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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사 데 패밀리 정보제공자, 주세페 로시(지하연합, 비능력자)

집안의 기쁨

Gioia della casa, 우리 아버지가 키아라를 부를 때 하는 말이다. 정작 본인 아들들은 커다랗고 발에 차이는 강아지들이라고 부르면서.
할아버지는 더했다. 작은 공주님, 가족의 보물 같은 아름답고 낯간지러운 수식어는 모두 그 애의 몫이었다.
집안의 유일한 여자애라며 달콤한 설탕으로 만든 꽃송이 대하듯 그저 상냥하고 다정하기만 했다.
할아버지에게는 분명 펄라라는 이름의 딸이 있는데, 펄라 고모가 쌍권총을 쓰기 시작하면서 딸이라는 걸 잊기로 한 게 틀림없다.
펄라 고모마저도 키아라를 집안의 유일한 꽃이라고 부르니 말 다했다. 카모라 마피아의 일원인 로시 가문에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었다.
할아버지는 아들 셋에 딸 하나를 두었는데, 공교롭게도 모든 자식들이 아들만 낳았다. 아버지는 큰아들이었지만,
내 위로 형이 둘이나 있었기 때문에 내 취급은 피로만도 못했다. 피로는 작은형이 키우던 강아지였다. 물론 피로가 귀엽긴 했다.

모두에게 좋은 선택

아버지의 형제들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막내인 라파엘레 삼촌이었다. 삼촌은 나랑 똑같이 형이 둘이나 있었고 형보다 무서운
누나까지 있었지만 형제들 중에서 키도 제일 크고 얼굴도 제일 잘생겼는데다가 싸움도 끝내주게 잘했다.
라파엘레 삼촌은 내 영웅이었고 나는 늘 삼촌처럼 되고 싶었다. 삼촌은 단검 던지기의 달인이었고,
술이 머리끝까지 올라 기분이 좋을 때면 내게도 기술 몇 개를 알려주곤 했다. 이쯤에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데,
삼촌은 틀림없는 건달이었다. 하지만 마피아는 아니었다. 삼촌은 불안정하고 격동적인 삶보단 소시민의 평온한 삶을 원했다.
동네 제일가는 말술이었고 아가씨들에게 휘파람 날리는 기술이 스무 가지는 넘었으며 시를 좋아했다.
시는 휘파람이 안 먹히는 아가씨들을 위한 수단이라고 했다. 그런 삼촌이 미국으로 끌려가던 날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했다.

“내 사랑 라파엘레. 움~ 이탈리아에 온 건 운명이야, 자기를 만나려고 했던 거지. 우리 아들 셋, 딸 셋 낳는 거예요, 알았죠?”
“우리 마리아 안 말려도 되는 걸까? 이러다 마리아 아버지에게 혼나면 어떻게 해?”
“쟤가 말린다고 들어? 아저씨는 손주랑 같이 안 오는 거만으로도 잘했다고 할걸?”

나무에 매달린 매미처럼 삼촌에게 딱 달라붙어 있던 자그마한 금발 여자와 여자의 친구들이 함께였다.
그들은 스무 살이 된 기념으로 함께 이탈리아에 여행을 왔다는데, 일행 중 하나인 마리아 호킨스가 삼촌을 보고 첫눈에 반해
매달린 결과 결국 마리아의 애정공세에 넘어가 버린 삼촌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참 삼촌답게 불같은 사랑이었다만,
내게는 웬 강아지가 삼촌을 물어가는 거 아니, 그게 아니라 갑자기 나타난 여자가 삼촌을 납치하는 거로 보였다.

“흐흠. 라파엘레.”
“아, 형, 시간이 얼마 안 남았죠? 마리아, 잠시 자리를 비켜줘요.”
“마리아는 라피랑 한순간도 떨어져 있기 싫은데~”
“야, 이 기집애야. 이대로 미국 가면 가족 보기 힘들어지는데 네 남편 형제랑 인사도 못 나누게 할 거야?
제인, 너 왼쪽 팔 잡아. 꽉 잡아, 이대로 선실까지 간다.”
“모니카~ 아파, 아프다니까…”

삼촌은 평소보다 얼굴에서 훨씬 더 빛이 나는 듯 보였다. 그게 사랑에 빠진 덕인지 금주한 덕인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라파엘레, 네가 카모라의 모든 혐의를 끌어안고 떠나는 덕분에 카모라 마피아는 이번 검찰 압수 수색에서 안전하게 되었다.
네 형으로서가 아니라 카모라의 일원이자 로시의 후계자로서 네게 감사한다.”
“제가 한 건 없습니다. 장인어른 되실 분 덕이죠.”
“흠… 그 사장어른 말인데… 너 정말 괜찮겠냐? 디트로이트를 장악한 사람이니 만만찮은 상대일 거다.”
“제가 뭐 싸우러 갑니까? 형도 참 별 걱정을 다 하시네요. 저렇게 예쁜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는 것부터 아모르의 축복이잖습니까?”
“… 그래 너만 좋다면야.”

