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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픽] 헤메이는 구원자, 춤추는 깃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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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ta [45급]

2011-11-05 19:17:21

 

         -헤메이는 구원자, 춤추는 깃털-

 

 

포트 레너드 남부의 도시 글림듀. 우드시티 중에서 가장 맛있는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입소문답게 수많은 주점들이 성업중인 이곳에서도 꽤나 후미진 곳에 위치한 이름없는 바(Bar). 어둑어둑한 실내에서 글라스를 정성들여 닦아내던 바텐더의 손길이 잠시 멈추었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묵직한 문을 열고 들어서는 한 손님이 그의 눈길을 끌었기 때문에.

 

"반갑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보통은 아무 말 없이 손님을 맞이하는 바텐더는 자기도 모르게 인사를 건넸다. 말을 꺼내고는 자신도 놀라서 잠시 경직된 사이, 남성은 문을 완전히 닫고 바 안에 몸을 밀어넣었다.

 

바에 들어선 남성은 잠깐 눈을 들어 바텐더를 바라보고는 묵직한 걸음걸이로 바를 향했다. 의자를 밀치고 앉은 남성은 짤막하게 중얼거렸다.

 

"가장 독한걸로."

 

"주문 받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차가운 말투였지만 바텐더는 이 남성에게서 왠지 모를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아마 이 남성은 타인의 접근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타입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을 겪고 또 그 감정을 느껴온 노련한 바텐더는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직감적으로 느낀 것이다.

 

찬장 가장 깊은곳에 보관해 둔 보틀을 꺼내 스트레이트로 따라내어 남성의 앞으로 밀어놓는다. 남자는 조용히 잔을 들어 한번에 목구멍으로 털어넣었다.

 

코 끝으로 풍겨오는 향기와 혀 끝에 남은 풍미가 놀랍다. 지금껏 수많은 술을 맛보았지만 이정도의 일품은 손에 꼽을 정도. 더욱 놀라운 것은 유럽의 독한 술이란 술은 거의 섭렵한 이 남성에게도 생소한 맛이라는 점. 약한 이채를 띤 눈동자가 바텐데를 향하자, 비장의 한 병이 가진 가치를 알아채 준 이 남성에게 흐릿한 미소로 답례한다.

 

"좋군. 한 잔 더."

 

"기꺼이."

 

그렇게 바텐더는 술을 따르고, 남성은 입에 털어넣길 몇 차례. 어지간한 장정도 한잔이면 불콰해지고, 석잔이면 인사불성이 될 독한 술을 들이키다시피 마신 남자는 취기 한 점 보이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쉽군. 더 없나?"

 

"마지막이었습니다. 내년이나 되어야 준비 할 수 있겠군요."

 

과연. 이라고 내뱉으며 남성은 씁쓰레한 고소를 머금었다. 아마도 시중에선 구할 수 없는, 비밀스런 주도가의 수제품일 것이다. 이 정도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술이라면 결코 많은 양을 만들 수는 없겠지. 이제 채 반잔도 남지 않은 술을 바라보며 약간의 아쉬움을 느낀다. 오늘이 지나면 아마 이 바에 들릴 날은 남은 생에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지금같은 기분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

 

기약없는 여정에 다시금 지쳐가는 것을 느낀 남성은 우울함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몸짓으로 바에 기대었다. 그의 등에 지워진 무게가 어느 정도이길래, 이토록 강인해 보이는 사내가 마치 주저앉을 듯 위태로워 보이는 걸까. 바텐더는 이 남성을 위해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선의를 배풀기로 결심했다.

 

"부족하나마 저의 재주로 손님에게 한 잔 대접하는 것을 허락하시겠습니까?"

 

"...기대하겠소."

 

여전히 차갑게, 하지만 일말의 아쉬움을 담아 말한다. 그것을 눈치 챈 바텐더는 오랜만에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때가 왔음을 느꼈다.

 

이윽고 남성의 눈 앞으로 칵테일 한 잔이 내밀어졌다. 남성은 조심스레 잔을 집어들었다. 물처럼 들이키던 방금과는 달리 허공으로 흩어지는 냄새를 한껏 느껴본다.

 

아직까지 코 끝에 남은 술의 향기와 칵테일에서 퍼져나오는 냄새가 어우러져 또 다른 향취가 느껴진다. 가볍게 경탄하며 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더욱 놀라운 맛의 폭발. 혀 끝에 남아있던 풍미와, 술 본연의 맛, 그리고 그것을 감싸안아주는 다른 술과 과즙의 향기가 조화로운 하모니를 그린다. 맹세코 처음 느끼는 맛의 환희였다. 아마 그 비밀은 앞서 마신 술에 있겠지. 아련하지만 확실하게 남아있던 자취와 새로운 자극이 합해져, 표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맛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대단하군."

 

술이 뜨거움이 드디어 남성의 차가움을 녹여내었는지, 그는 약간 열띤 목소리로 말했다. 바텐더는 그런 남성에게 멋진 미소로 대답해 주었다.

 

다시 한번 잔을 기울인다. 마지막 한 방울이 입술을 타 넘어가는 것이 이렇게 아쉬울 줄이야. 그것은 그저 맛있는 술을 전부 마셔서 아쉽다는 차원의 의미가 아니었다. 이 남성은 칵테일 한 잔에 정말로, 자신을 짓누르던 모든 빌어먹을 것들을 잠시나마 완전히 잊을 수 있었고 거기서 위안을 얻었던 것이다.

 

잔을 완전히 비우고 남성은 잠시간 침묵했다. 그리고 바텐더는 품위있게 글라스를 닦고 있었다. 조용하지만 많은 의미를 담은 시간이 흐르고, 이윽고 남성은 고개를 들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었다.

 

"정말 감사하오. 말재주가 모자라 더 이상 가는 감사를 드리지 못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요."

 

바텐더는 절제된 몸짓으로 글라스를 내리고는 겸양의 말로 화답했다. 바텐더는 손님에게 가장 필요한 한 잔을 준비할 뿐이다. 거기에 자부심을 느낄 필요는 없다.

 

"과분하군요. 저의 한 잔이 마음에 드셨는지?"

 

"내 생에 어떤 술도 이 한잔에 비할 순 없었소. 그리고 여생에도 그런 술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소."

 

바텐더에게는 더 할 나위 없는 극찬. 기쁨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바텐더는 손님에게 말없는 경의를 표했다. 좋은 바텐더는 최고의 한 잔을 손님에게 건네고, 좋은 손님은 바텐더에게 보람이라는 기쁨을 선사한다. 눈 앞의 남성은 바텐더가 오랜만에 맞이하는 '좋은 손님' 이었다.

 

"실례되지만, 꼭 묻고싶은 것이 있소."

 

"기탄없이 물어보시죠. 아마 제가 답해드릴 수 있을 겁니다."

 

"나도 그럴거라 생각하오. 이 술의 이름, 알 수 있겠소?"

 

예상했던 질문과, 예상했던 대답이 오고갔다. 그리고 바텐더는 빙그레 웃으며 답해주었다.

 

"앞서의 보틀은 구원(salvation), 뒤의 한 잔은 안식(sanctuary)입니다."

 

"구원과... 안식. 그 맛에 어울리는 이름이오. 멋지군."

 

남성은 구원 뒤에 다가온 안식의 마법이 풀려가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지갑에서 모든 지폐를 꺼내 바에 올려놓는다. 바텐더는 살짝 놀라며 말했다.

 

"과합니다. 귀한 술이라고 하지만 결코 이정도는 아니죠. 받을 수 없습니다."

 

"아니, 이것도 모자란 것 같소. 당신이 나에게 선물한 것은 이런 너절한 지폐따위로 보답 할 수 없는 거였소. 하지만 나는 이것 외에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소. 그것이 미안할 따름이오."

 

남성의 눈은 진실만을 웅변하고 있었다. 그것을 절실히 느낀 바텐더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넣어두겠습니다. 내년에도 꼭 와주시길. 손님을 위한 한 병은 언제나 남겨두도록 하죠."

 

남성는 그 말을 듣고 잠시 고마움을 느꼈지만 이내 털어버렸다. 감상적이어서는 약해지고 만다. 그리고 남성은 아직은 약해질 수 없었다.

 

"최고의 한 잔은 마지막이기에 더 빛날 것이오. 나에게 마지막은 당신의 한 잔이었소. 부디 다른 사람에게도 내가 느낀 구원과 안식을 선물해주길 바라오."

