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터엘리] face to 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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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6 08: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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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대부분 사람들이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오비는 평소에도 외출이 잦은 편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평소 이 시간대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굉장히 어수선했다. 루이스와 트리비아는 오랜만에 아침부터 데이트를 위해 준비 중이었고, 방구석 귀신이라며 엉덩이를 걷어차이기 일쑤였던 그 이글 홀든 조차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웅…. 오빠 오늘 어디 가?"
엘리가 바깥의 소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나서 눈을 비비며 욕실로 들어가니 머리 모양을 가다듬는 이글이 보였다.
"오냐, 피터랑 싸우지 말고 놀고 있어라."
"…어디 가는데."
"집에 잠깐."
엘리가 후응, 하며 못 믿겠다는 얼굴로 서 있자. 이글이 쿡쿡 웃고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야, 너 그러고 있으니까 어릴 때랑 진짜 똑같다."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그대로 컸으니까 당연하지."
"쿡쿡, 피터 저 녀석도 똑같네."
"…뭐야."
피터도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결국 잠에서 깬 모양이다. 아침이라 붕 뜬 머리와 반쯤 감긴 눈으로 욕실에 들어온 그를 보며 이글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피터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거리며 세면대 앞에 서있는 이글을 살짝 밀쳐내고 물을 틀었다.
"얀마, 얼굴 보고 똑바로 인사 좀 하지, 뭐야가 뭐야 뭐야가."
"너 오늘 어디가?"
"엉, 집에 잠깐."
"평소에도 좀 그렇게 입어봐."
피터가 피식 웃으며 핀잔을 주자, 이글이 입술을 비죽거리며, 뭐하러 그래? 귀찮게. 어쨌든 난 간다. 하며 욕실을 빠져나갔다.
"피터, 넌 나한테 왜 인사 안 해?"
"맨날 보는데 인사를 왜 해?"
"…참나, 어이없어. 뭐 잘 잤어? 라던가, 좋은 아침 같은 인사는 할 수 있잖아."
"네가 먼저 하면 되는 거 아냐?"
피터가 뭐 하러 아침부터 이런 말싸움을 거냐며 씻을 거니까 나가라고 말하자, 엘리가 내가 먼저 왔어! 라며, 옆에 서서 칫솔에 치약을 묻히고 입에 찔러 넣었다. 처음 둘이 만난 것이 벌써 10년 전 이야기가 됐다. 아이들은 소년 소녀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나이가 됐고, 온 마음과 머리가 어지러운 봄이 찾아왔다. 사춘기, 그들은 아이에서 남녀가 된 서로가 자연스럽게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엘리는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도 모르겠어서 이리저리 굴리기 바빴고, 피터는 잠깐 닿은 것도 신경 쓰이고 말을 섞으면 괜히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아예 대화를 나누지 않기 시작했다. 하여튼 그들은 서로 한 지붕에 산다는 것이 슬슬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 중에 오늘은 단둘이 있어야 했으니 흐르는 공기조차 껄끄러워서, 옆에서 얼굴을 씻는 엘리를 바라보며 피터는 근처로 산책이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밥 안 먹어?"
엘리의 말에 피터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누가 요리 할 건데?"
"내가"
"네가?"
"뭐야? 그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은"
"당연히 말도 안 되지, 너 요리 해 본적은-"
피터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엘리가 아일랜드 위에 있던 레몬을 피터 쪽으로 던졌다. 피터는 순간 날아오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도 하지 못한 채, 하던 말을 멈추고 날아온 레몬을 잡았다.
"일단 요리하기 전에 재료부터 막 다루지 말아야 할 거 같은데."
"조용히 하고 거실로 꺼져버려, 밥 다 되면 부를 테니까."
"아, 예. 알겠습니다. 부디 다 태워먹지만 말아주세요."
"야!"
엘리가 다시 레몬을 집어 들자 피터가 얄밉게 웃으며 거실로 도망쳤다. 이러고 있으니 그래도 예전 같은 느낌이 난다. 엘리는 냉장고를 살피고는 재료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사실 재료랄 것도 없다. 하필 오늘 먹을만한 것들이 뚝 떨어져서 매일 먹는 빵과 소시지뿐이었기 때문이다. 뭐 굽기라도 잘 구워서 내주면 되겠지. 스프라도 할까? 이렇게 재료가 없을 줄 몰랐던 터라 꽤 당황했지만, 아침이니 아침밥은 먹어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렇게 얄밉게 놀려대는 피터의 입을 콱 틀어막아주고 싶었다. 엘리는 조리대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재료를 죽일 듯이 바라보다가 드디어 무언가 생각난 모양인지 소매를 걷어 올렸다.
"자, 다 됐어! 빨리 와!"
