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리퍼는 왜 늘 한 짝만 먼저 간다
-
94
4
2
-
2025-03-17 12:10:28
문득 현관 앞을 봤다.
왠지 익숙한 풍경.
슬리퍼 한 짝이 어김없이 먼저 나가 있었다.
아무도 시킨 적 없는데,
늘 한 짝만 먼저 문 밖을 나간다.
혹시…
자유를 꿈꾼 걸까?
“난 더 이상 눌러 살 수 없어! 난 바닥 따위 밟기 싫어!”
그러곤 미끄러지듯 도망친 걸까.
하지만 현실은…
그냥 발에 걸려서 나간 거였다.
그걸 아는 순간,
괜히 미안해졌다.
늘 내가 급하게 움직일 때
먼저 끌려나가고,
비 오는 날엔 ♡고,
때론 욕실에서 미끄러지기도 하면서도
아무 말 없이 내 발을 지탱해 주던 존재.
가끔 세탁도 못해주고,
짝을 잃어버리면 그냥 버려버렸던 그 시절.
생각해보면
슬리퍼는 항상 우리보다 먼저 나갔고,
항상 우리보다 늦게 돌아왔다.
그래서일까.
요즘 슬리퍼 한 짝이 문 밖에 나가 있으면
괜히 혼잣말을 하게 된다.
“야… 어디 갔다 왔냐.”
그리고 조용히 다시
한 짝을 맞춰준다.
그건 마치,
오랜 친구와의 재회처럼 따뜻하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다시 또 한 짝이 혼자 나가 있더라. 얘 진짜 성격이 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