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락[夢落]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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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0 17:46:04
프롤로그 :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28008461
1화 :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28008985
2화 :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28010729
3화 :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28017997
보송보송.
오랫만에 느껴보는 상쾌하고 따스한 느낌에 그녀
는 괜히 부끄러워하며 웃었다.
몸 이곳저곳의 냄새를 맡아본다. 신기하게도 꽃과
과일의 냄새가 난다.
조심스레 팔목을 물어봐도 향기만 날 뿐 맛은 느
껴지지 않는다.
핥아도 마찬가지. 이상스러운 향기만 맴돌 뿐이다.
금새 흥미를 잃고 몸을 일으켜 귀를 간질이는 소리
를 따라갔다.
그곳에는 길쭉하고 우중충한 사람이 하나. 작고 소
란스런 사람이 하나.
하나와 하나는 말을 이어나간다.
"자, 이제 설명해봐요. 군말없이 데려와서 씻어주고
말려줬잖아요?"
"정체에 대해서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무언가와 연관이 있어."
"뭔가가 뭔데요?"
"그래, 이를테면 [실종자]들에 대해서."
"[실종자]?"
"내가 이곳에 온 이유."
"빌로시티에서 '실종'은 흔한데요?"
"나는 다만, 의뢰받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할 일은
그것뿐이지."
"그럼 주점의 가드를 맡은건.."
"도시에 흘러들어온 어중이 떠중이에게 '역할'조차
부여되지 않는다면 어떻지? "
"...경계받고 배척받겠죠. 어차피 단순한 가드가 아
니라는건 어제 일로 충분히 알았어요.
주점의 가드가 다치거나 살해당하지 않고 이렇게 오
래 일을 하는 경우도 없었으니까요."
"이글 홀든은 예외라고 하던데."
"풋. 예외가 한둘이어야 말이죠. 물론 그 망나니 만
큼의 실력자는 없지만..당신도 알고있잖아요? 사람
다리 하나 부러지는건 이 동네에선 아무 일도 아니
라는걸."
"애초에 그런 동네가 아니었다면 가드가 필요없었
겠지. 물론 나 또한."
"...역시 당신은 이상해요. 여기가 위험하다는것을
알고 온거잖아요."
"이상한 말이로군. 포트레너드에 사는 사람 어느 누
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디시카나 빌로시티에 대해서
좋은 얘기는 안나올텐데."
"나를 골 빈 계집이라고 무시하지 말아요. [이곳]에
발도 디뎌본적 없는 90퍼센트의 멍청이들이 무법지
대라느니 드러그소굴이라느니 쑥덕거리는게 대체 무
슨 의미가 있죠.
그 돼지들은 위에서 내려다보며 그 [시선]이 전부인
줄 알고 세 치 혓바닥이나 굴리는 똥덩어리들이에요.
당신은 그 똥덩어리들과 얘기해본적도 없이 이미 이
곳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왔단말이에요."
"나야말로 이해할수없군."
"...."
"무엇에 그렇게 화를 내고 있는거지?"
"당신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하는 거에요. 잘 들어
요. 이곳에 흘러오는것은, 어쩔수 없이 굴러떨어지는
것. 단 하나밖에 없어요. 당신은 굳이 여기가 아니어
도 되요.
그런데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어요. 심지어 자기가 어
디로 내려가는지도 알고 왔단 말이에요. 이곳은 ...
이곳은 [지옥]이에요. 어느 인간이 [지옥]에 스스로
내려오냐고요."
"그래서는 안됐나?"
"예. 절대로 안됐어요. 당신은 미쳤어요."
"..."
보송보송
몸에 떠도는 향기에 떠밀려 그녀는 입을 다문, 길
쭉하고 우중충한 사람의 손을 잡았다.
손을 잡힌 사람의 얼굴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
을 당한 [놀람], 아주 먼곳으로 영혼만 날아가버린
[혼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거부] [혐오] [분노]
[두려움].
사람의 두 눈이 그녀를 강하게 꾸짖었다. ... 하지만
[무엇]을 꾸짖는거지? 그녀는 전혀 알수없어서 답
을 구하듯이 굳은살 박힌 손을 만지작거렸다.
사람은 울것같은 표정으로 그녀를 외면했다.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어요.]
그녀는 두 손으로 잠깐 한눈팔면 저 멀리 도망갈것
같은 남자의 손을 붙들었다.
