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글엘리] 가라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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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7 18:53:36
집 전체에 검은 그림자가 짙게 깔렸다. 이미 그 하얀 방은 검은 방이라 말해도 무색할 만큼 칠흑일 것이다. 복도 끝부터 들려오는 여자의 울음소리를 나는 잘 알고 있다. 알고 있기에 방 문 곁에 서있지만 들어가진 않는다. 날 보면 더 울어버릴 그녀 얼굴은 익숙해지지 않기 때문에…. 난, 지금 후회하는 중이다. 아마 그렇다, 확신할 수는 없다. 난 언제나 이렇게 후회하면서도 같은 일을 반복하고 다시 또 후회하기 때문에 이런 변덕은 하루에도 몇십 번씩 반복된다. 그러니까 후회하는 사람의 행동 패턴은 아니다, 절대로
시선을 돌리는 얼굴을 낚아채곤 그 눈물 맺힌 눈을 무시한 채 키스하고 버리듯이 내팽개친다, 그런 주제에 언제나 뒤따르는 후회가 속을 메스껍게 해서 한동안 곁에 다가가지 못한다. 내가 이런 남자였던가. 울음소리에 귀를 막다가도 눈앞에 밟히면 미치겠는 여자, 손에 닿는 것조차 아까워서 건드릴 수 없던 여자, 하지만 이미 강은 건넜고 그때의 나는 죽은 지 오래다. 그 푸른 눈이 내 곁을 떠나려고 할 때마다 손이 더 거칠어진다는걸, 왜 모를까. 처음엔 보는 것도 닳지 않을까, 하고 무서웠다. 그 무서움이 지나치니 곁에 갈 수 없었다. 갈 수 없으니 그녀는 내 곁이 아닌 다른 사람 곁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달려가서 잡았다. 잡은 후에는 놓치고 싶지 않아서 발버둥을 쳤다. 가라앉는 물속에서 치는 발버둥은 점점 내 발목을 잡고 밑으로 끌어당겼다. 옛날의 나는 확실히 그때 죽었을 것이다.
"그만 울어. 제발"
내 목소리에 뚝 끊기는 그 울음의 대답이 두려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문 밖에서 이야기 한 후 자리를 떠났다. 내가 떠나는 소리를 들은 그녀는 분명히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올 것이다. 그리고 또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로 도망치려고 애를 쓰겠지. 이제 좀 관둬주면 안될까, 엘리노어.
"나갔다 올게."
"어딜"
"그냥, 바람 쐬고 싶어."
그 말에 나는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
"어디 가는지 뻔하게 알고 있는데, 자꾸 이렇게 거짓말할래?"
"……아니야 오빠가 생각하는 곳에 안 가."
"야."
"이글 오빠…. 오빠가 이러면 내가!"
나왔다. 이 눈, 이 눈 때문에 내가 미쳐버릴 것 같다는 걸 왜 모르는 걸까. 도망가려고 하지 마. 힘든 건 너뿐만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거리를 좁혔다. 뒷걸음질 치다 벽에 부딪치는 그녀 표정에 심장이 내려앉는다. 이렇게 거부하는 것을 못 보겠으면서도 해버리고 만다. 투명한 피부가 빛이 들어오지 않아도 반짝이는 것 같아서 얼굴을 쓰다듬었다. 눈을 질끈 감다가 입맞춤이 아닌 손길이라는 걸 알고 놀란 모양인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니야 정말이야…. 믿어줘"
"믿을 수 있게 해봐."
"…싫어…. 오빠, 제발 하지 마…."
"정말?"
화난 얼굴을 하얀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앓는 소리가 귀에 스친다. 찰랑이는 금발의 머리카락은 귀를 지나 어깨를 덮고 있다. 디올 땅뜨르 쁘아종이라니…. 이걸 뿌리고 대체 어딜 가려고 한 걸까. 들려오는 여린 한숨에 숨이 가빠 온다. 집착이란 것은 한 번 똬리를 틀기 시작하면 그 자릴 좀처럼 내주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깊숙하게 몸 구석을 지나면 닿는 곳은 단 한 곳밖에 없다. 슬쩍 쳐다본 아이가 붉은 숨을 내뱉는 것이 느껴진다. 눈도 감지 않은 채 눈물을 떨궈내는 것에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리고 다시 입을 맞춘다. 말랑한 입술은 굳게 다물고 있다가 힘을 이기지 못하고 스르르 열린다. 손으로 가린 눈가에서 촉촉하게 배어 오는 눈물을 애써 모른 척하며 계속 음미한다.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음에 가슴을 치던 내가, 쥐면 부서질까 봐 네 손끝 하나 건들지 못 했던 내가, 이렇게나 망가져버렸다는걸, 그리고 그 이유가 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제발, 도망치지 말아줘.
fin
* 설정상 엘리의 나이는 성인, 이글은 지금 나이보다 다섯살 정도 많은 걸로, 패러렐(AU) 입니다.
* 엘리가 가려고 했던 곳은 제 안에 있지만 상상은 자유롭게 해주세요.
* 패러렐이라고 했지만 기본적인 틀은 원작기반 입니다. 엘리를 아끼는 것도, 어릴때부터 같이 살고 있던 것도 같습니다.
이글과 엘리가 살고 있는 곳은 홀든가에서 따로 내어준 별채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꽤 크겠죠?
* 평소에 풀었던 썰 중 하나인, 우는 눈 가리고 키스하기, 과한 집착 등등을 우겨넣어서 묘한 분위기지만 별로 큰 씬이 없어서
분위기만 이런거지 야하지 않잖아요? 전혀? 안 그래요? 왜 그렇게 봐요? 수화기를 내려놓으세요. 아직 감옥가기 싫어요!
* 아, 글에 나와있는 디올 땅뜨르 쁘와종은 향수 이름 입니다. 비누향이 나면서 사람을 확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향 입니다.
* 쌍*님 드리는 글 입니다. 그림에 비하면 턱 없이 모자라지만 재미있게 읽으셨음 좋겠어요^^
다들 좋은 하루 되세요.
+ 예전에 개인홈에 써뒀던 글 긁어왔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셨음 좋겠어요///♥ 이글엘리 사랑해
+ 위 후기에도 써있듯이 제가 정말 좋아하는 존잘님 드렸던 글 입니다. 꾸꾸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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