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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P. 인형사구사의베로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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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사 이클립스 편집부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을 때쯤 그리스에서 길거리 인형극을 하며 살던 노인이 그림 하나를 발견했어요. 어떤 도시의 황혼 무렵 풍경이 그려진
평범한 그림이었지만 노인은 웬일인지 가진 인형들을 모두 처분해 가면서까지 그 그림을 샀지요. 그리고 마치 홀린 듯 매일 같이 들여다 봤대요…(중략)

단순해 보이지만 변수가 너무 많았죠. 일단 노인의 정확한 능력과 재스퍼의 전투력을 몰랐고 제멋대로인 시바 포의 성격도 위험요소였어요.
실행에 옮겼을 때에는 빅토르의 배신까지 겹쳐 자칫 실패할 뻔한 작전이었습니다. 결국 적들을 몰아넣는 데는 성공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운이 좋았던 것뿐이에요. 궁지에 몰려 액자를 들고 도망치려던 재스퍼가 노인에게 살해당한 후 시바와 다이무스는 노인을 잡는 데 성공했어요.
허나 노인은 두 사람을 조종해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누게 만들었죠. 절체절명의 순간, 릭은 다이무스를 노인의 앞으로 이동시켰고
통제의 실이 끊긴 찰나를 놓치지 않은 다이무스는 노인을 베는 데 성공했습니다.

- 이클립스 중

거대일식의 날로부터 백여 년이 채 흐르지 않은 현재, 능력자에 대한 연구는 인제야 겨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무지몽매한 인류의 두려움을 걷어내고 새로운 자연 현상으로 받아들인 능력자의 힘은 연구가 거듭될수록 인류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비교적 비율이 높은 자연계 능력자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편이다.
비 자연계 능력 중 대표적인 것은 염동력을 위시한 각종 물체를 활용하는 능력인데, 그중 인형사는 노인이라 불렸던
안타리우스의 수장 안토니오 구마스의 등장 후 새로운 능력으로 인정받아 이제 막 연구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초기에는 염동력으로 구분할지 별개의 카테고리로 구분할지 말이 많았지만, 능력이 강한 인형사는 사람을 직접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별개의 카테고리로 승인받았다. 직업으로서의 인형술사와 구분하기 힘든 점, 능력이 강하지 않으면 다른 능력에 비해
티가 나지 않는 점 등으로 인해 인형사에 대한 수요는 매우 낮은 편이며, 때문에 수많은 인형사가 인형사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능력을 개발할 기회를 얻지 못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아마도 우리가 몰랐던 대다수의 인형사가
제 뜻을 펼치기도 전에 빈곤의 늪을 벗어나지 못해 사망했을 거라 추정된다.

아름다운 인생

나무숲 안식처의 새들이여
낮 하늘의 별들이여
모두가 어린 소녀에게 말을 하네
모두가 사랑스러운 어린 소녀에게 말을 하네

아 모두가 사랑을 말하네
아 여기에 부드러운 노래가 있다네
올림피아의 노래가 올림피아
여기에 부드러운 노래가 있다네
올림피아의 노래가 올림피아

-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중 인형의 노래

새로운 세기가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제국의 사교계에는 황실이 신비한 힘을 얻을 방법을 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지렁이 하인과 하녀들의 헛소리로 취급됐지만, 이내 힘과 권력을 추구하는 귀족들의 다과 시간 흥미를 돋우는 이야깃거리가 됐다.
그리고 결국 제국의 요승이 황제 니콜라이에게 항간에 도는 소문을 전달했다. 소문의 무게를 아는 아주 일부의 몇몇 고위 귀족들은
진원지를 향한 처분만을 기다리며 숨죽였다. 니콜라이는 진실이 어떻든 간에 겉으로는 황실이 소문의 대상이 되어 뭇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사실에 매우 분노하며 요승에게 소문의 출처를 알아 오라 지시했고, 요승은 기이한 술법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시인의 시가 문제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찾아내 보고했다. 니콜라이는 이례적일 정도로 엄정히 대응하며 사회에 혼란을 불러온 죄를 물어
시인의 후손과 그 가솔을 모두 죽였다.

그런데 단 한 사람, 시인의 직계 후손인 어린 여자아이가 그 성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조가 물려준 부유한 환경을 누리며
취미로 발레를 배우던 베로니카라는 이름의 소녀로, 원칙대로라면 가장 먼저 목이 베였어야 했지만 베로니카의 유모가 바친 헌신 덕에
겨우 목숨을 부지한 것이었다. 니콜라이는 어린 소녀가 아무것도 몰랐을 거로 생각하고 베로니카를 시베리아로 보낸 다음 일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모든 것은 그대로 흘러갔다. 갑작스러운 반란과 처벌이 반복되면서 중요한 건 일상의 생존이 됐고, 약간의 시간이 더 흐른 후
신비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문’에 대한 정보와 그것을 아는 자들은 어느덧 모두 총살당했다.

