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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대모험 [89급]

2017-12-19 23:27:25


깊은 밤(2)




#1 :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27154398

#2-1 : http://cyphers.nexon.com/cyphers/article/art/topics/27215532


쓰러져있는 타냐에게로 다가가려는 웨슬리를 저지한것은

뒤따라온 존이었다. 웨슬리는 손을 내팽개치려고 했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풀수가없었다. 겨우 뒤따라온 로자가 가

쁜 숨을 몰아쉬며 따라들어왔다. 타냐의 주변을 지키며 울

던 고양이는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에 놀라서 입구에 선

사람들의 다리 사이를 순식간에 빠져나가 이내 모습을 감

추어버렸다. 발자국에 찍힌 핏덩이만이 선명하게 남아 바

닥을 더럽히고있었다.



웨슬리는 존에게 따졌다.



"저 정도의 실혈량이면 목숨이 위험합니다. 방해하지 말아주세요."



존은 팔을 놓지 않은채로 말했다.



"만약 살아있었다면 찬 바닥이 아닌 침대위에있었겠지."


"...."


"아냐?"


"..맞아요. 일단 누군지 확인부터 해야..."



여전히 팔을 놓지 않는 존을 웨슬리는 노려보며 말했다.



"이봐요. 어디까지 나를 방해해야 속이 편하겠어요?"


"지금의 네가 확인해서는 안돼."


"그럼 누가 확인한다는거죠?"


"너. 범인이 누군지만 안다면 곧바로 찾아가 네 허리에 찬

권총으로 머리통을 날려버리겠다는 얼굴을 하고있어."


"그럴 일 없을테니 놓으시죠. 당신은 제 호위일뿐입니다."


"나는 너의 호위이기때문에 네가 똥통에 얼굴을 처박으려는

걸 말리는거라고."



옥신각신하는 둘 사이에 로자가 끼어들었다.



"일단 옆 방으로 가서 얘기해요. 자, 헤나. 너도 어서..."



조용히 타냐의 옆을 지키고 있는 헤나가 슬픔을 참으며 말했다.



"내가 언니에게 해줄수있는일은 짦은 시간이라도 같이 있어주고

슬퍼해주는일뿐이야. 엄마와 아빠의 말은 더 이상 듣고싶지않아."



웨슬리는 방에서 억지로 끌려나왔고 조용하게 방문은 닫혔다. 웨

슬리가 마지막으로 본 헤나의 얼굴에는 방향을 잃은 분노만이 떠

돌고있었다.





*





"그녀가 죽은것을 발견한것은 헤나에요. 남편이 타냐에게 했던 약속

도 있고 이런저런 간섭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굳이 그녀를 신경쓰

고 있지 않았어요.그런데 헤나의 말이, 그녀의 방 안에서 고양이 소리

가 난다는 거에요. 타냐는 길고양이 한마리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는

데 그 고양이는 꼭 그녀가 있을때에만 와서 먹을것을 얻어먹고는했거

든요.

그래서 안에 그녀가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부른 모양이에요. 아가씨들

같은 경우에는 팁이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또 사정이 있어서 타냐

에게 돈의 여유가 없었거든요. 또 평소에 자신이 있는것같은데 나오지

않으면 끄집어내달라는 부탁도 했던 모양이에요. 너무 반응이 없자 문

을 열어보니 그녀가 ... 쓰러져있었고요."



혼자 무언가에 골몰하고있는 웨슬리 대신에 존이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하실겁니까?"


"어떻게 들으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되도록 조용하게 끝내고 싶어요."



웨슬리가 몸을 일으키려는것을 존이 막았다.



"뭐. 방에 남은 아가씨의 말에 예상은 했습니다."


"...한 사람의 사정에 많은 사람들이 휘말리게할수는없어요. 그게 죽음

이라고 하더라도."



순간 단발의 총성과 함께 바닥에 탄알이 박혔다. 로자는 겁에 질려 움츠러들

었고 존은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웨슬리의 오른손에는 그의 권총이 쥐어

져있었다.



"....실례했습니다. '장사'에 방해가 됐을지도 모르겠군요."


"....되도록이면 빨리 나가주셨으면 해요."



로자는 그들이 다시 방에 들어가는것조차 거부했다. 아무런 소득없이 둘은 밖

으로 내쫒겼다. 존은 이죽거리며 말했다.



