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풍우 치는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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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6 15: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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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실제 세계관과는 전혀 다른 일종의 설정임을 밝힙니다. ( 회색은 과거 )
스압. 시점혼용. 급전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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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마를렌이다. 둘은 한 살 차이 밖에 나지 않지만, 샬럿에게 마를렌은 언니이자 친구 그리고 엄마인 것 같다.
회사 소속 사람들에 의하면 샬럿은 아직 회사에 어떤 소속감도 없으며 명왕 또한 그녀에게 별다른 애정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샬럿은 언제든지 회사를 떠날 수 있을 것이다.
- 샬럿의 관계 칼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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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름이 짙게 끼었다. 작은 소녀의 손이 움직이는 동안 비는 점점 더 거세지고 불어났다. 전보다도 더 강한 비바람이 불었다. 이제는 일대가 물바다가 되어도 아무도 그녀를 막을 수 없다.
그녀의 이름은 샬럿이다.
" 어린 아이야. 너는 축복받았단다. "
검은색 손톱이 눈에 띄는 한 남자의 손길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천천히 , 아주 천천히 쓰다듬었다. 어린 소녀는 그것에 익숙해진다는 듯이 눈이 감겼다. 곧 소녀는 사람들이 모인 단상 위의 제물이 되었고, 소녀는 다시 태어났다. 모든 것이 끝났을때 감겼던 눈이 다시 뜨였다. 그 소녀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다. 그런데 어쩐지 소심한 구석은 여전한 모양이다. 의식이 끝나고 난 후에도 소녀는 종종걸음으로 뒤를 따랐다. 얼굴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그 소녀를 한번 보려고 달려들었지만 소녀는 영문도 모른 채 그 남자를 따라가야했다.
" 이름이 샬럿이라고 했던가? "
남자는 또 다시 샬럿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너는 무엇의 소속도 아니였다. 오직 우리 안타리우스 만이 너를 구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너의 능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할 것이며, 우리조차 제어하기 힘들 것이다.
" 그리고 또 하나. "
남자는 민트색 입술이 귀에 걸릴 듯이 미소를 지었다.
" 너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구나. "
" .. 샬럿 ..? "
" 그래. 좋아. 이제 뭐든지 니 맘대로 해도 좋다. "
" 아저씨 이름은.. "
" 제키엘 헌팅턴. "
머리가 민트색으로 빛나는 그 남자는 사도복의 모자를 쓰고는 반대편 문으로 사라졌다. 소름 돋는 웃음소리가 소녀의 뒷목을 때렸다. 소녀는 입으로 자신의 이름을 몇 번 되뇌었다. 오랫동안 입었던 우비를 벗고 빳빳하게 다려진 안타리우스의 사도복을 입었다. 어쩐지 모습은 우비랑 별 다를게 없었다. 시커멓고 , 그 위에 금색빛으로 프린트 되어있는 무늬가 있었을 뿐. 익숙한 우산이 모자걸이에 걸려있었다.샬럿은 왠지 모르게 그 우산으로 손이 따랐다.
"..이게 좋아요.. "
샬럿은 우산을 손에 꼭 쥐고 제키엘이 나간 길을 뒤따라 나갔다.그 방에는 자신이 아끼던 개구리 가방 역시 있었지만 , 그것은 아마도 안타리우스가 소녀의 기억을 시험하기 위해 둔 것이 틀림 없을 것이다. 잔인하게도, 예상은 맞아 떨어졌고, 샬럿은 그 가방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 후일에 소녀가 이것을 기억하고 찾으러 올 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은 이 가방을 태울 것이다. 그 소녀가 영원히 찾지 못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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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샬럿이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요? "
회사에 들리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마를렌 르 블랑이다. 이 소녀는 이름 높은 의류 재벌인 르블랑 가의 하나 뿐인 딸이다. 어지간한 좋은 옷들은 이 재벌집에서 나왔음이 틀림 없다. 커다란 사고에 휘말렸을 뿐이지. 그녀는 아주 당돌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 처음으로 아꼈던 동생인 샬럿이 하루만에 모습을 감췄을 뿐. 마를렌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 미안하다 .. 마를렌.. 이건 .. "
" 됐어요 ! 저 혼자라도 찾으러 갈거에요. 샬럿이라서 다들 꺼려하는 거 잖아요? "
회사의 인원들이 입맛을 다셨다. 틀린말도 아니지만 모두가 샬럿은 착한 아이임을 알고 있었다. 그걸 듣고도 할 말이 없는지 다들 입을 닫고있었다.
