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phers

  • To.히카르도 바레타 (바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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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황새 [51급]

2013-12-22 02:31:50

 

 

 

 

 

To.히카르도 바레타
기체후일향만강 하시옵니까. 소녀, 오늘 귀하에게 범한 무례가 죄송하고 또 죄스러워 이리 글을 띄웁니다. 소녀는 그동안 귀하를 지나는 자들의 말로만 들어 오해를 하고 있었사옵니다. 세간에는 귀하가 (이런 표현을 쓰는 것에 다시 한번 사과드리옵니다.) 난폭하고 흉한 무뢰배라 평했기에 뭇 사람들의 말만 믿어 조선의 법도를 들어 귀하를 욕보이는 실례를 범했나이다. 허나 그 직후 소녀가 정신이 혼미해 쓰러질 때 저를 다치지 않도록 붙잡아 주시고, 소녀가 깨어날 때 까지 보살피시다 깨어나자마자 말 없이 떠나셨다는 말을 듣고는 너무도 부끄러워 감히 머리를 들 수 없었사옵니다. 난데없이 처음 보는 소녀에게 폭언을 들었음에도 불쾌히 여겨 화내지 아니하고 곧 소녀를 구하시니 신사요, 정성들여 간호하시다 소녀가 불쾌히 여길 것을 염려해 생색않고 홀연히 떠나시니 군자이십니다. 귀하가 소녀에게 먼저 다가오셨을때도 다른 악의는 바이 없었으리라 생각하옵니다. 소녀를 용서하신다면 부디 짧게나마 답을 해 주시와요. 이 편지는 그 분을 통해서 전해지는 것이옵니다. 가문에서 제가 외부로 서신을 통하는 것을 알면 크게 경을 칠 것이니, 그 분을 통하여 비밀스러이 전해주시옵소서. 직접 전해드리지 못하는 것에 또 죄송스러우며 소녀, 귀하의 답장을 학수고대 하겠나이다.



이틀이 지났다.


To. Rin Drost
글솜씨가 좋은 편이 아니라 길게는 적지 않을 것이다. 그 때 일이라면 이미 용서한지 오래다.  이미 너를 받쳐줬을 때 부터 용서한 것이다. 네 글이 무슨 뜻인지는 다 알지는 못하겠지만 어쨌건 그렇게 미안해하니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한 것 같군.

P.S: 그 때 먼저 말을 걸 때도 나쁜 뜻은 없었다. 이해해주니 고맙군.
P.S: 그런데 가문에서 편지를 보내는 것도 막는 것인가. 말도 안되는군.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To.히카르도 바레타
기체후일향만강 하시옵니까. 소녀, 무례를 무릅쓰고 다시 이리 서신을 올리옵니다. 가을 바람이 차게 불어 발갛게 물든 단풍을 침노하는데 몸은 평안하신지요. 다름이 아니오라, 소녀가 다음 주 월요일 즈음에 바깥에 나갈 기회가 생겼사옵니다. 그 때 무례의 사과를 직접 하지 못하고 이리 서신만으로 한 것이 마음에 못내 걸렸었는데 이리 기회가 찾아왔사옵니다. 그 때에 만나 못다한 사과를 하며 같이 시간을 보낼까 하온데, 시간이 가능하신지 알 길이 없어 이리 서신을 드리옵니다. 바라건대는 부담이라 생각치 말아주시옵소서.

추신: P.S가 무엇이온지요?



답장이 간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To.Rin Drost
용서한다 하였는데, 어째서 자꾸 그러는지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것이 너희 나라의 법도인가? 내가 빚을 지는 기분이 드는군. 거절하지는 않겠다. 마침 그 날은 일이 비니 감사한 마음으로 수락할 것이다.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군.

P.S: P.S가 추신이다. To 까지는 어찌 배운 것 같다만, 아직 부족하군.
P.S: 대낮에 남녀 둘이 같이 다녀도 되는가? 그것이야말로 너희 나라 법도는 아닌 것 같군.
P.S: 물론 농담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도록 해라.





