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phers

  • 검과 탄환과 기억 #17 完
  •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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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폐인 [55급]

2022-10-26 13: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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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없이 이어지는 어두운 복도에 이글이 마른침을 삼켰다. 


  복도 끝에 나타날 새하얀 빛이, 그 빛 속에서 나타날 시리도록 차가운 진실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이글이 어둠을 빠져나와 새하얀 빛 너머로 발을 내디뎠다. 거대한 홀. 마치 교회처럼 성스러운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비틀린 광신도 주제에 이리도 성스러운 분위기라니. 홀의 수많은 장식들은 마치 자신들의 추악함을 감추려는 듯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의자 사이를 걸어가며 단상으로 나아간 이글이 단상 끝 화려하게 치장된 성좌 위에 잠든 앨리셔를 보았다.


  "앨리셔!"


  앨리셔에게 달려가는 이글의 앞을 붉은 망토의 여자가 가로막았다. 


  그래. 당신이 나타날 때가 되었지. 


  정말 이번만큼은 만나고 싶지 않았어. 


  샹들리에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진 빛에 망토 아래 가면이 반짝였다. 새하얀 머리칼이 쏟아지고 짙은 염색약 냄새가 이글의 코를 찔렀다. 


  침묵만이 흐르는 밀실 속에서 노이즈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색이 있다면 보라색일 것만 같은 끈적한 목소리였다.


  [이글. 이글 홀든. 결국 여기까지 오는군.]


  "옥사나 야고비치."


  보랏빛 목소리가 사악하게 웃었다. 사람을 조롱하는 듯한 웃음이 귓가를 간질였다.


  [반갑다는 인사 정도는 해주지 그래?]


  "♡♡."


  이글의 날카로운 말에 여자가 조소했다.


  [그러면 안 되지. 당신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는데.]


  옥사나의 말에 여자가 천천히 망토를 벗었다. 검은빛이 도는 백발의 머리가 탁하게 빛났다. 작은 손이 가면을 벗자 아직 앳된 소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꿈에서도 그리워 가슴이 에일까 차마 쳐다볼 수 없었던 얼굴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언제나 자신의 기억 속, 백합꽃 만개한 정원 위에서 자신을 맞아주던 따스한 그 시절 그대로.


  "누나."


  나의 따스한 어린 시절. 언제나 함께 했던 나의 사랑스러운 누이.


  [어때, 감격스러운 가족의 재회는?]


  이글이 공허한 눈으로 자신의 누이 릴리 홀든을 바라보았다.


  지나친 실험으로 빛을 잃고 검게 물든 머리칼을 하얗게 물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에게 있어 백발이란 자신이 홀든 가문의 일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겠지.


  칼을 뽑기 전 왼손을 쥐었다 펴는 버릇. 


  레이피어를 앞으로 내밀 때 가볍게 땅을 구르는 오른발.


  목표를 겨눌 때 가볍게 원을 그리는 칼 끝.


  어째서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그녀는 자신의 기억 속 그대로의 모습이었는데.


  자신이 지켜주지 못했던 누이를, 꿈에서도 그렸던 누이를.


  릴리가 무표정한 얼굴로 이글을 향해 레이피어를 들었다.


  "누나."


  이글의 말에도 아무런 반응 없이 검을 겨누던 릴리가 빠른 속도로 이글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칼 손잡이를 움켜쥔 이글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릴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은 초승달을 그리는 이글의 검이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릴리의 레이피어를 베었다.


  한 송이 백합꽃을 꺾는 것처럼.


  레이피어가 반으로 부러지고 힘없이 무너지는 릴리를 받아낸 이글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


  "누나. 집에 가자."


  서글픈 이글의 목소리가 릴리의 귓가를 간질였다.


  그때 릴리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가슴을 다 적실 정도로 많은 양의 피에 이글이 소리쳤다.


  "이봐, 누나가 왜 이러는 거야!"


