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사람의 아침.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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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7 21: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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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된 음악을 재생시킨 뒤 읽길 권장합니다.)
싱그러운 아침, 나이오비에게 있어 아침 식사 후의 하루 일과의
시작은 엘리의 머리를 빗겨주는데서 시작한다고 해도 무방했다.
"엘리, 이리 와!"
"으응!"
그러면 엘리는 자신의 큐빅이 다닥다닥 박힌 조그만 플라스틱 보물상자(나이오비가 사준 것이다)에서
그날 자기가 하고싶은 머리스타일에 필요한 소품들을 한아름 들고 나이오비에게 달려들곤 했다.
"이리 앉자, 엘리."
"응!"
그러면 나이오비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그 위에 엘리를 태우고는 머리를 살살 빗겨가며
엘리가 주문한대로 머리를 땋거나, 곱게 빗어주거나, 묶어주곤 했다.
그리고 나이오비에게는 이 옅은 우유향나는 부드럽고 앙증맞은 아이를 꼭 끌어안고 이렇게 머리를 빗겨주는 시간이
하루 일과중에가 가장 행복하고 보람찬 순간이었다.
"엘리, 양치했니?"
"으응...아직 안했어..."
"...그럼 아마 피터가 싫어할텐데? 입냄새 좋아하는 남자는 없..."
"엘리 이닦고 올게!"
그러면서 곱게 빗어진 머리를 이내 나풀거리며 세면대로 촐랑촐랑 뛰어가는
엘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나이오비의 가슴은
그 너무나도 귀엽고 발랄한 모습에 행복으로 그득 차 오르다가도
불현듯 떠오는 과거에 미어질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에밀리아..."
이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을때부터 나이오비는 숙명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했음을 짐작했다.
그 누구보다 빛나고 아름다웠던 딸 에밀리아.
그러나 운명은 마치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처럼 다가와, 니오베의 자식을 쏘았던 때처럼
그녀의 눈처럼 빛나는 아이를 무참이 앗아갔다.
신화 속 니오베는 울다 지쳐 돌이 되었고,
나이오비는 울다 지쳐 심장이 돌이 되었다.
아니, 돌이 되었다 믿고 살았다.
요기 라즈가 가르쳐준 명상은 나이오비를 점점 망각의 늪으로 침잠케 만들었다.
고요히 내쉬는 숨 사이로 과거는 옅게 허공으로 흩뿌려져갔고, 매번 밝은 달밤이면
에밀리아를 추억하며 방울방울 눈물짓던 날도 점차 잦아들어가고만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사이퍼가 영입되었단 소식에 복귀했던 연합 사무소에서
나이오비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에...에밀리아...!"
그리고 무릎걸음으로 기어가 그 사이퍼를 깊게 껴안으며 나이오비는 오열했다.
"에밀리아! 에밀리아...!"
그러자 어렴풋이 그녀의 과거를 아는 이들은 조용히 그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뒤로 돌아선 휴톤과 레베카는 남몰래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고
요기 라즈는 난처한 얼굴을 한 채, 눈을 지그시 감고 있을 뿐이었다.
이글은 '일이 생겼다'는 말과 함께 휑하니 밖으로 나가버렸고
루이스는 자신이 써야 할 손수건을 트리비아에게 건넸다.
그리고, 영문을 모르는 그 아이는 천진하게 자신의 앞에 무릎꿇은 나이오비를 껴안고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언니, 울지마요. 언니 울면 엘리도 슬퍼요.'
'그...그래...흐윽...에밀...아니 엘리야...그래...그래야지...'
그리고 그 날부터, 나이오비의 삶은 망각을 목적으로 한 억지스러운 명상으로 점철된 삶에서
웃음과 행복으로 가득한 나날의 연속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간혹 치열한 전투를 마치고 돌아와 피곤한 몸을 누이고 깊게 잠든 밤,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악몽속에서 에밀리아를 찾아 헤매다 지쳐 깨면
어둠속을 더듬어 엘리부터 찾곤 하는 나이오비였다.
누구보다 이 아이의 손에 피를 묻히기는 싫었고, 무엇보다 혼란과 죽음으로 점철된 전장에서
조그맣고 여린 이 작은새를 잃는것은 자신 스스로가 죽는 것보다 더 싫었다.
자신이 모든것을 짊어져야만 했다. 먼저 고혼이 되어버린 에밀리아를 위해서도.
그러나 일이 일인만큼 나이오비의 육체와 정신은 점차 지쳐가기 시작했고,
꿈속에서는 에밀리아 뿐만이 아니라 엘리 또한 손을 저어가며 저 멀리 떠나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두려웠다.
저 아이가 자신을 버릴까봐.
운명이 저 아이를 앗아갈까봐.
그렇기에 지극히 이성적 태도로 무신론을 고집했던 나이오비였지만,
어느순간부터 니오베라는 삶 뒤쪽에 숨겨진 이름과 다르게 그녀는 너무나도 낮은 태도로,
공손히 매번 하늘을 향해 기도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운명을 담당하는 이에게, 매일
'이 아이만큼은 제게 허락해주세요.'라고.
그렇듯 복잡한 심경으로 생각에 젖어있던 나이오비는 이내 자신을 부르며
세면대에서 달려오는 엘리의 목소리에 이내 상념에서 깨어났다.
"언니! 이 다 닦았어!"
"그래, 잘했어. 엘리. 아, 조심해!"
나이오비를 향해 뛰어오던 엘리는, 눈앞에 자신이 늘어놓은 보물상자를 미처 보지 못한 채
나이오비의 앞에서 크게 넘어 바닥에 쓰러졌다. 나이오비는 심장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나이오비의 심장은 과거 에밀리아를 잃었을 적, 겉에 씌워진 돌껍데기가 와작거리며
깨어져나갈만큼 미친듯이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엘리! 엘리!"
나이오비의 목소리는 히스테릭하게 울려퍼져나갔고, 그 소리에 연합 인물들이 저마다의 방에서 미친듯이 뛰어나왔다.
그리고 앞으로 쓰러진 채 일어날줄 모르는 엘리를 바라보며 그들의 얼굴 또한 사색이 되었다.
그리고 그 때, 엘리가 머리를 부르르 떨더니 다소 부끄러운 얼굴로 고개를 들며 말했다.
"에헤헤, 엘리 쿵했쪄..."
그 순간, 나이오비는 자신도 모르게 엘리 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 앉았다.
마치, 엘리가 처음 연합에 들렀던 그 날처럼.
그리고 나이오비는 볼가로 미친듯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낼 생각조차 못한 채
엘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엘리, 엘리는 이 엄마, 아니 언니...를 두고 절대, 절대 멀리 가거나...
떠나거나 하지 않을거지?"
나이오비는 무릎꿇고 깊게 흐느꼈다.
그리고 그런 나이오비를 엘리는 마주 안아가며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했다.
"응! 엘리는 나이오비 언니가 제일 좋으니까 절대로 어디 안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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