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벤트]세상에 두명의 사람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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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3 07:03:20
읽기 전 주의사항
인물의 심리나 상황에 대해서 창작적 요소가 많기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다르거나 상식에 어긋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마음 넓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
호라이즌의 모두. 재뉴어리, 멜빈, 헨리, 라이언, 리사, 리첼은 멜빈
의 연구실 한켠에 모여있었다.
모두가 앉아있는 가운데 재뉴어리만이 서서 활기를 띄고 말했다.
"나는 세상에는 두명의 사람만이 존재하는게 아닐까 생각해."
뜬구름 잡는 얘기에 헨리가 물었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야?"
"맞아.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눈을 빛내는 재뉴어리에게 헨리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네가 지금 손에 쥐고있는 책을 봐. 성서잖아."
그러자 재뉴어리는 실망한 투로 투덜댔다.
"아-. 요즘 너무 라이언에 익숙해졌나봐."
갑자기 호명된 라이언이 순진한 얼굴로 재뉴어리에게 물었다.
"응? 나? 왜?"
재뉴어리는 다소 짖궂게 웃으며 라이언에게 대답했다.
"라이언은 헨리같은 잔꾀를 쓰지 말았으면 하는거야."
라이언은 해맑게 대답했다.
"그것이 재뉴어리가 바라는 일이라면 그렇게 할게."
헨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잠깐의 침묵이
흐르자 리첼이 물었다.
"그래서 두명의 사람이라니? 나는 종교같은거 잘 몰라."
"죄를 짓는 사람과 그 죄로 인해 희생양이 되는 사람. 멜빈은 어
떻게 생각해?"
멜빈은 재뉴어리에게 눈을 마주치지 않고 무관심하게 대답했다.
"어떻게라니? 내 역할은 그쪽이 아니야."
그 냉담함에 익숙해져 있는지 재뉴어리는 신경쓰지 않고 라이언에
게 질문을 돌렸다.
"딱딱하기는. 라이언은?"
"음.. 셋째 아들인 세트도 넣어야 하지 않을까?"
"으음. 훌륭한 지적이야....하지만.. 하지만 말이지.."
재뉴어리는 손에 쥐고있던 성서를 뒤적이더니 한 페이지를 라이언
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자 여기하고 여기. 이브는 세트를 아벨을 대신해서 신이 준 아들로
생각하고 있어. 그렇다면 세트는 아벨의 역할을 물려받았다는 소리야.
라이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벨과 세트는 같은 상징이라고 봐도 되겠구나."
"그래. 별다른 얘기가 없는걸 보면 세트 본인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
했던 모양이야."
신나서 떠드는 재뉴어리에게 라이언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조금 외로운 이야기인걸. 세트가 만약 사랑하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서 죽은 둘째형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재뉴어리는 입에 미소를 잊지않고 라이언의 말에 응수했다.
"그만큼 어머니를 사랑했던것이 아닐까? 자기 자신을 알아봐 주지
못해도 말야. 어머니에 대한 서운함보다 사랑이 더 컸던거겠지."
라이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해할 수 있을것같아. 사람의 마음은 보다 빛나는 것을 갈망하기
마련이니까."
대화하는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리사가 옆에 있는 리첼에게 뭐
라고 말하자 리첼은 알았다는듯 리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런데말야. 세트 본인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은 세트를 사랑
한것이 아니라 아벨을 사랑한거잖아? 어째서 세트는 그 거짓을 받
아들였던거지?"
재뉴어리가 대답했다.
"물론 이것은 누군가의 기록일뿐이고 사실 그 자체는 아니니까
세트가 어머니가 부여한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
을 했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쓰여있지 않아. 하지만 나는 그
거짓의 사랑을 세트가 받아들였다고 생각해. 이것은 물론 그렇
게 생각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싶다는 뜻이야."