  이글의 말에 옥사나가 조소하며 말했다.


  [왜 놀라지? ♡♡가던 것을 억지로 되살렸으니 다시 죽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나?]


  "♡♡! 이대로 죽게 놔둘까 보냐!"


  분노에 가득 차 소리쳤지만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는 릴리를 보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치유 능력자는 언제 오지?


  애초에 치유 능력자가 온다고 누나를 살릴 수 있나?


  누나를 살리려면 무엇을 해야 하지?


  결국 이렇게 또다시 누나를 보내야 하나?


  릴리를 품에 안고 어찌할 줄 모르는 이글을 향해 옥사나가 말했다.


  "당장 그녀를 멈추게 해! 당장!"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쓸쓸한 새. 어차피 홀든 가문으로 돌아가도 날개 꺾인 새가 될 뿐인데 여기서 죽는 게 낫지 않나?]


  "개소리 지껄이지 마!"


  [안타리우스에게 온 것이 그녀에게도 좋은 일 아니겠어? 탑 위의 공주처럼 갇혀있던 소녀가 우리에게 도움이 되었잖아?]


  "♡♡♡고 했잖아!"


  이글이 한 손으로 검을 휘둘러 스피커를 베었다. 탁한 소리를 내뱉던 스피커가 작은 단말마를 내뱉으며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 속에서 이글은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자신은 누이를 잃을 것이라는 걸.


  무릎부터 무너진 이글이 품에 안은 누이를 내려다보았다.


  빛을 잃어가는 눈빛의 누이가 이글을 올려다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이...글..."


  "...누나!"


  릴리가 이글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가는 손가락으로 이글의 뺨을 어루만지며 간신히 말했다.


  "많이 컸네... 내 동생..."


  "누나..."


  삶의 끝에서 기억을 붙잡은 것처럼 릴리가 이글을 향해 미소 지었다.


  어릴 적 언제나 자신을 바깥으로 끌어내던 그때의 누이처럼.


  백합꽃 같은 나의 누이여. 백합 가득한 정원을 지날 때마다, 당신이 떠나간 그날이 올 때마다 당신을 그리며 달빛 아래 홀로 놓인 어린아이처럼 처절하게 울었음을 당신은 알고 있을까.


  이렇게 다시 당신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에도 차마 당신 앞에서 눈물 흘릴 수 없어 울음을 삼키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을까.


  이글의 뺨을 어루만지는 릴리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가늘게 흩어지는 숨결 속에서 피에 물든 백합꽃이 천천히 시들어갔다.


  힘없이 새어 나오는 마지막 숨결을 붙잡지 못한 이글이 누이를 품에 안고 눈물을 흘렸다. 흘러내린 눈물이 누이의 창백한 뺨 위로 떨어져 흘러내렸다.


  시드니의 강화인간을 간신히 처리하고 클리브와 합류해 성당에 도착한 벨져 일행이 가장 먼저 본 것은 화려하게 치장된 샹들리에와 그 아래에서 처절하게 울부짖는 이글의 모습이었다.


  어린아이처럼 울부짖는 이글의 모습에 모두가 멈춰 섰다. 차마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처절하게 통곡하는 이글을 보며 클리브가 쓰디쓴 침을 삼키며 그에게 걸어갔다. 이글의 곁에 다가간 클리브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언제나 강해 보였던 사내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이글."


  클리브의 말에 울음을 멈춘 이글이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클리브를 향해 말했다.


  "...앨리셔를 부탁해."


  "...그래."


  결국 클리브는 이글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진실을 알게 된 그가 얼마나 처절히 슬퍼했는지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그럼에도 그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클리브가 조용히 성좌에 잠들어 있는 앨리셔를 안아 들었다. 이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잠들어 있어 주길 바랬다. 그녀가 궁금해 한 비밀 끝에 무엇이 있는지, 그 비밀로 인해 이글이 얼마나 슬퍼하는지, 이 아이는 몰라주길 바랬다.


