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phers

  • 수혈(Vampire)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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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바스터 [86급]

2016-09-22 10: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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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픽션(fiction)입니다. 특정 단체ㆍ사건ㆍ사상ㆍ종교와 무관함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 지하연합의 오랜 동료 능력자이자 절친인 휴톤과 트리비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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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하고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물론 지금 휴톤과 등을 맞대고 함께 싸우는 이는 아무도 없다. 지면에 발을 딛고 선 것은 오로지 휴톤과 적들뿐이었다. 머릿수가 족히 열댓 명은 되는데다가 둘러싸여 있는 형세라 아무리 어떤 작전에 투입되어도 바로 적응할 수 있는 노련한 전사 휴톤이라도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가는 허를 찔리기 쉬울 터였다. 그럼에도 휴톤은 조금도 등 뒤를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제 앞을 향해 달려드는 적들에게만 호쾌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아니나다를까, 기회다 싶어 텅텅 비어있는 배후로 덤비는 순진한 적들을 느끼며 씨익 웃었다.


“하핫- 거기는 함정이란다, 짜샤!”


휴톤이 눈앞 상대의 안면에다 스트레이트를 날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가 때린 건 전방이지만 정작 비명은 뒤쪽에서 들려왔다.


지상이 두 다리로 굳게 버티고 서 주먹을 내지르는 휴톤의 영역이라면, 천상은 아름다운 날개를 펼치고 군림하는 그의 전투 파트너 트리비아의 영역이었다. 솜씨 좋은 저격수나 같은 비행 타입 능력자가 없는 한 하늘은 트리비아의 독무대였다. 높은 곳에서 조감하면 무엇이든 한눈에 보이는 법, 휴톤의 등 뒤는커녕 전후좌우 빈틈없이 트리비아의 원조가 하늘에서 적시적소에 쏟아져 내렸다. 휴톤은 이를 실로 밤의 여왕의 은총이라 여겼다. 마음놓고 함께 싸울 수 있는데다가 필요하다 싶을 때 바로 들어와주는 백업이라니 싸울 맛이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었다.


트리비아는 휴톤이 가장 오래 한 팀을 이루어 싸워온 유일하다시피 한 존재였다. 함께 싸웠던 이들 중에서 모두 죽고 살아남은 것이 다만 트리비아라는 것도 있었다. 휴톤이 하이드와 만나고 연합에 투신할 당시부터 그녀는 연합에 있었다. 친화력 하나는 끝장나게 좋다고 자부하는 휴톤조차도 친해지기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도 어려웠지만, 결국 트리비아가 마음을 열어주었을 때의 그 감격은 지금 떠올려도 생생하다.


그 이후로 둘의 합동 전투가 나날이 발전해갔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연합의 오랜 터줏대감으로서 수많은 다른 동료들과 합을 이루어 싸워보았지만 트리비아만한 파트너는 없었다. 능력의 강도나 전투 스타일의 조화로움 등 다방면에서 트리비아와 싸울 때 가장 편하고 기분 좋았다. 행동대장을 많이 맡는데 작전 같은 걸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일단 실전에 뛰어들고 보는 게 훨씬 성미에 맞는 그에게는, 별다른 상의 없이도 시기적절한 지원을 해주는 트리비아야말로 최고의 동료였다.


무턱대고 달려들지 말고 좀 생각하고 움직이라고 트리비아는 잔소리하기 일쑤였지만, 그렇게 할 마음이 별로 안 드는 이유가 바로 그녀 자신이라는 것을 트리비아는 알기나 할까. 겉과 속이 달리 없어서 재단의 독심술사에게 마음을 읽힌다 해도 별 거리낄 것 없는 휴톤이지만, 마음을 말로 꺼낼 필요조차 없이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사뭇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휴톤이 마지막 적의 명치에다 핵펀치를 날리는 것과 동시에 휘익 예리하게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가망이 없다 싶어 달아나려 했던 적을 트리비아가 공중에서 내려찍어 마무리한 것일 터. 주변을 둘러보며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것이 휴톤 자신과 트리비아뿐임을 확인하고 통신기로 본부에 연락을 넣었다. 곧 이 현장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끔하게 처리할 청소부들이 도착할 것이다.


“역시 너랑 싸울 때 제일 기분 좋다니까. 아아, 간만의 시원한 전투였네.”
“너무 후방을 무방비하게 두고 싸운다고는 생각 안 해?”
“방금은 우리 여왕님께서 굽어 살펴주셨는데 그런 걱정은 불필요하지! 안 그래?”


씨익 웃으며 휴톤은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트리비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한편으로는 그가 보이는 무한한 신뢰에 쑥스러운 듯 슬며시 시선을 모로 돌렸다.


휴톤이 그러했듯이, 아니 과거형이 아니라 지금도 그러하듯이 쳐다보면 넋이 나가버릴 정도로 아름다운 트리비아다. 그 어떤 찬사에도 익숙할 것 같은데 막상 그렇지도 않은 게 새삼 의외롭다. 물론 안면도 없고 친하지도 않은 이들의 말은 그게 찬사든 뭐든 밤의 여왕이 아니라 얼음 여왕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무려 얼음의 영웅과 연인이라니, 그래서 둘은 천생연분일지도 모른다―싸늘한 무표정으로 일관하지만.


트리비아가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 앞에서만 보여주는 반응을 볼 때면 소소하게 기쁘다. 트리비아의 허용 영역 안에 있는 사람들만이 느끼고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더 특별했다.


“그런 식으로 방심한다간 ‘귀여운’ 후배들한테 못 미더운 꼴 보이고 말 걸.”


쌀쌀맞게 말하는 트리비아지만 그게 낯간지러움을 무마하려는 행동임을 알기에 휴톤은 입가에서 싱글벙글한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이 아론 휴톤 님을 뭘로 보고. 자라나는 새싹 능력자들 앞에서 그런 추태를 보이진 않는다고. 지금이야 네가 옆에 있어서 신경 쓸 거 없이 마음껏 싸울 수 있었다 이거지. 아, 말 나와서 말인데 너 정말 후배들 가르쳐볼 생각 없는 거냐? 너 싸우는 것만 봐도 그 녀석들한테는 좋은 성장의 밑거름이 될 텐데. 아무래도 아깝단 말이지―.”


휴톤은 지하연합을 대표하는 베테랑 능력자답게 모의훈련을 받고 실전에 처음 임하는 소속능력자들을 데리고 임무에 파견되는 일이 잦았다. 경험이 많다 보니 실제상황에서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할 확률이 높은 풋내기 사이퍼들을 위한 이른 바 ‘교육담당’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처음에 앤지에게 부탁받았을 때는 그런 거 체질에 안 맞는다고 거부했으나, 휴톤 이외의 적임자는 없다고 워낙 앤지가 강한 믿음을 보여서 계속 거절하기도 뭣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혜로운 눈의 여왕의 안목은 틀림이 없었는지 이게 삶의 낙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딱히 뭐 대단한 걸 가르치는 건 아니지만 나날이 착실하게 경험을 쌓아 발전해가는 초보 사이퍼들을 볼 때면 뿌듯하고 보람찼다.