나는 하나도 좋지 않았다. 삼촌은 눈에 뭐가 씌었는지 내내 싱글벙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형들은 내심 삼촌이 부러운 눈치였다.
그 때 나는 마리아라는 여자가 예쁘긴 했지만 삼촌이 훨씬 잘생기고 멋있으며, 이 결혼은 삼촌의 손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삼촌이 타고 가는 배의 뒷모습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부두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당시 이탈리아 정부가 마피아를 소탕하기 위해 강력한 수사를 진행했으며, 삼촌은 카모라 마피아의
온갖 불법적인 일의 주모자로 조작된 상태에서 미국으로 도주한 것이었다. 삼촌의 도주는 마리아의 아버지 덕분에 수월하게 진행되었는데,
그 사람은 디트로이트를 지배한 갱단의 우두머리였다.
삼촌과 마리아의 결혼으로 카모라 마피아와 디트로이트 갱 사이에 협업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 눈의 사과

삼촌은 드넓은 미국에서 마리아와 여행도 하고 좋은 것도 먹는 삶을 꿈꿨던 것 같지만, 마리아의 아버지는 강경하게
“결혼은 허락하나 연애는 허락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여 어쩔 수 없이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주 성당으로 끌려가 혼인성사를 했다.

삼촌 이름으로는 편지를 보낼 수 없어서 마리아 호킨스의 이름으로 오는 편지에는 삼촌의 행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아내와 연애하고 싶다는 하소연, 어린 아내가 결혼한 지 모르고 접근한 애송이들의 바지를 여러 벌 젖게 만들었다는 자랑,
세탁소 여러 개를 성공시켜 사장어른의 인정을 받았다는 뿌듯함. 삼촌은 그 먼 곳에서 본인이 꿈꾸던 소시민의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삼촌이 떠난 지 1년이 되었을까, 우리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버지의 얼굴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아기의 사진을 받았다.
라파엘레 삼촌은 마피아 단속을 회피할 수 있게 도와준 일종의 순교자와 같은 취급을 받고 있었기에 삼촌의 편지가 올 때마다
모두들 즐거운 안줏거리처럼 여기며 기쁨의 축배를 들었다. 그런데 아기라니, 그것도 여자아이라니!
카모라 마피아의 대다수가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디트로이트와 업무상 협업도 중요하겠지만 다들 마음 한구석에는
로시 집안의 작은 공주님을 보러 갈 생각이 꽉 들어차 있었다.

나는 그때 아이 이름이 키아라 로시가 아닌 키아라 호킨스라는 사실에 매우 분노해 아버지에게 대들었다가 3일이나 후식을 먹지 못했다.
흥, 그까짓 계집애. 내게 마리아 호킨스는 내 영웅이자 우상을 빼앗아간 데다 딸에게 로시라는 이름을 물려주지 못하게 막아선
건방진 여자였지만, 할아버지는 막내아들 하나 정도는 호킨스에 팔아먹기라도 한 듯 흔쾌히 받아들였다.

알고 보니 키아라의 외할아버지가 딸이 하나뿐이라 집안을 물려받을 사람이 달리 없었는데 라파엘레 로시가 들어와 손녀를 낳아주니
삼촌을 향한 그 어여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나는 반항이라도 하듯 영어 공부를 피해 다녔는데,
펄라 고모가 만날 때마다 권총을 들이대며 영어 단어 검사를 하는 통에 단어는 충분히 잘 알게 되었다.

영웅의 자질

내가 키아라에 대한 생각을 바꾼 것은 1922년 봄이었다. 흑염 하이드가 로시 가문의 저택에 방문했다.
그는 내가 평생 본 사람 중에 가장 카리스마가 넘치는 남자였다.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그보다 위압감 넘치는 남자는 본 적이 없다.
흥분의 도가니에 빠진 형들과 나는 방에 들어가 있으라는 말을 당연히 듣지 않고 계단참에 옹기종기 매달려 귀동냥을 했다.
집안에 능력자가 생겼다고 했다. 바로 키아라 호킨스였다. 디트로이트에서도 어쩔 줄 모르고 아버지에게 연락해서 사실을 알렸는데
할아버지가 이를 듣고 집에 흑염을 모신 것이었다. 흑염은 발발대는 어른들을 보며 한바탕 크게 웃더니 말했다.

