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phers

  • 검과 탄환과 기억 #14
  • 139

    1

심심한폐인 [55급]

2022-10-16 22:01:33

1525203734756.jpg



  *

  통나무 집의 문이 닫히고 세상이 새카맣게 물들었다. 재를 뿌린 듯 무기질적인 하늘도, 차가운 색의 비도, 음울한 빛의 풀잎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암흑의 공간에서 클리브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이거… 너무 많이 알아버린 것 같은데.'


  릴리 홀든과 카렌 홀든. 홀든 가에 관련된 어떤 정보에서도 나오지 않는 이름.


  단지 가주의 욕심 만으로 두 명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워내는 것인가. 이렇게 철저히, 이다지도 무자비하게.


   '이런 내용, 알지 못하는 편이 나았어.'


  이글이 자네트에게 미묘한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누군가는 이글이 자네트에게 호감이 있어 그렇다고 말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글은 항상 부정해 왔다.


  그야 그렇겠지. 자신의 누이를 닮은 자가, 자신의 누이가 가지지 못했던 것을 모두 가지고 나타났으니. 그녀의 탓은 아니지만 이글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불쾌했을까.


  [골치 아픈 일은 그냥 묻어두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텐데.]


  자네트를 향한 이글의 말.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그 말에 어떤 뜻이 담겨 있을까.


  본인이 해결할 수 없었던 일 앞에서 무릎 꿇고 자신의 슬픔을 묻어야만 했던, 같은 처지의 사람으로서 하는 충고라면? 


  아니, 그럴 리 없다. 이글의 누이의 일을 그렇게 쉽게 묻을 수 있었다면 지금까지 그 아픔을 품에 안고 살아오지 않았겠지. 저 말은 그러지 못했던 자신을 비웃는 소리이리라. 


  언뜻 가벼워 보였던 그의 언동은 과거를 알고 나니 전혀 다른 의미가 되었다. 한없이 자유로워 보였던 독수리의 내면에는 과거의 족쇄에 얽매여 피를 흘리는 소년의 모습이 있었다.


  '헬리오스의 파티 날은… 릴리 홀든의 기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지.'


  이글의 자제심도 굉장하군. 나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을 텐데. 


  천하의 이글이 지하연합을 위해 그렇게까지 인내하다니. 생각보다 지하연합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어쩌면 지하 연합은 홀든 가문이 그에게 되어주지 못했던 가족이 되어주었던 것일지도 모르지. 지하 연합은 릴리 홀든이 사라진 이후 처음으로 그를 필요로 해준 곳일 테니까. 


  어쨌든 앨리셔에게는 절대 알려주지 못하겠군. 앨리셔와의 계약은 파기다. 이런 내용, 그녀가 알지 못하는 편이 나아. 누구도 치유해 주지 못할 가슴 아픈 과거는 묻어두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이다. 이글에게도, 앨리셔에게도.


  '문제는 그게 아니야.'


  클리브가 마른침을 삼켰다.


  한나를 만났을 때부터 클리브의 발목을 붙잡은 상상.


  끝없이 눈을 돌려왔던 잔인한 추측.


  그 잔혹한 추측이 이글의 과거를 먹고 진실이라는 괴물로 변했다.


  모든 것이 앞뒤가 맞는다. 모순이 없을 정도로. 


  하지만 클리브는 차마 그 진실을 볼 용기가 없었다.


  "클리브."


  생각에 잠긴 클리브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퍼뜩 놀라 뒤를 돌아본다.


  "…이글."


  이글을 본 클리브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폭주한 능력으로 이글의 기억 속으로 떨어졌으니 거기에 이글도 있는 것이 당연한데.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금세 감춘 클리브가 아무렇지 않은 듯 이글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내 사이코메트리가 폭주한 모양이야. 증폭 능력자라니 생각도 못했어. 어쨌든 여기서 나가야…"


  "다이무스 형이 내게 그랬지. 앨리셔가 내 뒤를 캐고 다닌다고."