"다시봤는데. 꽤나 열혈이더군. 난 철혈인줄알았는데."


"당신과 만난건 고작해야 하루전입니다. 다시볼것도 없습니다."


"꽤나 차가운데. 우리 사이에."



웨슬리는 엉망진창이된 머리로 끈질기게 그녀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술집에서 일을하고있으니 저런식으로 터무니없는 죽음을 맞이할수도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녀는 이 도시에서 문서상으로는 존재하지않는 인간이

며 그녀가 죽었다고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없다. 그녀가 살해당했다는

것이 인정되려면 그녀의 존재부터가 인정되어야하고 그녀의 존재가 인정되

면 그녀의 일터에 대해서도 밝히지않으면안된다.


리고 일의 내용에 대해서 밝혀지면, 지금의 여관은 존재할수가없다. 돈

을 받고 '장사'를 모른척해줬던 경찰들은 태도를 바꿔 아무것도 남김없이

부숴버릴것이다.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지못하는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들

처럼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우발적인 살인이 아니라 계획된 살인이

었다면?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그녀가 죽어야했던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

진다. 그래 혹시 나-웨슬리-때문이었다면...



"존. 스미스가의 위치는 알고있겠지."


"흠. 알고있긴하지만 무리한짓은 하지 말라구? 내가 보기엔 네가 헛다리집

은걸로도 모자라 목숨이 아까운줄모르는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말리지는 않겠어."


"...넌 내 호위야. 앞장서."


"그 이전에 스미스가에 고용된 입장이다만. 뭐 어차피 가야하니까. 너의 생각

을 바로잡을건 내가 아니지."



존은 학교로 방향을 잡았다.



"속이는건 아니야. 지금 거기로 아무생각없이 다가갔다가는 경고로

끝나지 않을테니까. 스미스에는 적이 많아.우선 귀여운 메이드님들

에게 부탁해보자고."



웨슬리는 말없이 존을 따랐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머리속에 가득해

서 부풀어올라 터져버리지는 않을까 싶을정도였기때문에 잠자코따

를수밖에없었던것에 더 가까웠지만.


열시가 될쯤에 학교 식당에 도착했다. 존의 말에 의하면 메이드들은

식당 윗층에 '집'을 차렸다고 했는데 과연, 식당 문앞에 두 사람이 서

는 즉시 문이 열리며 하녀복장의 두 사람이 그들을 맞이했다.



"작은 도련님을 모시고있는 히야신스와 퍼플입니다. 기다리고있었

습니다. 들어오시죠."



웨슬리는 이것저것 묻고싶은말들이 떠올랐지만 참고 그들의 안내에

따랐다. 안내받은 열평 남짓한 좁은 회의실에서 기다리고있는것은

군청색의 두툼한 침낭 안에 들어가있는 그의 동급생이었다. 그 동급

생은 한점의 흐트러짐없이 말했다.



"그 죽음은 우리가 아냐. 너의 그녀라면 우리가 손을 댈 이유가 없어."


"...너라면 가능하잖아."


"가능하다고 하는건가? 너는 어중간한 태생을 포기할수도있었고 그

보상으로 아무 시골에나 돌아가서는 어쩌면 그 여자와 아니면 다른

여자와 모든것을 잊고 살아갈수도있었겠지. 그런데 하지 않았어."


"...뭘 원하는건데."


"오늘은 계속해서 나를 실망시키는군. 네가 나에게서 '정보'를 원한다

고 해야지."



존이 끼어들었다.



"이봐. 고용주. 지나친 도발은 너의 부족함만 드러내는거라고."


"나도 요즘 힘들다고. 아버지가 연쇄살인사건을 해명하라고 과제를 준

덕분에 몇주째 이런 생활을 하고 있어."



웨슬리는 귀에 거슬리는 단어를 입으로 말했다.



"연쇄...살인사건...?"


"맞아. 너와 존에게 시키려고했던건 연쇄살인사건의 조사였어. 계속 할거야?"


"..아직 너를 믿는다는건 아니야."


"그래그래. 적당한 긴장감도 필요해. 결과만 내준다면 나는 상관없어. 빨리 이 침낭에

서 졸업하고싶고."



스미스는 근처에 놓여진 무전기를 쥐고 말했다.



"들었지? 조사해 와."



무전기 넘어로 '네 알겠습니다' 하는 짧은 말이 들렸다. 무전을

끝낸 스미스가 웨슬리에게 웃으며 말했다.



