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이틀비] Melancholia
-
1,261
6
7
-
2015-03-11 02:26:54
* 글이 싫으신 분들은 뒤로가기 부탁드립니다.
>>BGM 들으실 분들 클릭<<
그녀에게 나는 습관이다. 뜬금없이 옆을 바라보는 것도, 커피를 마시려고 할 때 자연스럽게 컵을 두 개 꺼내는 것도, 누군가를 부르려고 할 때마다 전혀 다른 이름이 튀어나오는 것도, 기억하지 못 한다고 해도, 시간에 얽혀서 그녀 삶속에 깊게 파묻힌 나는
트리비아의 습관이다.
Melancholia
W by. Mang
For. D 님
처음 그녀는 가끔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 하곤 했다. 오랫동안 사귀어 온 연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 할 일이 몇 번이나 있겠느냐만 트리비아는 달랐다. 가끔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 하고, 평범히 날 바라보다 갑자기 타인을 바라보는 것 같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러다가 기억이 나면 몸을 휘감는 두려움에 잠시간 울기도 했고, 차라리 곁을 떠나달라고 소리 지르듯 이야기하기도 했다. 나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느꼈다. 분명히, 내가 모르는 어떤 변화가 그녀에게 생겼음을. 사랑하는 연인에게 생긴 큰 변화는 내게 종잡을 수 없는 것이어서 방법이 서툴렀던 나는 빗나가는 것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 화를 내기도 하고, 달래보기도 하며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결국 그녀가 나를 더 이상 기억하지 못 하게 된 날의 아침. 나는 그녀와 살던 집에서 나왔다.
병원에서는 나와 그녀의 관계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것이 그녀의 정신 상태에 좋을 것이라며, 넌지시 이야기 했다. 나는 졸지에 그녀의 세계에서 없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엔 그것이 슬프다기보다 화가 났다.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닌 나를 잊을 수 있냐고 그녀를 원망했고,거짓말 같은 현실에 절망했다. 받은 사랑도 준 사랑도 모두 내게만 남아있는 건 오히려 지옥이라서, 나 역시 그녀에 대한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차라리 그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더 한 고통은 그녀를 볼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혹시나 우연히 얼굴이라도 볼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서 그녀의 집 앞을 서성거리며 그녀를 기다렸다. 그렇게 우연을 가장해 마주치게 되면, 그녀는 내게 먼저 말을 건다.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마. 그냥 눈에 띄던 걸, 마음이 편해지는 목소리네.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하루가 지나면 이렇게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조차 완벽하게 잊으니, 당연히 나 없는 삶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파도 다음 날엔 ‘분명히 처음 봤지만 처음 본 것 같지 않은 신기한 사람’이 되어야겠지. 그게 지금 네 세계의 나니까.
어느 샌가 나는 이 상황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매일 아침 그녀 집 앞으로 가 새로운 관계를 쌓고, 그날 저녁에 그녀에게 모든 걸 잊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일을, 그리고 하루의 마지막 소원으로 품에 안으면 오늘 처음만난 사람과의 포옹에 당황하며 뿌리치려는 그녀를 눈물로 호소하며 억지로라도 다시 안아보는 일을.다신 만나지 말자는 말을 듣는 것을, 누구랑 착각한 건 아니냐고 하는 말을 듣는 일을, 다시 아침에 만나 새로운 사람이 되는 그런 것을, 아무리 익숙해져도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잖아.”
눈을 떴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건 장님 뿐만이 아니라, 이 칠흑 같은 악몽에 빠진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넘쳐흐를 정도로 눈부신 빛이 있어도, 내겐 한조각도 닿지 않아.트리비아 카리나가 없는 루이스의 삶은 그림자가 빛을 잃어 자신의 모습을 감췄으니까.
* * *
하루의 시작은 그녀의 집 앞으로 가는 걸로 시작해, 조금씩 다른 곳을 갔지만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트리비아는 항상 집 앞에 서서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은 모습을 한 내게 먼저 말을 건다. 나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면서 이런 신기한 기분은 처음이라고 말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낯을 많이 가리는 네가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건 내가 대상자라서 그런 거겠지. 불행 중 다행이야. 몸은 나를 기억한다는 거, 그거 하나 만큼은.
“누굴 기다리는 거야?”
“응.”
“앗, 나도 모르게 반말이 나왔네.”
“괜찮아.”
“후후. 생긴 것과는 다르게 마음이 넓은 남자네?”
“…….”
아무도 없는 곳을 슬쩍 보는 행동. 그건 내가 항상 왼쪽에 붙어 있었기 때문에 생긴 그녀의 습관일 것이다.
“또 왜 이러는 걸까. 있지, 난 이상한 습관 같은 게 있어.”
“어떤.”
“분명히 혼자 살고 있는데 커피를 마시려고 컵을 꺼내면 꼭 두 개를 꺼낸다거나, 침대에 잠들기 전 괜히 누가 있는지 더듬는다거나…. 이상하지?”
“…….”
“어머, 너무 붙잡아뒀나? 그럼….”
“차라도 마실래?”
“응?”
“할 일 없으면.”