  이글의 목소리는 클리브가 귀를 의심할 정도로 무미건조했다. 


  이글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클리브를 바라보았다. 풀어헤쳐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이글의 슬프도록 공허한 눈동자에 클리브가 숨을 삼켰다. 


  그 어떤 절망이, 슬픔이 그의 눈보다 더 깊을 수 있으랴. 이글의 눈동자를 본 클리브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가 생각했던 최악의 추측이 사실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글도 그와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을.


  "앨리셔와 만난 너는 그 아이와 함께 나를 조사했겠지. 너도 헬리오스의 파티에 있었고, 나와 자네트를 보고 호기심을 가졌을 테니."


  이글이 클리브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끝을 모를 분노와 슬픔이 묻어 나왔다. 


  "똑똑한 너라면 이 기억을 보기 전부터 어느 정도 진실에 도달했을 거다! 확신도 있었을 거야! 그렇다면 내게 먼저 말했어야지! 어째서 내게 말하지 않은 거냐!"


  서슬 퍼런 목소리가, 그럼에도 조금씩 떨리는 목소리가, 작아 보이는 이글의 등이 서글펐다.


  그의 말대로 클리브가 도달한 진실을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사람은 이글이었다. 하지만 클리브는 이글에게 진실을 전할 수 없었다. 그 진실을 이글이 들었을 때 그가 받을 상처의 크기를, 깊이를, 그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그것이 무서워 클리브는 이글에게 진실을 전하지 못했다.


  "미안해. 내가 겁쟁이라서, 진실을 전할 용기가 없어서 차마 말하지 못했어."


  그 따듯하고도 차가운 한마디. 그를 걱정해주는 클리브의 따듯한 마음씨가, 그럼에도 진실을 인정하는 차가운 말에 이글이 무너졌다. 


  무너진 이글이 듣기만 해도 가슴이 찢기는 고통이 느껴지는 울음을 토해냈다. 여기서 그가 꺾인다 하여도 그 누구도 그를 비난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짊어진 슬픔은, 마주해야 할 진실은 그런 것이니까. 누구를 향하는지 모를 그의 슬픔은, 듣는 이 없는 그의 울부짖음은 그렇게 암흑 속에서 한참 동안 울려 퍼졌다.



  *

  "이제 어떡할 거야?"


  "…베어야지. 내 앞을 가로막는다면."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꺾일 듯한 슬픔을 겪고도 이글은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에. 그가 마무리 지어야 하는 일이기에. 다시 일어선다. 


  암흑의 공간이 그의 머리칼처럼 새하얗게 녹아내렸다. 물기 어린 그의 두 눈은 아직도 슬픔에 잠겨있지만 그의 기백은 그가 멈추지 않을 거라 말하고 있었다. 


  차가운 새벽의 공기가 클리브의 몸을 휘감았다. 푸른 달빛이 쏟아지는 골목 속에서 눈을 뜬 클리브가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에 몸서리치며 고개를 들었다. 일단 화이트채플의 거리일 텐데. 이글은 어디 있는 거지?


  "끄으으… 여기는 또 어디야?"


  칠흑의 남자에게 습격 당해 화이트채플의 거리에 쓰러져 있어야 할 텐데. 클리브가 있는 곳은 어딘지 모를 좁은 골목이었다. 카인이 자신을 숨기려고 골목까지 부축한 걸까? 그러기에는 카인도 이글도 보이지 않는다. 왜 나 혼자 여기 있는 거지?


  그래도 어디 특별히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으니 다행이군.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던 클리브가 바닥에 놓인 무언가를 발견했다.


  "저게 뭐야."


  그림자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대충 보기에는 여성의…


  잘린 팔이었다.


  "우와아악!"


  이게 뭐야, 잘린 팔이라니! 눈을 뜨자마자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가장 먼저 보는 게 잘린 팔이라고! 역시 잭 더 리퍼의 거리, 아주 막장이구만! 자비가 없어! 