“애가 공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한다고?”
“예, 유모가 자물쇠를 채워 놓은 간식 창고에 들어가 바구니 속 간식을 먹다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하하하하. 크게 될 아이네, 자기 목적을 위해 능력을 발현시키다니 말이야.”
“문제가 될 일은 없겠습니까?”

능력자라면 까미유 같은 애가 된 걸까? 까미유는 카모라가 후원하는 아이들 중에서도 예쁘장한 얼굴과 예의 바른 태도로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애였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음습한 데가 있어서 비슷한 시기에 후원하던 히카르도에게
같이 놀지 말라고 했다가 엄청 싸웠다. 히카르도는 완전히 까미유의 추종자나 다름없었고, 나는 그게 더 이상하게 느껴져
이 형님의 걱정을 느낄 수 있도록 잘 조물거려줬는데…. 흠흠.
키아라 호킨스가 까미유같이 이상한 아이가 되었다면 라파엘레 삼촌이 너무 가엾다. 그때 흑염이 한 손을 가슴께로 들어 올렸다.
그 손에서는 신비롭게도 검은 불꽃이 타올랐다.

“이것이 바로 흑염입니까?”
“그렇네, 이 불꽃을 보게. 이것은 꺼지지 않는 나의 힘이며, 나의 일부일세.
그 아이의 능력이 그 애의 앞날에 도움이 될 수 있게 잘 가꾸고 바로잡는 것에만 신경 쓰시게.
그럼 그 능력은 아이의 힘이 될 거네.”

처음 보는 능력에 형들까지도 다들 환호성을 질렀으니 나도 말할 것이 없다. 우리는 흑염이 돌아간 뒤 한동안 손에서
불꽃을 부르기 위해 서로 엄청 경쟁했다. 하지만 누구도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는 걸 증명했을 뿐이었다.
흑염은 너무 멋있었고, 키아라가 잘 큰다면 흑염 같이 멋진 사람이 되어 라파엘레 삼촌의 자랑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키아라를 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 미국으로 보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키아라의 능력이 안정될 때까지는 갈 수 없다고 허락하지 않았고, 나는 결국 3년 후에 미국으로 갈 수 있었다.
키아라가 10살, 내가 20살 때였다.

선택받은 남자

아마도 친척들 중에서 키아라를 가장 오랫동안 보지 않았던 건 나일 것이다. 나는 일부러 키아라를 미워하려고 애썼으니까.
하지만 마음을 바꾼 후 만난 키아라는 너무나 귀여운 아이였고 라파엘레 삼촌이 슬슬 배가 나오는데 반해
키아라는 흑염처럼 멋진 능력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한층 더 예뻐 보였다.

“주세페? 예쁘다.”
“어디가 예쁜지 구체적으로 말해줄래, 내 귀여운 사촌? 구구절절 듣고 싶으니까.”
“아하하, 웃겨. 이름이 예쁘다는 거예요. 주세페, 진짜 웃기네요.”
“대서양에서 수련한 보람이 있네. 오면서 돌고래한테 좀 배웠거든.”
“아하하하하하.”

키아라를 웃긴 덕에 나는 키아라 외할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미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놀 거리를 즐길 수 있었다.
하, 내 청춘은 참 아름다웠다. 이탈리아로 돌아간 뒤 키아라는 종종 편지를 보내왔다. 형들의 질투는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아버지의 총애가 모두 내게 머물러 있던 시절이었다.

혹시 들어봤는가? 세상의 자연수는 1과 소수와 합성수로 구성된다고 한다. 카모라가 세상 사람을 구분하는 방법도 그렇다.
1은 당연히 나, 소수는 내 가족이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뚜렷한 영역이 있었다.
소수에 속하는 내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고 가족들을 위해 목숨까지 걸 수 있다.
내 사랑스러운 여동생도 당연히 목숨 걸고 지켜야 할 내 가족이었다.

데비에이션

1931년,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히카르도가? 그럴 리가 없잖아!”