 

이별의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바텐더는 앞으로 다시는 만날 일 없을 이 남성에게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

 

"명심하도록 하죠. 그럼, 안녕히."

 

"음, 그럼."

 

그렇게 잠시간 함께 했던 바텐더와 남성은 좋은 추억 한 조각을 남긴 채 헤어졌다. 이름 모를 바를 뒤로 한 채 남성은 거리의 인파로 사라져갔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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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칭 나무의 도시로 불리우는 포트 레너드는 본래 군인들의 휴양지로서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풍광이 수려한 남쪽의 글림듀는 많은 손길이 닿았고, 그 결과 여러 개의 인공 호수와 원시림이 어우러져 일품이라 할 만한 관광지로 성장했다.

 

발 디딘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아름다운 광경은 이곳을 방문한 한 남자에게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했다. 피땀 흘려 글림듀를 일구어낸 역군들이 안다면 가슴을 치며 분통해할 노릇이었지만, 그 남자가 걸어 온 인생을 듣게 된다면 그날 밤 술 한잔으로 씁쓸한 기분을 떨쳐야 할 것이다.

 

중년의 한 고개마저 넘어선 듯한 외모. 메마른 표정에, 희끗희끗해지기 시작한 회색 머리칼은 대충 깎아붙여 살풍경하기까지 하다. 마찬가지로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수염은 턱부터 구레나룻까지를 무질서하게 덮어가고 있다. 눈매는 날카롭게 서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눈동자는 생기를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흐려져 있어 인상을 흐리게 만든다.

 

화창한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트렌치 코트. 유려한 디자인에 안감은 체크무늬의 원단을 덧대어 본래는 꽤나 고급스런 분위기를 추구했을 터이지만 풍상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하여 본래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안으로는 회색 일색의 정복이 자리잡고 있다. 정복이라고는 하지만, 연미복같은 느낌은 아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장교복에 가까운 절제된 복식.

 

한 손에는 묵직한 아타셰 케이스를 들고 있다. 얼핏 보면 먼 곳에 출장나온 세일즈맨이라고 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그 남자를 감싸고 있는 기묘한 냄새--냄새라고밖에 표현하지 못할 어떤 것이 그를 평온에서 일탈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남자는 며칠간 글림듀에서 머무르며 풍경이 좋다고 알려진 장소를 방문하고 다녔다. 다른 세계의 것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명소라면, 어쩌면 영혼까지 새겨진 상흔을 보듬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허나 희망은 헛되었고, 그는 여전히 술 없이는 밤을 넘길 수 없었다.

 

결국은 술 한 잔의 의미조차 없었던 시간을 뒤로하고, 이 회색의 남자는 도망치듯이 글림듀로부터 멀어져갔다. 한 잔의 술이 남겨준 잊을 수 없는 구원과 안식을 뒤로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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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처없이 발걸음을 옮기던 회색의 남자는 어느덧 사람이 사는 도시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지금까지 지나쳐 온 도시들과는 명백하게 다른 황량함. 디미스트조차도 울창한 수림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이 도시는 숲 속임에도 불구하고 사막과 같은 쓸쓸함을 풍기고 있었다.

 

왠지 그런 분위기에 마음이 편해진 남자는 시가지를 향했다. 그 와중에 주위를 둘러보자, 의외로 꽤 많은 총포상들이 있었다. 그것이 맘에 든 남자는 이 도시에서 며칠 머무르기로 결심하고 여관을 찾아 헤메었다.

 

이윽고 발견한 여관에 들어갔다. 저녁시간이 가까워져 있는지 사람이 북적거린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이 남자는 살짝 미간을 좁혔지만 별 수 없이 안쪽의 카운터로 향했다. 카운터에서는 중후한 외모의 중년 남성이 체크 인을 담당하고 있었다.

 

"숙박이오, 식사요?"

 

"둘 다."

 

"식사는 한번에 4달러. 숙박은 일박에 7달러요. 한달을 잡으면 200달러로 해주지. 식대는 별도고. 아침은 숙박을 하면 3달러요. 목욕물은 숙박시 무료 제공. 어떻게 하시겠소?"

 

간결하면서도 정중한 안내는 남자의 마음에 들었다. 그는 500달러 뭉치를 꺼내 카운터로 올려놓으며 말했다.

 

"에누리 없는 장사는 없겠지."

 

여관의 마스터는 빙그레 웃으며 돈뭉치를 금고 안으로 집어넣었다.

 

"오랜만의 큰 손님이군. 이정도 에누리는 즐거운 맘으로 해 드리겠소. 지금 바로 식사하시겠소?"

 

"준비해주시면 감사하겠소. 아, 체크 인 서류는?"

 

"이런, 내 정신하고는. 자, 방은 202호요. 2층 최고의 자리지. 이곳에 서명하시면 되오."

 

남자는 만년필을 꺼내 거칠고 거침없는 필체로 서명했다. [카인 스타이거] 그것이 남자의 이름이었다.

 

서류를 집어넣은 마스터는 열쇠를 꺼내 카인에게 넘겨주고, 홀 내부를 바쁘게 뛰어다니는 여급을 불렀다.

 

"이봐! 레나! 이 분을 빈 테이블로 안내하고 오늘의 정식 E 하나 가져다 드려! 추가 주문은 알아서 받고!"

 

"예, 마스터! 손님, 이리로 오세요. 조금 시끄럽죠? 안쪽은 여기보다 나을 거예요."

 

여급이 종종걸음으로 카인에게 다가온다. 푸른 바다 같은 머리칼. 눈동자 또한 깊은 호수처럼 푸르게 빛난다. 활기 넘치는 이 여급은 카인을 끌다시피 하여 테이블에 앉혔다. 카인은 순순히 여급의 손길에 이끌려 자리에 앉았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식사를 가져다 드릴게요."

 

여급은 바쁘게 주방으로 뛰어들고, 다시 양 손에 음식들을 들고 뛰쳐나왔다. 혼잡한 홀을 뛰어다니는 생기 넘치는 여급의 뒷모습은 어쩐지 카인의 마음 깊숙히 새겨졌고, 어느새 마음이 적당히 풀린 카인은 식사를 기대하며 조용히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 날의 저녁 식사는 카인의 꽤 오랜 생에서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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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은 며칠 간 디시카의 건 스미스들을 찾아다니며 교류했다. 척박하고 위험한 디시카에서는 총기류의 수요가 많은 편이었고, 안개 정제술과 수액 광물이라는 좋은 재료가 있다는 장점과 합쳐져 실력있는 건 스미스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 또한 카인의 능력에 감탄하며 기꺼이 자신들의 기술을 내보여 주었다. 카인은 이론이 아닌 실전이 요구하는 성능을 총기로 구현할 수 있는 기량이 있었고, 그것이 건 스미스들의 입맛에 꼭 들어맞은 것이다.

 

꽤나 만족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카인은 자신의 장비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었다. 며칠간의 결과물을 담은 아타셰 케이스를 2층의 숙소에 던져넣고 펍으로 내려간다. 정오를 조금 넘은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그 중에서도 꽤나 이질적인 무늬를 가진 한 무리의 인원들이 왁자지껄하게 술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지나가며 슬쩍 훑어보니, 어딘가의 보병 한 개 분대인것 같다. 포트 레너드 주변의 주둔지에서 휴가라도 온 것일까. 짧은 감상을 접어넣고 카인은 주문을 하기 위해 마스터를 호출했다.

 

식사는 곧 바로 내어져 왔고, 카인은 포크와 나이프를 놀리기 시작했다. 역시 이 여관은 꽤나 맘에 든다. 마스터의 인품도 좋고, 식사도 훌륭하고 맥주 맛도 빠지지 않는다. 더불어, 지금 홀 안을 활발하게 뛰어다니는 저 레나라는 아가씨도.

 

군인들의 추가 주문이 있었는지 안주와 맥주잔을 한껏 들고 가 테이블에 내려놓자, 이 집의 음식이 꽤나 맘에 들었는지 군인들이 앞다투어 팁을 모아 그녀에게 건넨다. 레나는 상큼하게 미소지으면서도 공손히 팁을 받아들었고, 군인들은 잠시 멍하게 그녀를 바라보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별 일이 없자 카인 또한 내심 안도하며 식사를 계속했다.