  공황상태에 빠져 날뛰던 클리브가 잘린 팔을 보고 위화감을 느꼈다. 잘린 팔이 지나치게 눈에 익었다. 아니 세상에, 드디어 미쳐버린 건가. 여자의 잘린 팔이 익숙해 보인다니. 아니 그런데 진짜 익숙한데.


  "아, 그 기계인형 아가씨 팔인가."


  확실히 이름이… 트릭시 폭스. 그래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멜빈 리히터의 조부 아돌프 빈다우스가 만든 안드로이드. 저번에도 인터뷰를 하러 갔다가 습격당했지. 그런데 이게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흐음… 기억이 남아있을까."


  트릭시의 팔을 집어 든 클리브가 담긴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기억 속에서 필요한 기억을 잡아내던 클리브가 생각지 못한 기억을 발견하고 웃음 지었다.


  "월척이다."



  *

  눈을 찌르는 은은한 달빛에 이글이 눈을 떴다.


  그래, 과거의 기억을 보았지. 


  마지막으로 홀든 가의 저택을 떠올렸던 것이 언제였던가. 스승의 집에, 카렌 홀든의 집에 들어간 이후 홀든 가의 저택을 떠올리는 일을 피하려 했다. 언제나 슬픔에 잠겨 있던 누이를 그리워하며 누이의 이름을 가진 꽃을 길렀다. 


  해맑게 웃는 누이를 떠올린 이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아, 나는 아직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이글이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쳤다. 그런 이글의 모습에 카인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이글, 자네 우는 건가?"


  "아냐, 꼰대. 하품해서 그런 거야."


  이글이 천천히 검집을 움켜쥐었다. 이제는 멈출 수 없어.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순간 카인의 품에서 무전기가 작게 울렸다.


  "…인. 카인. 들립니까?"


  "들리네. 자네 지금 어디 있는 건가?"


  "합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대박이예요. 안타리우스의 거점이 어디인지 알아냈습니다."


  카인이 이글이 놀란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안타리우스의 기지가 어디 있는지 알아냈다고? 카인에게서 무전기를 받아 든 이글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야?"


  "왜인지 모르겠는데 눈을 뜨고 보니까 트릭시라는 안드로이드 여자의 팔이 있었어. 혹시나 싶어 기억을 읽었는데 안타리우스의 거점에 대한 기억이 있었어."


  과연. 트릭시 폭스의 팔인가. 안타리우스에 소속되어있는 아돌프 박사를 호위하는 트릭시 폭스의 팔이라면 그런 기억이 있어도 이상하진 않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트릭시의 행보다. 아돌프 박사가 쓰러지고 트릭시를 맡은 것은 그의 외손자 멜빈 리히터일 것이다. 클리브에게 트릭시를 보낸 것은 멜빈이겠지.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고민하는 카인의 손에서 무전기를 낚아챈 이글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 꼰대. 하지만 이게 비록 함정이더라도 우리는 물러설 수 없어. 시간이 부족하니까. 그래서 클리브, 안타리우스의 기지는 어디에 있지?"


  "듣고 놀라지나 마. 여기서 30분 거리에 있는 템즈강 너머의 폐공장이야. 런던 한가운데라고."



  *

  "그들이 생각보다 잘해주었군."


  안타리우스의 거점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명왕이 파이프를 태웠다. 그의 숨결을 따라 파이프 안의 연초가 새하얗게 타들어갔다.


  "한 달도 안 되어 안타리우스의 거점을 찾아내다니, 기대 이상의 실적이군요."


  못마땅하다는 타라의 말에 명왕이 짓궂게 물었다.


  "굉장히 의외라는 표정이군?"


