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글엘리] shall we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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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31 20:31:49
팬픽에 거부감 있으신 분들은 읽지 말고 뒤로 가주세요.
좋은 글 입니다만 읽지 않았습니다 같은 드립도 사양할게요.
그리고 경찰서에서 아청법 정모 여실 분 모집합니다(...)
“오늘이다. 그럼.”
내가 대답을 내뱉기도 전에 형은 전화를 끊었다. 나 버릇없다고 잔소리 할 땐 언제고 저렇게 전화를 매너 없이 끊는 거야? 답답한 마음에 괜한 테이블을 쿵쿵 쳐봤지만 손만 아프다. 식은 커피를 입에 전부 털어 넣고 어수선한 방에 들어가서 옷장을 열었다. 편한 옷들 사이에 어색하게 걸린 말끔한 정장이 우스꽝스럽다. 저녁 8시라고 했지, 시계를 바라보니 아직 한참 멀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가기 싫어서, 형이 나오지 않으면 직접 찾아오겠다고 까지 말 할 줄은 몰랐다. 도대체 그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이라고…….
“오늘 어디가?”
“어, 좀.”
“뭐야 안 좋은 곳이라도 가? 표정이 왜 이래?”
지금 내 표정이 안 좋긴 한가보다. 얼굴을 살짝 만져봤더니 까칠하다. 오늘따라 피곤이 물 밀리듯 밀려와서 남의 말이 제대로 귀에 박히질 않았지만 대충 들었던 루이스의 질문에 눈을 감으며 파티, 라고 대답하니 물어본 상대는 말이 없다.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그래, 안 놀랄 수가 없겠지. 몇 년을 연합에 있으면서 단 한 번도 말해본 적 없는 단어를 꺼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파티?”
“어.”
“무슨? 네가 왜?”
“가족모임 비슷한 거.”
“그래서 가기 싫은 거야?”
“……그것보다도”
“너 생각보다 가족이랑 사이가 나쁜 건 아니잖아.”
“귀찮아서.”
네가 한 번 가보던가 라고 덧붙이고 싶었지만 말을 줄이기로 했다. 시계 초침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부담스럽다. 더는 시간을 보낼 수 없어서 시간보다 부담스러운 옷을 꺼내 입고 부스스한 머리도 넘겨 빗었다. 마음 같아서는 평소에 입는 옷 그대로 가고 싶었지만 남들 눈을 신경 쓰는 그 홀든가에서 가만히 놔둘 리 없기 때문에 알아서 차려입고 가기로 했다. 좋은 소재의 옷이 빛에 따라 희미하게 반짝거린다. 기분 나쁠 정도로
* * *
“왔어?”
“큰 형은?”
“뻔하지, 귀찮은 사람들 상대.”
“아.”
내가 아무리 징징거려봤자 큰 형이 해야 할 일을 내게 맡긴다 생각하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오자마자 느낀 역겨울 정도로 강한 향수 냄새와 알싸한 알코올 향, 차라리 이런 것들에게 뒤섞여 있을 바엔 답답한 형 근처에서 무언(無言)의 눈빛을 받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다.
“춤추실래요?”
말을 건 여자는 묘하게 끈적이는 눈빛을 던졌다. 나는 거절의 말 대신 앞에 있던 술만 들이켰다. 여자는 대답 없는 내 태도에 민망했는지 인상을 구기며 자리를 옮긴다. 그제야 참고 있던 숨을 내쉬었다. 밤에만 뿌리는 향수 치고는 너무 과하잖아. 안주 삼아 베어 문 과자에서 그 향수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샹들리에에 반사된 빛이 부서지듯 쏟아져 내린다. 그 아래 들리는 사람들 웃음소리, 그것에 섞여 들리는 나의 이야기, 오케스트라 연주보다도 크게 들리는 그 소리가 거슬린다. 그냥 술이나 마셔야지, 자리를 벗어나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와인은 취향이 아닌데 이곳에 있는 술이라곤 그런 것뿐이다. 차라리 연합 식탁에 앉아 마시는 맥주 맛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니 보고 싶어졌다. 천진난만한 웃음이나 어디선가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듣고 싶다. 괜한 걸 생각하는 게 싫어서 오늘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떠오르는 걸 보면 대단하다. 아이라면 질색하던 내가 언제부턴가 계속 그렇게 신경을 쓰는 걸 보면 꼬맹인 사랑 받으려고 태어난 아이 같다.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이 아이가 오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곧 생각을 관둔다. 예상보다 훨씬 기분 나빠진다.
“아찌!”
중증인가, 술에 취했나. 엘리 목소리가 들린 것 같다.
“아찌!”
참나, 그렇게 안 마셨는데
“아찌!”
옷자락을 잡아끄는 느낌이 익숙해서 돌아본 곳엔 노란 드레스를 입은 엘리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술에 얼마나 취해서 이런 헛것을 보나 싶어 눈을 두어 번 비비고 다시 바라봐도 여전히 꼬맹이가 보인다.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자 씩 웃는다. 이런 곳에 이 아이가 있는 게 믿기 힘들 정도로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끌어안았다. 여린 팔이 목을 감싼다.
“뭐야 너 어떻게 왔어? 들어온 건 어떻게 들어온거야?”
꼬맹이는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다 대며 쉿 하며 웃었다. 쉽게 알려주지 않을 모양이다. 파티장이 처음이라 신기한지 방방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을 살핀다. 그때 오케스트라가 다른 연주를 시작하며 중앙에만 켜졌던 불이 전부 다 들어오고 모두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멀리서 그걸 부러운 듯이 바라보는 엘리를 향해 소리쳤다.
“야 꼬맹이! 너도 춤출래?”
“응!”
내 발 위에 작은 발이 올라온다. 어릴 때부터 췄던 춤이지만 즐거웠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게 이렇게 재밌던 건가, 싶을 정도로 웃음이 나온다. 있잖아. 사실 오늘 내가 계속 기분 나빴던 건, 종일 널 못 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지도 몰라. 그렇게 웃는 네 얼굴을 못 보는 것이 싫어서.
“아찌!”
“왜!”
“오늘 머시쪄!”
그 말을 듣자마자 넘어졌다.
Fin
* 엘리가 파티로 쫓아간 건 징징댔기 때문인데... 나중에 자세히 쓸게요.
* 참고로 엘리가 파티장으로 들어올 수 있게 도움을 준 건 다이무스 입니다.
* 예전부터 아끼던 소재를 이렇게 망쳐놓네요. 대단한 저...^^
* 이글이 멋있단 말에 당황해서 넘어지는 게 꼭 쓰고 싶었어요 전ㅋㅋㅋㅋㅋ
* 허리가 아파서 6페이지 정도를 쓰려고 했던 분량을 3페이지로 줄였습니다... 여러모로 대단한 저^^...
* 홀든가는 나름 이름있는 가문이라는데... 파티 자주 다니지 않을까요? 그냥 제가 말끔한 이글이 보고 싶었..ㅎㅎ
* BGM 정보: 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 꽃의 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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