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있었다 정보제공자, 루카(무소속, 독 능력자)
숲 한 켠에 자리한 산지기의 오두막은 그대로 숲의 일부인 듯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근처에서 자란길쭉길쭉한 통나무를 잘라 오두막의 벽과 지붕으로 삼았고 숲과 같은 색인 진흙과 이끼로 틈 사이를 꼼꼼히 메워 놓았으니
오두막의 어느 곳도 튀는 부분 없이 숲 그 자체로 구성된 거나 다름없는 것이다. 요 며칠 머물렀던 불청객의
험담이라도 하는 것인지 요란한 새소리를 배경으로 오두막 안에서는 이제 막 청년으로 불릴까 말까 한 소년이 짐을 싸고 있었다.
짐이랄 것은 적은 옷가지와 몇 가지 생활용품으로 단출하여 싸는 것도 금방이었다. 오히려 바지런히 오가며 썼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그릇을 쌓아두며 오두막을 사용했던 흔적을 정리하는 게 더 오래 걸렸다.
더 할 일이 없는 오두막에서 소년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 길어 눈가를 가리는 검은 머리카락이 흔들릴 정도였다.
잠깐 고민하던 소년은 이내 결심한 듯 막힘없는 태도로 막 정리한 침대에 다시 앉아, 짐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첫 번째 장
노아.
이 수첩을 주신 형…형님? 아니 분이라고 해야 할까? 나랑 나이 차가 그렇게 커 보이지는 않았는데.
아무튼 괴물의 먹잇감이 될 뻔했던 나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줬으니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이라고 칭할게.
사실 형이라고 한 번 불러보긴 했는데, 좀 이상한 말을 하더라고. 꿈이 어쩌고 능력이 어쩌고…
그래서 너무 많이 친해지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하여튼 그건 그거고.
그분은 가능하면 매일의 기록을 남겨 두라고 하셨어. 숙제 중에서도 일기 쓰는 게 제일 싫었는데 기록을 남기라니
아마 노아 너라면 그렇게 크게 웃었겠지. 나도 웃어 넘기려고 했는데 그분이 그러셨어.
오늘의 기록을 남겨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내일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살아달라고. 내게 자신과의 대화가 도움이 될 거래.
하지만 내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은 너밖에 없는걸. 그래서 네게 남기기로 했어. 이 기록을 절대 보지 못할 너에게…
그분께서는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할지는 나중에 시간이 흘러 너를 만나게 되었을 때 직접 들으라고 하셨는데
몇 번이고 생각해 봤지만 그건 참 어려운 말인 거 같아. 주기율표를 틀리지 않고 20번까지 한 번에 외우는 게 차라리 쉽지 않을까?
아,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수첩은 꽤 두툼해. 마치 책 한 권을 족히 베낄 만한 두께인데,
그분께서 떠나실 때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제일 두꺼운 것을 주셨어. 그만큼 내가 오래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생각해.
하루에 한 장씩 쓴다면, 글쎄, 일 년은 좀 안될 거 같은데. 과연 내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노아, 난 좀 달라졌어. 내가 사실은 독 능력자였대. 어쩌면 너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
아무튼 그 덕분에 그 검은 여자의 독을 버텨낼 수 있었던 거래. 그래, 뭔지는 모르지만 겨우 버티는 것뿐이었지.
결국 홀든 가문에 있었으면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처럼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했을 거야.
그런 건 전혀 모르고 무작정 가문을 떠나왔는데 그분의 도움을 받아 이 검은 독을 없앨 수 있는 기회를 얻었어.
운이 좋았던 걸까, 나빴던 걸까. 거슬러 파고들어가자면 끝이 없겠지.
난 이 독을 없애는 대신 더욱 키워 잠시 내가 쓰기로 했어.
그분은 물론 경고했어. 남은 삶 전부를 써도 이 독이 온전히 내 것이 되지는 못할 거래.
그래도 내가 어떻게든 쓸 수는 있을 거 같다고 하셨어. 그 대가로 이 독을 계속 마주하며 생명을 갉아내야 할 거라고 하셨지.
난 오히려 그 말에서 희망을 얻었어. 그 말 한마디가 나를 살렸고, 나는 전진했어.
고뇌하던 그분께는 미안하기도 해. 사람을 구하려 했는데 죽이게 된 거잖아?
그래도 난 그거면 충분하다고 했어. 노아, 네가 어떤 말을 할지 모르겠지만, 난 그들에게 칼을 겨눌 거야.
널 희롱하고 조롱하고 끝내 무참히 밟아버린 붉은 여자를, 새빨갛고 강마른 그 마녀를 추적하고 맞설 거야.
