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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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8 08:5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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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붕주의=
그러니까 가끔 그럴 때가 있잖아? 앞뒤 벌어지는 일을 모르고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의 순간만 보면 오해할 수도 있는 그런 상황 말이다. 사람들은 트리비아의 표정이 차갑고 변화가 없다고들 하지만 사실 눈빛으로 백마디 말보다 더한 말을 할 수 있는 여자라는 걸 잘 아는 루이스는, 그 때 그 눈빛이 지극한 경멸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자랑은 아니겠지만 그런 눈빛을 한두 번 받아본 것이 아니니까 확실하다고 장담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말똥 같은 계집애 때문에…… “와우, 저 사람이 그 트리비아? 엄청나네요.” 엄청난 여자라는 건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아, 내가 제일 잘 안 다고. 이제 난 그 엄청난 여자한테 엄청나게 까일 거니까 넌 좀 엄청나게 닥치고 있지 그래? “음, 지금 이 상황을 오해하시는 건 아니겠죠? 그러니까…… 아, 근데 치마는 언제까지 들추고 있을 건데요?” “……들추고 있지 않았어.” “지금 잡고 있잖아요?” “그래, 이건 잡고 있는 거지. 들추고 있는 게 아니라, 말ㄸ.. 아니 스미스 양.” 루이스는 애써 미소를 지어보았지만 입 꼬리가 떨리는 걸 스스로가 느낄 정도였으니 상대방 눈에 그 얼굴이 어떻게 보였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클레어는 뭔가 더 대거리하려다가 방금 전 트리비아를 만난 일이 떠올랐는지 애써 참는 기색이었다. 그새 루이스 손에서 구겨진 치마를 펴며 입술을 삐죽이는 것조차 작은 새와 같이 어여뻤지만 루이스는 손끝에서 피어나는 냉기를 추스를 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눈 앞의 이 작은 여자애를 한 대 칠 것 같았으니까.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아저씨 같이 굴래요? 왜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시비를 걸고 그래요?” 같은 게 아니라 지금도 한 대 칠 거 같으니까 그냥 좀 가라, 제발.
2차 능력자 전쟁의 영웅, 연합의 루이스를 수식하는 말은 그걸로도 충분했다. 3급 능력자였던 그가 앤지 헌트를 만나 겪었던 일들은 능력자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까지 화제가 되어 시중에는 앤지 헌트의 수기 『젊은 영웅』 말고도 『능력자 루이스』, 『루이스 사가』, 『결정 능력자의 손은 뜨거웠다』, 『연합의 영웅과 나』 등 장르를 불문한 소설까지 불티나게 팔릴 정도였다. 사실 서점 베스트셀러 칸에 있는 『젊은 영웅』을 볼 때마다 루이스는 낯이 뜨거워 브라질까지 갈 기세로 땅만 쳐다보고는 했다. 하지만 이건 돈이 됩니다, 라는 토니 리켓의 예상은 틀린 적이 없었고 연합의 주 수입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쏠쏠한 매상을 올리고 있다고 하니 차마 집어치우라는 말을 하지 못한 게 그저 한이 될 뿐이었다. 아, 앤지…… 앤지의 말간 미소를 떠올리니 다시 열이 뻗쳐 오른다. 하지만 스노우퀸 또는 화이트퀸으로 불리는 앤지 헌트는 아주 아름다운 여자였다. 루이스는 앤지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다.