" 어린아이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모두들 협조하도록. "
그녀의 편을 들어준것은 회사의 에이스, 다이무스 홀든이다. 그의 말은 곧 회사의 명령이며 모두가 지켜야 할 수칙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사실은 회사 사람들도 샬럿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도 역시 마를렌이 동경하며, 다른 의미로는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 사람은 다이무스 홀든이다.
" 고마워요. "
" 물론. "
다이무스는 굳은 얼굴을 애써 펴며 웃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금새 회사 안이 조용해졌다. 구석에선 샬럿을 찾기 위한 전단지를 마련하고 있었다. 부디 샬럿이 무사하기를 빌며 전단지를 한가득 들었다. 그 옆으로 커다란 그림자가 마를렌을 덮쳤다. 마를렌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러들었다.
" 꼬마 아가씨.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
" 윌라드 아저씨 ! "
" 나도 그 아이에게 잘못한 것이 있어서.. "
그림자의 주인은 다름아닌 윌라드였다. 윌라드는 머리를 긁적이며 마를렌이 들던 전단지의 반을 들고가 회사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는 남은 전단지를 들고 밖으로 나가 이곳저곳에 샬럿의 미소가 그려진 전단지를 붙였다. 마를렌은 전단지에 그려진 샬럿을 다시 볼 수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소식이 들린 것은 기대와는 다른 방향이였다.
" 최근 들어서 전장에 안타리우스의 출몰이 잦아졌단 것을 다들 알고있나? 안개가 그쪽으로 몰리고 있어. 그에 따른 피해도 막대해. "
다이무스가 들고 있는 서류의 빨간 줄이 점점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 그리고 , 샬럿으로 추정되는 물능력자가 한 건 하고있다고 하더군. "
마를렌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이 핑글 돌았다. 결국 샬럿이 잡혀간 것일까? 어른들에게 듣기론 그 곳은 매우 위험한 곳이라고 했었다. 혹여나 샬럿이 잘못되었다면..
" .. 제가 나갈께요. "
" 괜찮겠니 ? "
" 제가 아니면 , 누가 찾으러 가겠어요. "
곧 마를렌을 중심으로 타라, 드렉슬러 ,윌라드가 뒤를 따랐다. 남은 한사람의 자리는 샬럿의 자리이다. 꼭 샬럿을 데리고 오겠다는 각오 같은 것이였다. 그 어느때 보다도 짙은 구름이 끼고 , 세찬 비가 내리던 전장에서 , 마를렌은 샬럿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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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해요. "
샬럿의 우산이 피로 젖어있었다. 발 밑에는 누군지 모를 사람의 시체가 있었다. 샬럿은 마치 죽은 사람을 애도하듯 그 위에 비를 뿌렸다. 타워는 부서지다 못해 불이 붙어 녹아내릴 듯 타고있었다. 적군은 전멸했는지 더 이상 샬럿을 상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소녀는 그저 교주가 시킨 일을 하고 있는 것 뿐이다.
".. 샬럿? "
중앙타워 근처에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형체도 흐릿하게 나마 보인다. 샬럿은 머리가 터질 듯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샬럿은 자신에게 무언가 상당히 위험한 일이 생겼다고 느꼈다.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 하자 멀리서 양갈래 머리의 또래로 보이는 소녀가 천천히 다가왔다.
" 나 모르겠어 , 샬럿? "
" 저리가.. 저리가..!! "
" 샬럿양, 내 말 들리나? 제발 .. 우리가 잘못했으니 돌아와주게. "
샬럿의 앞에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여태껏 유지하던 평정심이 무너지려했다 . 샬럿은 급하게 폭풍우를 뿌리고는 자리를 떠났다 . 그러나 소녀의 눈앞에는 양갈래에 묶인 리본이 일렁거렸다. 기억은 나지 않는데 , 너무나도 어지러웠다. 안타리우스로 돌아가는 도중, 샬럿은 그 어지러움에 쓰러졌다. 쓰러진 샬럿을 들고 간 것은 다름 아닌 제키엘이였다.