단 한 번이라도 닿는다면 그게 내 생명을 갉아먹는 독이든 뭐든 이용해서 아주 작은 흠집이라도 내고 말 거야.
독이 날 잡아먹기 전에 마녀를 만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야…한 장을 가득 채워서 썼네. 다음부터는 글이 좀 짧아지겠지.
다섯 번째 장
난 지금 이글 님의 흔적을 따라서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어. 이글 님에게 어떤 단서가 있고 그걸 토대로 가는 거 같긴 한데
너도 알다시피 그분이 좀…산만해야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어디서 어떻게 움직이는 건지 종잡기 힘들 정도야.
이글 님이 추적하는 대상은 아마도 안타리우스의 수괴, 그리고 수괴를 유인한 붉은 여자겠지.
다이무스 님…가주님은 안타리우스를 추적하는 이글 님이 향하는 곳에 결국 베로니카가 있을 거라고 했어.
아무튼 기록을 매일 남기는 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네. 이 수첩 오래 쓰겠어.
여섯 번째 장
오늘 나는 문의 그림자에서 나온 듯한 괴물을 베어 넘겼어.
참으로 이상한 일이야.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나는 그들을 상대하긴커녕 전략적인 후퇴도 버거웠는데,
아직 독 능력을 완벽하게 사용한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래도 맞설 가능성이 생긴 것은 놀라워.
아, 능력이 완벽하게 통제되지 않은 걸 어떻게 아냐고? 힘을 최대한 끌어올릴 때마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
특히 오른손과 오른쪽 눈에 다가오는 고통이 두드러져. 염산으로 목욕을 하면 비슷한 고통을 체험할 수 있을까?
노아, 나는 내가 강한 능력자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어.
그분 덕에 손에 넣게 된 독은 정말 가증스러울 정도로 강력해. 어찌 보면 참으로 불공평한 것이 이 세상이야.
누구는 남을 손쉽게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누구는 자신을 지키기도 버거워하고, 누구는 멍청하게도 주변을 해하지…
내가 이 새로운 독으로 너를 떠나보낸 것과 같은 죄악을 저지르지 않는 것은 홀든 가문에서 수없이 읽었던 규율을 떠올리고,
그분과 함께 그동안 배웠던 검술과 독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연습을 한 덕분이기도 해. 사실 그건 결코 쉽지 않았어.
자칫 흥분해서 조금이라도 통제력을 잃으면 곧바로 독이 섞인 피를 토했으니까 말이야. 나 혼자서는 절대로 해낼 수 없었을 거야.
열한 번째 장
이제 괴물을 쓰러뜨리는 건 제법 익숙해졌어. 검으로 베고, 힘이 부족할 때 독으로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말이야.
독 사용을 최소한으로 줄여 보는 거지. 아무래도 사용할 때마다 따라오는 통증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가끔은 가만히 있을 때에도 기습적으로 통증이 찾아와. 그럴 땐 몸이 두 동강난 것처럼 고통스러워.
그런데 널 생각하면 난 비명은 커녕 신음소리도 낼 수가 없더라. 네가 얼마나 아팠을지 생각하면 난 또 멍청이가 돼.
하지만 노아, 난 이제 울지 않아. 이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것보다 적을 베는 게 복수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
열두 번째 장
그분에게는 항상 감사한 마음뿐이야. 하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긴 해. 그냥 이상한 거야. 의심하는 거 아니고.
자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진 않으셨지만, 나는 그분께 궁금한 게 많았어. 그래서 수련 과정 중에 끊임없이 질문했지.
그분은 원래 능력자였던 것은 아니었대. 올해 초 갑자기 이상한 기억이 떠올랐던 게 시작이었다고 하셨어.
겪은 적 없지만 기억인 것이 분명한 것들이 점차 떠올라 퍼즐을 맞추듯 새로운 이야기를 하나 알게 됐대.
분명 이곳이 아닌 세상이 수없이 많이 있었고 그 모든 곳에 그분이 있었고 서로 다른 삶을 살았다는 거야.
그곳에서 그분은 검은 피를 가진 자들과 전쟁을 했고 마침내 승리했지만 아주 오랜 시간 봉인을 지켜야 했지.
그리고 이야기를 떠올린 순간, 그분은 자신이 누군가의 능력을 봉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셨대.
…노아 나만 이상한 거 아니지? 그냥 능력자라고 하면 될 걸, 왜 어렵게 풀어 이야기한 걸까? 다른 세상은 또 뭐고…
그냥 안타리우스나 사이비 종교처럼 뭔가 믿는다고 말하면 나도 그렇구나 했을텐데 파편이니 뭐니 이해하기 어려웠어.
