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phers

  • [팬픽] Twilight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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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바스터 [56급]

2013-06-14 15:31:58

- 이 글은 픽션(fiction)입니다. 특정 단체ㆍ사건ㆍ사상ㆍ종교와 무관함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 Twilight - Prologue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4851750)
  Twilight 01.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4904555)
  Twilight 02.(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4963543)
  Twilight 03.(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5060412)
  Twilight 04.(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5910203)
  Twilight 05.(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5999681)
  Twilight 06.(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6069787)
  Twilight 07.(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6132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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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wilight 09.(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6272176)
  Twilight 10.(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6358976)
  Twilight 11.(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6450383)
  Twilight 12.(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6536132)
  Twilight 13.(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6696634)
  Twilight 14.(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6812418)

 

 

해질녘 모든 사물이 붉게 물들고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

낮도 밤도 아닌 모호한 시간의 경계.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사물의 윤곽이 희미해지는 때.

 

 

   미국 일리노이주 남동쪽에 위치한 세 번째 환영의 도시 메트로폴리스, 그 안쪽과 바깥쪽에서는 제각기 흉흉할 정도의 비장함이 뻗쳐나가고 들어왔다. 안쪽은 대기 변화가 없어 365일 쾌적하지만 침침한 풍경인 채였다. 메트로폴리스를 나가는 널찍한 여덟 개의 길마다 군단이 버티고 서있다고 하는데도 아무것도 움직이지도 소리나지도 않는다. 바람이란 게 존재하지 않아 자연의 나부낌조차 없어 군중의 고요는 더욱 날카롭게 두드러졌다. 본디부터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기묘한 공간은 그 안에 있는 사람들마저 부동하고 침묵하니 정말로 세상으로부터 떨어져나간 것 같다. 바깥쪽 역시 메트로폴리스로 들어가는 입구 여덟 갈래마다 커다란 막사가 세워져 있다. 막사를 드나들 수 있는 틈새로는 거칠지는 않지만 어쩐지 사람의 신경을 곤두세우는 웅웅대는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자칫하면 그냥 묻혀버릴 수도 있을 법한 가로막힌 소리였지만 마흔에 달하는 인원이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 적막한 막사 안에서는 잘도 울려 퍼졌다. 사풍주의보가 내린 것도 아닌데 동맹군은 다만 그 소리에만 귀 기울인 채 긴장을 가다듬었다.

 
  “나의 자랑스러운 신민들이며, 지금 바깥에는 우리 안타리우스를 다시금 핍박하려는 악의 무리들이 어슬렁대고 있다.”
  “제군, 지금 저 안에는 우리가 되찾아야 할 소중한 것과 다시 한 번 물리쳐야 할 공공의 적이 있다.”


  노인의 인형 여덟 개가 각 방위를 방비하고 있는 안타리우스의 신도들에게 주군의 뜻을 대신 전했다.
  플라워 시티로부터 각 막사마다 설치된 특수 라디오 수신기를 타고 웨슬리의 진중한 목소리가 일제히 전해졌다.

 
  “우리는 전쟁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이 사이퍼계에 진정으로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악마들을 벌하려는 것이다. 사실은 화합할 생각이 전혀 없음에도 저들은 우리를 희생양으로 하여 각자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간악한 협력관계를 맺은 것이다. 애석히도 저들은 강하다. 그러나 저들의 힘에 눌린 채 공포에 떨며 살아가야 하는 선량한 이들을 누가 달리 구할 수 있겠는가? 우리 안타리우스만이 그럴 능력과 선한 의지를 갖고 있다. 나는 그런 중대한 사명을 다시금 실현하기 위해 신의 품을 떠나 돌아온 것이다……!”


  “이것은 엄연한 전쟁이다. 안타리우스는 빼앗기지 않으려 할 것이며 우리는 되찾으려 한다. 저들은 우리로부터 여제를 강탈하여 트와일라잇을 다시금 손에 넣으려 하고 있다. 안타리우스가 노인 없이도 충분히 위협적일 수 있음은 안개수집장치 파괴 작전 때 이미 확인한 바 있으며, 트와일라잇 없이도 막대한 규모의 전력을 상비할 수 있는 저력을 지녔음을 이 플랜 FB의 사전 준비 과정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허나 이번에야말로 저들과의 끝나지 않은 싸움을 종결짓기 위해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다. 사이퍼계의 불안을 야기하는 근원을 반드시 없애야 한다.”


  인형이 대신 들려주는 노인의 성지(聖志)에 신도들은 황송한 듯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웨슬리의 차분하지만 엄격한 말은 동맹군에게 지금부터 행해야 할 유혈사태의 정당성을 새겨 넣었다.

 

  “너희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가? 우리를 방해하려는 저 사악한 무리의 손에 죽을까봐 걱정되는가? 오호, 어리석다. 지금 너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누구인 줄 아는가? 나는 죽음마저 극복한 ‘초월’이다. 그 산 증거로서 너희의 우러름을 받는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죽음을 꺼리는가? 희생을 무서워하는 자는 안타리우스가 아니다. 순교는 남은 이들의 의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고결한 행위이다. 형제자매의 시체를 밟고 올라서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야말로, 돌아보지 않고 대의를 위해 계속 전진하는 것이야말로 안타리우스다.”


  “전쟁은 언제 사신이 내 목을 베어가도 이상하지 않은 극한의 상황이다. 안타리우스의 능력자들과 끔찍한 실험 결과물은 용맹한 그대들마저 두려워할 만큼 강한 것이 사실이다. 일신의 공포에 취해 도망가버리고 싶은 순간도 분명히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제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동료와 협력하여 싸우는 일이다. 적병 한 명을 쓰러뜨리는 일보다 더 소중한 것은 위기에 빠진 동료를 구해내는 것이다. 전우를 저버리는 일이야말로 불명예이다. 대의를 위한 희생은 없어야 한다. 대의를 이룩하는 데는 모두가 살아 함께 그 기쁨을 나눠야 마땅할 것이다.”


  노인은 숭고한 죽음을, 웨슬리는 악착같은 삶을 타일렀다.

 


  “저 악한 무리들을 처단하여 신에게 제물로 바치고 피로써 정화된 우리의 새 보금자리 위에 나의 반쪽 트리비아와 성혼을 치르고 완전하게 거듭나리라! 내 신부의 능력을 통해 내 너희를 저들에게 빼앗긴 우리의 땅 트와일라잇으로 인도하리니, 너희는 오로지 내 말에 복종하여 나의 의지를 실현하라. 그것이 곧 너희의 평안과 이 세계의 화목을 가져올 것이니 나를 믿으라. 너희는 내가 선택하고 거둔 자랑스러운 나의 혈육이다. 반드시 나는, 너희는, 우리는 승리하리라!”


  “다시금 목표를 확인하겠다. 하나, EMPRESS 트리비아 카리나를 탈환하여 안타리우스의 트와일라잇 장악을 막는다. 둘, 노인과 옥사나 야코비치를 제거하여 안타리우스의 중심축을 무너뜨린다. 셋, 「액자」를 확보하여 안타리우스가 훗날을 도모할 만한 결정적인 힘의 원천을 봉쇄한다. 제군의 능력은 그 모든 목적을 달성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승리한다.”

 
  서로가 승리를 의심하고 싶지 않은 것이 전쟁이었다.

 


  “가라, 천칭의 문장을 단 전사들이여! 나를 위해 승리를 쟁취해오라!”
  “12시 05분, 제2차 인형실 끊기 작전 결행을 선포한다! 건투를 빈다, 제군.”

 
  광기에 찌든 환호성과 울부짖음으로 가득했던 안타리우스의 신도들은 각자 무기를 들고 제 위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회사-연합 동맹군은 메트로폴리스까지 태워다 줄 특수 지프에 몸을 실었다. 


  격전은 이제 물러설 수 없는 저만치 앞까지 다가왔다. 각자 지키고 싶은 것과 빼앗기고 싶지 않는 것을 조용히 가슴에 새기며 각오를 다졌다.

 

 

* * *

 

 

  린은 좀처럼 책 내용에 집중하지 못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젠 한문이나 조국의 문자보다도 이곳의 꼬부랑 문자가 더욱 익숙한데도 활자가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그저 평화롭게 살고 있었을 뿐인 약소국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제국주의 열강들과 마찬가지인 이 이양인의 나라에 정을 붙일 수는 없지만 책은 죄가 없다. 이 모형정원 같은 저택에서 유일하게 린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은 책이었다. 아비를 통해 배운 사서삼경에도 진리는 있었으나 여성 억압의 메시지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서양에는 여성의 자유가 있고 모험이 있음을 낯선 언어를 통해 배웠다. 언제 기억이 지워져 내가 ‘나’가 아니게 되는 그 날이 닥칠지 몰라 내일에 대한 희망조차 아득할 때도 책을 통해 꿈을 꿨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의식만 바꿀 뿐 몸담고 있는 현실은 바꿔주지 못하는 책에 무의식적으로 싫증난 것인지 책 한 번 봤다가 하늘 한 번 봤다가 그 어느 쪽에도 정신을 팔지 못했다.