  "이글."


  이글이 껴안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은 다이무스와 벨져가 창백한 얼굴로 다가왔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지켜주지 못했던 무고한, 그 이름처럼 순수한 백합 같은 아이. 


  그 아이가 지금 이글의 품에서 붉게 물든 채로 잠들어 있었다.


  어째서 그녀가 살아있는 것인지, 피를 흘리며 이글의 품에 안겨있는 것인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단 하나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결국 시간이 지나고 여동생이 그들의 앞에 다시 나타났음에도 그들은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것을.


  눈물 ♡은 얼굴로 형들을 올려다본 이글이 울먹이며 말했다.


  "형,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어. 누나가 내 곁으로 돌아오길 그토록 바랬는데도, 그 누나가 내 옆으로 돌아와 줬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어."


  누이를 품에 안고 서글피 울부짖는 이글을 보며 결국 그들은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그렇게 이글은 레오노르의 본대가 도착할 때까지 한참을, 부러진 레이피어 앞에서 피에 물든 붉은 백합을 품에 안은 채 한참을 울부짖었다.



  *

  그렇게 안타리우스 토벌 작전이 막을 내렸다.


  스페인 황실 드라군이 전쟁에 참여했음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함인지 영국 정부는 전쟁의 복구에 열을 올렸고, 회사와 연합은 그 틈을 타 안타리우스가 남기고 떠난 자료를 독차지했다. 


  이번 전쟁의 최고 공로자인 카인과 클리브는 명왕이 약속했던 포상을 받아갔다. 


  카인은 회사가 가지고 있는 강각의 레나에, 이사벨에 대한 정보를 받아갔고 차후 회사가 그녀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될 경우 아무런 대가 없이 제공할 것을 약속받았다. 명왕이 카인에게 더 필요한 것이 없냐 묻자 그는 명왕에게 푸른 나비에 대한 정보가 들어오면 알려달라 요구했다.


  클리브는 사회에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영향력 있는 기밀 정보를 받아갔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 정부와 미국의 회사 더 다이아몬드 사이에 군 관련 커넥션이 있다는 정보가 이클립스 단독 보도로 발표되었다.


  이 전쟁에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이글 홀든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회사로 나타나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전쟁이 끝난 직후 연합에서 공간이동 능력자 한 명을 데리고 어딘가로 사라졌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이틀 후. 쌀쌀한 날씨가 물러가고 겨울이 제 주제도 모르고 성큼 찾아들었다. 


  익숙했던, 한동안 찾아오지 않아 자신의 기억과 많이 바뀐 이 거리도 새하얀 눈에 뒤덮여 하늘과 땅이 구분이 가지 않는 극지의 땅이 되었다. 


  사박사박 눈 밟는 소리가 발 밑에서 조용히 울려 퍼졌다. 살갗을 에는 삭풍에 이글이 저도 모르게 옷깃을 여몄다. 이제는 잠들어 깨어나지 않는 누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가는 눈 덮인 길을 바라보며 이글이 하얗게 얼어붙은 숨결을 내뱉었다. 


  "고맙다, 사라. 여기까지 데려다주느라 고생 많았다."


  이글이 붉은 머리의 작은 소녀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는 집까지 오르는 새하얀 눈길을 걸어 나갔다. 그렇게 떠나가는 이글을 보며 붉은 머리의 작은 소녀가 불안한 듯 그를 불렀다.


  "이글 오빠."


  떨리는 사라의 목소리에 이글이 멈춰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글을 바라보는 사라의 두 눈동자에 불안함이 깃들어 있었다.


  "다시... 돌아오실 거죠?"


  사라의 말에 살짝 웃어 보인 이글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평소의 가볍고 해맑은 그의 웃음과 다르게 쓸쓸함이 깃들어 있는 웃음이었다. 여기서 그를 보내면 안 될 것 같다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결국 사라가 할 수 있는 것은 떠나는 이글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온 그의 집을 보며 이글이 참아왔던 한숨을 내뱉었다. 뜨거운 한숨이 차가운 바람과 섞여 새하얀 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누이가 꽃처럼 스러진 지 10년.