엘리가 부르는 소리에 피터가 느린 걸음으로 식탁으로 향했다. 꽤 좋은 냄새가나서 기대는 됐지만, 요리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으니 걱정이 더 컸다. 소시지 굽는 냄새는 다 좋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피터가 들어선 주방 식탁 위에는 제법 그럴싸한 요리가 놓여있었다.
"네가 한 거 맞아?"
"그럼 누가했겠어? 지금 이 시간에 브라우니라도 왔겠어?"
"그러네."
피터가 잘 보여주지 않는 부드러운 미소로 대답했다. 엘리는 그 표정에 당황해서 빨리 먹으라고 더듬으면서 말하고는 의자에 앉았다.
"어릴 땐 브로콜리를 그렇게 싫어하더니."
피터가 접시 위에 놓인 브로콜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싫어해도 먹어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게 당연한 걸."
엘리는 브로콜리부터 포크로 쿡 찔러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어릴 때와 달라진 것은 너무나도 많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때와 같은 것은 없다. 나이, 키, 말투, 서로를 보는 눈빛 같은 것조차 그때와 같은 것이 없어도 이 아이에게 그리운 향수를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피터는 오랜만에 자신이 남기지 않고 식사를 끝냈다는 것을 알아챘다.
엘리는 접시를 치우고는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피터에게 자연스럽게 커피를 내어주었다.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받아 마셨을 커피인데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예전 같았으면 안 마셨겠지. 커피 싫어했으니까.'
'이렇게 있으니까 좀 부부 같은 느낌도 들고'
'부부?'
'아,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대체.'
생각이 길어질수록 커피는 점점 식었다. 그때 엘리가 뭔가 재미있는 게 생각난 모양인지 그를 급하게 여러 번 불렀다.
"피터! 피터!"
"……."
"피터!"
"왜."
피터가 귀찮다는 티를 내며 느리게 고갤 들어 엘리를 바라보자, 엘리는 커피와 함께 가져온 쿠키를 오독오독 씹어 먹으며 말했다.
"다 부숴버리면…. 재밌을까?"
"……?"
"꼭~꼭~ 숨어라."
"?!"
엘리가 몇 마디를 하자, 처음에 피터는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 하다가, 갑자기 파도치듯 밀려오는 옛 기억에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며 소릴 빽 질렀다.
"야! 엘리노어!"
"꺄흐흐흐"
평소에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또래치고는 점잖은 편에 속했던 피터지만, 이런 종류의 민망함은 그에게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엘리는 배를 잡고 웃기 시작하다가 한 마디를 더 하고 자릴 일어서서 도망쳤다.
"…누나한테, 보여줄래."
"야!!!"
피터는 드디어 참지 못 하고 도망치는 엘리를 잡기 위해 거실을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불현듯 옛날 엘리의 말버릇이 떠오른 피터는, 더는 엘리를 잡으려고 뛰지 않고 그대로 우뚝 서서 엘리가 있는 쪽으로 크게 소리쳤다.
"엘리 예뻐!?"
"!"
엘리가 온몸에 소름이 쫙 돋은 채로 뒤로 고갤 돌리니, 눈을 마주친 피터가 능글맞게 씨익 웃으면서 벌써 많이 식어버린 커피를 한 번에 쭉 들이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커피 엘리 거야!"
"야!!! 모나헌!!!"
"흥! 엘리 몰라~!"
엘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연합의 여자들과 비슷한 성격의 아이로 자라났다. 그러니까, 예전처럼 애교를 부린다던지, 웅얼거리는 소리를 낸다던지 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 했던 행동들이니 매우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엘리는 유독 그 과거를 부끄럽게 생각했다. 아마도 연합의 여자들 중 그런 성격의 여자는 없기 때문에 더욱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청소시간!"
"뿅~"
"조금, 사나워질지도- 크큭"
"나와랏! 마법봉!"
헉, 헉, 헉. 한참을 기억나는 만큼 서로의 부끄러운 대사와 기술을 말하던 그들은 지쳐서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때 엘리가 먼저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풉, 푸하하"
그 웃음소리가 피터에게 옮아서 피터도 피식거리던 웃음을 참지 못 하고 팡 터트렸다.
"큭큭"
"하지 마! 진짜, 왜 부끄럽게 그런 걸 자꾸 말하는데?"
"너야 말로"
"하으, 근데 너무 웃겨."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겨우 정신이 든 그들은, 드디어 보았다.
자신들이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집을.
"…피, 피터. 이거 우리가 이랬어?"
"아, 음…. 아마도"
"…오늘 다들 몇 시에 온다고 했지?"
"…다, 섯…시던…가?"
"지, 지금 몇 시?"
"…네 시 삼십오 분…."
"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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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 쓸데없는 이유로 이렇게 집을 어질러 놨다? 너희가 아직도 여섯 살, 여덟 살인 줄 알아!?"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빨리 치워!"
"야!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시끄러워, 네가 먼저 시비 걸었잖아."
"이것들이 진짜! 또 싸울래!?"
"……."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