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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지평선 아래에서 정보제공자 : 에릭 사르코(발생학자, 비능력자)

사건의 지평선 아래에서 아무도 모르는 사명을 이어가며 세계를 수호한다는 대단하신 인물들이 모여 있던 곳,
샤르코, 오로지 사명을 이룬다는 목적을 다하기 위해 구축된 기이하고 신실한 광신도의 온상.
에릭 샤르코는 그 안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고 바쁘게 살았다. 그런데 밖으로 나와보니 샤르코는 나태하고 고루한 곳이었다.
사건의 지평선 아래 얼마나 많은 것들이 얼기설기 얽혀 왔는지 그 오랜 세월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에릭은 이제 그런 것들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 그저 더 매몰되기 전에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을 뿐이다.
벗어날 수 없다면 전부 부숴버릴 거라 다짐했다. 이제는 다시금 볼 수 없는 그 집안사람들은 에릭을 별종이라고 일컬었다.
워낙 오래된 가문이니 어쩌다 한 번씩은 이런 별종들이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에릭은 샤르코의 마지막 별종이었다.

오래된 분

선함은 강한 힘을 가진 자만이 지킬 수 있다. 그러나 강한 힘을 가진 자들이 선량하기는 어렵다.
에릭의 눈앞에 서 있는 남자처럼 말이다. 이 자는 반딧불이처럼 무해해 보이지만 실상 누구보다 음험했다.

“자네 말대로군, 에릭. 세포 생장이 빨라졌어. 변이 추이를 살펴보기 적당한 속도까지 올라왔군.”

천사 같은 고수머리에 따스한 눈동자를 가진 이 남자는 까미유 데샹, 국제의료봉사단체의 회장을 맡은 유명인사다.
에릭은 카모라가 후원한 한 프로젝트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유전자 변이를 통해 평범한 사람을 능력자로 만드는 연구였다.

“인식의 문은 완전히 열렸다. 아마도 쉽게 닫히지 않을 거야.”

몇 번의 프로젝트를 거치며 그들은 꽤 많은 대화를 나눴다. 에릭은 까미유를 이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의 연구는 일견 허황되어 보이겠지만, 일반인이 상상하지 못하는 관점으로 보면 그 안에서 수많은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그는 능력자가 소모되는 현실을 바꾸고자 했다. 능력자와 비능력자를 구분 짓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 능력의 진상을 규명하고,
나아가 통제하기를 원했다. 어떤 능력은 선택하고 어떤 능력은 배제하며 궁극적으로는 세계의 방향을 영도하려 하는 것이다.
까미유와 에릭은 각자의 방법으로 이 세계를 수호하고 있었다. 적어도 에릭이 보기엔 그랬다.

“어떻게 알지?”
“플람이 없으니까. 오래된 분이 나타나지 않는 한 이 상태가 유지될 거다.”
“아, 전에 말했던 존재 말이군. 흥미로웠어.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알 수 없지. 문명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어. 소식이 늦게 전해질수록 우리에게 유리하니까.”

목격된 것은 몇 번 안 되지만 그때마다 강렬한 존재감을 남긴 한 소녀를 에릭의 가문에서는 오래된 분이라고 불렀다.
까미유는 이 소녀가 태초의 사이퍼일 거로 추측했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소녀는 그저 존재했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목적도 정체도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적도 아군도 아닌 위치를 고수한다는 것이었다.
사건의 지평선을 부유하는 고래처럼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났다가 돌아서면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없었다.
에릭은 오래된 가문의 낡은 서고에서 이 기이한 소녀를 접한 선조가 남긴 기록을 본 적이 있었다.

1582년, 바이에른

바이에른의 검은 숲과 호수에는 신비한 힘이 서려 있다. 그래서인지 숲은 인간을 멀리하고 괴물을 끌어들인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이 원시 삼림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빙하시대로부터 이어진 호수에서 거대한 빛기둥이 치솟았을 때는 그들도 두 손 모아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빛은 금세 사라졌다. 그러나 숲이 수런거리는 소리에 바이에른의 사람들은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숲에서 실종자가 발생하고 공포가 균사체처럼 사람들을 좀먹었다. 숲속에 뭔가가 있었다.
짐승의 소리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늑대의 울음소리, 소름 끼치는 날갯짓 소리가 매일 밤 들려왔다.
영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잘 훈련된 병사들을 숲으로 보냈지만, 그들의 용기는 공포의 실체를 확인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미처 몰랐겠지만 병사들이 숲을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에릭의 선조를 포함한 정체불명의 전사들과 기이한 소녀의 도움 덕이었다.
겨우 숲을 빠져나와 절망으로 만신창이가 된 그들이 만난 것은 숲이 빛난 후 치유력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마을 주민 한나였다.

