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글엘리] 육아일기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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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8 03:31:08
* 이 글은 현대AU로 배경이 사이퍼즈 세계관이 아닌 현대 입니다 *
* 이글X엘리가 아닌 이글+엘리 입니다. 커플링이 아니고 콤비에 가까워요 *
* 글을 읽는 것이 싫으신 분들은 뒤로가기 부탁드립니다 *
1.
“아! 싫어!!! 내가 왜 그런 귀찮은 일을 해야 하는 건데!”
“이글.”
“아니 그렇잖아. 스물넷이면 한창인 나이라고, 그런데 나보고 그런 일을 하라고? 아아. 싫어! 안 해! 못 해!”
“이글.”
“아 몰라! 몰…….”
쾅. 탁자를 세게 내려치는 소리에 놀라 반쯤 눈을 감고 자기주장을 펼치던 이글의 입이 일순간에 다물어졌다. 앞에 앉아있던 다이무스는 대체 누가 탁자를 내리쳤냐는 표정으로 가만히 식은 커피를 마시며 이글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하곤 자릴 일어섰다.
“오는 월요일이다. 그렇게 알고 가마.”
문이 닫히고 조용해진 방 안에 낮게 깔리는 한숨 소리가 남은 공간에 꽉 채워진다. 이글은 이 상황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할 필요를 느꼈다.
사건은 낮잠을 자고 있던 한가로운 오늘 오후로 부터 시작됐다. 제일 먼저 가족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교류가 적은 자신의 큰형에게서 방문 예고 전화가 왔다. 잘 살고 있는지 봐야겠다는 형의 전화였음에도 어딘가 찜찜했다. 평일에 업무 때문에 수면 시간이 턱없이 모자란 큰형이, 자주 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안 와 본 것도 아닌데 굳이 휴일에 찾아오겠다고 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어쨌든 온 다는 것을 말릴 생각은 없었던 그는 별 생각 없이 자신이 앉아있는 곳에서 집 전체를 빙 둘러봤다. 이글의 자취방은 혼자 살기엔 과하게 컸다. 셋이 살아도 충분히 넉넉한 공간에 쓸데없이 방이 많고 살림살이 또한 적어서 둘째 형인 벨져의 말을 빌리면 사람 사는 냄새가 안 나는 곳이다. 이글은 그걸 마음에 들어 했다. 어차피 음식은 사 먹으면 그만이고 청소는 청소부를 시키면 그만인데 살림살이를 늘릴 필요도 못 느끼겠고 좁은 집은 답답해서 못 있겠단다. 폼이라도 나려면 오히려 요란한 것보단 심플한 게 좋지, 그런 생각으로 집 전체는 블랙과 화이트 톤으로 바닥과 벽지는 물론 몇 개 없는 가구 역시 톤을 맞춰 구입했다. 덩그러니 걸려있는 액자틀까지 블랙으로 맞추고서야 흡족한 미소를 띠던 그는 집들이 때 방문했던 대부분의 친구들이 네 집 치곤 굉장히 깔끔하네? 하며 의아해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취향과 성격이 비슷할 거라는 건 심각한 편견 아냐? 하며 불만스런 표정을 짓던 이글을 바라보며 거실에 앉아있던 친구들은 멍해졌다.그도 그럴 것이 그의 친구들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이글 홀든은 한 번 사는 인생, 재미있게 살자는 주의였고 아주 착실하게 자신의 신조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원하면 먹고, 마시고, 놀고, 쉬고. 이 모든 것이 가능한 빵빵한 집안이 있고 두 팔 다리가 멀쩡한 자기 자신이 있었으므로 심각하게 자유분방 했다. ㅡ 사실 자유분방하단 표현은 이글의 것이고 주위 평판대로만 이야기하자면 그냥 망나니. ㅡ 어떻게 그 홀든에서 이런 애가 나왔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천리만리로 퍼져 나갈 때. 가장 골치가 아픈 건 그의 아버지였다.
