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phers

  • Silent Night - 일곱 개의 변주곡 -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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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고스트바스터 [64급]

2014-07-09 11:03:50

- 이 글은 픽션(fiction)입니다. 특정 단체ㆍ사건ㆍ사상ㆍ종교와 무관함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 Silent Night - 일곱 개의 변주곡 -  Prologue 01 02 03-1 03-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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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다. 브루스는 자신이 한 번도 나이 들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필이면 지금 적지 않은 세월의 무게가 다리로 천근만근 실리는 것 같았다. 다름이 아니라 지금 옆구리에 끼고 있는 이 물건이 주는 중압감에 짓눌리고 있는 거였다. 타인이 전해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눈과 귀와 마음으로 직접 확인했기에 믿을 수밖에 없는 진실이 담겨있다. 펜대를 잡고 한 자 한 자 종이 위로 옮길 때마다 마음에도 아프도록 새겨졌다.


  믿음이라는 것은 또 다른 믿음으로 인해 깨졌다. 흔들림 없어야 할 신념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 건 결국 자신이 믿어온 것이 진실에 굴복했다는 증거였다. 인정하기 싫어서 외면해왔다. 새파란 어린놈은 분하게도 정곡을 찔렀다. 지금 옥상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놈의 생각대로 되는 것 같아서 찜찜하지만 결단을 내렸다. 전부터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려던 녀석의 포기 모르는 노력을 지금만큼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을 열고 나가자 오늘따라 찬란한 황혼이 품으로 한가득 안겨들었다. 옥상으로 나가면 바로 해가 저무는 서쪽이 보인다. 그랑 플람이 마지막까지도 항해를 멈추지 않게 한 ‘트와일라잇’을 보며 재단후원자들은 그의 넋을 기리는 동시에 그 숭고한 의지를 계승하여 새로운 꿈을 꾼다. 실제로 매일같이 이 옥상에 올라오는 사람은 드물었다. 영국의 우중충한 날씨가 좀처럼 찬란한 붉은 노을을 보여주지 않아서만은 아니었다. 마틴만큼은 서창으로 붉은 기운이 돌면 반드시 모습을 드러냈다.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광경을 감상하며 그랑 플람의 정신을 찬양하고 앞으로의 포부를 자신있게 말하는 녀석은 친아들마냥 자랑스러웠다. 그 누구든 꺼리는 그 능력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기 전까지는.


  어두운 빛을 등지고 있는 더 어두운 인영이 있었다. 잠시간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착각이 엄습했다. 그런 스스로에게 놀라 흠칫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틴 챌피는 변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를 내쳐야 했던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변한 것은 무엇인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을 텐데도 풍경에 취한 듯 마틴은 돌아보지 않았다. 브루스는 저벅저벅 무겁지만 빠른 특유의 발소리를 내며 마틴과 약간 떨어진 곳에, 그렇지만 나란히 서서 노을을 감상했다.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광경인데도 일몰은 언제나 장엄한 마력으로 사람을 끌어들였다. 방금 전까지 쉼없이 조잘거리던 말도 전부 멈추고 그저 한없이 풍경 속으로 잠겨든다. 더 이상 열정 가득한 대화는 없을지라도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는 다르지 않았다.


  모든 살아있는 것이 그러하듯 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겨울의 황혼은 더욱 빨리 스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위는 금세 어둑어둑해져 따스한 빛깔을 잃었다. 잊었던 추위가 스며들었다. 브루스는 코트 자락을 여미며 중대한 각오라도 다지듯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내용은.”

  “물론 봤어요.”


  기다렸다는 듯까지는 아니지만 마틴의 대답에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브루스는 고개를 모로 돌려 마틴을 보았다. 그의 눈빛은 일절 흔들림없이 담담했다. 항해일지 안에 브루스가 써놓은 것은 재단후원자라면 경악할 만한 사실일 텐데도 어찌 저리도 침착할까. 공연히 화가 날 정도였다. 여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정녕 아무렇지 않은 까닭인가.


  브루스는 무의식적으로 이를 까득 갈았다.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애송이에게 배신당한 것 같았다. 모든 기대는 저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그를 신뢰하고픈 마음이 남아있기에 그런 심정이 든다는 사실을 무시하려 애쓰며.



  “왜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지?”



  예기치 못한 선박 침몰로 인해 구명보트를 이용해 몇 안 되는 선원들과 탈출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배는 비교적 작은 쾌속선의 일종이었기에 좌초되자마자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망망대해 한가운데 뜬 배 위에서 한동안 실감도 못한 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얼마 안 되는 식수와 식량 그리고 나침반에 의존해 며칠 뒤 한밤중에 발견한 포트레너드 항구 등대불빛을 발견했을 때의 그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워낙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항해일지를 챙길 겨를은 없었다. 그랑 플람의 뱃머리가 닿은 항구도시마다 찾아다니며 그가 남긴 것들을 조사하기 위한 모험이었다. 그 여정을 기록한 항해일지야말로 전부였을지 모르는데 배와 한몸이 되어 영영 바다에 잠기게 된 일지를 생각하며 도리어 안심한 것은 왜인가. 전부 머릿속에 있는 일들이지만 모험가에게 항해일지란 거짓을 말할 수 없는 신성한 공간이다. 선장으로서 느낀 그대로를 술회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기록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사라지자 브루스의 전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구술에 의존해 재단 이사진에 보고했다. 브루스가 그때 말한 것에 추호의 거짓은 없었다. 다만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을 뿐이다. 조작이란 사실의 변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은폐에도 해당하는 것이기에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할 생각은 아니었다.



  자기자신을 속이면 그뿐이라고 그 죄책감은 평생 혼자 안고 가겠다는 결심을 맥없이 무너뜨린 건 어느 날 해경이 침몰 선박을 인양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였다.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는 기분을 처음으로 맛보았다. 설상가상 선박의 실소유주가 누구인지 정확하지 않아 해경은 포트레너드항 선박 점유율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회사측에 먼저 연락을 넣었다. 회사는 괘씸하게도 그것이 자기들의 선박이라고 주장했다. 실상 그랑 플람 재단을 탄압하는 것과 다름없는 방침에 반발하는 재단의 독자적인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회사였다. 그 처사는 분명히 진실도 거짓으로 덮을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이 큰 회사의 횡포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재단측에서는 정말로 그 선박을 자신들이 사용했는지 주장할 근거가 뚜렷하게 없다는 사실이었다. 브루스가 선실에 남긴 야수의 발톱 자국도 결정적인 증거이지는 못했다.