"이 방. 허술해보여도 있을건 다 있거든. 그보다 난 어제 제대로

못자서 좀 자야해. 나머지는 에리카에게 들어."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문이 열리고 하녀복장을한 소녀가 들어

왔다.



"에리카입니다. 두분 다 저를 따라와주십시오."


"참 바쁘게 사는군. 미국인들도."



존이 씁쓸하게 웃었다.


방을 나오자마자 에리카가 한 말은 두사람에게도 좀 의외였다.



"식사하시겠습니까?"



웨슬리가 난처해하며 괜찮다고 하려고 한 순간 존이 말했다.



"좋아. 먹으면서 얘기하자고."


"네. 1층 식당에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10분쯤 후에 와주세요."



에리카는 가볍게 목례하고 아래층으로 사라졌다. 웨슬리는 그녀가 내려

가는것을 확인하고 존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지금 이 상황에 식사를 한다구요?심지어 밤에?"



존은 성가시다는듯이 한쪽 귓구멍을 파며 말했다.



"난 배고프다구."



웨슬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입을 다물었다.



"참 내. 어차피 우리는 밤을 새게될거야."


"그것과 식사가 무슨 관계입니까?"


"하 참 따지는것 많네. 그렇게 불만이 많다면 일단 이 몸의 솜씨를 보여줄테

니까 입다물고있어봐."



존은 화장실 근처에 놓인 의자에 털썩 앉아서는 입이 찢어지듯이 늘어지게 하

품을 했다. 웨슬리는 시간을 확인하려다가 주머니에 이질감을 느껴 무심코 손

을 넣어보고는 후회했다. 타냐에게 선물로 줄 시계가 있었다. 갈곳을 잃은 분

노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혀를 아리게했다.


길고 긴 10분이 지나 두 사람은 아래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의 모습은 변모

하여, 테이블을 일렬로 붙여놓고 그 위에 새하얀 테이블보를 깔아두고 온갖

다양한 음식들을 나열해두고있었다. 존은 기다렸다는듯이 기뻐하며 음식에 달

려들었고 웨슬리는 자신의 앞에 놓인 음식만을 억지로 우겨넣었다. 부지런히

뱃속으로 음식을 부어대는 존을 두고 침묵을 지키고있는 웨슬리에게 에리카

가 다가와 물었다.



"혹시 입맛에 맞지 않으시다면 다른것을 준비해올까요?"


"아뇨.그보다 연쇄살인의 이야기를 듣고싶습니다만.."


"아 그것 말이군요. 어째서 유사한 형태의 살인사건이 연달아서 일어나고있는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나이,성별,국적에 관계없이 일어나고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는 접점은 단 한가지. 아틀라스라는 종교집단의 신자라는 점입니다.

사실 타냐라는 분에 대해서도 아틀라스의 신자여서 저희들의 감시 대상이었구요."



들은적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런것은 들은적이 없었는데.. 설마 저에게 스미스가 접근한것은 타냐때문이

었나요?"


"그것보다는 도련님의 어머님의 문제였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아틀라스의 신자로

추정되었거든요. 그래서 사실 작은주인님께서는 도련님이 아틀라스 교도인지 확인

하고싶어하셨죠."


"전 그런 이상한 종교따위 들어본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작은주인님께서는 도련님께서 아틀라스와 접촉해주었으면 하십니다."


"아틀라스라는 종교에 대해 알려주세요. 얘기는 그 다음입니다."


"거인에 대해서 알고계신가요? 그것이 실존한다는것에서 파생된 종교에요.

그리고 그 구성원들을 '부분'이라고 칭하죠. 하나가 된 마음이 가장 중요한

말이고요. 당신들의 거인의 눈과 입과 팔 그리고 다리가 될것입니다. 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용캐도 그런 종교를 용인하고있군요."


"마음의 권리라는것은 경계가 모호하니까요. 자금원은 불분명하지만 그 규

모도 커서 정부사람에게 청탁을 하는 경우도 발견되었어요."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그 살인이 연관되어있다는건가요?"


"항상 피로 써진 글씨가 현장에 남아있어요. '거인의 죄는 크다.'라고 말이죠"


"왠지 아틀라스는 피해자인것같군요."