춤추는 소녀

이름만 들으면 아름다운 무용수가 연상되지만, 벨라 돈나는 익살스러운 인형극으로 프라하 거리의 공주님이라 불리던 인형사였다.
벨라 돈나의 주 무기는 실 그 자체였는데, 실을 뭉쳐 주먹을 조금 더 단단하게 하거나 신체 부위를 보호하는 데 쓰기도 하고 실을 날려
상대를 경직시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인형사라 불리는 이유는 벨라 돈나의 작은 몸집을 커버하기 위해 수많은 인형을 소환해
집단 전투를 벌이는 데 있었다. 난투극 한가운데서 실을 휘두르며 춤추는 모습은 가히 벨라 돈나라 불릴 만했다.

하지만 그것은 벨라 돈나의 마지막 전투였다. 사라예보 사건 발생 직후 체코는 벨라 돈나가 속해 있던 극단을 정부에 반발하는 세력으로
지목했고, 벨라 돈나는 극단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 방어진을 펼쳤다. 소문에는 벨라 돈나가 작은 아이와 함께 싸웠다고 하지만
진위는 알려지지 않았다. 훗날 극단에서 밝힌 바로는 벨라 돈나에게 가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극단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조건으로
벨라 돈나가 최전선에서 방패막이가 되어 싸웠다고 한다. 벨라 돈나는 격전 끝에 사망했다. 끝끝내 본명은 알려지지 않았다.

사실 소문이 퍼지게 된 원인은 다름 아닌 이 소녀였다. 인형을 들고 발레 자세를 취하며 놀던 베로니카는 자신이 인형을
움직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복도에 작은 인형이 떨어져 있다고 해도 인형이 스스로 움직였을 거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베로니카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능력을 연습할 수 있었다. 인형은 저택의 이곳저곳을 탐방하며 주방에서 주방장이 아끼던
햄을 훔쳐 오거나 하녀들이 소중히 간직했던 레이스 따위를 가져왔다. 그러다 어느 날 인형이 갈가리 찢긴 채 통제를 벗어났다.
베로니카는 특정 장소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그곳으로 수없이 많은 인형을 보냈다. 그렇게 일 년여를 소모하고 저택에
혼자 움직이는 인형의 저주에 대한 소문이 암암리에 퍼져 나갈 때쯤 인형이 어떤 서류를 들고 돌아왔다.
서류를 확인한 베로니카는 환희에 차 신께 감사드렸다. 그것은 선조인 시인, 데르자빈이 남긴 기록으로 여왕의 실언을 듣고
남몰래 조사한 중요한 비밀이 담겨 있었다.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는 신비한 문의 힘을 숭상했지만, 그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그것은 선조로부터 내려온 전승과
예카테리나 본인의 지혜가 겹친 결과였다. 그러나 예카테리나 여제가 단 한 번 실수한 일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맛본 프랑스 산 와인에 취해
자신이 아끼는 시인의 영감을 위해 인식의 문에 대한 언급을 해버린 것이었다. 말을 꺼내자마자 정신이 든 예카테리나는
시인에게 재미있는 이야기일 뿐 아무것도 아니라고 태연하게 말했지만, 시인은 자신이 위대한 비밀을 알아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행히 시인은 눈치가 빨랐기 때문에 이 일을 입 밖에 내면 자신이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사실을 알았고,
아끼던 시인의 목숨을 거두고 싶지 않았던 예카테리나는 입막음을 위한 봉토를 하나 던져준 채, 그대로 시인의 존재를 묵인했다.

베로니카의 손에 들린 것은 시인이 후손을 위해 은밀하게 조사한 인식의 문에 대한 정보였다. 아마 설명이 없었다면
한 편의 아름다운 시로 남았을 문장들이었다. 획득한 정보가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는 몰랐지만 어린 베로니카가 보기에도
아주 많은 가치가 있을 법한 내용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뜰 수 있는 가능성이 언급되어 있었으니까.
베로니카는 자신이 획득한 정보가 매우 매력적임을 본능적으로 알았고, 그 누구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이 정보를 비싸게 팔기를 갈망했다.
선조처럼 일확천금의 부를 획득해 더욱 부유한 삶을 살겠다는 열망이 일었다. 그런데 왜인지 자신만 알던 정보가 흘러 나갔고,
돌아온 것은 멸문지화였다. 아무도 모르게 숨겼다고 생각했던 비밀은 사실 수많은 하녀들 앞에서 무의식적으로 공개한 상태였고,
도구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던 하녀가 감히 말을 옮길 거라 생각하지 않은 베로니카의 오만이 빚어낸 실수였지만
베로니카는 가문의 마지막 날이 오기 전까지 끝내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했다.