 

그러던 와중, 구석에서 맥주를 홀짝이던 한 남자가 갑자기 홀을 가로지르는 고함을 내질렀다.

 

"아~아! 이거 시끄러워서 술이 코로 넘어가나 목으로 넘어가나 알 수가 없네! 저 덩어리들, 집에서 밥 먹을땐 조용히 처먹으라는 가정교육도 못받았나?"

 

'덩어리'들은 잠시 당황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구석에 앉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남자는 씩 쪼개면서 말을 이었다.

 

"뭐야? 말귀는 알아먹는 거 같은데, 아무도 안가르쳐 줬어? 하긴, 그따위로 생겨서야 말 붙이기도 싫겠구먼. 어머니가 네놈들 낳아놓고 참 미역국 먹기 미안했겠다, 응?"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군인들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선다. 성큼성큼 구석으로 걸어가 남자를 빙 둘러싸고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뭐야, 밥 잘 쳐먹다가 어디 체했냐?"

 

"왠 시비인가? 우리가 잘못한 게 있더라도 조금 정중할 필요가 있지 않나?"

 

"대장, 흰 소리 마슈. 이 새끼 딱 봐도 그냥 미친 거 같지 않수?"

 

"간덩이가 너무 부어서 무겁나? 앙? 똑 떼놓고 집에 가고싶어?"

 

"뱃 속 곱창들이 너무 축축하다고 지랄하디? 응? 쭉 뽑아서 햇빛 좀 보게 해주랴?"

 

한 인상하는 거구들에게 둘러싸여 이런 폭언을 들으면 어지간히 담 큰 사람이라도 질려버리겠지만, 이 남자는 정말 간이 부엇는지 싱글싱글 웃으며 조롱의 말을 던진다.

 

"하는 짓거리들이 완전 동네 꼬맹이들이구만. 어디 골목 출신이야? 네가 골목대장이냐? 우쭈쭈쭈, 왜 사탕이라도 하나 줘야하나? 큭큭."

 

지나친 모욕에 제 3자인 카인마저 눈살을 찌푸렸고, 분대장은 울그락불그락한 얼굴로 최후통첩을 날렸다.

 

"더 이상 우리를 모욕하면 참지 않겠다. 조용히 사과하고, 그 다음 아가리 다물고 식사해주기 바란다. 그 후에 꺼져."

 

남자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심각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가벼운 말투였다.

 

"정말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받았나? 아가리 다물고 뭔 수로 밥을 먹어? 그리고 참을 필요 없어. 참지 말라고 이러는 거니까, 제발 좀 빨리 덤벼!"

 

'벼'라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어디에 숨겼는지도 모를 길쭉한 칼을 꺼내들고 휘두른다. 재빠른 일격이었지만, 과연 군인들은 베테랑들이었는지 피해 없이 검권 바깥으로 피할 수 있었다. 남자는 그것을 보고 씨익 웃으면서 선고했다.

 

"재밌는 장남감이 될 것 같은데, 날 좀 신나게 해 주라구. 아, 다쳐도 걱정하지 마. 오스트리아의 홀든 가문에 손해배상 청구 하면 섭섭지 않게 해 줄거야. 이글한테 당했다고 하면 군말 없이 보상이 나올 거니까. 아, 문제가 딱 하나 있다. 여기서 죽으면 거기까지 못 가겠지? 큭큭."

 

"이런 빌어먹을 새끼. 농담은 거기까지다. 조져버려!"

 

분노가 폭발한 분대장은 명령을 내렸고, 군인들은 일사불란하게 자세를 잡았다. 그 모습을 실실 웃으며 쳐다보던 이글은, 매끈한 얼굴에 유쾌한 살기를 피워올리며 칼을 세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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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 또한 일반인을 어떻게 할 생각은 없었는지, 맨손으로 제압해서 쓴 맛을 보여주려 시도했다. 하지만 이글이라는 남자의 칼은 군인들이 접근하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했다. 등 뒤로 달려들어도, 마치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듯 반격이 날아온다. 군인들의 사지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고, 이글은 시시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뭐야, 기대했는데. 이거 순 쭉정이들이잖아? 다들 총각딱지는 뗏냐? 응?"

 

결국 보고 만 피와 계속되는 조롱에 폭발한 군인 하나가 허리춤의 권총을 뽑아 쏴버렸다. 총성이 홀 내부를 길게 찢었다. 카인은 제발 치명적이지 않은 곳에 쏴주길 바라고 그 광경을 지켜봤지만, 결과는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이글 자신을 빼고.

 

"흐응? 뭐야, 화살 튕기는 거랑 요령은 비슷하네. 겨우 그거뿐이야? 좀 더 재밌는 걸 꺼내 봐!"

 

놀랍게도 이글이 휘두른 검신에 의해 탄자의 궤도는 있을 수 없는 굴절을 강요당했다. 날아드는 총알을 칼날로 받아 튕겨내다니, 직접 보지 않았으면 믿기 어려운 묘기였다.

 

질려버린 군인들은 전부 권총을 꺼내 발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글은 여유롭게 칼을 놀리며 전탄을 방어했다. 그 광경을 보던 군인 하나가 얼이 빠져서 중얼거렸다.

 

"농담이지? 지금 우리가 무슨 서커스를 보고 있는거야?"

 

이글은 그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이죽거렸다. 듣다보면 정말로 성질 뻗치는 말투였다.

 

"몰랐냐? 지금 여기서는 한 편의 서커스가 펼쳐지고 있는 거라고. 너와 나는 삐에로지. 그러니까 좀 더 흥겹게 놀아보자구!"

 

그 말을 끝으로, 이글의 검은 한층 더 빠르게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점점 가속되는 검무는 어느 새 직선이 아닌 곡선을 그리고, 마침내 뱀이 구불대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켰다. 군인들은 주변의 엄폐물을 찾아 뛰어다녔지만, 넓은 홀에는 기둥 몇개와 나무 탁자 말고는 믿을 만한 엄폐물을 찾기 어려웠다. 그리고 탁자 정도로는 고개를 치켜 든 코브라가 날아드는 듯한 일격을 막을 수 없었고, 군인들은 단 한사람에 의해 끝없이 농락당했다. 여유가 허락하는 순간마다 권총이 불을 뿜었지만, 그마저도 탄환이 다 떨어지자 완전히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제길, 이곳은 불리하다! 전부 산개해서 밖으로 나간다!"

 

분대장의 판단은 나쁘지 않았지만, 이글이라는 남자의 검기(劍技)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어딘가 망가져버린 이 쾌락주의자는 원하던 만큼의 즐거움이 없자 놀이를 끝내기로 결심한 듯 했다.

 

"여기까지야? 날 실망시키는군. 에이, 입맛만 버렸다. 그냥 죽어라."

 

이글은 날쌔게 움직여 분대장을 쓰러트리고 그 목덜미로 칼을 겨냥했다. 이제 칼이 한번 춤추면 군인의 머리는 몸통과 영원한 이별을 고하겠지. 카인은 더러운 기분을 느끼며 그 광경에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구석에 숨어서 몸을 떨던 레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 순진한 아가씨는 사람이 죽는 것을 한번도 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사람이 목이 떨어져나가는 광경을 여과없이 보게 될 처지였고, 그녀는 그것을 감당할 정신력이 없을 것이다. 그녀는 떨리는 눈망울로 호소하고 있었다.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멈춰줘요.'

 

그 눈망울을 바라본 카인은 그녀의 절규에 응답하기로 결심했다. 팔뚝에 장착한 대검을 뽑아 망설임 없이 투척한다. 살기도, 소리도 숨 죽인 채 날아든 대검은 이글의 등을 그대로 쑤시는 듯 했으나 어느새 돌아선 이글의 칼에 튕겨나가 버렸다.

 

쩡-

 

그리고 튕겨난 대검은 공교롭게도 카인의 탁자에 그대로 날아와 꽃혔다. 말없이 대검을 뽑아 팔뚝의 검집에 꽃아넣고 이글을 바라본다. 이글은 카인의 얼굴을 보더니 잠시 흠칫하고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건 또 뭐야? 거기 영감, 음. 면상 구겨진 거 보니까 영감 맞겠지. 왠 시비야? 안 그래도 지금 기분이 꽤 더러워졌는데, 목숨 아까우면 조용히 처박혀 있어. 노인공경은 홀든 가의 가장 빡센 규율이니까 날 자극하지 말라고."

