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베오비] 녹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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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7 01:08:53
녹다(melt)
그녀는 불이고, 나는 철이어라. 불과 철은 상극이라고, 언젠가 나는 들은 적이 있다. 불은 철을 녹인다. 불은 철을 다듬고 철은 불이 된 철을 수 백회 두드려 쓸 만한 것으로 만들어낸다. 불은 철을 파괴하고, 철을 만들어낸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참으로 옳은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나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진정으로 '쓸 만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녀가, 그리고 내가 필요했다.
이것은 내가 늦은 때에 깨달은 첫 사랑 이야기 쯤이 되겠다. 대개의 첫 사랑 이야기가 그렇듯이, 나의 이야기도 별 다를 바 없이 지루하다. 하지만 오해하지는 말길 바란다. 그것이 나에게 지루했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에게 지루하게 들릴 것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나의 일을 당신들이 직접 겪어보지 못했던 탓이요, 그에 따라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당신들에게 전해지지 않는 감정이 반드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당신들이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길 원했기 때문이고, 나와 그녀의 이야기가 다른 이들의 추잡한 상상에 의해 훗날 몇몇 잡배들의 술안주거리로 마구 씹혀대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날 당신들이 밤을 보내기가 지루하다며 나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을 때 하루간의 시간을 달라고 했던 것이다. 정리되지 않고 흐릿한 나의 기억이 어떤 말실수를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에.. 그날 밤 나는 오래 고민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지. 그렇게 나는 여기 적어둔, 정리된 나의 기억을 당신들에게 그냥 들려주려 한다. 이해하지 못한대도 좋고, 시시하다고 여겨도 좋다. 그냥 들어주길 바란다. 그냥 내가 말하는 대로.
레베카 러쉬톤. 이것은 나의 이름이자, 앞으로 당신들이 내 이야기에서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두 이름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일단 '우리'의 이야기에 앞서 '나'의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나는 본래 이곳 사람이 아니라 스위스에서 나고 자랐다. 흔히들 말하듯 나는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스위스 산골짝에서 멋지고 성실한 아버지와 아름답고 현명한 어머니 아래서 그럭저럭 티 없이 자랐다. 그러다가 조금 머리가 커지고선 소위 말하는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젊은 뜻에, 여자의 몸으로도 망설임 없이 경찰에 지원했다. 내 입으로 하는 말이지마는, 그래도 경찰로서 사회에 봉사하는 몇 년간 처음 뜻을 잊지 않고 나름 성실하게 일해 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나는 내 일이 즐거웠다. 일단 항상 꿈꾸어왔던 일이라 보람차기도 했고, 제법 나쁘지않은 실적과 주변의 평판, 멋진 동료들과 친구들, 한바탕 일이 끝난 후의 한 잔의 맥주. 나는 이 모든 것에 만족했고, 내가 지키는 이 정의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자부심은 오래가지 못했고, 그 모든 것들은 나의 젊은 착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경찰에 들어오고 나서, 나는 많은 진실들과 마주해야 했다. 그 중 하나는, 나의 자랑스러운 조국 스위스는 국가의 부흥이라는 명목 아래서는 어떤 비열한 범죄나 속임수라도 암암리에 전부 합법이 된다는 것. 내가 조금 더 젊었던, 그러니까 신입일 때는 이 관행을 고쳐보려는 패기가 있었다. 경찰 기자를 설득해 진실을 알리는 기사를 내 보려고도 했고, 진실을 캐내려 몰래 높으신 분의 집무실에 침입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패기가 아니라 차라리 객기였다. 