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음성 ~후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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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30 21:47:00
Cyphers Fanfiction Project
얼음성, 후일담
글: 세크레트
그림: 귤라드
글을 읽기 전에:
- 본 글은 3년 전에 게시했던 "루이스가 샬럿에게 동화책 읽어주는 이야기" '얼음성'의 후일담 격인 글입니다.
본편을 쓰기 전에 손풀기 식으로 적어본 글이고, 본편 자체가 미완성인지라 본편을 읽지 않아도 줄거리를 따라가시는 데에 크게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해요.
- 본 글은 루이스가 영웅이 되었던 2차 능력자 대전과 현 능력자대전 사이의 시점에 놓인 이야기입니다.
등장 인물들이 현재의 모습보다 어려 보일 수 있는 건 착각이 아닙니다 ^^;
본편 (미완성) 링크: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1872928
함께 들으면 좋을 BGM: https://www.youtube.com/watch?v=E-9P_VLlF9U
(July - Somewhere)
필자가 작업하며 들었던 BGM: https://www.youtube.com/watch?v=8iFW0w477D4
(My Aunt Mary - Night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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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성 ~ 후일담 ~
샬럿이 돌아가고도 며칠이 지난 날. 흐렸던 지난 시간들이 무색하게 하루 종일 뙤약볕이 내리쬐던 날에, 노을과 함께 어스름이 찾아온 무렵. 서녘에 닿은 태양은 넘어가기 직전의 발길을 질질 끌며 런던 한 구석, 골목길에 위치한 작은 서점 안쪽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언제나와 같이 평온했던 일상의 모습. 그 속에, 여느 때와 달랐던 점이 있었다면, 서점 안에 드리웠던 그림자의 개수가 전 날보다, 또 그 전 날보다 하나 더 많았다는 것뿐이었다.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던 고즈넉한 서점 안. 늦가을, 풀벌레들의 마지막 합창이 주황색 태양빛과 그림자 기둥들 사이에 울려퍼졌고, 성큼성큼 키가 큰 나무 책장들은 석양 빛을 받아 붉은 바다, 가운데 우뚝 선 숲처럼 서점 안을 빼곡하게 메웠다. 그 숲의 한가운데 서 있던 형체 하나, 책장보다 짧은 그림자 하나 근처에서는,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박자에 무관하게 사락사락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정적이었지만 고요하지는 않았던 무대의 한켠에서,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움직임이 일었다. 그림자에 가리웠던 서점 안쪽에서, 작은 문을 열고 후드를 뒤집어쓴 청년이 걸어 나왔다. 청년, 루이스는 기지개를 한번 쭉 켜고는, 여느 날의 일상이 그랬었던 것처럼 서점 안을 구석진 곳부터 한 바퀴 휙 둘러보았다.
닳고 닳아진 마룻바닥, 먼지가 살짝 소복이 놓인 천장 구석의 거미줄, 구석 한쪽에 세워둔 작은 나무 의자. 시선이 닿는 곳곳, 별반 변함없이 그대로이던 구석구석을 둘러보다, 서점 한가운데 쪽으로 옮겨지던 그의 시선이 문득 우뚝, 한 점에 멈추었다.
다른 날에라면 그 곳에 없었을, 맹랑한 듯 날카로운 푸른색 눈동자가 루이스를 마주했다.
왜인지, 자연스럽게도 그의 시선이 조금 아래로 향한 상태에서.
서점 한가운데, 루이스의 어깨까지 오는 책장들 반쯤의 높이에, 흰색 원피스를 입고 파란 머리방울로 검은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소녀가 고개를 돌려 루이스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많으면 열 살 정도 되어 보였을까, 아이의 시선은 나이 또래답지 않게 또렷했고, 루이스를 바라보던 시선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싸늘한 시선에 다소 놀란 듯, 루이스가 조금 딱딱하게 의례적인 인사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는 관심도 없다는 듯, 들고 있던 책을 탁 소리나게 덮으면서 루이스에게서 고개를 휙 돌려 버리고는 오도카니 서서, 앞에 있는 책장 한 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루이스에게서, 마치 대놓고 신경을 끄려고나 하려는 듯이.
