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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자넷클레 - Die Honigmilch Und Grüne Tee 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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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루펜 [29급]

2013-07-02 03:29:53

오후에 올린댔는데 오후에 어디 갈거라 걍 지금 올리고 코 잡니다.

 

 

 

 

 

 

 

 

상편 :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7053850

중편 :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7084808

수위는 없는 여캐 순정물?입니다. 참고하세요.

 

 

 

 

 

 

Die Honigmilch Und Grüne Tee

(허니밀크 & 그린티)

 

 

 

 

 

 

 

 

#6

 

  크리스티네 프리츠는 눈을 흡뜨고 이를 악물었다가 뒤로 돌아보았다. CHEERGIRL의 클론이 손끝으로 빔을 내쏘는 자세를 한 채로 크리스티네 프리츠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등 뒤로 손을 뻗어 보았다. 복사열을 받아 그녀의 왕실 호위대 제복의 뒷부분 타 있었고, 1도 화상을 입은 것 같았다. 무력한 상태로 어쩔 줄 몰라 하는 진짜 클레어를 바라본 크리스티네 프리츠는 입모양으로 말했다. 괜찮아. 그리고 뒤를 돌았다. 느릿하고 어색한 동작으로 다시 빔을 쏘려는 자세를 잡는 클론을 바라본 그녀는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그녀가 달려드는 순간 빔이 또다시 내쏘여졌다.

 

  클레어는 자신의 것과 흡사한 빛으로 눈앞이 하얗게 번쩍하는 것을 느꼈다. 수 차례 눈을 깜박이고 나서야 겨우 실눈을 뜨고 전방을 주시할 수 있었다. 눈앞에 어른거리던 빛무리가 물러가고 나서 보이는 것은, 자네트가 클론을 붙잡고 레이피어로 가차없이 찌르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형상을 한 것이 피를 뿜으며 쓰러지자 그녀는 검풍을 일으켜 아예 두 쪽을 내어 버렸다. 다른 CHEERGIRL의 클론 둘이 실험 캡슐 뒤에서 나타났다. 그러자 자네트의 양발이 바닥에서 떨어진다 싶더니 프레스토를 사용했다. 유려하고 깔끔한, 그러나 일말의 자비심도 느껴지지 않는 몸짓이었다. 그 직후 이어진 자발레타, 사실 그녀의 레이피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바로 앞에 있는 클론뿐 아니라 약간 우측 뒤에 있던 개체까지도 갑작스레 몸에 자상이 늘어나면서 선혈을 흩뿌리는 것처럼만 보였다. 그리고 무언가가 쏜살같이 캡슐 너머에서 나타나 자네트의 정면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채앵!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레이피어를 휘두르던 크리스티네 프리츠는 그제사 전방을 제대로 주시했다. 앞으로 찔러 오던 자네트의 레이피어를 옆으로 쳐내서 막은 다이무스는 아주 짧은 순간 그녀의 눈에 붉은기가 번들거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핫 하고 정신을 차린 듯 검을 거두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착각이라 생각했는지, 아니면 지금은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여긴 것인지 태도를 검집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방금 전의 두 개체를 제외하곤 다 베었다. 이것들을(슬쩍 아래를 내려다보았다가 재빨리 외면하며 말을 이었다.) 쫓고 있었는데 네가 처리했군.”

 

  “예….”

 

  “부상을 입었는가.”

 

  “경미한 수준입니다.”

 

  “스미스 양은 어디 있나.”

 

  “…….”

 

  크리스티네 프리츠는 차마 뒤를 돌아보지는 못하고 고갯짓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그녀는 맑은 진녹색 눈동자에서 비롯된, 두려움에 찬 시선을 느꼈다. 그리고 다이무스가 검으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자 앞만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실험기지 외곽까지 빠져나오자 대기중인 회사의 응급차량을 만날 수 있었다.

 

 

 

 

 

 

 

 

 

  이틀 뒤에는 눈이 내렸다. 예년에 비해서 심히 급작스런 폭설이었다. 석탄분말과 황을 머금은 눈과 먹구름 탓에 포트레너드는 온통 회색이었다. 레지던트에게서 오후 진료를 받고 난 크리스티네 프리츠는, 병실 너머의 뿌연 세상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노크 소리를 들었다. 병실에 들어온 것은 타라와 다이무스였다. 두 사람의 얼굴은 추위로 팽팽하게 상기되고, 눈을 맞았다가 실내에 들어온 탓에 머리카락이 약간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오셨군요.”