오랫동안 지속된 이런 관행이 한 명의 어린 여경에 의해 단숨에 바뀔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마치 내가 무엇이라도 된 듯 설치고 다녔던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아무튼 간에 그 사실들을 알게 되고 나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확고하게 믿고 있던 것으로 부터 배신당했을 때의 충격과 실의는 상상 이상이었다. 이 이상(理想)과 맞지 않는 짭새일을 계속 해야 하는 걸까. 내가 도대체 뭘 믿고 살아왔다는 말인가? 센 강 다리 위에 선 자베르 경감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에 때려치기에는 여태껏 내가 이룩해 온 것들이 너무나도 아까웠을 뿐 더러, 아직 나는 나의 소명인 경찰이라는 직업에서 느끼는 보람을 부정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솔직히 그 보다도 나를 고민하게 한 점은, 내가 경찰을 그만두고 나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나는 다른 일을 배워 본 적이 없었다. 그 적은 월급으로 착실하게 저금을 해 밑천이 있었던 것도 아니거니와 따로 기술이라던가를 배운 적도 없었다. 속물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계의 절박함은 나를 계속 경찰에 묶여있게 만들었다. 매일 일이 끝난 저녁, 혼자 집에서 맥주 한 캔을 따면서 나는 고민했고, 또 오늘도 그냥 보내버렸다는 생각에 마음이 텁텁했다. 그리고 속상함에 울며 잠에 들고는 다음날엔 또다시 열심히 일하기를 반복하는 조울증 같은 일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자고 일어나도 영 개운치가 않고, 등 근육이 거북이 등딱지마냥 딱딱하게 굳어 뻐근했다. 처음엔 그저 열심히 일했나보다 하고 약국에서 잘 듣는 약을 사다 먹었지만, 그 딱딱함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심지어는 끓는 열까지 나면서 몸살이 난 듯 아프자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설마 비극처럼 꼭 죽고야마는 불치병 같은 것에라도 걸린 걸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면서. 그 통증의 해답은 얼마 지나지않아 밝혀졌다. 갈수록 심해지는 통증 때문에 난생 처음 휴가를 내고 샤워를 하러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을 때. 나는 내 등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얀 맨살이 갑자기 금속의 은백색으로 물들어가더니, 딱딱하게 굳어 등 전체와 팔, 다리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그 은백색은 굳고 깨지는 소리를 반복하며 이내 온 몸을 뒤덮었다. 나는 당황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갑자기 오르는 고열에 현기증이 나 외마디비명과 함께 정신을 잃고 털썩 쓰러졌다. 딱딱한 욕실 바닥에 쓰러졌는데도 이상스럽게 아픈 느낌은 전혀 없었다. 몇 시간 후, 나는 일어났다. 벌거벗은 채로, 집 욕실 바닥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그 때 휴가를 낸 것이 참말로 잘 한 일이다. 그 꼴사나운 모습을 남들에게 보일 수는 없는 일이잖는가? 좌우간 나는 일어나 흐려가는 정신을 잡고, 손과 발을 움직여 보았다. 다행히 손, 발, 다리, 목 허리.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꿈이었나 싶어 손을 짚고 일어나자, 다시 그 은백색이 손을 타고 뒤덮었다. 놀라 힘을 빼버리자, 이내 그 은백색은 사라졌다. 그 날이 지금 내 테라듀 능력이 발현된 첫 날이었다. 그 때는, 그리고 상당히 오랫동안 나는 제법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그래서 이 능력을 가진 것이 휴일마다 착실히 교회에 가서 기도를 했던 덕분이라고 생각을 했다. 나는 이것을 신의 선물이라 여겼었다. 지금은 신앙심도 약해지고, 그런 생각은 접은 지 오래이지만...... 처음에 생각하기를, 신에게서 받은 이 성스러운 힘을 좋은 일에 써야겠다,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이내 잦아들었다. 이 능력을 보여주고 사용한다면 나는 단숨에 경찰 안에서 주목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더 중요한 일을 맡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맡지 않고 싶은, 내가 말하는 더러운 일도 맡아야만 할 때가 올 것이다. 또, 그렇게 된다면 지금의 동료들도 잃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판단을 내려버린 나는 그렇게 능력을 숨기고 계속 경찰 짓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새로 생긴 나의 능력에 관심이 뺏기자, 이전의 고민은 어느새인가 뒷전으로 밀려나 '경찰 일을 한다' 라는 것은 당연한 것 처럼 되어있었다. 그리고 나는 예전처럼 열심히 일했다. 그가 오기 전 까지는.