" 어린 양, 무슨일이 있었는지 다 말해줘야 할 것 같구나. "
제키엘의 소근거림이 샬럿에게 들렸을지는 모른다. 제키엘 품에 들려있는 샬럿의 숨은 간신히 쌔근쌔근 거리고 있었다.
눈을 뜬 것은 조명이 은은한 교주실이였다. 소파가 푹신해서 잠이 몰려올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자 아무도 없었다. 중간에 쓰러져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하면 안될 것 같다. 잠시 기다리자 문을 열고 제키엘이 들어왔다.
" 무슨 일이 있었지? "
" 저.. 그게.. "
샬럿은 힘겹게 기억을 쥐어짰다. 그제서야 조금씩 어제 듣던 목소리가 들렸다. 아른거리던 리본의 색도 기억이 났다. 제키엘은 천천히 샬럿에게 가까이 앉았다. 불안감이 커졌다.
" 거기서.. 저랑 비슷한 여자애를 봤어요.. 머리는 양갈래고... "
" 아무것도 아니다. 너는 니 일에만 신경쓰면 돼. "
" ..네. "
제키엘은 입맛을 다시며 샬럿이 말한 사람을 떠올렸다. 분명 같은 물능력자인 , 마를렌 르 블랑이 아닐까 하고. 어렵게 찾은 , 언제든지 조직적인 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이를 얻었는데 말이지. 그렇다면 르 블랑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제키엘이 떠난 자리에는 또 다시 샬럿만 우두커니 남았다. 알 수없는 불길함과 함께다. 교주실을 나와서 또 다시 전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수도 없이 건물을 부수고 사람을 죽이면, 그제서야 칭찬을 들을 수 있다. 피 묻은 우산을 물로 씻어내고는 아무일도 없었단 듯 우산을 펼쳤다.
" 저랑 마주친 것을 불행이라고 여겨주세요.. "
고작 10살밖에 안된 어린아이가 불행이라는 단어를 기억한 것은 소녀가 회사에 들어오기 전 이었다. 모두가 샬럿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불행한 아이, 버림받은 아이, 가까이 하면 안된다는 말을 끊임 없이 들었다. 지금의 샬럿은 그 때의 기억은 없지만 그 단어는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샬럿의 손끝에서 오늘도 사람들이 죽어갔다. 샬럿이 부수고 부술수록 , 안타리우스에 돌아가는 힘은 계속해서 커져갔다.
그렇지만, 소녀는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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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회사의 짐덩어리였다.
어디에서도, 아무도 샬럿을 봐주지 않았다.
처음엔 마를렌 만이 샬럿을 챙기고 돌보았다.
" 마를렌 , 그 아이를 왜그렇게 챙기는 거니? "
" 그렇게 말하지마세요! 샬럿은 제 하나뿐인 동생이라구요. "
마를렌은 이를 뿌득 갈았다. 그저 능력이 미미하다는 이유만으로 샬럿은 천대를 받아왔다.
" 어이- 또 어린애를 괴롭히는거야? "
" 뭐야, 드렉슬러잖아. "
큰 창을 내려놓고는 샬럿을 번쩍 들어올렸다.몇 번 비행기를 태워주고는 내려놓았다.
" 꼬마 , 보기보다 무겁네? "
" 네..? "
샬럿의 얼굴이 붉어졌다. 드렉슬러는 마를렌 이외에 처음으로 샬럿과 친해진 유일한 회사원이였다.
" 드렉슬러 아저씨. "
" 응? 꼬마 . "
" 제가 만약 여길 떠난다면, 찾지말고 잊어주세요. "
" 무슨 말이야, 니가 여길.. "
" 그냥 농담같은거에요. 헤헤.. "
" 농담도 그런 무서운 농담 하지말라고. "
샬럿은 정말 농담이라는 것 처럼 배시시 웃었다. 그 웃음에 드렉슬러는 뒤통수를 맞았을 것이다. 샬럿은 마치 자신이 사라질 것을 알기라도 한 듯 그런 말을 남겼다. 그 상황을 윌라드는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비록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말이다. 샬럿이 남긴 말은 , 그에겐 마지막 인사 같은 것이였다.