 
  소란스러웠다. 아니, 지금 등을 기대고 앉은 나무 둥치 주변 뒤뜰은 조용하기 그지없다. 이만한 규모의 저택을 청결하고 아름답게 유지하기 위해 얼굴도 다 기억하지 못할 만큼 많은 하인들이 있어도, 집안 분위기 따라 하나같이 엄숙하고 차가워 그들의 참새 같은 수다를 우연으로도 엿들을 수 없는 집안이다. 직접 귀에 닿는 소리는 멀쩡한 청각으로 아무리 붙잡아보려 애써도 없다. 분위기의 웅성임이다. 평소에는 전혀 듣지 못하는 전신의 맥박이 뛰는 소리를 새삼 감지한 것 같다. 크게 거슬리지는 않으면서도 침착할 수 없게 하는 묵직한 시끄러움. 집안 어른들이 린에게 알려주는 정보는 하나도 없었지만 신문을 볼 수 있는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제2차 인형실 끊기 작전이 아마도 비로소 결행된 것은 아닐까. 실물로 보기 힘든 저명한 네덜란드의 인사들이 요 며칠간 얼마나 들락날락했는지 모른다. 부산스러운 무언극을 보는 듯한 공기가 턱끝까지 차올랐었다.

 
  과감히 책을 덮고 일어나 혹시 달라붙었을지도 모르는 풀떼기를 걱정해 치맛자락을 탁탁 털었다. 늘 소매 안에 넣고 다니는 회중시계를 꺼내들었다. 전속 하녀에게 방으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간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혼자 정원에 있고 싶었지만 하녀의 손에 강제로 끌려가느니 스스로 당당하게 감옥 안으로 들어가는 게 훨 나았다. 린은 엄연히 당주 로벤 드로스트의 양녀로서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신분이라고 하는데도 하녀에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해야 하는 처지였다. 로벤의 명령이기도 하지만 린을 대하는 하녀의 태도 자체가 결코 윗사람으로 대할 생각이 없다는 식이었다. 하녀로서의 의무는 다 충실히 이행하지만 그 눈빛에는 은밀한 깔봄이 있었다. 그것을 보고서야 조국의 위상이 얼마나 낮은지를 통감했다.


  동양인으로서 받는 차별, 더욱이 본디부터 대국인 중국도 서양을 위협할 정도인 동아시아 군국주의 원수 일본도 아닌 이름과 존재조차 알려져 있지 않은 고향이었다. 세계정세나 시국의 흐름으로 힘없는 나라의 백성임을 자각하지 않는다. 이토록 사소한, 하녀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 속에 뼈저린 나와 내 조국의 나약함이 모두 들어있다. 비참하고도 우습다.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난리통에 태어나 자랐어도 양반은 양반, 상것을 부리는 데 너무나도 익숙했었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더냐. 결국 우물 안 개구리를 거느리는 똑같은 개구리가 아니었던가. 신분의 특권, 지위의 텃세 다 부질없었다. 억압이란 다 제도의 옷을 입고 사람의 마음에 스며들어 역사 속에 뿌리박히는 게 아닌가. 당연하게 누려오던 것을 당연하지 않은 곳에 와보니 잘못이었을 알겠다. 자유는 평등해야 하는 것이었다.

 
  린은 이곳에서 하늘을 바라볼라 치면 언제나 시야에 걸리는 높은 담을 보았다. 키의 세 배쯤은 되어 보이는 저 벽은 물리적인 위압감을 넘어 정신적인 패배감을 안겨주기에 적합했다. 절대로 저기를 넘어서 나갈 수 없을 거라는 무력감을 말없이 심어주었다. 궁궐도 아닌데 경복궁의 돌담보다 껑충 높은 이 잿빛의 담벼락이 언제나 린을 보고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에 들어와 한시도 포기하지 않고 탈출구를 찾아 헤맸다. 안에서 저 벽에 구멍을 낼 수는 없었다. 그 때 바깥에서 벽을 뚫고 접근해온 것이 초록색 머리칼과 하얗게 그슬린 눈동자가 인상적인 같은 염동력을 지닌 미쉘 모나헌이라는 아이였다.


  린을 각계각층 인사들에게 인사시키기 위해 로벤이 딱 한 번 이 저택 밖으로 린을 데리고 나간 적이 있었다. 낯선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서 화려한 파티장에 갔을 때 어떻게 알고 왔는지 린이 혼자 있을 때를 노려 접촉을 시도했다. 자유를 주겠다고 했다. 거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자신만만한 것은 아니지만 확고한 의지가 낯가림이 심한 린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당연한 듯 대가를 요구하는 미쉘에게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그 대가를 제한구역이 너무 많은 이 저택 안에서 은밀하게 탐색해왔다. 한 줄기 희망처럼 내려온 동아줄이다. 그럼에도 저 장벽은 린에게 자꾸만 체념을 주입시키려는 듯 파란 하늘이 오롯이 눈으로 쏟아지는 것을 끊임없이 방해했다.

 


  “오직 자유……!”

 
  린은 가슴 한가운데 두 손을 모아잡고 간절하게 중얼거렸다. 조국에서도 한창 목놓아 부르짖고 있을 단 두 마디이다.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아야 하는 인간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고자 할 분이다. 일신의 구속됨에서 풀려나고자 한다. 저항하지 않는 것은 토사구팽의 처지에 놓인 줄도 모르는 멍청한 개나 다름없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열사들에 비해 린의 투쟁은 너무나도 하찮고 소인배적인 발버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 네덜란드는 대한민국이란 이름을 빼앗은 저 무도한 왜놈들과 각별한 수교를 맺어왔다. 왜는 쇄국 도중에도 오로지 이 화란(和蘭)과는 계속 관계를 지속해왔다는 역사를 배웠다. 싫지만 억지로 드로스트로서 가문의 역사를 배우면서도 가문이 일본을 중심으로 동양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음을 알았다. 원수의 나라와 친한 나라의 울타리에 어찌 매어 있으랴. 이곳에서의 탈출은 힘없는 한국인으로서의 사소하지만 통쾌한 복수가 될 터. ‘오직 자유’,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오르는 희망찬 구호를 가슴에 새기며 린은 다시 감옥이란 이름의 자기 방으로 당당히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내딛으려 했다.

 
  “…!!”


  갑자기 입이 틀어 막혔다. 한쪽 팔도 꽤 강한 힘으로 잡아당겨졌다. 영문을 몰라 되는 대로 나무 기둥 뒤로 끌려가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능력을 쓰려고 손을 들었다.

 
  “걱정 마. 널 해치려는 게 아니야. 난 전령사일 뿐이거든.”


  무례하게 습격해온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유쾌한 어조의 말이 뒤에서 들려왔다. 변성기 도중일까. 낮고도 높은 묘한 소년의 목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입을 막고 있는 손도 여성의 것도 아니고 성인 남성의 억센 뼈마디가 느껴지는 것도 아닌 부드럽지만 힘있는 손이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팔의 위치로 가늠해볼 때 키도 비슷하거나 좀 더 큰 정도일까.

 
  “네가 린 드로스트지?”
  “…….”
  “아이 참, 나 수상한 사람 아니라니까~. 뭐, 이 저택 안에서 동양인은 너 한 사람뿐이니 대답하든 안 하든 네가 린인 건 확실하겠지만……앗! 그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내가 계속 입을 막고 있었네? 헤헷-.”


  다소 경박하지만 어쩐지 상대의 긴장을 느슨하게 풀어놓는 재주가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이 침입자가 정말로 자신을 해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어딘지 모르게 확신하기에 가능한 감상이지만.

 
  “음― 그럼 이렇게 말하면 믿을까? 미쉘 친구야, 나.”
  “…!”


  린은 소년의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어깨를 움찍 튀었다.

 
  “손 놓을게. 비명 안 지를 거지? 믿는다~?”


  린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장 입주변의 갑갑함이 사라졌다. 팔에서도 손이 떨어져나갔다.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은 안 했으니 봐도 상관없다는 소리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린은 돌아보았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그는 검은 로브로 전신을 가리고 있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언제나 사라지지 않고 거기 있었을 것만 같은 미소 걸린 입술뿐이었다.

 
  “소녀에게 찾아오신 까닭이 무엇이옵니까……?”


  린은 떨리는 목소리로 전령사에게 물었다. 그는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하는 듯 린의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한층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추었다.


  “먼저 확인할 게 있어. 대가는 준비했어?”


  린은 갑자기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며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린의 확신에 찬 태도를 보고 다시 한 번 신중히 주변을 살핀 뒤 입을 열었다.

 
  “잘 들어. 오늘 밤 너를 데리러 사람이 찾아 올 거야. 대가를 가지고 기다리도록 해.”
  “그게 무슨…….”


  린의 말은 듣지도 않고 전령사가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다 싶자 눈 깜짝할 새 시야에서 사라졌다. 황급히 고개를 들자 파란 하늘에 점이 되어 멀어지고 있었다. 린은 이제는 파랗기만 한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더없이 기쁜데도 얼굴을 서글프게 일그러뜨린 채로.

 


  “드디어 여기서 나갈 수 있어……?”
  “무릴 걸요?”
  “…!!!”


  시간 간격을 얼마 띄우지도 않고 심장이 놀라 벌렁거리는 건 정말 건강에 좋지 않은 일일 것이다. 스스로에게 조국의 말로 중얼거린 기대에 찬 물음에 답이 되돌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돌아보자 가문의 스카우터 헹크가 능글거리는 웃음을 만면에 띠고 린을 주시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계셨사옵니까?”
  “음~ 아가씨 방으로 찾아가니까 하녀한테 정원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 나와봤더니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시더라고요. 그러다가 별안간 웃기 시작하고 혼잣말을 하고……. 근데 왜요? 제가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지 알아야 할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보죠~?”
  “…….”