 

  “좀 어때?”

 

  “저는 지금도 퇴원할 수 있습니다.”

 

  “그건 자네트 네 생각이겠지. 그러니 침대에서 나오지 말고 그냥 있어. 차 정도는 우리가 알아서 타 마시겠어.”

 

  문맥상으로만 퉁명스럽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타라는 솜씨 면에서나 속도 면에서나 숙련된 모양새로 순식간에 녹차 세 잔을 탔다. 다이무스가 끌어온 손님용 의자에 앉아 녹차를 마신 타라는 좀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영국의 한파가 지긋지긋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사건 자체가 아직 진행형이라 짜증나지만, 최소한 그 실험기지 건에 대한 정리는 끝났어.”

 

  “빠르군요.”

 

  “지휘부가 유능하니까.”

 

  타라는 눈을 찡긋했다(그 순간 다이무스의 얼굴에 회의의 기색이 스쳐지나간 것은 착각이리라.). 그리고 녹차를 더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기지가 소규모고 인원이 얼마 안 되긴 했지만, 기지 내의 인물들은 87% 검거해서 수사팀으로 신병을 넘긴 상태야. 다이무스가 베었다는 투과능력자의 경우도, 확실히 죽은 것을 확인했지. 실험센터도 조사 중이고. 물론 옥사나도 없고 보안도 상대적으로는 허술했던 곳이라 큰 기대는 안 해.”

 

  “노고가 크겠습니다.”

 

  “그런 말투는 그만둬. 어차피 이제 최종보고서를 내가 정리하기 전까지는 괜찮을 거야. 그보다 후속처리가 필요해졌어.”

 

  타라의 말에 크리스티네 프리츠는 잠시 의아해하다가 그녀에게 되물었다.

 

  “저에게 그런 말을 하신다는 건, 제게 맡기고 싶다는 뜻입니까?”

 

  “난 눈치 빠른 아가씨가 좋더라.”

 

  “무엇입니까? 필요하다면 지금이라도 나가서….”

 

  “아니, 조사나 전투가 아니야. 일단 네가 그 아이를 보호하고 있었으니까, 회사측의 권위를 내세우기 보다는 네가 보호자로서 설득을 해줬으면 해.”

 

  클레어에 대한 이야기가 분명했다. 순간 다소 불길한 생각이 든 크리스티네 프리츠는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혹시, 스미스 양을 통해서 조사를 더 진행하시려는 겁니까? 그 아이는 지금 심신이 많이 약해져 있습니다만…….”

 

  “무슨 끔찍한 생각을 한 거야?”

 

  “…예?”

 

  어리둥절해진 크리스티네 프리츠는, 타라와 다이무스를 번갈아 보며 답을 요했다. 묵묵히 있던 다이무스는 빈 찻잔을 탁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스미스 양의 귀국을 종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말 한다고 해서 너를 탓하는 거라 생각하지 마. 하지만 회사의 주요 능력자가 보호를 해도 미성년 능력자들이 위험한 상황인 게 사실이야. 특히나 스미스 양의 능력이 그들의 중요한 목표라는 게 명백해졌어. 바다 건너로 그녀를 보내는 게 영국에서 사람을 붙이는 것보다 훨씬 안전해. 치안 면에서나 능력자들의 신변을 통제하는 것에 대해서나 말이지. 사실 이미 결정난 사항이나 다름없어. 하지만 설득을 잡음 없이 하면 좋겠다는 거지.”

너무나도 명백하고 조리 있는 타라의 말이 남아서 크리스티네 프리츠의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회사 측에서 제시한, 아니 통보한 조처는 당연하면서도 확실했다. 그러나 왜 자신의 가슴은 더 먹먹해지는 것일까.

 

눈발이 거세져 세상은 더 뿌옇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만큼이나.

 

  #7

 

  크리스티네 프리츠는 다음 날 아침 소포 하나를 받았다. 발신인은 ‘Charlotte, The Laundry.’, 자신의 호위대 제복이 수선되어 온 모양이었다. 간호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몇 시간만 링거 주사를 뺀 그녀는 환자복 대신에 제복으로 갈아입었다. 하루이틀 남짓 링거를 투약했을 뿐이건만 손이 부어서, 커프스가 왼손 손목을 더 조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녹차 한 잔을 타서는 병실을 나섰다.