저 녀석들에게 뭔가 더 해줄 수 있는 건 없을까 하고 궁리하는 끝에 도달하는 결론은 후배들에게 트리비아와 합을 맞추어 싸우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동료들과 잘만 태그를 이루면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일당백의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백문이 불여일견 구경시켜주고 싶었다. 자기 능력에 대한 고집들이 워낙 센 것이 개성 강한 사이퍼들의 공통점이다. 그 점을 좋은 쪽으로 살릴 수 있는 것이 동료와의 협력임을 가르쳐주기에 그보다 효과적이고 빠른 교수법이 없을 것 같다.


“아론, 전에도 말했지만,”
“알아. 안다고. 하기 싫은 거. 그냥 아쉬운 소리 한 번 해본 거다.”


휴톤은 트리비아가 이번에도 거부할 것을 진즉 알고 있었다. 단독으로 행동하거나 그나마 친하다고 할 만한 사이퍼가 아니면 절대로 임무를 맡지 않는 트리비아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다만 아까워서 괜히 한 번 또 꺼내보는 제안이었다. 혼자만의 쾌감으로 남겨두는 것도 좋지만 남들에게 그녀와의 연대를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다면 또 거짓말이었다.


“자아, 그럼 일도 끝냈겠다 펍에 가서 시원한 아이리쉬 흑맥주나 한 잔 하…….”


트리비아에게 그리 말하며 깍지 낀 손을 뒤통수에 가져다 대며 앞장서려던 휴톤이 우뚝 멈춰 섰다. 휴톤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트리비아의 몸이 순간 한쪽으로 위태롭게 기우뚱했던 것이다. 눈을 휘둥그레 뜨며 휴톤은 부리나케 트리비아의 곁으로 달려갔다.


“야, 트리비아 너 왜 그래?!”


사람이 잠깐 돌부리에라도 걸려 몸의 중심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트리비아에 한해서는 지극히 드문 일이었다. 전에는 한 번 독특한 저체온을 띠고 있어 늘 싸늘한 냉기가 피어오르는 것만 같은 체질이 무색할 정도로 열이 펄펄 끓었던 적이 있었다. 겉으로 봐서는 정말 경이로울 정도로 안색 하나 안 바꾸고 걸음걸이에도 한 치 흐트러짐이 없었던 여왕님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처음으로 트리비아한테 크게 화를 내기도 했었다. 어쩜 그렇게 주변 사람들이 걱정할 거 눈곱만큼도 생각 안 하고 자존심 차리기 바쁘냐고. 무어라 대꾸할 힘도 없는지 정신을 잃기 일보 직전인 그녀를 까미유의 병원으로 호송하고 말끔히 병이 나은 뒤에야 말이 심했다며 사과했다. 그러자 ‘나야말로 미안해’라며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사과하는 걸 보고 얼이 빠졌었다. 쑥스러운지 이만 한숨 잘 거니까 나가라고 하고는 침대에 누우며 등을 홱 돌려버리는 모습을 보고 여전히 얼떨떨한 기분으로 병실을 나섰다. 시간차로 헤죽 웃었다. ‘짜식, 귀엽네’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그때도 그랬는데 저렇게 휘청거릴 정도면 어디가 탈나도 단단히 탈 난 게 분명하다는 생각에 휴톤은 간담이 다 서늘했다. 혹시 휴톤 자신은 지상에서 신나게 싸우게 있던 사이에 알게 모르게 부상이라도 입은 걸까. 외관상으로는 어떤 이변도 없어 보이지만 워낙 감추는 데 능숙한 여왕님이다 보니 설렁설렁 넘어갈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호들갑 떨 것 없어.”
“그럼 다행이지만…….”


자세가 흐트러진 건 한순간일 뿐 트리비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치미를 뗐다. 휴톤은 여전히 미심쩍었지만 일단은 본인의 주장을 믿어보기로 하고는 다시 앞장서 걸어갔다. 그러나 뒤에서 트리비아의 힐이 또각거리며 따르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휴톤은 성대하게 한숨을 내쉬고는 방금 전 그 자리에 계속 가만히 여신상처럼 서있는 그녀에게로 저벅저벅 되돌아갔다.


“대체 뭐가 문제십니까, 여왕 폐하?”
“……아론, 너 먼저 가.”
“엉?”
“난 날아갈 테니까.”


휴톤은 트리비아의 말의 맥락을 따라가지 못하고 벙 쪘다. 뜬금없이 날아가겠다니, 갑자기 왜 그러는지 의도를 몰랐다. 물론 긴급상황에서는 트리비아의 기동력을 필요로 할 때가 종종 있었지만, 지금처럼 비교적 손쉬운 일을 끝내고 나서 각자 따로따로 땅으로 하늘로 돌아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 천천히 걸으며 느긋한 대화를 공유하는 즐거움은 두 사람의 임무 뒤에 빼놓을 수 없는 관례였다.


그런 암묵적인 합의가 있어온 지 오래인데 유독 오늘만 날아가겠다고 하면 아무리 털털한 휴톤이라도 이상하게 느끼지 말라는 게 더 이상했다. 본인도 잘 아는지 눈을 맞추지 않고 괜히 옆쪽을 보고 있었다.


“왜 그러는데―. 말로 해 말로. 나 눈치 없는 거 잘 알잖아. 재치 있게 알아차려주고 이런 거 젬병이라고.”


휴톤이 빤히 보며 그리 말하자 트리비아는 그제야 정면으로 고개를 돌리며 포기한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킬힐을 적에게 내려찍을 때처럼 왼쪽 다리를 스윽 들어올렸다. 휴톤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이내 트리비아가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을 수밖에 없었던 정황을 발견했다.


왼쪽 구두굽이 부러져서 뒤축에서 달랑거리고 있었다. 과연 저 정도로 높은 굽이면 아무리 애써서 균형 잡고 걸으려고 해도 위태위태할 것이다. 하물며 무기용으로 특수한 칼날이 달려있는 부츠가 아닌가. 자칫하면 제 다리를 다치게 할 수도 있었다.


“에이- 뭐야. 그런 거였어? 진작에 말을 하지. 이게 뭐 큰일이라고.”
“…….”


무슨 큰일이라도 났나 싶어 철렁했던 가슴을 속으로 쓸어내리며 휴톤이 대수롭잖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트리비아가 고운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그를 약간 노려보았다. 지금으로서는 별 박력은 없는 눈빛이었다.


트리비아는 필시 이런 ‘실수’가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뻔했다. 타인에게, 설령 그게 친구와 연인일지라도 좀처럼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했다. 본인에게는 마뜩찮은 추태일지 몰라도 휴톤한테는 입가에 히죽 웃음이 피어오르는 걸 억누르지 못할 정도로 귀엽게만 보일 뿐이었다. 완벽해 뵈는 이의 결점일수록 그것이 결점이 아니라 인간미 내지 사랑스러움으로 보이는 것은 왜일까.


“구두굽이 좀 부러질 수도 있는 거지 뭘 이런 걸 말하기 껄끄러워하고 그러냐, 우리 사이에? 내가 너무 생각 없이 말하는 게 문제라면 넌 너무 말이 없는 게 문제-….”
“…읏-.”