  회사의 기만에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지만 항해일지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회사도 분명히 그것을 노렸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더욱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 안에 브루스가 직접 자신의 손으로 쓴 내용은 그야말로 재단의 정통성을 통째로 뒤흔드는 것이다. 더욱 슬프고도 분한 것은 진실이 세간에 알려지면 ‘영웅의 이면’이라는 싸구려 가십거리 같은 제목으로 나돌게 될 소지가 충분하다는 점이었다. 브루스에게도 재단후원자들에게도 그야말로 자기가 믿어온 모든 것을 샅샅이 부정당할 법한 사실인데도, 그저 민간인들 사이에서는 흥미 본위의 뒷담화에 지나지 않을 게 뻔했다.


  헬리오스가 그랑 플람 재단의 모태로 삼고 있다고는 하나 재단과는 별개의 독자적인 세력으로 우뚝 선 지 오래였다. 굳이 그랑 플람의 이름을 팔지 않아도 헬리오스, 명왕 헨리 밀러 3세의 업적만 보고도 회사측에 투신하는 사람이 더 많아진 실정이다. 그러므로 브루스가 모험에서 알아낸 진실을 만약 그들이 쥐게 된다면 재단의 존속을 그들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원하지 않을 진실의 칼날을 재단의 목에 들이대며 위협하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들은 그랑 플람이 더 이상 없어도 되지만 재단에는 그랑 플람만이 전부였다. 하여 함구하는 조건으로 재단은 회사의 방침에 굴욕적으로 따라야 했을 테고, 재단은 그랑 플람의 정신을 잃어버린 채 허울로만 남았을 것이다.



  전부 비관적인 추측과 상상으로만 그친 것은 항해일지가 끝끝내 헬리오스에 손에 떨어지지 않은 까닭이었다. 해경이 유류품을 처음으로 가져간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는 마틴이 개입했다는 사실은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틴의 능력의 가장 무서운 점은 바로 그렇게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그게 마틴이 기억을 조작했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져도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은 없었다. 그 심증을 물증이 되게 할 수 있는 이가 마틴뿐인 것이 아이러니였다.


  마틴의 능력, 독심술과 최면술은 현존하는 사이퍼들의 다양한 능력 가운데서도 매우 드물 뿐더러 현재 알려진 바로는 마틴만큼 우수한 독심술사나 최면술사는 없다. 집중해야만 들리는 능력자와 비교해볼 때 마틴은 본인이 조절하지 않으면 원치 않아도 들린다. 물론 이런 마틴의 능력에 관한 정보는 세간에는 극히 일부만 알려져 있다. 하물며 마인드 컨트롤 능력을 아는 것은 재단 내에서도 극히 소수다. 그만큼 강력하고 위험한 능력이다. 마틴은 그 능력을 통해 브루스의 모든 염려를 한 번에 날려버림과 동시에 실상 재단의 위기를 구한 거나 다름없었다.


  “브루스 씨가 알리고 싶지 않은 것 같았으니까요. 또―.”


  마틴은 브루스에게 몇 발자국 다가서 두 눈을 똑바로 맞추었다.


  “알려지지 않아도 될 진실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이었다. 마치 브루스의 마음이라도 읽은 것처럼.


  “네놈은 한 번 신의를 어기니 이젠 정말로 제멋대로 구는군. 네 능력은 유사시를 제외하고는 사용은 금했건만 이사진을 구워삶아 사용을 허가받고 나니 이제 아주 거리낌이 없나?”


  한껏 비꼬는 듯한 브루스의 말에 마틴의 유려한 눈썹이 약간 찡그려졌지만 그는 입술을 꼭 깨물고는 계속 침착하게 대응하려 애썼다.


  “그게 재단을 위한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당신이 말하지 않은 것도 다 그때문 아닌가요? 설마 항해일지가 회사에 넘어가는 게 더 나았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실 테죠? 무엇보다 제가 몰랐더라면 브루스 씨는 끝까지 모두를 기만하는 셈이 되는 겁니다. 저는 브루스 씨가 숨기려던 것을 알아챈 유일한 사람이고 그에 동의했기에 은폐하기로 ‘동참’했어요. 그에 오히려 안심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신의를 배반한 게 아니게 되니까.”


  “그딴 궤변으로 지금 너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게냐?!”


  “아니에요…! 아니, 네. 그건 아니지만 제가 브루스 씨와의 약속을 어기고 봉인해두기로 한 제 능력을 교묘하게 사용한 건 맞아요. 말씀드렸다시피 그게 회사에 재단이 종속되지 않도록 하는 최선이었으니까. 브루스 씨도 자리를 비운 상태라 다른 이사들은 하나같이 당황하기만 하거나 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미적지근한 반응이 대부분이었어요. 전 불안했죠. 제가 있을 곳을 망치려드는 회사의 행보를 가만히 두고볼 수는 없었어요. 그 누구보다 재단을 사랑하는 당신의 의지를 대신한다는 심정으로 저는 재단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약속을 저버리면서까지요. 그런데 당신은 그저 제가 신의를 저버리기만 했다는 식으로 더 이상 말도 섞지 않으려 했죠. 한 번 원칙을 깨면 그걸로 나머지 모든 것은 무가치한 일로 전락해버리나요? 저도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니에요. 예나 지금이나 전 당신의 칭찬을 바랐을 뿐인데 어째서 몰라주시죠?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믿고 싶지 않아서 원망으로 가득 찬 마음을 전가하진 마세요!”


  “마음을 읽은 건가?”


  “제발! 브루스 씨!”


  마틴은 분노와 억울함이 범벅된 표정으로 거칠게 언성을 높였다. 화가 나서 씩씩대고 있던 브루스가 놀라서 자기의 화는 잊은 채 휘둥그레진 눈으로 마틴을 쳐다보았다. 언제 어느 때건 온화하고 침착한 녀석에게 이런 구석이 있었나 싶다. 주체 못할 화에 휩쓸려 사납게 얼굴이 일그러져 있으면서도 따뜻한 갈색 눈동자 한가운데는 깊은 슬픔이 고여 있었다. 녀석은 연기에 뛰어나다. 허나 저것이 눈속임이 아니라는 사실은 왜 이리 아플 만큼 알 수 있는 것일까.



  “당신의 마음은 읽지 않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게 나를 믿어준 유일한 사람인 당신 대한 제 굳은 맹세니까. 당신은 이 능력을 결코 사익이나 악행에 사용하지 않고 오직 그랑 플람의 숭고한 정신에 따라 쓰겠다는 그 말을 믿어주고 이 재단에 몸 담게 해준, 내가 비로소 있을 곳을 만들어준 은인이니까!”