 

  클레어가 입원한 소아청소년 병동은 일반 병동에 비해 소란스러웠다. 아이들의 칭얼대거나 재잘거리는 소리, 엄마를 부르는 소리들로 가득했다. 모퉁이를 돌아 나온 클레어의 병실 근처 복도에는, 만약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너댓 살쯤 되지 않았을까 싶은, 딱 그런 나이의 평범하게 생긴 여성이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를 지나치는 순간 아주 잠시 뒤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눈을 마주치거나 의식하지 않으려 하면서 자신을 관찰하는 기색에 크리스티네 프리츠는 그녀가 실력 있는 감시원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녀를 지나쳐서 병실 문을 노크했다.

 

  “누구세요?”

 

  “클레어. 나란다.”

 

  “…….”

 

  그 침묵이 어쩐지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용무가 있으니 들어가마.”

 

  2인실에 클레어 혼자 있었다. 오전이었지만 날씨가 흐려서 불을 켜지 않고 있기에는 약간 어두웠다. 그러나 크리스티네 프리츠는 불은 켜지 않은 채로 그대로 들어와 대신 커튼을 열었다. 바깥의 뿌옇고 희끄무레한 풍정이 아주 약간 침대 근처를 밝게 만들었다. 크리스티네 프리츠는 탁상에 녹차 잔을 놓고 보호자 의자에 앉으며 클레어의 모습을 살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묻지 않았지만 그녀의 푸석푸석해진 얼굴과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에서 그녀가 겪었던 감정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느낄 공포의 일부는 자신이 떠안겼을 것 같아, 오히려 클레어의 앞에 앉아 있는 지금 이 순간에 크리스티네 프리츠 자신이 두려움을 상기했다.

 

  “클레어, 좀 어떠니?”

 

  “…몸은 이제 괜찮아요.”

 

  실제로 이렇다 할 구타를 당한 바는 없었고, 실험기지에서 그녀에게 투약한 것은 마취제 정도였다고 하니 그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중점적으로 진단한 것도 결국 외상후증후군과 스트레스 질환이었으니 말이다. 클레어는 크리스티네 프리츠를 외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애써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묻어난 불안이 읽혀왔다. 되레 크리스티네 프리츠 자신이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가만히 침대 시트 쪽으로 눈을 깔아내리게 되었다.

 

  “저기….” “클레어…?”

 

  몇 초간의 침묵 끝에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말이 나왔다. 그리고 둘 다 당황했다.

 

  “아, 먼저 말하렴.”

 

  “아니에요. 자네트 씨 먼저 하세요.”

 

  “……그래.”

 

  크리스티네 프리츠는 작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신중하지만 단호한 음성을 꾸며서 그녀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회사가…, 아니, 아무튼지간에 너의 신변에 대해서 고민을 해 봤단다.”

 

  “네…….”

 

  “지금 이곳의 상황이 많이 안 좋다는 것과, 그게 어느 정도인지는 이미 알고 있지 않니. 그렇지?”

 

  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물론 상황만을 탓할 생각은 없다. 분명히 나의 불찰과 소홀함도 작용을 했으니까. 너를 위험에 빠뜨려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단다.”

 

  “…….”

 

  “어쨌건 지금 영국의 능력자에 대한 치안단속이 미흡하다는 점, 회사에서 능력자 조직을 통제하는 것과 일반인으로 살아가는 능력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안타리우스에서 실력행사를 할 가능성도 있으며 회사측에서 먼저 이 문제에 더 심층적으로 접근할 경우에도 지금보다 더 큰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등 많은 문제가 있지. 그리고 그게 너를 비롯한 어린 능력자들에게는 여러 모로 좋지 않아.”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결론에 대한 재촉일까, 아니면 앞일에 대한 불안함을 표출한 것일까. 클레어가 되물었다. 크리스티네 프리츠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네 개인적인 사정 같은 것을 고려하지 않고 권유하는 것에 우선 사과하마. 하지만 클레어, 네가 조금 일찍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무리하고 고국으로 가 있으면 한다.”

 

  그 순간의 클레어의 복잡 미묘한 표정에서 몇 가지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녀는 그런 식의 권고를 예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에 대한 반발심이나 서러움이 읽혔다. 그리고 크리스티네 프리츠가 느낄 수 있는 클레어의 심경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바로 체념이었다. 저런 소녀에게, 밝은 빛으로 이루어진 영혼에 그런 감정을 안겨주고 싶지는 않았건만.