휴톤은 트리비아의 구두굽 상태를 살펴보려고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가죽부츠에 싸인 가느다란 발목을 잡았다. 힘주어 아프게 잡은 것도 아니었다. 정말 평범한 악력으로 쥐었을 뿐인데도 트리비아는 아픔을 호소하며 신음을 흘렸다.


휴톤은 그 소리에 이끌리듯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트리비아의 얼굴에 낭패의 기색이 서렸다. 구두굽이 부러진 것도 부러진 거지만 트리비아가 정말로 숨기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구두굽이 부러질 때 발목도 같이 접질린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살짝 그러쥔 정도로 아파할 정도로 심하게.


“트리비아, 너-….”


인상 쓰며 한 마디 하려다 관두고는 휴톤은 또 한 번 보란 듯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트리비아가 언제나 휴톤의 단점에 대해 진지하게 충고해줘도 잘 고쳐지지 않듯이, 트리비아도 마찬가지로 고질적인 성격의 비극을 떠안고 있었다. 누가 누굴 탓하랴. 피차 부족하고 서툴기 짝이 없는 우리네 인간인 것을.


휴톤은 트리비아의 발치에 앉은 상태 그대로 뒤돌아 널찍한 등짝을 내보였다.


“……뭐하는 거야?”
“보면 몰라? 업히셔.”
“사양하겠어.”
“아니, 넌 지금 사양하고 자시고 할 상태가 아니거든?”
“네가 나야?”
“내가 네가 아니니까 이러는 거거든요?”
“날아가면…….”
“착지하고 나서는 어쩌시려고? 깽깽이발로 다니시려고? 하하- 그거 볼만하겠구만!”
“아론, 너 정말-…!”
“아아- 됐다, 됐어. 이게 무슨 영양가 없는 실랑이람. 역시 이몸은 말보다는 행동…이지-!”
“-!”


휴톤은 다시 뒤로 돌아 왼팔로 트리비아의 다리를 휘어감고서 그대로 껑충 일어섰다. 트리비아는 당황해서는 휴톤의 어깨에 그대로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무슨 짓이야. 당장 안 내려놔?”
“어. 안 내려놓을 건데―. 여왕님께서 옥체 보존 않으시고 쓸데없이 고집을 피우시니 이 친위대장 1호가 강행수단이라도 써야지 어쩌겠어?”


휴톤이 굵은 팔로 단단히 두 다리를 잡고 있는데다가 행여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두 팔은 휴톤의 어깨를 잡고 있어야 하는 자세였다. 거기서 트리비아가 할 수 있는 저항이라고 해봐야 상체를 꼼지락거리는 정도가 다였다. 거구의 휴톤에게는 낯 많이 가리는 고양이의 움직임이나 다를 바 없이 느껴져 그는 껄껄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누구 맘대로 친위대장이야. 임명한 적도 없는데.”
“어어, 아니야? 나만큼 우리 여왕님께 헌신하고 충성을 다 바치는 사람이 세상에 또 어디 있다고?”
“충직하면 거스르지 말아야지. 이게, 대체…….”
“때로는 죽음도 불사하고 간언하는 게 진정한 충신이라고 할 수 있지!”
“……말을 말아야지.”


트리비아는 넉살 좋은 휴톤의 대답에 그 이상 말대꾸할 전의가 식어버렸는지 입을 다물었다. 품에서 바즈락대는 동작도 느껴지지 않았다. 얌전히 포기하고 이대로 실려 가기로 한 것 같았다. 휴톤이 이렇게 밀어붙일 때면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다는 걸 아는 데서 오는 빠른 체념이었다. 휴톤 또한 트리비아가 당기기 없는 밀기에 한없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식으로 맞물릴 때마다 휴톤은 유대를 실감하며 야릇한 우월감을 느꼈다.



Illustrated by. 미쉘의후견인 / Copyrightⓒ. All Rights Reserved



전투 현장에서 벗어나 대로변으로 나서자 이미 해가 지고 어둑어둑한 시간인데도 번화가라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이 꽤 많았다. 덩치 큰 근육질 사내가 아름다운 여성을 반쯤 들쳐메고 유유히 거리를 활보하는 광경은 행인들의 호기로운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휴톤은 자세가 자세인지라 지금 트리비아가 짓고 있을 표정을 못 보는 게 아쉬웠다. 안 봐도 알 것 같긴 했지만. 필시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초연하려 하면서도 사뭇 난처하고 부끄러운 기색이 그 미모에 만연해 있으리라.


“이럴 줄 알았으면 공주님안기라도 할 거 그랬나? 아, 공주님안기가 아니라 여왕님안기인가? 하하하-.”


트리비아는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눈이 없는 곳으로 가고픈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휴톤은 이 거리가 영영 끝나지 않고 쭉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문득 들었다. 트리비아의 발목 상태가 걱정되는 것과는 별개로 이 상황 자체가 짐짓 유쾌했다.


“누누이 말하지만 민폐 같은 거 아니야.”


휴톤이 가벼운 말투로, 허나 가볍지 않은 말을 꺼내들자 트리비아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혼자 사는 세상도 아닌데 서로 의지하며 사는 거지. 상부상조란 말이 괜히 있겠냐? 너무 다 알아서 하려고 하면 오히려 주변이 섭섭해한다, 너.”


이런 말을 할 때면 휴톤은 자신이 마치 트리비아의 오빠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고는 했다. 서류상에 기재된 나이로는 그렇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지만 실제로는 그럴 리 만무하겠지만.


휴톤이 하이드와 만나 지하연합에 투신하기도 전부터 트리비아는 연합에 있었다. 원래 하이드가 격의 없이 구는 사람이긴 했어도 결코 허물없이 대할 수 없는 카리스마스로 흘러넘치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를 친근하게 하이드라고 부르며 친구처럼 대하는 트리비아를 봐왔다. 속을 알 수 없는 깊고 신비로운 눈빛도 결코 같은 젊은이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대놓고 물어본 적은 없지만 어쩌면 트리비아는 휴톤보다도 긴 세월을 살아온 것이 아닐까 하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동생처럼 느껴지는 것은 트리비아의 서투른 점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사랑스럽게 여겨지는 까닭이었다.


“……어울리지도 않게 설교는.”
“나만 너한테 잔소리 들으며 살 수는 없지, 캬하하-.”


역시나 또 쑥스러운 건지 쌀쌀맞게 얼버무리려는 것이 너무 트리비아다워 휴톤은 다시 한 번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나저나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연합으로 가는 방향이 아니잖아.”
“그야 당연히 데샹네 병원이지, 환자님.”
“앤지한테 임무 보고해야지.”
“그거야 내가 너 병원에 데려다주고 혼자서도 충분히…….”
“안 돼. 넌 정황을 명확하게 전달 안 하잖아. 못 미더워. 내가 하는 게 마음 편해.”
“야야, 그 정도는 아니다 뭐…….”
“……임무보고만 끝내면 바로 병원에 갈 테니까.”