 

걸어다니는 시비 덩어리 같은 이글에게 꽤나 굴욕적인 말을 들었지만, 카인은 침묵하며 행동을 개시했다.

 

"..."

 

카인은 아무 말 없이 품 안쪽의 리볼버를 꺼내 망설임 없는 6연사를 가했다. 이글은 그것을 남김없이 튕겨내고서 이죽거렸다.

 

"호? 이거 또 저 쭉정이들이랑은 다르네.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셨다 이거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이글 또한 방금의 6연사에는 섬뜩함을 느꼈다. 양 허벅지로 2발, 배에 1발, 가슴에 2발, 머리로 1발. 인간을 순식간에 무력화할 수 있는 위치로 정확하게 날아든 6발의 총알은 카인의 기량을 가감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싸우고 싶나? 상대해주지. 따라와라."

 

기복 없는 말을 내뱉고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쪽으로 달려나가는 카인. 그것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이글은 정신을 차리고 그 뒤를 쫓았다.

 

"뭐야, 이거 진짜 재밌는 장난감이 나도 모르는 구석에 처박혀 있던 거잖아!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인데 이거! 와하하하!"

 

그 웃음소리를 향해 카인은 말없이 2발을 더 발포했다. 설마 탄환이 더 남아있는 줄 몰랐던 이글은 깜짝 놀라서 위태롭게 총알을 쳐 내는데 성공했다. 이글의 밸런스가 무너진 틈을 타서 카인은 자신의 숙소로 갈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재밌겠어, 진짜 재밌겠어. 흥이 마구 오른다구. 날 더 즐겁게 해 줘!"

 

희열에 찬 목소리를 등 뒤로 하고 카인은 자신의 숙소 문을 부수듯 열고 뛰어들었다.

 

침대 옆에 놓인 아타셰 케이스를 움켜쥔다. 이미 발소리는 지척. 망설일 틈조차 없이 창문을 향해 몸을 날린다. 간발의 차이로 칼 끝이 코트의 끝자락을 물고 늘어졌다. 지면으로 떨어지던 카인은 아타셰 케이스를 저만치 집어던지고 낙법을 시도했다.

 

다행히 성공적으로 착지한 카인은 낙하의 기세를 살려 앞으로 한바퀴 굴러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다. 던져놓은 아타셰 케이스를 주워들고 뒤를 돌아보자, 이미 이글은 땅에 내려서는 중이었다. 아직 카인은 교전태세를 갖추지 못한 상태.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벌기 위해 조심스레 아타셰 케이스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헤에~ 거 나이도 지긋해 보이시는 양반이 몸 하나는 날래네. 분명 일반인 같은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네?"

 

이죽거리는 이글을 차갑게 쏘아보며, 움켜쥔 손잡이를 뜯어 내던진다. 살짝 긴장한 이글이 검병을 움켜쥐었지만, 그것은 카인이 노린 바였다.

 

손잡이에서 뿜어져나온 시커먼 연막이 사방을 가리고, 이글은 잠시 당황했다. 그 사이 카인은 아타셰 케이스를 끌어안고 골목 안으로 뛰어드는 데 성공했다.

 

"이런 얄팍한 수작을 부리다니, 맘에 들진 않지만... 뭐 이건 이것대로 즐길 만 하겠군. 부디 실망시키지 말아줬으면 한다고. 흐흐..."

 

당황도 잠시. 연막을 빠져나온 이글은 흥얼거리듯 말하며 카인이 뛰어든 골목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갔다.

 

그것은 능력자 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전투. 카인 스타이거와 이글 홀든이 정면으로 맞붙은 디시카 전투의 서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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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집을 골라 들어간 카인은 아타셰 케이스를 열고 그 내용물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의 취향대로 제작한 검정색 배틀 밴디드 벨트(Black Battle Banded Belt) 통칭 4th B. 검게 물들인 가죽은 무거운 질감으로 그를 짓누른다. 그 무게를 견디며 온 몸에 4th B를 휘감고, 버클로 고정시킨다. 마지막으로 끈을 꽉 조인 카인은 홀스터들에 집어넣을 무기들을 살펴보았다.

 

매끈하게 기름을 먹인 스미스 앤 웨슨 M1917 리볼버 1정. 천재 건스미스 존 브라우닝이 설계한 명작. 그리고 카인의 개조로 더욱 흉포해진 총기. 본래 6발들이였던 실린더는 8발로 개조되었고, 그에 따른 구경의 축소를 장약용량의 증가로 보충했다. 해서 일반 리볼버보다 좀더 길쭉한 모양새의 이 특제 리볼버는 얼핏 보면 밸런스가 맞지 않아 보이지만 일반 리볼버보다 2발 더 많다는 이점은 사용상의 불편함을 감수할 만했다. 본래 휴대하던 1정과 더불어 2정의 권총을 양 옆구리의 홀스터에 끼워넣는다.

 

탄환은 8발로 고정된 문 클립이 십여 개. 그것을 허리 앞춤의 탄알집에 집어넣는다. 권총의 준비는 이걸로 끝.

 

6개의 M5 세열수류탄. 1차 세계대전때 개발된 지연신관식의 휴대용 폭탄이다. 안정성과 휴대성, 그리고 파괴력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이 폭발물은 제대로 사용할 경우 한개 분대를 날려버릴 수 있는 멋진 녀석이다.

 

어깨부터 가슴까지 내려오는 양 쪽의 밴드에 준비된 고정쇠로 각 3개씩 장착한다. 고정쇠에는 안전핀을 걸어두어 유사시 잡아당겨 던지기만 해도 되도록 준비했다.

 

우지 기관단총 1정. 이스라엘의 우지엘 갈이 설계한 명작이다. 기관부를 안개 정제술을 이용한 합금으로 교체해 높은 내구성과 신뢰성을 부여했으며, 카인은 이 기관단총을 더욱 작게 개조했다. 탄창을 하나 끼워넣고 허리 뒤춤의 홀스터에 꽃아넣는다.

 

끼워넣은 탄창을 포함해, 9x19mm 파라블럼 탄이 30발씩 입탄된 탄창이 7개. 양 허리에 3개씩 끼워넣는다.

 

군용 대검이 한자루. 둔한 광택을 자랑하는 이 튼튼한 녀석을 칼집에 감싸 허벅지에 고정시킨다. 본래 가지고 있던 한자루를 포함, 양 허벅지에 단단하게 물려둔다.

 

마지막으로, 카인이 가진 건스미스로서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만들어낸 역작(괴물)을 꺼내든다.

 

기본은 소련의 예브게니 표도르비치 드라구노프가 설계한 SSV-58 드라구노프이지만, 이미 드라구노프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개조되어 있다.

 

당연히 저격소총이지만, 그 구조는 상식을 크게 일탈했다. 우선 중간에서 꺾여 접히는 것부터 놀랍다. 휴대성을 위해서였겠지만 조립부가 있는 이상 내구성과 신뢰성에 이미 큰 결함이 생긴다. 저격총으로서는 실격에 가까운 조건이지만, 신소재인 안개 합금의 강성과 연성은 그 한계마저 뛰어넘게 해주었다.

 

약실은 방아쇠보다 뒤쪽에 있는 불펍 방식으로 개조되어 있다. 그 거리만큼의 총열 길이에 어드밴티지를 받는 구조. 긴 총열은 탄도를 안정시켜 더욱 정확한 명중률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저격총으로는 드물게도 대검의 장착이 가능한 구조다.

 

스코프 또한 최고의 렌즈 장인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 이 총의 말도 안되는 사거리를 보조해주는 강력한 시야. 이것은 디시카에서 구한 것이다. 앞으로 카인에게 큰 도움이 되어 주리라.

 

재장전 방식은 볼트 액션. 반자동 장전 구조로는 이 총으로 발사하는 총탄의 반동을 견딜 수 없었다. 연사력에 있어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지만, 저격수에게 연사는 큰 의의를 가지지 않는다. 뼈대가 되는 드라구노프는 반자동 장전 방식을 채택했지만, 이미 원형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개조된 이 총기에는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사용 탄환 또한 특별하게 개조했다. 탄자의 첨단에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무거운 금속인 테라나이트를 박아 넣어 중량을 대폭 늘렸다. 그것을 발사해내기 위한 폭발력을 얻기 위해 탄피의 사이즈 또한 한계까지 늘렸고, 장약의 품질과 양 또한 한단계 높였다.

