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랑생일축하] Birthday 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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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1 00:18:25
* 팬픽 입니다. 글이 싫으시다면 뒤로가기!
* 제 글은 싫어하셔도 괜찮지만 팬픽이란 장르 자체를 미워하진 말아주세요ㅠㅠ
* 안 읽었다고 굳이 말씀해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차라리 무관심을 주세요.
하랑은 재단 건물 앞에 서서 하늘을 바라봤다. 가을 하늘은 누가 보아도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청량하고, 한 점 불어오는 바람은 겨울 냄새를 싣고 오는지 평소보다 쌉쌀하다. 그렇다. 저 끝부터 차갑게 얼어붙기 시작한 시월의 끝자락은 생각보다 시렸고 소년의 마음 한 구석도 어딘가 곱아있다. 제 아무리 어른인 체 하여도 열일곱 소년이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이를 바득바득 갈아가며 지내온 것도 벌써 몇 개월 째. 하지만 하랑은 이상할 정도로 향수병을 앓지 않았다. 타국의 음식이 입에 잘 안 맞는 것도 아니었으며 배우는 것이 더딘 편도 아니어서 말도 곧잘 했고 재단 사람들도 그가 생김새가 다른 동양인이기에 처음엔 신기한 듯 보긴 했지만, 냉대하거나 따돌리지도 않았기에 적응도 빨랐다. 그러니까 그가 이렇게 뼈마디 마디 스미는 것처럼 고향을 앓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단 이야기다. 그래서 하랑은 지금의 기분을 조절하는 방법을 알지 못 했고 살갗이 여린 갓난쟁이 마냥 온갖 것이 아프게 느껴졌다. 무얼 해도 집중이 안 되고 자꾸만 생각나는 추억의 그림자에 집어 삼켜질 것 같음을 느끼자 살짝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이것이 그들이 가끔씩 내게 물어보던 Homesickness(향수병)이구나, 하고.
“옜다.”
“에이, 미역 밖에 없우?”
“좋다고 웃으면서 답지 않게 투정은.”
……그 미역만 잔뜩 들어가 있는 시퍼런 국이라도 마시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던 소년은 고개를 두어 번 젓는다. 괜한 생각은 수련에 방해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평소 하랑은 그다지 수련에 미련이 있지 않았지만, 오늘은 집중할 다른 것이 필요하기에 이런 생각이라도 해야만 했다. 이 시간대의 재단 사람들은 각자 할 일 때문에 바쁘다. 평소 저녁이 다 되어가는 오후의 그는 농땡이를 피우러 메트로폴리스 근처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거나 했는데, 오늘은 영 그럴 기분이 아닌지 잠깐 바람을 쐬다 다시 재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느린 걸음으로 걷던 그는 가볍게 한 외출 치고는 몸을 으슬으슬 떨더니만 이윽고 손에 입김을 호호 불어 몸 구석구석을 녹였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몸을 녹이며 걷던 하랑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훅훅 불던 입김을 천천히 호오 불었다. 눈앞에 자신의 숨이 뽀얗게 피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하? 벌써 입김이 나오다니 귀신이 곡 할 노릇이네, 하고 생각하더니만 이내 피식거리기 시작했다.
‘영靈에게 곡 할 노릇이라니, 겁나 웃기네.’
하며 낄낄거리다가
‘……어휴, 웃을 일이 없으니 이런 걸로 다 웃네.’
하며 바로 한숨을 쉬었다. 재단 안은 밖과 다르게 따뜻했다. 하지만 그는 그 따뜻함에 괜히 속이 더 답답해져서 다시 밖으로 나가고 싶단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눈을 가리는 앞머리를 뒤로 넘기며 관자놀이를 지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솟아오른 욕지기가 나아지진 않았다.
“대체 이제까지 어디에 있었나.”
뒤에서 묵직하게 누르듯 들려오는 티엔의 목소리에 하랑은 구기고 있던 인상을 펴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요 앞에서 가을 좀 느껴봤지. 사부는 웬일로 이 시간에 서재에 틀어 박혀 있지 않고 나와 있어?”