작고 다정한 소녀는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신의 말씀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믿음이 깊은 병사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잊지 않고 소녀의 기적을 상부에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영주는 작고 구석진 백작령을 벗어나 수도로 입성할 기회로 생각하고, 한나를 성으로 불러들였다.
영주는 한나를 융숭히 대접하며 귀족 아가씨로 보일 법한 아름다운 옷과 먹기 아까울 정도로 어여쁜 음식을 제공했다.
한나는 이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았고, 이후로도 계속 영주의 명을 따라 피를 멎게 하고 뼈를 붙이는 치유의 기적을 펼쳤다.
때로 한나는 잊힌 기억까지 되살리고는 했다. 사람들은 한나에게 모든 걸 되살리는 힘이 있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그들 중 일부는 한나를 숭배하며 자기 자신처럼 소중히 보호하려 했다.

1582년, 만남

어느 날 한나는 숲에서 화살에 맞은 사슴을 발견했다. 아직 어린 녀석이 가엾은 마음에 한나는 쓰러진 사슴을 치유했다.
그러나 사슴은 이미 목숨이 끊어진 후였고, 한나의 힘은 목이 덜렁거리는 괴물을 일으켜 세운 꼴이었다.
다행히 한나가 비명을 질러 사람을 모으기 전, 돌도끼 하나가 날아와 완전히 죽지 못한 사슴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움찔거리는 사슴의 목덜미를 밟으며 일어선 건 긴 머리카락을 제멋대로 질끈 묶은 자그마한 소녀였다.

“마녀가 될 생각입니까?”

소녀의 뒤를 따라온 무리 중 하나였던 에릭의 선조가 한나를 질책했다. 한나는 위험에 처할 뻔했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의 남루한 행색을 보고 현재 영주의 수호를 받는 자신에게 함부로 말할 주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한나는 화를 내려다, 피를 뚝뚝 흘리는 도끼를 들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소녀를 보자 무서워서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돌도끼를 든 소녀는 그런 한나를 묵묵히 바라보다 한나에게 더는 힘을 쓰지 않을 것을 권했다.
그 힘은 이 세상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것이며,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용하면 반드시 불행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한나는 그들이 떠날 때까지 입을 꾹 닫고 있었지만, 소녀의 말을 따를 생각은 전혀 없었다.
빛과 함께 온 이 힘은 분명 신의 말씀이 깃든 것이며, 실제로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달래 줬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옷자락도 보기 힘들었던 영주도 한나를 존중하며 대우해 줬다. 그러니 한나는 끝까지 사람들을 도울 생각이었다.

지배자의 비밀

녹음이 우거질 무렵, 영주는 바이에른을 통치하는 군주에게 기쁜 마음으로 기적의 소녀에 대해 보고했다.
수년에 걸쳐 영지를 사랑하고 가꾼 공작의 복된 치적의 결과가 신께서 내린 기적으로 찾아온 것이 틀림없으며,
공작의 충실한 신하로서 이 기적이 자신의 영지에 찾아온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잊지 않고 덧붙였다.
그러나 광활하고 부유한 영토를 소유한 비텔스바흐의 공작에게 지방 영주의 경하는 새삼스러운 것도 없었을뿐더러
마침 종교적인 갈등을 빌미로 쾰른 선제후를 몰아내기 위한 전쟁을 준비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그는 이 문제를 신중하게 고민했다.
지배자들의 싸움에서 신의 기적이란 자칫 사특한 이적으로 몰려 이단의 낙인이 찍힐 수도 있을 법한 단어였다.
그는 오만에 젖는 대신 강대한 자가 해야 할 일을 했다. 백작령에 은밀히 자기 사람을 보내 한나의 행적을 조사하게 한 것이다.

공작의 유능한 부하는 한나가 처음 치료한 병사를 시작으로 그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을 탐문했다.
한나가 치유한 사람 중 어떤 이들은 알 수 없는 기억에 당혹스러워하고 있었으며, 일부는 한나를 절대적으로 따르고 있었다.
그들 모두는 유독 큰 상처를 입었던 사람들이었고, 한나는 그들을 치유하기 위해 강한 힘을 발휘해야 했다.
사람들이 갖게 된 낯선 기억, 한나를 위하는 마음이 모두 한나 자신의 것이라는 걸 밝히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보고를 받은 공작은 한나의 힘이 치유가 아닐 것이라 판단했다. 그것은 되돌리거나 복구하면서, 동시에 복제하는 것에 가까웠다.