 

그로 인한 운동에너지는 그야말로 악마적. 어지간한 대구경 탄환 따위는 아득히 초월하는, 실로 8000줄(J)에 이르는 운동량인 것이다. 강철로 만든 방공호의 문짝 정도가 아니라면 개인 방호수단으로서 이 탄을 방어할 수단은 결코 없다.

 

이정도의 탄환을 쏘아내서는 총신 또한 오래 버티지 못한다. 견고하고 강인하게 짜인 격발부는 괜찮지만, 격렬한 충격을 버티는 중절부의 이음매와 고속으로 지나가는 총탄을 물어주는 총열의 강선이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초탄부터 이미 내구성을 극도로 저하시켜 신뢰성을 떨어뜨리지만 유능한 저격수인 카인은 성능의 저하를 자신의 기량으로 보충할 수 있다. 그것도 5발까지. 5발을 쏘아내면 총열은 더 이상 사수의 의도대로 총탄을 안내하지 못하게 된다. 그 이후로는 총열 자체를 교환해주어야 한다.

 

해서 예비 총열이 한자루. 탄은 5발들이 탄창으로 두개. 총열을 우지 아래에 고정시키고, 탄창을 우지 양 옆으로 고정시킨다. 마지막으로 드라구노프를 등의 홀더에 끼워넣었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죽고 죽이는 싸움 뿐이다. 카인은 그를 놓아주지 않는 이 지겨운 전장 속으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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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자신을 찾아 골목을 질주하고 있을 것이다. 접근전은 절대적 불리. 그가 보여준 실력을 볼때 중거리조차 안심할 수 없다. 총탄의 최대사거리에서부터 압박해 들어가지 않으면 승산은 없을 것이다. 카인은 은신할 만한 곳을 찾아들어가서 이글을 상대하기 위한 전술을 짜내는데 골몰했다.

 

생각도 잠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달음박질 소리에 재빠르게 우지를 뽑아들고 갈겨댄다. 나직하면서도 멀리 퍼져나가는 충격음이 사방을 메웠다.

 

과연 이정도에는 당하지 않는다. 발사 순간부터 몸을 빼며 칼을 휘둘러대는 이글. 저 칼은 어떻게 되어먹은 건지 총탄을 튕겨내고도 멀쩡하다. 카인은 이를 갈면서도 탄창이 빌때까지 풀 오토로 이글에게 탄을 쏟아부었다.

 

총탄을 튕겨내는 괴물같은 솜씨를 선보인 이글이지만 먹이를 노리고 날아드는 물떼세같이 허공을 찢어발기는, 분당 600발의 탄속에는 어쩔 수 없는지 그 자리에 멈춰서서 방어에 전념했다. 폭풍같은 연사가 그치자 이글은 감탄하며 외쳤다.


"오오~이거 이거, 이정도로 밀어붙이면 과연 어렵군! 신선한데? 좀 더 해봐! 총잡이 양반!"

 

"원한다면."

 

왼손으로 M5수류탄을 잡아 던진다. 딱히 전장의 무기에 대해 알아보지 않은 이글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듯 일단은 골목 안쪽으로 몸을 숨겼다. 살짝 혀를 찬 카인도 우지의 탄창을 교환하며 반대방향으로 신형을 옮겼다.

 

쾅-!

 

반경 10m를 감싸는 폭발이 일어났고, 폭염과 파편에 휩쓸린 대지는 커다란 상흔을 남겼다. 총화기란 것을 우습게 보던 이글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헤, 헤에~ 이건 좀 위험한 놈일세? 그래도 뭐,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군!"

 

단 한번 봤지만 평생 칼밥을 먹고 산 이 검사는 순식간에 대응방법을 찾아냈다. 강한 위력이지만, 던진다고 바로 폭발하는 것은 아니다. 투척후 5초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터지게 만들어진 것 같으니 그 전에 멀리 튕겨버려도 되고, 어차피 사방으로 뻗어나가기만 하는 화염과 쇳조각은 적당한 엄폐물 뒤로 숨으면 될 것이다. 골목길 사이사이에는 몸을 숨길 만한 포인트는 충분할 정도다. 재빨리 행동원리를 짜낸 이글은 다시금 추적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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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시카의 시가지를 뛰어다니며 교전을 벌이는 카인과 이글. 술래는 이글이고, 도망치는 사람은 카인이다. 벌칙은, 죽음. 살벌한 술래잡기를 이어가며 카인은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해야 했다.

 

결국 T자 로의 교차점에서 정면으로 마주친 둘. 먼저 상대를 눈치챈 건 카인이었다. 카인은 망설임없이 수류탄을 까 던져놓고 우지를 뽑아들어 난사했다. 하지만 카인에게는 통탄스럽게도, 이글에게는 천만다행으로 수류탄은 불발이었다. 아마 지연신관의 문제일 것이다. 나뒹구는 쇳덩이에 속으로 욕설을 퍼붓고, 카인은 이를 악물고 우지의 탄창을 비워냈다. 철컥 하는 단말마와 함께 노리쇠가 후퇴 고정된 우지를 뒤춤으로 집어넣고 리볼버 두자루를 꺼내 연달아 발포한다. 도합 16발의 총탄이 날아들며 이글의 돌격을 저지한다.

 

"뭐야, 이런 건 시시하다고. 좀 더 자극적인 걸로, 더 대단한 건 없는 거냐!"

 

"후회하지 마라. 멋진 선물 하나를 해 주지."

 

그렇게 답해주며 등 뒤의 드라구노프를 뽑아올린다. 그 기세로 꺾인 총열은 제 자리를 잡고, 재빠른 손길로 탄창을 결합, 초탄을 장전한다. 이미 그 행동만으로도 이글은 급격하게 거리를 좁혀오고 있다. 하지만 이미 전투상황에 완전히 적응한 카인은 기계적으로 행동을 이어나갔고, 허용 시간 내에 가늠좌 위로 이글의 가슴팍을 조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는 격발.

 

지금까지 울린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엄청난 총성이 터져나왔고, 이글은 안색을 굳히며 칼을 휘둘렀다. 그의 엄청난 동체시력으로도 포착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속으로 날아드는 탄자에 집중하고, 검날(Edge)로 베어내듯 탄자의 옆을 후려친다.

 

끼기긱-카앙!

 

테라나이트의 무게로 더욱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탄자는 굉음을 울리며 칼날과 마주했지만 옆구리를 가격당한 탄자는 견디지 못하고 궤도를 수정당했다. 하지만 예상한 입사각에 크게 못미치는 각도로 굴절된 궤도에는 이글의 옆구리 피부가 겹쳐지고 있었고, 마침내 총탄은 이글의 피를 뽑아내는데 성공했다. 이글의 칼날은 꽤 깊게 이가 빠졌고, 그것이 이글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인상을 굳히며 카인을 노려보는 이글. 방금의 공격은 정말로 위협적이었다. 조금만 더 방심했다면 총탄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한 채 가슴팍을 꿰뚫렸으리라. 방금 그 공격으로 놀이는 끝났다. 이제는 진심으로 죽고 죽이는 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꽤나 맘에 드는 선물이었다. 답례는 해 줘야겠지!"

 

"사양한다."

 

노리쇠를 후퇴 전진시켜 탄피를 배출하고 장전시킨 드라구노프를 다시금 발포한다. 하지만 카인이 지닌 가장 강력한 일격으로도 이 남자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다시금 탄이 튕겨나가고, 이번에는 상처조차 입히지 못했다. 가볍게 혀를 차며 수류탄 하나를 더 투척하고 옆의 건물로 뛰어들었다.

 

이글은 아직 골목 안쪽에 있었기에 이를 갈면서 수류탄을 쳐 내고는 뒤로 달렸다. 술래는 바뀌었다. 이제는 카인이 이글을 쫓을 시간인 것이다.

