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의 연금술~Alchemic C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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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8 10: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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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소설에는 인체실험등의 혐오스러울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있습니다.
~~크리스마스 공포 특집~~
그녀의 은발을, 나는 빛이라고 했다.
타오르는 태양이 아닌 상냥한 달이라며,
밤을 보듬는 빛이 될것이라고 했다.
소녀는 그러나 낭만에 울고웃는 소녀이기 이전에
과학자의 딸이었나보다.
그러니까 뭐라고 했더라.
"아빠, 머리카락과 빛은 별개야."
-어쨌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피어난 봄꽃같은
싱싱함을 흩뿌리고 스쳐가는 바람에도 울고웃는 소중한
딸. 아빠의 말과 표현이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지만 그
것이 틀리다고까지는 하지 않는 귀여운 딸. 그러니까 지
켜주어야만 한다고 마음먹을수밖에 없다. 그녀의 아버지
로서.
ㅡ그러니까 그것은 단순한 회상. 내 앞에 있는것은 딸의
사진 뿐. 지금은 꽃이 만발한 정원이 있는 학교에서 자기
몸보다 무거울지도 모르는 책을 들고다니며 밖의 '추위'를
모른채 봄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겠지. 세계의 온갖 표류
자들이 뒤섞인 이 용광로에서 서로를 기억하고 지켜줄수
있는것은 두 사람 뿐이다.
어쩔수없이 독일을 떠나 미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의 아
내는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에겐 생물학자
로서의 연구경력과 늦게 얻은 딸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나
의 딸 헬레나. 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나는 불길 속에라
도 뛰어들 수 있다.
개인 연구실을 나오니 문 옆에 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서른쯤 되었을까. 그가 먼저 조심스럽게 인사했다.
"케빈-.이라고 하시면 됩니다."
스스로의 이름을 어색해하는군. 피부가 눈에 띈다. 순수한
백인이 아니다-. 그보다는 좀 어두운 피부색. 이런 인종은
나이대를 구분을 못하겠다. 그러나 중요한건 그게 아니지.
"반갑습니다. 다른 부서에서 새로운 분이 오실거라고는 얘기 들었습니다."
"예. 제가 가진 태아와 산모에 대한 지식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웃으며 넘긴다.
케빈도 웃는다.
말을 이어서 한다.
"룸까지는 거리가 있으니 이동하면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도록하죠."
"연구 샘플 A-9212C73과 73A에 대한 출산 전 태아의 능력발현 및 증폭을 목적
으로한 외부적 자극실험에 새로운 지시가 내려올 예정입니다. 굉장히 빠르게 결
정된 사항이라 아마 모르실거라고 생각합니다."
"폐기인가?"
"예 폐기입니다."
"그래서 크리스가 그만뒀군."
"네."
산모와 태아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그녀는 능력자끼리의
교배를 통해 임신한 드문 케이스였으며 그 드문 케이스
중에서도 모친의 능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능력을 무의
식적으로 사용하는 실험할 사항이 많은 케이스였다.
수많은 실험이 그녀와태아에게 가해졌으며 태아의 상태는
명확치 않지만 산모는 지나치게 약해져 있었다. 내일 죽는
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약에 절어 있었
고 그 안의 태아 또한 기형의 육체를 가지게 되었다. 연구
팀은 얼마 전 그녀의 죽음이 임박했고 얼마 남지않은 출산
의 시기가 온다고 해도 아이에게 가능성은 없다는 보고를
올렸다.
오늘이 되어서는 크리스가 일을 그만두고 케빈이 그 일을 하
러 온 것이다. 크리스는 노력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노력할
수가 없었다. 그것뿐이었다.
연구실을 지난다. 가지각색의 비명과 가지각색의 몸부림-허
나 미약한-. 몸짓, 눈짓,호흡. 질척거리며 달라붙는것을 무시
한다. 그 더러움은 이미 털어낸다고 해서 떨어지는것이 아니다.
케빈도 웃으며 말한다. '네. 어쩔수없는일이죠. 산모에게도
태아에게도 쉬게 해 줘야지요.' 그래 이제는 쉬게 해주자. 오
랜시간동안 힘들었을테니까.
룸에 도착했다. C73은 약에 절은채 구속구에 묶여있었다. 실
험 초기에 뱃속의 새끼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고통과 분노
를 참아내던 실험체는 후기에 다가갈수록 절제를 잃어갔다.
