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랍#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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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3 20:27:40
##내용의 연결상 전에 썼던것까지 하나로 묶는게 더 자연스
럽다고 생각해서 추가분을 덧붙여서 올립니다.
전 게시물을 읽으신 분은 스크롤을 3/5정도 내려주세요##
##언제나 꾸준한 댓글 달아주시는 호모사피엔님 감사드립니
다. 덧붙여 제가 오싸를 못가는 가장 큰 이유는 평판이 안좋기
때문일 겁니다. 자게 안할때는 이것보다 못한거로도 오싸를
몇번 가기는 했거든요. 게다가 캬루짤있는걸 오싸로 보낼수
도 없기때문에 캬루짤 넣은건 100퍼 포기하고 올리는겁니당
##
##9월2일은 커여운 캬루쟝의 생일! 캬루쟝 생일축하해ㅠㅠ
##
좋은 날씨다. 취재하기에도 좋은 날씨다.
기자라는 직업상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웃어야하고
그렇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이런저런 표정을 꺼내
쓸수있지만 그렇다고해서 감정을 0에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저 변환 효율이 좋을 뿐이다.
날씨가 좋다면 그만큼 에너지 소모 없이 효율적으로
표정을 만들수있다. 게다가 사람들의 반응도 부드러
워지니 일석이조 금상첨와라 할수있다.
자, 어디서부터 시작해볼까?
최종적인 타겟은 케니스 하트이지만 게임(취재)를 시
작하기에 앞서 단서가 되는 정보가 부족하다. 그러니
우선 가볍게 몸을 푸는 느낌으로 학교를 둘러보자.
클리브는 학교의 정원수를 다듬는 일꾼들을 감독하고
있는 중년의 남성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좋군요."
"네 안녕하세요. 무슨일이시죠?"
"제가 이 조경에는 조예가 없지만 이곳의 조경에는
뭔가 위대함이랄까 신비함이랄까 그런것들이 느껴
져서요."
"아.. 그렇습니까? 이런 일 보통 평범하다고 말할텐
데요."
"아뇨아뇨.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환경을 만드는 일
이잖습니까? 만약 평범하다는 인상이 있다면 그것은
그만큼 선생님같은 분들께서 사람다운 사회를 이룩
해 놓았기 때문일겁니다. 사람들은 익숙한건 당연하
다고 생각하는 법이니까요."
"허... 말 주변이 좋으시군요."
"그것보다 여기서는 조금 현실적인 얘깁니다만.."
"현실적이시라면...?"
"저희 사장님이 또 부유한 친구분들이 많으시거든요.
근데 그분들이 저택에 딸린 정원을 좀 손보고 싶어하
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다는 얘기를 들으셔서 제게 좀
괜찮은 사람이 있다면 소개시켜달라고 하신게 떠올
랐습니다. 혹시.. 이런 일은 마땅치 않으신가요?"
"아니요. 그럴리가요. 저는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
는 그 아름다운 환경을 만드는것 자체가 제 천직이라
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소명의식이라고 할까요?
허허.."
"혹시 명함을 받아볼수있을까요?"
"네. 드려야지요. 자, 여기 있습니다. 혹시 필요하신게
또 있으신가요?"
"아, 그렇다면 질문을 좀... 이 정원수는 이 지역 나무
가 아닌것같은데 직접 가져오신건가요?"
"아... 알아보시겠습니까?"
"네. 제가 그런데 조금 관심이 있어서요."
"이 녀석은 기증입니다. 이게 또 무시할수없는 분의
기증이라서요."
"무시할수없는 분이라면...?"
"크흠... 믿고 특별히 말씀드리는겁니다만... 이건 저기
일하고있는 인부들도 모르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아
시겠죠?"
"네. 알다마다요."
"기증자는 그 멜츠제약의 멜츠 하트입니다."
"그런데 유독 하나만 다른 나무라... 혹시 그 집안의
도련님이라도 입학했나요?"
"날카로우신데요? 기자라고 해도 믿겠습니다."
"하하. 그런 소리 많이 듣습니다. 제가 좀 촉이 좋아
서요."
"그럼 이것도 아십니까? 케니스 하트의 특이한 취
향이요."
"네? ... 특이한 취향이요?"