  브루스는 분명히 눈앞에서 목청이 터져라 외치고 있는 게 마틴이었음에도 그 위로 다른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저이는 누구란 말인가.



  “당신의 그랑 플람에 대한 경애심은 고작 그 정도로 흔들리는 거였나요?”



  브루스가 마틴의 얼굴을 보면서도 다른 누군가를 보는 데 정신이 팔린 사이, 많은 말을 한꺼번에 쏟아내느라 약간 거칠어진 숨을 고르던 마틴이 다시 평정을 되찾으며 다시 브루스의 심기를 거슬렀다. 브루스가 정신을 차리고 마틴을 인식한 순간 그는 항해일지를 들지 않은 손으로 마틴의 멱살을 쥐었다.


  “고작 그 정도? 고작 그 정도라고? 네놈은 아무렇지 않단 말이냐?”


  “네! 아무렇지 않아요! 저도 비능력자였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내가 능력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건 그저 아주 순수한 꿈일 뿐이었죠. 그랑 플람은 언제나 새로운 모험을 찾아 늘 새로운 꿈을 꾸며 살아가는 실로 위대한 ‘능력자’였어요. 비록 사이퍼가 아니었다 해도, 오히려 그는 사이퍼가 아니었기 때문에 영웅일 수 있었던 겁니다. 능력자가 아니었기에 자기와 같은 비능력자들을 설득하여 조금씩 핍박받던 능력자들을 평범한 일상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어요. 비능력자의 마음을 알기에 조화의 이념을 이해할 수 있었던 거라고요.


  어째서 당신은 각지에 남은 오래된 기억의 편린들만 가지고 그의 모든 것에 실망한 거죠? 당신은 마치 성상(聖像) 파괴를 당한 수도승 같아요. 성상이 없다고 해서 신이 사라지나요? 그래요. 우리는 결코 그랑 플람의 진심을 알 수 없습니다. 그는 이미 전설 속에서만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 진의야 어떻든 그의 훌륭한 업적은 사라지지 않아요. 이미 길이길이 전해질 위대한 역사로 남았어요. 당신은 그런 그의 행적이 모두 거짓이라고 말할 셈인가요?!”



  말이 아팠다. 항해일지를 빼돌린 것이 녀석임을 알고부터 대화하기 꺼려졌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리라. 무서울 정도로 사람이 숨기고 싶어하는 본심마저 들추어낸다.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에 단지 의존하고만 있을 녀석이 아니다. 무수한 마음을 접하며 살아온 만큼 누구보다도 인간의 심리를 잘 파악한다. 입으로는 몇 번이고 의심했지만 스스로를 속일 수 없었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마틴을 믿고 있었다. 읽지 않겠다는 그 맹세를 깨뜨리지 않았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마음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은 있는 법이다.



  “모두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건 영웅에게 조금의 흠결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당신의 편벽됨에요. 진실은 언제나 믿는 자에게 속하니까.”



  브루스는 스르르 마틴의 멱살을 쥔 손에서 힘을 뺐다. 마틴은 브루스의 그 손을 부드럽게 잡아 슬며시 내려놓았다. 잠시 시선을 돌린 채 구겨진 옷깃을 정리하고는 거세게 흔들리는 은인의 눈을 다시 사로잡았다.



  “브루스 씨, 알아주세요. 그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진실이에요. 변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는 그저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그랑 플람을 찬양하며 그의 업적을 기리는 일을 계속할 뿐입니다.”


  마틴은 별이 총총히 뜨기 시작하는 초저녁 하늘을 잠깐 바라보다가 브루스에게 목례하고 옥상을 나섰다. 브루스는 우두커니 한자리에 계속 서있다가 서쪽의 오른쪽을 보았다. 항해자들의 고마운 좌표인 붙박이별 폴라리스가 반짝이고 있었다.



  마틴이 부럽다. 녀석은 어쩌면 50년 가까이 그랑 플람을 좇으며 살아온 자신보다도 그를 더 잘 이해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녀석은 모를 것이다. 긴 세월 동안 믿어 의심치 않은 것의 이면을 보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몰랐더라면 더 좋았을 진실, 쉽사리 바꿔 해석할 수 없는 실망감. 브루스에게 속한 진실은 너무나도 비참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크다는 간단한 진리에 마음 한 켠은 분명히 무너졌다. 옥상 계단을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나이듦이 급격하게 느껴졌다. 무엇이든 혁신할 수 있는 마틴의 젊음이 질투나는 것이다.


  브루스는 고개를 약간 떨어뜨리며 눈가를 손으로 가렸다. 뺨을 따라 별빛이 타고 흘렀다.







  극비사항으로 치부되어 가능하면 적은 인원들만 알고 있어야 했던 게이트웨이였다. 1차 조사단의 수는 겨우 다섯에 지나지 않아 소회의실도 다 채우지 못했다. 시각적으로 은밀한 사안임을 나타내는 셈이었다. 지금은 중회의실이 적적하지 않을 만큼의 인원이 모였다. 비밀리에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었지만, 많은 수가 알게 되어 은밀함은 줄어든 만큼 사안의 중대함은 더 커진 것처럼 보였다. 최초 탐사 멤버들도 엄선된 각 세력의 에이스였는데 못지않을 만큼 쟁쟁한 능력자들이 더해졌다. 헬리오스의 간부들조차 구워삶는 담력과 언변을 지닌 마틴으로서도 이들 앞에 서는 것은 새삼 떨렸다. 더 가슴이 뛰는 결과밖에 가져오지 못한다 해도 그는 용기를 얻기 위해 트리비아가 앉아 있는 방향으로 잠깐 시선을 머무르고는 다시 정면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동맹군 여러분. 그랑 플람 재단 후원자 ATTRACTIVE 마틴 챌피입니다. 지금부터 작전명 <일곱 개의 변주곡(Seven Variation)>에 관한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작전명은 여기 작전 총지휘를 맡으실 VIGOR 브루스 보이틀러 씨께서 명명하신 것으로 2차 게이트웨이 조사에서 밝혀진 진격 시스템의 규칙성에 의거한 것입니다. 장치가 가동하기 시작하면 총 7단계에 걸쳐 각 방위 극점에서 생성된 적들이 중앙으로 일제히 진격합니다. 각기 다른 모습과 형태로. 하여 <일곱 개의 변주곡>인 것입니다. 이 작전의 목적은 새로운 이공간인 게이트웨이를 점령하고 안타리우스의 클론 샘플을 확보하여 그들의 전력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있습니다.”