  린은 적의에 찬 눈길로 헹크와 마주보다가 더 들을 것 없다는 듯 그를 지나쳐 방으로 가려했다.

 


  “한서린(韓西麟).”
  “…!”


  린은 자신의 ‘진짜’ 이름이 들려오자 우뚝 걸음을 멈추고 헹크를 돌아보았다.


  “한현수(韓弦修)와 이윤임(李輪任)의 여식.”


  린의 눈동자에 순간 평소 얌전하고 내성적인 그녀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강한 불길이 타올랐다. 성큼성큼 헹크에게로 돌아간 린은 그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린의 손이 얼얼할 정도로, 헹크의 창백한 뺨 위에 금세 벌건 손자국이 떠오를 정도로 매서운 손찌검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화가 치밀어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은 때린 린이었고 아픈 듯 잘생긴 눈썹을 찡그리면서도 진하게 미소짓는 것은 헹크였다.

 

  “내 아비와 어미의 존함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헤에― 아직도 그 사람들이 그리우신가 봐요?”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버이다! 삼강오륜의 도리도 모르는 이양의 금수놈이 어디서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것이더냐!”
  “네에? 자식을 그 금수에게 팔아넘긴 그 사람들에 비하면 저는 사람이 아닐까요~?”
  “네 이놈…!”


  “똑똑히 들어, ‘린 드로스트’.”


  헹크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단번에 냉혹하게 변모시키더니 린의 턱을 강하게 잡아 추켜올리고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처음 보는 그의 모습에 린은 경악에 물들며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는 린과 단둘이 있는데도 처음으로 굳이 네덜란드어를 구사했다.

 
  “넌 여기서 못 나가. 드로스트의 이름을 짊어지게 된 이상 예전의 너는 이미 없어. 한서린은 사라졌다고. 너의 조국조차도 이미 ‘딴나라’가 되어 사라지지 않았나? 자유를 꿈꾸지 마. 얌전히 이곳에서 드로스트로서 가문을 위해 살다 죽어.”


  잔인한 말을 다트처럼 연달아 꽂은 헹크는 깜빡거리지도 않던 날카로운 회색 눈동자로 겁에 질린 린의 검은색 맑은 눈망울을 샅샅이 핥듯이 감상했다. 이윽고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더니 그는 순순히 린의 턱을 놓고 거리를 두고 섰다. 린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고 있지 못했다.

 


  “무엇보다 아가씨가 드로스트를 제발로 걸어 나갈 수 없는 진짜 이유, 그게 뭐냐면요…….”

 

  헹크는 여전히 굳어있는 린을 그냥 지나칠 듯 옆에 서서 어깨를 가볍게 짚고 귓가에 최후통첩을 잔인하게 흘려보냈다. 린의 얼굴이 두려움을 떠나 절망의 색으로 완연했다. 시퍼레진 낯빛으로 비틀거리며 린은 잔디밭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헹크는 망연자실한 린의 뒷모습을 보며 끝나지 않은 말을 이었다.

 
  “어쩜 우리 아가씨는 그리도 심성이 고우실까~? 공양미 삼백 석을 바쳐 아비의 눈을 뜨이도록 하고자 한 심청이의 심정으로 머나먼 이국땅으로 건너오셨을 텐데 그것마저 물거품이 되었으니 말이야. 그것도 다 자기 때문에…….”


  혼잣말이었으나 린이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연극조의 과장된 성량으로 헹크는 말했다. 이내 결코 누구의 앞에서도 약한 모습 보인 적 없던 소녀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헹크는 황홀한 얼굴로 통곡을 애써 삼키고 흐느낌으로만 표출하는 자그마한 몸을 내려보다가 조용히 소녀의 치맛자락에 손수건을 떨어뜨리고 사박사박 잔디밭을 가로질러 정원을 떠났다. 아까 들렀던 린의 방을 다시 향해서, 하녀에게 한동안 계속 아가씨를 혼자 내버려두라고 말하기 위해.

 

 

* * *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다. 그건 인위적으로 세워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으로서 본디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결코 허물 수 없는 본원적인 장벽이다. 다만 그 벽은 누구를 대하느냐에 따라서 결코 넘지 못할 고층 빌딩만큼 높아지기도 하고, 벽이 아니라 그냥 디딤돌인 건가 싶을 정도로 낮아지기도 하며 딱 팔꿈치를 대고 기대기 좋을 정도로 적당한 높이가 되기도 한다. 벽과 벽을 잇는 사다리가 놓아질 수도 있고 시냇물이 흐르기도 하며 천 길 낭떠러지가 생기기도 하는 그런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인 영역이 존재한다. 휴톤은 겨우 발등 정도 높이가 되기나 할까, 벽이 아예 없는 사람은 아닌가 할 정도로 타인에게 허물없다. 남을 위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는 실없고 줏대없는 사람이라는 게 아니라, 특유의 친화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쓸데없는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늘 먼저 앞장서서 남들에게 다가가 돕는다. 언제이건 든든한 아군이 되어주는 그의 인품에 반해 결코 배신하지 않는 아군이 되어주는 사람이 자연스레 그의 주변에는 모여들었다.

 
  다른 사람과 친해져서 결코 손해 볼 것 없다는 게 휴톤의 지론이었다. 계약만 가지고 지속되는 사무적인 관계는 불편하고 어색할 뿐이다. 세상에는 맞지 않은 사람이란 게 분명히 있어서 모든 친구들과 깊은 친밀함을 유지할 수야 없겠지만 실없는 농담 따먹기를 해도 허무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감은 좁혀야 한다. 좋은 술친구인 데미언이 모든 사람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과도하게 신경을 쓰는 것까지야 아니라도 서로 거리낌이 없는 데까지 나아가는 게 좋다. 적이 아닌 이상 남으로 계속 남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된다는 생각으로 사람과 만나야 한다. 그 신조는 서른아홉 해를 살아오던 도중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타인을 무척이나 싫어하고 낯가림 심한 트리비아의 가장 친한 친구자리를 손에 넣을 수 있지 않았던가. 그렇게까지도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인종은 처음 봐서 도중부터는 거의 승부욕이랄까 오기가 발동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와도 친하려 들지 않는 사람의 특별한 위치를 손에 넣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짜릿했다. 트리비아가 아닌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또 할 수 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확답은 못해주겠다. 다만 확실한 건 트리비아 같은 사람은 둘도 없으니 그런 걱정은 애초부터 필요하지 않다. 고고하고 도도하기 짝이 없는 여왕님의 옆에 있는 것을 허락받은 뒤부터는 그 누구하고도 친해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훨씬 강해졌다.

 
  하지만 그건 과신이나 자만이었을까. 휴톤의 세계는 어쩌면 생각보다 좁았는지도 모르겠다. 천하의 아론 휴톤이 눈치란 걸 보게 될 줄이야. 아무리 악의가 없더라도 너무 눈치없이 막말한다고 트리비아에게 핀잔듣기 일쑤였는데. 나중에 받을 칭찬이라도 예약해놔야 하는 건 아닐까. 휴톤은 본의 아니게 어느새 오른쪽에 타라 왼쪽에 빅터를 둔 틈바구니에 끼어 힐끔힐끔 양옆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속해있는 지금 팀 구성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휴톤은 앨리셔 캘런의 습격 용의자로 찍힌 상태였다. 커다란 전력이 되기 때문에 이번 작전에 참가시켰다고는 하나 회사측에서는 심증에 가깝다곤 해도 못 미덥기는 매한가지인 것이다. 따라서 같은 지하연합 소속 능력자 하고만 팀을 짜는 것은 안 되었다. 결과적으로 휴톤을 견제할 만한 헬리오스의 누군가와 한 조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문제는 그 대상이었다.


  로라스는 아마 팀 조직을 할 때부터 같은 팀원으로 거론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앤지로부터 1차 회담 때도 본인이 회사 소속인 걸 알기는 하는지 노골적으로 자신을 감싸고돌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평화의 시대에 우연히 그를 구해준 일로 인해 이렇게까지 전폭적인 신뢰를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어쨌거나 그는 논외였을 것이다. 드렉슬러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야말로 시간 낭비라고 공언하고 다니는 개인주의자이니 역시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외되었을 것이다. 자네트는 그녀가 전쟁 경험이 없는 것을 고려하여 그래도 비교적 편한 같은 회사 소속의 노련한 윌라드와 한 조를 이루게 했을 터. 호타루는 아직 미성년임에도 참전한 것을 보아 엄청난 전력이라는 의미일 테지만 회사의 정치에 개입하기에는 아직 어리다. 다이무스는 자연스레 이글과 한 조를 이뤘다. 타라가 같은 팀이 되는 것은 필연이었다. 자기 양녀를 해쳤을지도 모르는 불한당을 직접 감시하라고 명왕이 친히 직속 비서에게 명령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빅터를 끼워 넣은 것은 빅터가 이번 작전에 참가하게 된 목적의 특수성으로 인한 것이다. 능력증폭자 헬레나 하스의 탐색은 근본적으로 빅터에게는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회사-연합에게는 중대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첨예한 정치적 문제였다. 한 마디로 막대한 이권이 걸린 일이다. 헬레나를 자기 세력으로 영입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물론 그의 아들인 빅터까지도 딸려오는 것은 당연지사. 명왕의 뜻은 곧 헬리오스의 뜻이니 그의 의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서포트하는 유능한 비서 타라가 아니고서 누가 그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휴톤 역시 토니에게서 헬레나를 우선적으로 사로잡는 게 중요함을 강조받지 않았던가. 그게 아니라도 빅터가 이 낯선 어른 투성이인 곳에서 그나마 안면이 있는 게 휴톤인 까닭도 있었다. 헬레나의 흔적을 찾기 위해 트와일라잇 내 복제 코어레너드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전한 소년을 도와준 적이 있었다. 어린애 치고 악착같이 어른한테 도움을 구하려 하지 않는 그 당참에 대견스러우면서도 기가 찼던 기억이 생생하다.

