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든가의 꽃 - 06.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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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0 12:52:47
이번 미방은 벨져!!
< Episode 06. 사고 >
저택밖에 앉아있는 베로스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눈에서 눈물을 떨어뜨렸다. 아버지에게 맞은 곳이 욱씬거려 아팠지만 그런 고통은 분노로 인해 제대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저벅. . . 저벅. . . 어두워 제대로 보이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밤중에 바깥을 돌아다니는 집안 사람은 없다. 베로스는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은 채 그곳을 응시했다. 여차하면 도망가거나 싸울 준비를 단단히 먹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타난 자의 정체를 알고 나선 긴장의 끈을 놓아버렸다.
“ 루즈메리였구나 ”
그러나 달빛에 비친 그녀의 모습에 베로스는 긴장감대신 걱정과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여기저기 밟힌 듯 찢어져있는 제복에 얼굴뿐만 아니라 온 몸 곳곳에 멍투성이로 가득했었다. 베로스는 누가 그런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루즈메리와 같은 학급의 여자들이었다.
“ 그 계집애들이! ”
베로스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의 볼가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감촉 때문이었다. 언제 다가왔는지, 루즈메리가 자신이 챙겨온 구급가방에서 소독약을 꺼내 그의 상처부위에 발라주고 있던 것이었다.
“ 괜찮아? ”
베로스는 부끄러운지 시선을 돌리며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 너나. . . 조심히 다녀 ”
늦게 귀가를 한 대다, 비싼 제복을 저렇게 망가뜨렸으니, 분명 루즈메리는 엄마에게 맞을 것이 뻔하다. 그들은 그랬다. 루즈메리의 상처받은 몸보다 그녀의 찢긴 제복이 더 중요했다.
그들은 루즈메리는 약값만 축내는 밥버러지정도로 밖에 보지 않으니깐. . . 하지만 루즈메리는 그런 자신의 걱정은 전혀 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주변 사람에 대한 걱정이 우선순위다. 그녀는 매번 그런 식이다. 매정한 부모도, 왕따를 시키는 학우들도 그녀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자신의 사랑을 감싼다.
그게, 그녀다.
.
. . .
. . .
. . . .
“ 괜찮니. . . ”
벨져는 지금 무슨 상황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분명, 엄마를 보고선 달려갔는데, 갑자기 뭔가가 튀어나왔었고, 깜짝 놀라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 자신은 엄마의 품에 안겨있었다. 다리 쪽에 쓰라림이 느껴졌지만 워낙 정신이 없어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루즈메리가 ‘괜찮냐’라면서 계속 물어보아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여 주었다. 그러다가 벨져는 자신의 볼가로 뭔가가 떨어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끈적끈적한 액체였다. 바로 그의 위에 있는 루즈메리에게서 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 어, 엄마. . . ”
“ 우리 벨져 괜찮은가보네, 다행이야. . . ”
무심결에 루즈메리를 올려다본 벨져는 울먹거리며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 머, 머리에서. . . ”
“ 엄마는 괜찮아, 괜찮아 ”
그만 벨져는 울음을 터트려버렸다.
그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루즈메리 본인의 눈엔 오직 벨져 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 아이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몸을 던졌고, 벨져를 최대한 안전하게 감싸안아주었다. 다행히 그녀는 벨져를 보호하는데엔 성공했다. 루즈메리는 벨져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갑자기 의식이 몽롱해지기 시작했고, 머리에서 뭔가가 흘러내리더니 벨져의 볼가로 몇 방울 떨어져내렸다. 그것은 . . . 피였다. 루즈메리는 그것이 자신의 피라는 것은 인식한 것을 마지막으로 의식의 끈을 놓아버렸다.
몇 시간 전 . . .
“ 유모~ 유모~ ”
이글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어 낮잠을 재운 루즈메리는 왠지 저택이 텅 비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일하고 있는 몇몇 하인들을 제외하고는 유모 비타와 벨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루즈메리는 저택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벨져를 찾고 있었지만 하늘로 솟았는지, 아니면 땅으로 꺼졌는지 그림자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되니 슬슬 걱정이 되는 그녀였다. 그렇게 찾던 중 마침 근처에서 지나가던 하녀를 잡아 벨져의 행방을 물어보았다.