  마틴은 자기 뒤쪽 벽에 걸린 커다란 지형도로 다가가 가느다란 지휘봉으로 그 중앙을 가리켰다.



  “보시다시피 게이트웨이는 광장 중심에 HQ와 유사한 장치가 있고 그것이 가동되는 순간 동서남북 끝에 있는 장치들도 연동하기 시작하는 구조입니다. HQ가 트루퍼의 원료이기도 한 안개를 수집하는 장치인 것처럼 이 중앙 장치가 사방으로 에너지를 공급하여 적들을 소환하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므로 각 방위의 전송장치를 먼저 파괴한 뒤에 방어력이 한층 낮아질 중앙 HQ를 파괴하여 진격 시스템의 가동을 중단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각 단계에서 등장하는 적의 규모와 종류에 관해서는 조사 자료를 따로 참고해주시고, 중요한 복제능력자건과 새로이 발견된 적의 무기에 관해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복제능력자란 이전과는 달리 옥사나 야코비치가 안타리우스 소속 사이퍼의 유전자를 이용해서 만든 클론뿐만이 아니라 복제 강화인간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임을 먼저 주지해주십시오. 2차 조사단은 강화인간 RABBIT 레나와 동일한 외형과 전투스타일을 보유한 개체를 발견했습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현 사이퍼 유전자 연구의 권위자인 닥터 까미유의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의 소견으로는 복제사이퍼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수월한 일이라고 하더군요. 아직 사이퍼의 유전자에 관해서는 현재 기술력으로는 검증이 채 절반도 되지 못한 상태이고, 실제로 복제능력자 생산이 가능한 것도 복제 능력을 지닌 사이퍼 옥사나 야코비치가 유일합니다. 그만큼 사이퍼의 유전자는 복잡다단한 구조를 지녔다는 뜻이죠.


  그에 비해 원래 일반인이었던 강화인간의 게놈 지도는 훨씬 구조가 간단해서 육신 자체는 복제하기 쉽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그 몸과 강화약물간의 상성은 강화 성공으로 검증된 상태이니 몇 체이건 거듭 생산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일반인 유전자 가운데 강화약물과 잘 맞는 유전자 조직이 존재한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강화인간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거죠. 안타깝게도 예전보다 안타리우스는 전력 증강에 용이해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복제능력자의 타입으로는 크게 능력을 기준으로 무기형, 원소형, 신체형로 구분됩니다. 무기형은 확인된 바로는 창검을 비롯한 근접형이 전부입니다. 원소형은 물, 불, 바람, 전격, 빙결 다섯 갈래가 확인되었고 주로 원거리 타입입니다. 신체형은 특성상 근접형인데 진격이라는 시스템에 맞춘 듯한 거구의 돌진형 개체가 있고 손이나 발을 이용한 전투 특화계로 나뉩니다. 가능하다면 각 특성별로 한 체씩 생포하는 것을 지상목표로 합니다.


  아울러 2차 조사에서 얻은 중요한 정보가 더 있습니다. 5단계와 마지막 단계에 등장하는 아그론과 벨로스라는 로봇입니다. 트루퍼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은 전투력과 방어력을 자랑합니다. 최대한 각 라인을 막아 완전 포위 상황을 막는 것이 중요한 동맹군의 전투 대열을 흐트러지게 만들 공산이 높은 개체입니다. 그 로봇은 근접과 원거리 공격 모두 가능하기까지 합니다. 이번 일곱 개의 변주곡 작전의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으니 개체 특성을 각 자료를 통해 적극 숙지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가 작전의 개략이자 골자입니다. 좀더 자세한 전투 대형에 관해서는 실제 전투 지휘를 맡으실 보이틀러 씨의 설명을 듣겠습니다.”



  마틴은 매우 길고도 복잡한 내용에 관한 설명을 논리정연하게 마치고는 다음 작전설명으로 이었다. 브루스는 저벅저벅 걸어나와 마틴이 공손하게 건네는 지휘봉을 못마땅한 듯이 건네받았다. 마틴은 절대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그의 태도에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삼켰다. 집무실 책상 위에 둔 항해일지를 보고 그가 옥상을 찾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고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여태까지 브루스가 피한 터라 말하지 못한 진실을 마침내 부닥쳤고 이해해줄 거라 생각했다. 닿지 않은 것일까.



  “이번 작전에서 이루어질 전투의 핵심은 광장의 사수요. 다시 말해 동서남북에서 광장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봉쇄하는 것이오. 적들의 물량 공세를 효율적으로 막아 앞으로의 게이트웨이 조사에 방해받지 않도록 장치를 불능상태에 빠뜨리고 클론 표본을 사로잡아 안타리우스의 전력을 상세히 조사할 것이오. 그러기 위해 이 자리에 엄선된 구성원들이 모였음을 가슴에 새겨두시길 바라오.


  우리는 게이트웨이에 두 가지 경로로 진입할 예정이오. 하나는 TACHYON의 공간이동능력, 다른 하나는 EMPRESS의 그림자길을 이용한 방법이오. TACHYON의 능력으로는 각 라인을 지키는 것과는 별개로 가장 중요한 장치 파괴 임무 및 그 엄호를 맡은 DESTROYER와 ICE, 그들이 방위 순서에 따라 가장 먼저 진입하게 되는 동쪽 라인 담당인 SECRETARY와 ROSE, 마지막으로 총지휘관인 내가 이동하게 될 것이오.


  나머지 그림자길을 이용하게 될 멤버들의 역할 분담을 덧붙여 말해드리겠소. 서쪽을 BLADE와 EMPRESS가, 남쪽을 THOR와 SPEAR가, 북쪽을 나와 TACHYON이 맡게 될 것이오. ATTRACTIVE는 스캐닝을 통한 지속적인 현장 정보 수집과 원조가 필요한 라인의 부족한 전투력을 보충할 것이오. 각기 근접형과 원거리 2인 1조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합을 잘 맞추어 임전해주기를 바라오.


  1차 조사를 다녀온 이들은 알겠지만 상황은 매우 급박하게 돌아갈 것이오. 짧은 시간내에 최대한 집중력을 발휘하여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오. 적진 한가운데서 모든 것이 불리하게 작용하는 전투임을 잊지 마시오. 유사시에는 신속한 귀환 조치를 내릴 것이며, 각자 맡은 바를 우선으로 하되 유사시에 내 명령에 즉각 따라주시오.”