To. 히카르도 바레타
아! 그분의 수고를 덜고자 조금 지난 후일에 편지를 전하려 하였으나 정이 복받쳐 쓰옵니다. 오늘은 진실로 즐거운 날이었사옵니다. 오랜만의 외출이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귀하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전할 수 있어 기뻤사옵니다. 이제야 짐을 내려놓은 듯한 홀가분한 기분이옵니다. 또 그 후에 같이 한 시간들 또한 즐겁기 그지 없었사옵니다. 특히 저녁에 먹었던 그 음식..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사오나, 너무 맛있어 아직도 맛이 기억이 나옵니다. 이름을 알면 하녀에게 만들어달라고도 할 터인데. 어찌되었건, 이제 소녀는 비로소 안심이 되옵니다. 앞으로도 귀하와 자주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하겠나이다.

추신: 부끄럽사옵니다. 아직 이 곳은 저에게 있어 낯선가 봅니다. (P.S에 관한 것 말이옵니다.)
추신: 아, 장난스러우신 분. 법도 이야기는 이제 거두어 주시와요.



답장은 바로 다음날 도착했다.



To. Rin Drost
페스카토레 토마토 파스타와 판나코타였다. 그 날 저녁에 네가 먹은 것은. 좋았던 것인가? 남기지 않고 비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네 가문은 네덜란드여서 그런지 이런 것은 처음인 것 같더군. 네가 즐거웠다니 다행이다. 나 또한 너와 다시 만나길 빌겠다. 린, 잘 있어라.


P.S: 파스타와 판나코타 정도는 나도 만들 수 있다.
P.S: 혹시 앞으로도 계속 같이 편지할 수 있겠나? 물론 네가 괜찮다면 말이다.


그리고 일주일하고도 하루가 지났다. 기다리던 그에게 기다리던 것이 왔다.



To. 히카르도 바레타
기체후일만강 하시옵니까. 염치없게도 답장은 일주일 전에 받아놓고서는 이제야 답장을 드리옵니다. 혹여 기다리시기라도 하였다면 참으로 죄송스럽사옵니다. 소녀, 이리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귀하와 계속하여 서신을 나누는 것에 대해 고민한 까닭이었나이다. 설웁다 생각치 말아주시옵소서. 귀하가 싫어 고민한 것이 아니옵니다. 소녀 또한 서신을 나누고는 싶었사오나, 그분이 전해주신다 하여도 결국 서신을 적는 것은 소녀이옵니다. 혹여 서신을 왕래하는것이 가문에 들통나기라도 할까 두려웠사옵니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 다시는 만날 수 없겠지요.그것은 귀하가 원하는 일이 아니옵니다. 소녀는 귀하를 슬프게 하고 싶지는 않사옵니다. 앞으로는 서신을 더욱 은밀히 할 것이며, 자주 보내지도 못할 것이옵니다. 부디 이해하여주시옵소서.

추신: 귀하께서 요리도 할 줄 아신다니, 놀랍사옵니다. 후일 저와 다시 만날 때 만들어 주셨으면 하옵니다. 그 때의 맛은 귀하께 조금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낼 만큼 정말 잊을 수가 없었사옵니다.


히카르도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가로채듯 받았다. 그리고 등을 돌리고 천천히 편지를 뜯었다. 그리고 나온 글을 한 자 한 자 새기듯 눈에 담고는 쓰게 미소를 지었다. 편지를 다 읽어내려갈 때 쯤에 좀 더 밝은 미소를 그렸다. 그리곤 편지를 전한 그에게 수고했다며 감사하고 내보냈다. 그리곤 다시 펜을 들었다.


편지는 사흘 후에 바로 도착했다.