“ 벨져 도련님은 유모와 함께 장보러 나갔습니다. 아마, 곧 돌아올꺼에요 ”
처음엔 루즈메리는 그녀의 말을 듣고 그들이 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의 인내심은 10분이 한계였다. 벨져가 걱정되어 더는 못참고 외출준비를 서둘렀다. 거기까지는 좋았지만 막상 문을 열고 나가려니 망설여졌다.
“ 이건, 벨져를 위한거야 벨져를 위한거야 ”
같은 말을 게속 반복하면서 자기 최면을 걸은 루즈메리는 용기를 내어 바깥으로 나갔다. 처음 해맬 것 같은 불안함과는 다르게 벨져를 만 때까지걸린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벨져도 엄마를 발견했는지 반가워하며, 손을 흔들어보였고 루즈메리 역시 마찬가지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비타와 벨져는 루즈메리가 걷고 있는 길의 맞은편에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마차 같은 탈 것들이 지나가는 길이 놓여 있었다. 주위를 둘러본 벨져는 말들이 지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루즈메리에게 달려갔다. 비타도 루즈메리도 길이 한가했었기 때문에 벨져의 행동에 크게 제지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어디서 나타났을지 모를 마차 한 대가 쏜살같이 달려오는 것이었다. 그것을 먼저 발견한 것은 루즈메리였다. 마부도 아이를 발견했는지 급하게 제동을 걸려고 고삐를 잡아 당겼지만 멈추기에는 너무 가까워진 거리였다.
벨져와 마차가 충돌하기 직전, 그 사이에 루즈메리가 뛰어들었고 지금의 상황이 되었다. 다행히 말이 벨져와 루즈메리를 밟고 가는 사태까지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말이 급정지하면서 들어올린 앞발이 루즈메리의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는 것이 문제였다. 머리를 피로 흥건이 젖신채 쓰러진 그녀를 보며 놀란 비타는 놀란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건장해보이는 청년에게 루즈메리를 업혀 근처 병원까지 이동시키는 동시에 홀든가에 이 소식을 전해줄 사람을 보냈다. 비타 자신은 청년을 따라 병원으로 이동했다.
병원으로 후송된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다. 아마, 피를 많이 흘려서인 것 같았다. 그녀는 급히 수술실로 실려갔다.
비타가 공포에 떨고 있는 벨져를 달래며 기다리는 사이, 홀든 가주가 병원에 도착했다. 급하게 왔는지, 그는 한참동안 숨을 가쁘게 쉬며, 비타의 설명을 들어야했다. 상황을 들은 홀든은 벨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타의 품에 안겨있는 그는 몹시 겁을 먹은 상태였다.
“ 유모는 저 아이를 데리고 돌아가게나. 여긴 내가 있겠네 ”
“ 알겠습니다, 주인님 ”
루즈메리가 생사를 오고가고 있을 곳에 시선을 두던 비타는 홀든에게 가볍게 목례를 취한 후 벨져를 데리고 그곳을 저택으로 돌아갔다. 대기실에 배치되어있는 의자에 앉은 홀든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운명을 기다렸다.
“ 우선, 위기는 넘겼습니다만,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서 우선은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
문제가 없다는 의사에 말에 홀든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병실로 들어가니 침실 위에서 곤히 자고 있는 루즈메리의 모습이 보였다. 머리에는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는데, 평온한 표정을 보니 홀든 자신도 안심이 되었다. 침실 옆에 있는 의자에 앉은 홀든은 아직 온기가 채 돌아오지 않은 그녀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었다. 두 눈을 조용히 감은 그는 말없는 기도를 어딘가에 있을 그에게 보냈다.
‘ 부디, 그녀가 건강하게 깨어주게 해주십시오. 제가 바라는 것은 오직 그것뿐입니다. ’
홀든은 그녀가 깨어날 때까지 그곳에 머물기로 결심했는지, 저택으로 돌아가지 않고 하루종일 그녀의 곁을 지켰다. 먹고, 자는 것도 전부 그녀의 옆에서 해결했다. 여분의 침대가 없어, 간이식으로 만든 조그만한 침대에서 잤다. 불편할 법한데도 그는 아무런 불만없이 오직 루즈메리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정말 중요한 일이 생기거나, 화장실을 가는 것 외엔 그녀의 곁에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정성이 통한 것일까, 이틀 후 떠질 것 같지 않았던 그녀의 의식이 깨어났다.