아이의 응대에 루이스는 대꾸할 말을 잃은 듯, 오도카니 선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잠시 자리에 붙박여 있었다. 침묵이 사람들 사이에 흐르던 동안, 주황색 물이 살포시 든 소녀의 볼 위에 드리운 엷은 그림자가 살랑살랑 흔들리며 풀벌레 반주에 맞추어 움직였다.
그렇게 가만히 선 채로, 불어가던 바람은 몇 줄기나 손님처럼 서점 안을 지났을까.
책장만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아이의 무관심에, 백기를 든 루이스가 평소처럼 서점 정리라도 하려고 돌아서던 찰나.
"저기, 물어볼 게 있어."
앳되지만 차분한 목소리와, 잔잔한 어조로 아이가 루이스에게 말을 걸어왔다.
재차 돌아서던 루이스의 시선이, 붉은 색조 중에 유난히 파랬던 아이의 두 눈동자로 박히듯 옮겨졌다.
"얼마 전에, 샬럿이 여기에 왔었지?"
말과 말 사이에 짧은 간격을 두고, 루이스의 후드 안쪽 두 눈을 빤히 바라보며 건네는 말들은, 여느 아이와는 다르게 퍽이나 조곤했다. 여유 있는 귀족이나 갖출 법한 편안하면서도 누르는 듯한 어조에, 샬럿과의 만남에 켕길 것은 물론 없었지만서도, 루이스는 조심스레 말 수를 줄이며 답해 물었다.
"응. 그런데, 너는 누구니?"
루이스의 대답을 들은 아이의 눈가가 미묘하게 움직이며, 아이는 한쪽 눈썹과 눈가를 살짝 찌푸린 채 곤란하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음 한 구석을 찔린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아이는 루이스에게서 눈을 돌려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곧 다시 홱 하고 루이스 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마를렌 르 블랑. 샬럿의....언니야."
쏘아붙이듯 당당하게 말한 자기 이름과 비교해, 아이가 나중에 말한 몇 마디는 목소리도 기세도 확 움츠러든 느낌이었다. 샬럿의 언니라고 말 한 게 무언가 말하고 나서도 영 개운치 않은 느낌이었는지, 마를렌은 말을 얼버무리고는 바닥 어디쯤을 바라보며 양 갈래로 묶은 머리 한 쪽을 만지작거렸다.
루이스는, 아이가 샬럿의 언니었다는 대목에서 조금 놀란 표정이 되더니, 몇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는지, 그의 얼굴에 작게 여러 표정이 바뀌어가며 일었다. 이 시간에 찾아왔던 낯선 손님이, 샬럿의 언니라는 게 그에게는 어떤 의미였을지. 난감해하는 표정도, 고민하는 표정도 지어 보이다가는,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지, 루이스는 이내 싱긋이 웃어 보였다.
웃음이 피어났던 얼굴을 힐끗, 바라보던 마를렌의 시선이 루이스의 시선과 딱 마주쳤다.
부자연스럽게 마주쳤던 눈길을 다시 회피하려 이미 고개를 반쯤 돌린 마를렌에게,
"그렇구나. 그런데 여긴 어떤 일로 왔니? 책을 읽으러 온 것 같진 않은데."
루이스는 마를렌 쪽으로 두 발짝 정도 조심스레 걸음을 디디며,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조금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숙여, 말을 건넸다. 아까보다 반쯤 높이가 낮아진 루이스의 후드 안을, 주홍색의 석양이 환하게 비추었다. 샬럿을 만나며 되찾았던 따스한 미소가 노을빛을 받아 더욱 밝아진 채로, 조금 각진 얼굴에 시원한 인상을 가진 청년이 마를렌을 마주했다.
그런 루이스를 경계하듯, 마를렌은 들고 있던 책으로 얼굴을 살짝 가리며 한 두 걸음 정도 뒤로, 하지만 그보다 더는 가지 않고 루이스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평평한 신발을 신은 발뒤꿈치를 살짝 든 채로, 멈칫멈칫하는 아이의 두 볼엔 아까와 또 조금 다르게, 선홍색 빛이 살짝 더해진 것처럼 보였다.
루이스를 빤히 바라보는 두 눈동자를 굴리며 때로 눈을 동그랗게 뜨기도 했다가, 때로 찌푸리기도 하며, 마를렌은 잠시간 아무 말도 하려 하지 않고 루이스의 얼굴을 구석구석 빤히 쳐다보았다. 줄곧 미소짓고 있던 루이스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다, 아이는 왜인지 방금까지의 당당했던 표정을 거두고 조금 쓸쓸한 낯빛을 지어 보였다.