잠깐, 숨을 돌릴 시간이라도 주길 바란다. 목이 타는 듯 하니, 맥주가 이 낡은 여관에 있나? 아니, 됐다. 맥주가 있다해도 이야기가 끝난 다음으로 미루겠다. 술에 취해서야 제대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니. 차가운 물 한잔을 부탁한다. 얼음은 다섯 개 띄워서. 저민 레몬을 끼워주면 더 좋고.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더라? 아, 그, '그 '까지 말했었지. 그가 누구냐 하면, 그 날로부터 몇 개월 후, 어느 날 갑자기 경찰서에 찾아온 하얀 가운을 입은 추리한 행색의 인도인 이었다. 나는 그 때만 해도 인도인, 아니 동양인은 처음 보는 것이어서, 신기해하며 동료들과 같이 뒤에서 그 사람의 생김새를 여기저기 짚어가며 낄낄댔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무슨 종이를 꺼내들더니, 안경을 가는 손가락으로 치켜 올리곤 동료를 한 명 불러서 제법 능숙한 프랑스어로 무어라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영어도 아닌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에 놀랐고, 또 그를 맞이한 나의 동료가 하는 말에 더욱 놀랐다. 그가 말하기를 나를 불렀다는 것이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냐고 재차 동료에게 물었지만, 그가 분명히 레베카 러쉬톤을 불렀다는 것이다. 나는 의아해하며 달갑잖은 표정으로 그 인도인 앞에 섰다. 가까이서 보니 그 인도인은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키가 작달막하고, 피부도 까무잡잡한 것이 먼발치서 볼 때보다도 신기하고 우습게 보였다. 그래서 갑자기 장난기가 돌아, 상냥한 표정을 띠고 '독일어'로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네, 레베카 러쉬톤 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동료들은 내가 그를 놀리는 것을 보고(내 독일어가 유창하지 못해서 일지도 모른다.) 뒤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 듯 했다. 그런데 그 인도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뜻밖이었다. 그는 싱긋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나보다도 훨씬 유창한 독일어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네, 레베카 러쉬톤 경관님. 잠시 저와 얘기를 하실 수 있을까요? 잠깐이면 됩니다. 경관님의 업무에 절대 지장을 드리지 않을 것을 약속하죠. 그리고 독일어 악센트가 익숙하지 않으신 듯 한데, 그냥 프랑스어로 얘기하셔도 됩니다."
나는 순간 뭔가에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주변의 동료들도 당황한 듯 쑥덕거렸고, 그 인도인은 여전히 빙긋이 웃고 있었다. 나는 당황스럽고, 또 부끄러워 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얼떨결에 말을 더듬으며 프랑스어로, 네, 라고 답해버렸다. 하지만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갔을 때, 나는 그가 찾아온 것이 크나큰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인도인 남자는 자신을 '요기 라즈'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라제쉬 라마누잔 이라는 본명이 있다는 것과, '지하연합'의 스카우터라는 사실을. 같이 산보를 하며 어색한 이야기를 나누다, 그는 말해줄 것이 있다며 종이 한 장을 꺼내 가르쳐준 적도 없는 내 프로필을 읽어내려 갔다.
"레베카 러쉬톤, 여성, 스위스인, 22세, 형제는 여동생과 남동생이 1명 씩 있고, 키 169cm, 몸무게 56kg.. 가슴.."
나는 순간 소름이 죽 돋으면서 거기서 말을 끊어버렸다. 무서운 생각까지 들었다. 이 자는 무엇 이길래, 나에 대해서 이렇게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말인가? 나는 조용히 주먹에 힘을 주어 쥐었고, 손목을 타고 은백색 기운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그런 나와 손목을 번갈아 지켜보다, 다시 아까의 그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역시. 확실하군요. 아,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몇 가지 확인절차이기도 하고...... 또 연합이 당신에게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는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해서 말이에요."
그래도 나는 경계를 늦출 수가 없었다. 지하연합. 헬리오스와 같이 능력자들의 권익추구를 위한 집단이라지만 결국 범죄조직이 변모한 집단이 아닌가. 그런 곳에서 감히 경찰인나를 주시하고 정보를 캐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불쾌감이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화로 이성을 잃기 전에 딱 잘라 거절해 그를 적당히 돌려보낼 요량으로, 나는 최대한 단호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붙이려 했으나 그는 나의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요즘 고민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갑자기 날아와 정수리에 꽂힌 그의 그 말에 나는 잊고 있었던 한 가지를 기억해 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또 다시 천치처럼 그의 말에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저희가 그 고민을 해결해 드릴 수 있는데, 어떻습니까?"
"그건 또 무슨..."
그는 내가 마저 말을 잇기도 전에 사뭇 단호해진 어조로 딱 잘랐다.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지하연합에 들어와서, 저희에게 힘을 보태주세요. 저희는 경관님이, 아니, 레베카씨가 필요합니다."
