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이무스의 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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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2 10:42:18
미방 넣기 힘든..
눈 앞의 얼굴은 방금 전에도 본 것이다. 반갑지는 않다. 상대 역시 다이무스가 반갑지 않은 눈치다. 대련 시작 전 자네트에게 함부로 굴던 때에 다이무스가 들어섰으니 민망하기도 할 것이다. 어린 계집이 호위대 소속이라는 것은 호위대의 질이 떨어진 것이라느니, 실력이 아닌 다른 술수를 썼을 거라느니. 잘나신 자작 나리 입에서 나오는 소리 치고는 참으로 졸렬하기 그지 없었다. 다이무스에게는 무어라 아부 어린 소리를 지껄이는 모양인데, 들을 가치도 없다. 그보다 다이무스는 그런 희롱을 태연하게 웃어 넘기는 자네트의 우아하고 차분한 말투에 꽤 감명을 받았다. 어느새 그렇게나 컸는지. 자네트가 명문 프리츠 가의 무남독녀라는 사실을 모르는 자라 해도 그 고귀한 언행에는 매료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게 신분을 숨긴 채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니 말이다. 물론 다이무스의 기억 속 자네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꽃잎이 날려 눈이 부셨던 하얀 정원, 작고 동그란 티 테이블 앞에 프릴과 레이스로 장식된 인형 같이 귀여운 소녀가 있었다. 눈을 내리깔고 있을 때에는 다소곳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는 고양이처럼 치켜 올라간 눈꼬리를 감추지 않고 한껏 노려보는데 사실 그마저도 귀여웠다. 보통 그런 살쾡이 같은 표정을 지을 때에는 옆에 토끼 같다며 놀리던 이글 홀든이나 손수건에 자수나 놔달라고 빈정거리던 벨져가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내 티 테이블을 뒤엎고 난장판을 벌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항상 엎기 때문에 일부러 작고 가벼운 걸로 갖다 놓는 것이었을지도. 아름다운 아이들이 가만히 입 다물고 어른 흉내를 내며 차를 마실 땐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하지만 그 그림 한켠 손 닿는 곳에는 항상 연습용 목도와 레이피어가 있었고 레이스로 장식된 리본과 셔링으로 풍성하게 잡은 플레어 치마, 겨우 목에 건 슈미제트는 결국 난도질 되어 결국에는 유모의 호통과 어린 하녀들의 비명으로 티 파티가 끝나고는 했던 것이다. 태도를 휘두르며 장정 서넛은 거뜬히 이겨내는 이글 홀든에게 진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님에도 어린 자네트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으며 진심으로 분하다고 말했다. 대련을 요구하는 것이 귀찮아 칼 끝으로 툭툭 쳐내던 벨져의 칼날을 맨 손으로 붙잡아 기함하게 만들기도 했다. 자기보다 머리 하나 반쯤은 더 큰 이글을 기어이 진흙탕에 처박고 나서야 밝게 웃는 얼굴을 한 번 보여줬다. 그렇게 호탕하게 웃으면 이글은 너무 조그마한 계집애라 차마 때릴 수가 없었다고 소리치고, 그럼 다시 자네트는 이를 악물고 이글에게 덤벼들었다. 그런 어린애들이었는데, 이글도 자네트도 이젠 정말 어른이 되었다. 다이무스는 상대와 인사를 나누고 대련을 위해 자세를 잡았다. 황실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 주의할 생각이었지만 눈 앞의 상대에게는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선을 다해, 짓밟아줘야겠다. “삐익-“ 전광석화. 그 이상의 단어는 없다. 장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대련 시작 휘슬과 함께 시간이 멈춘 것을 느꼈다. “쓸데없는 것을 베었군.” 그 말과 함께 텅- 소리를 내며 자작이 쓰러졌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휘슬이 끝나고 시간이 움직인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자작의 실력도 나쁜 것은 아니라, 한껏 거들먹거리던 후작은 아들이 쓰러진 것을 보고도 어안이 벙벙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그나마 호위대 소속의 검사들이 속히 정신을 수습하고 자작을 장외로 끌어내도록 지시했다. 다이무스에게 수고했다며 인사하는 호위대 사이에서, 다이무스는 유난히 반짝이는 자네트의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저거, 신났다. 하여간, 동생들이란. |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