카모라가 후원하던 아이들이 자라 카모라 마피아가 되었다. 히카르도는 그중에서도 젊은 나이에 임원 자리를 넘볼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아이였고, 무엇보다 성품이 좋았다. 가족이 없던 아이라 친구에게 많이 의지하긴 했지만,
카모라 마피아의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나서며 수많은 가족들의 목숨을 살려냈다.
그럼에도 민간인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 게 바로 그 아이였다. 그런데 그런 히카르도가 광장에서 난동을 피우고 사람을 해쳤다니.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누구도 그 아이의 편이 되어주지 않고, 평소 히카르도를 좋게 말씀하셨던 아버지마저도 그 애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떠나는데 막지 않았다.
우린 가족인데, 가족이 가족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 배신을 한 것이다. 라파엘레 삼촌이 떠난 것과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더 나빴다. 라파엘레 삼촌은 결혼이라도 해서 떠났지, 히카르도에게는 아무도 없다. 가족도, 이젠 친구조차도 없다.

나는 아버지에게 떠나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날 보다가 허락해 주셨다.
마마는 날 안고 울었고 형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잘못된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나는 무작정 북으로, 북으로 가다가 스위스에 정착했다. 스위스는 이탈리아와 다르게 정말 재미없고 재미없고 재미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아름다웠다. 누구든 이 곳에 온다면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으리라. 나는 마피아와 최대한 먼 직업을 택해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래서 선택한 직업이 바로 경찰이었다.

넬리라는 여자친구도 잠깐 사귀었다. 같은 경찰이었는데, 자기 동료 중에 능력자가 있었다는 말을 했다.
경찰 출신 능력자를 알아보려면 알아볼 수 있었지만 그만뒀다. 그저 키아라에게 가끔 엽서를 보냈다.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내 사촌은 걱정뿐인 다른 가족들과 다르게 스위스의 풍경이 멋지다며 칭찬만 했다. 나는 그게 편하고 좋았다.

경찰복이 조금 헤져 새 의상을 보급 받을 무렵, 키아라는 저스티스 리그라는 곳에 가입했다고 알려왔다.
양쪽 할아버지들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키아라는 케니스 하트라는 운명을 만났다며 근 일 년을 설득했고,
결국 백기 투항한 가족들의 응원과 함께 능력자 단체에 가입한 것이다. 그건 참 자기 엄마랑 똑 닮았다.

가족들에게 키아라는 축복 그 자체였고, 키아라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랬음을 키아라도 알 것이다.
키아라가 처음 능력을 발현했을 때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의 손가락이 사라졌다는 루머가 있을 정도였으니,
아니 뭐 루머가 아닐 수도 있고.

다들 키아라의 안위를 걱정하면서도 곧 자신의 능력을 멋지게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를 잔뜩 품었지만,
뭔가 보여주기도 전에 저스티스 리그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후 키아라는 인허가 취소라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친구의 권유로 더 호라이즌이라는 곳에 가입했다고 했다.

임무

그게 바로 얼마 전이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일로 키아라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최근 지하연합의 긴급 요청에 따라 이탈리아와 스위스 부근에서 인력 충원이 논의되었고,
인식의 문의 그림자가 폭발적으로 번지는 상황 속에서 비능력자인 이 주세페 로시가 거론된 것이다.

이 인사에는 히카르도 바레타의 영향력이 있었다고 했다. 히카르도는 이번 임무가 단순한 길잡이 역할이 아닌,
수행 인원들을 끝까지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중대한 임무이며 누구보다도 내가 적임자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수행 인원의 목록을 들은 순간 나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내 작은 새, 내 천사 키아라가 이 위험한 임무에 참여하고 있었다니.
더 호라이즌이라는 곳에서 위험한 일에 더 이상 엮이지 않고 안전하게 지내는 줄 알았는데 언제 유럽에 온 건지도 모르겠다.

“주세페, 갈수록 여정은 힘들어질 겁니다.
나는 당신들이 지나간 길을 청소해서 더 이상 적이 따라붙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맡을 겁니다. 등 뒤는 걱정하지 말고 가십시오.”
“히카르도… 너는 카모라가 밉지 않은 거냐?”
“세간이 모르는 일도 있습니다. 즐겁지는 않은 일이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들입니다.”
“너에겐 미안한 마음뿐이다.”
“당신은 내게 꽤 잘해줬습니다. 고마운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그럼 상위권자로서 명하겠습니다. 출동하라.”

히카르도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고 내 어깨를 한 대 치며 돌아섰다.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되는 임무를 맡았다.