"그림자와 대화를 한다더군요. 밤늦게 기숙사에서
일 뒷처리를 하던 인부가 봤다고 합니다. 기숙사 방
에 혼자 있던 케니스 하트가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
를 보며 혼잣말을 계속해서 주절거렸다고요."
"뭐... 공부를 한다거나 책을 읽었던것 아닐까요?
아무래도 그런 이야기는 조금..."
"아니 정말이라니까요. 원래 높은 사람들이란 하나
씩 이상...아니 특이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케니스 하트에게는 그게 혼잣말인겁니다. 그 얘기
를 듣고 전 멜츠 제약주식을 팔았습니다. 정말 다행
이지 뭡니까. 그덕에 좋은 가격에 손해없이 팔수있
었어요. 어휴,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멜츠제약에 넣은게 얼만데... 선생도 멜츠제약 주식
이 좀 있다면 뭔가 터지기 전에 정리해두는게 좋을
겁니다. 이건 선생한테만 특별히 알려드리는거에요."
"그렇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리고 노파심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멜츠제약
이라는 회사가 평이 나쁜건 아니지만 여러모로 수상
쩍은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능력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제약회사라는것에서부터 말이지요."
"아.. 모두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만 능력자에 관한 사
업이란건 대체로 수상쩍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죠.
그래도 능력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보다 손해를 보는
사람이 많으니 능력을 억제하거나 없애는 약을 만들
수만 있다면야 부르는것이 값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그래서 제가 멜츠제약 주식을 좀 샀었습니
다만케니스 하트의 그 얘기를 들으니 소름이 돋더군요.
어쩌면 케니스 하트 또한 능력자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유력한 후계자가 대표라면 곤란하죠. 게다가 둘
째가 그런 사고를 친 이후지 않습니까? 능력자라는건
통제할수없는 시한폭탄같은것이라는 인식이 생겼고
케니스 하트가 능력자라고 밝혀진다면 그의 능력이
무엇이었든간에 통제가 가능하든 불가능하든간에 멜
츠제약의 주가는 폭락하겠죠."
"네. 하지만 괜히 그런걸 떠들고 다녔다가 무슨 해코지
를 당할지 몰라서 이건 저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멜츠제약에서 인체실험을 했다던가 능력자를 병사로
만들었다던가 하는 수상한 소문까지 진실로 들릴 지경
이라니까요."
"무서운 일이군요. 부디 나쁜 일은 일어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러니까요. 이게 그저 저의 기우였으면 합니다. 제가
할수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눈앞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
지지 않는것뿐이니까요."
"개인이 할수있는 일이란건 그 정도죠."
지시받은 일을 마친 인부가 다가와 물었다.
"사장님. 일 다 마쳤습니다. 이제 뭘 하면 되죠?"
"바로 갈테니까 가 있어."
"네."
중년의 남성은 클리브에게 말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일 얘기는 모쪼록 잘 전
해주세요."
"네. 좋은 소식이 있으면 바로 전해드리겠습니다."
클리브는 코트의 안주머니에서 메모장과 펜을 꺼내
간단한 메모를 하고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직
까지 확실한것보다 확실하지 않은것이 더 많다. 그렇
다면 다음은 어디로 가볼까? 손목시계를 보고 시간
을 확인한다. 시간은 10시. 점심시간 이전이라 교정
에 보이는 사람은 적다.
다른곳으로 이동해볼까 하는데 바람을 타고 익숙하지
않은, 현악기로 추측되는 들은적없는 얇으면서 팽팽
히 울리는 소리가 흘러왔다.
그 소리는 교정에서 떨어진 수목원의 한 구석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거기서 어느 한 소녀가 기묘하게 생긴
악기를 재주좋게 연주하고 있었다. 클리브는 신기하기
도 해서 맞은편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구경했다. 톡톡
튀는듯하면서 터지지는 않고 퍼지지도 않는다. 긴장과
절제 사이를 줄타듯이 넘나든다. 이것은 기뻐하는 노래
일까 슬퍼하는 노래일까 아니면 추억하는 노래일까. 가
사는 알수없고 음색조차 낮설지만 클리브는 노래를 들
으며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듯했다.
그리고 소녀의 복장. 낮선 재질의 옷으로 온몸을 칭칭 동
여맨 이상한 복장이다. 허리에서부터 발목까지 점차로 좁
아지는 옷은 실용성이라고는 찾아볼수없다. 저래서는 걸
을수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신발 또한 나무토막을 깔끔
하게 잘라놓은 수준이다.