"....샬럿이랑 많이 닮았네, 그 얼굴."
툴툴대는 표정에, 썩 개운하지는 않은 어조로 마를렌이 다시 말을 툭 던졌다. 루이스를 외면하듯이 고개를 돌리면서, 아이는 얼굴을 가리던 책을 책장 하나에 도로 탁 밀어넣었다. 돌연 퉁명스레 말을 던지는 아이의 모습에, 아이를 바라보던 루이스에게서도 미소가 슬며시 걷혀 나갔다. 마를렌은 볼을 살짝 부풀리며,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혼잣말하듯 말을 이어갔다.
“샬럿도 참, 집을 나갔다 돌아와서 표정이 더 밝아지고 말야... 나하고 있을 때는 한 번도 그렇게 환하게 웃은 적이 없었으면서…“
짐짓 화난 인상을 짓던 아이의 얼굴이, 쓸쓸했던 말줄임표를 끝으로, 침울한 모습으로 풀어졌다. 루이스에게, 무슨 말인가를 건넬 기회도, 조금 달랠 새도 주지 않고서. 무슨 말부터를 건네야 했을지, 모르던 루이스가 멀뚱히 선 가운데, 사람들의 침묵이 잠시간 머물렀다. 쓸쓸했던 목소리가 다시 루이스에게 말을 걸기 전까지.
“있잖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시선을 살며시 들어 루이스의 얼굴을 바라보며, 처음의 어조처럼 차분했던 마를렌의 물음이 루이스를 향했다.
“외롭다는 건, 어떤 느낌이야?”
“..외롭다는 게, 어떤 느낌이냐니?”
나직한 목소리로 스스로에게 되묻듯, 마를렌의 질문을 루이스가 되받았다.
마를렌은 루이스의 얼굴을 슬쩍 올려보고는, 책장에서 길게 늘어진 그림자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샬럿이 그랬어. 언니는 외로운 게 어떤 건지 모른다고. 언니는 너무 많은 걸 가져서 모른다고, 내 기분을 언니는 모른다고, 그렇게 말하고는 집을 나가버렸어.”
마를렌은 말을 잠시 끊고 숙였던 고개를 들어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맹랑한 눈매에는 내가 잘못한 게 무어냐고 묻는 듯한, 어린아이다운 치기가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난 샬럿에게 잘 해줬는걸. 큰 방도, 좋은 장난감도, 좋은 음식도 다 샬럿한테 줬었어. 잘 때 인사하러 오면 항상 만나주고, 목욕할 때도 늘 먼저 쓰게 해 줬었고, 산책 나갈 때도 늘 누군가 따라보내 줬어. 장난감도 늘 새 걸로 사줬고, 음식도 항상 내가 좋아하는 걸로만 줬어. 내가 가지고 싶었던 건 전부 샬럿한테 줬었어.”
차분하게 감정이 담긴 말들을 쏟아내고는 덧붙이듯, 마를렌이 마지막에 물음을 던졌다.
“그런데, 내가 뭔가 잘못했던 거야?”
말을 마치고 언짢은 표정을 짓고 서서, 마를렌은 루이스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대답은 금방 돌아오지 않았고, 루이스는 마를렌의 말들에 깊은 생각에 잠겼던 듯,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아이는 그에게서 어떤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을지. 루이스의 말을 기다리던 동안, 아이는 조금 초조했던 듯이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니, 네가 잘못한 게 아냐.”
실려 있던 감정을 알 수 없을만큼 차분한 목소리가, 진홍빛을 넘어 검은 빛으로 물들어가던 서점 안에 울렸다.
“거짓말.”
나직했던 울림이 끝나자마자, 청량한 목소리에, 화난 듯한 어조의 말이 뒤를 이었다.
“거짓말이지, 그거.”
루이스를 바라보며 말하는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살짝 맺혀 있었다.
“그러면 샬럿은 왜 집을 나간 건데? 왜 돌아와서 표정이 더 밝아진 거야?"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따져 묻듯한 아이의 물음이 봇물 터지듯 루이스를 향해 쏟아져 나왔다. 감정이 고조되었는지, 두 눈에 살짝 맺혔던 눈물을, 마를렌은 조금 훌쩍이며 한 팔을 눈가로 옮겨 닦아냈다.