“네 생일 아니던가? 오늘.”
“?”
“생일 아니던가.”
“아, 아니, 맞는데. 그걸 어떻게…….”
웃음기 없는 여전한 표정으로 생일을 말하는 그를 바라보며, 소년은 고개가 기울어졌다.
“따라 오도록.”
“어, 어디를!”
“…평소에 어지간히 제대로 안 하고 있는 모양이군. 따라 오라는 말에 겁먹은 소리부터 지르는 걸 보면.”
“……아이씨! 그런 게 아니라.”
“잔 말 말고.”
“아, 예.”
따라 들어간 곳은 재단의 응접실이었다. 손님이 오지 않는 이상 재단 사람들끼리는 잘 쓰지 않는 방으로 들어가자 하랑은 내심 이제까지 말 하지 않고 저지른 것들이 생각났다. ― 예를 들면 티엔이 꽤 아끼는 것 같은 도자기를 깨고 모른 체 한다거나 마틴이 가장 좋아하던 홍차를 홀랑 마셔버린 것 등등 ― 방 안은 커튼이 쳐져 있어서 어두웠다. 그 때 티엔이 앞장서서 걷던 걸음을 갑자기 멈췄고 티엔을 따라 생각 없이 걷던 하랑은 그의 등에 부딪혀서 넘어졌다.
“뭐야!”
“……어요?”
“엉?”
“…데리고…냐고요.”
“왔다……지금 뒤에….”
“뭐라고? 형씨들끼리 속닥거리지 말고 좀 크게 말해 봐!”
그 순간, 펑하며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하나씩 켜지는 촛불로 방 안이 환해졌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 한 하랑이 사람들을 하나씩 확인하며 미간을 좁히고 있을 때, 케이크를 들고 있던 마틴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생일 축하해요! 하랑 군. 이 초를 힘껏 불고 마음속으로 소원 하나 빌어봐요.”
“이거? 지금 이거? 입으론 말하진 말고?”
케이크에 꽂혀있는 초를 바라보며 하랑이 말했다.
“네, 비밀로 해야만 이루어진다니까요.”
하랑은 아직 상황파악이 안 되었지만 일단 마틴이 시키는 대로 초를 불고 속으로 소원 한 가지를 빌었다.
“빌었나요?”
부드럽게 미소를 띠며 묻는 마틴에게 아이는 어색하게 끄덕거렸다.
“오늘 생일이라고 해서, 저희 식대로 축하를 해보려고 했는데…….”
그의 말을 듣고서 하랑은 응접실을 둘러보았다. 그제야 곳곳에 남정네들의 손길로 어설프게 꾸며져 있는 것을 알아챘다.
“괜한 짓…이었을까요?”
하랑은 전혀 몰랐다. 재단 사람들이 자신의 생일을 알고 있으리라곤, 괜한 짓은 아니었냐며 묻는 마틴의 말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채 앞에 놓인 케이크를 바라봤다. 타국에 와서 가장 신기한 음식이었던 케이크는 고향의 떡보다도 부드러웠고 지독하게 달았다. 제삼이 녀석이 좋아할만한 맛이군. 입맛을 다시며 늘 했던 생각임에도 오늘은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온다. 그립다. 아아 그립다.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가슴 치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그립다. 이 사무치는 마음을 어디에 풀면 좋을까. 이 사무치는 마음을 어디에 풀면 좋을까. 이 계절, 지천에 굴러다니는 낙엽을 끌어 모아 불쏘시개로 쓰자. 그리고 이 마음도 그 위에 한데 섞어 태워버리면 되잖은가. 할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터진 눈물을 어쩌지도 못 하고 있는 하랑을 바라보던 재단 사람들은 어물쩍거리기만 하며 다음 행동을 취하지 못 했다. 얼마동안 남정네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울고 있는 소년의 눈치를 살피다가, 제일 연장자인 브루스가 상황을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판단하고 입을 열었다.
