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사부와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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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2 01:00:02
남탕인 그랑플람 재단에서 아시아 지부 스카우터 노릇을 하던 T사부라면 독신주의자요 찰진 오피캐로 유명하다. 삼십에 가까운 총각인 그는 점잖게 잘생긴 얼굴이 순진한 총각이란 맛이란 약에 쓰려도 찾을 수 없을 뿐인가, 매끈하고 쌔끈하고 후광이 비치는 품이 수많은 여인네의 가슴을 동당거리게 한다.
여러 번 사고친 하랑 때문에 매서워진 눈매라든지,너무 커서 잘 감싸이지 못하고 울퉁불퉁 튀어나온 근육이라든지, 서른이 다 되었어도 근육 위로 드러난 ZZ를 감출 길이 없었다. 잘생긴 입을 굳게 다물고 쌀쌀한 눈이 노릴 때엔 그랑플람 재단 능력자들이 오싹하고 몸서리를 치리만큼 그는 엄격하고 매서웠다,
이 T사부가 질겁을 하다시피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은 소위 러브 레터였다. 남탕이라면 으레 그런 편지가 많이 오는 것이지만 능력으로도 유명하고 또 잘생긴 남자들이 많은 탓인지 하루에도 몇 장씩 죽느니 사느니 하는 사랑 타령이 날아들어 왔었다. 능력자들에게 오는 편지를 일일이 검토하는 터이니까 그 따위 편지도 물론 T사부의 손에 떨어진다. 달짝지근한 사연을 보는 족족 그는 더할 수 없이 흥분되어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편지 든 손이 발발 떨리도록 성을 낸다.
까닭 없이 그런 편지를 받은 능력자야말로 큰 재변이었다. 하교하기가 무섭게 그 학생은 T사부의 사무실로 불리어 간다. 분해서 못 견디겠다는 사람 모양으로 쌔근쌔근하며 방안을 왔다갔다 하던 그는, 들어오는 능력자를 잡아먹을 듯이 노리면서 한 걸음 두 걸음 코가 맞닿을 만큼 바싹 다가들어 서서 딱 마주친다. 웬 영문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사부의 기색을 살피고 겁부터 집어먹은 능력자는 한동안 어쩔 줄 모르다가 간신히 모기만한 소리로,
"자자~ 진정하세요~" 하고 말한다.
"집중해!"
팍 무는 듯이 한마디하고 나서 매우 못마땅한 것처럼 책상을 우당퉁탕 당겨서 철썩 주저앉았다가 능력자가 그저 서 있는 걸 보면,
"집중해!" 하고 또 소리를 빽 지르는 법이었다. 스카우터와 능력자는 조그마한 책상 하나를 새에 두고 마주 앉는다.
앉은 뒤에도,
"지켜보겠다!"
하는 것처럼 아무 말 없이 눈살로 쏘기만 하다가 한참 만에야 그 편지를 끄집어내어 능력자의 코앞에 동댕이를 치며,
"이건 누구한테 오는 거냐?" 하고 심문을 시작한다.
앞장에 자기 이름이 쓰였는지라, "저한테 온 겁니다." 하고 대답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두 시간이 넘도록 심문을 한 끝에는 여자란 믿지 못할 것, 우리 남성을 잡아 먹으려는 마귀인 것, 연애가 자유이니 신성이니 하는 것도 모두 악마가 지어낸 소리라는 것을 입에 침이 마르게 한참 설법을 하다가 눈에 눈물까지 글썽거리면서 말끝마다 악마의 유혹에 떨어지려는 어린 양을 구해 달라고 외치는 법이었다.
이 T사부가 있는 그 남탕에 올해 봄 들어서 괴상한 일이 '생겼다'느니보다 '발각되었다'는 것이 마땅할는지 모르리라. 왜냐하면 그 괴상한 일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아무도 모르니까.
그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어느 날 밤이 깊어서 모든 능력자들이 달고 곤한 잠에 떨어졌을 제 난데없는 깔깔대는 웃음과 속살속살하는 말이 새어 흐르는 일이었다. 이때 공교롭게 능력자 셋이 한꺼번에 잠을 깨었다. 마틴이 소변을 보러 일어났다가 그 소리를 듣고 하랑과 브루스를 깨우고 만 것이다.
"저 소리를 들어 봐요." 하고 마틴은 휘둥그레해진 눈에 무서워하는 빛을 띄운다.