 

  “지금 내부적으로 안타리우스나 능력자 집단들에 대해서 통제는 회사가 난항을 겪고 있지만, 적어도 영국 정부 차원에서의 현지 거주 능력자 감시감독은 제대로 이루어지는 편이지. 그러니 클레어 네가 미국으로 간다면, 네 안전은 보장이 될 거다. 그리고 단지 조금 앞당겨진 것에 지나지 않지 않니.”

 

  ‘너를 위해서야.’라는 말은 변명 같아서 하지 않았다. 클레어는, 다소 오래라고 느껴지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도톰한 입술이 열리고, 망설이는 것처럼 달싹대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내놓았다.

 

  “목요일에…, 떠날 수 있게 해주세요. 학교 시상식에 참여하고요.”

 

  “그래. 출국과 학적 문제는 회사에서 처리를 해 줄 거다. 그리고 가능한 편의를 봐 주게끔 말해두겠다.”

 

  크리스티네 프리츠는 일어섰다. 그러고 보니 가져와 놓아두었던 녹차가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다. 그리고 적은 물에 오래 우린 탓에 누렇게 변했다. 그것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입 안에 씁쓸함이 맴도는 것 같았다. 그녀는 찻잔을 집어 들고 병실 세면대에 가져가 녹차를 버리고 병실을 나왔다.

 

 

 

 

 

 

 

  목요일 아침이 올 때까지 둘은 거의 마주치기 힘들었다. 클레어는 화요일 오후에야 퇴원해서 크리스티네 프리츠의 집에 와서 쉬었고, 이틀 일찍 퇴원한 크리스티네 프리츠는 보고서 작성 및 조사팀과의 정보 대질 등을 하느라 만나기는커녕 클레어를 염두에 둘 시간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업무가 다 끝나고 밤에 간신히 야간 당직 레지던트에게 치료를 마저 받았다. 다행히 약품 등의 화학물질이 요인이 된 화상이 아니라 빨리 낫고 있었다.

 

  그리고 수요일에서 목요일로 날짜가 바뀔 무렵에 귀가한 크리스티네 프리츠는, 몇 시간 뒤에 황망한 기분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욕실에 가 보니 미지근한 습기가 차 있었다. 클레어가 먼저 일어나서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한잠도 못 잤을 수도 있겠지. 그녀가 씻고 나올 무렵 클레어는 교복 차림으로 트렁크 하나와 어깨에 메는 가방, 그리고 파우치 하나를 챙겨서 현관에 갖다 놓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을 때 둘은, 만나고서 처음으로 눈으로 인사를 했다.

 

  왠지 이 시간을 견디는 것이 힘들어서 크리스티네 프리츠는 시계를 보았다. 일곱 시 십분. 이른 시간이다. 그리고 자신이 바쁜 동안 클레어의 일상생활, 특히 식사 부분에서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사실이 상기되었다.

 

  “잠시 앉아서 기다리렴. 아직 널 통학시켜 줄 차량이 오려면 멀었으니까.”

 

  “네…….”

 

  잉글리쉬 머핀을 베이스로 한 에그 베네딕트를 만들었다. 홀랜다이즈 소스가 묽고 수란을 만드는 것이 조금 서툴렀지만 식사 구색은 갖출 수 있었다. 자신은 이런 것을 식사로 여기는 것이 여전히 익숙지 않지만, 클레어가 적응한 몇 안 되는 영국 요리로 기억되었다. 그리고 허니밀크를 타서 2인용 테이블에 놓았다. 클레어는 잠시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머그잔에 손을 뻗었다. 그러고 보니 앞으로는 더 이상 만들 일이 없겠군. 사소한 것까지 슬픈 감상으로 승화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사실이 떠올랐다. 둘은 말없이 식사를 했다.

 

  “잘 먹었어요. 고마워요, 자네트 씨.”

 

  “그래. 이제 나가면 될 것 같구나.”

 

  “네….”

 

  “내가 배웅해 주지 않아도 괜찮겠니?”

 

  말로 대답할 용기는 없었는지 클레어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자신의 뒤나 옆으로 쫓아다니며 그렇게 열심히 무언가를 말하지 못해 안달이던 그녀가 제스처로 말하는 것이 서글펐다.