  명왕의 말에 머뭇거리던 타라가 진심을 털어놓았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전장의 이글 홀든과 카인 스타이거는 굉장히 위협적이지만, 이런 일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클리브 스테플은 솔직히 민간인이나 다름없잖습니까. 물론 뛰어난 이들이지만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만에 회사와 연합도 못한 일을 해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렇게 결과를 들고 왔지. 이렇게나 훌륭히 말일세."


  "회장님께서는 그들의 무엇을 보고 이 일을 맡기셨습니까?"


  "연합의 젊은 녀석은 세 사람의 능력을 보고 생각한 것 같지만 나는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네. 이 늙은이는 그 젊은 녀석처럼 머리가 뛰어난 것이 아니니. 그냥 늙은이의 감이랄까."


  깊은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 모습에 타라가 눈을 찌푸렸지만 명왕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파이프를 태웠다. 남은 연초가 모두 새하얗게 타들고 나서야 파이프를 내려놓은 명왕이 말했다.


  "지하연합의 앤지 헌트 양을 불러주게. 그녀를 만나야겠어."



  *

  안타리우스의 거점을 찾아냈다는 소식을 들은 앤지는 명왕과 함께 거점을 습격하기 위한 팀을 꾸렸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능력자를 동원하여 구성한 능력자 팀은 군대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명왕의 서재에서 창 밖에 모인 능력자들을 본 앤지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앤지. 그대가 약한 소리를 하면 안 되네. 한 조직의 리더인 그대가 흔들리면 모두가 흔들리는 법이야."


  앤지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창 밖을 바라보았다. 가끔 생각했다. 자신에게 지하연합을 이끌 능력이 있는 것일까. 자신이 지하연합의 수장에 오른 것은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 흑염 하이드 덕분이었다. 주어진 것을 손에 쥐기만 할 뿐인 자신이 이렇게 많은 능력자를 사지로 몰아넣어도 되는 것일까.


  "수많은 자들의 피가 흐를 겁니다. 그 피가 흐른 이유 중 하나가 저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죠."


  "그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아네. 자신에게 한 조직을 이끌 자격이 있나 싶겠지. 자네에게는 그럴 자격이 충분하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남긴 지하연합을 이끌 마음을 먹은 것은 존경할 만한 일이야."


  명왕이 커튼을 걷었다. 수많은 능력자들이 헬리오스의 앞에 모여 있었다.


  "저들을 보게. 저들이 누구의 이름을 보고 모여들었다 생각하나? 흑염 하이드의 이름인가? 아닐세. 이 늙은이의 이름과 앤지, 자네의 이름일세. 자신이 그 위에 설 자격이 있나 의심하지 말게. 그것은 자네를 위해 모여든 사람들에 대한 모독일세."


  명왕이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노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기백이 그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그것은 의심할 겨를 없이 능력자의 정상에 선 자의 모습이었다.


  "자, 가세나. 출전의 시간일세."



  *

  도시가 침묵에 잠긴 어두운 밤.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폐공장의 문 앞에 서서 몸을 풀었다. 오른손의 거대한 건틀릿이 그를 따라 철컥거리며 움직였다. 


  남자가 거대한 철문을 향해 주먹을 겨누자 온 몸의 근육이 팽팽히 부풀어 올랐다. 포탄처럼 쏘아진 남자의 주먹이 철문을 후려갈기자 귀를 찢을 듯한 폭음이 새벽의 침묵을 깨트렸다. 박살난 문 너머로 수많은 강화 인간을 본 도일이 손가락을 꺾으며 허허 웃었다.


  "지대로 찾아온 모양이구마."


  도일의 말과 함께 강철의 군인들이 공장 안으로 진입했다. 붉은 경고등과 함께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고 총을 든 검은 옷의 남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 드라군 앞으로! 총기를 막아라!"


  우렁찬 여성의 목소리와 함께 갑옷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나타나 방패를 세웠다. 방패를 때리는 총탄이 멈춘 짧은 사이 커다란 창이 방패 사이로 날아가 검은 옷을 입은 남자 하나를 꿰뚫고 벽에 박혔다. 벽에 박혀 우산처럼 펼쳐진 창이 폭발하며 수많은 강철 조각들이 날아가 검은 옷의 남자들을 꿰뚫었다.