휴톤이 걱정하고 있음을 아는지 트리비아가 다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휴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입을 딱 벌린 채 트리비아를 보았다. 트리비아는 힐끔 휴톤을 곁눈질하더니 자긴 아무 말도 안 했다는 얼굴로 다시 그녀의 정면으로 시선을 꼿꼿이 고정했다.


“옙! 여부가 있겠습니까, 여왕 폐하!”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라 다 쳐다볼 정도로 큰 목소리로 답하고는 휴톤은 여제의 분부대로 연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어부바 the Royal Guard>



“트리비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싫으면 안 가도 되니까…….”


도대체 몇 번째인지 이제 세는 것도 귀찮아서 포기했다. 휴톤은 열 걸음인가를 채 못 가고 멈춰 서서 염려 가득한 얼굴로 트리비아를 만류하고 만류하기를 반복중이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오늘 해가 저물 때까지도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코어레너드에서 빌로시티로 넘어올 때까지는 아무 말 않다가 목적지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휴톤은 눈에 띄게 초조해했다. 트리비아는 한숨을 내쉬며 약간 짜증 섞인 투로 입을 열었다.


“당사자인 내가 괜찮다고 하잖아. 슬슬 그만하고 얼른 앞장서도록 해. 시간 아까워.”


단호한 트리비아의 의사를 몇 번씩이나 확인했으면서도 뭐가 그리 망설여지는지 휴톤은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지우지 못하고 마지못해 느적느적 발걸음을 떼었다.





트리비아는 길을 잡는 휴톤의 너른 등짝에 새겨진 문신을 지긋한 눈길로 훑어보았다. 전에는 그저 문신을 좋아하는가 보구나 정도의 생각으로 그쳤던 것이 이제는 사뭇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아론 휴톤은 트리비아가 옛날부터 꺼려하는 종류의 인간에 속했다. 타인과 반드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마음이 편했다. 휴톤과 비슷한 이들은 대부분 그 거리를 ‘소원함’으로 치부하며 서운해하거나 성질을 내는 식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침범당하고 싶지 않은 확고한 고독의 영역이 있는 트리비아로서는 첫 만남부터 허물없이 친하게 지내보자며 씨익 웃는 그가 부담스럽기만 했다. 피가 뜨겁다 못해 늘상 끓어오를 것만 같은 사내와 파트너가 되라고 권유한 하이드가 야속할 정도로.


그런데 어쩌다 마음을 허락하고 곁에 있어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린 건지는 스스로도 의문이었다. 친해지기 위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줄 기세로 그가 기울인 노력이 가상했기 때문일까.


트리비아에게 어떤 목적에서든 접근하려는 이들은 백사장의 모래알갱이 수만큼이나 많았지만 대부분 얼마 안 가 나가 떨어졌다. 굳게 틀어잠긴 차갑고 육중한 마음의 문 앞에서 뭐 이렇게까지 애쓸 필요가 있나 하고 선뜻 손 놓고 가버렸던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불특정다수의 존재들. 사람이 싫어 아쉬울 것도 없는 자연스럽기만 한 현상이었다.


아무리 쌀쌀맞게 대하고 무시로 일관해도 기죽지도 않고 씨익 웃어 보이는 휴톤에게만큼은 결국 트리비아도 이끌리듯 미소 짓고 말았다. 항복, 그 이상의 표현이 없었다.


나의 무엇이 그가 그토록 나에게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게 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트리비아에게 휴톤이 보여준 갖가지 헌신이 스스로를 좀 더 소중히 여기는 법을 가르쳤다는 사실이었다. 다치거나 아프거나 할 때 제 일인 양 화를 내고 풀이 죽는 그를 볼 때면 더 이상 다치지 말아야지 아프지 말아야지 트리비아로서는 너무나도 생경한 기분이 들기 일쑤였다.


판단의 잣대가 자기자신이 아니라 타인에게 맡겨진 듯한 느낌이 결코 싫지 않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 대가로 남이야 아무래도 좋은 듯이 살아왔던 지난 세월에 대한 벌이라도 받듯이, 휴톤을 비롯래 한 손 안에 꼽을 수 있는 소중한 존재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면 트리비아는 차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아픔을 느껴야 했다. 그 고통으로 인해 소중한 이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소중해지고, 또 다른 소중한 것이 생길까 너무나도 두려워졌다.


지금 휴톤이 앞장서고 트리비아가 따라나선 이 길은 트리비아가 휴톤을 더욱 제 일부로서 깊숙이 각인하는 일이 분명했다. 소중한 것이 더 소중해지는 데 겁이 나는데도 지금 이 순간을 거부할 길이 없었다.


어느 날 펍에서 여느 때과 같이 임무 뒤에 함께 술한 잔 기울일 때 휴톤이 유례없이 진지한 얼굴로 허락을 청했다. 내 등에 너를 새겨도 되겠냐며, 평상시의 사람 좋아 뵈는 호탕한 웃음기라곤 하나 없는 푸른 눈동자가 트리비아의 은안을 간절히도 사로잡았다.


어찌 거절할 수가 있었을까. 그 순간의 분위기에 압도되듯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이상하리만치 모든 것에 납득이 갔다. 휴톤의 등판에 아로새겨진 문신들은 단순한 멋과 장식이 아니었음을, 그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에 대한 지워지지 않는 굳은 맹세의 상징임을 단박에 직감할 수 있었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몹시 무거운 일임을 이해하는지 휴톤의 눈빛에는 절실함의 반대편에 일찍부터 체념도 있었다. 우습게도 그가 앞서 한 그 단념이 트리비아가 그의 소망을 반드시 이루어주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이게 한 것은 이유 모를 아이러니였다. 고개를 끄덕이자 휴톤은 말없이 트리비아의 한 손을 두 손으로 기도하듯 잡고 제 얼굴로 잠시 가져다댔다. 그 모습을 보며 소원을 들어주기를 잘했다, 향후 어떤 한 점의 후회도 없으리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지금이 바로 휴톤의 소원이 실현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트리비아는 휴톤과 함께 그가 내내 신세지고 있는 문신 장인의 시술소로 가고 있는 길이었다. 문신을 새기는 현장에 타인이 입회하는 것은 암묵적인 금기일 텐데도, 장인은 무슨 연유인지 이번에 휴톤의 등의 한 부분을 차지할 문신의 모티브가 되는 트리비아를 직접 보고 싶어했다. 휴톤은 트리비아의 날개가 돋아난 자리와 비슷한 부위에 문신을 그려넣을 예정이라고 했으니 한 마디로 장인은 날개에 노골적인 관심을 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트리비아 본인보다도 그녀의 날개에 대해 섣부른 호기심이나 혐오를 보이는 이들에게 분노하는 휴톤이었다. 트리비아의 뜻을 물어보기 전에 절대로 안 된다고 길길이 날뛰었음이 뻔했으나 장인도 한 고집 하는지 물러서지 않았나보다. 오히려 어렵사리 쭈뼛쭈뼛 말을 꺼냈다가 트리비아가 문제없다는 듯 승낙하자 도리어 맥이 빠진 것 같았다. 그리하여 드디어 찾아온 오늘, 괜찮다고 하는데도 끊임없이 트리비아의 감정을 배려해주려고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날개에 지나친 관심을 내보이는 게 썩 유쾌한 일이 아님은 틀림없다. 장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사람에게 오랜 세월 등을 맡겨온 친우 휴톤의 사람 보는 눈을 트리비아는 일단 믿어보기로 한 것뿐이었다.