 

옥상으로 올라선 카인은 전장을 파악한다. 그다지 넓지 않은 시가지의 골목 면적. 저격의 입지로서는 나쁘지 않다. 드라구노프의 탄환마저 튕겨나갔을때는 카인조차 가슴이 덜컹했지만, 그저 튕겨내는게 전부인 것은 파악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저격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다. 카인은 드라구노프를 재장전하고 옥상 위를 옮겨다녔다. 은밀하고 조용하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글의 형상을 포착했다. 그는 조용히 포복사격 자세를 취하고 드라구노프를 들어 조준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굉음과 함께 흉포한 이빨이 이글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골목길을 뛰어가던 이글은 뇌리를 자극하는 경보에 순간적으로 몸을 옆으로 날렸다. 그것이 이글의 목숨을 살렸다. 허벅지를 살짝 스쳐 지나간 탄자는 흙바닥을 깊숙히 파고들었고, 음속보다 빠른 탄자는 뒤늦게 소리를 끌고 왔다. 피격 후 귀에 닿는 총성의 방향을 가늠하고 이글은 다시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스코프를 통해 바라보던 카인은 정말로 질려버렸다. 적어도 500m 밖에서 가한 저격이었는데 그것을 그저 감으로 피하다니. 이래서야 원거리 저격 또한 크게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다. 카인은 4발째를 장전하고, 우지와 리볼버의 탄을 교환하고 옆 건물의 옥상으로 뛰어들었다. 위치가 파악된 저격수가 그 자리에 있다가는 밥이 되기 딱 좋았으니까.

 

옥상을 뛰어다니는 카인과, 그를 뒤쫓는 이글. 이 복잡한 골목에서 옥상으로 갈 수 있는 건물을 찾기란 쉬운일이 아니었기에, 이글은 아직까지는 퍼부어지는 총탄을 방어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외벽에는 몇몇 사다리가 있었지만, 한가하게 그것을 타고 올라가다간 등짝에 총맞기 딱 좋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다시금 총탄을 튕겨낸다. 보아하니 30발을 쏘아내는 그 총이다. 권총이라면 탄을 쳐내면서 접근할 수 있지만 이 빌어먹을 총은 30발의 탄자가 탄막을 형성하기에 그 자리에서 멈춰서 튕겨내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한 차레 폭풍이 지나가고, 이글은 탄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다시금 달렸다. 걸리기만 하면 뼈도 추리지 못하게 만들거라 다짐하면서.

 

카인 또한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탄환의 소모는 한 인간을 상대로 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 우지의 탄창은 이제 3개가 남았고, 리볼버 탄 또한 상당량을 소모했다. 수류탄은 2개가 남았다. 현재로서는 이글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단은 수류탄과 드라구노프 뿐이기에 함부로 낭비하기엔 상황이 좋지 못하다. 카인은 슬슬 승부수를 낼 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했고, 우지와 리볼버의 재장전 후 대검을 한자루 뽑아들고 드라구노프의 총열 끝에 착검했다.

 

골목길을 달려나가던 이글의 앞으로 수류탄 하나가 날아들어온다. 잽싸게 앞으로 차내고 뒤로 물러서서 폭발을 피해낸다. 그리고 폭연이 걷히자 카인이 이글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었다. 한 손에는 우지를, 한 손에는 착검된 드라구노프를 든 채로. 서로를 한번 노려본 후 이글은 질주를, 카인은 우지의 방아쇠를 당겼다.

 

이글은 멍청하게 30발의 탄을 받아 줄 생각은 없었다. 몇발인가는 쳐내면서 옆으로 난 골목길로 뛰어든다. 가슴께에 노출된 수류탄은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했기에, 그것이 단 하나 남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면 함부로 던지진 못하겠지. 과연 총성이 그치고도 뭔가가 날아들진 않는다. 이글은 안심하고 다시 몸을 돌려 카인에게로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그의 발을 다시금 가로막은 것은 바로 카인의 놀라운 사격실력이었다.

 

"빌어먹을, 이게 무슨 짓거리냐!"

 

"꽤 재미있지 않나?"

 

어느 새 우지의 탄창을 교환하고 허리춤에 꽃고 드라구노프를 옆에 세운 뒤 양 손에 든 리볼버를 동시에 쏘아낸다. 탄도가 사선으로 교차하는 지점에서 정확히 맞부딫히고, 궤적이 꺾인다. 이글은 예상치 못한 각도로 날아드는 탄환을 간신히 튕겨낸다. 카인이 자랑하는 사격술, 궤도굴절사(軌道屈折射). 탄환을 서로 부딫혀 있을 수 없는 궤도로 날려보내는 이 기술은 과연 이글마저도 당혹스럽게 하기 충분했다.

 

"선물은 하나면 아쉽지. 이것도 받아봐라."

 

이글이 아닌 주변의 돌벽을 향해 날아드는 총탄. 하지만 그 탄환은 벽에 부딫혀 다시 한번 이글을 노리고 달려든다. 이름 붙이길 도탄사(跳彈射). 이 또한 이글을 섬뜩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번 궤도가 꺾이며 속도와 힘을 꽤나 잃은 탄자라도 그것이 정면이 아닌 측면을 노린다면 위협성은 대폭 증가한다.

 

16발의 총알이 정면, 측면으로 쉴 세 없이 날아들자 이글 또한 이를 빠드득 갈아붙이며 방어에 전념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틈을 타서, 리볼버를 옆구리의 홀스터에 꽃아넣는 동시에 착검한 드라구노프를 움켜쥐고 이글에게 달려든다.

 

"홀든의 검사에게 그따위 조잡한 무기로 덤벼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보구만!"

 

"조잡한지 어떤지는 직접 확인해라."

 

이글의 칼보다 팔뚝 하나정도는 더 긴 드라구노프는 마치 창과 같이 이글을 찔러들어갔다. 그 속도가 얕볼 정도는 아니었기에 이글은 칼을 놀려 대검 끝을 쳐냈다. 옆으로 꺾인 드라구노프를 다시금 추슬러 이글에게 찔러넣고, 휘두르고, 긁어낸다. 철저하게 칼의 범위 밖에서 찔러대는 총검술은 일가를 이루었다고 말해도 될 정도의 실력이었다. 이글은 카인이 보여주는 끝을 알 수 없는 전투능력에 내심 감탄하며 칼을 휘둘러 총검을 막아갔다. 그 와중에 한발을 발사해내었지만, 총구의 끝이 명확하게 보이는 근거리에서 피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꽤 괜찮은 실력이긴 하지만 홀든의 검사에게는 좀 즐거운 재롱에 불과하다. 어느 새 안으로 파고든 이글은 칼을 사선으로 내리쳤고, 카인은 드라구노프의 총열로 칼날을 가로막을 수 밖에 없었다.

 

홀든이 자랑하는 강검이었지만, 안개와 수액으로 만들어진 합금을 재료료 삼은 총열과 단단한 호두나무와 떡갈나무 원목을 재료로 삼은 손잡이를 갈라내고서는 멈추는 것이 전부였다. 파고든 검날을 비틀자 반쯤 잘린 총열은 결국 꺾여나갔다. 다시 한번 날아드는 칼을 간신히 뽑아든 리볼버로 막아낸다. 통짜 안개 수액 합금으로 만든 리볼버가 간신히 칼을 막아냈지만, 역시나 깊게 베여 제 성능을 상실했다. 위기를 느낀 카인은 망설임없이 리볼버를 이글의 얼굴에 집어던진 후 수류탄을 까서 발 밑에 던져넣고 뒤로 몸을 날렸다. 다행히 이글 또한 몸을 뒤로 돌렸고, 폭연이 골목길을 메우는 사이에 카인은 잠시 숨을 돌릴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카인은 총기들의 재장전을 점검하고, 드라구노프의 빈 탄창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그 뒤를 쫓는 이글 또한 그 모습을 바라보았고, 더욱 더 추격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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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무장은 리볼버 한자루, 우지, 간신히 총열을 교환한 특제 드라구노프, 대검 한자루, 리볼버 탄 8개들이 클립이 3개, 우지용 30발들이 파라블럼 탄창 2개, 그리고 드라구노프용 특제 매그넘 탄환 5발들이 1개. 재장전을 마친 후, 카인은 다가오는 끝을 느끼며 몸을 날렸다.

 

이제 승부는 종착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다시금 이글과 마주친 카인은 견제용 사법인 도탄사를 시도하면서 이글을 끌어들여 유인했다. 아마 종말은 좁은 골목과 대로가 연결된, 초반에 교전이 일어난 T자 로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미 수류탄은 전부 소모되었다. 리볼버 또한 8발이 다 찬 한자루 뿐! 이글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단은 드라구노프의 특제 탄환 뿐이다.