그의 미소는 나로 하여금 그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도록 감정을 주무르는 듯 한 마력이 있었다. 그래서 여태까지도 그의 말을 멍하니 듣고만 있었는데, 단호한 그의 모습은 그 보다도 더한 것이었다. 주물러서 물러질 대로 물러진 감정의 한가운데에 칼을 꽂아버리는 듯 했다. 그래서 그 말은 정말로 말도 안 되는 뜬금없는 제안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제법 그럴듯한 제안으로 들렸다. 하지만 아직 이성의 끈을 잡고 있던 터라, 나는 주저했다.
"저, 저기 죄송하지만.. 저는 지금 하는 일이 있고, 또 아직 관두고 싶은 생각은.."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빙긋 웃고는 다시 가방 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고 말했다.
"경찰 일은 3년 전에 시작하셨더군요. 2년 전 쯤에 기자와 폭로 기사를 낼 예정이었지만 폐기되고요, 그 이후로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여러 번 진급이 취소되었더군요. 하지만 최근은 나름 순탄한 것 같은데...... 정말로 관두고 싶지 않으신 건가요?"
그 말에 잠시 멈칫했다. 잊고 있었다. 더 젊었을 때의 객기 아닌 객기를. 어느새 나는 겉으로만 정의와 신념을 외치면서, 사실상은 그들이나 다를 것 없이 불의를 묵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나는 객기조차도 부리지 못할 정도로 비겁해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나는 확신이 서기 시작했다. 나의 표정을 본 그는 다시 조금 격앙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희 연합이 마피아가 모태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과거가 무엇이 그리 중요합니까? 중요한 것은 저희가 지금 레베카 씨와 같은 능력자들의 보호와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저희는 레베카 씨가 필요합니다. 같이 정의를 위해 싸워주세요. 저희에게 힘을 실어주십시오."
그는 '지금' 이란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어느새 경관님, 이라는 칭호도 다 떼버리고 그는 '레베카 씨'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가 말한 그 말은, 나에게 완벽한 확신을 주었다. 그리고 나의 뇌리에, 어릴 적 사이퍼였던 친구와의 한 약속이 맴돌고 있었다. 커서, 꼭 친구 같은 사이퍼들과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그는 안경을 다시 치켜 올렸다.
"..죄송합니다. 감정이 조금 격해져서.."
그러면서 그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낡은 명함 하나를 건넸다. 거기에는 '스카우터 라제쉬 라마누잔'이라는 이름과 연락처와 함께, 주먹과 창으로 상징되는 지하연합의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이걸 보시고, 확신이 서신다면 이 쪽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라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내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발길을 돌려 멀어져 갔다. 나는 명함을 들고는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날 저녁, 나는 서장의 책상에 경찰 뱃지와 권총을 내려놓았다. 서장은 영문을 몰라 나에게 계속 이유를 묻고 어르고 달랬지만, 나는 이제 그만 쉬고 싶다는 말 밖에는 하지 않았다. 서장도 마침내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알았다, 하며 나의 송별회를 준비해주었다. 울면서 나중에라도 연락하자는 동료들과 마지막 한잔을 하고서, 나는 송별회가 열린 바(Bar)를 나왔다. 밤공기가 찼다. 술기운에 벌개져서는, 그 찬 공기를 나는 힘껏 들이켰다. 머릿속을 씻고 나가는 듯 한 시원하고 홀가분한 기분. 정말로 오랜만에 기운찬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그날따라 꽉 찬 달이 더 밝더라. 다음날, 나는 그가 사기꾼이 아니길 바라면서 명함에 적힌 곳으로 연락을 넣었다.
정리한 짐가방을 둘러메고 연합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입구에서 서성이던 요기 라즈가 나를 가장 처음 맞았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뛰어나와 나를 반갑게 맞았다. 그의 표정에서 다시금 진심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오래된 느낌이 물씬 풍기는 나무벽이 깔린 복도를 지나, 나를 연합의 수장 앤지 헌트에게로 데려갔다. 잠깐, 물 좀 마시고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하지. 물이 반 정도 남았군. 얼음은 4개 정도가 남았고.
앤지 헌트, 지하연합의 수장, 일명 스노우 퀸. 나는 하이드가 죽고 그녀가 자리를 이어받았다는 소식을 일찍이 신문으로 보아 알고 있었다. 그 때만 해도 그 쪽은 나와 전혀 상관 없는 다른나라의 흥미로운 얘깃거리로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잘 왔다면서 나의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레베카 양, 정말 잘 오셨어요. 저흰 당신을 누구보다도 환영해요."