그렇잖아도 세계수 둥치 바로 아래라 24시간 가스등을 켜놓지 않으면 밤이나 다름없이 침침한 빌로시티. 그 가스등조차 변변히 찾아보기 힘든 후미진 골목으로 휴톤은 들어섰다. 휴톤 같이 건장한 몸집을 지닌 이가 걸으면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과 서로 비껴가기도 힘들 만큼 빈틈없이 들이차는 아주 좁은 골목길이었다. 장인의 날개에 대한 관심도 관심이지만, 휴톤이 이런 장소에 트리비아를 데리고 오고 싶지 않아 했다는 것도 어쩐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미로 같은 골목의 끄트머리에 다다라서야 간판도 뭣도 없는 허름한 문 앞에 휴톤이 섰다. 그의 키보다도 작은 문, 필시 처음에 이곳에 들리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머리를 숙여야 한다는 것을 자꾸 깜빡하고 번번이 문틀에 이마를 박아댔을 것이다. 딱 휴톤의 이마와 맞닿을 자리가 묘하게 다른 곳보다 닳아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휴톤은 주먹을 들어 문을 두드리기 전에 한 번 더 정말로 괜찮겠냐는 뜻으로 트리비아를 쳐다보았다. 트리비아가 변함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휴톤은 심호흡하고는 쾅쾅 문을 두들겼다. 약간 안에 있을 주인에 대한 말없는 불만과 항의가 담긴 노크였다.


곧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렸다. 꾀죄죄한 장소와는 달리 하얗게 샌 머리카락을 잔털 하나 없이 단정하게 묶어 상투를 튼, 흡사 신선같이 생긴 동양인 노인이었다. 목깃과 소매끝은 꽉 죄듯 마감되어 있지만 그 나머지는 품이 넉넉한 새하얀 옷을 입고 있다. 눈매 자체는 선한 느낌이 우세하지만 눈빛은 바늘끝을 닮은 듯 날카롭게 빛났다. 방문객이 누구인지 확인한 그는 들어오라는 듯 문간에서 비켜섰다. 휴톤이 고개를 숙이며 들어가고 트리비아가 그 뒤를 따라 들어서자 장인이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들어왔다.


“어이, 마스터- 데려오래서 데려오긴 했지만 약속대로 이 녀석한테…….”
“날개를 좀 볼 수 있겠소이까?”
“마스터!”
“…좋아.”
“어엉?! 트, 트리비아?!”


당황하는 휴톤을 제쳐두고 트리비아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허락했다.


1차적으로는 휴톤이 여태까지 중대한 의미를 담은 문신을 전담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만나보기로 한 것이었다면, 그 다음은 직접 대면해본 뒤에 첫인상을 통해 됨됨이를 가늠해보기로 한 것이었다. 장인이 날개에 보이는 관심이 기괴하거나 비정상적인 것에 대한 징그러운 호기심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하게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의 실물을 확인하려는 느낌에 가까웠다. 진짜 박쥐의 날개라면 몰라도 사람의 몸에 돋아난 날개는 본 적이 없을 것이므로.


트리비아는 장인에게서 등을 돌려 친절히도 날개를 쫘악 펼쳐 보였다. 놀란 듯이 급히 숨을 들이켜는 것은 휴톤이었고, 장인에게서는 그저 고요한 눈길만이 날개 위로 와 닿는 것이 느껴졌다.


한 5분쯤 그렇게 침묵의 시선만이 오가고, 직감이 빗나가지 않았는지 이제 더 이상 볼 일 없다는 듯 장인이 자리를 뜨는 것이 느껴졌다. 트리비아가 날개를 접고 뒤돌아서자 휴톤도 시술대 위에 엎드리고 누워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장인은 트리비아가 처음부터 이곳에 없었던 취급하듯 무서울 정도로 단숨에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문신을 새길 부위 위를 깨끗이 소독한 뒤에 장인은 우선 밑그림을 그려넣었다. 본디 미리 시술받는 이와 협의하여 도안을 짜두고 결행하는 것일 텐데 휴톤은 모든 것을 전담한 듯했다. 등에 새길 인물에 대해 휴톤이 이야기해주면 그 이미지를 장인 본인의 영감대로 표현하는 방식. 그렇지 않고서야 트리비아의 날개를 방금 한 번 본 것만 가지고 당장 작업에 임할 리는 없을 터. 절대로 지울 수 없는 흔적을 새기는 일임을 고려할 때 그만큼 장인에 대한 휴톤의 신뢰는 대단한 듯했다. 오랜 세월에 걸쳐 그의 손을 거쳐온 문신들이 바로 그 증거였다.


트리비아의 날개가 돋아난 곳과 같은 자리지만 의외라면 의외랄까, 문양은 박쥐날개를 연상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기존 문신과의 조화를 해치지 않는 대칭 곡선 두 개가 다였다. 휴톤이 문신의 의미를 아무한테나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을 테고, 설령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번 문신이 트리비아를 상징하는지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형이상적이다. 직접적으로 트리비아를 은유하는 모양이 아니더라도 좀 더 복잡하고 화려한 선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매끄럽고 유려하지만 싱거우리만큼 단순했다. 굳이 문신 외길을 고집한 마스터가 아니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허나 그런 ‘금욕’이야말로 장인의 대가로서의 풍모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겉모습은 화려할지 몰라도 극도로 눈에 띄고 싶지 않아하는 트리비아의 성품을 휴톤의 문신에 담아낸 것 같은 느낌이다. 장인의 안목도 안목이지만, 아마도 사전에 없는 말주변 가지고 열심히 트리비아 카리나라는 사람에 대해 진지하게 묘사했을 휴톤이 상상되어 심장 근처가 조금 근지러웠다.


밑그림이 끝나고 균형과 배치 등을 다시 한 번 꼼꼼히 확인한 장인은 드디어 문신바늘을 들었다. 쪽빛 염료가 묻은 날카로운 바늘끝이 바위 같은 근육이 자리한 피부 위로 먹혀들었다. 밑그림 윤곽선을 따라 그대로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바늘이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조차 분간이 안 가는 섬세한 손길이다. 피조차도 거의 배어나오지 않을 경지였다.


멀찍이서 장인의 손에 주목하고 있다가 스윽 눈을 돌려 트리비아는 휴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방 안을 밝히는 조명이라곤 시술대 위에 달린 전등 하나였다. 실내의 어두침침함 속에서 휴톤의 푸른 눈동자가 지금 일일이 등 위로 느껴지고 있을 고통에 비례하듯 커지는 각오로 반짝이는 듯했다. 동료들과 절체절명의 위기를 앞두고 싸울 때의 얼굴과 같았다.