거짓말쟁이 아이

‘제페토’는 ‘피노키오’라는 인형을 파트너로 둔 인형사의 활동명이다. 이 둘 사이는 가족처럼 공고한 사랑으로 맺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나
전투에 나설 땐 평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기술을 선보인다. 인형이 빠른 속도를 기반으로 적의 진입을 막아내는 동안,
준비를 마친 인형사는 산탄총을 들고 방아쇠를 당긴다. 인형사가 공포에 주저앉은 적에게 다가가 머리에 총을 대고
‘거짓말하는 아이는 코가 길어진다’며 우스갯소리를 하면 팔이 하나 떨어진 인형은 그 주위를 돌며 헛된 손뼉을 친다.
전투 중 인형에 총탄이 박히거나, 인형의 팔이나 다리가 불타는 것은 제페토에게 전혀 신경 쓸 부분이 아니다.
위대한 동화와 협잡질을 일삼는 일당이 유일하게 닮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남루한 행색일 것이다.

- 현재는 폐간된 1900년대 초반 한 가십 잡지의 기사

베로니카가 능력자라는, 특히 인형을 다루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황제는 베로니카를 절대로 살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악한 소녀는 시베리아에 도착한 후에도 본인의 능력을 숨겨 끝내 황제의 감시를 벗어났다. 베로니카는 혹시라도
인형을 다루는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인형에 실을 묶어 마리오네트 연기를 펼쳤다. 깡마른 여자아이는 위협이 되지 않을 것 같았고
군인들은 수용소를 감시하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점차 베로니카의 인형극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베로니카는 1년에 몇 번 안 되는 축제 날
장기자랑으로 인형극을 하게 됐고, 약간의 귀여움을 얻어 같은 수용소의 수감자에게서 발레 교습까지 받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형편이 잘 풀린 듯했지만, 베로니카는 모든 순간 굴욕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성년을 앞둔 베로니카는 모두가 사랑에 젖어 허술해지는 크리스마스 이브, 마지막 인형극을 펼쳐 보였다.
마지막이었다는 사실은 베로니카 혼자만 아는 사실이었다. 제 코가 길어졌을까? 인형극의 어떤 단락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모든 일은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피노키오는 방을 뛰어다니며 빵 한 조각이라도 찾으려고 모든 서랍, 모든 저장고를 뒤졌습니다. 하다못해 말라 버린 빵조각, 빵 껍질,
개밥으로 남겨진 뼈, 곰팡이 난 조금의 옥수수죽, 생선 가시, 체리의 씨, 한마디로 말해 씹을 수 있는 뭔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지요.
그러나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베로니카는 인형극 도중 자신만의 목각인형을 최초로 선보였고, 그날 행사에 참여한 수용소의 군인과 수감자를 모두 죽인 후
철조망을 벗어나 영영 달아났다.

에메랄드 길을 따라

남은 것은 인형과 정보뿐이기에, 베로니카는 필사적으로 정보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인식의 문’이라는 단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첫 삽은 제법 잘 뜬 것 같았다. 이미 문에 대해 알고 있는 자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정보들이 아주 조금 남아 있었다.
예를 들어, 과거 유럽 유수의 제국 지도자들은 문에 대한 전승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하지만 왕조가 바뀌거나 사라지면서 수많은 정보가
파편화되고 유실되어 왕정 혹은 그에 가까운 가문이 정보의 일부만 겨우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 등이었다. 당연하지만 그 어떤 곳도
몰락한 자가 쉽사리 얼굴을 들이밀 만큼 만만하지 않았고, 정보의 정수로의 접근은 원천 차단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조사 과정에서 얻은 갖가지 다양한 정보는 베로니카의 생계를 꾸리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궁극적 목표에 다가서기 위한
직접적인 열쇠가 되진 못할 것들이었다. 결국 베로니카는 유럽에서 더는 정보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해 대서양을 건너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향했다. 전통 따위는 없는 유력가들이 돈의 힘으로 뭔가 주워들은 바가 있을지도 모를 뿐 아니라,
어차피 그들은 이 정보의 가치를 모르니 좀 더 손쉽게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생활은 녹록하지 않았다. 당장 먹을 빵을 구하기 위해 미국에 있는 발레단의 문을 두드렸지만 표현력이 부족하다는
굴욕적인 평가를 받으며 발레단 입구를 되돌아 나와야 했다. 베로니카가 발레를 취미로 배운 것은 맞지만 발레를 배우는 동안
나름대로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왔기 때문에 이와 같은 평가는 베로니카에게 큰 분노와 절망을 불러왔다.
베로니카는 다시 인형을 꺼내야 했다. 무성영화로 만들어지는 인형극에 단역으로 출연해 작은 인형을 움직이거나 인형을 사용해
비밀스러운 짐을 옮기는 일도 했다. 마침 금주법이 막 시행되었던 때라 사람이 아닌 인형으로 밀주를 옮기는 일로 꽤 좋은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거친 사람들의 비아냥과 조롱을 견디는 것은 절대 만만치 않았다. 베로니카는 살아남기 위해
이 모든 모욕을 참아냈고, 문의 정보만이 자신을 이 구렁텅이에서 꺼내 줄 거라 생각해 더욱 절실하게 매달렸다.