  브루스는 지휘관으로서의 마지막 당부의 말을 남기고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할 말이 끝나지는 않은 듯 그 자리에 그대로 굳게 서있었다. 회의장에 있는 모두가 그 침묵의 이유를 궁금해하지는 않았다. 어리둥절함보다는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긴장감이 회장 안을 떠돌았다. 브루스의 눈은 헬리오스의 작전 멤버가 앉아있는 곳으로 향했으나 모두 달리 표정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마틴만은 지금 도마 위에 오를 사람이 누구인지 단번에 가려낼 수 있었다. 표정은 차분하지만 마음속은 이미 긴장과 두려움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는 자네트였다. 마음은 누구든 속일 수가 없다. 마틴이 읽을 수 없는 트리비아도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2차 조사 당시 헬리오스 소속능력자 ROSE 자네트와 동일한 모습과 무기를 보유한 클론이 발견되었소. 변신능력자 여러 명이 조사단을 교란시키기 위해 일부러 ROSE로 위장한 것이 아닌 이상, 정황으로 볼 때 ROSE의 복제능력자인 것으로 잠정 추정하오. 이 점에 관해서는 해명은 물론 철저한 조사를 통해 규명할 필요가 있음을 여기 이 자리에 있는 ROSE 말고도 소속세력인 헬리오스 또한 동의하실 것이오. 우리 그랑 플람 재단과 지하연합의 입회하에 자명하게 드러난 사실이니 말이오.”


  브루스의 어조에는 일말의 책망도 없이 다만 사실을 고할 뿐이라는 덤덤함만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떨어질 때마다 더욱 묘한 긴장감이 더해졌다. 지하연합측은 이 문제에 관해 켕길 것이 없기에 제3자의 시선에서 브루스와 자네트 사이의, 더 정확히는 그랑 플람 재단과 헬리오스 사이의 팽팽한 신경전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랑 플람 재단은 회사의 새로운 방침에 반발하여 조금씩 헬리오스와 의논을 거치지 않은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회사가 더 이상 그랑 플람의 이념을 함께 지켜나가는 형제가 아님을 선언하고 독자적으로 그들의 영웅을 기리는 일들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희귀하고 강한 능력 덕분에 은연중에 주목받고 있었다고는 해도 재단과 회사 사이를 조율할 정도의 권력자로 마틴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것도, 브루스가 모험에서 돌아와 침몰 선박 사건에 직접 나서 회사와의 갈등을 표면화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재단이 독자적으로 입수한 정보로 실질적인 주도자가 되어 진행하는 이 게이트웨이건은, 회사가 인정하지 않을지언정 재단의 회사로부터의 완벽한 독립이었다. 거기에 ‘우연히’ ROSE의 클론을 발견한 것을 빌미로 실질적으로 회사를 ‘위협’하는 데 이른 것이다.



  자네트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소속이라는 것은 이런 때일수록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법이었다. 섣불리 감싸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소속원을 비난하지도 못한다. 드렉슬러는 자네트가 안타리우스와 관련이 있든 말든 아예 개의치 않는 듯 게이트웨이 장치에 관해 술명해놓은 서류에 푹 빠져 있었고, 다이무스는 자기 옆에 앉은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았으며, 타라는 브루스의 언사가 거슬리는지 잠시 눈썹을 움찔거렸지만 뼈가 굵은 명왕의 비서답게 평정을 가장했다. 소속을 벗어날 수 없는데도 이런 일은 해당 개인이 직접 성명을 발표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네트는 회장 안 모든이들의 시선과 주의가 자신에게 쏠리자 아직도 저주처럼 흔적이 남은 주사바늘 자국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무심코 팔마디로 손이 가려는 것을 주먹을 꼭 다잡아 억누르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께 우선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는 말부터 전해야 할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저와 닮은 클론이 적진에서 발견된 바, 공공의 적을 상대하는 데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 허나 저 스스로도 왜 저와 유사한 클론이 그곳에 있었는지 불명합니다. 저 또한 그 ‘진실’에 관해 알고 싶습니다. 다만…….”


  자네트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이긴 해도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가다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망설임으로 가득 차 바닥을 의미없이 헤매던 눈동자가 강단을 되찾은 순간, 그녀는 자기가 선 자리에서 뒤로 물러나 허리춤에 찬 레이피어를 뽑아들었다. 그것을 공중에 몇 번 휘두른 뒤 왼손은 뒷짐 진 채로 심장을 가로지르듯 얇다란 검신을 비스듬히 세웠다. 은빛 섬광이 마치 하얀 장미 꽃잎처럼 퍼졌다 사라졌다. 기사의 서약 자세였다.


  “비록 지금은 가문을 나온 상태이지만 저는 프리츠의 인간입니다. 가문의 명예에 누를 끼칠 만한 진상이 밝혀진다면 그에 대한 처분은 기사의 이름을 걸고 달게 치를 것입니다. 또한 능력자로서의 저의 소속인 헬리오스에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습니다.”


  자네트의 중대한 각오가 <일곱 개의 변주곡> 작전 참가자들에게 부담을 안겼다. 본래 그들이 이번 작전에서 달성해야 할 목표, 클론의 샘플을 확보하는 데 있어 ROSE의 모습을 한 클론을 우선적으로 생포해야 한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기묘한 동정심이 회장 안을 떠돌았다. 자기가 자기를 해쳐야 하는 기묘한 상황에 맞닥뜨릴 인간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만나면 죽는다는 또 하나의 나 도플갱어 괴담따위는 오히려 귀여울 지경이다. 현실보다 잔혹한 것은 없다.



  자네트가 홀든가와 마찬가지로 유명한 능력자 집안인 프리츠의 영애라는 건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각 세력 핵심인물들은 다 알고 있는 정보였다. 그걸 알기에 자네트도 스스로 프리츠임을 밝히고 나선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인 제레온의 정신착란증세에 관한 소문과 그의 숙부와 황태자의 죽음 등 세간은 프리츠 가문에 대해 석연치않아 하는 구석이 많다. 그 정확한 원인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는데, ROSE의 클론이 발견되면서부터 가장 나쁜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제레온이 검의 형제 기사단을 만들어 안타리우스에 관해 조사한다는 사실은 그 전까지는 의기 높은 기사들이 공공의 적에 대항한다는 숭고한 뜻으로 내비쳤지만 그 의도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검게 물들어가는 제레온의 은발을 떠올리며.