이글의 아버지인 홀든은 자신의 막내아들이라면 두 손 두 발 다 든 상태여서 그의 출가를 딱히 막진 않았다. 그저 더는 사고를 치지 않길 바랐기에 몇 가지 조건을 걸었는데 그 중 하나가 '출가 이후 집의 부탁은 무조건 들어주는 것'이다. 홀든은 그에게 어려운 일을 시킨 적이 없다. 오히려 사고를 칠 것을 염려해 최소한의 일 또는 살짝 거드는 정도의 일만 시켜왔다. 그리고 이글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잘 알고 있기에 건성으로 대답하던 그의 태도에 홀든은 결국 화를 내며 만일 어길 시 집으로 강제소환 후 결혼 시켜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놨지만, 인생을 반 장난으로 사는 이글은 그런 아버지의 엄중한 표정조차 웃어넘기며 끝까지 건성으로 대답했다. 이후 “유치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표정을 지으면 하나도 안 무섭다고~” 하며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던 옛 생각을 하니 지금은 시간을 돌려 그때의 아버지를 말리고 싶었지만 이미 지난 일에 후회해봤자 할 수 있는 건 없다.
“……아, 몰라~”
될 대로 되라지. 어차피 지난 일과 엎질러진 물에 대해 생각해봤자 문제가 풀리거나 사건이 나아질 리 없는데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 굉장한 낭비라고 생각하며 그는 낮잠이나 잤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 월요일이 올 테지만 어쨌든 지금 당장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 아닌가.
* * *
딩동. 초인종 울리는 소리가 멀찍하게 들리고 침대에 혼자 누워 어제까지 마신 술의 강력함을 몸 전체로 느끼고 있던 이글은 환청을 들은 것 같은 몽롱함에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소리는 좀 더 선명하고 급하게 여러 번 울리기 시작했다. 딩동, 딩동, 딩동. 한참 울리던 초인종 소리가 순간 멈추더니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글!”
다이무스의 성난 목소리에 그는 속옷만 입고 있는 걸 잊고 현관으로 달려갔다.
“형, 지금이 몇 신데……. 엥?”
화난 표정의 다이무스 옆에 기척이 느껴져 바라봤으나 아무 것도 없어서 두리번거리던 그의 시선에 가볍게 무언가 포착됐다. 그의 정면에서 한참 아래로 내려가 무릎 정도에 닿아있는 작은 아이. 그제야 그는 머리를 망치로 세게 맞은 기분이 들었다.
“이거……야?”
“이거라니, 이 아이가 맞다. 이글, 이제부터라도 말 하나도 조심하면서 쓰도록. 4세 아동의 언어 발달에 조금이라도 해가 가지 않도록…….”
“아니 아니 아니, 형. 잠깐만? 지금 그러니까….”
“그 때 말했던 아이가 이 아이다.”
“아니 너무 어리잖아!!!”
“후…후으…후아아앙!”
이글이 낸 큰 목소리에 놀란 아이는 다이무스의 다리 뒤에 숨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이글은 지금 아픈 머리가 숙취 때문인지 지금 상황 때문인지 모르겠어서 시야를 살짝 가리던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현관에 기대 우는 아이를 바라봤다. 금발에 푸른 눈, 하얀 피부를 가진 아이는 볼이 통통하고 불그스레해서 생긴 것만 보자면 상당히 귀여웠다. 일단은 귀찮은 애라도 이왕 지낼 거면 예쁜 애가 좋지. 이 순간에도 그딴 생각을 하던 그는 아이와 눈을 맞추기 위해 자리에 쭈그려 앉아서 이름을 물어봤다.
“이름이 뭐야?”
“…….”
“이름……. 몰라?”
“이글, 이 아이는 지금 말을 못 하는 상태다. 선천적인 건 아니니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 수도 있는 모양이더군. 이름은 엘리노어 러브 캠벨.”
“아……. 알았다고”
“그럼 잘 부탁하지.”
다이무스는 엘리노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곤 나갔다. 이글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문을 닫곤 곰곰이 생각했다. 이 일을 어쩜 좋지. 저번 주에 다이무스가 이글에게 시킨 '그런 일'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아이 하나를 네 집에서 보살펴야할 것 같군.”