 
  휴톤은 타라가 일종의 감시역으로 한 조를 이뤘다는 사실이나, 맹랑한 반항기 청소년인 빅터의 독고다이에 관해서 뭐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화기애애함을 신경질적일 정도로 깐깐한 커리어 우먼과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들어도 싼 건방진 소년 사이에서 바라는 것은 무리일 터다. 그저 그 사이를 잘 다독거려 거북하지 않게만 만들어보려 했는데 무리였다. 전시 상황이라 긴장하고 있는 탓도 있겠지만 휴톤이 꺼내는 말에 타라도 빅터도 무어라 대꾸해주는 법이 없었다. 타라는 하찮은 수다에 어울려줄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는 식이었고, 빅터는 스스로 예외자가 되려는 뚝심이었다. 전투에서 손발이 잘 맞으려면 마음 또한 잘 맞아야 하는데. 작전 결행 전에 행한 합동 훈련을 떠올리며 휴톤은 한숨을 쉬었다. 항상 팀으로 활동하여 1선에 서서 후방 지원을 받는 형태로 싸워왔던 터라, 다분히 혼자 무쌍하게 싸우는 스타일의 두 사람이 낯설었다. 어느 정도 합을 맞추고 왔다고는 하지만 자기답지 않은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자자, 다들 너무 긴장하지 말자고. 너무 굳어있다가는 정작 몸을 풀어야 할 때 근육이 제힘을 발휘 못한다니까?”
  “…….”  “…….”


  주눅들 리도 없이 휴톤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금 말을 꺼냈으나 공허한 메아리였다. 그냥 입다물고 앞만 보고 걷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사나이 사전에 포기란 없다.


  “특히 빅터, 훈련 때도 그랬지만 넌 능력 특성이나 전투 스타일로 보건대 어디까지나 원거리 지원이니까 너무 전방에 서려 하지 말고. 내가 앞에서 적들을 손보고 있으면 넌 마무리를 해줘.”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휴톤이 다짜고짜 머리칼을 흐트러뜨리는 것도 그렇고 말 내용 자체도 자기를 무시하는 것처럼 들렸는지, 빅터는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매만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서 다 해내는 것에 익숙한 아이라 그런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목적을 달성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나보다.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고독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청소년의 자뻑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저런 식으로 가다간 정말로 고립되고 말 텐데.

 
  “……꼬마야? 어른한테 말하는 게 참 예쁘기도 하구나.”


  여태까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던 타라가 한껏 비꼬는 투로 말을 꺼냈다. 그녀는 여전히 똑바로 고개를 쳐들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분명 빅터를 겨냥해서 한 말이 틀림없었다. 빅터의 태도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눈치인 건 진즉 알고 있었지만 결국은 여기서 폭발한 모양이다. 빅터는 아까 전보다 훨씬 더 미간을 좁혔다.


  “내 이름은 빅터 하스다. 꼬마가 아니야.”
  “어머. 어린애더러 꼬마라고 하는 게 그렇게 기분 나빠할 일인가?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자기 주제도 모르는 게 꼬맹이지 뭐긴 뭐야?”


  빅터가 여전히 자기를 보지도 않고 타라가 코웃음치며 하는 말에 항변하려 입을 연 순간 무전기의 치지직거리는 착신음이 들렸다.


  “여기는 웨슬리, WB 두 시, 일곱 시, 열한 시 방향 건물에 매복하고 있는 저격수 발견. 주의해서 이동하라, 오버.”


  웨슬리가 전해준 정보에 살벌했던 공기가 단번에 긴장으로 차갑게 식었다.


  “여기는 Guardian. 알았다, 오버.”


  타라가 아까 빅터를 조롱하던 티를 싹 걷어낸 날카롭고 냉정한 목소리로 무전기에 대고 답했다. 휴톤 역시 진지한 눈길로 주변을 살폈다.


  “상공 비행 능력자들도 돕겠지만, 몇 시 방향부터 치지?”
  “저격 최적 지점에 우리가 들어온 순간 아마 세 발이 일제히 날아들 거야. 그 때 난 필연적으로 후방이 되는 일곱 시 방향을 치겠어. 그러니 당신은 지상에서 이 아이를 가드하도록 해. 저격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혼란을 틈타 어디서 보충 인원이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나도 내 몸 하나는 지킬 수 있…….”


  “빅터 하스, 아이가 왜 어른 말을 들어야 하는지 아니?”


  타라는 팔을 한 번 휘감아 올렸다 홱 뿌리치듯 내리며 팔에 불꽃을 휘어 감았다.

 


  “경험이 많기 때문이, 야…!”

 
  총성이 귀를 찌른 순간 빅터는 휴톤의 억센 팔에 안겨 홱 옆쪽으로 끌려갔다. 동시에 타라가 서있던 자리에 커다란 유성이 떨어지며 그 후폭풍과 동시에 엄청나게 뜨거운 불꽃에서 발산되는 염압(炎壓)의 힘을 빌려 그녀는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이어 일곱 시 방향에 있던 건물에서 폭탄이 터진 것 같은 굉음이 들려왔다. 그 속에 자그마하게 사람의 비명소리가 섞였다. 아니나 다를까, 인기척이라고는 없던 건물 그늘에서 강화인간들이 쏟아져 나왔다. 역시 저격 미스에 대비하여 병력을 배치해둔 것이다. 휴톤이 빅터를 놓고 몰려드는 강화인간들을 강력한 주먹으로 상대하기 시작했다. 빅터는 갑작스레 벌어진 급박한 상황에 당황했다. 저 앞에 있다가도 그런 빅터를 노리고 달려드는 강화인간들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와서 막아주는 휴톤을 보고 퍼뜩 눈을 떴다. 입술을 꼭 깨문 빅터는 곧장 손가락을 놀려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로 휴톤의 등 뒤를 노리는 강화인간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휴톤의 사각에 잠깐 빅터가 위치한 순간 빅터의 뒤에서 경동맥을 정확하게 노리고 칼을 꽂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빅터는 윈드러너로 날아오르려 했으나 본능적으로 알았다. 늦었다.

 
  살기등등하면서도 무심하기 짝이 없는 강화인간의 얼굴을 얼핏 보고 빅터가 눈을 질끈 감아버린 순간 귀 바로 옆에서 펑 하는 폭발음이 들렸다. 빅터의 목덜미에 닿은 칼날이 끝에 살갗에 핏방울만 약간 영글고 챙강 땅으로 떨어졌다. 황급히 눈을 뜨자 코앞에 끔찍하게 불에 타 녹아내린 소사체의 얼굴이 있었다. 그것은 곧 털썩 하고 기울어 바닥으로 엎어졌다. 그 궤적을 무심코 눈으로 따라가다가 곧 굽이 낮은 여성의 스트랩 힐에 그 지나치게 익어 흐물흐물해진 과실 같은 머리통이 콱 하고 그로테스크한 소리를 내며 짓밟히는 것을 보아야 했다.

 
  “어머, 급해서 덜 구워졌네. 내장 삐져나오는 게 싫어서 레어가 아니라 웰 던으로 하려고 했는데. 물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미디움-레어지만.”
  “어이 어이, 애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어.”


  강화인간을 다 처리한 휴톤은 넋 나간 얼굴로 시체를 쳐다보는 빅터의 두 관자놀이를 잡고 강제로 들어올렸다. 빅터는 그제야 자기가 본 게 무엇인지 인식이 됐는지 가까이에 있는 벽을 부여잡고 토악질을 해댔다. 휴톤은 타라를 ‘지나쳤어.’라는 얼굴로 쳐다보며 소년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이제 좀 알겠니? 전쟁터는 너 같은 어린애도 봐주지 않는 곳이야. 아까 네가 해치운 목각인형 몇 마리 가지고 우쭐할 데가 아니란 말이야. 그런 점에서 경험도 부족하고 능력을 다루는 기술도 부족한 넌 걸림돌이야.”
  “이봐, 타라…!”
  “그러니까 얌전히 보호받도록 해. 이 어른들은 너 하나 지키지 못할 정도로 약하지 않으니까. 뭐, 패닉에 빠지지 않고 깨작깨작 도움이 된다면 더 좋겠고. 기대는 안 하지만.”


  타라의 말이 아까 자기 목에 꽂힐 뻔했던 섬뜩한 칼날의 아픔을 대신 체감하게 해주듯 푹푹 아프게도 찔러왔다. 빅터가 되받아칠 수 있을 만한 요소는 하나도 없었다. 전부 사실이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결국 자신은 아직 보호받아야 할 처지였다.

 
  “자, 어서 가. 난 시간 낭비가 싫거든. 네 엄마도 찾아야 하고, 그림자 여왕님도 탈환하려면 바빠. 시간 외 수당도 안 나올 걸.”