 

대로에 자리잡은 카인은 우선 드라구노프의 기습사격으로 다리를 붙잡는다. 1발 소모. 역시나 튕겨내어진다. 잽싸게 재장전을 마치고 옆구리에 기대 세운다.

 

"하하! 이제 그 이상한 폭탄은 다 쓴건가? 이 망할 총알도 이젠 소용 없다고!"

 

이글의 조롱을 무시하며 우지를 꺼내들고 탄막을 쳐서 접근을 저지, 한 탄창을 다 비우고 공중으로 던진다. 전부 튕겨낸 후 다시 돌격하려는 이글에게 빗나가는 드라구노프의 견제사.

 

"얼어죽을! 정말 귀찮게 하는구만. 무슨 벌떼도 아니고!"

 

마지막 탄환으로 채운 리볼버를 오른손으로 꺼내들고 제압사격을 실시한다. 왼손으로 하나 남은 우지의 탄창을 꺼내 입에 물고, 떨어지는 우지를 받고 빈 탄창을 분리, 옆구리에 총을 끼우고 탄창을 결합시킨다.

 

흉기로서의 역할을 되찾은 우지를 공중으로 던지고, 8발을 다 소모한 리볼버를 이글의 얼굴을 향해 던져버리고 빈틈을 타 재장전한 드라구노프의 조준사. 하지만 튕겨내진다. 정말 괴물같은 실력이다. 카인은 이를 악물고 최후의 힘을 짜내었다.

 

다시금 우지를 받고, 탄막을 펼친다. 우지가 뿜어내는 마지막 포효에도 불구하고도 이글은 상처 하나 없이 견뎌낸다.

이제 이빨을 잃은 우지를 이글을 향해 내던지고, 드라구노프를 들어올린다. 더 이상 탄환의 낭비는 허용되지 않는다. 만약 추가탄환이 있다 하더라도 신뢰성이 떨어진 총열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승부는 지금 한 발로 끝내야만 한다.

 

"흥, 언제까지 가만히 맞아줄 것 같았냐?"

 

일갈과 함께 이글이 발 밑의 모래와 자갈을 검집으로 크게 퍼 올린다. 시야를 가리는 자욱한 흙먼지 그런데 떠오른 자갈 사이로, 뭔가 매끈한 검은 광택의 타원형 물체가 보인다. 그것은 바로 아까 T자 로에서 불발된 수류탄이었다!

 

그것을 동시에 본 둘의 감상은 완전히 달랐다. 카인은 승리에의 직감을, 이글은 생명에의 위협을 느끼고, 각자 할수있는 최선의 행동에 돌입한다.

 

조준경 너머의 광경을 보다 신중하게 응시한다. 기회는 한번 뿐. 탄자가 그릴 궤도를 예측하고, 그 궤적에 앞으로 정점에 이르고 떨어질 수류탄을 끼워넣는다. 그 시간, 그 타이밍은... 바로, 지금--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방아쇠가 당겨지고 드라구노프가 불을 뿜어냈다!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쥔다. 동시에 관절 또한 유연하게 가다듬는다. 이후로 펼칠 검무는 그야말로 쾌에 대한 숙고의 정수. 홀든의 검이, 인류의 문명이 만들어낸 병기에게 정면으로 도전받는 순간. 그리고 이글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해답을 검으로 그려낸다--

 

'신이여!'

 

전사는 결국 자신의 신에게 기댈 수 밖에 없다. 고대 스칸디나비아의 거친 사나이들이 오딘을 부르짖은 것처럼, 카인은 어디에도 없을 자신의 신에게 절규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무쌍참!"

 

쌍벽을 이룰 검은 없으리. 끝없이 광오한 의미를 내포한 이글의 비기가 펼쳐진다.

 

검이 검집에서 뽑혀나옴과 동시에, 한 호흡을 대가로 수십 회에 달하는 참격이 전방을 공간을 헤집는다. 채찍과 같은 참격의 시작과 동시에 드라구노프의 탄자가 수류탄을 강타하고, 그리고 순식간에 폭염과 파편이 주변을 뒤덮었다. 그와 동시에 카인은 자세를 낮추며 코트로 몸을 가렸다. 곧바로 엄청난 충격이 카인을 덮쳤고, 다가온 것과 같이 썰물처럼 사라져갔다.

 

 

 


---자욱한 먼지가 걷히고, 참상이 드러났다.

 

놀랍게도, 지근거리의 수류탄 폭발에서도 이글은 살아남았다. 그것도 사지가 그대로 붙은 채로. 현대 전쟁사의 그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위업이었지만, 기적을 체현한 이글 또한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전신에 박힌 파편이 이글의 혈액을 유출시킨다. 그 출혈량은 곧 치사량 수준에 다다른다. 오른 눈을 걸쳐 길게 찢어진 상흔은 고열의 파편에 의한 것이라 영원히 흉터로 남을 것이다. 그 이전에, 시야 절반을 빼앗긴 것은 치명적이다. 더불어 격통으로 유린당하는 신경계는 정상적인 반응속도를 기대할 수 없겠지. 간신히 기능하는 사지를 추슬러봤지만, 제대로 된 움직임은 거의 불가능했다. 반격의 가능성은--아마도, 단 일격. 그것이 이글의 육체에 남은 최후의 힘이었다.

 

이글이 마지막 한줌의 기력까지 그러모으는 사이에, 카인은 수류탄의 피폭으로 넝마가 된 코트를 대충 추슬렀다. 승리했다고 자신하는 것일까. 드라구노프를 덜렁거리며 이글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천천히 말한다.

 

"말도 안되는 짓거리를 잘도 해주시는군. 설마 검으로 일으킨 바람이 충격파를 밀어낼 줄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

 

쓸데없는 힘의 소모를 우려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이글이었지만, 속으로는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비기 적혈무쌍참(赤血無雙斬)으로 뿜어낸 검풍은 수류탄의 폭발충격파를 거의 완벽하게 차단했지만, 파편까지는 도저히 손 쓸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왼손의 검집 또한 어지러이 춤췄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다. 치명적인 곳으로 날아드는 파편을 막아내고 완전히 망가진 검집은 더 이상 발도를 행할 수 없었고, 결국 이글은 그저 칼을 휘두르는 것으로 마지막 기회를 잡을 수 밖에 없었다.

 

반이 가리워진 시야 때문에 원근감이 상실되어 거리의 파악이 힘들다. 하지만 수류탄의 폭심지에 형성된 구덩이는 바로 이글의 앞. 그 전방에 카인이 멈춰서는 순간, 모든 힘을 써서 저 빌어먹을 자식을 회 쳐버릴 것이다!

 

세걸음

 

두걸음

 

그리고... 한걸음

 

"!"

 

기합성도 없는 칼날이 허공을 가른다. 최후에 웃는 자는 이걸로 내가 될거라고 외치며!

 

쩌엉-

 

그리고 그 칼날은 다가서던 것보다 빠르게 뒤로 되튕겨나갔다. 검에 가해진 충격은 이글의 악력을 가볍게 뛰어넘었고, 놓쳐버린 검은 멀리 날아가버렸다.

 

이제껏 수많은 총탄을 튕겨낸 견고한 검신도, 배면으로부터 가해진 8000J에 가까운 운동량의 폭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완전히 꺾여 휘어진 검날은, 이글의 자존심도 함께 꺾어버렸다. 홀든의 검이 과학의 탄환에 무릎꿇은 것이다.

 

잠시 멍하게 서 있던 이글은 비척거리면서 물러나다가 뒤로 나자빠졌다. 자신이 그런 꼴이라는 것도 잊은 채, 이글은 피를 토하며 더듬더듬 말했다.

 

"무슨... 분명... 총알은... 커헉! 다 소모했을텐데... 무슨 짓을 한거냐... 네놈..."

 

카인은 이글의 미간을 향해 총구를 고정시키며 짤막하게 답해주었다.

 

"이 탄창에는 5발이 들어간다."

 

"그런... 쿨럭... 그따위 잔재주를... 우라질..."

 

그렇다. 탄창의 교환부터가 교란이었던 것이다. 4발을 소모하고 5발을 장전함과 동시에 탄창을 교체하고 그것을 슬쩍 내비친다. 총화기에 익숙지 않은 이글은 그것으로 장탄수가 4발이라 착각했고, 탄창 교체후 4번째 탄환이 수류탄을 때렸다는 것을 너무나 명확히 파악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결정적인 패인이 되었다.