12세기부터 시작된 통치의 결과로 비텔스바흐의 공작은 가문의 보고와 타 제후와의 교류 속에서 수많은 비밀에 접근할 수 있었고,
불과 200여 년 전 지금의 이스탄불에 불가사의한 빛이 치솟은 후 광기의 역병이 도시를 휩쓸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 빛은 종교적이거나 희망적인 것이 아니며, 위정자라면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라는 선대의 말씀도 있었다.
공작은 한나의 이적이 백작령을 넘어 자신의 영토에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고,
즉시 영주에게 이 사실이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게 하라는 명령과 함께 인장이 없는 밀서를 전달했다.
한나가 출세의 발판이 될 거라고 믿었던 영주는 자신에게 화가 미칠까 두려워 공작이 지시한 대로 즉시 한나를 화형대에 올렸다.
그렇게 한나는 하루아침에 성녀에서 마녀로 추락했다.

가을, 불, 십자가, 그리고 불타는 ‘마녀’

사건의 지평선 너머의 자들과 돌도끼 소녀는 인식의 문에 영향을 받아 괴물이 된 존재들을 찾아 숲을 샅샅이 뒤져야 했다.
그래서 그들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나의 주변으로 불길이 치솟아 어떻게 손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
지평선 너머의 자들은 자신들의 규율에 따라 그 불길에 관여하지 않았다. 아니 관여할 수 없었다.
하릴없이 광경을 지켜봐야만 하는 자의 참담한 마음도 기록되어 있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한나의 주변에 포박된 마을 주민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들은 의식을 잃은 것처럼 보였지만
간혹 한나와 번갈아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사람들은 섬뜩한 광경에 뒷걸음질 치다가 도망쳐 각자의 집으로 숨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영주와 공작의 기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며칠에 걸쳐 총 마흔여덟 명의 사람들이 마녀로 몰려 처형당했다.
그들은 한나의 힘으로 목숨을 건진 후 한나의 기억을 전해 받았거나 한나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던 자들이었다.
그들의 몸을 빌려 한나가 되살아나기라도 할 것처럼, 공작은 그들 모두를 불태워 없애라고 명했다.
이후 백작령은 소거되었다. 영주를 비롯한 영지의 모든 주민이 강제로 이주해야 했고, 꽤 오랫동안 숲을 찾는 자는 없었다.

두 번째 만남

돌도끼를 든 소녀가 인간이 밉지 않냐고 물었다.
한 때 한나였던 자는 미소를 지으며 그래도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싶었노라고, 살릴 수 있었으니 밉지 않다 답했다.

1789년, 프랑스

사람들의 강한 염원이 모이는 장소는 마그마가 들끓는 곳이나 다름없다.
18세기 말, 사람들의 인식이 이전과는 다른 체계로 개편되기 시작했고, 한껏 고양된 자유에의 열망이 불타올랐다.
열정에 사로잡힌 도시에 화산이 폭발하듯 인식의 문이 열리고 파리는 전에 없던 소요에 휩싸였다.
피로 물든 깃발이 박애의 상징이 되기까지 수없이 많은 전투가 벌어졌다.
예측이 가능했던 연결이었기 때문에 파리에서 대기하고 있던 르니에 플람은 즉시 문을 닫는 데 성공했다.
충실한 샤르코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랐다.

다른 한편에서 파리의 소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또 다른 전투가 벌어졌다.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천칭 문양을 새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총격에서 시민들을 구하고, 되려 총 든 자들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 총에 맞아도 쓰러지지 않는 자가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사신과 같아 시민들은 도움을 받으면서도 두려워했다.
감사를 표하는 시민들에게 그들은 인류를 보호하고 구원하는 것은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어느덧 돌도끼를 든 소녀가 전장에 뛰어들어, 총에 맞아도 쓰러지지 않는 자와 등을 맞대며 갈팡질팡하는 총구 앞에 섰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 건너에서 소녀를 목격한 에릭의 선조는 과연 그 모습이 전설과 다르지 않아 놀랐다고 기록을 남겼다.