“어어 그래~ 여자아이지?”
“그래.”
“예뻐?”
“귀엽게 생겼더군.”
“큭큭 몇 살인데? 아이라고 했으니 열 살? 열세 살? 나이차이가 그 정도로 나면 곤란한데~ ”
“네가 말한 나이보다 어린 아이다. 그러니 나이차이는 그보다 더 하겠지, 곤란한 건 네 사정이니 어쩔 수 없다.”
“…잠, 잠깐만, 형? 농담이 아니고……?”
“…?……농담이라니.”
“진짜로? 진짜 나보고 애 키우라고?!”
“…그럼, 장난인 줄 알았나?”
저번 주 대화를 상기하니 이글은 속이 답답했다. 그때 빌어서라도 이 일을 막았어야 했는데. 엘리노어는 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휑한 집 어딘가가 불만인지 눈썹을 찡그리며 구석에 한 자릴 차지하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몇 분 동안의 정적을 깬 이글이 엘리노어를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야, 꼬맹이. 네가 생각해도 네 이름 좀 길다고 생각 안 하냐?”
“…….”
“매번 널 부를 때마다 엘리노어 러브 캠벨! 엘리노어! 해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입이 아파. 그렇다고 성인 캠벨만 부르면 너무 딱딱하잖아? 음…….”
그는 몇 초 정도 뜸을 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엘리, 어때? 엘리. 너도 괜찮지?”
아이는 구석에서 들은 척도 하지 않다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2.
엘리는 생각보다 밝은 아이였다. 말은 여전히 못 했지만 표정은 다양해서 의사소통이 힘들다가도 표정으로만 대화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였다. 만약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굉장히 장난꾸러기였을 거라던 다이무스의 전화 목소리에, 고작 며칠 같이 지낸 이글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했다. 한편 이글은 아이 다루는 것엔 서툴렀다. 밥을 해먹지 않으니 무언가 만들 줄도 모르고 사서 주자니 요만한 애가 뭘 좋아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매번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러 다녔다. 네 살짜리 애는 뭐 먹어? 다짜고짜 전화해서 하는 소리가 저러니 사람들이 수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람 저 사람 물어보고 다닌 지 어언 일주일, 결국 이상한 소문까지 돌기 시작했다.
“내가 그랬지? 이글 홀든 그러고 다니더니 결국 애 생겼다니까?”
아니라고! 지나가며 들린 이야기에 소리를 빽 지르며 부정하는 이글을 친구들이 달려와 토닥여주긴 했지만 사뭇 진지하게 위로하는 자신의 친구들이 그의 눈엔 더욱 얄밉게 보였다.그 꼴도 보기 싫은 얼굴들을 당장 치워버리기 위해 이글은 결국 모든 사실을 탈탈 털어놨다.그래서요? 흥미진진하네요. 팝콘 사올게요. 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또 다른 친구가 콜라도 라고 대답하는 걸 보며 그냥 말하지 말까 잠깐 고민했지만, 딱히 얘기할 사람이 없는 본인의 인간관계가 후회 될 뿐이었다. 그들은 몇 분 정도 잔뜩 기대한 표정으로 이글의 이야기를 들어주더니 이야기가 끝나자 식은 피자 같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 생각 보다는 건전한 이야기였네요. 그렇죠?”
“재미없긴.”
“야! 개새끼야 대체 넌 뭘 원하는데.”
“뭐겠어? 재밌는 거.”
“그래요. 전 말이죠. 적어도 홀든 씨의 숨겨진 자식이라는 소문 정도는 사실이길 바랐어요. 그게 재밌으니까요.”