트리비아는 그 순간 직감했다. 필시 휴톤은 트리비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바칠 것을. 너무나도 무겁고 버거운 맹세였지만 마음속에는 이상스런 전율이 일었다.


두 시간 정도 흘렀을까. 장인이 완전히 바늘을 놓고 문신 부위에 연고 같은 것을 바르더니 마무리를 끝냈다. 휴톤도 장시간 꿈쩍도 않고 엎드려 있던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쭉 폈다.


넘치는 힘을 주체 못하고 한시라도 몸을 가만두지 못하는 그가 기나긴 인내의 시간을 요하는 문신이 취미라니. 바로 눈앞에서 지켜본 지금도 의외였다. 이번 건 비교적 작고 간단한 편이었으나, 등판 중심부에 자리한 칼과 그 주변을 둘러싼 문양은 몇 개월에 걸쳐 꾸준히 시술받아 완성된 것이 분명할 텐데. 휴톤의 사람에 대한 굳은 서약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 트리비아는 감히 짐작조차 못할 것 같았다.


대금은 미리 치른 건지 휴톤은 고맙다는 말도 없이 이만 가보겠다며 트리비아의 등을 입구로 떠밀었다. 트리비아는 순순히 밀리는 대로 문을 열고 안과 다를 바 없이 어둑어둑한 밖으로 먼저 나섰다. 두 사람을 배웅하며 장인이 두 손을 공손히 모아 눈높이까지 올리고는 살짝 목례했다.


“그대도 몸에 지워지지 않는 표식을 남기고 싶거든 부디 소인을 찾아주시오.”
“아, 진짜― 마스터! 이러기요?!”
“생각해볼게.”
“트리비아 너도 진짜―?!”


장인은 처음으로 희미하게 웃음을 띠었다. 휴톤은 트리비아를 장인의 시선에서 숨기려는 듯이 아예 그녀의 두 어깨를 붙잡고 자꾸 떠밀었다. 골목을 다 나서서야 손을 떼고 혹시라도 장인이 따라나서진 않았는지 조바심 나는 눈길로 계속 골목 쪽을 힐끔거렸다. 트리비아는 자극을 받아서 주변이 다 벌겋게 달아오른 휴톤의 허리께를 잠자코 보다가 한 마디 중얼거렸다.


“나도 해볼까, 문신.”
“안 돼―!!!!”


휴톤이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슨 일 났다 싶어 다 쳐다볼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로 반대를 표명했다. 놀란 트리비아가 한순간 눈을 크게 벌렸다가 ‘내 몸은 내 마음대로 하는 거지, 네가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가 아니지만?’이라는 뜻을 담아 가늘게 뜨고서 휴톤을 응시했다. 휴톤 스스로도 과잉반응했다는 반성이 드는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저어, 그게……. 으으음― 뭐라고 해야 하나. 모든 사명은 이 아론 휴톤 님이 이 한몸에 지고 갈 테니까 우리 여왕님은 가뿐하게 하늘을 누볐으면 좋겠다 그거지…….”


기차 화통 삶아 먹은 것 같은 성량이 무색할 정도로 점점 기어들어가는 말끝에는 눈처럼 새하얀 피부가 아깝다는 둥 중얼중얼 몇 마디가 더 붙었다. 트리비아는 휴톤의 대답에 잠시 눈만 깜빡거리다가 별수 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가끔 지금처럼 그가 듬직하고 귀여운 남동생마냥 느껴지는 순간이 종종 찾아오고는 했다. 문신 같은 무거운 소원도 그렇지만, 지금처럼 귀여운 항의도 들어주고 싶은 마음도 드는 것이다.


“정 그렇게 반대를 한다면야. 당장엔 그렇게 절실하지도 않고.”
“그래! 바로 그거야! 너한테는 문신 같은 거 하나도 안 어울린다니까!”
“……그렇게 안 어울린다고 단정 지으면 도리어 오기가 생기는데.”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너한테 뭔들 안 어울리겠느냐마는 어어, 그러니까…….”


무어라 말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머리를 싸매는 휴톤을 보며 트리비아는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어보았다.

― <각오 Tattoo>



차라리 이성을 놓아버리는 게 나을 것 같은 난전이었다. 휴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곧이라도 꺾여 주저앉을 것 같은 다리에 힘을 주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몇 구인지 세는 것을 포기하는 게 편할 정도로 무수한 망해들이 조의를 표하는 향 연기라도 되는 양 자욱한 안개의 바다 속에서 뒹굴고 있었다.


트루퍼들이 쓰러지면서 그 원료가 되는 안개수가 기화하여 일대를 런던의 우중충한 날씨나 다름없이 바꿔놓았다. 이 특수한 안개는 사이퍼들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능력을 증폭시킨다. 트루퍼 자체도 성가시지만 쓰러뜨린 뒤에 방출시키는 농도 짙은 안개 때문에 정신력이라도 시험 당하듯 능력이 미쳐 날뛰지 않도록 극력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휴톤은 극심한 체력 소모와는 별개로 자신의 오른팔만이 제 일부가 아닌 외딴 생물체가 된 것마냥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감지했다. 걷잡을 수 없는 파괴본능이 평소보다 훨씬 형형한 푸른빛을 발하는 주먹에 도사렸다. 강한 능력자일수록 한 번씩은 다 겪는, 통제가 불가능할 것 같은 능력의 폭주 조짐. 억누르고 다스려야 했다. 휴톤은 제 오른손을 스스로 으스러뜨릴 듯이 꽉 쥐며 이를 꽉 깨물었다.


2차 능력자 전쟁은 우선 일단락되었지만 그 후폭풍은 이태 조금도 수습되지 않고 있었다. 안토니오 구마스를 비롯한 안타리우스의 주축들은 천혜의 요새 루사노로 틀어박혔다고 하지만, 잔당들은 그들의 ‘신’에게 감히 도전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끈질기게 연합과 회사를 성가시게 하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전쟁으로 피폐해진 상황에서 휴식조차 변변히 취하지 못한 채 조금이라도 싸울 수 있는 사이퍼들은 전장으로 투입되기 바빴다.


트루퍼도 트루퍼지만 강화인간들과의 전투는 더욱 끔찍하다. 철저히 병기로서 개조당한 그들도 분명 한때는 똑같이 평범한 인간이었을 것이다. 살상 프로그램만을 비약적으로 주입당했을 뿐만 아니라 통각마저 거세당한 그들과 싸울 때면 체력도 체력이지만 마음이 마모된다. 어떤 공격을 받더라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에 표정 한 점 변함없다. 무릎뼈가 박살나 설 수도 없는 상태가 되더라도 섬뜩하리만치 무표정한 얼굴로 기어와 발목이라도 물어뜯으려 하는 그 가엾은 존재들을 볼 때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한 기분에 휩싸였다. 가능하면 어떤 망설임도 없이 무자비할 정도로 한 방에 황천길로 보내버리는 것이 속 편할 정도로.


“어이- 트리비아, 루이스 무사하냐?"


휴톤은 어질러졌던 호흡과 욱씬거릴 만큼 힘으로 넘쳐흐르는 주먹이 대강 정돈되자, 이 안개 속 어딘가에 있을 두 동료를 찾았다.