 

"호오... 그럼... 아직... 한 발... 쿨럭! 남았겠군...?"

 

쾌락주의자의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가 그려진다. 이글은 검사로서 각오한 마지막 순간이 성큼 다가온 것을 느꼈고 그에 당당해지리라 마음먹었다. 타인을 해하려는 자, 스스로 죽을 각오를 하지 않고서야 검을 들 자격도 없다. 홀든의 가르침을, 자신의 신념을 마지막까지 지켜나가기 위해 이글은 눈 앞의 죽음을 초연히 바라보았다.

 

"운수 좋은 날인 줄 알았더니... 내 제삿날이었군... 자... 쏴... 그걸로 너의 승리다..."

 

"...쏘지 않겠다."

 

카인은 총구를 떨어뜨리고, 드라구노프를 접어 등의 홀더에 끼워넣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글은 순간 분노에 차 외쳤다.

 

"나를... 모욕하나! 쿨럭! 쏴라! 패자는 쓰러지고 승자는 내일의... 컥! 태양을 보는 것이... 순리다!"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당초 싸우고 싶지도 않았고, 죽이고 싶지도 않았다. 더 이상 움직일 수는 없겠지. 사람을 불러올테니 함부로 움직이지 마라."

 

"감히... 날 동정하나! 용납할 수 없어. 날 비참하게 만들지 말고... 죽여! 죽이란 말이다! 쿨럭!"

 

피를 토하며 절규하는 이글을 차갑게 내려다 보며 카인은 차갑게 일갈했다.

 

"동정이라고 여기면, 모욕이라고 여긴다면, 그렇게 생각해라. 그리고 잊지 마라. 너 따위같은 너절한 쾌락주의자가 날뛰는 건 알 바 아니지만, 내 주변에서 알짱대지 마라. 그런 꼴을 봐 줄 정도로 난 좋은 사람이 아니니까."

 

"큭...큭큭... 이 새끼... 기어코... 날 엿먹일거라 이거지... 끝까지... 그렇게 시크한 척 하면서... 크윽...빌어먹을!"

 

부들부들 떨던 이글이 어디서 힘이 났는지, 만신창이인 검집을 카인에게 휘둘러갔다. 설마 그런 몸상태로 움직일 줄 몰랐기에 카인은 드라구노프를 간신히 꺼내들었지만, 미처 조준하기도 전에 목덜미에 검집이 날아드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무뎌졌군. 그렇다면 죽어도 할 말이 없지.'

 

그 와중에도 그는 태연하게 사고했다. 이글이 그의 신념을 지켰듯, 카인 또한 신념이 있다. 그 신념을 지키면서 죽는다면, 크게 후회는 없을 것 같다. 전사는 전장에서 죽는것이 숙명이며, 운명이다. 그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을 느끼며, 카인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목뼈를 부러뜨릴 기세로 날아들던 검집이 순간적으로 속도를 죽였다. 목덜미에 슬쩍 닿는 차가운 감촉에 카인은 다시 눈을 떳다.

 

"흥이... 깨졌다. 싸움판의 룰을... 무시하는 네놈 때문에. 결국... 나까지 룰을 어겨버렸다... 영감... 이름이 뭐냐...?"

 

"카인 스타이거."

 

"카인...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 홀든의 이글. 다음에 싸울... 때는, 죽고 죽이는 룰에... 철저해져 보자구. 그때는... 더 흥겹게..."

 

이글은 자조와 분노, 희미한 기대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의식을 잃고 무너졌다.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인은 몸을 돌렸고, 이윽고 그가 부른 사람 몇몇이 이글에게 다가와 급하게 응급처치를 했다.

 

서로 목숨 걸고 싸웠지만 결국 누구도 죽지 않은 전장이 막을 내렸고, 시끄러웠던 디시카의 하루도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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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 홀든과 대등하게 싸우고, 결국 승리를 쟁취한 카인의 이름은 포트 레너드에 널리 퍼졌다. 유명세에 시달리게 된 카인은 다른 곳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자신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디시카에 얼렁뚱땅 자리를 잡아버렸다. 마침 인연이 된(그러니까 이글과 카인이 시비가 붙은) 술집 주인이 가드로 일할 것을 제의해 주어 보다 손쉽게 정착할 수 있었다. 내심 카인 또한 그것을 원했기에 모든 것은 문제 없이 흘러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 누가 알았으랴.

 

구원을 갈구하며, 누구도 죽이고 싶지 않은 이 남자의 운명은 전장에 묶여 있었고 디시카는 또 다른 전장을 그에게 선물할 예정이었다는걸.

 

그에게 짧은 안식을 가져다 준 디시카는 그를 다시 전장으로 내몰았고, 결국 카인 스타이거라는 남자는 다시금 전화 속으로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

 

그럴 수 밖에. 그가 구한 안식은 이미 그의 곁에 있었지만, 디시카는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서 안식을 빼앗아 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며, 어디에도 없을 자신의 신에게 대고 카인은 슬프게 울부짖었다. 잃어버린 안식, 그의 연인 레나를 찾아 헤메이면서.

 

 

 

"전장이 날 부르는 건가. 도저히 놓아줄 수 없는 것인가. 이것이 숙명인가, 나의 운명인가. 그렇다면 응할 수 밖에 도리가 없는가. 아아. 신이여, 저를 구원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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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메이는 구원자, 춤추는 깃털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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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감사합니다. 발빠른 R 님 영광입니다. 다른 분들도 축하드려요. 좋은 하루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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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 피- 어머! 흐어 오오- 안돼! 랄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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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팅!! 고마워~ 졌어... 히힣 극대노 미안! 거울 앞에서 자의식 과잉된 십대 라이언
저는 지금 극공입니다. 훠이훠이 하.하.하. 매우 화가 납니다. 총기 손질중입니다. 저와 한 판 붙어보시겠습니까? 당신에 대한 정확한 진단 안돼!
뭐가 궁금하죠? 축하드립니다. 너에게는 뭐든 주고 싶어. 칭찬 드립니다. 대-단하십니다. 내겐 보여, 너의 죽음 당신을 믿습니다. 이런 미래는 싫어!
감사합니다. 기쁩니다. 축하합니다. 칭찬해 드리죠. 놀랍군요. 심기가 불편합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우 화가 나는군요.
짝.짝.짝.짝 고마워... 멋있어... 지금 이게 뭐하시는 거죠? 대다나다 히에엑... 헉! 깜짝 놀랐습니다. 그만해!!!!!
옳소! 감탄했습니다. 흐음 후회할거요! 감사합니다. 놀랐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정색) 축하드립니다. 칭찬해 드립니다. 놀랍군요. 매우 화가 나네요. 큰 충격입니다. 놀랍군요.
이럴수가... 감히! 네가! 아니?! 장하군! 응?! 좋다! 그건 아니다! 고맙다!
감사합니다 잘 못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매우 화가 나는군요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좌절상태입니다 감탄했습니다 칭찬합니다
멋지군! 좋았어! 하하! 축하하오! 아아.. 5분전인데. 커피한잔 하겠소?
승리의 정유년! 정의로운 새해복! 극.한.공.성. 복! 받아랏! 음~ 직장인의 정석
많이 배웠습니다! 대단합니다! ?!! 축하드립니다 뭔가.. 부족해요 짝짝짝! 각오하세요! 으윽!
성탄의 축복을~! 메리 X-MAS~! 화이트 크리스마스야 해피~ 크리스마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성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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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빈 미이라와 고스트 제피 할로윈에는 카를로스호박 히카르도의 사탕 탄야의 마녀 분장..? 잭-슈타인 강시 루시
기자님의 감탄사 : 호-오! 기자님의 일과 : 신문 보기 기자님의 사과 : 이거 실례! 기자님이 놀라면 : 어이쿠! 기분이 좋아 보이는 잭 기분이 나빠 보이는 잭 천진난만한 잭 상큼한 인사를 날리는 잭
좋군요! 좋은 시간 되소서 Merry 추석~! 우와~! 호~오! 가득해요~! 짱인데! 품위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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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합니다 궁금하네요 에구머니나! 슬프네요... 경멸스럽군요.. 후훗~ 뭐라고 하셨죠? 이, 이럴수가...!
아이작의 멋진 모습 이글이라 샤샤샤~ 트리비아 슬라이딩 시바 포는 달린다 까미유도 달린다 라이샌더 달린다 마를렌 점프! 샬럿 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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