  타라는 손에서 스르르 화염을 없애며 뚜벅뚜벅 앞장서 걸었다. 그녀는 무전기로 본부에 상황을 알렸다. 빅터는 입가를 닦으며 무릎을 털고 일어섰다. 휴톤은 그런 소년을 걱정스러운 듯 보더니 어깨를 탁탁 두드려주었다.

 
  “뭐, 그렇다는 얘기야. 이 어른들 좀 믿어보라고.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휴톤이 씨익 웃으면서 해주는 말에 어쩐지 빅터는 얼굴이 근지러웠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의지하는 건 자기 성미에 맞지 않는다. 적어도 1인분, 불의 마녀가 말했듯이 이렇게 한심하게 급작스러운 상황에 대응도 못하고 주저앉을 수는 없다. 적어도 어머니의 앞에 섰을 때, 나는 어머니 없이도 이만큼 훌륭하게 컸노라고 당당하고 싶었으니까.

 

 

* * *

 

 

  자석이 된 것 같다. 그냥 단순한 쇠붙이라면 N극이든 S극이든 구분없이 더 가까운 자기장에 끌려갔을 것이다. 강제하는 자력에 그저 휩쓸릴 뿐이라면 차라리 편했을까. 북극과 남극에 한 팔씩 붙잡힌 채 어느 쪽으로도 향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기분이다. N과 S의 성질을 극성(極性)으로서가 아니라 핵에 동시에 품고 있는 결함품이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고 힘의 균형이 비등해서 움직이지 않는 상태이다. 과부족없이 어떤 중간 지점에 서있는 건 연합과 회사와의 관계에서라면 더없는 미덕일 터. 하지만 뚜렷한 목표가 있고 그것을 가장 우선시해야 할 때에도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는 건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그 목표가 자신의 애타는 마음과 일치하는데도 거기에만 몰두하지 못하는 건 기만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트리비아를 다른 누구의 손도 아닌 자신의 손으로 구하겠노라고 그녀가 사랑하는 밤을 번뇌하며 되뇌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 또한 연인을 구출해내는 것이다. 고민할 여지가 어디에 있는가? 자신의 마음이야 어떻든 그녀를 구해내야 하는 객관적 현실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녀의 연인으로서 거리낄 것 없이, 아니 오히려 더 떳떳하고 정당한 명분을 하나 더 가지고 구할 자격을, 특권을 지닌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사적인 감정에 몰두해 돌진한다 해도 비난할 사람 하나 없을 최적의 조건이다. 마치 천명이 아닌가. 세계가 나의 행동이 옳다고 기꺼이 등떠밀어주는 듯한 행운이라 해도 좋을 텐데. 그럼에도 앞을 보면서 자꾸만 고개가 뒤로 돌아가는 것은 얼음같이 차가운 마음 때문일까?

 
  남겨온 사람들을 생각한다. 작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마음에 걸렸던 문제였다. 1차 병력이 투입되고 기회를 엿봐 에이스들은 마천루로의 잠입을 최우선시한다는 것. 그것은 마치 에이스들을 제외한 나머지 병사들을 미끼 취급하는 것과 진배없지 않은가. 아무리 뒤이어 2차 병력을 투입한다고는 하지만 메트로폴리스 외곽에 가장 많은 병력을 배치했다고 한다면 더욱 전투력이 높은 에이스들이 적극적으로 전투에 개입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웨슬리의 무전 신호가 오는 대로 격전지에서 토마스와 따로 빠져 나와 지금에 이른다. 오히려 바로 그 자리를 뜨지 못하는 자신에게 어서 가라고 한 것은 그들이었다. 동료들은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인 눈으로 루이스를 보았다. 너무나도 무거운 희망과 신뢰를 떠안고 루이스는 애써 등을 돌렸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앞만 보고 가는 것이  루이스가 해 마땅할 일일 텐데도 갈등에서 빚어지는 초조함은 차마 떨칠 수가 없다.

 


  “선배, 침착하세요.”


  묵묵히 나란히 서서 걷고 있던 토마스가 그렇게 말한다. 후드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았을 텐데도 아직 어리지만 영리한 녀석은 무언가 낌새를 알아채기라도 한 걸까. 무언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유례없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다. 좋은 눈빛이다. 선배로서 그런 감상을 돌연 품었다. 


  “트리비아 누나를 구하고 싶단 마음은 저도 같아요.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선배가 그렇게 동요하면 되겠어요? 선배가 저한테 그 때 말했잖아요. 어느 때곤 침착하라고.”


  토마스는 루이스가 트리비아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초조한 줄 아는 듯했다. 그것도 있지만 그게 다가 아님을 기껏 간언하는 후배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때’라면 토마스가 자신을 동경해 영국으로 건너와 지하연합에 투신한 이래로 처음 참가한 안개수집장치 파괴 작전을 이르는 것일 터. 작전 전야, 소풍에 들뜬 꼬마 마냥 설렌다고 기쁜 듯이 말하는 녀석에게 자기답지 않게 호되게 화를 낸 적이 있었다. 예상대로 토마스는 사람이 죽어나가는 사태를 처음 보았고 목숨의 위협이 몇 번이고 찾아드는 난리통에 당황했다. 그 때 그저 ‘침착해.’라고 한 마디 했을 뿐이지만 녀석은 자신의 눈빛에서 무얼 읽었는지 결의에 찬 얼굴로 진지해지며 곧잘 제몫을 하기 시작했다. 작전이 종료하고 나서 황송해질 정도로 사과를 거듭한 미워할 수 없는 후배. 당시의 조언을 되돌려줄 수 있을 정도로 그 사이 또 한 키 성장했나보다.


  같은 결정사로서 소위 영웅이라고 언젠가부터 불리기 시작한 자신을 찾아온 패기 있고 당찬 스물 초입의 토마스. 그 눈에는 자신을 향한 무한한 존경과 동시에 아직은 야망의 색을 지니지 않은 원대한 꿈이 있다. 자신있게 ‘루이스 씨를 잇는 영웅이 되고 싶어서 왔어요!’라고 밝힌 녀석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직 어리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자신의 일찌감치 버려버린 것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녀석이 부러웠는지도 몰랐다. 무엇이든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 그리고 그에 대한 노력을 할 시간과 정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같은 결정사라고는 해도 칼날같이 날카롭고 차가운 자신의 결정과 달리 소복한 함박눈 같은 포근함을 겸비한 후배다. 여전히 장난기 있고 심각해지고 싶지 않은 경향이 있다고 해도 제법 의젓해졌다. 사람들 사이에 곧잘 특유의 사교성으로 녹아든다. 심지어 그 트리비아에게조차도 싫은 내색 하나없이 ‘누나, 누나’ 하며 살갑게 굴다가 기어코 어쩔 수 없다는 식의 그녀의 미소를 얻어낸 넉살도 좋은 녀석. 부러워할 만한 자질을 많이 갖춘 건 오히려 자기라는 걸 알기는 할까.

 
  “……고마워.”


  루이스는 별말 않고 희미하게 웃으며 토마스에게 감사를 전했다. 토마스는 루이스의 기분이 한결 누그러진 게 기쁜지 헤헷 하고 웃으며 쑥스럽게 자기 뒷머리를 훑었다. 여전히 뒤통수를 잡아당겨지는 듯한 남겨온 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버릴 수는 없지만 토마스의 배려는 한결 그것을 완화시켰다. 반드시 심각하고 고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이 후배로부터 조금씩 배우고 있는 것 같다.

 


  루이스는 걸음을 멈춰 섰다. 1차 격전지를 벗어났더라도 전장의 어디에서건 적이 기다리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눈앞에 쓰러뜨려야 할 대상이 나타났다.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어야 할 텐데도 루이스는 이상하게도 안심했다. 적은 적어도 인간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습관처럼 품은 위선적인 안도. 트루퍼 부대였다. 적인 이상 해치는 일은 정당한 것인데도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결국은 해치고 말지만 그 반동이 너무나도 커서 한동안은 또 시달려야 한다. 죽음에 어찌 익숙해질까. 그게 설령 나와 아무 상관없는 누군가라고 해도.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누군가를 물리치고 영웅이라 불리고 있는 건 과연 명예롭기만 한 일일까.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토마스의 순수한 경의를 의식할 때마다 생각하는 일이었다.


  “토마스.”
  “네! 등 뒤는 맡겨주세요.”


  토마스가 주먹 쥔 손으로 자기 왼쪽 가슴을 툭 치며 기쁜 듯이 말했다.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정면을 향하자 눈에 보이지 않던 주변의 수증기가 단번에 얼어붙으며 냉기가 휘몰아쳤다. 돌격형 트루퍼 크라서스와 원거리형 트루퍼 사이어스는 허수아비처럼 미동도 않고 서있다가 인식범위 안에 두 사람이 들어오자 기지개켜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제각기 주변에 슈퍼아머를 형성했다. 트루퍼를 상대하기 까다로운 이유에는, 이동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지만 공격속도만큼은 걸출하다는 점이나 한 방 한 방의 파괴력이 탱크 맞먹는다는 점도 있지만 웬만한 공격에는 피해입지 않는 저 투명한 방어막을 두르고 있다는 게 가장 컸다. 기동성까지 갖추고 있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할 판이다. 크라서스가 전방에 몰려들면 사이어스가 후방에서 폭렬이란 이름에 걸맞게 거대 포탄을 사납게 연사한다. 그 포격을 피할라치면 크라서스는 육중한 팔을 휘둘러 대상을 박살낸다. 느리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밀도 있게 배치하는 것이 예사인데 한눈에 봐도 트루퍼 수는 상당했다.