"반드시 그런것도 아니에요. 그들은 정화를 위한 희생에 대해 긍정하고있고

비밀리에 인간을 희생시키는 의식을 하고있는것으로 추측됩니다. '모두는

하나'라는 말은 누군가 죄를 지어도 모두의 죄가 된다는 말로 읽힐수도 있으

니까요. 그들 스스로 그들의 어느 부분을 잘라낸것일수도 있어요. 무엇보다

아틀라스에는 소위 '실행부대도있거든요."



수상한 종교집단에 심취한 타냐라니, 웨슬리는 믿고싶지도 않았고

상상하고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너무 타냐에게 무관심했을지도 모

른다. 타냐는 자신이 힘든것을 숨기니까. 조금 더 신경써줘야했다.

아니, 했었어야 했다.


존은 질리지도 않고 먹어대면서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에서는 다 추측뿐이잖아? 들어갈 수단만 있으면

돼. 그보다 저것좀 다시 줄수있어? 맛은 조금 맵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의 뒷편에 서있던 하녀가 양해를 구하며 빈 접시를 가지고 주방으로

향했다. 그 하녀가 주방에 들어가는것을 기다린 후에 에리카가 말했다.



"사실, 돈을 낸다면 집회에 참여할수있습니다."



존은 미심쩍어하며 말했다.



"그건 꼭 나와 웨슬리가 아니어도 되잖아?"



에리카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조심스레 말했다.



"아틀라스가 웨슬리님을 지명했습니다."



존은 그 말에 입을 닫았다. 표정은 흉하게 찌그러져서 완전히 관심을

잃은것같았다. 웨슬리 본인은 꽤 침착했다. 존에게 있어서 얼굴도 모

르는 누군가에게 끌려다니는 상황은 정말 성미에 맞지 않아한다고 생

각하며 쓴웃음을 지을정도로. 단지 증오를 쏟아부을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이건 확실히 하고싶은데.. 아틀라스의 지명은 언제부터 어떻게?"


"사오일 됐군요. 사실 저희쪽에 아틀라스 사람이 와 있습니다. 지금이라

도 원하신다면 만나보실수있습니다. 가능하다면 만나고 싶다고 하셨거

든요."


"아틀라스가 왜 저를 지명했는지는 모르고요?"


"예."



존은 먹는것에도 흥미를 잃어 현란하게 움직이던 포크와 나이프로 음식

을 성의없이 해체하고 있었다. 웨슬리는 그에게 물었다.



"같이 가실겁니까?"


"-아니. 분명 썩은 동태눈깔에 퀴퀴한 냄새나 나는 버러지같은 자식일거야."


"돌아가는것은 같이 돌아가실거죠?"


"어. 그쪽이 끝나면 알려달라고할게."


"아틀라스의 대리인은 어디에 있는거죠?"


"사건현장에 가 계세요."



어차피 한번 제대로 봐야했다. 미뤄서 좋을일은 없을것이다.



"안내해주세요."



멀리서부터 본 여관은 드문드문 새어나오는 불빛도 없이 조용했다.

문 앞에 누군가 서있길래 봤더니 소냐였다. 웨슬리를 알아보고는

먼저 다가왔다.



"기다리고있었어요. 그런데 괜찮으시겠어요?"


"점심 지나서 좀 자둬서 괜찮아요."


"...안내할게요. 따라오세요. 사제분은 위층에 계세요."


"다른 사람들은요?"


"일단 저희쪽에서 보상금을 드리고 가게를 하루동안 빌리기로 해서 집

에 돌아가셨어요."


"...타냐는.."


"사제분을 만나는것을 좀 늦추셔도 되요."


"..부탁드립니다."



소냐는 2층의 가장 끝방, 타냐의 방으로 안내했다. 웨슬리는 주저하다가

마음을 굳게 먹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평소보다 조금 창백해보이는 안색일뿐

평온한 얼굴은 그저 자고있는사람처럼 보였다. 웨슬리는 그 얼굴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것을 소냐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웨슬리가 소냐에게 말했다.



"타냐의 시체는...어떻게 되는거죠?"


"괜찮으시다면 내일부터라도 저희가.."


"...부탁드려요. 저는 아직 학생이라서."


"..네."



웨슬리는 깊게 쉼호흡을 한 후 말했다.



"이제 사제분께 안내해주시겠어요?"