플랜 디코이의 주역으로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하이드의 혈육 앤지 헌트를 지켜낸 젊은 결정사 루이스, 그도 피로가 엄청나게 누적된 상태에다가 브랜다의 배신으로 인한 정신적 공황에서 완전히 풀려난 상태도 아닐 텐데 전장으로 불려나왔다. 아이거산에 가기 전까지도 행동을 같이 했던 트리비아의 고생이야 함께 겪었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휴톤 역시도 하이드의 비극적인 죽음을 차분히 애도할 틈도 없이 발발한 전쟁에 끊임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나날이었다. 호전적인 기질이 주눅이 다 들 정도로 싸움 없는 평화가 절실히 그리웠다. 동료가 한 사람이라도 죽지만 않기를 바라는 것만이 지금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라는 사실이 현재의 참혹함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난 괜찮아.”


왼편 안개 너머로 루이스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곧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저기 옷에 피가 배어나는 걸 보니 아주 부상을 안 입은 건 아닌 게 확실했다. 무거운 상처는 아닌 듯 보여 일단 안심하며 휴톤은 격려하듯 루이스의 어깨를 탁탁 두드려주었다.


트리비아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애초에 언성 높여 대답하는 일이 없으니 곧 말없이 합류할 터였다. 그 예상대로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오른편 안개로부터 가까워져왔다. 휴톤과 루이스는 반사적으로 구두소리가 나는 쪽을 주시했다. 희부윰한 풍경 속에 갑자기 현신한 듯 트리비아의 유려한 실루엣이 뚜렷해졌다.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 안에 명확해졌을 때 두 남자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트리비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름을 외치며 달려들듯이 트리비아에게 다가갔다. 트리비아는 오른손으로 왼쪽 늑골 근처를 움켜쥐고 있었다. 상처를 틀어막고 있는 검은 가죽장갑이 씌워진 손 위로 진득하게 피가 흘러내리는 것이 생생하게 보였다. 피가 스며드는 정도가 아니라 뚝뚝 바닥에 방울져 내릴 정도의 중상임이 일목요연했다. 꽤 전부터 실혈량이 상당했는지 그렇잖아도 투명하리 만큼 하얀 트리비아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려있었다. 상처의 아픔도 아픔이겠지만 출혈로 인해 의식이 점점 멀어지고 있는지 은색 눈동자가 다소 총기를 잃은 상태였다.


트리비아는 두 사람이 가까이 오자 흠칫 놀라며 마치 오랫동안 갈증에 시달려온 사람처럼 괴로운 듯 제 목을 틀어쥐며 홱 뒤돌아 등을 보였다. 루이스는 갑작스런 영문 모를 트리비아의 반응에 어리둥절해했으나, 휴톤은 지금 트리비아가 왜 이러는지 알고 있었다.


언제 또 적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그녀를 구호반으로 데려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물며 전력 하나하나가 귀중한 이 시점에서 트리비아라는 우수한 전력을 빼고 전투를 속행하기도 어려울 터였다. 난처한 듯 트리비아를 바라보던 루이스가 답을 구하듯이 휴톤에게 의문의 시선을 보내왔다. 휴톤은 그런 루이스의 눈치를 힐긋 보고는, 자기자신을 껴안듯이 팔짱을 끼고 잔뜩 상체를 웅크린 트리비아의 어깨를 큰손으로 조심스레 붙잡았다. 강한 전류라도 통한 것처럼 경기 일으키듯 어깨가 튀어올랐다.


“트리비아, 이리 와.”
“……싫어.”
“고집부리지 말고. 나라면 멀쩡하니까.”


휴톤이 어르듯이 말했으나 트리비아는 자라처럼 목을 움츠러뜨린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휴톤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고는 트리비아의 앞쪽으로 돌아가 별안간 그 앞에 퍼질러 앉았다. 서있는 트리비아의 팔을 잡아 앉은 자기한테로 홰액 끌어당겼다. 트리비아의 몸이 저항 없이 휴톤의 품으로 허물어져 내렸다.


“-! 휴톤…? 지금 뭐하는……?”


루이스의 눈에는 지금 휴톤과 트리비아의 언행들이 하나도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아무리 오랜 친구라곤 해도 다른 남자가 제 연인을 품에 담는 장면 따위가 보고 싶을 리도 없었다. 처음에는 경악이었다가 이윽고 루이스가 날카롭게 경계의 눈초리를 곤두세웠다.


첫사랑에 뼈아픈 상처를 입은 지하연합의 젊은 영웅, 허나 그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트리비아에게 사랑을 고한 것이다. 휴톤으로선 그 마음의 깊이를 감히 짐작조차 못했다. 그저 슬며시 시선을 돌리며 이번만은 어쩔 수 없다 속으로 변명하고 트리비아의 뒷머리를 잡아 더욱 깊이 품속으로 끌어들였다.


트리비아의 몸이 혹한에라도 내던져진 듯 애처로우리만큼 바들바들 떨렸다. 곧 두 손이 천천히 올라와 휴톤의 어깨를 섬약하게 그러쥐었다. 숙이고 있던 고개가 조심스레 들리는가 싶더니 휴톤의 목덜미로 가쁜 숨결이 달라붙었다. 이내 날카로운 따끔함이 찾아들었다. 트리비아가 휴톤의 피를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트리비아가 늘상 타인의 피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정도가 심한 부상을 입었을 때 참기 힘들 만큼 강렬한 흡혈 욕구에 시달린다고 했다. 원래 통상의 인간보다도 경이로운 회복력을 자랑하는 트리비아지만 피를 빨면 소설 속에서나 만나봤던 뱀파이어나 마찬가지로 즉각 부상을 자가치유한다. 그야말로 흉터 하나 없이 말끔하게.


휴톤이 유독 트리비아와 오래 팀을 이루어왔고, 트리비아가 휴톤 아닌 다른 이들과의 임무를 꺼리는 것은 바로 그가 이런 ‘비밀’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흔히 픽션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구태여 목에 매달려 피를 빨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딱 한 번, 트리비아가 손목에서 피를 빨아들였을 때의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휴톤은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이 나았으리라 생각했다. 트리비아로선 피를 빠는 제 얼굴을 보이기 싫다는 이유로 목을 선호할지 몰라도, 피를 빨 때의 그녀의 얼굴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선정적이었다. 평소의 은안과 달리 붉은 이채를 발하는 레드 다이아몬드 같은 눈동자도, 갈등과 고뇌가 서린 듯 좁혀진 미간도,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과 살포시 내리뜬 눈도, 붉은 입술도 자기혐오에 휩싸일 만큼 수컷의 원초적 본능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한동안 죄책감이 들어서 트리비아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언제나 목숨을 위협받는 전장에서 여차하면 지금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말란 법이 없었다. 여러 모로 걱정이 되어서라도 휴톤 역시 트리비아가 다른 이와 파트너를 맺는 것을 별로 원하지 않았다.