세 번째 만남

돌도끼를 든 소녀가 인간이 밉지 않냐고 물었다.
한때 공작의 기사였던 자는 무표정하게 그래도 사람을 살리고 있노라고, 나약한 인간을 구원할 힘을 가졌으니 괜찮다 답했다.

인식의 문을 열거나 닫거나, 아니면

그 이후 오래된 분에 대한 목격담은 남아 있지 않았다. 에릭의 증조모는 그분이 100여 년 전 홀연히 동방으로 떠났다고 말했는데
치매를 앓고 있는 데다 그분이 언제, 어떻게 떠났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하는 등 영 석연치 않아서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 소녀가 어디에 있건 지금은 이곳에 없어도 어느 순간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에릭은 인식의 문과 관련한 어떤 능력도 가지지 못했다. 인식의 문이 열린 후 문의 그림자를 찾아가 시도해 봤지만,
그는 페넘브라 리더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 일이 없었다면 에릭은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샤르코의 일원으로서
인식의 문을 닫는데 열과 성을 쏟는 가문의 사명에 이바지하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1925년 금환일식이 일어난 밤 열일곱 살 소년 검사의 검이 칸도르에 열린 인식의 문에 닿지 못했더라면,
완전히 연결되지 못한 통로를 놓고 사건의 지평선 아래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에서 샤르코가 몰락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장 바티스트 플람이 홀연히 떠나지 않았더라면, 아니, 처음부터 기울어진 천칭이 없었더라면.
에릭 혼자서는 더 이상 사명을 지켜낼 수 없었기에 그는 절망했다.

칸도르와 연결되려던 통로가 완성되지 않은 채, 세상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내일을 맞이할 수 있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끝나는 밤, 에릭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서서히 깨지는 금환을 향해 맹세했다.
세상을 지키기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악마의 힘을 빌려서라도 인식의 문 따위 이 세계에서 없애버리리라.

워낙 오래된 가문이다 보니 에릭 같은 별종들은 심심찮게 나오곤 했다. 그의 가문은 이런 자들을 딱히 경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샤르코의 모든 것이었던 일, 앞으로도 해야 하며 또 다음 세대에 전승해야 했던 업을 원치 않게 혼자 짊어진
에릭은 마음껏 꿈꿨다. 물론 문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승되어 왔기 때문에 에릭의 결심은 부질없는 것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에릭은 하얀 악마를 만나고 말았다. 과학이 분석할 수 없는 힘의 기원은 찾아 파괴하고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려는,
그 기회를 오로지 자신만이 주려 하는 확신에 찬 독재자에게 에릭은 기꺼이 굴복했다. 애초에 헌신은 샤르코의 내력이었다.

“그나저나 탄야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그 여자는 지금의 안타리우스가 아니라 그 이전까지 관련됐을 확률이 높아.
하지만 어차피 문에 대해 명확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플람의 혈통이 끊어졌다면,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할지도.”
“지금은 실험하는데 인식의 문이 필요하니까 그냥 두지만, 문을 찾아 파괴하려면 그전에 반드시 탄야를 정리해야 해.”

탄야와 까미유가 힘을 합친 건 과학으로 능력을 규명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순간뿐이었다.
인식의 문이 열리자마자 인식의 문을 이용하려는 탄야와 파괴하려는 까미유는 곧바로 갈라섰다. 애초에 결이 다른 사람들이었다.
에릭은 어쩌면 탄야가 기울어진 천칭을 대중 앞에 드러낸 사람이 아닐까 의심했다. 다만, 그러기에는 탄야가 너무 젊었다.
그가 직접 나섰건, 이어받은 것이건 간에 탄야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 속했던 사람인 것은 분명했다.
문을 닫으려는 사람끼리도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는데 기울어진 천칭에 속한 사람이 누군지 알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자명하다.
에릭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탄야가 매우 위험한 존재이며, 적이 되었으므로 더욱 위험해졌다는 것뿐이었다.
그렇지만 탄야는 결국 그들을 막지 못할 것이다. 에릭과 까미유는 인식의 문을 파괴할 것이다.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의 빛나는 영혼을 잠식한 불안정한 위험을 없애고 이 세계를 지키는 방법은 오직 그것뿐이다.
물론 그 이후 까미유가 어떤 길을 걸을지, 그리고 이에 앞서 지금 까미유가 처한 상황이 어떤지를 에릭은 가늠할 수 없었다.

네 번째 만남

돌도끼를 든 소녀가 인간이 밉지 않냐고 물었다.
한 때 옥사나였던 자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