사제가 있는 방은 멀리있지않았다. 소냐가 문을 두드리니 곧장 대답이

들리고 문이 열렸다. 방에는 아틀라스의 사제복으로 추정되는 하얀 바탕

에 파란색 선이 심플하게 그려진 옷을 입은 남자와 여자 두명이 있었다.

문을 연것은 여자였고 침대에서 몸을 반쯤 일으켜 입구를 향하고있는것

은 남자였다. 남자의 덩치는 유난히 크고 또 단련되어있어서 몸 전체를

가려서 체형이 불분명해지는 옷을 입고있음에도 두드러졌다. 그리고 짙

고 어두운 검푸른색의 눈 그리고 짧게 친 머리카락은 그것과 닮은 옷의

파란색에 어울렸다. 여자는 대조적인 밝고 긴 붉은색 머리카락을 허리까

지 내리고 눈은 짙고 어두운 검은색을 하고있는데다가 약간 두드러지는

얼굴형때문인지 어디인가 균형이 맞아보이지 않았다.문을 연 여자가 경

계하며 말했다.



"늦었군요. 저희가 신에게 봉사하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봉사하지는

않습니다. 다음에도 그러신다면 문을 열어드리지 않겠어요."



그것을 남자가 사람좋아보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에게 있어서 우리는 반갑지 않은 손님일테니까 이해해줘야지."



남자는 자신의 말이 세 사람에게 녹아들기를 기다린 후 몸을 일으켜 그들

에게 걸어와 웨슬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군. 아틀라스의 프로스트일세. 갑작스런 친구의 죽음에 놀랐겠지만.

이 살인은 우발적이지 않은 계획적인 살인일 가능성이 높아. 부디 협조해

주었으면 좋겠네."



웨슬리는 손을 잡고 악수했다. 손은 투텁고 상처투성이에 딱딱했다. 에리

카의말이 머리속을 스쳤다. '실행부대도 있다'... 등골이 서늘해지는것을

느끼며 프로스트의 안내에 따라 두 사람이 테이블에 앉고 두 사람이 남자

들의 등뒤에 섰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의 정적이 흘렀다. 프로스트는 약간 곤란

해하며 웨슬리에게 말했다.



"궁금한게 많을텐데 먼저 물어보도록 하게."



타냐의 죽음 앞에서 떠오른 단 한가지의 의문이 웨슬리의 머리속에 떠올랐다.



"타냐는 신자였나요?"


"그렇네."


"아틀라스란..뭔가요?"


"과학을 신으로 섬기는 종교집단쯤 될거야"



프로스트의 말에 그의 뒤에 서있던 여사제가 당황하며 말했다.



"사제님. 그런 말은 신성모독으로도 들릴수있습니다."



프로스트는 싱긋 웃으며 여사제를 돌아보고 말했다.



"괜찮아. 괜히 이쪽에서만 쓰는 말을 사용하면 경계할 가능성이 높거든

내가 믿음을 의심하고있다는게 아니야. 믿어줄수있겠어?"


"...알겠습니다. 사제님께 맡기겠습니다."



프로스트는 몸을 똑바로 하고 말했다.



"기다리게해서 미안하군. 이해를 돕자면 우리는 온건파일세. 그리고 우리는

지금의 사건에 급진파를 의심하고있어."


"파벌싸움이라는겁니까?"


"파벌싸움하고는 조금 다르지. 급진파는 빠르고 정확한 실험을 원하고있어.

그리고 이 연쇄살인사건은 하나의 의식이기도 해."


"아까 과학을 신봉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근데 지금 이야기는 마법에 대한 이

야기같군요."



프로스트는 좋은 질문을 하는 학생을 칭찬하는 선생님처럼 신이나서 말했다.



"과학과 마법을 따로 떼어놓는건 과학의 가능성 또한 감추어버리는 일일세.

마법은 분명 체계가 존재해. 가능성에 대해 모든 수단을 이용하여 탐구하는

것. 그것이 과학일세."


"연구자와 다를것이 있나요?"


"연구자는 사회와 윤리 위에서 이성적으로 나아가는 존재일세. 그들에게 마법

이란 특정할수없기때문에 배재해야하는 불쾌한것이고 당연스레 마법에 대해

부정하지. 그러나 과학이라는 수단을 신봉한다면 그런 야만의 영역에도 발을

딜수있지."


"어째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요."


"그것이 옳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지."


"...그럼 많은 사람들이 하는것은 반드시 옳다는건가요?"