아마 그러니까 누구라도 그분의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했겠지. 생각만 했겠어? 비웃음 당했다, 내가 확신한다.
그래도 그 말은 내게 힘이 됐어. 날 본 순간 알아보셨다는 말. 내가 바로 이유고 원인이자 결과임을 아셨대.
그분 말에 따르면 나 같은 존재에게도 소임이 있대. 내가 그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그분이 필요했고 말이야.
솔직히 완전히 이해하긴 어려운 말이었지만 난 그분 말을 전부 다 믿고 싶어.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나 같이 약한 것도 결국 해낼 수 있다는 그런 위로를 들은 것만 같거든.
아, 노아 그래도 걱정은 하지 마. 나 아무 종교나 믿고 그러지 않아. 나 화학 공부하는 사람이잖아.
이래봬도 홀든 가문의 정훈 교육도 정기적으로 받았고, 필기 성적은 나쁘지 않았으니까.
어쨌든 수련 과정에서 내가 토하는 독을 뒤집어쓰면서도 어떠한 불평을 하지 않던 그분은
내 능력 활용이 얼추 안정되었다고 판단하시자마자 떠나셨어. 떠나는 순간까지도 그분은 날 걱정해 주셨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마음을 가다듬고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목표만 생각하라고 말이야.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어쩔 수 없지. 해내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열 일곱 번째 장
이글 님은 생각보다도 더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어. 아마 이걸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아무리 가주님이라고 해도 말이지. 노아, 나는 이글 님의 뒤를 따라가면서 이글 님이 부순 사유재산에 대한
변상 책임 청구에 대한 설명을 하고 다니고 있단다. 오스트리아의 홀든 가로 문의하라고 말이야.
빨리 만나서 가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내 갈 길 가야겠어.
스물 세 번째 장
나는 오늘 사람을 베었어.
그들이 안타리우스 교인이건 아니건 간에 사람인 게 먼저니까, 나는 사람을 베었어. 너무 끔찍한 경험이었어.
홀든의 성을 단 사람들은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을 항상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교육받긴 했지만...
그분이 마지막까지 걱정하셨던 게 무엇인지 조금 깨달은 것 같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마음을 가다듬어라.
나는 안타리우스의 피해자이고, 복수를 다짐했고, 고민할 시간조차 남은 내 삶에서는 사치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기분이 좋진 않더라. 붉은 마녀를 찾아 검을 휘두를 때에도 이런 기분일까? 두렵고 무서워.
아니, 틀림없이 그럴 것 같아. 그 여자를 쓰러뜨린다고 해도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을 거야.
그런다고 네가 돌아오는 게 아니니까. 그냥 나는 또 다른 사람을 벤 것일 뿐이겠지. 그럼에도, 그렇지만…
앞뒤 이야기 없이 너무 내 기분만 말했구나. 오늘도 기록으로 남겨볼게.
그러니까 난 오늘도 이글 님의 흔적을 찾아 헤매고 있었어. 그러다가 인식의 문의 그림자를 발견했지.
이글 님은 소동을 피하는 법을 모르니까 당연히 그쪽으로 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찾지 못했어.
대신 나는 안타리우스 신도들이 인식의 문의 그림자 근처에 모여 있는 걸 발견했어.
그들은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 와서는 인식의 문의 그림자로 밀어 넣으려고 했어.
사람들은 발버둥 쳤고 서로 그렇게 대치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어. 나는 참을 수 없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뛰어들었지.
일반인은 뒤로 빼내고 검을 들어 안타리우스 신도를 베었어. 상처를 감싸며 뒤로 물러서는 모습이 눈에 선해.
그럼에도 나는 거침없이 다음 목표를 찾아 움직였고, 그들도 검과 몽둥이를 들고 내게 덤벼들었어.
다행히 일반인들은 이 소란을 틈타 모두 벗어날 수 있었지. 일부는 그대로 도망쳤고 일부는 나를 지켜봐 줬어.
하지만 싸우고 있는 동안에는 그런 사실조차 몰랐어. 난 그저 공격을 받아치기 급급했고 때로는 공격에 성공했어.
놀랍게도 나는 십수 명의 안타리우스 신도를 모두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 있었어.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지.
알량한 힘을 얻었다고 내가 자만에 빠질까 봐 두렵기도 하고 그렇다…
하지만 또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그때도 나는 주저하지 않고 검을 들 거야.