  “근데 음……이건 좀 많네요.”
  “……어떻게든 해야지. 1차 방어선을 뚫고 동료들이 도착할 때까지 우리가 상대하는 수밖에.”
  “맞아요. 게다가 선배랑 전 결정사잖아요. 이 루트에 트루퍼를 포진해둔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자고요!”


  토마스는 긴장한 듯하면서도 지지 않겠다는 듯 힘주어 말했다. 옳은 말이었다.

 


  크라서스들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얼음능력자들은 태세를 흐트러뜨리지는 않았지만 당황했다. 크라서스의 접근속도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을 웃돌았던 탓이다. 역시 안타리우스는 기존의 성과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지 않았음이 증명된 셈이다. 그들은 죽지 않고 물밑에서 계속 강화연구를 해왔던 것이다. 악당과 진보란 말이 결부되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불현듯 ‘불법은 성실하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타인을 괴롭힐 만한 일에 부지런할 수 있는 극악무도함에는 순수한 분노가 들끓는다.

 
  “전부 얼어버려!”


  저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수증기마저 끌어당겨와 얼린 듯한 조밀한 얼음조직이 루이스가 서있는 곳을 중심으로 순식간에 솟아올랐다.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던 트루퍼들은 공격자세 그대로 얼어 동상으로 변했다. 자기를 둘러싼 모든 것이 언 절대영도의 빙하 속에서도 루이스는 홀로 얼지 않고, 얼음 안을 자유롭게 누비며 무력화된 트루퍼들을 얼음의 산탄총으로 산산조각냈다. 머리 위로 동료의 위기라도 감지한 것인지 사이어스의 포탄이 떨어지기 바빴다. 그러나 이 영구동토는 결코 깨지지 않는다. 공기중에 수증기가 존재하고 루이스가 이 얼음을 해동시킬 생각이 없는 한은.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우습게 부수는 포탄마저도 막는 차갑고 단단한 얼음 속에 있는 이 순간의 묵직한 고요를 루이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랑했다. 이 기술을 쓰는 것은 언제나 무언가를 상처 입히고 파괴하는 순간임에도.


  그러나 그 고요에 취하는 건 혼자일 때뿐이다. 연인에게는 한 번 들킨 적이 있었다. 이상스런 도취를 기이한 눈으로 쳐다볼 만도 한데 트리비아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아직 연인이 되기 전, 토니의 지침에 따랐을 뿐이라고 그녀는 말했지만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앤트워프로 날아 와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을 무렵이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것인지 눈치 채면 가만히 그 아름다운 눈동자로 응시하고 있던 그녀. 얼음이 흩어지고 다이아몬트 더스트가 되어 날릴 즈음에야 자신의 그림자 속으로 말없이 모습을 감춘 그녀. 말은 한 마디도 오고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루이스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자기 안에 있는 무언가를 그녀는 알아보았음을,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이 그녀에게 사로잡혔음을. 


  “……트리비아.”


  그녀가 미치도록 보고 싶다.

 


  “크리스탈 허리케인―!”


  루이스의 손짓 한 번에 모든 것이 얼음 입자가 되어 날리자 토마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와야 한다. 토마스가 만들어내는 눈보라는 자신의 얼음보다 무력화 시간이 길지만 그 때 토마스의 등은 필연적으로 무방비가 된다. 지금 저 기술을 쓴 것은 루이스의 원조가 곧바로 들어올 것을 믿고 한 처사다.


  그 순간 상공에서 마치 헬기라도 날아다니고 있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더욱이 바람이 있을 리 없는 이곳에서 갑자기 느껴지는 풍압에 위화감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저게, 뭐야……? 비행, 형……?!”


  크라서스와 사이어스와 전체적인 겉모습은 매우 흡사했다. 다만 등 뒤에 거대한 프로펠러가 달려 꽤 거친 바람을 일으키며 공중에 떠있었다. 더 문제는 그것이 두 팔을 토마스의 등에다 대고 뻗자 감춰져 있던 포문이 열렸다는 사실이다.


  “토마스-!”


  루이스는 결정의 길을 타고 재빠르게 토마스에게 미끄러져 갔다. 비행형 트루퍼의 팔끝이 뱅글뱅글 돌며 연사형 샷건보다 빠르고 강력한 포탄이 우수수 쏟아지기 시작했다. 토마스는 루이스의 외침이 있어서야 눈보라를 일으키는 것을 그만두고 임기응변으로 서릿발을 세우려 했으나 늦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반사적으로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러나 아무런 충격도 느껴지지 않자 조심스레 눈을 떴다. 존경하는 뒷모습과 그의 얼음이 단단히 앞을 가로막아주고 있었다. 살았다는 안도와 루이스에 대한 고마움으로 인해 한순간 아무 대응도 못한 스스로의 한심함이 뼈에 사무쳤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다 토마스는 루이스가 한쪽 팔을 감싸 쥐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눈을 벌렸다.


  “서, 선배. 팔이…!”
  “스친 것뿐이야. 미안, 늦었다.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이럴 일 없었을 텐데.”
  “선배…….”


  루이스는 자책하는 듯한 토마스의 얼굴을 보며 툭툭 어깨를 두드렸다.

 


  “지금은 저 비행형을 처치할 생각부터 하자. 사전 정보가 없는 새로운 적과 싸우는 건 집중을 요하는 일이니까.”
  “……네!”


  루이스는 무전으로 전황을 전하며 전세의 불리함을 남모르게 원망했다. 연인을 구하러가기까지 시간은 조금 더 지체될지도 모르겠다.

 

 

* * *

 

 

  “스물일곱 마리…째!”


  자기 키 만한 칼날을 안쪽으로 당기듯이 놀려 뱀이 꾸물거리는 것 같은 가벼운 참격으로 경직을 주었다. 이어 유려한 초승달 모양의 은빛 검의 궤적을 그려냄으로써 강화인간을 베어냈다. 이글은 피가 촤악 공중에 흩날리기도 전에 이미 시체가 되어 앞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한 강화인간의 등 뒤로 이동해 칼에 묻은 피를 가볍게 털어냈다. 흘긋 다이무스 쪽을 보려는 순간 무언가가 짓누르는 듯한 저항감이 전신으로 느껴졌다. 홱 돌아보자 어느 남성 강화인간을 중심으로 바닥에 기묘한 푸른빛이 반경 10미터 가량의 원형으로 일렁였다. 특수 기어인 듯했다. 중력을 1G가 아니라 2G 내지 3G 정도로 늘린 것 같이 몸의 하중을 느끼게 하는 장치일까. 아니, 실제로 중력을 조작하는 조화는 능력자가 아닌 이상 부리지 못할 테니 결국 자력과 비슷한 원리가 아닐까. 사람의 몸에도 극소량이긴 해도 철분이 빨갛게 흐르고 있지 않은가. 아마도 인간의 신체에 내재된 그 극소의 철의 무게를 몇 백 배로 느껴지게 할 만큼 강한 자력이 작용하도록 하는 원리가 있겠거니 했다.


  “핫- 우습네, 우스워.”


  이글은 지금도 느껴지는 거북함에 당황하지 않고, 이 정도는 여유롭다는 식으로 과시하듯 칼을 공중에 가볍게 한 번 휘둘렀다.


  “모래주머니 따위가 아니고 테라나이트 주머니를 달고 단련한 이 이글 홀든 님을 깔보는 것도 유분수지!”


  기어 장치를 발현하는 강화인간에게 달려가 칼을 휘두르려는 순간 이글은 주춤하며 몸을 홱 뒤로 내뺐다. 방금 전까지 그가 서있던 자리에 거대한 부메랑이 꽂혔다. 말이 부메랑이지 진행방향 쪽 테두리가 전부 칼날 처리되어 사용자의 완력만 된다면 한 줄로 늘어선 사람들의 목을 아주 깔끔히도 다단계로 베어낼 수도 있을 법한 흉기였다. 이글이 힐긋 부메랑이 날아온 곳을 쳐다보자 아이만큼이나 아주 체구가 작은 여성이 있었다.


  “거기 언니, 그 쬐그만 몸 어디에 이런 걸 던질 힘이 숨겨진 거야? 갑자기 던지면 위험하잖…우왁!”


  이글은 말을 채 다 끝내지도 못하고 갑자기 발밑이 푹 하고 스펀지라도 밟은 것처럼 꺼지자 당황해서 아래로 보았다. 멀쩡한 바닥에 갑자기 모래웅덩이가 생겨 개미지옥처럼 다리가 점점 빨려들고 있었다.


  “쳇, 성가신 것들―!”


  순간적으로 각력을 강화해 웬만하면 딛고 뛰어오를 수 없는 모래 위를 도약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공중에 뛰어오른 그의 관절 마디마디마다 보이지 않는 팽팽한 낚싯줄 같은 것이 휘감겼다.


  “엥?”


  이글은 순간 당황했으나 저항감은 곧 사라졌다. 투명한 실 같은 게 저들끼리 겹쳐 하늘하늘 떨어지는 게 보였다. 이글은 사뿐히 착지하며 시침 떼는 듬직한 등에다 대고 한 마디 던졌다.