집에 돌아온 루즈메리는 한동안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고의 후유증도 있고,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기력이 많이 쇠한 것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생활을 침대에서 보냈다. 침대에서 혼자 있을 루즈메리가 걱정됬는지, 항상 그녀의 곁에는 이글이 있었다. 침대 위에 올라와 함께 낮잠을 자기도 하고, 동화책 한권을 들고와 읽어달라고 하기도 했다. 가끔은 다이무스나 벨져가 찾아와 학교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주곤 했다. 홀든 삼형제의 노력(?)덕분에 루즈메리는 침대생활을 지루하지않게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낸 그녀는 다시 예전처럼 생활에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동안의 안락함이었다.
사건의 시작은 이글의 생일 때였다. 그날도 이글의 생일을 위해 모든 하녀들이 분주하게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글은 자기 나름대로 친구들에게 줄 초대 카드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분주한 하루 동안 유일하게 여유로운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루즈메리였다. 그녀는 가끔 지나가는 하녀들에게 ‘오늘 왜 이렇게 바빠?’라고 물어보았고, 하녀들은 그것을 장난으로 착각하고 웃으며 ‘오늘 특별한 날이잖아요. 마님께서 일생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날이라고 하셨으면서’라고 답해주었다. 그때마다 루즈메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 농담으로 답해주었던 하녀들은 점차 그녀의 이상한 행동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의심을 품는 것일뿐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녀들에게는 바쁜 일들이 쌓여있기 때문에 다른 곳에는 신경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일파티를 시작할 때 유모 비타는 누군가가 안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가 루즈메리라는 것을 알아차리는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녀를 찾아 저택을 헤매던 비타는 루즈메리가 정원을 걷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아가씨, 여기서 뭐하세요? ”
“ 뭐하긴, 산책하잖아 ”
“ 오늘 이글 도련님 생일이잖아요. ”
정원을 걷던 루즈메리는 잠시 동안 멍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치, 그녀에게만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착각을 주었다. 한참동안 허공을 바라보던 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순간, 하루종일 하녀들이 분주하게 뭔가를 준비한 것이 떠올랐다.
“ 그, 그랬었나 ”
단 한번도 자기 자식의 생일을 잊은 적이 없는 루즈메리였다. 아니, 생일 일주일 전부터 무슨 선물을 사야할지 이번엔 어떻게 파티를 해야할지를 고민을 하며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는 것이 그녀다. 그런데 이글의 생일을 잊어버린 것이다. 유모 비타는 서둘러 루즈메리를 저택으로 모셨다. 그날 생일파티를 하는 내내 루즈메리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마냥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비타는 그런 그녀가 걱정스럽긴 했지만 사고 이후 정신이 없어서 까먹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증상을 알리는 신호탄에 지나지 않았다.
이글의 생일파티 이후, 루즈메리가 깜박하는 일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사소한 일들이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중요한 일들도 까먹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빈도 수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물을 마시기 위해 컵을 들고선 자신이 왜 컵을 들고 있는지를 몰라 한참동안 고민하다가 이글에게 물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이글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단어를 읽지 못할 때도 있었으며, 자신의 방이 어딘지도 잊어버릴 때가 있을 정도로 그 정도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 . 오늘 그녀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경고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도 어김없이 벨져와 다이무스는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함께 저택으로 돌아왔다. 언제나처럼 루즈메리는 그들이 오는 시간에 맞춰 현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두 팔을 벌리며 둘 중 한명을 안아주었다.
“ 벨져 왔니? 학교 생활은 어땠어? ”
“ 어, 엄마 . . . ”
그러나 아들의 반응이 시원치가 않았다. 그는 뭔가 당황을 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아들도 그리고 그녀와 함께 있던 하녀도 뭔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즈메리는 장난치는건가 싶어서 장난스러운 말투로 물어보았다.
“ 응? 왜그러니? ”
그는 한참동안 망설이다 끝내 입을 열었다.
“ 저, 다이무스인데요. ”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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