낭창낭창 울리던 악기소리가 멈추었다. 소녀의 시선이
클리브를 향했다. 클리브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길을 가다가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서요. 클리브 스태
플이라고 합니다."
소녀는 비취와 자수정의 오드아이에 그를 담았다. 어
쩌면 꿈을 꾸는 듯한 몽롱한 동공. 분홍빛 연지로 향
기롭게 빛나는 작은 입술이 열린다.
"푸에라리아. 라리아라고 불러주세요."
특이한 이름이다.
"솜씨가 대단하던데요. 악기말입니다."
"대단한건 아니에요. 그저 동생과 지친 마음을 달랠때
켜고는 했었으니까요. 다른분께 선보일 실력은 안되지
만 동생이 그리워져서 무심코..."
"혹시 곡명을 알수있을까요?"
"傳心. '마음을 전하다'에요."
"혹시 어느나라 말인가요?"
"여기서 아주 먼... 일본이라는 나라의 말이에요."
"그렇다면 입고계신 옷도?"
"네. 클리브에게는 낮설겠네요. 유카타라고 불러요."
"정취가 있는 옷이로군요."
"조금.. 움직이기 불편한 옷이지만요."
라리아는 긴장을 풀라는 듯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
의 배려에 클리브는 정신을 다잡고 자신의 본분을 떠올
렸다. 멍청한 얼굴로 시간낭비할때가 아니다. 눈앞의 특
종이 도망간다면 억울해서 잠도 안올것이 분명했다.
"어울립니다. 무심코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로요."
"칭찬을 잘하시네요. 물론, 칭찬을 싫어하는 여성은 없
지만요."
"하하. 이곳 학생이신가요?"
"음... 사실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다고요?"
"네... 이 수목원이 제가 아는 세상의 전부니까요."
"그런가요?"
클리브는 수목원을 둘러보았다. 앞으로 꽤 뻗어있는 수
목원은 작지는 않지만 한 사람의 세상이라고 하기엔 크
지도 않았다.
"이곳이 마음에 드나요?"
"네. 좋아하고 있어요."
"그럼 다행이로군요. 자신의 세계를 사랑하고 있는거잖
아요?"
"그렇군요. 전 행복한것같아요. 그런데 아주 작은 아쉬
움이 있긴해요."
"말하자면 어떤?"
"작은 세상에 새로운 색을 가져다 준 클리브 씨가 어디
론가 가버리게 된다던가 하는 아쉬움이요."
앳된 소녀의 모습치고는 어른스러운 표현이다. 클리브
는웃고있는 표정이 흐려지지 않도록 신경쓰며 대답했다.
"라리아도 저와 같은 마음이라니 기쁘군요. 그럼 이야기
를 조금 더 해볼까요?"
리리아는 웃음에 웃음으로 답하며 말했다.
"클리브에 대해서 알고싶어요. 클리브는 무엇을 하는 사
람인가요?"
어디까지 말할까? 클리브는 조금 고민한다음에 말했다.
"세상의 진실을 찾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대단한 분이로군요."
"후후. 반하셨나요?"
"네 두번째로요."
"첫번째는요?"
"연주와 노래가 끝나기를 기다려주는 클리브를 봤을
때요."
"그렇게 띄워주셔도 뭐 없는데."
"그렇다고 아낄것도 없죠."
"그렇긴 하네요. 그러면 라리아는요?"
"저는... 누군가의 꿈을 대신 꾸는 사람이라고나 할
까요?"
"음.. 아까 행복하다고 했는데.."
"맞아요. 그 누군가의 꿈을 대신 꾸는것이 행복한 일
이거든요."
"그렇군요. 답답하지는 않나요?"
"전혀요. 오히려 행운이라고 생각할 정도에요."
"어떤면에서요?"
"음... 예를 들면요. 아주 좋아하는 엄마에게 엄마가 좋
아할 이야기를 계속 써주는거에요. 엄마가 꾸고싶었지
만 엄마로서는 꿀수없었던 꿈을 꾸고 그걸 이야기로
엮어서 매일매일 엄마의 품에 안겨 꿈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라리아는 엄마를 좋아하나보네요."