 
  “땡큐.”
  “……주의해라.”


  이글은 무뚝뚝한 다이무스의 말에 씨익 웃으며 다시금 무섭게 날아드는 부메랑을 가볍게 피했다. 부메랑이란 무기의 가장 커다란 결함, 부메랑이 사용자의 손에 돌아오기 전까지는 빈손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확실히 저 크기에 비해서 부메랑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날아다니지만 그보다 웃도는 속도로 접근해서 해치우면 그만이다. 이글은 잠깐 위쪽으로 눈동자를 굴리더니 약간 심술궂게 웃으며 여자에게 접근했다. 여자는 지금 던져놓은 부메랑보다는 훨씬 작지만 살상력은 충분해 보이는 두 개를 재빠르게 꺼내 던졌다.


  “옳지, 옳지. 그렇게 나오셔야지. 뇌안도!”


  강한 칼날로 가볍게 부메랑 두 개를 튕겨내고 곧장 참격을 시도했다. 여자는 당황하며 칼날을 피해 몸을 옆으로 홱 내뺐다.

 
  “저런~ 부메랑은 돌아온다고. 조심해야지~?”


  이글의 말에 여자가 아차 하며 옆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여자에게 돌릴 고개라는 게 몸에서 뎅겅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이글은 부메랑이 다시 날아드는 궤도를 일부러 여자를 몰아넣었던 것이다.


  “크큭, 썰어버렸네~? 뭐, 이번에 썬 건 내가 아니지만.”


  이글은 경쾌하게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러가는 목을 재미있다는 듯 보다가 곧장 모래술사에게로 달려갔다. 기어 장치를 쓰는 강화인간은 어느새 다이무스가 처치했는지 부하에서 벗어나니 한결 더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이글의 엄청난 이동속도에 당황하며 술사는 급한 대로 모래폭풍을 일으켜 시야를 가리려는 듯했다.


  “안 보이면 못 벨 줄 알아?!”


  이글은 망설임없이 눈을 감고 기척을 좇아 정확히 술사의 목을 노리고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칼끝으로 느껴지는 건 인간의 살가죽과 근육을 끊어내는 그 독특한 손맛이 아니라 챙강 하고 같은 칼이 부딪치는 합이었다. 당황해서 눈을 뜨니 다이무스가 무표정한 얼굴로 이글의 검을 막아서고 있었다.


  “엥? 형? 형이 왜 여기 있어?”
  “……내가 할 소리다.”


  눈을 돌려보니 이글이 정작 베려했던 모래술사는 다이무스의 측면에 서있었다.

 
  “뭐야, 저 녀석. 능력이 두 개라도 되나? 순간이동을 하네? 움직이는 기척이 전혀 안 느껴졌는데.” 

  “그건 아니다.”
  “응? 그럼 뭔데?”
  “좌우가 반대다.”

 

  다이무스는 잠시 기색을 읽는 듯 주변을 살피더니 질풍처럼 빠르게 이동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냅다 베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풍경이 갈리고 그 너머에서 이 자리에서 한 번도 모습을 보인 적 없는 어느 곱사등이 하나가 나타났다. 땅바닥으로 세모지게 산산조각 난 풍경을 보며 이글을 그제야 알겠다는 듯 제 손뼉을 짝 마주쳤다.


  “아하, 거울-. 쳇, 잔꾀 따위를 부리고 앉았어!”


  거울쟁이의 술법이 깨지자 고스란히 본위치가 노출된 적들을 이글과 다이무스는 순식간에 베어냈다.


  “휘유~ 뭐, 가뿐하구만?”


  이글은 휘파람을 가볍게 불며 칼을 집으로 되돌렸다.


  “이글.”
  “어?”
  “전투를 즐기지 말라고 했다.”


  이글은 다이무스가 아까 자기 부메랑에 목이 달아난 여자의 몸을 힐긋 보며 하는 말에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뭐 어때? 세상만사 즐기면서 하지 않으면 손해라고. 그런 점에서 형은 삶의 재미의 8할은 손해 보면서 사는 팔자인데……. 아니, 근데 난 살상을 즐기는 건 아니니까 오해 말라고. 내가 무슨 변태 같은 쾌락살인마도 아니고. 난 그저 싸움을 즐기는 것뿐이야. 재미가 있어야 더 제 실력이 발휘된단 말이야.”
  “……검을 드는 건 싸움을 끝내기 위함이지 즐기기 위함이 아니다.”
  “아, 네. 알겠다고, 알았어. 어쨌거나 방금 부메랑녀랑 모래쟁이까지 합치면 스물아홉이니까……. 내가 모르긴 몰라도 형보다 많이 벴겠지?”
  “나대지마라. 서른넷이다.”


  이글은 진지하게 대꾸하는 다이무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다이무스는 순간 표정이 굳어지더니 드물게 이글의 눈길을 피하며 홱 앞장서 걸었다. 그 등을 보며 이글은 웃음을 터뜨렸다.

 
  “풉, 푸하하하- 뭐야! 그러는 형도 세고 있었구만!”
  “…….”
  “에이- 부끄러워할 필요없어. 난 다 이해하니까.”
  “……이건…….”
  “응, 응―.”
  “……직업병이다.”


  이글은 순간 다이무스가 뭔 소리를 하는 건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다가 다시 볼에 가득 넣은 바람을 터뜨리듯 웃음을 내뱉었다.


  “아하하하- 은행원이라서 숫자 세는 거에 민감하다고 할 참이야? 아, 진짜 형 완전-. 푸하하하―. 내가 졌다 졌어, 진짜.”


  더 웃고 싶지만 이 이상 웃었다가는 진짜 형제끼리 칼부림이 날지도 모른다. 이쯤 자제하며 이글은 여전히 웃음기를 싹 거두지는 못하고 킥킥대며 항복이라는 듯 두 손을 가볍게 들었다. 슬그머니 칼자루로 향하던 다이무스의 손이 도로 내려가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는 건 절대 아니다.

 


  이글은 곧 무전기로 상황 보고를 끝마치는 다이무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근데 형, 이대로라면 우리가 1등이겠어. 다른 팀들은 B지구에서 꽤나 고전하고 있는 것 같던데. 우린 C지구도 지났고 이제 곧 마천루 주변 구역이잖아. 이건 역시 우리가 짱 세다는 증거겠지?”
  “방심은 금물이다.”
  “뭘~ 형도 꽤 기분 좋아 보이는구만.” 

 

  이글은 깍지를 낀 손을 뒤통수 뒤에 얹으며 다이무스를 곁눈질했다. 임무중이니 만큼 다이무스는 여느 때처럼 진지하고 냉철하기 그지없지만, 역시 역전의 마도로스라도 순풍에 돛단배가 좋은 법이다. 일의 진행에 걸리적거리는 게 없는 건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하는 것을 은밀히 사랑하는 다이무스에게 더없이 좋을 일일 터. 더욱이 지금 트리비아를 제손으로 구해내겠다는 일념으로 굳이 이 작전에 참전하겠다고 말한 형이다. 다이무스의 지나친 집념과 책임감이 때로 밉기는 해도, 결국에는 형이 달성하고자 하는 것을 이루어내기를 바라는 것, 그러기 위한 도움이 아끼지 않겠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이글은 다이무스의 아군이었다.

 


  “이대로만 가면 좋으련만…….”


  이글은 드물게도 가볍지 않게 진한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 16에 계속.


  

*
- 이번 편부터는 시간이 매우 느리게 흐릅니다. 시간이 가기는 하지만 동시 상황이나 발생시간이 아주 근접한 사건들을 여러 편에 걸쳐서 나눠 다룬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Twilight은 이제 조금씩 절정을 향해 나아갑니다. 본격 플랜 FB, 시작합니다!

- WB는 서쪽 B 구역(West B Area)의 약어입니다.