  스승에게 검을 배우기 위해 집을 나선지 10년. 


  어느새 자신의 생각보다 작아진 정원의 장식물도, 오랜만에 돌아온 그를 바라보며 놀라는 사용인들도, 모두 기억 속 자신의 집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의 기억과 달라지지 않은 곳은 누이와 함께 찾아갔던 새하얀 백합꽃 정원뿐이었다. 그 백합꽃 정원이 무사한 것을 보며 누이와 함께 이 정원으로 찾아왔던 추억을, 어머니가 아끼는 정원사가 아직 건강하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잠든 누이를 품에 안고 발걸음을 재촉한 이글이 도착한 곳은 고풍스러운 조각품이 입구에 장식된 홀든 가문 사람들의 묘지였다. 


  비록 이곳에서 아무런 행복을 느끼지 못했을 지라도, 검게 물든 머리를 하얗게 물들일 정도로 홀든 가문과의 유대를 원했던 당신을 위해.


  편히 잠드는 것은 홀든 가의 영면의 정원에서. 


  그렇게 영면의 정원을 오르려는 이글을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막아섰다. 자신의 기억보다 더 주름이 많아진, 자신과 자신의 누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장본인. 홀든 가문의 가주. 자신의 아버지 테오도어 홀든이었다.


  "소식도 빠르시군. 내가 온다는 것을 미리 들었나? 그렇다면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알고 있을 텐데도 내 앞을 막는 건가?"


  이글의 말에 테오도어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홀든 가문의 가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일 뿐이다."


  "가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당신의 딸을 마지막까지 내치는 것이 가주로서 해야 할 일이라는 건가?!"


  결국 이렇게 된 것에 이글이 혀를 찼다. 


  그래. 당신은 마지막까지 그런 사람인 건가. 


  이글이 왼손으로 그의 누이를 안아 든 채 서늘한 표정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칠흑은 태도는 마치 이것이 마지막 싸움이라고 외치는 듯 찬란하게 빛났다. 


  새하얀 설원 위에서 백발의 남자 둘이 서로를 베기 위해 검을 들어 올리는 순간 그들의 사이에서 푸른빛이 새어나오며 허공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크게 열린 게이트 너머에서 나타난 것은 익숙한 얼굴의 남자, 릭과 그의 두 형들이었다.


  "사용인들에게 언질을 해두길 잘했군. 설마 했지만 정말로 아무 말도 없이 찾아오다니."


  "벨져 형? 다이무스 형도..."


  "잡담은 나중에. 지금은 더 중요한 사람이 찾아왔으니."


  "이거, 오늘은 그리운 쌍판들이 몰려있구만. 가족 모임이라도 하려는 건가?"


  익숙하고 그리운 목소리와 함께 백말의 여인이 게이트에서 걸어 나왔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였나. 그 미모도, 그 기백도, 그 자유로운 영혼도. 언제나 자신이 기억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사부."


  "지금은 고모다. 집에서 만났으면 고모라고 불러야지."


  오랜만의 재회에 기분이 좋은 것인지 평소의 사자 같이 위협적인 웃음이 아닌 정말로 즐거운 웃음이었다. 어느새 자신보다 훌쩍 커버린 이글을 자랑스레 올려다 보던 카렌이 고개를 돌려 테오도어를 바라보았다.


  "이거,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구만. 오라비. 회포라도 풀게 술이라도 한 잔 걸칠까?"


  카렌의 말에 테오도어가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쓸데없는 일이다, 카렌. 무슨 일로 찾아온 거냐."


  테오도어의 말에 카렌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이거, 재미없는 성격은 여전하구만. 새언니가 고생 좀 하시겠어."