붙잡힌 손을 빼내려고 저항하긴 했지만 그녀는 그
녀대로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사람은 사람대로 기습
공격을 당한 탓에 한없는 대치상태가 이어질 뿐이
었다.
한껏 짜증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던 이사벨이 선
고하듯이 말했다.
"난 밥을 먹을거에요."
그 기세에 압도된 그녀가 카인의 손을 잡은 힘을 빼
자 카인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빼서코트 안
쪽에 손을 숨겨버렸다. 당연히 그녀는 화가 났다. 그
래서 있는 힘껏 인상을 쓰며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치사해!!!]
*
저녁은 사과의 의미로 카인이 차리게 되었다. 무엇에
대한 사과인가..? 그것은 카인 본인으로서는 알수없었
지만 두 사람이 밀어붙이니 어쩔수없었다.
그리하여 나온 식사는 '오므라이스'. 처음 보는 식단에
식탁에 앉은 두 사람은 눈을 껌뻑거렸다.
카인이 설명을 덧붙였다.
"동양의 어느 나라에 전투식량으로 판매할 목적으로
연구중인 '쌀'이라더군. 거기에 지단을 덮은다음 케
찹을 뿌려 간을 맞춰서 먹는 음식이다."
차라리 집에 돌아가서 먹던거 먹을걸..하며 음침한 표
정을 지은채 숟가락으로 지단에 구멍을 내고있는 이사
벨과는 달리 여자는 눈을 빛내며 카인에게 먹는 방법
을 물었다.
"숟가락으로 지단의 부분을 떼어낸다음 적당량을 밥
과 섞어서 같이 먹으면 된다."
카인은 두 사람에게 먹는 방법을 보여주었고 이사벨은
정말 어쩔수없다는 표정으로, 여자는 즐거운 얼굴로 각
자 한숟가락씩 떠서 입속에 넣었다.
"음? 생각보다 괜찮..."
".....흐거어.....흐거....."
반응은 어째서인지 반대. 이사벨은 잘? 먹었고 여자는
숟가락을 입에서 빼지 못한채 울먹였다.
여자의 벌려진 입 틈새로 흘러나오는 침을 닦아준 카인
은 여자의 입에 들어간 숟가락과 엉망이된 밥과 계란 덩
어리(?)를 손으로 받아주었다.
얼결에 그것을 받아든 카인은 뜨거워서 그대로 떨어뜨
릴뻔했지만 다행히 흘리지 않고 빈 식접시에 버릴수있
었다.
여자는 울상이 되어 카인에게 따져물었다.
"뜨겁다고 말 안했잖아. 뜨거운걸 어떻게 먹어!"
분명 입천장까지 데였으리라. 카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사과했다. 어째선지 카인은, 처음보는 이 여자가 사과를
요구한다면 어쨌든 선선히 해줄수있을것같다고 느꼈다.
"미안하군."
두 사람을 보던 이사벨은 여자쪽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이름이 뭐에요?"
여자는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인다..
"이..름...?"
다행히 오므라이스로 기분이 좋아진 상태였던
이사벨은 짜증내지 않고 받아주었다.
"누군가 아가씨를 부를때 뭐라고 부를거 아니에요?"
"음.... 73호?"
"칠십..삼호..?이름이 무슨.......어..?"
"왜?"
"73호..?"
"73호."
모처럼 좋던 이사벨의 기분이 바닥에 처박혔다.
"농담...아니겠지. 73호 이전의 이름은?"
여자는 순진한 얼굴로 대답했다.
"73호는 예전부터 73호였는데?"
머리를 거머쥔 이사벨을 두고 카인이 말했다.
"그 이름은 곤란하군. 이 도시에 [그런 이름]은 없
으니까. 새로 만드는게 좋겠는데."
여자는 별 군말없이 답했다.
"좋아. 근데 나는 그 외의 이름은 몰라서.. 지어줄래?"
"이름이라.."
고민의 늪에 빠진 카인을 두고 회복된 이사벨이 말했다.
"레나. 레나 어때? 저 목석을 제멋대로 휘두르는걸 보니
꽤 재능이 있는데."
여자가 반문했다.
"목석? 재능?"
"레나란 이름 마음에 안들어?"
"아니. 좋아. 이제부터 레나라고 불러줘."
이사벨은 다소 짖궂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그래. 매혹적인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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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최초이자 최후의 꽁냥이 지나갔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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