" 샬럿은 내게 잊으라했지만, 나는 샬럿을 잊을 수 없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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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무스 아저씨.. 다이무스 아저씨..! "
다급히 달려온 마를렌은 헐떡이는 숨을 가다듬으며 사무실을 세게 두드렸다. 원래 규칙이라면 특히나 다이무스의 사무실은 살짝 들릴 정도로 두드리며 상담을 요청해야했지만, 지금은 달랐다.마를렌은 샬럿의 비를 쫄딱 맞은 채로 사무실 문앞에 엎어졌다. 안에서 서류를 검토하던 다이무스는 꽤나 놀랐을 것이다. 문을 살짝 여니 지친 얼굴의 마를렌이 보였다. 다이무스는 마를렌을 가뿐히 들고는 소파위에 앉혔다. 닦을 수건도 건네주고 , 따뜻한 우유도 가져다주었다. 에어컨의 온도를 높히고 차분히, 그리고 천천히 마를렌을 기다렸다.
".. 저는 봤어요.. "
" 흔들리는 샬럿의 눈동자를요 .. 자신을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
" 만났구나. 뭔가 다른 점은 없었니? "
" 저를 기억하지 못했어요.. 저뿐만 아니라 모두를 잊어버린 것 같아요.. "
" 그렇군. 역시 .. "
다이무스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마를렌은 이미 눈치를 챈 모양이다. 어리지만 그녀는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거의 다 알 정도니까. 마를렌은 입술을 또 다시 꾹꾹 깨물었다. 그녀에게 새로생긴 버릇인 것 같다.
" 아직 희망을 놓을 수 없어요.. 분명 그 아이가 다 잊었다고 해도 저를 보고 그런 반응을 했다는건.. 반드시 방법이 있을거에요. 그렇죠? "
" 그렇겠지. 그리고 마를렌. "
" 네? "
" 꼭 당부하는거지만, 혼자다니거나 하지마라. 항상 조심해야한다. "
" 알겠어요. 걱정마세요. "
다이무스는 마를렌의 어깨를 토닥여주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업무를 보았다.마를렌은 소파에 앉아 따뜻한 우유를 한방울도 남김없이 마시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역시 어린애들은 회복이 빠른걸까, 하고 다이무스는 생각했다. 그러나 마를렌은 달랐다. 초조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을 뿐이였다. 그녀도 결국 어린아이인 것이다. 빨리 샬럿을 찾지 않으면 큰 일이 생길 것 같았다. 그렇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 분명 샬럿을 붙잡을 수 있었을 것에도 불구하고 놓쳐버렸다. 그렇지만 데려왔다고 한들 해결방안이 있었을까? 기억을 잃은 샬럿을?
" 샬럿.. "
갑자기 가슴속이 울컥해진다. 먹었던 우유가 부글거리는 것 같다. 마를렌은 회사 밖으로 나섰다. 밖에는 약간 구름사이로 별이 박힌 하늘이 보였다. 아찔하다. 얼마 안가 인기척이 없는 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집요하게 들리는 구두소리가 귀를 어지럽게 했다.
' 항상 조심해야한다.'
그제서야 다이무스의 말이 떠올라 뒤를 돌았을때는 이미 늦었다. 옷 앞에 작게 그려진 저울 모양이 보였다.그것은 회사의 서류뭉치에서 자주 보던 문양이였다. 분명 안타리우스라고 했었던 것 같다. 굵직한 팔이 마를렌의 목을 졸랐다.
" ..!! "
너무나 쉽게 번쩍 들어올려졌다. 마를렌은 허공에 발을 흔들었다. 잡힌 목이 아니라 ,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죽기살기로 발버둥쳤다. 의식이 흐려진다.