“너무 밝아.” 햇살이 가득한 마르세유는 너무 밝고, 불편했다. 쫓기는 상황에서 낯선 골목길을 이리저리 가로질러 앤지의 클럽을 찾으니 마음은 점점 다급해졌고 하도 많이 펼쳐 봐서 가운데가 닳아 버린 작은 종이에 적힌 글자는 이제 잘 보이지도 않아 짜증이 치밀었다. 애초에 어린 시절 잠깐 알고 지냈던 브랜다가 토니의 지령을 가지고 왔다는 사실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은 찾는 사람 없이 마치 매대 밑 선반의 재고 서적처럼 살았는데 브랜다는 제일 잘 보이는 매대 위 베스트셀러 같아 보였다. 한 때 루이스가 내미는 꽃다발을 수줍게 받아주던 브랜다였기 때문에 루이스는 더한 자괴감을 느꼈다. 터커인지 덩어리인지 하는 녀석은 파리에서 마르세유로 오는 기차에서 내내 불평불만만 가득했는데 그야말로 삼류인생에 걸맞은 삼류 대사들이어서 루이스는 그와 함께 조를 짠 토니- 그 때는 얼굴도 몰랐던 토니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러다가도 또 자신이 터커와 얼마나 다른지 생각해보면 그다지 말할 것이 없는 터라 또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까 그 때의 루이스는 그냥 평범한 20대 청년이었다. 항상 화가 나 있었다. 온 세상이 가진 것 없는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았고 기댈 곳 없는 그를 기만하는 것 같았다. 딱히 하고 싶은 일은 없었지만 지금 하는 일은 하찮았고 어떻게 되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각박한 삶이었지만 어쨌건 지금 이 순간이 싫었다. 어떤 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세상에 대한 불만 그리고 거기서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한 자신에 대한 환멸이 매 순간 루이스를 미치게 만들었다. 이 곳이 아니라면 어디든 좋았다. 떠나고 싶었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자기 자신이 오히려 짐이 되어,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댈 뿐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사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마침내 골목 한 구석에서 종이에 적힌 것과 비슷한 흘림체 간판을 발견한 루이스는 울화를 삭이며 삐그덕 소리가 나는 낡은 계단을 밟아 지하로 내려갔다. 피아노와 노래,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섞이고 뭉쳐 그 안에 고여 있다가 루이스가 살짝 당긴 문 틈으로 흘러 나왔다.
“…… 짓밟는 거짓말……차고 기울 뿐……” 그것은 생소했고, 의미도 알 수 없는 소리였지만 루이스는 왠지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엉킨 실타래처럼 뒤섞여 있던 소리가 차츰 풀려 점점 명확해졌다. 그리고 루이스는 그 소리의 끝에 있던 무대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앤지 헌트를 보았다. 어두운 조명과 녹아 내리는 피아노, 늘어지는 색소폰, 담배인지 아니면 무엇일지 모를 연기가 가득한 실내는 서점 밖으로 항상 보던 런던 하늘과 같았다. 런던에서는 그 하늘이 그렇게 답답하고 싫었는데 조명 가운데 서서 스탠딩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는 앤지 헌트는 짜증나는 일상이 아니었다. 루이스는 저 곳, 그러니까 앤지 헌트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감정이 너무 낯설어 바로 달려갈 수가 없을 정도였다.
물론 좋았던 것은 그 때뿐이었다. 루이스가 그의 인생 처음으로 영혼에서 울리는 소명을 받아들이는 바로 그 순간에 뒤늦게 도착한 터커는 즉시 무대에 난입해서 앤지 헌트를 어깨에 둘러메고 뛰쳐나가 작은 가게를 멋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를 듣고서야 현실로 돌아온 루이스는 다시 한 번 터커의 등 뒤로 이를 갈며 브랜다와 함께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첫 인상을 그렇게 뚫었는데 그 뒤로 사이가 좋았을 리 없다. 브랜다가 토니의 지령을 보여주며 아무리 좋게 설득하려 해도 앤지 헌트는 남부의 항구 도시 마르세유에 헛 산 게 아니라는 걸 20분쯤 독창적인 욕과 비아냥으로 증명했다. 심지어 앤지 헌트는 자신의 친 아버지가 흑염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고 연락 한 번 없었던 자신의 친 아버지를 굉장히 미워하고 있었으며 삼십삼류 정도 되는 능력자 애인과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여러 모로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탈리아로 넘어와 오스트리아, 벨기에를 거쳐 스위스의 아이거 산까지 유럽을 일주하며 루이스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루이스가 스스로에게 가장 놀랐던 점은 터커와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루이스의 전투력 성장에 주목했다. 오스트리아에서 벨져 홀든을 꺾으며 루이스의 이름은 이미 전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홀든의 삼형제는 누구에게 물어도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로 꼽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고 루이스는 그 중에서도 가장 오만하고 빠른 벨져 홀든을 무릎 꿇린 몇 안 되는 남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 동안 앤지 헌트를 믿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을 낯설어 하던 루이스도 완전히 적응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앤지 헌트에게 걸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안정감을 주는 것인지 미처 몰랐다. 앤지 헌트는 루이스에게 마음을 다 보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어 주었고 누이이자 부모, 스승이자 보스, 그리고 친구였다.