  레이피어가 다시 한 번 휙 공중을 예리하게 가르는 소리가 들리고 자네트는 검을 되돌리며 자리에 앉았다. 만약 게이트웨이에서 발견된 것이 ROSE가 맞다는 가정이 들어맞는 순간 그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되는 현실만이 남을 터였다. 오스트리아의 유력한 능력자 가문에마저 안타리우스가 뿌리내리고 있다면 2차 능력자 전쟁과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또다시 ‘배신자’와 같은 뒤숭숭한 말이 평화의 시대를 박살내며 화두로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전쟁을 겪지 않은 마틴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일상일 것이다. 그것이 새삼 서글펐다. 마틴에게 거짓이란 존재하지 않는 까닭이었다. 다만 이 여러 마음의 소리가 들끓는 와중에도 그곳만 뻥 뚫린 것처럼 고요로 있는 트리비아만이 갖고 싶은 비일상이었다. 그녀는 자네트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눈길이라 기뻤다.



* * *



  앤지는 옥상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추위에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차가운 문고리를 쥐었을 때 온몸의 털이 쭈뼛 곤두서는 듯한 냉기를 먼저 체험하고서는 단단히 각오했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맞는 한기는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허나 자신의 추위는 아마 지금 눈앞에 있는 저 뒷모습만큼이 싸늘하지는 않으리라.  루이스는 평소에는 늘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를 하필 이렇게 추운 날 벗은 채로 하염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별도 없는 그믐날이다. 밤하늘은 여간해서는 까맣지 않지만 오늘은 칠흑에 가까웠다. 본디 어둠을 틈타 숨으려고 했던 이도 되레 어둠에 먹혀버리고 말 을씨년스러운 겨울밤이다. 하루를 무사히 마감하며 잠자리에 드는 안식의 밤이 아니라 잔혹한 위기의 밤에 가까웠다. 우연히 익숙한 뒷모습이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목격하지 않았더라면 앤지는 벽난로와 따뜻한 핫초코를 찾아 가던 길을 그대로 갔을 것이다.


  “감기 걸려, 루이스.”


  앤지는 자신의 추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코끝까지 하고 있던 목도리를 풀며 그에게 다가갔다. 누가 온 줄을 몰랐다는 듯 루이스의 어깨가 움찔 튀는 것을 보고 쓰게 웃었다. 돌아보는 루이스의 ‘여긴 어떻게’라는 눈빛 속에 있는 물음에는 굳이 답하지 않으며 루이스의 목에 목도리를 걸었다.


  “난 별로 추위 안 타잖아. 너……커헉-.”


  루이스가 당황하며 목도리를 해주려는 손길을 막으려들자 앤지는 순간적으로 목도리를 확 죄어 장난스레 그의 숨통을 조였다.


  “넌 안 추울지 몰라도 보는 내가 추운 걸.”


  앤지는 긴 목도리를 꼼꼼하게 둘러주었다. 루이스는 자기가 싫다는 식으로 말해도 결국 그를 배려한 다정한 호의임을 알고는 앤지가 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었다. 매듭까지 매고는 만족스러운 듯 보는 그녀를 보며 루이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곤란한 듯해도 싫지 않은 듯한 그의 이런 쑥스러운 미소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 얼굴을 오래가지 않고 금세 무표정이 되어 하늘을 향했다. 까만 하늘은 철가루로 뒤덮여 있기라도 한 건지 그는 자석처럼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 이끌리는 것 같았다. 아니,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틀렸다. 루이스도 앤지도 볼 수는 없지만 오늘같은 밤도 자유로이 누빌 수 있는 이가 저 하늘에 녹아들어 있을 것이다. 그는 하늘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트리비아를 좇고 있었다.



  “트리비아의 눈에는 이런 캄캄한 밤에도 온세상이 뚜렷하게 보이는 걸까?”

  “……글쎄.”


  앤지는 루이스를 따라 먼지도 가까운지도 모를 정도로 어둔 밤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다시 시선을 그에게로 돌렸다. 그 시선에 담긴 의미가 퍽 익숙한지 루이스는 씁쓸하게 웃으며 돌아서 난간에 약간 기대선 채 고개를 떨어뜨렸다.


  “내가 트리비아의 날개에 의존한 건 그때, 2차 능력자 전쟁 때뿐이야. 꼴사납게도 난 그때 부상 때문에 의식을 잃은 채였고 아이거산에 도착해서야 정신을 차렸어. 로맨틱한 둘만의 야간 비행 같은 걸 사람들이 기대하는 이유를 난 모르겠어. 내겐 밤하늘을 나는 그녀가 세상을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니 세상을 굽어보기나 하는지 알 길이 없어. 나는 그녀의 연인으로 불리고 있지만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건 타인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적어.”

  “…….”


  앤지는 문득 그랑 플람 재단의 독심술사가 떠올랐다.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그를 루이스가 부러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그는 트리비아에게 연심을 품고 있다.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그녀에게 섭섭함을 느끼는 루이스가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아낼 수 있는 그를 견딜 수 있을까. 그의 불안은 부추겨지고 고통스러워지는 건 아닐까.



  “앤지.”

  “응.”

  “트리비아의 그림자 안은 어땠어?”


  앤지는 매달리는 듯한 루이스의 절실한 눈동자에 탄식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루이스가 참고 참고 또 참았다가 마침내 터뜨린 질문임을 알아차렸다. 아마도 알고 싶으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의 치열한 싸움이 그를 끝까지 망설이게 하다가 지금 분위기에 맡기듯 나와버렸을 것이다.



  루이스를 가장 불안하게 하는 원인인 트리비아의 그림자. 그녀의 그림자는 마음만 먹으면 이 세상으로부터 그녀의 존재를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수 있다. 죽음과는 다르지만 현실에 남겨질 이들에게는 그녀의 죽음이나 다름없는 그녀만의 완벽한 행방불명. 아무리 쫓아가려 해도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점에선 죽음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녀의 그림자를 안다는 건 루이스에겐 확인사실이나 다름없는데.


  앤지는 스스로가 아플 질문을 한 루이스에게 다시 아픈 대답만을 돌려줄 수밖에 없음에 아파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무서웠어.”


  앤지는 지금도 선연히 떠오르는 기억을 더듬었다.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곳이기에 가장 안전한 그림자 안이라고는 해도 그곳은 안전과는 거리가 멀기만 했다.