“울지 말게나.”
“…….”
“내 평소 신경을 많이 못 써줘서 미안하구먼.”
“…….”
다들 어느 정도 나이가 있고, 성인으로만 이루어져있던 재단에 처음 들어온 미성숙한 소년은 그들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조금만 더러운 것을 묻혀도 보기 싫은 티가 나는 흰 옷 같기도 했으며 아직 세공하지 않은 보석 같기도 했다. 그래서 재단 사람들은 이 아이가 누구보다 걱정됐다. 타국에 와서 홀로 지내는 건 비단 하랑 뿐만이 아닌 다른 능력자들 역시 그랬지만 저들의 소속이 아닌 타인의 이야기는 현실성 없었기에 등한시했다. 그리고 곧 후회했다. 조금 더 알아둘 걸, 미리 준비해둘 걸 하며.
사실 하랑의 생일 준비는 한 달 전 이야기로 티엔에게 스카우터 파일이 있었기 때문에 날짜는 모두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어떤 축하가 좋을지, 그 방식이 동양의 것이 좋을지 서양의 것이 좋을지, 또 어떤 말을 건네줘야 할지 등등 결정하는 시간이 길었을 뿐, 그리고 거듭한 고민 끝에 ‘지금 하랑’이 있는 곳의 축하 방식을 따르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제일 먼저 그 제안을 한 것은 다름 아닌 마틴.
“동양의 방식을 찾아서 축하를 해줘도 좋겠지만, 이제 계속 같이 지낼 거잖아요? 그렇다면 전 아무래도 계속 받을 축하 방식으로 축하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하던 말을 삼키던 그가 살짝 어두운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더 생각나면 안 되니까요. 하랑 군의 고향.”
그 말을 들은 사람 모두가 부정하지 못 하고 서로의 시선만 피하다 결국 그러기로 했다. 각자 속으로 신경 쓰던 고민의 끈을 그가 매듭 지어버린 셈. 어찌됐든 축하 방법은 결정됐으니 남은 문제는 선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두가 모여 선물을 고민하던 중, 브루스가 부끄러운지 우물쭈물하다 슬쩍 말을 꺼냈다.
“그, 하랑이가 목걸이를 차고 있던데.”
“아아, 예.”
“그, 그런 건 어떤가.”
“예?”
“그 왜 돌멩이 같은 거 있지 않은가. 하하!”
“보석 말씀입니까. 남자 아이에겐 조금…….”
“그렇다면, 덜렁 주기는 그러니까 엮어서 주는 건 어떤가요?”
“엮어서?”
“의미 있는 보석이라고 하면 탄생석 같은 거겠죠. 그런 걸 엮어서 팔찌 같은 걸로요.”
듣고 보니 하랑은 늘 목걸이를 차고 있었고 어쩐지 남자아이 치고는 보석 같은 장신구가 많은 편이었다. 티엔은 하랑의 취향(?)으로 보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셋 중 아무도 그 장신구들이 박수무당의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티엔은 브루스의 제안과 마틴의 의견대로 하랑의 탄생석을 찾았다. 10월의 탄생석은 오팔이었다. 변덕이 심한 나이의 아이. 오색찬란한 광채가 때때로 달라지고 주변 환경에 약해 쉽게 깨져버리는 것까지, 찾아보니 오팔이란 보석은 하랑을 꼭 닮아있었다.
* * *
“자, 다 울었을 테니 선물이다.”
껄껄 웃으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던 브루스가 선물이라며 하랑에게 건넨 것은 그들이 열심히 탄생석으로 엮던 팔찌였다. 가운데 가장 크게 빛나고 있는 오팔을 바라보던 소년이 뱁새눈으로 재단 사람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차암나, 계집애도 아닌데 뭐 이런 걸로 준비했우?”
“이 녀석!”