리첼의 뒤에 있던 리사는 재뉴어리를 향해 반쯤 몸을 내밀어 조
용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비명을 지르듯이 물었다.
"이상해. 왜 그렇게 믿고싶어하는거야? 이해할 수 없어."
재뉴어리가 속으로 말을 고르고 있을 동안 라이언이 그녀에게
다가가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믿는거야. 언젠가는 나의 마음이 상대에게 도달할거라고."
"어째서 믿는거야?"
"믿어야만 앞으로 갈 수 있으니까. 나의 이야기를 해도 될까?"
"..."
잠깐의 침묵에 리첼이 끼어들었다.
"저기 라이언. 오늘은 언니가 조금..."
"잠깐이라면 들어줄게."
"...어?"
리첼은 조금 당황하며 리사를 보았다. 리사는 라이언을 노려보며
한 톤 높여 힘주어 말했다.
"오늘 나는 건강해."
평소와 다른 강경한 태도에 리첼은 다소 서운하달까 씁쓸하달까
그렇지만 역시 어쩔수없달까 하는 태도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보고 헨리가 옆의 멜빈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순진했던 첫째딸의 첫 사춘기와 반항을 겪은 엄마같지않아?"
멜빈은 관심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그럴지도."
재뉴어리는 말없이 라이언에게 차례를 넘겼고 라이언은 말을
시작했다.
"나에게는 나보다 7살 많은 형이 있어. 형은 정말로 멋졌어. 그리
고 강했어. 하늘같던 아버지에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했고 받아들
여지지 않자 망설임없이 집을 나와 자신의 길을 걸었지. 나는말야
여전히 형을 동경하고 있어. 동경한다는것은 또한 전부는 이해하
지 못한다는거야. 전부 이해한다면 그것은 동등이 되어야 하니까."
"...."
"나의 몸은 천천히 능력에 삼켜지고 있어. 여기있는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죽음에 다가가고 있지. 그렇게 되어서야 나는 절대로
형처럼은 될 수 없다는것을 깨달았어. 형은 모두를 지키기 위해
서 능력을 사용했지만 나는 모두를 이기기 위해서 능력을 사용
했으니까. 부모님은 그것이 단순한 사고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렇게 받아들일 수 없어. 나는 형을 동경하고 있으니까."
"어째서?"
"부모님의 말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형을 동경할수가 없게 되어
버리니까."
"어째서?"
"자격의 문제야. 어쩌면 내가 상상하는 형의 모습이란 그저 허
상일지도 몰라. 형은 그렇게 완벽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을지도
몰라. 그러나 내 마음속에 품었던 형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나 다워질 수 있었어. 그렇기 때문에 편안하고 쉬운 길을
택하는 순간 나란 사람은 없어져버리고 마는거야."
"그렇게 생각해면서 왜 재뉴어리가 바라는 세트를 받아들여?
왜 어머니의 아벨이 되지 않고 재뉴어리의 세트가 되어버린거야?"
"아픈곳을 찌르네... 음..."
라이언은 잠깐 재뉴어리의 눈치를 살피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나는 재뉴어리를 좋아하니까?"
"...."
"그렇게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면 곤란한데.."
어쩔줄 몰라하는 라이언에게 리사는 고개를 한쪽으로 돌린 채
불평하듯이 대답했다.
"어이가 없는거야."
라이언은 조심스레 리사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그렇구나..."
두 사람을 지켜보던 재뉴어리가 손뼉을 치며 주의를 모았다.
"자. 그렇다면 이야기를 진행해볼까. '세상에 있는 두 사람'에 대해."
리사는 아주 잠깐 재뉴어리에게 의미모를 시선을 던지고 다시 리첼
의 등뒤로 숨어버렸다.
"죄를 짓는 사람과 죄에 희생당하는 사람. 라이언이 좀 쉴 수 있게
헨리에게 부탁해볼까하는데."
헨리는 몸을 일으켜 재뉴어리에게 공손히 인사하며 말했다.