" 거 누구야 ! "
익숙하고 큰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마를렌을 잡은 손에 힘이 순식간에 풀렸다. 마를렌은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졌고, 검은 남자는 순식간에 그늘로 모습을 감추었다. 소녀의 목에는 빨갛게 손자국이 남았다. 구해준 것은 다름아닌 드렉슬러다. 그는 마를렌을 찾아다닌다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마를렌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 ㄷ..드렉슬러 아저씨.. "
" 조심했어야지 ! "
" 죄송..해요.. "
마를렌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무엇때문에 우는 것인지 자신도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샬럿을 찾기 위해서 다친 것이 억울해서일까, 아니면 그 순간 몰려왔던 죽음의 공포였을까? 목이 심하게 부어서 이젠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진작에 다이무스 아저씨의 말을 떠올릴걸, 하고 후회했다. 그것이 끝이였으면 좋았으리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그 후로도 빈번히 마를렌을 겨냥하고 달려드는 위협에 마를렌의 정신은 점점 연약해져갔다. 항상 드렉슬러가 소녀의 곁을 지키긴 힘들었을 것이다. 이후엔 회사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안전하다고 판단될 때 까지는 회사안에서 지내기로 했다. 회사에서는 샬럿을 찾기가 더더욱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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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자주 안계시네요.. "
" 어린 양, 너는 너의 임무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니더냐? "
" 그렇지만.. "
샬럿은 머뭇거리며 제키엘에게 말을 걸었다. 제키엘은 최대한 상냥히 말하는 것 처럼 보이나 , 표정은 썩 그렇지 못했다. 샬럿은 자신이 늘 칭찬을 받으면서도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하는 일은 결코 좋지 않음을 알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도 약간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딱히 싫다고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서 리본을 한 소녀는 볼 수 없었다. 문득 그 소녀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진 샬럿은 직접 찾으러 가기로 결심했다. 들킨다면 그 댓가가 어떨지는 대충 예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 몰래 빠져나온 날이였다. 인기척이 없는 골목에서 마를렌을 목격했다. 역시나, 보자마자 손부터 조금씩 떨렸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그 소녀의 뒤로 같은 안타리우스의 교인이 나타나 마를렌을 죽이려는 것을 보았다. 놀란 샬럿은 등을 돌리고 벽에 붙어 숨을 가늘게 쉬었다. 누가 들을까봐 싶어서, 아주 조심스럽게 숨을 고르었다. 다시 마를렌을 보려 등을 돌렸을땐 , 목이 졸린채로 다리를 휘젓는 끔찍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곧 큰 목소리가 교인을 그늘로 쫓아냈다.
" 너는..?"
" !! "
샬럿은 놀라서 우산을 그대로 배에 꽂아버렸다. 하필이면 그 그늘이 샬럿이 있던 그늘이라니. 소녀는 놀라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 사람을 찔렀다는 죄책감이 급습했다. 그것도 잠시, 배를 움켜쥐고 쓰러지는 교인의 입을 막았다. 소리가 새어나가면 들킬 것이 뻔했기 때문에. 확실히 숨을 끊기 위해 우산을 들고 내리찍었다. 그 사이에 이미 소녀와 남자는 사라져있었다. 수상하다. 분명 샬럿은 자신이 말한 것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믿게 되었다. 교인을 끌고 갈 힘은 없어서 그 자리에 눕히고 물로 피를 지웠다.
그 후로 얼마 동안은 안타리우스로 돌아가지 않았다. 회사라는 주위를 맴돌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상하게 꼬이는 사람들이 수상해보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구해줄 상황이 되지않아 샬럿은 발만 동동 굴렸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소녀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몇 일을 해매다가 겨우 붙잡은 교인에게서 들은 말은 샬럿이 평소에 하던 말과 비슷했다.
" 시키는 일을 할 뿐.. "
" ... 그게 뭔데요 ? "
" 저 소녀를 죽여야 한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어. "
그렇게 까지 해서 자신을 은폐해야 한다는 것에 의문을 가졌다. 떠오르지 않는 기억에 대해서도 였다. 왜 이때까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샬럿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하루 빨리 마를렌이라는 소녀를 만나서 기억을 되찾아야 한다고.
몇일이 흘렀을까, 아직도 근처에는 안타리우스의 잔당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아마 저중에는 나를 찾는 사람들도 있을것이다. 시선에 띄지 않게 사도복을 벗어서 가지런히 접었다.
' 여자라면 자기 옷정도는 갤 줄 알아야지? 샬럿 ?'
' 응..! XXX언니 , 나 열심히 할께! '
순식간에 흘러간 대화가 들렸다. 환상처럼 보였던 모습은 분명히 리본을 묶은 소녀다. 이름이 들리지 않았지만, 아마 마를렌이라는 것 또한 맞을 것이다. 확신이 들었다. 오늘은 제발 나와주기를 간절히 빌었다.