가장 발끈하며 뛰어든 것은 예상외로 티엔이었다. 사실 팔찌를 엮을 때 가장 공을 들이던 사람이었기에 마틴과 브루스는 그 반응에 웃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실로 오랜만에 모두가 ― 티엔을 제외하고 ― 넋을 놓고 웃다가 서로를 바라봤다. 고사이에 꽤 닮은 구석이 생긴 것 같다. 웃는 타이밍도, 갑자기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것도, 괜히 한 마디씩 핀잔을 주는 말투 같은 것까지. 그 당연할지도 모르는 변화가 하랑은 괜히 안심되는 모양인지 그 나이다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저어……. 다들 배고프지 않나요?”
아무도 케이크를 입에 대지 않자 눈치만 보던 마틴이 더는 참을 수 없는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하랑은 간신히 멈췄던 웃음이 또 다시 터지고 말았다. 한참을 낄낄거리며 웃자 민망한 마틴이 쀼루퉁한 말투로 ‘됐어요. 전 배고프니 먼저 먹을래요.’ 하며 포크를 케이크에 가져다댔고 나머지 사람들도 하나 둘 케이크를 맛봤다. 그리고 드디어 하랑도 마저 남은 웃음을 살살 가라앉히곤 포크에 손을 뻗는다. 스치듯 바라 본 그의 하얀 손목엔 어느새 계집 같다며 투정부리던 팔찌가 걸려있었다.
W by. Mang
Twitter. @Mang___
Site. http://paranoia2.tistory.com
* ㅅㅋ님 커미션 글 입니다♥ 쓰면서 정말 뭘 어떻게 축하해줘야 하고 선물은 뭐가 좋을지, 어떤 방식으로 할지 고민이 많았던... (재단 빙의) 해서! 결국! 하랑의! 생일! 선물은!!!! 탄생석인 오팔 팔찌가 되었습니다. 룸메이트가 하랑의 장신구 이야기(공식 일러보면 목걸이 하고 있어용)를 해서 완전 이거다! 하고 글을 썼는데 이것저것 더 붙이면 4,000자가 훌쩍 넘을 것 같아서 많이 잘라냈습니다.
- 그렇게 못 적은 이야기들 -
1. 오팔엔 재밌는 이야기가 많은데 그중 하나 적어보면, 그리스 쪽에서는 점성술사나 예언가 등의 사람들 (하랑도 같은 계열이죠) 이 영적인 능력을 발휘해야 할 때 오팔을 사용했다고 하고 로마 쪽에선 용한 점쟁이에게 주는 복채로 사용했대요. 예지력과 예언을 주는 돌이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이런 걸 하랑과 연결지어서 생각하면 참 재밌는 것 같습니다.
2. 오팔은 움직임에 따라 색이 바뀌는 유색효과로 유명해요. 그래서 셰익스피어 작품 중 십이야에서는 "너의 마음은 오팔과 같으므로" 라고 잦은 변덕으로 표현되기도 했고, 19세기엔 월터 스콧의 기엘스타인의 앤이라는 소설에서는 오팔의 잘 깨지는 특성과 (오팔은 보관이 좀 그렇대요. 수분이 많다나) 오팔을 즐겨 착용하는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오팔의 색이 달라지는 것으로 표현했고 주인공의 비극적인 결말 때문에(...) 불행의 보석이라 불리면서... 한참동안 착용 안 했다고 그러네요. 나머지 궁금하신 건 찾아보심 재밌으실듯!
* 보통 커미션은 커플링 위주로 들어오는데 논커플링으로 쓰니 이것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그랑플람 이야기를 전부 다 쓴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네요. 반성 또 반성
*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남탕♨ 그랑플람에서 가장 좋은 선물은 여자 소개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하랑: ♡♡
* BGM 정보 : Secret Garden OST Part 5, Track 6 Guardian Ang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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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미션으로 쓴 글 입니다. 하랑이 생일에 맞춰서 올리고 싶어서 기다렸다가 올려요~
매번 짧은 글만 올리다가 긴 글 올리니 긴장되는...UㅅU... 다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