악우. 이글은 저들을 그렇게 불렀다. 마틴 챌피와 까미유 데샹은 생글생글 웃으며 사람 환장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곤 한다. 물론 농담이다. 이글도 그걸 알지만, 저 말을 하면서 짓는 표정들은 농담과 진담의 여부를 떠나서 속을 박박 긁는 데가 있는 것이라 참기 힘들었다. 한참을 놀려대는 마틴과 데샹 때문에 잔뜩 약이 오른 이글이 아, 됐어. 됐어! 너네한테 물어본 내가 병신이지 하며 자릴 뜨려고 하자 그제야 마틴이 미소를 띠곤 눈썹을 팔자로 그리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렇게 몇 번을 더 사과를 받아내고서야 그는 마음이 괜찮아진 모양인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마틴과 데샹은 놀릴 거리가 떨어진 뒤엔 제법 진지하게 고민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야기가 이야기인 만큼 교내에서 자릴 옮겨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카페로 장소를 옮겼다. 이곳은 항상 편안한 느낌이 들어서 셋이 자주 오는 장소였다. 여느 가게와는 다르게 음악 대신 식기를 정리하는 소리, 커피 머신 소리, 가끔 청소기 돌리는 소리 등이 뒤섞여서 마음이 느슨해지는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오히려 취향 안 맞는 곡이 주구장창 나오는 것보다 듣기 좋다니까? 이글의 말에 마틴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서 시시콜콜한 이야길 주고받는 걸 듣고만 있던 데샹은 영수증에 무언가를 끄적이다가 가만히 펜을 놓고 이글에게 물었다.
“그래서? 아이를 혼자 돌본다고?”
“엉.”
“그럼 학굔 어떻게 왔어?”
“아, 학교 갈 시간에는 유치원에 보내라 하더라고…….”
그래, 아침부터 지옥 같았다. 어제까지는 일 하는 아주머니께서 집을 치워주는 겸 엘리까지 돌봐줬지만, 오늘부터는 유치원 셔틀 버스가 자신의 오피스텔 앞으로 온다기에 처음으로 유치원 보낼 준비를 했다. 제일 먼저 잠들어 있던 애를 깨우고 일단 씻겨야 하니 화장실에 데려가 얼굴에 물 칠을 하고 코를 풀어주고 수건으로 벅벅 닦아줬을 때부터 엘리는 뭔가 화가 나 있었다. 아직 친하지도 않아서 어떻게 풀어줘야 하는지 감도 안 잡히니 화가 난 아이를 내버려두고 이글은 옷을 찾았다. 며칠 전 다이무스가 보내준 택배 상자에 지나치게 많은 여자아이 옷들을 일단 자신의 옷장 한 구석에 처박아 뒀던 걸 기억해내고 옷을 꺼내온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골라준 옷 마다 휙휙 던지고 계절에 맞지 않는 얇은 옷만 꼭 껴안고 주질 않는 엘리 때문에 거의 한 시간 정도를 씨름하다 겨우 입혀준 옷에 음식을 흘리고 큰 방 어딘가에 숨어서 나오질 않았기에 오전 수업이 있던 이글의 아침잠은 아예 물 건너 가 버렸다.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유치원 버스에 탄 엘리는 버려진 강아지 같은 한 표정으로 이글을 바라봤다. 이글은 그 슬퍼 보이기도 하고 뭔가 바라는 듯한 표정은, 엘리의 다른 표정들과 다르게 복잡하고 알 수가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다 그냥 손 인사를 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엘리는 그 손 인사를 보더니 입을 쭉 내밀고 잔뜩 뿔이 난 채 혀를 쏙 내밀었다. 메롱. 그걸 본 이글이 야! 버릇없게! 라고 소리치려는 순간 셔틀 버스는 붕 하고 떠났다. 오늘 아침을 생각하니 그는 머리가 쭈뼛 섰다. 내일도 이 짓을 해야 해? 한숨을 쉬며 이글이 말하자 마틴이 혼자 하는 법을 가르쳐 봐요. 라고 대답했다. 그래! 혼자 하는 법! 야 너 천재다! 이글이 오버하며 말하자 데샹이 건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미 알고 있을 걸?”
“뭘?”
“혼자 하는 법.”
“그런데 오늘 왜…….”
“혼자 하기가 싫었겠지.”