베로니카가 화이트 클라프의 서커스단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약간의 시간이 더 흘러서였다. 베로니카는 그간 수집한 정보를 통해
화이트 클라프가 일반적인 서커스 단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그가 찾고 있는 정보가 자신이 들고 있는 서류에
담겨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베로니카는 자신이 가진 정보를 제값에 팔고 싶었지만, 이미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화이트 클라프가
베로니카의 말을 깊이 있게 들어주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겨우 기회가 생긴 순간 돌아온 대답은, “허황하군요.”에 그쳤다.
서커스 단장은 입신양명을 꿈꾸며 능력자를 병기화하기 위한 발칙한 움직임을 잠시 가리기 위한 광대 짓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인 자였다.
그에게는 당장 쓸만한 실질적인 정보가 필요했고, 베로니카가 먼저 밝히지 못하는 비밀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오히려 그는 베로니카의 인형극에 더 관심이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베로니카에게 가장 큰 절망을 안겨준 화이트 클라프는
베로니카의 인형사로서의 재능을 가장 확신했던 사람이었다.

달의 서커스단에서 지내는 기간은 베로니카의 인생을 가장 크게 비틀어 놓은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젊고 야심만만했던 정보상은
고용주와 벌이는 끝없는 신경전, 남의 집에 얹혀사는 불편한 기분, 하루라도 공연을 하지 않으면 군입을 바라보는 듯한 단원들의
모욕적인 시선에 닳고 닳아 어느덧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인형사가 되었다. 베로니카는 싸구려 가십에 귀를 기울일 뻔하고
단원들의 소소한 일상에 웃음을 지을 뻔하며 부질없이 느껴지는 야망을 손에서 놓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하루하루를 버텼다.
나는 저들과 달라, 나는 평범하지 않아,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말을 매일 되뇌었지만 자신의 정보가 그저 허무맹랑한 망상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하루 사라져갔다.

평소처럼 베로니카는 나이 들고 서커스단의 광대는 언제나 그대로인 기괴한 시간이 흘러가던 어느 순간, 베로니카는 서커스 단원들이
돌려 보던 SF 잡지에 실린 ‘비명의 탄생’을 보게 되었다.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글을 끝까지 읽어 내려간 베로니카는
손끝에 겨우 매달려 있던 야망이 다시금 자기 머리부터 발끝까지 적시는 느낌에 생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인간의 유전자를 연구해서
비능력자를 능력자로 만든다? 베로니카에게는 차라리 비능력자를 인식의 문에 담가 보겠다고 하는 게 더 합리적으로 들렸다.
이제는 톡 건들면 바스라질 일만 남은 종이 쪼가리에도 그런 이야기들이 몇 적혀 있었으니까. 결정적으로 로커드 마틴의
비윤리적인 연구를 국제적으로 비난한 과학자의 이름은 베로니카가 꿈에라도 잊을까 수없이 외워 왔던 것 중 하나였다.
드디어 퍼즐은 맞춰지고, 자신의 정보는 그 가치를 간접적으로 검증받았다. 오랜 기간의 고난이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1935년이 되자 막혀 있던 물꼬가 트이듯이 이곳저곳에서 괴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반복이 시작된 것이리라.
상황이 진전되는 것을 보며 베로니카는 펄프 매거진의 진짜 주인공일 세계적인 석학들에게 접근을 시도했다.
더 이상 정보를 아껴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조만간 이 정보는 가치가 없어질 것이다.
모두가 알게 되기 전에 조각내어 파는 게 유리하다. 베로니카는 한층 더 과감해지기로 했다. 석학의 탈을 쓴 미치광이들이
베로니카를 재어본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이번에는 한층 더 위험한 종교 단체로 연락을 넣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아직은 이 정보가 유효했다. 오랫동안 품어 왔던 정보는 베로니카의 정수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을 바라는 자들은 마치 베로니카의 발밑에 엎드린 것 같이 느껴졌다. 베로니카는 더 큰 야망을 품기로 했다.
이 줄다리기의 끝에서 마침내 베로니카는 인식의 문에 다다를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힘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