 

  클레어가 현관 앞에서 단화를 막 신으려는 참이었다.

 

“클레어.”

 

  클레어가 돌아보았다. 크리스티네 프리츠는 자신이 그녀를 불러 세운 것이 과연 잘 한 것일까 하는 망설임이 들었다. 하지만 말을 꼭 해야만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서, 결국 입을 열었다.

 

  “너에 관련된 일…, 그리고 내가 했던 그 일들. 말하지 않은 게 사실은 잘못일지도 모르겠구나. 네가 두려워할까봐 걱정했단다. 그런데 그 염려가 더 큰 두려움을 주는 결과가 된 것 같다. 제대로 된 사실을 말하지 않아서 아무것도 각오하지 않은 상태로 끔찍한 일을 맞이하게 된 상황을…….”

 

  “…….”

 

  “그래서, 정말 미안하다. 너를 지켜주지 못한 것과, 너한테 그런 장면을 보게 만든 것 말이야. 이제 네게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겪은 일을 잊을 수 있을 만큼 좋은 추억만 갖고 살길 바란다.”

 

  크리스티네 프리츠가 말을 잇는 동안 클레어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그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눈앞이 부옇게 젖어가는 까닭이었다. 머뭇거리던 클레어는 크리스티네 프리츠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그러니까 크리스티네 프리츠가 믿을 수 없게도 클레어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 사실을 크리스티네 프리츠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동안 클레어의 젖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아니에요. 자네트 씨는 저를 지켜줬어요. 그리고….”

 

  “…….”

 

  “자네트 씨는…, 제가 떠나도 계속 여기 있겠죠. 계속 싸우고, 또 다칠지도 모르고요.”

 

  “…….”

 

  “제가 겪은 일은 무서워요.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자네트 씨는 계속 그런 일들에 뛰어들고 싸워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자네트 씨가 할 수밖에 없었던 일 때문에 저한테 죄책감까지 갖게 해서……, 제가 미안해요. 자네트 씨.”

 

  클레어는 더 심하게 흐느끼지는 않았다. 그러나 포옹하고 있는 팔에 힘을 더 주는 것 같았다. 크리스티네 프리츠는 눈만 움직여서 클레어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그녀의 등을 쓸어주며 말했다.

 

  “클레어.”

 

  “네……?”

 

  “나는…, 크리스티네란다. 크리스티네 프리츠.”

 

  “…….”

 

  “내 진짜 이름이지. 불러주지 않겠니?”

 

  클레어는 포옹을 풀고 살짝 발꿈치를 돋웠다. 그리고 자네트, 아니 크리스티네 프리츠의 양 뺨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크리스티네, 건강해요. 그리고 다시 만나요.” 그러고서 클레어는 그녀를 향해 웃어 보이고 트렁크를 끌고 현관을 나섰다.

 

 

 

 

 

 

 

 

#Epilogue

 

  클레어는 떠났다.

  세상 모든 것의 어둠과 더러움은 그림자로서 돌리고 오로지 따사롭게 감싸는, 그리고 모든 것을 용서하는 빛과 같은 미소가 크리스티네 프리츠의 눈에만 잔상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리고…….

 

  ‘방금 그 아이는, 나를….’

 

  크리스티네 프리츠는 클레어의 포옹을 기억하면서 양손을 엇갈려 자신의 팔을 감싸보았다. 연약하지만 포근한 그 감촉이 살결에 맴돌았다. 뿐만 아니라 양 볼에도 온기가 스며 있었다. 우유향이 잔존하는 따뜻한 입맞춤을 떠올리자 그것이 촉매가 되어 그녀의 안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되는 것 같았다. 뺨으로 느꼈던 뜨거움이 가슴 속 언저리에 맺히더니 어디론지 나가려고 요동치는 것 같았다.

 

  크리스티네 프리츠는 자신이 왜 이런 느낌을 갖는지도 모르는 채로, 아픔과 달콤함이 혼재한 응어리를 감지했다. 크리스티네 프리츠는 시선을 주지 않고 있지만 그녀의 옆얼굴을 보여주는 거실 거울 속에서 그녀의 표정은 당혹스러움을 나타내고 있었다.

 

 

“……응?”