"네. 세상 그 무엇보다도 좋아해요. 엄마도 나를 세상
그 무엇보다도 아끼고요. 그러니까 이 수목원은 엄마
의 사랑이에요."
클리브는 수목원을 한번 둘러보고는 대답했다.
"라리아는 행복한 사람이로군요. 조금 질투나네요."
"후후."
이 정도면 다른 질문으로 돌려도 괜찮을것이다. 클리브
는 화제를 돌렸다.
"수목원에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나요?"
"아뇨. 그다지요. 왜냐하면 이 학교는 기본적으로 남녀
교제에 대해서 엄하거든요."
세계가 수목원이 전부라고 한것치고는 다른사람의 생활
상도 꽤 아는 모양이라고 클리브는 생각했다. 애초에 그
녀의 말도 반의 반도 믿지 않고있기는 했다. 너무 비현
실적인 표현이었으니까. 동화적인 상상이나 표현을 좋
아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것뿐일거다.
"심심하지 않아요?"
"라리아에게는 엄마가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형제자매는 있나요?"
"네. 자매들이 있어요. 근데 자매들은 말하는걸 안좋
아해서요. 정확히는 말할줄을 모른다고 해야하나..."
"자매들이 엄마와의 사이를 질투하지는 않나요?"
"네. 저희들은 엄연히 다른 개체니까요."
개체라는 표현은 조금 심하다. 본인도 모르게 원한을 사
기 좋은 타입일지도 모른다.
멀리서 종소리가 들렸다. 12시가 된 모양이었다. 클리브
는 코트의 안주머니에서 메모장과 펜을 꺼내 간단한 메
모를 한다음 그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있는 라리아에
게 말했다.
"배고프지 않아요?"
"그러네요. 기회군요. 학생식당에서 식사를 사주시지않
겠어요?"
"나쁠것없죠. 밥은 같이 먹으면 맛있으니까요. 그런데 학
생식당은 어디죠?"
"본관 옆쪽 클럽하우스 1층에 있어요. 아... 손을 잡아주
시겠어요? 그러는 쪽이 안심되거든요."
클리브는 내밀어진 라리아의 손을 잡고 수목원을 나와 클
럽하우스로 향했다. 학생식당은 몰려든 학생들로 북적였
다. 두 사람은 셀프계산대 앞에 섰다. 라리아가 재미있다
는듯이 웃어서 클리브가 물었다.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어요?"
"동생하고 농담조로 이야기하던 일이 떠올라서요.굉장히
무뚝뚝한 급사가 있었는데 사람이 아니라 인형인게 틀림
없다고 둘이서 말했었어요."
"동생과 아주 친했나보네요?"
"네. 정말로 가까운 사이였죠."
클리브는 자매들과 동생이 같은 대상을 지칭하지 않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만큼 한
눈에 알아보기 힘든 가족관계를 가지고 있으리라. 클리브
는 이리저리 뻗어나가는 생각을 멈추고 식권 두장을 구매
했다. 식권을 넣는 상자에 식권을 넣고 스테인리스 식판을
들어 자율배식대로 이동한다. 그 모습조차도 신선한지 라
리아는 싱글벙글이다.
식빵에 바를 잼은 땅콩잼으로 골랐다. 라리아는 딸기잼으
로 고르며 물었다.
"땅콩잼은 목 마르지 않아요?"
클리브는 우유팩 하나를 챙기며 말했다.
"우유도 있으니까요. 오히려 우유랑 과일잼을 같이 먹으면
좀 흐물거리는것같아서 좋아하지 않아요."
"조금 떼어주실수있으세요? 맛이 궁금해져서요."
"물론이죠. 이참에 땅콩잼파로 개종해주셨으면합니다."
"후후. 클리브가 계란 후라이의 반을 나눠준다면 고민해볼
게요."
"1/4은 드릴수있습니다."
"1/2은 주셔야 공정하지 않을까요?"
"좋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라리아의 딸기잼을 나눠
주세요."
"콜. 이에요."
"콜. 입니다."
두 사람은 빈 자리로 가서 자리를 잡고 잼을 반씩 나눠 식빵
에 발랐다. 한입 베어물려는 라리아에게 클리브가 말했다.
"라리아. 먼저 먹는건 땅콩잼으로 하죠."
"흐음?"