“무슨 이유로?”
“글쎄, 나도 모르지. 하지만 보내진 아이라면 어떤 사정이든 애정에 목 말라있는 아이일 확률이 크잖아. 보통 그 나잇대 아이를 가진 부모는 웬만하면 아이 혼자 두려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보면”
데샹의 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그러고 보니 나한테 오기 전까지 어디에 있던 거지? 홀든가? 고아원? 고아원은 아니겠지……. 갑자기 이글은 급한 마음이 들었다.
“나 갈게.”
“어디가요?”
“애 데리러.”
* * *
여긴가. 난생처음 유치원 앞에 온 이글은 정신이 멍했다. 아니 여길 대체 어떻게 들어가라는 거야?! 입구부터 온통 빨주노초파남보 형형색색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총천연색의 빛깔이 그를 반기고 있었다. 오밀조밀 작게 만들어 놓은 작은 성과 과자 집 컨셉의 유치원은 문을 열지 않아도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간질간질하게 들려왔다.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자 왁자지껄함이 몸을 휩쓸듯 밀려오고 주변이 산만했다. 아이들은 문 열리는 소리에 일제히 현관을 바라봤다. 무척 실망한 표정으로 자신의 부모가 아님을 확인하고 고개를 돌리는 아이들 사이에 엘리가 그 큰 눈을 더 크게 뜬 채로 그를 바라봤다. 엘리는 갑자기 고갤 홱 돌리더니 도도도도 발소리를 내며 선생님의 치맛자락을 끌고 현관으로 나왔다.
“엘리노어 보호자 분이시죠?”
“아, 네.”
“가족...이신가요? 실례지만 관계가….”
관계? 뭐라고 해야 하지. 눈을 굴리던 차에 유치원 원장이 나와서 이글을 보더니 반갑게 맞이했다.
“도련님?”
“도련님이라니 누구…. 어? 한나!”
한나는 홀든 삼형제를 어릴 적부터 키워주던 유모였다. 쉰 나이에 돌연 홀든가를 나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다던 그녀를 홀든은 강하게 막진 못 했지만 섭섭한 것까진 숨기지 못 했다. 하지만 한나는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며 붙잡는 말을 부드럽게 거절하며 홀든가를 나와 유치원을 열었다.
유치원을 한다더니 여기였어? 네네. 여긴 그런데 무슨 일로……. 설마? 저희 원생 중에 벌써 도련님 아이가 있나요?! 크게 놀라며 이야기하는 한나에게 이글은 어색하게 웃으며 혹시 다이무스의 연락을 받은 적 없냐고 물었다.
“네, 받았지요. 엘리노어 때문에 오신거지요?”
“알면서 왜 그랬어.”
“적당한 장난은 긴장 풀기에 좋으니까요. 호호”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한나가 엘리에게 이리오라는 손짓을 했다. 엘리는 아무 거리낌 없이 한나에게 달려가 안겼다. 그것을 보자 이글은 굉장히 신기한 광경을 목격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 다루기에 능숙하네, 그렇게 이야기하자 한나는 도련님 같은 아이를 십년 이상 돌보다보면 세상 어떤 아이도 돌볼 수 있을 거예요. 라고 대답하며 엘리 신발을 챙겨서 자연스럽게 이글에게 건네줬다. 이글은 그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행동에 저도 모르게 엘리의 신발을 들었다. 작은 신발을 쥐고 있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 아래를 내려다보니 엘리가 멀뚱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 들어오는 발을 쥐고 신발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보기 좋은데요. 도련님, 이런 경험은 처음이시지요?”
“그럼 또 있었게?”
“……엘리노어를 잘 부탁드려요.”
이글은 그 말에 차마 대답하지 못 했다. 자신 없는 것에 대해 약속 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말문을 막아 버렸다. 엘리는 이미 먼저 밖으로 나가 있었다. 그는 그걸 핑계로 유치원을 빠져나와 엘리의 손을 붙잡았다. 집으로 가는 길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데 왠지 멀게 느껴진다. 그는 대답없는 아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야 꼬맹이. 넌 어디에 있다가 왔어?”