그런 마를렌을 바라보며, 루이스는 마를렌에게 한 걸음 다가서서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다른 쪽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날 믿어. 네가 잘못했던 게 아냐. 샬럿은 단지 외로웠던 것 뿐이니까.”
눈을 가리고 있던 팔을 반쯤 치운 채로 루이스를 바라보면서, 마를렌이 조금 힘없는 목소리로 답해 물었다.
“모르겠어. 샬럿이 읽었던 이야기책을 읽으면 나도 샬럿의 기분을 알 수 있는 거야?”
아이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가만히 고개를 저으면서 루이스가 답했다.
“그렇지는 않을거야. 그건 샬럿만을 위해 만들었던 특별한 이야기였거든.”
조금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나직하고 차분하게.
그런 말씨에는 사람을 진정시키는 힘이 있는 것이었을까.
말을 듣고 조금은 진정된 듯이, 마를렌은 눈을 가리던 팔을 가만히 허리께로 내리고는.
가만히, 잠시간 초점 없이 바닥 어디쯤을 바라보다, 힘없이 루이스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러면 난 외롭다는 감정을 알 수 없는거야?”
아이의 질문에, 루이스가 짧게 모멘텀을 두고 대답했다.
“적어도, 내가 가르쳐줄 수는 없겠는걸.”
차갑고 냉정하게. 조금도, 감정이 느껴지지 않던 말들을 돌려주었다.
그 말을 듣고선,
울음보가 막 터지려던 얼굴을 숨기려고,
뒤돌아 뛰쳐나가려는 듯 마를렌이 확 돌아섰다.
루이스의 손이 마를렌의 한 쪽 손을 여전히 꼭 잡고 있는 채였다.
“놔 줘..!”
돌아서던 아이가 순간 내뱉듯 던진 말은, 다시 아까의 고압적인 투였고,
찰나,
고조되었던 감정에 동요하지 않고서. 여전히 차분했던 어조의 말들이 다시 서점 안에 울려퍼졌다.
“왜냐하면, 너는 이미 외롭다는 게 뭔지 알고 있으니까.”
* * *
템즈강 어귀, 런던의 한 좁은 골목길, 그을음 같은 붉은 잔향만을 남긴 채 태양이 지상에서 자취를 감춘 자리. 특별한 손님이 찾아온 작은 서점이 있는 것 외에 별다를 게 없던 이 거리에는 이제, 사람들이 만들어낸 미약한 빛, 가로등 등불만이 깜빡이며 사라진 태양의 자리를 대신했다.
돌아서던 등 뒤로 건넸던 한 마디 말 후로, 정적이 흐르던 서점 안. 일순 전류가 흐른 듯 힘이 빠져나간 팔을 잡고 있던 루이스의 얼굴에 슬그머니 다시 온화한 미소가 번졌다.
영사기에 돌아가던 낡은 필름처럼, 장면 장면이 망설임에 끊기듯, 마를렌이 천천히 다시 돌아섰다. 휘돌듯 돌아섰을 때 헝클어져 눈물에 범벅진 머리칼,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놀란 표정의 얼굴이, 가로등 불에 비쳐 은은하게 미소가 피어나는 루이스의 얼굴과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미소 띤 루이스와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보던 마를렌. 가로등불의 옅은 색조 속에 빛나던 미소를, 홀린 듯이 아이는 바라보았다. 마를렌의 한 손을 여전히 꼭 잡은 채로, 루이스는 다른 쪽 손을 아이의 얼굴께로 옮겼다. 눈에 여전히 그렁그렁하던 눈물을 닦아주며 그는, 누구도 듣지 못하게 하려는것만치 조용히 다시 질문을 던졌다.
“마를렌, 샬럿을 어떻게 생각하니?”
여전히 투정 부리듯, 눈물을 닦아주던 큼직한 손을 작은 손으로 밀어내 제 스스로 눈물을 닦으며,
"샬럿을.. 어떻게 생각하냐니?"
마를렌이 루이스에게 애써 돌려보낸 대답에는 중간중간 히끅, 히끅 하는 작은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되묻듯 돌아온 말에, 루이스는 대답할 생각이 없는 듯 마를렌을 보고 더 환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런 루이스의 얼굴을 마를렌은 잠시간 빤히 쳐다보았다. 울음이 사그라들 때까지, 옅은 가로등 빛에 희미하게 빛나던 웃는 얼굴을, 마를렌은 말없이 빤히 바라보았다. 작은 울음마저 그치고 숨까지 고른 후에야, 마를렌은 맞잡은 손 쪽으로 시선을 슬그머니 내리면서,
"바보 같아."