"왜 그렇게 의심스럽게 봐요?"
"나 알아요. 이거 '그거'죠?"
"'그거'라니요?"
"편법? 사기?"
"아니 무슨 잼먹는거에 사기를 쳐요. 뭐가 남는다고."
"그럼 딸기잼부터 먹기로 하죠."
라리아는 클리브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딸기잼을 바른
부분의 식빵을 덥썩 베어물었다. 그리고는 오물오물 맛있
게 씹어삼키고서 말했다.
"어서 클리브도 '딸기잼'부터 먹어봐요."
만만치 않네... 클리브는 속으로 생각하고서 웃는얼굴로 딸
기잼을 바른 부분부터 베어물었다. 달짝지근한 딸기의 맛과
향이 입가에 머문다. 클리브는 몇번 씹다가 우유를 한모금
마시고 입속에서 흐물흐물해진 빵과 잼을 씹어삼켰다.
"음. 딸기잼도 괜찮네요."
라리아는 약간 불만인듯 눈을 흘기며 아이를 타이르는듯한
어조로 말했다.
"거짓말이죠? 클리브. 클리브는 라리아와 별로 친해지고 싶
지 않은가보네요. 라리아는 클리브와 친해지고 싶었는데요."
클리브는 약간 당황했다. 그걸 알아차리더라도 보통 지적을
하나? 지적을 했다는건 이 자리를 뜨겠다는 말인가? 경직된
웃는 얼굴로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 클리브에게 라리아
가 말했다.
"클리브. 사과해주세요."
"네?"
"클리브, 사실 딸기잼 먹고싶지 않았죠? 그래서 우유랑 같이
먹으면 흐물흐물해져서 싫은데도 그렇게 먹었죠?"
"아...음...네..."
클리브는 아직 라리아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한채 어물거렸다.
라리아가 말했다.
"나는 클리브와 친해지고 싶어요. 그러니까 사소한 일로 거짓
말하는 클리브와는 친해질수없어요. 사과해주세요. 그럼 괜
찮아요."
클리브는 어벙한채로 대답했다.
"미안..합니다?"
"후후. 잘했어요."
라리아는 얼빵한 얼굴을 한 클리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향
긋한, 어디선가 맡아봤을 꽃향기가 클리브의 코끝을 스쳤다.
약간의 당황 부끄러움이 뒤섞여 가슴이 술렁이는것을 클리브
는 숨기고 아무렇지도 않은척 말했다.
"크흠.. 흠... 뭐, 딸기잼은 싫어하니까요."
"그럼 나도 사과할게요. 미안해요 클리브. 싫어하는 딸기잼을
억지로 권해버렸네요. 용서해줄래요?"
"용서라니요 그렇게까지는 화나지 않았어요."
"클리브."
"휴.... 10년은 늙는것같네... 알았어요. 용서해줄게요..."
클리브는 묵직하게 짓눌려오는 두통을 견디며 말했다.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위대한 저널리스트 클리브 스태플이 아이취급이
나 당하고..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라리아의 행동에 클리브의
마음은 당혹 굴욕의 온갖 색이 뒤섞여 아예 검은색이 되어버렸
다. 아니, 하얀색일까? 그래서, 평소와는 다른 말을 했다.
"라리아는 내가 어때보여요?"
엄청난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아. 차라리 이대로 사라지고싶다.
라리아의 눈을 보기가 무섭다.
등골을 타고 차가운 땀이 흐른다.
이 나이에,
내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물어보는건
이 나이에,
내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니까.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도 모르면서
타인을 보고 기록하는거니까.
"친절한 바바리 맨?"
"친절한...?"
"바바리 맨."
"바바리...맨?"
"바바리 맨."
클리브는 라리아의 상향한 미소를 본 다음 자신의 바바
리 코트를 보았다. 라리아는 나름의 어떤 의미를 담아서
말했겠지만 클리브로서는 전혀 알수없었다. 왠지 김이
새어버린 클리브는 식빵을 덥썩 베어물었다. 클리브가
베어물은것은 딸기잼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클리브는 딸기잼을 남겼고 라리아
는 둘 다 맛있게 먹었다. 라리아는 태어나 처음 식빵에
잼을 발라먹는것처럼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즐거워했
고 클리브는 다음날 핫도그와 크레이프를 대접하기로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