갓파더

적들의 주의를 끌지 않기 위해 너무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긋하지도 않은 속도로 이동해야 했다.
키아라에게 당장 달려가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조바심이 났지만 참아냈다.
마지막으로 접선한 헬리오스의 지원책이 프랑스의 에비앙레벵에서 문의 그림자가 나타났다는 정보를 전달했다.
지하연합 쪽의 지원으로 내가 온 것처럼 헬리오스에서도 페넘브라 리더를 한 명 지원해 준다고 했다.
에비앙레벵에 도착해 문의 그림자가 발생했다는 지역으로 이동하는데 저 멀리 배트를 든 소녀가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한눈에 알아봤다. 내 작은 장미 키아라였다. 나는 지체 없이 달려가 키아라의 전투를 도왔다. 어떤 사정이나 이유는 필요 없었다.
키아라가 하는 일을 돕고 키아라를 지킨다. 내 하나뿐인 여동생을 위해서는 목숨을 건다. 그게 전부였다.

“주세페~!!! 주세페, 너무너무 반가워, 주세페!”
“아이쿠, 우리 작은 새가 내 품에 날아오는구나. 오랜만이야 키아라.”

몇 년 만에 만나는 키아라와 얼싸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얼빠진 얼굴로 멍하니 서 있는 여자가
마음에 걸려 그만두었다. 키아라는 훌쩍 커서 내 가슴께나 겨우 오던 키가 어깨를 넘었다.
키아라는 쫄래쫄래 달려가 케니스 하트를 불러왔다.

“지하연합에서 지원해 주신다는 분이시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케니스 하트입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저도 처음 뵙겠습니다. 주세페 로시입니다.”
“우리 앞으로 가까이 지내야 할 텐데, 말씀 편하게 하시죠. 키아라의 사촌이기도 하시니까요.”

내가 키아라의 사존인게 왜 너한테 말을 편하게 하는 이유가 되나 싶었지만,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너무 말끔해서 시비를 걸 틈이 없었다.
케니스 하트는 헬리오스의 패넘 리더 보조 부대원에게 끌려갔고, 오데트라는 여자와 인사를 나눴다.
아마도 저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여자가 앞으로 뫼시고 다닐 페넘브라 리더인 모양이었다.
그럼 지금은 내 작은 새가 지저귀는 걸 독점할 수 있는 시간이란 말이지.

“키아라, 요새 야구해?”
“아니, 나 소프트볼. 처음에는 야구팀인 줄 알고 신청했는데 소프트볼 팀이라고 하네?”
“뭐, 던지고 치는 건 비슷하니까 그렇다고 치자. 그나저나 너 이렇게 위험한 임무에 자원하다니,
할아버지들이 알면 요단강 건너에서 네 이름 울부짖으실 게다.”
“몰라몰라, 자원은 모르겠고 케니스가 간다고 하니까 가는 거지.”
“으이구, 저 치가 그렇게 좋냐?”
“케니스는 진정한 리더! 란 말이야. 나는 케니스에게 꼭 인정받을 거야. 그리고 나중에 파올라랑 렉시에게 자랑할 거야.”
“걔들은 뭐하고?”
“렉시가 병원에 있어. 앞으로도 몇 달은 더 있어야 한대. 파올라는 렉시와 다른 리그 애들 지켜야 한다고 못 움직인대.”

드물게 시무룩한 목소리였다. 키아라에게도 친구란 게 생겼구나. 비록 병원에 누워 있는 친구긴 하지만
친구에게 자랑할 생각까지 하는 게 기특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너 어디로 가는지는 알아?”
“몰라, 케니스 따라가는 거지 뭐. 아, 그리고 나 더 호라이즌에 탈퇴 신청서 냈어.”

답 없다, 답 없어. 뭘 하는지도 몰라, 어딜 가는지도 몰라. 탈퇴 신청서는 제대로 쓰긴 한 걸까.
그저 케니스만 바라보고 따라가는 녀석을 어찌한단 말인가. 따라다니면서 지켜줘야지. 오데트 앞에서 뭔가를 맹세하는 케니스를 보니
저 진중한 녀석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게 바로 키아라 같은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믿어주고, 따라주는 사람이 있어서 완성되는 리더의 모습이 얼핏 보였거든.

뭐 어쩌겠어. 내 우상 라파엘레 삼촌의 딸, 내 소중한 여동생이 이 여정의 끝에 닿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지.
나는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었던 카모라의 문장을 꺼냈다. 버리지 못하고 항상 가지고 있었던 가족의 상징에 대고 나는 맹세했다.
내 가족을 지키겠다, 내 동생을 위해 목숨을 걸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