  카렌이 즐거운 얼굴로 집과 정원을 바라보았다. 창고에 넣어두고 잊어버렸던 보물을 오랜만에 찾은 듯한 얼굴이었다. 자신의 집을 바라보는 표정과는 한없이 거리가 멀었다.


  "우리 오라비가 또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는 것 같아서. 영면의 정원에 잠드는 것은 홀든 가문의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야. 아무리 가주라도 그 권리를 빼앗을 수는 없어. 그 정도쯤은 알고 있을 텐데?"


  "홀든으로 인정받기 위한 기본적인 의무는 가문의 검술을 배우는 것이다. 홀든 가문으로 인정받은 내 자식은 셋 뿐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영면의 정원에서 잠들 권리 따위는 없다."


  "가장 기본적인 검술을 배울 권리부터 박탈하신 양반이 뭐가 그리 잘나셨는지. 뭐,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하지만 여기 영면의 정원에 잠들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말하며 카렌 자신을 가리키며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테오도어가 싫어하는 짓을 하는 것이 정말로 즐거워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 카타리나 홀든은 영면의 정원에서 잠들 권리를 릴리아 홀든에게 양도한다. 이거면 됐지?"


  카렌의 말에 테오도어가 얼굴을 구기며 으르렁거렸다.


  "그렇게 되면 너는 정말로 홀든 가문의 사람이 아니게 된다. 정말로 그걸 바라는 거냐?"


  테오도어의 말에 릴리가 웃으며 말했다.


  "상관없어. 이번 일이 아니었으면 내가 여기를 쳐다보기라도 했을 것 같아? 이딴 숨 막히는 가문 따위 내 발로 즐겁게 나가주지."


  카렌의 말에 잠시 칼을 움켜쥔 테오도어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뽑아 든 칼을 칼집에 꽂아 넣은 테오도어가 이글과 카렌을 향해 말했다.


  "멋대로 해라."


  그 말만을 남기고 돌아서는 테오도어의 뒷모습을 보며 깔깔거리며 웃던 카렌이 이글을 보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깐 못 본 사이에 정말 어른이 되어버렸구나. 이제는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힘들겠는걸."


  그 말에 이글이 떨리는 목소리로 카렌에게 말했다."


  "사부... 나는..."


  이글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카렌이 웃으며 이글에게 말했다.


  "그런 표정 하지 마. 어디서든 경박하고 자유롭게. 그게 너와 나의 약속이잖아?"


  그렇게 호쾌하게 웃은 카렌이 릭의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다.


  떠나간 카렌을 본 이글이 릴리를 고쳐 안고 영면의 정원을 향해 걸어 나갔다.


  한참을 걸어 백합꽃 정원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선 이글이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한겨울에도 찬란하게 핀 백합꽃이 새하얀 눈과 뒤섞여 아름답게 흔들렸다.


  언제나 아름다운 저 정원처럼 나의 누이도 아름다운 꿈만 꾸기를.


  그렇게 이글은 릴리와 함께 영면의 정원 위에 서서 흔들리는 백합꽃의 정원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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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예~예~ 모든 것은 신의 뜻... 불허합니다. 의외군요. 나 원 참... 시작할까요? 강화인간!!
안녕? OK 궁금하네요. 역시! 재미있네. 깜짝이야! 아~니? ...
웃음 두려움 만족 놀람 동의 분노 좌절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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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궁금하죠? 축하드립니다. 너에게는 뭐든 주고 싶어. 칭찬 드립니다. 대-단하십니다. 내겐 보여, 너의 죽음 당신을 믿습니다. 이런 미래는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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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정색) 축하드립니다. 칭찬해 드립니다. 놀랍군요. 매우 화가 나네요. 큰 충격입니다. 놀랍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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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못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매우 화가 나는군요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좌절상태입니다 감탄했습니다 칭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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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빈 미이라와 고스트 제피 할로윈에는 카를로스호박 히카르도의 사탕 탄야의 마녀 분장..? 잭-슈타인 강시 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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