  “별로 오래 있던 것도 아니고 곧 트와일라잇으로 나왔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미칠 것 같았지. 아무것도 없고 나 자신의 모습조차도 그림자에 파묻혀버려. 두려움에 나오던 혼잣말도 과연 내가 내는 소리가 맞는지 모든 감각이 뒤틀리는 것 같았어. 무엇보다 혼자라는 걸 견딜 수가 없었어. 내 처지상 거기가 가장 안전했겠지만, 솔직히 그런 데 날 들여보낸 트리비아가 원망스럽기도 했어. 토니의 계획이었다고는 해도.”


  앤지는 자신의 몸을 스스로 끌어안았다. 추워서가 아니었다. 그때의 그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 되살아난 까닭이었다. 도피 생활을 하며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그림자 안에 갇힌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원망했었다.


  “헌데 트리비아는 그런 공간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야. 하물며 그녀는 그 안이 아늑하다고 했어. 나는 그 감각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어. 다만 짐작만을 할 뿐이야. 아마도 그녀의 안에는 뿌리 깊은 고독과 절망 같은 게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우리가 이해할 수도 없고 아마 그녀도 이해해주기를 바라지 않을…….”


  앤지는 거세게 흔들리는 루이스의 눈동자를 진득이 마주보다가 추위에 평소보다 더욱 차가운 그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잡아 올려 온기를 나눠주듯 꼭 감싸쥐었다.


  “루이스, 네가 트리비아에 대해 불안해하는 건 알아. 가까이서 지켜봐왔으니까. 하지만 넌 잘 몰라. 트리비아도 불안해, 너만큼이나.”

  “어째, 서……?”

  “여자는 말이야, 자기 일에 열심인 남자한테 반하면서도 너무 일만 열심히 하는 남자한테는 실망하거든.”

  “…….”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이 안 가는 듯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는 루이스를 보고 앤지는 실소를 머금었다가 다시 짐짓 진지한 얼굴을 했다.


  “나의 영웅, 나의 벗. 나는 언제까지나 너의 열렬한 팬으로서 언제나 너를 응원할 테지만 세상의 모든 짐을 네가 떠안으려 하지 않아도 돼. 기대가 버겁다면 조금은 내려놔.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는 거야. 네가 좀더 소중히 해야 할 것이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루이스…….”


  앤지는 잠시 말을 끊고 입 안에서 망설이듯 말을 굴리다가 조심스레 내뱉었다.



  “브랜다의 무덤을 찾는 건 이제 그만뒀으면 해.”

  “…!”


  루이스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도 어떻게 알았느냐고 추궁하지 않았다. 그저 아까보다 더욱 힘이 들어가는 앤지의 손에 실린 간절함을 감지하며 시선을 피했다. 그의 미간이 고통스러운 듯 잔뜩 좁혀있었다.


  아마도 앤지가 말한 것만큼 트리비아의 심정이 간단한 것은 아니겠지만 같은 여자로서 가늠할 수 있는 건 있었다. 트리비아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첫사랑을 여전히 마음에 담고 있는 루이스였다. 그게 어찌할 수 없는 트라우마 같은 것이라 해도 그게 아니라도 루이스에게는 트리비아를 온전히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없었다. 그는 늘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는 못 말리도록 진지하고 성실한 사람이니까. 그저 한 줌의 사람으로 족한 트리비아와는 너무나도 다른 그였다.


  앤지는 사뭇 고통스러워 보이는 루이스의 그늘진 얼굴을 보며 아무런 위로의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말하면서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고칠 수 없는 문제였다. 그걸 바꾼다면 루이스가 루이스가 아니게 되어버릴 것이다. 그는 이미 영웅이었고 그는 그 무게를 이미 감당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보다도 자신의 소임을 우선시할 것이다. 



  루이스와 트리비아의 엇갈림은 아마도 영영 만나지 못할 평행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자마자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자신의 비겁한 기대를 세차게 고개를 흔들어 떨쳐냈다. 루이스의 차가운 체온에 옮아 자신의 손에 퍼지는 냉기를 느꼈다. 잊고 있던 추위가 다시 찾아들었다.



* * *



  동이 튼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먼저 벌레를 잡기 위해 나른한 날개를 펴고 기지개를 켜는 이 시각까지 트리비아가 바깥에 머무르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어둠이 빛에 전염되기 시작하는 그 순간을 차마 보고 싶지 않아 언제나 새벽 언저리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었다. 오늘따라 아침이 되도록 나와있는 데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변덕이라 하면 될 것이다. 언제나 날다가 앉아 쉬고는 하는 어느 건물 옥상 난간 위에 아슬아슬하게 선 채 동녘을 응시했다.


  어둠을 꿰뚫는 눈동자라 밤도 훤하지만 빛에 드러난 윤곽을 보는 것은 종류가 다르다. 감춤 속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이미 드러난 것을 보는 것은 천지차이. 어둠은 비밀이라면 빛은 폭로였다. 폭력이다. 아침을 여는 빛은 더욱이 횡포가 심하다. 어둠에 익은 눈에 빛은 독처럼 하루 중 가장 강렬한 눈부심을 내뿜는다. 겨울 아침은 더더욱 사정이 나쁘다. 추위를 타지 않는 싸늘한 몸이라 해서 눈동자까지 시리지 않은 건 아니었다. 엉겨드는 찬바람과 햇빛의 눈부심이 더해져 저절로 굴복하듯 눈은 내리감겼다. 살포시 덮인 아름다운 눈매 그 틈새로 눈물이 맺히고 차가운 뺨을 타고 내렸다. 가장 잔인한 추위가 깃든 새벽 바람은 멈추지 않고 또르륵 굴러내리는 물방울을 훔쳐내 아래로 떨어뜨렸다.



  눈물은 바람 가운데 용케 말라버리지 않고 숨죽인 채 트리비아를 올려다보고 있던 마틴의 뺨 위로 툭 떨어졌다. 식을 대로 식어버린 뺨 위로도 차갑게 느껴지는 물방울을 그는 떨리는 손으로 쓸어내리고는 내려다보았다. 눈 깜짝할 새에 날아가 버리고 없어 진정 있었는가 하는 의심마저 들 법했지만, 결코 트리비아의 자세한 표정까지는 보이지 않았을 마틴은 그것이 새벽이슬도 비도 아닌 트리비아의 눈물임을 확신했다.



  언제나 거기 있다는 것만 알 뿐 어둠에 묻힌 채 보이지 않던 트리비아가 유례없이 날이 밝도록 바깥에 머무르는 이유를 마틴은 알지 못했다. 몰아치는 한파에도 가녀린 몸을 조금도 떨지 않으며 꼿꼿이 아침을 바라보는 이유도 몰랐다. 무엇보다 이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결코 알 수 없는 대부분의 것을 알 수 있는 마틴 챌피는 정작 가장 알고 싶은 것은 알 수 없었다.