"어젯밤 나도 저 소리에 놀랐다네. 유령이 나왔단 말인가?" 하고 브루스도 잠오는 눈을 비비며 수상해 한다. 그 중에 제일 나이 적을 뿐더러 장난 잘 치고 짓궂은 짓 잘하기로 유명한 하랑은 그들 말을 못 믿겠다는 듯이 귀를 기울이다가,
"얼씨구? 수상한데. 잠이 안 오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는 거겠지."
이때에 그 괴상한 소리는 오홍홍 웃었다. 세 능력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적적한 밤에 다른 소리 없는 건물은 그 수상한 말 마디를 바로 옆에서 나는 듯이 또렷하게 전해 주었다.
"아! 그러면 작히 좋을까요."
정열에 뜬 사내의 목소리다.
"그대가 좋으시다면 제가 얼마나 기쁘겠어요. 아아, 오직 그대에게 바친 나의 타는 듯한 가슴을 이제야 아신 건가요!"
아양 떠는 여자 말씨가 분명하였다. 한동안 침묵.
"이제 그만 합시다. 키스가 너무 길어요. 행여 다른 능력자가 보면 어떡합니까."
낮은 남자 목소리.
"길수록 더욱 좋지 않아요. 나는 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키스를 하여도 길다고 못 한걸요? 그래도 그렇다면......"
여자의 간드러지는 목소리는 남자의 낮은 웃음소리에 묻혀버렸다.
그것은 묻지 않아도 사랑에 겨운 남녀의 밀회였다. 남탕인 이 재단에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세 능력자는 얼굴을 마주 보았다.
"하! 어디 한번 구경가보자."
짓궂은 하랑은 몸을 일으키며 이런 제의를 하였다. 마틴과 브루스도 그 말에 찬성한다는 듯이 따라 일어섰다.
소리나는 방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찾고 나서 그들은 주춤 걸음을 멈출 만큼 놀래었다. 그 소리의 출처가 자기네 방에서 몇 걸음 안되는 T사부의 방일 줄이야! 그렇듯이 여자라면 못 만나게 하고 침이라도 뱉을 듯하던 T사부의 방일 줄이야! 그 방에서는 여전히 여자의 푸념이 되풀이되고 있다.
나의 천사, 나의 하늘, 나의 왕자님, 나의 목숨, 나의 사랑, 나의 애를 말려 죽이실 건가요. 제 가슴을 뜯어 죽이실 건가요. 내 생명을 맡으신 당신의 입술로-
하랑은 대담스럽게 그 방문을 빠끔히 열었다. 그 틈으로 여섯 눈이 방안을 향했다.
이 어쩐 기괴한 광경이냐! 불은 아직 끄지 않았는데 침대 위에는 능력자들에게 온 소위 러브레터의 봉투가 너저분하게 흩어졌고 그 편지도 여기저기 펼쳐진 가운데 T사부 혼자, 아무도 없이 제 혼자 일어나 앉았다. 누구를 끌어당길 듯이 근육진 두 팔을 벌리고 매서운 눈으로 잔뜩 한 곳을 노려보며 그 잘생긴 얼굴에 말할 수 없이 애원하는 표정을 짓고는 키스를 기다리는 것 같이 입을 쫑긋 내민 채 간드러진 여자 목소리를 내어가며 말을 중얼거린다. 그러다가 그 말이 끝날 새도 없이 갑작스레 확 돌아서 누구를 밀어내는 듯한 손짓을 하며 이번에는 고뇌하는 남성의 목소리를 내어,
"안 됩니다." 하다가 저 혼자 끄으응 하고 고민을 한다. 그러더니 문득 편지 한 장(물론 능력자들에게 온 러브레터 중 하나)를 집어 온몸을 비틀고 얼굴에 문지르며,
"정 그렇단 말씀입니까? 나를 그렇게 사랑합니까? 당신의 목숨같이? 나를, 이 나를!" 하고 제 팔뚝을 스스로 껴안는데 그 음성은 분명 포효하는 것처럼 들렸다.
"꿈자리가 사납더니..."
하랑이 소곤거렸다.
"아마 미쳤나 보군... 밤중에 혼자 일어나서 왜 저러고 있을꼬."
브루스가 맞장구를 친다.
"에그 불쌍해!"하고, 마틴은 손으로 고인 때 모르는 눈물을 씻었다.
야....약이 필요해요
저 티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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