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락[夢落]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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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8 02:10:57
프롤로그 :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28008461
1화 :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28008985
2화 :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28010729
3화 :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28017997
4화 :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28022979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 그 인간들의 위
에 존재하는 왕. 그러한 왕들중에 하나가
동물들의 이야기를 인간의 이야기보다 더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라디오에서 들은적
이 있다.
반쯤 부숴지고 무너진 건물의 숨겨진 지
하공간에서 홀로 혀가 아릴정도로 짠 햄
을 캔에서 꺼내먹으며 인간보다 짐승을
좋아했던 왕의 이야기를 듣고있었다.
그 기억은 너무 먼것처럼 느껴지다가도
불현듯 옆에 다가와 옆에 앉아있고는 했
다. 마치 니스로 빈틈을 메운 목재 가구와
같이, 노련한 장인의 손으로 다듬어진 짐
승 가죽과 같이, 묘한 위화감을 품은 채
눈을 희번덕거리는 박제동물과 같이 그
렇게 현재가 아닌 현재로 [기억]은 존재
해왔다.
[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족
스러운것도 아니고 불만인것도 아니다.
그저 그 순간, [이곳]에 내가 존재하고 있
다는 그 [앎]을 셸터와 라디오와 스팸이
[판화]를 찍어서 자신의 앞에 놓고 간 것이
었다.
[기억의 판화]는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
고 미래의 문을 여는 문이자 열쇠였다. 무
엇을 판단하고 계획하고 시작하기 이전에
꺼내보던 그 [판화]. 임무실패 이후 한번도
꺼내보지 않아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나서
한참을 보았다.
"그래서, 짐승을 어떻게 사냥할 것인가"
* * * * * * * * * *
-이틀전 [난쟁이의 붉은 코] 18:30
주점의 가운데를 중심으로 오카리나 소리
가 퍼졌다. 어딘가 따뜻하면서 마음을 울
리는 소리. 술주정과 싸움박질이 멈추지 않
는 이곳에서 아주 잠깐의 정적과 안식을
남기는 시간이었다.
작은 손에 나무를 깎아만든 오카리나를 쥐
고 아슬아슬하게 박자를 맞춰 연주하는 빈
민가의 아이들 가운데 레나가 있었다.
어느 맑은 날 깊은 숲에서 보았던 반짝이는
푸른 호수빛의 긴 머리카락을 목 언저리에
서 한번 묶은다음 허리까지 내려뜨리고 오
카리나를 연주하며 온기가 느껴지는 청록
색 밝은 눈을 반쯤 감은 모습은 숲의요정
을 떠올리게했다.
"아주 눈에서 애정이 뚝뚝 떨어져?"
그 모습을 지켜보고있는 카인에게 다가와
말을 건 것은 품에 쟁반을 안은 이사벨이
었다.
"레나가 오카리나를 할 줄 알았던것도 아
이들을 가르쳐보겠다고 한것도 예상외였지."
"주점에서 공연을 하겠다고 한것도 말야."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저 노래를 들
으면 마음이 차분해져."
"높으시고 잘나신분들만 귀가 있는건 아니잖
아?"
"...그럴지도 모르지."
"하여간에 100퍼센트가 없다니까."
"100퍼센트가 있어야 말이지."
"...흐응... 음악에 효과라는게 정말 있을지도."
"무슨뜻이지?"
"아냐. 그저 웬일로 농담을 다 받아준다 싶어
서 ...아 제발 쓸데없는 긴장하지는 마. 옆에
있는 내가 더 피곤해지니까."
"...그러지."
이사벨은 잠깐 주변을 둘러본다음에 목소리
를 조금 낮춰 말했다.
"[검사]로 추정되는 사람이 [농부]에게 한번
찾아왔던모양이야. [호수의 요정]이 [검사]와
는 무슨 관계인지 여전히 모르겠어.
[뻐꾸기]는[가축]의 일이야. [멀대]가 몇일째
보이지 않아.
[돼지코]는 여전히 술만마시고있어. [대령]은
오늘 [데이트]가 있어."
카인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에
동전을 올렸고 이사벨은 그 돈을 챙겨 자리를
벗어났다. 오카리나 단원들이 오늘의 마지막
곡을 시작하려고 했을즈음 주점 문이 열리고
총과 칼로 무장한 사내 네다섯명이 들어왔다.
그중의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가까운 빈 테이
블을 발로 차 넘어뜨리며 연주를 끊고 시선을
모았다.
"안어울리게 고상들 하시네? 소문의 총잡이 얼
굴좀 보러 왔는데."
주점의 마스터 구스타브가 주방에서 나와 남자
에게 따졌다.