"자네의 말은 틀렸어. 옳고 그름을 따지는 정의는 하나의 가치관일뿐이야. 예를

들어서 자신이 배우고 믿어온 모든것을 부정당하고 더럽혀진 마녀나 마법사가 있

었다고 가정해보지. 그들은 그것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어. 그래서 어

떻게든 자신의 삶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싶었지. 그래서 모든것을 걸고 과학과 마

법에 대해. 공존의 길에 대해 탐구했어. 이것에 정의는 있는가?"


"이해를 바라는 시점에서 전 당신의 말을 이길수없겠군요."


"마음은 배려하고싶네. 하지만 자네의 상처가 아무는것을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아."


"익숙한 일입니다. 옳은것들에 의해 저 자신의 마음을 부정당하는것은."


"자네는 내 생각대로 꽤 단단하군. 기대에 부응해줘서 고맙네."


"그래서 그것때문에 저에게 접근하고자 하신겁니까?"


"아니. 그것과는 별개야. 다만 일하기는 좀 낫겠군. 이라는 식의 안도지."



프로스트는 생각을 정리하려는듯 잠시 뜸을 들이고나서 말했다.



"자네에게 어떤 마법이 얽혀있어. 그리고 그 마법은 꽤나 힘이 세서 타인의 운명에 지나

치게 개입될 여지가 있네. 말하자면 자네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아."



웨슬리는 불쾌해하며 말했다.



"저 자신에게 마법이 걸려있다니 받아들일수없군요. 전 살아오면서

마법을 접한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프로스트가 그것에 답을하기전에 뒤에 서 있던 여사제가 불쾌함을 감추지

않고 쏘아붙였다.



"아는게 없으니 마법을 마법이라고 알지 못했을뿐이겠죠. 적어도 프로스트님

은 당신이 그렇게 쉽게 무시할분이 아닙니다."



흥분한 그녀를 프로스트가 달래듯이 말했다.



"갑작스레 모든것을 받아들이라고 밀어붙이는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폭력일세.

워즈군."



워즈는 웨슬리를 노려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말씀중 끼어들어서 죄송했습니다."


"그래. 우선 두분께 사과를 하도록 하게."



그녀는 생각보다 순순히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이해부탁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수긍하자 프로스트가 말을 시작했다.



"자네는 늑대인간 전설을 알고있나?"


"만월이 되면 늑대로 변한다는 전설 말이군요."



프로스트는 한 손으로 자신의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는데 조금 권태로

워보였다.



"그래. 마법의 힘이 가득 차오르는 날. 그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그가 사람보다는 늑대라고 말하고 싶은것처럼

들리는군요."


"맞아. 태양의 권위에 의해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것뿐. 그는 늑대였어."


"어째서 늑대가 사람의 흉내를 냈던겁니까?"


"자신이 늑대인것을 잊어버리고 있었으니까."


"그럼 그냥 사람으로 살면 되지 않습니까?"


"웨슬리군. 그것에는 자유가 없어."


"완벽한 자유란 없습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자유란 존재하지. 육식동물은 풀을 소화시킬수없어. 초

식동물은 사냥을 할수없어. 날개가 없는것은 날수없어. 새들은 날기위해

서 날개짓해야해. 늑대를 자각한 상태에서는 인간으로서 살수없어."


"늑대인간을 접해본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우선 제 앞에 늑대인간을 데

려와주신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프로스트가 웃었다. 그것은 굉장히 메마른 웃음으로서 혈관의 피마저 바싹

말라버릴것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만월이군. '나'에게는 정말 상쾌한 날이야. 그렇지않나? 워즈."


"...네."



워즈는 웨슬리를 원망하듯 노려보았다. 웨슬리는 의문을 모른채로 프로스

에게 시선을 돌렸다.그리고 웨슬리는 보았다. 프로스트의 몸에서 새하

얀 짐승의 털이 자라고 몸의 형태가 부풀어오르며 얼굴의 형태마저 인간

의 형상을 잃어가는것을.


그것은 하나의 탄생처럼 느껴졌다. 인간도 짐승도 아닌 무엇으로의

변모. 3미터는 쉽게 넘는 순백의 이형에 웨슬리는 말을 잃었다. 그의

뒤에 선 소냐가 신음성을 삼켰다. 그 긴장된 순간에 말을 꺼낸것은 워

즈였다.



"사제님 죄송합니다만 잠시 자리를 비워도 되겠습니까?"