To. Rin Drost
계속 편지를 할 수 있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무엇부
터 시작해야 하지? 정작 시작을 끊지 못하겠군.  편지를 주고받는 건 처음이라. 그것도 여자와 말이다. 여태까지 편지는 보스에게 '받기'만 했었지. 임무를 받을 편지를. 이렇게 긴 편지를 받아 보는 것도 처음이거니와 쓰는 것 또한 처음이다. 알려다오. 내가 무엇을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해야 편지를 받는 너를 기쁘게 만들까.

P.S: 네가 좋다면 계속 편지를 써라. 허나 네가 편지를 쓰는 이유가 내가 슬프지 않기 위해서라면 편지를 쓰지 말아라. 나는 나 하나의 기쁨을 위해 너의 슬픔을 부르고 싶지는 않다.



편지는 그녀에게 곧 보내졌다. 린은 편지를 전해준 그를 보자마자 항상의 약간 놀람 대신 화사하게 붉어진 얼굴이 되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얌전히 편지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주변에 누가 없는지 불안히 둘러보고는 서둘러 봉투를 뜯었다. 그녀는 편지를 보는 내내 손바닥으로 작게 입을 가리고는 풋풋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마지막 대목에서는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리고는 편지를 두 손으로 가슴에 편지를 묻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무릎 위로 물방울이 몇개 떨어졌다. 린은 끝내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내일 다시 와달라며 그를 보냈다. 그리곤 떨리는 손으로 펜을 잡았다.



To.히카르도 바레타 (이후 부터 글씨가 조금 번져 읽기 힘들었다.)
죄송하옵니다. 죄송하옵니다. 소녀가 불초하여 또다시 귀하에게 상처를 입혔사옵니다. 죄송하옵니다. 죄송하옵니다. 어찌 말해도 소녀가 용서받을 길이 없나이다. 소녀는 귀하의 순수하고도 따뜻한 마음을 너무도 이기적으로 받았사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다짐하였사온데, 무심코 또 소녀의 어리석음이 묻어났나이다. 소녀의 잘못이옵니다. 소녀의 불찰이옵니다. 씻을 수 없는 큰 죄입니다. 귀하가 어떤 벌을 주시던 간에 소녀는 달게 받을 것이옵니다. 소녀는 귀하와 서신을 통하는 것이 너무나도 좋습니다. 너무, 너무, 너무도 좋습니다. 말로 다 못할 정도로. (펜으로 죽축 그은 흔적이 있었다.)아니, 귀하가 너무나도 좋습니다. 처음 뵜을 때 부터, 뛰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고 얼굴이 달아올라 견딜 수가 없었사옵니다. 눈 앞이 아득하고 머리가 어질거려 숨기기에 바빴사옵니다. 이제야 이리 고백하는 것이 어색하고 또 부끄럽사오나, 소녀 히카르도님을 마음에 두고 있었사옵니다. 부끄럽지만 이 격정이 식기 전에 히카르도님께 서신을 적고는 그대로 봉하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하옵니다. 죄송하옵니다..


그 날 밤을 소매가 젖어들도록 울었던 그녀는 다음날 편지 한 통을 더 썼다.


To.히카르도 바레타
일단 안부를 물어주시옵소서. 소녀의 안녕을 묻는 것이 첫째이옵니다. 형식적이라 생각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리하여 주시옵소서. 또 그 다음에는 히카르도씨의 이야기를 해 주시옵소서. 아침에 있었던 간단한 일이라도 좋사옵니다. 저녁에 보셨던 지나가는 고양이의 생김새라도 좋사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바깥의 이야기를 들려주시옵소서. 소녀는 점점 바깥에 나가기도 힘들어지옵니다. 밖의 지저귀는 종달새를 바라보는 것이 소녀에게 허락된 마지막 자유입니다. 혹 이 서신이 들킨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옵니다. 히카르도씨께서 바깥이야기를 해 주신다면 소녀는 그리운 밖을 상상하며 천연한 웃음을 흘릴 것이옵니다.

추신: P.S가 무엇이옵니까?