이렇게 먼저 말을 걸 사람이 아닌 걸, 예전의 너라면 알고 있었겠지. 지금의 너는 내 제안에 어리둥절하다가 금방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는 그래 좋아, 한다. 같이 들어온 카페에서 커피가 나오자, 자연스럽게 각설탕 두 개를 내 컵에 넣어준다. 그러고는 놀란다. 아니 왠지 그냥 그럴 것 같아서, 휴…. 요즘 내가 이상하긴 이상한가봐. 항상 트리비아는 달게 먹는 날 위해 각설탕 두 개를 먼저 커피에 넣어주곤 했다. 그런 작은 습관들이 여전히 그녀 몸에 붙어있는 걸 바라보며 나는 몇 십번이나 반복한 이 상황에서도 눈물이 나올 것 같다. 그럼 애써 그걸 삼키며.
“괜찮아.”
괜찮지 않은 말을 한다.
저녁이 되어 그녀를 집으로 바래다줄 때, 처음에는 잘 들어가, 나중에 봐, 내일 봐 같은 말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녀에게 뜬금없이 사랑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럼 그녀는 아이처럼 웃으며 내 고백을 가볍게 넘긴다. 운명적인 사랑은 없다면서. 조금 더 무거운 남자가 되어보라 말하는 그녀 뒷모습에 나는 다시 한 번 사랑해, 하고 외치듯 말하면, 물기 가득한 목소리에 당황해 돌아본 그녀의 눈빛이 흔들린다. 또 다가온 이 상황. 온종일 참았던 눈물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밤, 새파란 공기가 찰랑이는 눈물 대신 마음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드는 시간. 그녀가 갑자기 눈물을 쏟는 내 곁으로 와서 정리되지 않는 상황을 정리해보려 애쓴다. 참기 힘들어서, 곁에 품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그녀를 붙잡아 억지로 품에 끌어안으면 벗어나려고 몸부림칠 것이다. 알면서 나는 그녀 손목을 붙잡는다.
아픈 건 나뿐인데 날 잃은 네 눈이 자꾸 슬퍼보여서 이게 내 착각인 건 아닐지 하며 마음 졸이는 일도, 매일 새로운 관계를 쌓고 마지막에 널 끌어안아보는 것도, 수백 번도 넘게 한 사랑한다는 고백도, 그 모든 것이 전부 괴롭기만 해. 가슴에서 널 밀어내는 일 같은 걸 할 수 있었다면 나는 이미 네 기억은 지우고 마치 너처럼, 그렇게 새롭게 살았을지도 몰라. 나 없는 세상이 아무렇지 않은 너처럼. 나는 속으로 계속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
그런데 오늘은 그녀가 우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먼저 다가와 품에 날 안는다. 너는 나를 절대 기억할 수 없을 텐데, 너와 내 시간은 오로지 내게만 있는 것일 텐데. 이런 일이 있을 리가 없을 텐데, 대체 왜.
“네가 나의 ‘습관’이니?”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물었다.
“그런 거야?”
안긴 채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이것 역시 오늘이 지나면 모두 잊어버릴 걸 알면서, 미련하게 오늘만큼은 그녀가 나를 습관이라는 형태로 말해주는 걸 기적이라고 여기며 잠들고 싶다. 내일은 달라질 거라며 내일은 내게 루이스라고 불러주며 똑같이 사랑한다 이야기 해줄 거라는 꿈같은 상상을 하고 싶다. 트리비아는 내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무슨 일이 생긴 걸까.너와 나는. 하곤 메마른 한숨을 쉬었다. 울음이 멈추질 않아서, 어린 남자아이가 엄마에게 안겨 울 듯 한참을 울다 고개를 드니 그녀는 나를 아주 예전의 나를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다. 이걸로 전부 괜찮아졌다.
사랑해, 내일이면 나는 네게 습관이었다는 사실조차 없는 지나가는 사람이겠지만. 내겐 모두 있으니. 그러니 괜찮아, 사랑해.
FIN
* D 님 커미션 입니다. 좋은 커미션 주제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혼자 가슴을 치며 썼어요.
* 여기서 트리비아가 걸린 병의 이름은 멜랑콜리아 병 입니다. (첨부된 그림 참고)
* 트리비아라면 자신이 생긴 작은 변화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엔 저렇게 루이스를 보고 느낀 것들(신기할 정도로 편하고 안정을 느끼는 등)이 자신의 이상한 습관과 연관되어있다고 생각하는 날도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 BGM 정보 : 불꽃심장 - 사랑해 "있어줘서"
* 좋은 글 쓸 수 있게 도와주신 D 님 정말 감사드려요! 날씨가 추우니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사랑해요!
* 커미션으로 들어온 글이므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문제시 무통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홈페이지에서는 특정 부분에 BGM이 흐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 홈페이지에서 보실 분들은 클릭
* 항상 모자란 글에 추천, 댓글 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댓글 다 읽어보고 있어요...UU*
개인 홈페이지 : http://paranoia2.tistory.com
트위터 : @Mang___
커미션은 이쪽>> 클릭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무섭습니다ㅠㅠ!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