타리우스는 이 세상에 스스로가 존재한다는 걸 인지하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안타리우스와 함께한 후에야 자신이 무언가를 그토록 바라왔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많아요. 희망 없이 산 사람들, 자기 자신을 잃고 산 사람들이죠.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안타리우스는 당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 안타리우스를 믿어 보세요. 자신을 믿어 보세요. 당신도 문을 열 수 있습니다. 문 너머에 있는 것에 대해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 그것을 가진 당신에 대해서 생각하세요. 안타리우스는 그것이 바로 진정한 당신이라고 믿습니다.
먼 옛날, 지금은 사라진 어느 왕조에서 수많은 사람이 하나의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문이 열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들은 문을 지배하려 했다. 문을 열기 위해 후대에는 전해지지 않는 어떠한 주문과 수많은 인신공양으로 하나의 마음, 절망을 만들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그런 일을 하도록 명한 자들은 지나치게 자비로운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데 그 날 목숨을 바쳐 문을 열도록 처참하게 던져진 사람 중 하나가 그 광란의 한가운데서 살아남아 열린 문을 넘어 저쪽으로 갔다. 문이라는 것은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고 또 연결하는 것. 문이 열리기 전에는 이쪽의 언어와 생각으로는 저쪽에 대해 표현하거나 상상할 수 없다. 그러니 그가 저쪽에서 무엇을 보고 겪었는지도 이쪽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는 다시 문을 넘어 이쪽으로 돌아왔다. 그는 무한한 생과 끝없는 능력을 얻었다. 그 뒤로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은 그 문을 열기 위한 사람과 닫기 위한 사람으로 나뉘어 싸우기 시작했다.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그 싸움은 양측의 암묵적 동의로, 평범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음지에서 끝없이 이어졌다. 그들 모두 이쪽 세상을 부수고 싶어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1347년, 로마 콘스탄티노플에서 문이 열렸다. 검은 개가 흘린 더러운 침이 이쪽 세상에 참혹한 얼룩을 만들었다. 기록에 차마 다 담을 수 없는 끔찍한 죽음이 하늘을 덮었다.
1582년, 독일 바이에른에서 문이 열렸다. 달 없는 밤, 깊은 숲속에서 열린 문은 숲을 저쪽의 것으로 바꿔 놓았다. 숲은 거대한 늑대의 울음소리와 소름 끼치는 날갯짓 소리로 가득 찼다. 백작은 숲과 영지를 포기했고, 숲 근처에 살다가 치유력을 얻은 소녀가 악마와 거래했다는 이유로 끌려가 화형당했다. 그 뒤로 살아남은 영지민들도 마녀로 몰려 처형당했다.
1789년, 프랑스 파리에서 문이 열렸다. 아르망 플람과 까를라 샤르코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플람의 사명을 이어가는 르니에 플람이 열린 문을 닫았다. 프랑스는 전에 없이 광기에 다다른 열정 속에서 고결한 영혼이 불타고, 사람들은 죽어갔다.
1860년, 칸도르에서 문이 열렸다. 칸도르와 연결된 저쪽 일부가 이쪽으로 넘어왔다. 세계수와 기계도시였다. 몇십 년 뒤 문을 열려는 사람 중 일부가 칸도르를 찾아냈고, 그것을 가지고 있는 어느 가엾은 노인에게 문 너머의 세상을 알려주었다.
1934년, 그리스 루사노에서 문이 열렸다. 올바르지 않은 강제력이 작용했고, 전설은 재현되지 않았다. 같은 해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문을 발견했다. 레오노르 드렉슬러가 열리려는 문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