매 순간이 위기였지만 가장 큰 위기는 역시 앤트워프였다. 앤트워프에서의 마지막 기억은 그 붉은 눈동자였다. 불의 마녀에게 맞았던 순간을 떠올리면 루이스는 언제라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래, 서, 뭐, 어쩌라고?’ 라며 손가락을 딱딱 치며 자신을 바라 보던 붉은 눈동자는 한동안 꿈에도 나올 정도였는데, 루이스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공성전에서 그 불의 마녀를 후려치기 전까지는 꿈 속에서도 딱 네 대씩 맞았다. 그 때 의식이 끊어지며 루이스는 그대로 쓰러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성도 함께 끊어진 기억에 없는 그 순간 트리비아에게 매달렸다. 더 이상 전력이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한 루이스를 두고 날아 오르려는 트리비아의 허리춤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계획대로 불의 마녀를 폭주 시키고 앤트워프로 거대한 유성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이는 상황이어서 트리비아는 루이스를 떨궈내는 대신 함께 날아 올랐다고 했다. 트리비아는 그 순간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 때 날 붙잡지만 않았어도, 어휴, 죽게 내버려 둘걸, 그럼 내가 너한테 미안할 일이 단 한 순간은 있었을 거 아냐!’ 하며 싸울 때마다 그 때 일을 끄집어내며 욕했다. 물론 루이스는 그 때마다 기억에 없는 그 때의 루이스를 칭찬했다. 잘 했어, 나 녀석아. 트리비아가 가끔 기분이 좋을 때에는 그 때 트리비아를 붙잡고 피를 토하듯 절대 놓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말하는 모습이 멋있었다고 말해주었다. 기분이 나쁠 때에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피 칠갑을 하고 매달리는 꼴이 불쾌하고 기분 나빴다고도 했지만 이렇게 사귀고 있는 걸 보면 그 때에는 멋있었던 게 맞았나 보다. 정신을 잃기 전 루이스는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앤지 헌트가 아이거 산으로 간다는 말을 들었다. 어떻게든 그 곳에 가야만 했다. 트리비아를 놓을 수 없었다. 루이스가 정신을 차린 건 하늘 위에서였다. 하늘이 하도 붉어 아직도 앤트워프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노을이었다. 트리비아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아이거 산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날개는 떨리고 있었지만 아이거 산으로 향하는 트리비아의 기세는 거침 없었다. 루이스는 트리비아를 놓지 못했고 트리비아는 루이스를 놓지 않았다. 그 때 루이스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뒤로는 모두가 아는 대로였다. 루이스는 죽기 직전까지 가서 결국 살아남았고 어떻게든 앤지 헌트의 곁을 지켰다. 사람들은 그를 영웅이라고 부르며 우러러 보기 시작했고 루이스는 좀 더 신중하고 진중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고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루이스는 그저 묵묵히 받아들였다. 영웅이 필요한 시기였다. 사람들 앞에 뛰어들어 ‘아무도 죽게 하지 않겠어!’ 라며 외치는 쇼를 할 때 느끼는 부끄러움은 루이스가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시절에 느꼈던 환멸과 자괴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영웅이었다.
본이 되어야 한다,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런 강박이 루이스에게 그런 말을 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어린 시절의 경솔함이 다시 기어 올라와 루이스를 홀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건 간에 루이스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스미스 양, 치마가 너무 짧군.”
루이스는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점잔 떨며 말하는 자기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칠 자신이 있었다. 왜 그랬을까? 십대 소녀의 치마 길이를 지적하는 말 따위를 입 밖에 내기에 루이스는 너무 어려 자제력이 없거나 너무 나이 들어 배려심이 없을 나이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후에 이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타라가 진심으로 어이가 없다며 루이스를 비웃을 줄 알았더라면 혀를 깨무는 한이 있어도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이었다.
“저기, 뭐라고요?” “스미스 양, 미국에서 응원단 생활을 했다고 듣기는 했는데. 하지만 일상 생활을 하기에는 그 옷이 좀……” “좀? 좀 뭐요? 일상 생활 잘 하고 있는데요? 좀 어떻다는 건데요?” “짧다는 거지.” “어머, 저한테 치마 사주신 적 있으세요? 제가 사주신 치마 잘라 입기라도 했나요? 멀쩡한 치마 멀쩡히 잘 입고 있는데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미국에서는 누구도 그런 거 가지고 말하지 않아요!” “여긴 미국이 아니잖아.” “전 당신 딸이 아니고요.” 미국에서 왔다는 십대 소녀는 2차 능력자 전쟁의 영웅 앞에서도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주근깨가 앉은 콧잔등을 찌푸리며 턱은 당기고 눈을 치켜 뜨는 모양새가 듣던 대로 아주 사랑스러운 소녀였다.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받아 치는 대거리도 아주 일품이었다. 루이스는 순간 오른 손의 온도가 내려가는 것 같아 손을 말아 쥐었다. 하마터면 결정검으로 칠 뻔 했잖아. 루이스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하, 어린 친구가 아직 잘 모르나 본데 세상엔 아주 나쁜 사람들도 있거든? 스미스 양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그렇게 짧은 ……” “아, 진짜!”