"마테오. 이게 무슨 일이냐? 아무리 [조직]이라
고 해도 다짜고짜 이렇게 시비를 거는건 양아치
와 다를바가 없잖아?"
리더는 눈쌀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흥.. 노망난 노인네 친구 아니랄까봐... 잘못을
했으니까 온거지 말이 많아. 야, 일단 여기 있는
주정뱅이들부터 몰아내."
말리려는 구스타브의 앞을 리더가 막아서자 구
스타브는 자세를 낮추어 말했다.
"알겠어. 손님들에게는 내가 다 말씀드릴테니 5
분만... 아니 3분만 기다려줘.."
"...빨리 하는게 좋을거야."
"고마워..."
구스타브는 이사벨과 레나를 포함한 전 종업원
들을 불러 설명했고 이야기를 들은 종업원들은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소란을 만든 장본인은 그 모습에 일종의 만족감
을 느끼며 돌아보다가 언뜻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남자를 한명 발견했다. 그가 이곳에 온 목적.
그 남자임이 분명했다.
리더는 지체없이 발을 옮겨 남자에게 다가가 같은
테이블 앞에 앉았다.
"조금 늦었지만 그 날의 주인공을 찾으러 왔거든.
백발의 형씨를 쫓아낸 총잡이 인터뷰를 하고싶어
져서."
카인은 남자를 살폈다. 헛점투성이의 몸짓. 지닌
무기를 과시하는듯한 만용. 타인에 대한 인정욕
구에 목마르면서 능력과 자격은 갖추지 못한 흔한
건달.
사용하기도 좋고 버리기도 좋은 그저 그런 [말].
그를 떠보기 위해 보낸것임에 분명했다. 그렇다면
아직 그렇게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는
뜻이었다.
엔티크샾 앞에서 레나의 뒤를 쫓았던 그 남자가
블리츠를 방문했다는 이사벨의 말에 다소 긴장하
고 있었으나 현재 상황만 놓고 봐서는 그렇게 중
대한 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것같았다.
"...미안하군. 소란을 일으켜서. 하지만 그렇게 하
지 않았다면 사상자가 더 많이 발생했을걸세."
리더-마테오는 의심스럽다는듯이 과장스레 눈가
를 좁혔다.
"에이. 이미 한명은 불구가 됐다던데? 그 사람 인
생은 끝났어. 팔이 하나가 없는데 어디서 무슨
일을 하냐고. 그건 주점의 보디가드로서 끝난거
아닌가?"
"미안하군. 내가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했어."
"그래서? 그게 끝이야? 성의를 보여야지."
"성의?"
"돈. 내가 그 친구한테 가져다줄테니까 주머니에
있는 돈 가지고 있는 무기 다 뱉어."
"알았네."
카인은 코트 안쪽의 권총, 수류탄, 단검따위의 무
기와 돈 주머니를 차례로 테이블 위에 올렸다.
"미안하게 되었네. 이걸로 그 친구를 도와주었으
면 좋겠군."
마테오는 돈주머니를 열어본 후 나름대로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 댓가로는 많이 부족하
지만 지금 당장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 그러니까
한달 줄게. 그때까지 1만 파운드. 준비해 놔. 이건
점장과 종업원 그날에 있던 주정뱅이들 모두의 책
임이니까. 그렇지 않으면 모두 합당한 책임을 져
야할거야."
"명심하겠네."
마테오는 활짝 웃으며 카인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기 분수를 아는 인간이란 참으로 멋져. 주인에
게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마냥 멋지고 귀엽다니까!"
도발에 별 반응하지 않는 카인에게 흥미를 잃었는
지 마테오는 어깨에서 손을 놓고 확인하듯이 말했
다.
"1주일이야. 명심해."
"알았네."
마테오가 떠나간 주점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
다. 그것을깬것은 이사벨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해. 블리츠는 적어도 알 낳는 오
리의 배를 가르지 않아. 마테오의 독단이 분명해."
구스타브가 동의했다. 그러나 얼굴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조직]의 이름을 걸었
으니 어떻게든 수금하려 들겠지... 우리의 모든것
을 앗아갈거야."
"..."
[조직]은 항상 그래왔다. 예외란 없었으며 절대적
이었다. 구스타브가 말을 이어갔다.
"책임질 사람은 나 하나면 충분해. 다들 고향으로
돌아가. 거기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붙어서 살아.
아니면 다른 도시로 다른 나라로, 말을 타고 배를
타고 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쥐 죽은듯이
살아."
여자들은 울고 남자들은 입을 닫았다. 그 슬픔의
와중에 카인이 말했다.
"...모두, [전쟁]을 해볼 마음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