마침내는 뱃속의 태아가 위험할 정도의 강도로 저항을 시도
했고 우리는 이후 정신을 차릴때마다 발광하는 실험체로부터
C73A를 보호하기 위해 다량의 마약을 투여했다.
대기하고있던 팀원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애 엄마하고
마지막 인사는 잘 나누었나?' '예 뭐 오늘부터 자유의 날이니
까요. 좋겠네요.' '우리 휴가도 좀 잘 챙겨줬으면 좋겠는데말
야.' '그러게말입니다. 상당한 감정노동이라구요, 이거.' '어제
크리스한테 퇴사사유좀 잘 적으라고 했으니 걱정 안하셔도 됩
니다.' '크리스 보는 낙으로 출근했는데 참 아쉽게 됐어.' '뭐
홍일점이었으니까요.' '애 엄마하고도 오늘이 마지막인데 너
무 매정한거 아냐?' '아유, 매정한게 또 하나의 매력 아니겠
습니까. 모르는 말씀 마세요.' '요즘 청년들은 취향이 참 독특
하단말야.' '-삼촌-이 너무 구닥다리인거에요.' '내가 임마 너
태어나기 전부터 펜을 잡았어.' '아 또 그러다가 첫사랑 얘기 할
거죠. 진짜 지겹다~' '야 넌 첫사랑도 없잖아' '하. 금방 올거거
든요?'
쓴웃음을 한번 짓는다. 뭐, 일을 해야지.
"자, 시작하자고."
팔목은 이미 너덜너덜. 허벅지에 주사를 주입한다.
이로서 인큐베이터는 죽는다. 인큐베이터 내부의 배양체는 기적
적으로 살지도 모르지. 살아서 세상을 볼 것인가? 어차피 네가
세상에 머리를 들이밀어봤자 차가운 실험대만이 네가 올라갈 수
있는 무대다. 과학에의 제물로, 헬레나의 행복에 대한 제물로 너는
그 초라한 삶을 살아가다가 죽을것이다. 그러니까 너 자신을 위해
태어나지 말아라.
나는 과학의 발전따위는 관심도 없으니까 부디 태어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지배하고 내가 너를 사용할수없게 세상에 태어나지 말아라.
인큐베이터를 지켜보는 모두가 그런 생각을 했다. 태어나지 말아라.
태어나지 말아라.태어나지 말아라. 네가 태어날곳은 지옥보다 더한
고통의 늪이다. 너는 네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도 모르는
채로 언젠간 그 초라한 삶을 마칠것이다. 그러니 태어나지 말아라.
*
"아빠. 데이빗 좀 봐."
헬레나가 잠자는 나를 깨웠다. 그 꿈은 오랜만이었다.
그녀는 들떠있었다.
"데이빗이 왜?"
"편지로만 들어서 몰랐는데 데이빗 엄청 그림 잘그려!"
딸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딸은 학교 방학차 들렀다. 그녀
는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다. 명문대, 유망학과. 딸은 나와 같
은 과학자로서의 꿈을 꾸고있다. 딸은 아버지가 일하는 연
구소가 친구들에게 있어선 꿈의 직장이라고 했다. 나는 딸에
게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해준적이 없다. 딸을 이 지옥으로 등
떠밀을 생각도 없다. 딸은 다른 길을 가게 될것이다. 그래,
데이빗에게 도움을 구해보자. 그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알고있는 그라면 나를 이해해줄것이고 도와줄것이다.
몸을 일으켜 데이빗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이
뒤를 향했다. 왼쪽 얼굴이 심하게 구겨지고 입은 제대로된 표정을
짓지 못한다. 기묘한 표정 기묘한 얼굴. 구겨진 왼쪽은 눈을 떴는
지 감았는지조차 구분이 되지 않는다. 두 다리로 걸을 수도 없는
허약한 몸. 나의 독단으로 C73A를 연구소로부터 꺼내왔을때 가장
큰 걱정은 헬레나였다. 헬레나가 그를 거부한다면, 혐오하고 미워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러나 그런 걱정과는 다르게 헬레
나는 이름이 없던 그에게 케빈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케빈을
좋아해주었다. 그것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케빈이 그린 그림을 본다. 거기엔 어째선지 조금 차갑고.. 날카로
운 표정의 헬레나가 그려져있었다. 그 인상에는 상관없이 그림은
정말 예뻤다. 그림에서도 헬레나는 웃고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것
을 가지고 뭐라고 하면 속좁아보일까봐 다른말을했다.
