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ON

Cyphers

[SUPERMOON] 2장. 상징

  정부가 화이트 클라프를 전면에 내세운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어요. 그는 항상 능력자와 비능력자 사이의 갈등이 심화될 때 정부가 내세운 카드였고, 그 카드는 매번 유효하게 작용했습니다. 우선 그가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된 배경에 대해 설명하는 게 좋겠네요. 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더스트 볼
  미국은 능력자 전쟁에서 한 발 물러서 있었습니다. 어떤 전쟁에도 휘말리지 않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만 분주하게 행동했어요. 능력자 전쟁에 대한 개인의 호기심이나 특정 단체의 참여 의사도 막지 않았지요. 미국은 언제나 자유로운 사상이 흘러 넘치는 곳이었으니까요.

  1930년, 미국 중부 평원 지대에 거대한 모래 바람이 불어 닥쳤어요. '더스트 볼'이라고 불리는 이 자연 현상은 곧 잠잠해질 거라는 기상청의 예상을 깨고, 시간이 지나도 쉽게 누그러지지 않았어요.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USGS에서 대기 및 기후 관련 변화와 자연재해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한두 명에 지나지 않았던 연구원의 숫자는 더스트 볼로 인해 콜로라도 산맥 일대가 황무지로 변하고 곡물 수확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되자 수십, 수백 명으로 늘어났어요.

  정부는 뒤늦게 긴급 식량 구호와 재난 구제 작업을 시작하겠으며, 대규모 식목 작업으로 황무지를 없애겠다고 발표했지요. 하지만 정부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주민들 사이에 퍼져버린 해괴한 소문은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버리게 만들었어요.

“정부가 어떤 달콤한 말을 했건 상관 없어요. 우린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으니까요.”

  거대한 모래 폭풍을 일으킨 건 분노한 신도, 지질학적인 현상도, 대기의 변화도 아닌, 사이퍼였습니다.

타협
  미국 정부는 영국보다 빠르게 사이퍼에 대한 데이터 수집을 끝냈지만, 공식적으로는 사이퍼에 대한 조사를 중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 속엔 아주 충격적인 진실이 숨어 있었어요. 정부에 후원금을 대주던 기업가 중 일부가 사이퍼였고, 요직에 있는 정치가 중에도 사이퍼로 분류된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정부는 이들을 보호해야 했고, '타협점'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을 고려해 사이퍼의 능력과는 별도로 성향에 따른 경계 레벨을 만들었어요. 통제가 불가능한 성향을 가진, 최상위 레벨에 포함된 사이퍼를 순차적으로 제거하기로 했지요. 그것이 모두를 위한 가장 평화로운 선택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남북전쟁
  그들이 선택한 장소는 남북 전쟁 당시 주요 전투지이며, 악명 높은 포로수용소인 앤더슨 빌이었습니다. 내전 덕분에 다른 정부의 의심 없이 관리될 수 있었던 곳이기도 했죠. 이 강제 수용소에는 자국민 뿐 아니라 여러 인종의 이민자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몇 가지 조항을 만들었어요.

[앤더슨 빌 조약]
1. 앤더슨 빌에 있는 위험 등급의 사이퍼들은 모두 정치범으로 규정한다.
2. 앤더슨 빌에 대한 사이퍼들의 정보가 노출되면 바로 폐쇄 조치하며, 수감된 사이퍼들은 등급에 상관 없이 모두 처리한다.
3. 패쇄 결정은 앤더슨 빌의 최고 관리자, 소장 브라이언 피터스 소령만이 할 수 있다.
4. 앤더슨 빌에 수감되는 자들은 잠재력에 대한 테스트까지 완료한 사이퍼이며,
 태어나지 않은 생명체라도 위험 등급이 매겨질 가능성이 1%라도 있다면 위험 등급의 사이퍼를 잉태한 자가 수감된다.

  앤더슨 빌은 점점 더 악명 높은 포로 수용소가 되었지만, 이를 눈치 챈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초기 유럽 이민자 안나 드로스트의 탈출을 시작으로 폭동이 일어나 수감자들이 수용소에 갇혀 죽는 일이 발생하면서 앤더슨 빌에 대한 소문이 새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급히 앤더슨 빌을 폐쇄하고 포로 수용소 소장이었던 브라이언 피터스 소령을 처형했어요. 그는 남북 전쟁 중 유일하게 전쟁 범죄로 처형된 사람으로 기록되게 됩니다.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인 그가 사라지면서 앤더슨 빌에 관련된 이야기도 사라졌어요.

  이로부터 몇십 년이 흐른 뒤, 더스트 볼이 시작되면서 사라졌던 앤더슨 빌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더스트 볼을 일으킨 세명의 사이퍼들은 앤더슨 빌을 모태로 창설된 콜로라도의 사이퍼 강제 수용소에서 탈출한 자였습니다.

폭풍 속으로
  다시 더스트 볼이 일어났던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사이퍼 론의 모래 폭풍이 점점 더 거세지고 파수꾼A의 휘파람 소리를 듣고 몰려온 까마귀 떼가 모래 바람을 따라 움직이면서 폭풍이 흡수한 모든 것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잘게 뜯어 놓았습니다. 여기에 또 다른 미러 능력자 링컨은 펼쳐진 장면을 복사하거나 반사시켜 모든 현상을 완벽한 자연 재해로 만들 수 있었어요.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자 정부는 사과와 함께 비밀수사국의 요원들을 콜로라도로 급파하였고, 관련 사이퍼들에 대한 리스트를 공개했어요. 하지만 이미 많은 수가 탈출한 뒤였고, 이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는 건 불가능했지요. 일부만 출생지가 동일한 병원으로 되어 있을 뿐, 태반이 출생 신고조차 되지 않은 자들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
  더스트 볼로 인한 사이퍼들에 대한 인식은 뒤늦게 1907년 증권 거래소가 폐쇄된 이유가 또 한 명의 천재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더 악화되었습니다.

  평범한 미국 사람들은 사이퍼들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어요. 그들에게 사이퍼는 자신들의 평화로움을 깨고,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무서운 존재가 되었으니까요. 이제 그들에게 사이퍼는 변종 돌연변이가 되었습니다.

  출처도 근거도 없이 사이퍼들에 대한 소행이 우후죽순 번져갔습니다. 미국 정부는 아이콘이 필요했습니다. 비범한 미국 사람과 평범한 능력자 사이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될 수 있는 사람을요. 그들은 화이트 클라프를 통해 비능력자와 능력자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내세우고 싶었던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