다음날 히카르도는 두 장의 편지를 그에게서 받았다. 갑자기 두 장이나 편지를 받은 그는 의아해하면서도 내심 기뻐하는 모양이었다. 첫 번째 편지를 읽은 히카르도의 표정은 읽을 수 없을 정도였다. 안도, 행복, 슬픔이 한데 모여 가슴 속에서 터져나와 편지를 구길 듯 부여잡고 피가 흐르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입꼬리는 올라가고, 눈가에선 아롱거리는 방울이 하나 둘 흘렀다.
그는 그가 보지 못하게 방울을 쓱 훔치고는 두번째 편지를 서둘러 뜯었다. 곧 그는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그리고 이제 나가려는, 편지를 전해준 그를 붙잡았다.
"린..말이다. 상태가 어떻다고 했었지?"



To.Rin Drost
그동안 잘 지냈나. 날이 점점 추워지는데 혹 감기라도 걸리지는 않았는가. 오늘 아침은 간단히 브로콜리가 들어간 스프를 먹었다. 밖의 새가 지저귀었다. 점심 때 까지 집에 있다가 장을 보러 집을 나섰다. 다음 외출 때 네게 해줄 판나코타와 페스카토레 파스타를 만드는 것을 연습하기 위해서.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네가 먹는 모습을 생각하면 이 쯤은 아무렇지도 않다. 돌담길로 돌아올 때, 검은 색에 하얀 점이 박힌 고양이를 보았다. 혼자 생선을 물고 가다 나를 보니 도망치더군.


편지는 곧 린의 책상 위에 놓였다. 린은 편지를 전해준 그가 어째서 이번엔 편지를 놓고만 갔는지 의아해했다. 다음 편지를 찾으러 올 날을 말해줘야 하는데. 하고 그녀는 편지를 뜯었다. 그녀는 그의 서툰 말투가 귀여운 듯 풋 하고 웃음을 들리지 않게 지었다. 그러면서도 P.S의 뜻을 설명하지 않은 그를 이상히 여겼다. 린은 곧 주위를 살피고 아무도 보지 않는 서랍에 편지를 넣으려 손을 뻗었다. 순간 린은 편지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거기서, 작은 종이가 떨어졌다. 린은 그 종이를 주워 보았다.
거기에는 꾹꾹 눌러쓴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곧 구하러 가겠다.'


그 순간 하녀의 손수건이 그녀의 코와 입을 덮었다.