  최전방에 서서 창과 방패를 든 여자가 그 모습을 보고 작게 혀를 찼다.


  "여전히 기묘한 짓거리만 골라서 하는구나."


  "누님이 신경 쓸 일이 아니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테니."


  강철 파편에 휩쓸려나간 바리케이드 사이에서 강철의 대포 같은 것이 레오노르의 눈에 띄었다.


  '박격포로군.'


  귀찮은 무기가 튀어나왔군. 레오노르가 박격포를 향해 창을 치켜드는 순간 새하얀 강철의 섬광이 박격포를 향해 떨어졌다. 폭음과 함께 대지를 부수는 충격이 공장을 휩쓸고 짙은 모래 먼지가 피어올랐다.


  카를로스의 손짓에 바람이 모래 구름을 몰아내고 그 속에서 은빛 갑주의 검룡, 로라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창을 휘둘러 남은 모래 구름을 걷어낸 로라스가 어둠을 틈타 달려드는 강화 인간의 가슴을 창으로 꿰뚫었다.


  가슴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강화 인간 뒤로 수많은 강화 인간이 달려드는 모습을 본 레오노르가 창을 들고 소리쳤다.


  "돌격하라!"


  레오노르의 외침에 휴톤, 레베카, 도일이 방패를 든 드라군 뒤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뛰쳐나왔다.


  "남은 놈들은 주먹깨나 쓰는 놈들이라는 소리지. 조금 놀아달라고!"


  뻐억! 하는 강렬한 소리가 공장을 가득 채웠다. 이름 모를 남자가 휴톤의 주먹에 맞아 얼굴뼈가 박살 나며 벽에 처박혔다. 지하 연합의 세 돌격대장의 폭풍처럼 몰아치는 주먹을 시작으로 능력자와 강화 인간들이 순식간에 뒤엉켰다.


  "침입조의 진입 경로 확보를 최우선으로 하도록!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능력자들은 강화 인간 부대 후미를 폭격한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염의 벽이 강화 인간을 휩쓸었다. 불꽃은 마치 굶주린 짐승처럼 강화 인간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악마의 혀처럼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에 레오노르가 소리쳤다.


  "불꽃에 휩쓸리지 마라! 적들이 움츠러든 틈을 타 침입조의 진입 경로를 확보한다!"


  전투가 격해지려는 찰나 강화 인간들이 커다란 통을 들고 나이오비의 불꽃으로 달려들었다. 불꽃에 몸을 던진 강화 인간이 비명도 지르지 않고 타들어가고, 그들이 등에 멘 기름과 화약이 순식간에 폭발하며 나이오비의 화염을 키워나갔다.


  "이 쪽의 불꽃으로 공멸할 셈인가!"


  순식간에 커져가는 불꽃을 본 레오노르가 이를 악물었다. 공장 안으로 진입해야 하는데 불꽃이 이렇게 타올라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세게 나오는구만."


  레오노르 옆에서 상황을 구경하던 이글이 빠르게 옆을 달려가는 카를로스의 뒷목을 붙잡았다.


  "우왁! 뭐야!"


  "이봐. 꼬마. 그 잘난 바람으로 저 불꽃 좀 걷어 봐."


  이글의 말에 카를로스가 울컥 화를 내며 소리쳤다.


  "바람으로 바닥의 불꽃을 다 모을 수는 없다고! 어차피 그 불꽃에 다 타 죽을 텐데!"


  "그건 네가 알 바 아니야. 잔말 말고 특대 사이즈 회오리를 만들라고."


  이글의 말에 카를로스가 바람으로 화염을 휩쓸어 커다란 화염의 기둥을 만들었다. 하늘마저 불살라 버릴 듯 솟구치는 화염의 기둥에 바닥을 불태우는 불꽃이 사그라드는 것을 본 이글이 토마스를 향해 소리쳤다.