난 지금 그때 구출한 사람 중 한 분의 댁에서 신세를 지고 있어. 오늘 밤은 왠지 잠이 오지 않을 거 같아.
널 생각하며 잠을 청해야겠어. 마음을 가다듬고 목표만 생각하며, 이겨내고 받아들여야지.
그게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노아, 너에게 갈 때쯤에는 난 꽤나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아.
스물 네 번째 장
여정이 생각보다 피곤하네. 어제 신세 진 댁에서 며칠 더 묵고 싶었지만 꾹 참고 작별을 고했어
그분은 몇 번이나 붙잡으셨지만, 가야 할 길이 멀어서 지체할 수 없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지.
대신 아침은 꼭 먹고 가라고 하셔서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었어.
참, 마을 사람들은 어제와 같은 일을 막기 위해서 되도록 혼자 다니지 않고 마을 경비를 강화하기로 했어.
안 그래도 걱정이었는데 다행이지. 마을 사람들은 앞으로 잘 대처할 수 있을 거야. 안타리우스를 확실히 경계하게 됐고.
사실 최근 안타리우스가 이상한 행보를 보인다는 소문이 있었대. 안타리우스가 봉사단체인 줄 알았던 사람도 많았는데.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인식의 문의 그림자에 넣는다는 소문이 진짜인 줄은 몰랐다고 신세 진 댁의 어르신이 한숨을 쉬시더라.
생각해 보니 어제 만난 안타리우스는 규모도 작았고 조직력도 형편없었어. 내가 이긴 게 실력만은 아니었다는 거지.
안타리우스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스물 여섯 번째 장
오늘 수첩을 펼쳐 기록을 남기려다 문득 지난 기록을 훑어봤어. 주저하고 망설이는 못난 내가 있더라.
그래도 그분 말씀대로 기록을 남기는 건 잘한 일인 것 같아. 제법 익숙해져서 더 자주 기록을 남기게 되었고 말이야.
네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가슴에 쌓아두고 싶을 때도 있어. 너까지 걱정시키기 싫어서.
이렇게 쓰다 보면 이 수첩, 언제 다 쓸지 가늠할 수가 없겠어. 마치 내 남은 수명 같네. 아, 넌 이런 농담 싫어하겠지.
얼굴이 새빨개져서 그러지 말라고 두 주먹 쥐고 달려들겠지. 난 네가 넘어질까 봐 얼른 안아들었을 테고 말이야.
난 이기적이게도 그때가 행복했다고 생각해. 물론 넌 아니었겠지만 말이야. 넌 아닐 걸 알면서도 나는…
나는 가끔 그때로 돌아간 꿈을 꿔. 꿈속에서 너는 웃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해. 그러다가도 금세 눈이 반짝거리지.
가끔은 내 뒤를 따라 뛰기도 해. 그럼 난 그제야 이게 꿈인 걸 알고 행복하고 또 슬퍼져. 그렇게 밤마다 너를 잃어.
아, 왠지 감상적이 되었다. 이래서 밤에 기록을 남기는 건 위험하단 말이야. 자, 다시 시작해 볼까.
그러니까 오늘 이글 님의 흔적을 발견했어. 가끔 내가 사냥꾼이 된 것 같아. 엄청난 무시무시한 야수를 쫓고 있지.
숲에 남겨진 전투의 흔적, 쓰러진 신도들, 상태를 보아하니 얼마 안 가 곧 포획, 잡을,
아니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여기서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단 말이지.
다이무스 님이 이글 님을 따라가라고 했을 때 왠지 이 모든 걸 예측하셨을 거라는 느낌이 자꾸 들어.
이글 님의 뒷수습을 하고 인명 및 물품에 피해가 있을 경우 홀든으로 피해보상 신고를 하라고 설명하는 게 이제 너무 익숙해.
내가 과연 이글 님의 뒤를 계속 따라가는 게 맞는 걸까 싶어. 동쪽으로 가는 거 같긴 한데, 경로도 불확실하고.
이대로 이글 님을 만난다고 해도 내 목표에 도움이 될지 긴가민가하단 말이야. 방해나 안 하시면 다행일지도…
아 노아, 내 말이 건방지다고 생각하지는 마. 내 검술이 잘나서 그런 건 아니고, 이글 님은 좀 많이…그렇잖아?
어쨌든 차라리 이쯤 왔으면 이제 따로 붉은 마녀에 대한 단서를 찾아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까지 오면서 몇 가지 갈리는 지점이 있었거든. 이글 님이 분명 바른 길로 가는 것은 분명한데, 솔직히 믿음이 안 가.
하지만 가주님은 이글 님을 찾아가라고 하셨고…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