타닥,타닥,타닥
툭,툭..
탄다. 탄다. 떨어진다. 불길이 온 방 안을 덮는다. 그 구석에서 한 소녀가 콜록, 콜록 고통스럽게 기침한다. 그녀는 어찌할 줄도 모른 채 구석에 앉아 매캐한 독연기만을 피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녀는 더러운 등받이 의자에 팔과 다리가 묶여있었다. 하이얀 환자복 차림으로 그녀는 머리가 풀어헤쳐져 있었다. 머리 위로는 섬뜩하도록 뾰족한 바늘 세개가 향하고 있었고, 옆에는 무시무시한 뼈톱과 메스가 몇개 놓여있었다. 팔에는 알 수 없는 액체가 주사되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그녀는 깜짝 놀라 염동력으로 주사바늘을 떨쳐냈다. 그리곤 손과 발의 속박도 풀어버리고는 욱신거리는 손목을 문지르며 일어났다. 어두운 방, 간간히 음산하게 깜빡거리는 노란 불빛. 바닥은 축축했다. 여기는 어디지? 납치된건가? 왜? 온갖 무서운 생각이 엄습했다. 맨발을 통해 죽음처럼 식은 차가움이 머리 끝까지 전해졌다. 소름이 끼쳤다.
"아..아무도.. 안계시옵니까..?"
힘없는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퍼진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
그녀는 잠시 생각한 후 메스를 집어들었다. 분명 이런 음침한 곳이라면 여기 있는 사람은 모두 적이리라. 그리 생각하고는 두 손으로 메스를 꼭 잡았다. 그 때, 저 멀리 어둠속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린은 순간 놀라 메스를 염동력으로 움직였다. 푹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마디 비명도 없이 툭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죽이려 한 것은 아니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강한 염동력이 나가는 것에 놀란 그녀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시체 쪽으로 떨며 다가갔다. 다음 순간, 그녀는 아까보다도 소스라치게 놀라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쓰러진 이는, 다름 아닌 여태까지 자신을 따르던 하녀였다. 그녀의 한 손에는 식칼이 들려있었고, 몸 여기저기 날카롭게 베인 듯한 상처가 있었다.
'이 아이가 왜 여기에..?'
처음에는 그저 이 아이도 같이 잡혀들어와 고문당한 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곧, 자신이 묶여있던 의자에 불빛이 들며 모든 것이 같이 밝아졌다. 그 의자에는 드로스트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하녀의 꼭 쥐어진 손 안에는, 자신의 양아버지의 글씨체로
'죽여라'
짧은 한마디가 담겨있었다.
헛구역질이 났다. 욱, 욱 거리며 그녀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자신을 보호해주겠다며 친부모로 부터 떼어놓은 저의가 이런 끔찍한 것이었단 말인가.
머리에는 수많은 얼굴들이 지나갔다. 양아버지, 가주, 하녀, 양오라비들, ..그리고 히카르도....
유일하게 자신을 믿고 배신하지 않는이가 누구였던가. 왜 조금 더 빨리 만나지 못했는가. 또..
수 가지 생각으로 복잡해지던 머리는 곧 차갑게 식었다. 여기는 드로스트 저택의 안이다. 또 이 하녀는 자신을 죽이러 온 것이다. 그리고 고작 아까 자신이 던진 메스로 이런 상처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하녀는 누군가에게 먼저 공격당한 것이다. 그 상태에서 여기로 겨우 피신했고.. 그렇다면 누구에게?

그 생각이 드는 순간 폭음이 강하게 울려퍼졌다. 그녀는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 순간 그녀에게 떠오른 것은 하나였다.


 

'곧 구하러 가겠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가 이 안에 있는 것이다.
구하다니, 이 상황으로부터? 그가 저를 구하러 오겠다는 것인가? 그는 이것을 알고 있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혼자, 구하러 오겠단 것인가? 안된다. 그것만은 안된다. 그가 혼자 이 곳을 찾아올 수 있을 리가 없거니와 분명 그 전에 죽을 일이다. 그것만은 안된다. 아, 제발 저를 두고 그냥 가시옵소서. 저는 어찌되어도 상관 없으니 제발 이곳을 무덤삼으려 하지 마시옵소서. 제 목숨보다 소중한 귀하의 목숨을 그들의 손에 갈갈이 찢기게 하지 마옵소서.


밖에서는 고함과 비명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염동력으로 굳게 닫힌 철문을 강하게 쳐보았다. 하지만 강해진 능력으로도 철문은 약간의 찌그러짐만 있을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번엔 염동력으로 커다란 주먹을 만들어 쾅 내질렀다. 이번에도 철문은 꿈쩍하지 않았다. 순간 철문 틈 사이로 불길이 솟구쳤다. 린은 재빨리 문에서 떨어졌다. 불길은 방 안의 가구로 옮겨붙었다.

그렇게 그 소녀는 불길 밑에서 기운도 다한 채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구하러 올까?'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었다.


