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lipse Vol.26 검게 핀 꽃 정보제공자, 클리브 스테플 (가십 페이퍼 기자, 사이코메트러)
대부분의 헌터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 역으로 누군가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들의 존재는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녀’의 흔적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독립되어 있던 사건들이 ‘그녀’라는 아주 가느다란 실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인터뷰, 팀 스티브 울프 (Timothy Steve Wolf)
그날 화마가 내게서 가져간 건 올바른 목소리, 올바른 걸음걸이, 올바른 눈빛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나 때문에 죽어간 얼굴도,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아이들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때가 되면 새로운 희망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을 비웃으면서 말이다.
화마
고아원에 화재가 일어난 오전까지만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손가락 끝에서 만들어 내는 희미한 불꽃이 전부였다.하지만 검은 실루엣의 여자가 고아원에 나타나 검은 숨으로 작은 곰인형을 꼭 끌어안은 여자애를 검게 물들인 순간, 나는 달라졌다.
내 몸은 타올랐다.
나는 화마가 날 집어삼킨 것으로 생각하여 비명을 지르며 뛰었고, 몸에서 떨어진 불씨들은 우왕좌왕 거리는 아이들 사이로 번져갔다.
해달라고 소리치며 주변을 살피다가 검은 실루엣의 여자를 발견했다. 그 여자는 어떤 동요도 없이 이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이곳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것을 예상이나 한 듯이…….
두 번째 인터뷰, 미쉘 모나헌(Michelle Monahun)
보호소 의자에 앉아 있는 아이들은 아직 현실로 돌아오지 못했어. 우리를 감시하는 사람은 두 명뿐이었고.
동생의 상태를 짐작할 순 없었지만, 시간이 없었어. 주변에 움직일 수 있는 물체를 살피다 어떤 아이와 눈이 마주쳤어.
고아원에서의 일은 기억이 희미했지만, 그 앤 온몸에 불을 뒤집어쓰고 있어서 또렷하게 기억해.
온몸에 화마가 번져 생긴 흉물스런 흉터가 남아 있긴 했지만 살아 있었어. 그 애는 나에게 보라는 듯, 턱으로 문을 가리켰어.
문밖으로 검은 실루엣이 얼비쳤고, 살짝 열린 문틈으로 검은 액체가 흘러들었는데, 이상하게도 나를 피해 교묘히 스며들었어.
난 우두커니 앉아 있는 피터의 손을 끌고, 그곳을 탈출했어.
닥터 까미유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녀를 따라갔어. 그녀는 우리에게 까미유라는 사람을 소개해 주었어."돌아가고 싶으면 그렇게 해. 파괴하고 싶은 것들이 있으면 해도 좋고, 복수를 원한다면 그것도 물론.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하지만 지난 일에 연연하다 보면 영영 길을 잃게 될 거야. 치료를 시작하자. 내가 도와줄게.”
세 번째 인터뷰, 미아 (Mia)
나무가 빛을 잃었던 순간을 기억해. 순식간에 나뭇잎 밟는 소리가 사라지고, 발은 온통 검은 재로 뒤덮였어.
그녀의 검은 물이 온 숲에 번져갔어. 달려야 해. 도망쳐야 해. 소리를 질렀어. 하지만 멀리 도망가진 못했어.
오빠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거든.
그녀의 검은 물은 멈춰 선 내 몸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어.
"깨어났구나. 제법 잘해냈어.”
“오빠? 오빠? 오빠는?“
“오빠는 많이 다쳤단다. 이제 널 지켜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단다. 오빠도, 숲도, 마을 사람들도 모두. 네가 그렇게 만든 거야.”
그 여자가 누워있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어. 나는 부들부들 떨며 소리를 질렀지만, 그 여자는 아무렇지 않게 돌아섰어.
네 번째 인터뷰, 히카르도 바레타 (Ricardo Baretta)
마지막 발걸음을 돌렸다. 만나러 가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최근의 일까지.
“난 해부학 실습을 좋아했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실험이 끝난 텅 빈 연구소에 혼자 남아 실험체를 원래 대로 복원시켜 놓는 걸 좋아했지.
하지만 보잘것없는 지식으로 서툰 메스 질을 하는 친구들 덕에 그 즐거움은 곧 끝나버렸어.
그들은 내 흐름을 깨고, 무질서하게 만들었어. 난…… 너무……너무…… 불쾌했어.”
“과거의 일이야.”
“나의 시작점은 과거야. 지금의 닥터 까미유를 위해 과거의 까미유는 어긋난 것을 교묘하게 감추고, 완벽한 현재를 만들기 위해서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문제를 해결해왔지. 나약한 인간 군상에 호소하면서 말이야.
사람들은 현재의 닥터 까미유에게 시선을 멈추고, 기대고, 결정한 것을 따르게 되었어…….
너도 그들과 같았다면 좋았을 텐데.”
“닥터. 사냥하기에 아주 그럴듯한 날이야.”
노크도 없이 문이 열리면서 검은 실루엣의 여자가 들어왔다.
그 여자가 내뿜는 불길한 기운 때문일까? 몸속에서 벌레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무표정한 모습으로 검은 숨을 내쉬자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벌레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졌다.
“우린 곧 모든 것을 재배열할 거야. 마지막 인사를 나눠야겠어. 히카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