휴톤은 하릴없이 허공에다 시선을 헤매고 있다가 다시 힐끔 루이스를 쳐다보았다. 루이스의 얼굴이 질투에서 다시 경악으로 돌변해 있었다. 트리비아가 무얼 하고 있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그야말로 자신을 얼려버린 듯이 굳어있던 루이스의 시선이 조심스레 트리비아의 검은 두 날개로 떨어지는 것을 휴톤은 놓치지 않았다. 다시 위로 올라오는 눈길에는 더 이상 놀라움은 남아있지 않았다.


휴톤은 루이스의 표정 변화를 보며 나 또한 트리비아가 흡혈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 겪었을 때 저런 얼굴을 했으리라 확신했다. 놀란 것은 지극히 한순간이었을 뿐 정말 기묘할 정도로 단숨에 트리비아가 피를 빤다는 것을 납득했다. 조금의 위화감도 없이.


소위 ‘괴물대잔치’라고 불리는 사이퍼들 사이에서도 외양면에서 보통 인간들에 비해 확연한 특이점을 보이는 이들일수록 더 극진하게 괴물 취급당하기 일쑤였다. 평범한 몸에서라면 결코 돋아날 리 없는 날개, 그것도 인간의 동경의 대상인 새하얀 천사의 날개와는 거리가 먼 악마의 상징으로 은유되었던 박쥐의 피막 날개. 트리비아의 혼을 빼놓은 아름다움에 사람들은 백이면 백 경탄을 자아냈지만 한 박자 늦게 그녀의 다리 뒤에서 한들거리는 날개를 발견하고는 무서워하는 것이었다.


루이스는 일찍부터 트리비아의 날개를 마냥 두려워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아직 본 지 오래 안 됐고 워낙 속 깊어 뵈는 녀석이라 자세한 생각이야 몰라도 착한 놈인지 나쁜 놈인지 구별하는 야성의 감만은 확실하다고 자부하는 휴톤이었다. 루이스는 착한 놈이다. 하긴, 애초에 트리비아가 악한 인간을 연인으로 받아들일 리도 없었다. 다만 휴톤이 제멋대로하는 ‘오빠 생각’이라고 할까. 루이스를 소중한 친구의 연인으로 허락하노라 하는 그런 심정이었다.


휴톤은 트리비아의 뒷모습을 진지하게 응시하는 루이스를 보며, 그 또한 트리비아에게 피를 나누어줄 수 있는 한 사람이 될 것을 강하게 예감했다. 트리비아는 아무리 흡혈욕에 시달린다고 해도 결코 누구라도 좋은 불특정다수의 피를 탐하지는 않았다. 루이스의 피는 머지않아 트리비아의 몸 속에 스며들어 그녀의 생명력의 일부로 자리할 것이다. 못내 섭섭한 한편으로 굉장히 기쁜 상반되는 심경이 교차했다.


휴톤의 어깨를 붙잡은 트리비아의 손이 이렇게 피를 빠는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직도 힘겨운 것처럼 바르르 떨렸다. 그 미세한 몸짓에서 말없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묻어나, 휴톤은 그저 널찍한 손으로 트리비아의 뒷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줄 뿐이었다.



― <수혈 Vampire>



*

- 휴톤과 트리비아의 남들은 모를 우정이 좋습니다. 트리비아와 특별한 관계에 놓여있다고 되어있는 인물들은 다 사이가 깊어진 데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만 같습니다. 휴톤이든 루이스든 미쉘이든. 그 당사자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타인의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어 보여요. 그게 참을 수 없을 만큼 좋습니다.

- 트리비아의 휠업 효과는 모든 캐릭터 통틀어 유일무이한 흡혈, 실제로 인게임에서 스킬을 맞히면 HP가 차오르죠. 그래서 부상당했을 때는 타인의 피를 빨아 상처를 단숨에 수복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외양도 그렇고 밤의 여왕이라는 이명이나 박쥐 날개 등등, 흡혈을 한다고 해도 전혀 부자연스러울 게 없는...

- 이 이야기에 쓰인 소재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사실과 상상은 읽는이가 스스로 가려 읽읍시다. :)


@goastbaster / http://goastbaster.postyp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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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구나~ 후후후... YES NO 하- 감히! 이녀석들! 그땐 그랬지
Hi~ OK Oh! 냠~ Love U~ 궁금해! YES! 히힛~
안녕하십니까? 예~예~ 모든 것은 신의 뜻... 불허합니다. 의외군요. 나 원 참... 시작할까요? 강화인간!!
안녕? OK 궁금하네요. 역시! 재미있네. 깜짝이야! 아~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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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넵!! 미안해요!! 앗! 좋아요! 엣헴. 추천! ㅠㅠ
안녕하심까~ 피- 좋다! 못마땅해... 곱다~ 덤비라! 후우- 아슴찮다..
허~허~ 아, 아니... 헐! 흠흠... 끄응... 시, 식은땀이.. 엥? 후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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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 피- 어머! 흐어 오오- 안돼! 랄랄라
우쭈쭈 하하 하? ?? 이거 참... -_- 안녕하십니까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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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소! 감탄했습니다. 흐음 후회할거요! 감사합니다. 놀랐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정색) 축하드립니다. 칭찬해 드립니다. 놀랍군요. 매우 화가 나네요. 큰 충격입니다. 놀랍군요.
이럴수가... 감히! 네가! 아니?! 장하군! 응?! 좋다! 그건 아니다! 고맙다!
감사합니다 잘 못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매우 화가 나는군요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좌절상태입니다 감탄했습니다 칭찬합니다
멋지군! 좋았어! 하하! 축하하오! 아아.. 5분전인데. 커피한잔 하겠소?
승리의 정유년! 정의로운 새해복! 극.한.공.성. 복! 받아랏! 음~ 직장인의 정석
많이 배웠습니다! 대단합니다! ?!! 축하드립니다 뭔가.. 부족해요 짝짝짝! 각오하세요! 으윽!
성탄의 축복을~! 메리 X-MAS~! 화이트 크리스마스야 해피~ 크리스마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성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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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빈 미이라와 고스트 제피 할로윈에는 카를로스호박 히카르도의 사탕 탄야의 마녀 분장..? 잭-슈타인 강시 루시
기자님의 감탄사 : 호-오! 기자님의 일과 : 신문 보기 기자님의 사과 : 이거 실례! 기자님이 놀라면 : 어이쿠! 기분이 좋아 보이는 잭 기분이 나빠 보이는 잭 천진난만한 잭 상큼한 인사를 날리는 잭
좋군요! 좋은 시간 되소서 Merry 추석~! 우와~! 호~오! 가득해요~! 짱인데! 품위있군
Chu~♡ 파이팅! 우와앙.. 졌어 ㅠㅠ 이겼다! 흐~음? 뜨헉! 돼.. 됐거든! 사.. 살쪘..!
훌륭합니다 궁금하네요 에구머니나! 슬프네요... 경멸스럽군요.. 후훗~ 뭐라고 하셨죠? 이, 이럴수가...!
아이작의 멋진 모습 이글이라 샤샤샤~ 트리비아 슬라이딩 시바 포는 달린다 까미유도 달린다 라이샌더 달린다 마를렌 점프! 샬럿 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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