“…….”
“말하기가 싫어서 안 하는 거야?”
끄덕끄덕. 엘리는 말 대신 조용히 고갤 끄덕였다.
“왜 하기 싫은데? 내가 싫어?”
절레절레. 엘리는 그 질문에 세게 고개를 젓더니 이글의 한쪽 팔을 꽉 안았다. 그는 갑작스러운 행동에 깜짝 놀랐지만 기분 나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하루의 피로가 씻기는 듯 한 기분까지 들었다. 아, 이래서 힘들어도 아이를 키우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팔에 찰싹 붙어있는 엘리를 떼어놓고 무릎을 꿇어 눈을 맞추었다. 엘리는 이글이 억지로 팔에서 자신을 떼어놓자 야속함에 코가 매운지 입술 끝을 잔뜩 내리고 울먹거렸다.
“얌마. 내가 어디 가냐? 왜 뭐만 하면 날 버리는 사람 취급을 해?”
뚝뚝 눈물이 떨어지자 이글이 손끝으로 엘리 눈가를 조심스럽게 닦아주며 말을 이었다.
“나 어릴 때랑 똑같네. 나도 말야, 누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려고 하면 그렇게 울었대. 지금 너처럼. 아마 무서웠던 거겠지. 날 어디에 버리는 건 아닐까하고…….”
“…….”
“야 그만 울어. 아, 그래! 약속 하나 할까?”
이글은 그 말을 하면서 엘리를 안아 올렸다. 울던 아이는 커다란 품이 따뜻하고 편안해서 목에 얼굴을 파묻었다. 살살 추워지는 날씨에 혹시 감기가 걸릴까봐, 이글은 자신이 입고 있던 가디건으로 엘리 몸을 감싸주었다.
“네가 날 싫어하지 않는 이상 내가 널 먼저 버리는 일은 없을 거야. 약속할게, 그러니까 이제 오늘 아침이나 아까 그런 표정은 좀 짓지 마.”
엘리는 이글의 말에 아주 작은 힘으로 끄덕이다 새근새근 잠들었다. 이 아이가 행복한 꿈을 꾸고 일어나서 자신과 많은 대화를 할 수 있기를, 그런 바람이 엘리와 만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이글의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뵙는 것 같아요! 그사이 방학도 끝났고 봄입니다.
제가 쓴 글치고는 길죠? 원래는 1, 2편 분량을 묶었습니다. (노양심)
음~ 이글이 엘리를 맡아서 기르게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쓰기 시작했어요. 사실 작년 12월에 연재를 하기로 마음먹고서 장편으로 구상하고 썼었던 글인데ㅠㅠ 일이 많아져서 못 쓰고 내버려뒀었거든요. 근데 오늘 글을 쓰다가 급 현타가 와서 예전에 썼던 글을 뒤적뒤적하던 도중에 4월엔 다음 편을 꼭 써야겠다 싶어서 올려 봅니다! AU라서 그런지 한나 유모도 나오고 24라인도 평범하게 나오고... 애정이 보이시나요?
아, 처음으로 쓰는 이글엘리 커플링이 아닌 이글엘리 콤비 글이고, 매일 질질 짜거나(...) 누구 죽거나...() 아니면 둘 다 죽거나ㅋㅋㅋㅋㅋㅋ 했는데 그런 글이 아닌 말랑말랑한 글을 쓰니까 좀 힐링 되는? 그런 게 있었어요! 이래서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는 이글과 엘리 조합은 세계제일인 것입니다...! (존나 억지)
여튼ㅋㅋㅋ 정말 봄이 왔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네요~*'ㅅ'*
이제 곧 빛이 쬐는 만큼 꽃도 필 테고, 얇은 옷을 꺼내야겠죠. 두근거려요.
봄 만큼이나 따뜻한 하루가 되시길 바라며!
항상 모자란 글에 댓글, 추천 주셔서 감사합니다.
커미션/개인 홈페이지: http://paranoia2.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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