 

 

  언제라고 짚을 수도 없을 순간에 저릿한 뜨거움이 눈 아래에서 솟구쳤다. 그것을 인지할 무렵엔 이미 여러 눈물방울이 구르면서 크리스티네 프리츠의 양 뺨을 적시고 있었다. 어느새 환해진 거실로 비쳐온 햇살이 눈물방울에 부딪혀 반짝였다.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그러자마자 그녀는 자신의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을 느끼고 거기에 스스로 이끌렸다. 차마 소리는 낼 수 없었지만, 크리스티네 프리츠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는 짤막한 간격으로 흐느끼는 숨소리가 새어나왔다. 눈꺼풀을 꾹 감자 눈물은 멎기는커녕 후두둑 떨어졌다. 그녀는 한 손으로는 가슴께의 옷자락을, 다른 손으로는 두 눈을 감싸며 서서히 거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울음은, 곧이어 들려오기 시작한 요란한 전화벨 소리에도 대응하지 못하도록 크리스티네 프리츠를 뒤흔들고 있었다. 한참을 울리다 지친 수화음을 제치고 온후크로 들리는 것은 자네트의 목소리였다.

 

 

  “Hier Jannete, Ich bin leider nicht zu Hause. ruf mich bitte später noch mal an!(자네트입니다. 지금은 집에 없습니다. 나중에 다시 전화하시기 바랍니다.)

  “다이무스다. 무전 응답이 없어 메시지를 남기겠다. 스미스 양을 보냈을 것으로 추정한다. 듣는 즉시 실험기지 최종 수색작전에 참여하라. 이상.”

 

  전화기에서 비롯된 무미건조한 음성과 나직한 오열이 한 공간에서 맴돌았다.

 

[The end]

 

 

 

 

 

 

짧았네요.

댓글추천 주셨던 분들, 특히 꾸준구독 해주신 부처멘탈토둠님 감사합니다(__)

사실 이건 훼뱅마인님 보시라고 썼고 미니북 제작했던건데 웹 게시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심심하니까 미니북 만드는 과정 몇 개 보죠

하나만 올리고 싶었는데 책주인께서 다올리라고...-,.-

 

 

 

본문의 안쪽을 꿰맵니다

28장이나 되어서 3분할했습니다.

바느질은 힘으로 하는게요. DEX는 무슨...

 

 

 

다 이어붙인 본문 모습입니다. (원래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꿰매진 않습니다. 이러면 잘 안 맞물리거든요)

 

 

 

하드커버가 필요합니다. 진녹색 티라미스지와 하드보드지를 사용합니다.

전개도를 그리되 본문지보다 가로세로바깥으로 약간mm 길게 잡습니다. 책두께는 정확한게 좋구요.

 

 

 

서걱

 

 

 

처덕

 

 

 

 

하드커버 안쪽을 마감합니다.

편지지를 하나 썼습니다(협찬 : Monshell)

 

 

 

우드락본드로 책두께부분을 떡칠하고 붙입니다.

마르는 데 시간이 몹시 걸리는데 미련하게 쥐고 있다가

집게를 물려놓으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아무것도 못했더랬죠ㄱ-

 

 

 

 

이래놓고 한숨 자면 완성입니다.

 

 

 

 

 

네 사실 표지인쇄를 거꾸로 했는데 진녹색 티라미수지가 한 장밖에 안 남아서 일본책처럼 만들고 말았습니다

llorz

아무튼 다시 한 번, 관심가져주신 여러분 감사드리며

 

 

 

 

 

 

 

 

 

 

 

 

 

 

 

 

 

9월 중순에 찾아뵙겠습니다.

그 전까지 빌빌거리는 제 모습을 보고 싶으시다면

Twitter : @helrufen 로 오시길...

 

 

 