'차라리 오지 않는 것이 좋다'


바로 다음에 생각난 것이었다.
그녀는 흐려져가는 의식속으로 그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To. 히카르도 바레타
기체후일향만강 하시옵니까. 소녀 오늘 귀하께 마지막 편지를 올리려 하옵니다. 정녕 밖에 있는 것이 귀하이신 것이옵니까? 저 부나방과 같이 스러질 줄 알면서도 이 불꽃에 몸을 던지는 이가 정녕 귀하이십니까?  아, 소녀의 행복이 그 동안 어디 있었단 말이옵니까. 가문에 있는 동안은 그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사옵니다. 좋은 의자도 가시방석에 앉은 듯 하였고 푹신한 침대도 차디찬 쇠침대 위에 누운 듯 했사옵니다. 허나 귀하를 만난 후에 소녀는 나무 의자에 앉아도 무엇보다 편안했고 조금 딱딱한 침대에 누워도 비단을 감은 듯 했사옵니다. 소녀의 행복은 귀하이옵니다. 귀하가 있기에 비로소 소녀는 행복했나이다. 급할 때에 내리는 단비와 같은 분.. 그런 귀하가 지금 저 밖에 계신 것이옵니까. 귀하의 능력은 벌레에게 몸을 뜯기며 사용된다 들었사옵니다. 정녕 귀하가 저 밖에서 이 하찮은 소녀의 목숨 때문에 고통스럽게 뜯어먹히고 있는 것이옵니까. 아니되옵니다. 아니되옵니다. 어찌 소녀의 마음을 이리 찢어놓으십니까. 어찌도 이리 모르시옵니까. 귀하께서 무사한 것이 곧 소녀의 행복이옵니다. 부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소녀를 버리고 이곳에서 나가시옵소서.

밖에선 불타고 떨어지는 소리에 가려 간간히 비명소리가 들리옵니다. 아직 귀하의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오나 어쩌면 그렇기에 소녀는 더욱 불안하옵니다. 소녀가 이 불꽃에 사그라들기까지, 마지막 숨을 뱉기 전까지 귀하의 목소리를 듣지 않기를 소원하나이다. 귀하가 소녀를 찾기를 포기하고 목숨을 보전하길 소원하나이다. 그리한다면 이리 죽어도 눈을 편히 감고 미련없이 떠나리이다. 마지막으로 인사드리옵니다. 그리고 고백하옵니다. 사랑하옵니다, 히카르도 씨.

추신: 마지막으로 귀하와 함께 먹었던 그 음식을 먹고 싶사옵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사오나.. 주책스럽게도 이 순간에 그 맛이 기억나옵니다. 그립사옵니다.

.....!
".......!"
소리가, 소리가 들린다. 점점 더 커지는 이글거리는 소리를 뚫고 또 다른 소리가 들린다.
"........린..!"
"...........린......!"
아, 무심한 하늘이여. 진실로 그인 것이옵니까?
"........린...!"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찾다 포기하고 가길 원했기 때문에.
".....린..!"
소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린의 눈 앞이 흐려진다.

쾅, 무엇인가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눈 앞에서 무엇이 아른거린다.

아른거리는 것이 가까워진다.

그 이다. 그 이다. 그가 이쪽으로 달려온다. 저의 이름을 미친듯이 부르며 달려온다. 린은 손을 천천히 그의 쪽으로 뻗는다. 눈에서는 곧 말라 없어질 눈물방울이 뺨을 타고 흐른다. 히카르도의 파랗게 썩은 손이 아기처럼 보드라운 린의 손을 잡는다.


다음날의 신문 1면이었다.
[네덜란드의 명문 드로스트가의 본 저택, 대 화재로 붕괴]

[드로스트가의 기적적인 생존자는 단 1명인 것으로 밝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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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친분께 드린 바레린이에요! 으 영 좋지 않지만 한번 올려봐요..