그 순간 클레어 스미스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홀든의 차남이었어도 이보다 빠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루이스는 처음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속!바!지! 입었거든요?!” 클레어는 모처럼 안개가 옅어 햇살이 따사로운 오후 2시 사람이 가장 많은 코어 레너드 광장에서 분홍 도트 무늬 속바지의 존재를 인증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루이스 앞에서 치마를 들추어야 했다. “.. 무.. 뭐.. 무슨!” 루이스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른 속도로 클레어의 치마를 잡아 내렸다. 너무 잡아 당긴 바람에 클레어가 되려 치마 허리를 잡아 올려야 할 정도였다. 작은 비명과 함께 클레어가 치마를 움켜 쥐었는데, 그 때 마침 트리비아가 연합 건물 입구에서 그림자를 열고 나왔던 것이다. 트리비아는 반쯤 나왔던 몸을 다시 그림자 안으로 넣으며 루이스를 흘겨 보았다. 분명 그 눈은 ‘그 때 날 붙잡지만 않았어도, 어휴, 죽게 내버려 둘걸, 그럼 내가 이렇게 부끄러울 일은 없을 거 아냐!’라고 말하고 있었다. 전후 사정을 몰랐다고 해도 대낮에 여고생 치마를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이었고, 전후 사정을 알았다면 어디서 꼰대 같은 소리를 지껄이냐고 더욱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저, 괜찮으세요?” 클레어는 구겨진 치마를 팡팡 치며 조심조심 루이스를 올려 보았다. 2차 능력자 전쟁의 영웅에게 새로운 별명을 지어주게 되었으니 눈치를 볼 법도 했다. 루이스는 필사적으로 토니의 잔소리를 주문처럼 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 미안하게 되었어.” “아뇨, 제가…… 음, 그러니까, 아이 참, 그러니까 왜……!” “스미스 양.” “네, 네!” 루이스는 클레어를 바라보며 토마스를 떠올렸다. 루이스의 활약상을 듣고 대서양을 건너 온 토마스 스티븐슨은 아주 착하고 붙임성이 좋았다. 그는 루이스를 만나고 딱 3일만에 다시 캐나다로 가는 표를 끊겠다고 앤지 헌트와 진지한 상담을 했을 정도로 루이스와 친하게 지냈다. 그래, 그러니까 오늘은 토마스를 후려 패.. 아니 함께 연습실에 가야겠구나. “한동안 내 눈에 띄지.. 아니 한동안은 얽히지 않는 게 좋겠어.” “아, 네. 네.” “그럼 이만. 들어가 볼게.” “네, 네!” 토끼 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루이스의 얼굴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클레어는 정말 사랑스럽고 귀여웠지만 루이스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루이스는 그대로 몸을 돌려 연합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햇살이 가득한 코어 레너드는 너무 밝고, 불편했다. 연합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은 눈 감고도 갈 수 있을 정도로 익숙했고 지금 느끼는 감정도 익숙해서 불쾌했다. 영웅이랍시고 있는 체 잰 체 했는데 루이스 앞머리가 길어 건방져 보인다던 런던 뒷골목 정육점 주인과 다를 게 없어서 루이스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누가 볼까 걸음이 빨라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디 사무실 구석이나 창고에 들어가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어머, 루이.” 사무실 앞에서 눈을 가늘게 뜨며 반갑게 미소 짓는 앤지 헌트를 보니 또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루이, 여자친구가 연상이라서 힘들었다면서요?” “그건 무슨 개소…… 아니, 그만 해.” “그 연상의 여자친구가 방금 나한테 푸념을 늘어놓고 갔는걸요. 자기 좋다고 쫓아 다닐 땐 언제고 역시 루이도 남자라고 어린 여자가 좋다고 매달리고 있었다면서요?” 와, 지금 그 짧은 순간에 거기 말하고 갔어, 그 여자가? 루이스가 황망함에 말을 잇지 못하자 앤지 헌트는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루이스의 양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루이, 아무리 그래도 십대는 너무하잖아요. 그건 안 돼요, 알았죠?” “아, 좀! 닥쳐, 진짜!!”
그러니까 결국 루이스는 그냥 평범한 20대 청년이었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았다. 다만, 이 순간만큼은 도망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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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제 루이스는 이렇습니다..
헤헤 급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