루이스의 손을 잡은 제 손에 힘을 꼭 주고는, 조금 잠긴 목소리로 다시 말을 꺼냈다.
"샬럿은.. 자기 일도 제대로 못 챙기면서... 늘 남만 걱정하고...
울고 나선 또 바보 같이 다시 웃고.. 그리고는 또 울고..
정말, 정말 너무 착하고 바보 같아.
그래서 늘 곁에서 지켜주고 싶었는데... 그런데..."
말을 이어가던 사이 사이에 마를렌은 다시 울먹이는 듯 큰 숨을 여러 번 들이쉬었다. 말과 말 없음이 교차하며, 말소리가 점점 흐려지더니 마를렌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제 얼굴을 숨기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마를렌에게, 루이스가 나직이 다시 물었다.
"마를렌, 샬럿이 네 곁에 있었으면 좋겠니?"
어슴푸레한 빛을 받은 푸른 머리방울이, 위아래로 몇 번인가 흔들리며 아이의 대답을 대신했다. 아이는 고개를 몇 번인가 끄덕이고, 팔을 얼굴께로 옮겨 눈물을 슥 닦아내고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어렵게 대답 한 마디를 돌려보냈다.
"응... 샬럿이 떠나는 건, 싫어..."
울먹이는 목소리가 잦아들고, 찌르르 우는 풀벌레 소리만이 다시 한 번 서점 안을 울리고는. 스쳐가던 밤 바람처럼 사뿐히, 침묵이 서점 안에 내려앉았다. 마를렌도, 루이스도, 서로에게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는지. 불청객처럼, 둘 사이에 다시 찾아왔던 침묵은, 이번에만큼은 그러나 몹시 따뜻했던 색이었다.
말도 움직임도 없던 둘 사이에, 살갑던 물음보다 먼저. 아이를 향해 다정한 손길이 움직였다.
"마를렌, 아까 외로운 게 뭐냐고 물어봤었지?"
자유로웠던 한 손으로 푹 숙이고 있던 마를렌의 고개를 들어 주면서, 루이스가 마를렌에게 말을 건넸다. 고개 들던 아이의, 빨갛게 부은 눈과 루이스의 눈이 마주치면서, 루이스의 말이 잠시 끊겼다. 그 짧은 순간이 다소 멋쩍었던 듯, 루이스는 마를렌을 향해 싱긋이 웃음지어 보이고는, 말을 이어갔다.
"외롭다는 건, 있잖아."
흐르지 않는 유리알을 함뿍 머금고 있는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외롭다는 건 그러니까, 나한테 가장 소중한 사람이 지금, 그리고 항상 내 곁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일 거라고, 난 생각해."
언젠가 자신에게, 한 손님과 함께 찾아왔던 깨달음을, 가로등 불빛보다 반짝이던 제 두 눈에 담으면서.
루이스가 마를렌에게 말을 건넸다.
"아까 샬럿이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었지?"
루이스의 말을 듣던 아이는, 말 없이 눈을 조금 더 동그랗게 뜨고서는. 루이스의 물음에 대답 않고 고개만 두어 번 끄덕일 뿐이었다.
"샬럿도 그렇게 말했어. 마를렌 언니가 언제나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그늘졌던 낯에, 살짝 놀란 표정이 떠오르는 걸 바라보며, 루이스는 웃음 속에 작은 물음을 덧붙였다.
"알겠니? 샬럿이 왜 외로워했는지를..."
대답이 필요한 종류의 물음은 아니었다.
대답 대신에, 섧게 다시 울던 아이만이 눈앞에 있었어도, 마음 아프지 않을 그런 류의 물음이었다.
루이스의 말을 듣던 아이의 표정이 약간 굳어지는 듯하더니, 막아왔던 둑이 터져나오듯,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샬럿의 이름과,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되뇌이며, 마를렌은 섧게, 섧게 많이 울었다.
루이스는 그런 아이를 품에 꼭 안아주었다.
울음 속에 푹 잠겨 버린 아이가,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아이를 품 속에 꼭 잠궈 안아주었다.