참고로 '그 분'은 하랑이가 아녜요! 조선인 자캐입니다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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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예~예~ 모든 것은 신의 뜻... 불허합니다. 의외군요. 나 원 참... 시작할까요? 강화인간!!
안녕? OK 궁금하네요. 역시! 재미있네. 깜짝이야! 아~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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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심까~ 피- 좋다! 못마땅해... 곱다~ 덤비라! 후우- 아슴찮다..
허~허~ 아, 아니... 헐! 흠흠... 끄응... 시, 식은땀이.. 엥? 후어어..
후훗~ Trick or Treat! 사.탕.내.놔. 소녀... 억울하옵니다... 사, 사탕 주세요! 해피... 핼러윈... 날 위해 사탕 정돈 줘야지? 목표? 당연히 사탕이지!
안녕~ ?? 피- 어머! 흐어 오오- 안돼! 랄랄라
우쭈쭈 하하 하? ?? 이거 참... -_- 안녕하십니까 안됩니다
ㅇㅅㅇ 으르릉... 나, 나! (정색) 깔깔 아니야!! 뿌잉 메~
안녕하십니까! 흐응? 흐으으응?! 척! 칫.. 좋-았어! 엥? 후에엥-!!
칫 엄숙하고 근엄하고 진지하다 믿습니다 내 안의 ...가 깨어난다 영업 중 할많하않 충격! 공포! 둠칫 둠칫 두둠칫
파이팅!! 고마워~ 졌어... 히힣 극대노 미안! 거울 앞에서 자의식 과잉된 십대 라이언
저는 지금 극공입니다. 훠이훠이 하.하.하. 매우 화가 납니다. 총기 손질중입니다. 저와 한 판 붙어보시겠습니까? 당신에 대한 정확한 진단 안돼!
뭐가 궁금하죠? 축하드립니다. 너에게는 뭐든 주고 싶어. 칭찬 드립니다. 대-단하십니다. 내겐 보여, 너의 죽음 당신을 믿습니다. 이런 미래는 싫어!
감사합니다. 기쁩니다. 축하합니다. 칭찬해 드리죠. 놀랍군요. 심기가 불편합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우 화가 나는군요.
짝.짝.짝.짝 고마워... 멋있어... 지금 이게 뭐하시는 거죠? 대다나다 히에엑... 헉! 깜짝 놀랐습니다. 그만해!!!!!
옳소! 감탄했습니다. 흐음 후회할거요! 감사합니다. 놀랐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정색) 축하드립니다. 칭찬해 드립니다. 놀랍군요. 매우 화가 나네요. 큰 충격입니다. 놀랍군요.
이럴수가... 감히! 네가! 아니?! 장하군! 응?! 좋다! 그건 아니다! 고맙다!
감사합니다 잘 못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매우 화가 나는군요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좌절상태입니다 감탄했습니다 칭찬합니다
멋지군! 좋았어! 하하! 축하하오! 아아.. 5분전인데. 커피한잔 하겠소?
승리의 정유년! 정의로운 새해복! 극.한.공.성. 복! 받아랏! 음~ 직장인의 정석
많이 배웠습니다! 대단합니다! ?!! 축하드립니다 뭔가.. 부족해요 짝짝짝! 각오하세요! 으윽!
성탄의 축복을~! 메리 X-MAS~! 화이트 크리스마스야 해피~ 크리스마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성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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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의 감탄사 : 호-오! 기자님의 일과 : 신문 보기 기자님의 사과 : 이거 실례! 기자님이 놀라면 : 어이쿠! 기분이 좋아 보이는 잭 기분이 나빠 보이는 잭 천진난만한 잭 상큼한 인사를 날리는 잭
좋군요! 좋은 시간 되소서 Merry 추석~! 우와~! 호~오! 가득해요~! 짱인데! 품위있군
Chu~♡ 파이팅! 우와앙.. 졌어 ㅠㅠ 이겼다! 흐~음? 뜨헉! 돼.. 됐거든! 사.. 살쪘..!
훌륭합니다 궁금하네요 에구머니나! 슬프네요... 경멸스럽군요.. 후훗~ 뭐라고 하셨죠? 이, 이럴수가...!
아이작의 멋진 모습 이글이라 샤샤샤~ 트리비아 슬라이딩 시바 포는 달린다 까미유도 달린다 라이샌더 달린다 마를렌 점프! 샬럿 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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