  마틴은 트리비아의 눈물이 마른 자신의 손끝 위로 잠시 입술을 묻었다가 그 손을 꽉 그러쥐었다. 다시 고개를 들고 트리비아를 열망 어린 시선으로 올려다보았다.


  “트리비아 씨.”


  그녀의 마음이라면 읽고 싶은데 읽을 수가 없다. 오로지 침묵하는 그녀의 마음이었기에 사랑스러웠고 읽을 수 없기에 빠져들었으나, 지금은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트리비아.”


  읽고 싶다. 읽어서 위로해주고 싶다. 그녀의 무음은 달콤하기 그지없지만 그녀의 소리만큼은 이 세상에서 듣고 싶은 유일한 것이었다.

  읽을 수 없기에 사랑하지만 읽을 수 없음이 안타깝다.


  그녀의 눈물이 이토록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이 그녀를 순수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읽을 수 있는 마음에는 언젠가부터 진심보다는 상황에 맞추어 연기하듯 사람을 대할 뿐이었는데 무지하기에 마음껏 넘쳐나는 진심이 감격스럽다. 이런 감미로운 고통, 계속 아프고 싶은 이 마음도 모두 그녀가 선사하는 것이다.



  “사랑해요.”


  심장께를 움켜쥐고 마틴은 하늘에는 닿지 않을 땅의 말을 털어놓았다. 심장을 뻐근하게 만든 설렘의 격통은 점점 혼자 읊조린 고백이 진통제가 되어 사그라들었다. 마틴의 눈동자에는 열망과 더불어 돌이킬 수 없는 확신만이 자리잡았다. 독심술사는 오로지 밤을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의 고요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어떤 대가라도 치를 것이다.




― 06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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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밤의 꿈」[올캐러/비정기 연재중]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10394173)

늑대와 소녀」[바레미쉘]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11709858)

- 이번 화의 참고자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P.S. 사이퍼즈 3주년 유저간담회 다녀왔습니다.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1207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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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구나~ 후후후... YES NO 하- 감히! 이녀석들! 그땐 그랬지
Hi~ OK Oh! 냠~ Love U~ 궁금해! YES! 히힛~
안녕하십니까? 예~예~ 모든 것은 신의 뜻... 불허합니다. 의외군요. 나 원 참... 시작할까요? 강화인간!!
안녕? OK 궁금하네요. 역시! 재미있네. 깜짝이야! 아~니? ...
웃음 두려움 만족 놀람 동의 분노 좌절 인사
안녕하세요? 넵!! 미안해요!! 앗! 좋아요! 엣헴. 추천! ㅠㅠ
안녕하심까~ 피- 좋다! 못마땅해... 곱다~ 덤비라! 후우- 아슴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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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 피- 어머! 흐어 오오- 안돼! 랄랄라
우쭈쭈 하하 하? ?? 이거 참... -_- 안녕하십니까 안됩니다
ㅇㅅㅇ 으르릉... 나, 나! (정색) 깔깔 아니야!! 뿌잉 메~
안녕하십니까! 흐응? 흐으으응?! 척! 칫.. 좋-았어! 엥? 후에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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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팅!! 고마워~ 졌어... 히힣 극대노 미안! 거울 앞에서 자의식 과잉된 십대 라이언
저는 지금 극공입니다. 훠이훠이 하.하.하. 매우 화가 납니다. 총기 손질중입니다. 저와 한 판 붙어보시겠습니까? 당신에 대한 정확한 진단 안돼!
뭐가 궁금하죠? 축하드립니다. 너에게는 뭐든 주고 싶어. 칭찬 드립니다. 대-단하십니다. 내겐 보여, 너의 죽음 당신을 믿습니다. 이런 미래는 싫어!
감사합니다. 기쁩니다. 축하합니다. 칭찬해 드리죠. 놀랍군요. 심기가 불편합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우 화가 나는군요.
짝.짝.짝.짝 고마워... 멋있어... 지금 이게 뭐하시는 거죠? 대다나다 히에엑... 헉! 깜짝 놀랐습니다. 그만해!!!!!
옳소! 감탄했습니다. 흐음 후회할거요! 감사합니다. 놀랐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정색) 축하드립니다. 칭찬해 드립니다. 놀랍군요. 매우 화가 나네요. 큰 충격입니다. 놀랍군요.
이럴수가... 감히! 네가! 아니?! 장하군! 응?! 좋다! 그건 아니다! 고맙다!
감사합니다 잘 못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매우 화가 나는군요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좌절상태입니다 감탄했습니다 칭찬합니다
멋지군! 좋았어! 하하! 축하하오! 아아.. 5분전인데. 커피한잔 하겠소?
승리의 정유년! 정의로운 새해복! 극.한.공.성. 복! 받아랏! 음~ 직장인의 정석
많이 배웠습니다! 대단합니다! ?!! 축하드립니다 뭔가.. 부족해요 짝짝짝! 각오하세요! 으윽!
성탄의 축복을~! 메리 X-MAS~! 화이트 크리스마스야 해피~ 크리스마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성탄이구나~
Good! Thank U Missing U Useless It's pretty good Oops WHY! Please wait
멜빈 미이라와 고스트 제피 할로윈에는 카를로스호박 히카르도의 사탕 탄야의 마녀 분장..? 잭-슈타인 강시 루시
기자님의 감탄사 : 호-오! 기자님의 일과 : 신문 보기 기자님의 사과 : 이거 실례! 기자님이 놀라면 : 어이쿠! 기분이 좋아 보이는 잭 기분이 나빠 보이는 잭 천진난만한 잭 상큼한 인사를 날리는 잭
좋군요! 좋은 시간 되소서 Merry 추석~! 우와~! 호~오! 가득해요~! 짱인데! 품위있군
Chu~♡ 파이팅! 우와앙.. 졌어 ㅠㅠ 이겼다! 흐~음? 뜨헉! 돼.. 됐거든! 사.. 살쪘..!
훌륭합니다 궁금하네요 에구머니나! 슬프네요... 경멸스럽군요.. 후훗~ 뭐라고 하셨죠? 이, 이럴수가...!
아이작의 멋진 모습 이글이라 샤샤샤~ 트리비아 슬라이딩 시바 포는 달린다 까미유도 달린다 라이샌더 달린다 마를렌 점프! 샬럿 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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