  "얼음!"


  "알겠습니다!"


  토마스가 팔을 휘두르고 차가운 얼음이 바닥을 뒤덮었다. 순식간에 공장 입구까지 뚫린 길을 본 레오노르가 소리쳤다.


  "진입로 확보! 침입조 출동!"


  레오노르의 명령이 떨어지자 열 명의 능력자들이 얼음의 달려 공장으로 향했다.



  *

  안타리우스 거점 제압 작전 며칠 전. 요기 라즈와 토니, 앤지가 모여 전쟁에 참여할 능력자 목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보통 이런 일에는 회사의 사람도 참여해야 하지만.


  "연합 측에서 1차적으로 능력자들을 선발해주면 2차적으로 판단하겠다니, 거만한 소리군요."


  "어쩔 수 없죠. 회사는 지금 여러 조직의 대표자를 만나느라 바쁠 테니. 그래도 능력자 배분을 맡긴다는 것은 우리를 상당히 신뢰한다는 소리가 아닐까요?"


  "허울뿐인 소리입니다. 그 런것보다는 인력이 하나라도 더 필요해요. 레오노르 드렉슬러의 참전은 결정되었습니까?"


  "방금 막 결정되었다고 해요. 본인의 휴가를 마음대로 빼앗는다고 항의가 있었던 듯하지만요."


  "그녀는 이 작전의 중요한 인재입니다. 그녀가 참전한다면 스페인 황실의 드라군 일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녀의 지휘 능력도 높게 사고 있습니다."


  토니가 눈으로 쫓기 힘든 속도로 손을 움직이며 능력자들의 서류를 정리해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타리우스 토벌을 위한 능력자들의 리스트가 모습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섬멸조와 추적조, 침입조로 나눴습니다. 섬멸조는 강화인간을 섬멸, 추적조는 잔당을 처리하는 역할입니다. 침입조는 공장 부지로 들어가 옥사나 야고비치를 추적하고 단서를 모으는 역할입니다. 섬멸조는 레오노르를 리더로, 추적조는 카인을 리더로 편성이 끝났습니다만 문제는…"


  문제는 침입조다. 섬멸조와 추적조에 많은 인원이 들어가게 될 테니 섬멸조에 그렇게 많은 인원을 할당할 수 없다. 게다가 침입조는 강화 인간과 전투, 단서 획득, 옥사나 야고비치를 비롯한 안타리우스의 간부들을 생포하는 역할. 많은 역할이 요구되는 위치다.


  "한 명 한 명이 일기당천인 강력한 능력자. 그것만 생각한다면 꽤 있겠지만요."


  "그들 중 대부분은 섬멸조에 들어가 있습니다. 여러 명을 한 번에 상대할 수 있는 능력자는 대부분 화염이나 얼음 같은 원소 능력자일 확률이 높으니까요. 대규모 난전에 능한 그들을 섬멸조에서 빼내는 것은 타격이 큽니다."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침입조에 배정될 인물은 열 명. 현재로서 정해진 자들은 다이무스 홀든, 벨져 홀든, 티엔 정, 릭 톰슨, 루이스, 잉게보르트 홀든, 알베르토 로라스, 이나바 호타루, 자네트, 마틴 챌피. 실내에서의 싸움에 익숙하고 돌발상황에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자들과 그들을 효율적으로 보조할 수 있는 자들.


  "이 인원으로 충분한가요?"


  "이 정도면 현재 구성할 수 있는 조합 중에서는 가장 이상적입니다. 회사 측에서 순순히 받아들여 줄지 모르겠지만요."