" 오늘은 아저씨가 데려다주마. "
" 무서워요.. "
" 괜찮아. 나보다 쎈 놈을 아직 못봤잖아. 그치? "
새카만 밤이 되어서야 문쪽에서 말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샬럿만 들은 것은 아닐 것이다. 어느새 비가 추적추적 땅을 더럽혀갔다. 그것은 샬럿이 의도한 것인지, 하늘이 내린 것인지 모른다. 샬럿은 전장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내기로 결심하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 샬럿은 비를 좋아해?'
' 응! '
' 당연한 걸 물었나? 뭐, 나도 좋아하지만.'
' 언니가 비를 좋아한다면, 난 언제든지 언니를 위해 비를 그려줄께!'
' 고마워, 샬럿. '
또 다시 머리를 울리는 환상이 비쳤다. 하나 둘씩 죽었던 기억이 살아나고 있었다. 그것은 안타리우스가 어린 아이를 상대로 하는 실험이 실패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이제 샬럿은 개구리 가방을 찾으러 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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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 누가 쫓아오고 있는건 아니죠..? "
" 그럼, 아저씨가 잘 보고 다니고 있어. "
".. 비가 오면, 기분탓 일진 모르지만 제 힘은 더 강해져요. 그리고 제 옆엔 항상 샬럿이 비를 뿌려줬죠. "
" 때마침 비가 오는 것은 샬럿때문일지도 모르지. "
" 그랬으면 좋겠.. "
스산한 기운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을 드렉슬러도 느낀 모양이다. 이윽고 여러명이 안개 속에서 뛰쳐나왔다. 드렉슬러는 창을 꽉 쥐고 능숙하게 휘둘렀다.
" 비구름을 그릴께요- "
비가 세차게 내렸다. 주변 사람들이 조용히 쓰러졌다. 다른 말로는 잠들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아주 고요한 침묵이였다. 부서질 것 같은 작고 연약한 몸에 힘없는 목소리. 푸른 남색머리를 가진 , 우리가 찾던 소녀가 눈앞에 있었다.
결국 폭풍우 치는 밤에, 샬럿과 마를렌은 다시 재회했다.
" 샬럿..! "
" 잠깐.. 전 아직 누군지 몰라요.. 게다가 저를 잡아가지 않았단건, 분명히.. "
" 그렇지만.. 우선 회사로 돌아갈까? "
" 안 좋은 기분이 들어요.. "
말을 멈춘 샬럿은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우산을 펼쳤다. 샬럿은 잠시 우두커니 멈춰서더니 말을 덧붙였다. 저번처럼 떨리고 있었다. 마를렌은 샬럿을 또 빼앗길까봐,손을 꼭 붙잡았다. 우선 회사로 데리고 가면 안전할 것이다. 일이 순조롭게 풀려가는 것이 맘에 걸렸지만, 놓치면 이젠 영영 찾지 못할 것 같았다.
" 그 꼬마가 돌아오지 않는군. 이미 늦은건가. "
" 어째서 직접 가지 않으시는거죠? "
" 거창하다고 말은 해도, 우리가 한 짓은 그저 잠재능력을 깨워준 것 뿐이다. 그아이는 일개 말단일 뿐이다. 그런 것까지 내가 나설 필요는 .. "
" 그렇지만 여태껏 보살핀건 교주님이 아니십니까 ? "
" 잠재능력이 높은 줄 알았지만, 평균에 못 미치더군. 그저 실험체였다. 그래도 르블랑을 잘 처리했으면 붙잡아 둘 수는 있었겠지.조금 아쉽긴 하지만 이제 아무래도 좋아. 더 좋은 것들을 찾았으니까. 그리고 꼬마는 아마 평생 자기가 사람을 죽였다는 기억을 갖고 살 것 아닌가? "
" 그렇군요. 밑선에서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
제키엘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교인에게 그렇게 말했을뿐, 아직 그의 손안에서 모든 일들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던 것이다. 모든 것은 다 안타리우스로 되돌아가도록. 샬럿을 쉽게 풀어준 것은 아니란 것을 , 아주 먼 미래에 일어날 전쟁을 , 차근차근 계획하는 것이다. 그 안에는 이런 일들도 포함되어있다. 샬럿이 느낀 불안감은 이런 것들을 예측이라도 하는 듯이 맞아 떨어졌지만, 알아차린 것은 좀 더 나중의 이야기다.