- 세상에는 많은 종교집단이 있습니다만 모두 단 하나의 공통점으로 꿸 수 있습니다. 메이저든 사이비든 자기들이 선(善)임을 주장한다는 거죠.
- 전쟁은 싫습니다. 죽어나가는 건 정작 그것을 벌인 자들이 아니고 거기에 휘말리는 사람들뿐이니까요.
- 린이란 이름은 한국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하니 일단 풀네임의 맨 끝에 린이 위치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성(姓)일 리도 없고 중간 글자일 리도 없으니까요. 일단 성이 뭐가 제일 어울릴까 하다가 한국인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대한민국(大韓民國)의 ‘한(韓)’으로 했습니다. 중간 글자를 예(禮)랑 효(孝) 둘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예린’은 뭔가 드라마에 나오는 악녀 이미지가 강해서 폐기(전국의 예린이 여러분 ㅈㅅ), 한효린은 연예인 한효주랑 민효린을 합쳐놓은 것 같아서 폐기. 결국에는 약간의 말장난이면서도 일제강점기에 놓인 우리 민족의 아픔을 나타내고자 ‘한서린’으로 결정했습니다.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 이름을 ‘한서린’으로 하겠느냐고요? 괜찮아요! 저건 엄연히 린의 태몽을 가지고 지었다는 설정이니까. 서쪽에서 린(麟)이 나타는 꿈을 꾸고 린의 모친이 낳은 게 린이라는 배후 설정이 있음다. 참고로 린은 중국 신화나 도교 사상에 자주 등장하는 왕자(王者)를 알아보는 상서로운 능력을 지닌 상상 동물입니다. 수컷은 기(麒), 암컷은 린(麟) 합쳐서 ‘기린’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린의 엄마 아빠 이름은 걍 대충 양반 냄새 나는 걸로 지었음다.
- 친구가 물었더랬습니다. “같은 염동력자인데 왜 미쉘이랑 피터만 눈이 그렇고 린은 멀쩡하지?” 저는 답했습니다. “그, 그러게?” 진짜 왜일까요. 우리 한 번 다같이 이야기해봅시다. 제일 참신한 답변을 해주신 분께 드릴 건 음슴. ㅇㅅㅇ
- 루이스는 사실 사이퍼즈의 주인공(급) 캐릭터라 그런지 미묘하게 더 신경을 쓰게 됩니다. 전형성을 띠기는 했지만 여러모로 더 복잡한 내면을 지닌 진짜로 복잡한 녀석. 뭔가 소년 만화류의 정의감이나 책임감을 가졌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둡고 고지식한 면도 지녔고. 물론 그래도 루이스의 가장 핵은 “아무도 죽게 하지 않겠어.”라는 대사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진지함과 중2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죠.
- 휴톤이 친화력이라면 토마스는 사교성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 선후배 관계 조으다. 사실 반드시 선배만 후배에게 뭘 가르치는 건 아니죠. 선배가 후배에게 배울 때도 많습니다. 또 배우는 걸 두려워해서도 안 되고요.
- 비행형 트루퍼의 이름은 ‘페가수스’입니다. 돌격형이 크라서스고 원거리형이 사이어스니까 왠지 ‘~스’ 돌림으로 해야 할 것 같다는 묘한 강박관념에 의해 나온 이름입니다.(라임에 대한 집착) 게다가 페가수스 날개 달린 환상의 말이기도 하고요. 인게임에 만약 적용시켜 본다면 기존 트루퍼가 다 그렇듯이 건드리면 날아오릅니다. 생겨난 그 자리에서 정사각형으로 10X15칸 정도 범위에서만 날아다니고 그 밖으로는 나가지 않습니다. 반피 이상 깎이면 격추되며 지상에서 두 팔에 장착된 연사형 포탄을 발사합니다. 그런데 이 트루퍼의 함정은 원캐가 없으면 잡기 힘들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네요.ㅋㅋㅋㅋ 특히 3단계부터는 잘 죽지도 않아서 떨어뜨리기도 힘들 텐데.ㅋㅋㅋㅋ
- 테라나이트로 만들었다고 되어있는 아이템은 커먼이나 언커먼 주제에도 무겁더라고요. 진짜 레어랑 유니크도 아닌 주제에 무게를 높게 설정하는 건 에바 아닙니까. 레어 유닠 없는 것도 서러운데 수리비도 더 내놓고 이속도 미묘하게 감소되어야 하는 더러운 세상 ㄴㄴ해.
- 자연원소 가지고 싸우는 사이퍼들과 무기 들고 싸우는 사이퍼들이랑은 확실히 전투신을 느낌이 확 다릅니다. 확실히 신체의 동세나 장면 계산은 무기를 든 쪽이 훨씬 더 복잡합니다. 덕분에 연출은 더 살지만. 그래도 전투신 쓰는 건 예나 지금이나 어렵습니다. 아직 한참 초보적인 수준일 뿐.

- 오탈자 및 이상한 문맥 지적, 다양한 질문 환영합니다.

- 깨알 같은 전작 홍보.
 「은폐」[피터미쉘데샹](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3763240)
 「유도」[데샹미쉘피터](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4004813)
 「호접지몽」[다이무스](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6171648)

- 이번 화의 소재는 다음과 같습니다. 

 

 

 

   

 

 

 

 

Ps.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괜찮다면 기다려주셨으면 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이쿠소 님을 비롯한 이 Twilight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한 가지 당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질문을 하실 때는 되도록 ‘이미 쓰인 것’에 대해서 해주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쓸 내용’과 관련된 사항에 관해서는 가급적 질문을 삼가주십시오. 물론 위의 질문은 엄연히 플랜 FB 참전 명단에 레베카가 있고, 전편에서 아이작이 ‘거슬리는 기억’ 운운해서 그걸 토대로 궁금해 하셨으리라 충분히 이해합니다. (호타루도 마찬가지겠죠?) 그러나 2차 창작의 특성상 이미 등장인물의 어떤 성격이고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이미 알려진 상태입니다. 그렇게 보면 그 캐릭터가 출연 여부 자체가 빙산의 일각 정도이긴 해도 하나의 미리니름(spoiler)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추천보다 질문을 원한다고 공언한 것은 저이고, 저 말고도 세계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알고자 하시는 분이 계셔서 저는 그저 기쁩니다. 어쨌거나 이 보잘것없는 글을 읽고 활발한 반응을 돌려주시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감사하고 기적 같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나름대로 분석한 세계관이나 인물상이 어떤 식으로 이 Twilight 안에서 형상화되는지를 부디 느긋하게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질문에 당장 답해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그 답에 해당하는 내용이 어떻게 소설로 표현되었는지를 독자님들께서 먼저 보는 게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이란 옷을 입은 글을 읽는 것과 질문에 대한 답변을 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니까요. 앞의 것이 독자님들의 판단이 더 개입될 여지가 많다면 뒤의 것은 아무래도 질문에 맞춰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 그렇구나.’라고 끝내버릴 여지가 크죠. 제 생각에 공감해주시는 것도 좋지만 독자님들이 자기의 개성적인 감상을 품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글 읽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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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예~예~ 모든 것은 신의 뜻... 불허합니다. 의외군요. 나 원 참... 시작할까요? 강화인간!!
안녕? OK 궁금하네요. 역시! 재미있네. 깜짝이야! 아~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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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심까~ 피- 좋다! 못마땅해... 곱다~ 덤비라! 후우- 아슴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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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쭈쭈 하하 하? ?? 이거 참... -_- 안녕하십니까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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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흐응? 흐으으응?! 척! 칫.. 좋-았어! 엥? 후에엥-!!
칫 엄숙하고 근엄하고 진지하다 믿습니다 내 안의 ...가 깨어난다 영업 중 할많하않 충격! 공포! 둠칫 둠칫 두둠칫
파이팅!! 고마워~ 졌어... 히힣 극대노 미안! 거울 앞에서 자의식 과잉된 십대 라이언
저는 지금 극공입니다. 훠이훠이 하.하.하. 매우 화가 납니다. 총기 손질중입니다. 저와 한 판 붙어보시겠습니까? 당신에 대한 정확한 진단 안돼!
뭐가 궁금하죠? 축하드립니다. 너에게는 뭐든 주고 싶어. 칭찬 드립니다. 대-단하십니다. 내겐 보여, 너의 죽음 당신을 믿습니다. 이런 미래는 싫어!
감사합니다. 기쁩니다. 축하합니다. 칭찬해 드리죠. 놀랍군요. 심기가 불편합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우 화가 나는군요.
짝.짝.짝.짝 고마워... 멋있어... 지금 이게 뭐하시는 거죠? 대다나다 히에엑... 헉! 깜짝 놀랐습니다. 그만해!!!!!
옳소! 감탄했습니다. 흐음 후회할거요! 감사합니다. 놀랐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정색) 축하드립니다. 칭찬해 드립니다. 놀랍군요. 매우 화가 나네요. 큰 충격입니다. 놀랍군요.
이럴수가... 감히! 네가! 아니?! 장하군! 응?! 좋다! 그건 아니다! 고맙다!
감사합니다 잘 못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매우 화가 나는군요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좌절상태입니다 감탄했습니다 칭찬합니다
멋지군! 좋았어! 하하! 축하하오! 아아.. 5분전인데. 커피한잔 하겠소?
승리의 정유년! 정의로운 새해복! 극.한.공.성. 복! 받아랏! 음~ 직장인의 정석
많이 배웠습니다! 대단합니다! ?!! 축하드립니다 뭔가.. 부족해요 짝짝짝! 각오하세요! 으윽!
성탄의 축복을~! 메리 X-MAS~! 화이트 크리스마스야 해피~ 크리스마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성탄이구나~
Good! Thank U Missing U Useless It's pretty good Oops WHY! Please wait
멜빈 미이라와 고스트 제피 할로윈에는 카를로스호박 히카르도의 사탕 탄야의 마녀 분장..? 잭-슈타인 강시 루시
기자님의 감탄사 : 호-오! 기자님의 일과 : 신문 보기 기자님의 사과 : 이거 실례! 기자님이 놀라면 : 어이쿠! 기분이 좋아 보이는 잭 기분이 나빠 보이는 잭 천진난만한 잭 상큼한 인사를 날리는 잭
좋군요! 좋은 시간 되소서 Merry 추석~! 우와~! 호~오! 가득해요~! 짱인데! 품위있군
Chu~♡ 파이팅! 우와앙.. 졌어 ㅠㅠ 이겼다! 흐~음? 뜨헉! 돼.. 됐거든! 사.. 살쪘..!
훌륭합니다 궁금하네요 에구머니나! 슬프네요... 경멸스럽군요.. 후훗~ 뭐라고 하셨죠? 이, 이럴수가...!
아이작의 멋진 모습 이글이라 샤샤샤~ 트리비아 슬라이딩 시바 포는 달린다 까미유도 달린다 라이샌더 달린다 마를렌 점프! 샬럿 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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