  "어이. 그 인원 구성에서 나는 어느 쪽에 들어가 있지?"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앤지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꽤나 놀랐는지 그녀의 왼손에 검은 화염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회의실의 벽에 기댄 이글을 본 앤지가 화염을 지웠다. 도대체 언제 자신들의 뒤까지 다가온 것일까. 심지어 문을 여는 기척조차 나지 않았다. 그럴 리 없겠지만 만일 그가 자신들을 베려고 했다면 대응할 수 있었을까?


  "무서운데. 아무리 나라도 네 불꽃을 맞고 멀쩡할 자신은 없다고."


  순간 앤지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순간 이글의 목소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공허했다. 언제나 쾌활함을 잃지 않는 남자였는데. 도대체 안타리우스를 추격하는 도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글… 너 괜찮아?"


  "글쎄… 잘 모르겠는데. 토니, 나는 어느 팀이지?"


  토니에게도 지금 이글의 모습은 의외였던 것일까. 토니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글… 너는 섬멸조 쪽이야. 난전에 강한 능력자를 꼽으라 하면 네 이름이 빠질 수 없으니."


  "미안하지만 나는 섬멸조 쪽에서 빼줘야겠어. 잉게보르트와 로라스의 이름을 빼고 나와 클리브를 넣어 줬으면 좋겠는데."


  "클리브 스테플을? 그는 추적조야. 전투력도 침입조에 들어갈 만큼 강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클리브에게 다른 인격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그 놈이라면 전투력도 은밀 행동도 충분할 텐데"


  그 말에 토니가 눈을 찌푸렸다. 확실히 클리브의 사이코메트리 능력은 매력적이고 잭 더 리퍼라면 전투력도 충분하다. 


  하지만 클리브를 침입조에 넣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정보가 너무 적고, 그 인격이 타인과 원활히 협력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너무 위험해. 클리브의 전투 능력은 그리 높지 못하고 또 다른 인격은 통제할 수 없으니까." 


  "통제불능이라는 말에 동감하지만, 부탁하지."


  부탁 한 마디 남긴 이글이 등을 돌렸다. 앤지가 방을 나서려는 이글을 다급하게 붙잡았다. 지금 행동은 평소의 이글 답지 않다. 그 이유를 반드시 알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글. 왜 침입조로 가려는 거야? 앨리셔를 구하려고?"


  "앨리셔 때문 만은 아니야. 확인해야 할 것이 있어. 그리고 내 생각이 맞다면 그건 내가 마무리 지어야 하는 일이야.


  그렇게 말한 이글이 방을 나섰다. 달빛이 창문을 타고 넘어와 어두운 복도를 푸르게 물들였다. 푸른 달이다. 그가 어릴 적 홀든 가문의 백합꽃 정원에서 보았던 것 처럼. 자신은 아직도 그 시절의 어린아이처럼 약한 채일까.


  "누나…"