썸네일 : 훼뱅마인

텍스트 : 헬루펜

예고 : X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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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구나~ 후후후... YES NO 하- 감히! 이녀석들! 그땐 그랬지
Hi~ OK Oh! 냠~ Love U~ 궁금해! YES! 히힛~
안녕하십니까? 예~예~ 모든 것은 신의 뜻... 불허합니다. 의외군요. 나 원 참... 시작할까요? 강화인간!!
안녕? OK 궁금하네요. 역시! 재미있네. 깜짝이야! 아~니? ...
웃음 두려움 만족 놀람 동의 분노 좌절 인사
안녕하세요? 넵!! 미안해요!! 앗! 좋아요! 엣헴. 추천! ㅠㅠ
안녕하심까~ 피- 좋다! 못마땅해... 곱다~ 덤비라! 후우- 아슴찮다..
허~허~ 아, 아니... 헐! 흠흠... 끄응... 시, 식은땀이.. 엥? 후어어..
후훗~ Trick or Treat! 사.탕.내.놔. 소녀... 억울하옵니다... 사, 사탕 주세요! 해피... 핼러윈... 날 위해 사탕 정돈 줘야지? 목표? 당연히 사탕이지!
안녕~ ?? 피- 어머! 흐어 오오- 안돼! 랄랄라
우쭈쭈 하하 하? ?? 이거 참... -_- 안녕하십니까 안됩니다
ㅇㅅㅇ 으르릉... 나, 나! (정색) 깔깔 아니야!! 뿌잉 메~
안녕하십니까! 흐응? 흐으으응?! 척! 칫.. 좋-았어! 엥? 후에엥-!!
칫 엄숙하고 근엄하고 진지하다 믿습니다 내 안의 ...가 깨어난다 영업 중 할많하않 충격! 공포! 둠칫 둠칫 두둠칫
파이팅!! 고마워~ 졌어... 히힣 극대노 미안! 거울 앞에서 자의식 과잉된 십대 라이언
저는 지금 극공입니다. 훠이훠이 하.하.하. 매우 화가 납니다. 총기 손질중입니다. 저와 한 판 붙어보시겠습니까? 당신에 대한 정확한 진단 안돼!
뭐가 궁금하죠? 축하드립니다. 너에게는 뭐든 주고 싶어. 칭찬 드립니다. 대-단하십니다. 내겐 보여, 너의 죽음 당신을 믿습니다. 이런 미래는 싫어!
감사합니다. 기쁩니다. 축하합니다. 칭찬해 드리죠. 놀랍군요. 심기가 불편합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우 화가 나는군요.
짝.짝.짝.짝 고마워... 멋있어... 지금 이게 뭐하시는 거죠? 대다나다 히에엑... 헉! 깜짝 놀랐습니다. 그만해!!!!!
옳소! 감탄했습니다. 흐음 후회할거요! 감사합니다. 놀랐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정색) 축하드립니다. 칭찬해 드립니다. 놀랍군요. 매우 화가 나네요. 큰 충격입니다. 놀랍군요.
이럴수가... 감히! 네가! 아니?! 장하군! 응?! 좋다! 그건 아니다! 고맙다!
감사합니다 잘 못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매우 화가 나는군요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좌절상태입니다 감탄했습니다 칭찬합니다
멋지군! 좋았어! 하하! 축하하오! 아아.. 5분전인데. 커피한잔 하겠소?
승리의 정유년! 정의로운 새해복! 극.한.공.성. 복! 받아랏! 음~ 직장인의 정석
많이 배웠습니다! 대단합니다! ?!! 축하드립니다 뭔가.. 부족해요 짝짝짝! 각오하세요! 으윽!
성탄의 축복을~! 메리 X-MAS~! 화이트 크리스마스야 해피~ 크리스마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성탄이구나~
Good! Thank U Missing U Useless It's pretty good Oops WHY! Please wait
멜빈 미이라와 고스트 제피 할로윈에는 카를로스호박 히카르도의 사탕 탄야의 마녀 분장..? 잭-슈타인 강시 루시
기자님의 감탄사 : 호-오! 기자님의 일과 : 신문 보기 기자님의 사과 : 이거 실례! 기자님이 놀라면 : 어이쿠! 기분이 좋아 보이는 잭 기분이 나빠 보이는 잭 천진난만한 잭 상큼한 인사를 날리는 잭
좋군요! 좋은 시간 되소서 Merry 추석~! 우와~! 호~오! 가득해요~! 짱인데! 품위있군
Chu~♡ 파이팅! 우와앙.. 졌어 ㅠㅠ 이겼다! 흐~음? 뜨헉! 돼.. 됐거든! 사.. 살쪘..!
훌륭합니다 궁금하네요 에구머니나! 슬프네요... 경멸스럽군요.. 후훗~ 뭐라고 하셨죠? 이, 이럴수가...!
아이작의 멋진 모습 이글이라 샤샤샤~ 트리비아 슬라이딩 시바 포는 달린다 까미유도 달린다 라이샌더 달린다 마를렌 점프! 샬럿 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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