"3월의 라즈베리인 당신께서 말씀하신다면야."
재뉴어리는 살짝 콧웃음치며 대답했다.
"지금은 4월이지만 말이지."
짖궂은 대답에 응수하지 않고 헨리는 말을 시작했다.
"흥미로운 얘기이긴 해. 원죄란 인간의 욕망 그 자체이고 그 근본적
인 힘은 사회를 좋은쪽이든 나쁜쪽이든 변화시킬 가능성을 내포하니
까. 사회란 개인의 총체라기보단 고안과 구성의 결과물에 가까운데
다가 사회를 유지시키는 법이란 인간을 지키는 비인간이니까."
재뉴어리는 박수를 치며 말했다.
"꽤나 냉철한 분석이잖아."
"칭찬 감사합니다. 교수님."
"너 이래놓고 여동생한테는 사족을 못쓴다며?"
"그야 캐럴은 너처럼 머리굴리지는 않으니까."
"흐-응? 모르지. 네가 나한테 잘해준다면 나도 캐럴처럼 순진해질지도."
"그래도 우리 모임에서 딴죽거는 사람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아... 그건 조금 뼈아프네. 너무 능력중심으로 캐스팅해버린걸까."
"우리들만큼 속이 깊은 애들이 어디 있다고 그래?"
"그렇네. 그걸 말로 하지 않는편이 더 아름다웠겠지만 말이야."
"입 밖으로 내어야만 비로소 형태를 가지는것들이 있다고."
"그게 여동생바보의 핑계인거야?"
언제끝날지 모르는 핑퐁 사이로 멜빈의 조수로봇 제피가 끼어들어
경고음을 냈다. 스크린에는 붉은색 X표시가 깜빡이고 있었다. 멈칫
한 두 사람에게 멜빈이 지나가듯이 말했다.
"데이트는 다들 돌아가고 나서든 해."
라이언이 거들었다.
"방금 차여놓고 이런 말 하기는 민망하지만 옆으로 새는것같아서."
재뉴어리가 안경을 고쳐쓰며 말했다.
"호감도 점수가 라이언이 5점만점에 4점이라면 헨리는 1점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헨리도 지지않고 말했다.
"솔직히 나는 재뉴어리보다는 라이언이 걱정이니까. 재뉴어리는 캘
리포니아 사막 가운데에 떨어뜨려 놔도 멀쩡하게 돌아올것같은 캐
릭터잖아?"
멜빈이 나지막히 말했다.
"계속할거라면 난 들어갈거야."
"....."
"....."
리사가 리첼의 뒤에서 말했다.
"나도... 아니 우리도 갈거야."
재뉴어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았어. 미안해. 평소에 영감님들만 상대하다보니 괜히 불타올랐
지 뭐야. 영감님들은 짧고 명확한거만 듣거든."
헨리도 미안해하며 모두에게 사과했다.
"호적수라는거 생각보다 없거든.. 미안해 모두."
멜빈은 한숨을 쉬며 노트북을 꺼내 두드리기 시작했고 리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리첼의 뒤에서. 리첼이 한마디 했다.
"다른 사람 배려를 해줬으면 좋겠어."
재뉴어리가 양 손을 가슴 앞에 기도하듯 모으며 말했다.
"미안미안.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까~"
그 말에 방의 온도가 2~3도는 내려간 느낌이 들었다. 라이언이 보기엔.
"어.. 우린 말이지. 곧 여행을 떠나게 될거야. 어디냐고? 콜로라도. 다들
짐 챙길 준비는 됐어?"
라이언은 아까보다 더 추워진것같은 온도에 괜시리 팔짱을 꼈다. 4월이
이렇게 춥던가? 아니면 에어컨 온도의 설정이 잘못되어있는것일까? 라
이언은 참 이상도 하다고 생각하며 재뉴어리의 석류처럼 아름다운 눈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