0
신고하기
댓글 1
댓글은 최대 255자까지, 스티커 10개까지 등록할 수 있습니다
스티커 등록 n
등록0/256
닫기
Hi~ OK Oh! 냠~ Love U~ 궁금해! YES! 히힛~
안녕하십니까? 예~예~ 모든 것은 신의 뜻... 불허합니다. 의외군요. 나 원 참... 시작할까요? 강화인간!!
안녕? OK 궁금하네요. 역시! 재미있네. 깜짝이야! 아~니? ...
웃음 두려움 만족 놀람 동의 분노 좌절 인사
안녕하세요? 넵!! 미안해요!! 앗! 좋아요! 엣헴. 추천! ㅠㅠ
안녕하심까~ 피- 좋다! 못마땅해... 곱다~ 덤비라! 후우- 아슴찮다..
허~허~ 아, 아니... 헐! 흠흠... 끄응... 시, 식은땀이.. 엥? 후어어..
후훗~ Trick or Treat! 사.탕.내.놔. 소녀... 억울하옵니다... 사, 사탕 주세요! 해피... 핼러윈... 날 위해 사탕 정돈 줘야지? 목표? 당연히 사탕이지!
안녕~ ?? 피- 어머! 흐어 오오- 안돼! 랄랄라
우쭈쭈 하하 하? ?? 이거 참... -_- 안녕하십니까 안됩니다
ㅇㅅㅇ 으르릉... 나, 나! (정색) 깔깔 아니야!! 뿌잉 메~
안녕하십니까! 흐응? 흐으으응?! 척! 칫.. 좋-았어! 엥? 후에엥-!!
칫 엄숙하고 근엄하고 진지하다 믿습니다 내 안의 ...가 깨어난다 영업 중 할많하않 충격! 공포! 둠칫 둠칫 두둠칫
파이팅!! 고마워~ 졌어... 히힣 극대노 미안! 거울 앞에서 자의식 과잉된 십대 라이언
저는 지금 극공입니다. 훠이훠이 하.하.하. 매우 화가 납니다. 총기 손질중입니다. 저와 한 판 붙어보시겠습니까? 당신에 대한 정확한 진단 안돼!
뭐가 궁금하죠? 축하드립니다. 너에게는 뭐든 주고 싶어. 칭찬 드립니다. 대-단하십니다. 내겐 보여, 너의 죽음 당신을 믿습니다. 이런 미래는 싫어!
감사합니다. 기쁩니다. 축하합니다. 칭찬해 드리죠. 놀랍군요. 심기가 불편합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우 화가 나는군요.
짝.짝.짝.짝 고마워... 멋있어... 지금 이게 뭐하시는 거죠? 대다나다 히에엑... 헉! 깜짝 놀랐습니다. 그만해!!!!!
옳소! 감탄했습니다. 흐음 후회할거요! 감사합니다. 놀랐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정색) 축하드립니다. 칭찬해 드립니다. 놀랍군요. 매우 화가 나네요. 큰 충격입니다. 놀랍군요.
이럴수가... 감히! 네가! 아니?! 장하군! 응?! 좋다! 그건 아니다! 고맙다!
감사합니다 잘 못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매우 화가 나는군요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좌절상태입니다 감탄했습니다 칭찬합니다
멋지군! 좋았어! 하하! 축하하오! 아아.. 5분전인데. 커피한잔 하겠소?
승리의 정유년! 정의로운 새해복! 극.한.공.성. 복! 받아랏! 음~ 직장인의 정석
많이 배웠습니다! 대단합니다! ?!! 축하드립니다 뭔가.. 부족해요 짝짝짝! 각오하세요! 으윽!
성탄의 축복을~! 메리 X-MAS~! 화이트 크리스마스야 해피~ 크리스마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성탄이구나~
Good! Thank U Missing U Useless It's pretty good Oops WHY! Please wait
멜빈 미이라와 고스트 제피 할로윈에는 카를로스호박 히카르도의 사탕 탄야의 마녀 분장..? 잭-슈타인 강시 루시
기자님의 감탄사 : 호-오! 기자님의 일과 : 신문 보기 기자님의 사과 : 이거 실례! 기자님이 놀라면 : 어이쿠! 기분이 좋아 보이는 잭 기분이 나빠 보이는 잭 천진난만한 잭 상큼한 인사를 날리는 잭
좋군요! 좋은 시간 되소서 Merry 추석~! 우와~! 호~오! 가득해요~! 짱인데! 품위있군
Chu~♡ 파이팅! 우와앙.. 졌어 ㅠㅠ 이겼다! 흐~음? 뜨헉! 돼.. 됐거든! 사.. 살쪘..!
훌륭합니다 궁금하네요 에구머니나! 슬프네요... 경멸스럽군요.. 후훗~ 뭐라고 하셨죠? 이, 이럴수가...!
아이작의 멋진 모습 이글이라 샤샤샤~ 트리비아 슬라이딩 시바 포는 달린다 까미유도 달린다 라이샌더 달린다 마를렌 점프! 샬럿 점프!

최근에 사용한 스티커가 없습니다.
능력자님의 마음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스티커를 찾아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