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엔루시] 녹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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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6 01:55:13
* AU(패러렐)로 같이 살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다만 사제지간인 것은 같습니다.
“사부 뭐해?”
여름 오후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더웠지만 에어컨의 차가운 공기가 곳곳을 훑어주며 열기를 달래니 꼭 다른 세상 같다. 우웅거리며 종일 중얼대는 에어컨보다도 못 한 그는 대답 없이 그녀의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친 여자는 웃고 있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보던 신문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뭐하긴.”
“차 마실래?”
“……뭐 좋지.”
다소 차가운 그의 말투가 익숙한 모양인 여자는 긍정적인 대답에 환히 웃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남자는 그제야 굳어있던 표정을 느슨하게 풀며 주방 쪽을 바라보았다. 꽤나 사랑스럽다는 눈빛이다. 여자가 오면 금세 거둘 표정이라는 것이 아쉬울 정도의 애정이 묻어나있었다. 여자는 콧노래를 부르며 다기(茶器)를 꺼내고 있었다. 사부 뭐 마실 거야? 멀리서 들리는 상냥한 목소리에 그는 본인의 표정과 전혀 다른 목소리로 국화차를 부탁했다. 도저히 그의 얼굴색과 매치되지 않는 묵직한 목소리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는 그녀에게 만큼은 이 마음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혼자만 알고 싶은 소중한 비밀을 누구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이 그의 마음 귀퉁이에 얼어붙어 있었다. 허나 녹여낼 노력은 하지 않는다. 꽁꽁 언 채로 있는 것이 그와 그녀를 이 관계로 있을 수 하게 하는 유일한 감정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에겐 이 빙점(氷點)이 자신과 그녀 사이를 유지 될 수 있게, 평정을 잃지 않게 하는 온도라는 것이다. 마치 이 더운 여름 날 에어컨처럼.
“으앗!”
주방에서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작은 비명소리가 났다. 그는 근 한 달 중 가장 빠른 반응으로 주방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야, 괜찮아? 어디 다쳤어? 같은 말 따위가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재빠르게 달려가서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그 정도로 그 소리가 그에겐 걱정스럽게 들린 모양이다. 무언가 깨진 것에 손가락이 베인 건 아닐까, 발바닥에 유리 조각이라도 박힌 것은 아닐까, 차라리 작은 벌레를 보고 놀란 것이면 좋으련만.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는 계속 불행 중 다행을 찾으려 했다.
그녀는 뜨거운 물을 차 주전자에 붓다가 손을 살짝 데였다. 그리고 그것을 놓쳐 주전자가 개수대로 굴러 떨어졌다. 별로 큰 상처는 아니었는데 크게 놀라서 자신 앞에 서있는 그를 보자, 그녀는 그보다 더 놀라서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대로 굳었다. 그는 화가 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구에게 화를 낼지 몰라 가만히 있는 그녀에게 화가 났다. 그 무서운 표정에 여자는 잠시 움츠러들었다.
그런 그녀 마음도 모르고 그는 빨갛게 부어오른 손가락을 더 이상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는지 수도꼭지를 거칠게 찬물 쪽으로 틀어 손목을 잡아채듯 끌고 흐르는 물에 가져다댔다. 당기는 힘이 워낙 센 탓에 미간을 찌푸리는 것을 본 그는 당황한 눈빛을 애써 숨기며 서서히 힘을 빼고 말없이 그녀의 데인 손가락을 씻겼다.
분명 에어컨을 틀어놓은 방 안은 시원했고, 그에겐 그와 그녀 사이가 유지 될 수 있는 빙점이 있었을 텐데, 어느 샌가 더운 공기가 흐르다 이내 녹아버렸다.
지인 분 드린 글 입니다. 티엔루시 흥해라! 트위터는 @mang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