세상에는 서툴러서 더욱 아름다운 것들이 있기 마련일 것이었다.
외로움을 알지 못했던 한때의 그처럼, 바보같았던 때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던 것이었다.
물론, 울음 속에 섧게 잠겨버렸던 아이가 이렇게 생각하진 않았겠지만.
아이를 품에 꼭 안은 채로, 루이스가 아이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샬럿을 잘 부탁해."
대답이 들려오지 않을 줄은 알면서도. 자신이 샬럿에게 해 주지 못할 일 한 가지를 마음에 담아, 루이스가 마를렌에게 속삭였다.
기다리던, 아이 본연의 활기찬 대답이 들려왔던 건, 아이가 울음을 그쳤을 때.
그러니까 그로부터 또 한참 뒤였지만.
지금은, 이대로도 좋을 것이었다.
온통 까맣던 밤에, 가로등 불빛과 별들, 그리고 눈물만이 반짝이던 밤이라도, 이대로라면 따스했을 것이기에.
이 밤이 지나면 다시 밝은 아침이 오리라는 약속처럼,
마를렌에게서 돌아올 대답이 밝을 것이라는 걸 그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대답이 돌아올 때까지, 루이스는 마를렌을 보며 미소지어줄 수 있었다.
아이가 자신처럼 환히 웃으며 마지막의 대답을 돌려줄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었다.
밤이 따스했던 어느 날, 런던의 한 좁은 골목길, 특별한 손님이 찾아온 것 외에 별다를 게 없던 작은 서점에.
따스한 미소를 짓던 아이에게서, 낭랑한 목소리가 가을날의 밤 속에 울려퍼졌다.
"응! 걱정 마!"
Cyphers Fanfiction Project,
얼음성 후일담 편,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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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긴 인고의 시간 끝에, 작업물이 마침내 빛을 볼 때가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인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못난 글로 다시 찾아온 못난 작가입니다.
항상 글을 쓸 때는 글 말미에 이 얘길 적어봐야지 저 얘길 적어봐야지 생각을 많이 하지만,
막상 쓸 때가 되면 무슨 말을 써야 될지 잘 생각이 안 나네요.
네, 앞서 언급했던 대로,
이 글은 '루이스가 샬럿에게 동화책 읽어주는 이야기' 얼음성 본편의 후일담 격 되는 이야기입니다.
본편을 안 읽고도 이해할 수 있게 쓴다고 썼는데 의도대로 되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줄거리는 별 거 없이.. 그냥 선문답 같은 이야기입니다.
정적인 장면을, 특별한 사건 없이 얼마나 잘 풀어나갈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며 썼는데
나온 결과물을 보면 조금 아쉽다 싶네요.
여담이지만 참 굴곡이 많은 글이네요.
전에 올라왔던 영웅전기보다 이 글이 먼저 쓰고 있던 글입니다.
글이 한창 안 써지던 긴 슬럼프 기간에 붙잡고 쓰기 시작한 글이고,
글 쓰는 스타일을 의도적으로 바꿔보려고 문장을 만연체로 많이 늘려서 쓰기 시작한 글입니다.
글 작성을 일찍 시작했음에도 한참 완성이 되지 않아 속을 썩이고 있다가,
그냥 덜 다듬은 채로라도 올려야겠다 생각해서 올렸었는데.
글이 올라오고 나서 그림작가님께 연락을 넣었더니
삽화를 그려주시겠다고, 예상치도 못하게 호의를 베풀어 주셔서
본의 아니게 (?) 여러 번 글을 재업하게 되었습니다.
영웅전기 때처럼 또다시 그림이 글을 살려주는 것 같네요~
글을 읽지 않으시는 분들도 보배로운 그림 잘 감상하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늦었지만, 부족했던 영웅전기 글을 오싸 & 분기 베스트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싸까진 되면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분기별 베스트까지 올라갈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네요.
언제나처럼, 댓글은 항상 주시하고 있습니다.
추천도 한 번 눌러주신다면 더 바랄 게 없겠네요.
지난 글들, 베스트에 올라간 글, 분기 베스트 선정 글의 댓글까지 꼼꼼하게 다 챙겨봅니다.
전에처럼, 오싸에 올라간 글들에 답글을 달아드리지 못한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네요.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면서,
그럼 다음 글도 잘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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