"케빈. 네 그림 솜씨는 여전하구나."
"네. 뭐, 부모님 덕분이죠."
거짓말. C73A는 부모의 얼굴조차 본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
는 헬레나에게 거짓말을 하기로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헬레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로 작당한 공모자인거야. 케빈을 집으
로 들인것은 어쩌면 필요없는 위험을 부담하는것일수도 있었
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오랜만에 얼굴을 보게된 헬레나를
혼자 만나게 되는게 두려웠다. 편지로만 연락해왔던 나의 유
일한 사랑이 추악한 나의 본 모습을 알고 나를 혐오하게 되
는것이 아닐까. 두려워하게 되는것이 아닐까. 거부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아내가 죽고나서 헬레나를 위해서만 살았다. 친구도 없었고
연인도 없었다. 그럴 여유가 없는 시간들이었다. 그 틈새를
C73A가 비집고 들어왔다. 내가 가족이 되어줄게요. 날 여
기서 내보내줘요. 내가 헬레나와 당신을 이어줄게요. 정신이
나갔었다고 후회할 즈음엔 이미 나의 모든 권한과 인맥을 이
용해 그를 연구소에서 빼내어 내 양자로 삼고난 후였다.
그러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는 약속을 지켰고 헬레나는 그
를 거부하지 않았다. 다행이야. 정말로 다행이야. 나는 이 기
적에 감사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이 기적이 이어지기를 바랬
다.
오늘의 그 꿈은 그저 과거일 뿐이다. 너무 행복해서 불안한 나
머지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지는 어린애같은 마음일 뿐이다.
-그런 생각도 든다. 길고 긴 불행의 늪에서 마지막으로 구원의
손길이 내려온 것이라고. 나도, 고된 삶을 보상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니까 이 행복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케빈에게도 이 행복
감을 나누어주고 싶어졌다. 그래, 케빈 네가 바라던 선물이 하나
있었지. 그걸 보여줘야겠다.
"헬레나. 아빠 방 책상 위에 있는 C73A라고 적힌 파란색 서류철좀 가져다줄래?"
그림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헬레나가 알았다며 방 밖을 나갔다.
방 안에는 둘만 남게되었다.
"넌 이제 내 자식이란다. 네가 연구소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도록 감시도 풀었어."
케빈은 이상하게도 대답하지 않는다. 얼굴 표정에 변화도 없다.
어차피 그는 안면 장애가 있어서 표정을 지을수없다. 그러나 이
상하게도... 나에게는 웃는것으로 느껴졌다. 약간의 서늘함. 침
묵이 한 순간 끼어들었다가 고통이 모든것을 쫒아내었다. 내 심
장에 무언가가 박혀있었다. 모든 힘을 잃고 나는 바닥에 고꾸라
졌다. 몸으로부터 새어나오는 피가 바닥을 적셨다. 고통은 없다.
꿈인가? 그 의식의 틈새로 케빈의 목소리가 들린다.
"연구원들은 참 떠들기 좋아하더군. 나의 어머니에 대해서라던가 내 저주스러운 운명에 대해
서라던가. 어머니와 나를 가지고 놀았던 너와 네 팀원들에 대해서라던가."
나는 괜찮다. 그러나 헬레나는? 헬레나가 곧 방에 돌아올텐데.
"아 뭐 헬레나는 죽이지 않을게. 헬레나와 친구가 되는게 약속이었잖아. 나는 약속을 지키는 주
의거든. 그러니까 친구로서 아버지의 본 모습과 그 결과물인 나에 대해서 알려줄거야. 그리고
기분좋게도 해줄거야. 네가 우리 어머니에게 시도때도없이 투여했다던 그 마약으로 듬뿍 절여줄
거야. 친구니까 좋은건 나눠야지. 사실 내가 그 마약에 중독된것도 태아때부터 투여당해서 그런거
잖아. 그러니까 헬레나도 나랑 같아져야해. 친구니까. 근데 넌 안돼. 죽어야 해. 그건 오래전부터
정해놨어."
헬레나는 빛나는 아이야. 세상에 그 누구도 연금하지 못했던 빛
을 연금할 아이라고. 그러니까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해서는 안돼.
날 용서해줘. 헬레나에게 그러지 말아줘. 제발....
"말을 했으면 들어줬을지도 모르지만 입만 뻐끔거려서는 모르겠는걸. 슬슬 헬레나가 들어올테니
까 죽어줘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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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이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