"미안하네. 시간도 늦었으니 방에 가서 쉬도록 해."


"...실례하겠습니다. 두분께서도 모쪼록.."



창백한 얼굴의 워즈는 둘에게 인사하고 방을 나갔다.



"워즈는 지금의 이 모습에 공포를 느끼거든."



웨슬리는 그녀의 기분을 이해할것같았다. 저것이 마음만 먹는다면 인간

한둘쯤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총칼마저도 우습게 여길 폭력적인

생동감이 그 육체에는 존재했다. 또 변모해버린 노랗고 길게 째진 눈을 보

면 알수있다. 인간이었을때와는 다르다. 얼마든지 '죽여버릴지도 모른다'.

그가 인간의 흉내를 내는것은 일종의 관용과도 같아서 그와 대화를 한다는

것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것처럼 생각되었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말이지. 인간의 사고를 해야한다네."


"..."


"인간을 흉내고있는 이질감. 자네에게는 이해하기 어렵겠지. 그래서

말이 좀 주제를 벗어나도 이해해주기 바라네."


"알겠습니다."


"마법의 존재를 확실하게 보여주는것 만큼 믿음을 주는 일은 없는데다가

나는 마술사가 아니기때문에 자네에게 설명하기도 어려워서말야. 우선 자

네의 믿음을 얻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 이해해주기 바란

다는 말이야."



확실히 좀 겉돌고있는것같기는 했다.



"네. 적어도 몇가지 마법이 존재한다는것은 이해할수있을것같습니다.

그래서 제게 걸린 마법은 뭐라고 말할수있을까요?"


"내가 아는 마법사들의 추측으로는 '운명'에 대한 마법일세. 가장 어

려우면서도 가장 쉬운 마법이지. 마법의 존재를 명확히 인지하지 못

하는 사람들도 주사위를 던지듯이 아무것도 모른채로 그것을 사용

하고는 한다네. 하지만 그것의 규모와 영향력은 대단하지 않아. 그러

니까 자네에게 걸린 '운명'은 아주 대단한 전문가의 짓이라고밖에 말

할수가없어. 만에 하나 그것이 아니라면 더 큰일이지 우연과 우연 또

우연이 겹쳐서 발생한 마법이라면 그 용도와 규모조차 알수없으니까."


"당신과 당신의 친구들은 저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겁니까?"


"자네가 가지고있는 운명에 대한 해석일세. 근데 그게 조금 협조가 필

요하거든 몇일정도."


"저는 연쇄살인사건에 대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다르지않아. 연쇄살인사건은 자네에게 엮인 '운명'의 원동력이 되는

의식이니까. 그것은 집단의식의 변천이라고 말할수있겠군. 마법은 종

종 인간의 정신을 재료로 사용하네. 집단의식도 그 재료중 하나지. 그

것은 변화를 담고있는 에너지라고 말할수있는데 의도적으로 자극을

가함으로써 원하는 반응을 이끌어낼수있지. 소에게 밭을 갈게하고 말

에게 사람을 태우고 달리게 하는것과 같아. 가공되지 않은 집단의식이

란 짐승과 다르지 않네. 그것은 고통에 민감하고 고통으로 통제하고 유

도할수있지. 이 살인사건과 같이 떠도는 소문이 바로 '순혈'일세."


"혈통..말입니까."


"자네가 듣기에는 즐거운 테마는 아닐거야."


"살 자격마저 없다는건 굉장히 열받게하는군요."


"자격이 없는 자에게 신의 은총을 나누어 주는것은 구원에서 멀어지는

일이다. 농부에게는 농부의 일을. 양치기에게는 양치기의 일을. 선원

에게는 선원의 일을. 순혈이란 하늘이 내려준 일에 순종하고 종사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네. 변하지 않는것. 보석의 광채란 바로 그것이라고

말하지. 그리고 처녀와 순결성이란 또한 그들이 신봉하는 보석중 하나

이지."


"..."


"자네는 귀족인가 평민인가? 그 애매함은 보석인가?"


"한가지는 확실해진것같군요."


"난 왠지 자네가 할 말을 알것같군."


"그런 생각을 하는 녀석들의 머리통을 박살내버리겠어요."





*                *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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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합니다 궁금하네요 에구머니나! 슬프네요... 경멸스럽군요.. 후훗~ 뭐라고 하셨죠? 이, 이럴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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