" 이번 기회에 우리를 더 의식하게 되겠군. "
큭큭거리던 웃음소리가 교주실에 퍼졌다. 그것은 불행을 불러오는 웃음이기도 했다. 온몸에서 테라듀를 뽑아내어 천천히 손질했다. 그 피가 흐르는 것은 신이 하사하신 선혈이오, 나의 생명.
" 샬럿 , 나 알아보겠어? "
" 아니요.. "
고개를 흔들었다. 앨리셔는 씁쓸하다는 듯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샬럿에게 하나뿐인 가족이였던 마를렌 만큼은 조금씩 기억을 되찾는 듯 싶었다.그런 샬럿 옆에 윌라드가 다가왔다. 조금 우울한 표정이였다.
" 전장에 만난 그 때, 내가 사과하려고 했지만 너는 듣지 않았어. 어쩌면 당연한 것 이였는지도 모르지.. 우리 같은 어른들이 어린 아이를 무시하다니. 정말 못 할 짓을 했다. 샬럿. "
처음에 회사로 온 그 아이가 외면당하고, 무시당할때 윌라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상부층이 소녀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 그 것을 해주지 못했다고 해도 소녀에게 뭐라고 할 말이 없을 것이다.
" 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괜찮아요. 모두 지나간 일이에요. 폭풍우가 치면 모든 것이 씻기듯이. "
" 못 본 사이에 많이 어른스러워 졌구나. 얼른 기억을 되찾기를 바라마. "
그 말이 조금 쑥스러운지 윌라드는 금방 자리를 떴다. 마를렌은 그 모습을 보며 언제나 그러듯이 깔깔 웃었다. 아직은 무섭지만 샬럿을 만났으니 얼른 기운차려야지, 하고 말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둘은 떨어지지 않도록 손을 꼭 붙잡고 다녔다. 곧 회사안이 다시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물론 안타리우스의 톱니바퀴도 천천히 굴러가고 있을 것이다 . 하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 샬럿이 얼른 기억을 찾았으면 좋겠다. "
" 저는 착한 아이였나요? "
" 당연하지. 세상에서 너만큼 바보같이 착해빠진 애도 몇 없을거야. "
" 헤헤.. "
처음 만났을 때의 표정이다. 아픔을 숨기려는 웃음이다. 비록 전단지에 그려진 것 만큼 활짝 웃지는 않았지만 샬럿의 미소를 다시 되찾음에 마를렌은 감사했다. 샬럿을 꼭 안아주며 마를렌은 코를 훌쩍였다.
".. 다시 어디가고 그러지마.. "
샬럿은 말없이 마를렌의 등을 토닥였다. 사실은 기억이 생각보다 빨리 회복되고 있었지만, 잠시 숨기고 싶었다. 마를렌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좀 더 느끼고 싶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도 , 가장 먼저 구해준 것도 ,어디를 가던 함께 해주던 마를렌이 있었기에 샬럿은 넓은 곳으로 걸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 모두들.. 고마워요.. "
다리를 베고 누운 마를렌의 얼굴위로 샬럿의 비가 한방울 내렸다. 짭조롬하면서도 반짝이는 비였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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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21027982 [ 카인레나 ] Sliver string.
전작에 비해서 양이 꽤 많은 글을 썼습니다.. 추천을 꽤 받았었는데 오싸에 가지 못해 아쉽네요큐큐큐..
아마도 안타샬럿 2편은 안나올 것 같습니다! 제키엘의 계락은 아무도 모르는걸로!
10000자가 넘는 글을 읽기 싫은 분들을 위한 세줄요약.
1. 샬럿이 안타리우스에 잡혀감(혹은 자의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2. 마를렌이 필사적으로 샬럿을 찾으러감
3. 둘이 만나고 해피엔딩!
..입니다만 요약안해도 차근히 읽으시면 5분정도밖에 안걸릴테니 즐감해주세요~~ 그런데 과거부분을 많이썼다고 생각했는데 한부분 뿐이야.. 귀신의 소행인가..
다음엔 약빤 소재를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Draw by 요콰. ( 하랑아보이니 ) / 오타지적 환영합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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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 우연치 않았던 NG.
진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