그녀는 생각보다 훨씬 젊었고, 또 따뜻했다. 검고 긴 생머리는 찰랑였으며, 얼굴에는 짙은 반가움이 묻어나는 듯 해 더 이상의 환대의 말은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녀와 몇몇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개인적인 이야기 부터, 능력에 대한 이야기, 나의 고민에 관한 이야기 등.. 그리고 그녀는 나를 한번 안아주고는, 새 동료들이 될 자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앤지는 가는 동안에도 건물의 구조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하며 나를 쉴 틈도 없게 만들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대하듯, 그녀는 계속 수다를 떨었고 나는 고작 몇 분동안 그녀와 굉장히 친해진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긴 복도를 걷다, 나와 앤지는 로비로 통하는 문 앞에 섰다. 문 뒤에서부터 수다 소리가 새어나왔다.
"새로운 동료가 온다고, 다들 여기 모여있으라고 아까 말해뒀어요. 이 문 뒤에 있는 사람들이 레베카 양의 새 동료들입니다."
"새 동료라..."
나는 선뜻 문을 열지 못하고, 앞에 멈춰섰다. 감회가 새로웠다. 새로운 동료라니. 나는 동료들을 등지고 와서 또 이렇게 동료들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서움이라던가 수줍음, 혹은 후회따위는 전혀 없었다. 괜찮았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또다시 그들과 곧 친해질 것이고, 곧 다시 행복한 일상을 회복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보는 것은 오로지 미래 뿐이었기 때문이다....그렇게 믿고 있었다.
문을 힘차게 열어젖혔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새로 오게 된 레베카 러쉬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힘찬 인사와 함께 나도 모르게 경찰 시절의 경례를 올려붙였다. 왁자지껄하던 장내는 순식간에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면서 조용해졌다. 경례를 붙인 건 경찰 때의 습관이 낳은 실수임을 곧 알아챘지만, 여기서 비실비실 물러난다면 레베카 러쉬톤이 아니다. 그저 경례를 딱 올려붙인 채로, 누군가 말을 걸어주기까지 기다렸다. 잠깐 어색한 정적이 있었다. 뒤에서 앤지가 당황한 듯 멍하니 있다 나의 앞으로 나와 다시 정식으로 소개를 해 주었다.
"아....... 오늘 아침에 얘기해 드렸던거, 기억나시죠? 이번에 저희 지하연합에 합류하게 된 테라듀 능력자. "
그제서야 그들은 아아, 하는 저마다의 감탄사를 내뱉으며 나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웅성거리는 활기찬 소리가 연합에 온 것을 실감나게 했다. 가장 처음 손을 내민 건 연합의 영웅이었다.
"루이스라고 해. 잘 부탁해, 레베카 러쉬톤 양."
예전에도 신문에서 본 적이 있던 영웅 루이스. 실제 모습은 어떨까 상당히 궁금해하던 터라, 영광이라며 손을 꽉 잡고 흔들었다. 그러자 곧 뒤에서 소름이 쭈뼛 돋을만큼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내 목부터 팔까지 쓸어내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경찰 아가씨, 남의 애인한테 너무 관심 갖지 말아줄래? 범죄야, 범죄."
차가운 웃음기가 섞인 여인, 모델 트리비아. 나는 우아하게 내민 그녀의 손도 살짝 잡아 흔들었다. 그녀는 픽 웃더니 다시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이내 토마스, 이글, 휴톤, 레이튼, 도일 등 다른 능력자들과도 같이 인사를 나누었다. 개중 몇 명은 내가 전직 경찰이라는 이유로 경원하기도 했다. 다음은 피터와 엘리 같은 꼬마 신사숙녀 분들에게도 인사하고.. 그렇게 모두와 인사를 나누었는데 앤지의 표정은 여전히 갸우뚱했다.
"이상하다, 한 명이 빠지는데."
그녀는 손가락을 꼽으며 수를 세고 있었다. 그 때 트리비아가 그녀의 그림자 속에서 다시 나타나 그녀에게 속삭였다.
"우리 여왕님 오늘 왜 그래? 잉게가 없잖아, 잉게가."
"아..잉게..."
뒤에서 다리를 꼬고 있던 이글이 못마땅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한마디 던졌다.
"나이오비 그 자식, 지금 저쪽 방에 뻗어 있어."
"왜 하필 그쪽 방에......?"
이글은 손을 동그랗게 모으고 입가에다 대고 파닥대며 들이키는 시늉을 했다.
"이거, 이거. 어젯 밤 눈 퉁퉁 부어서 와 가지고 한바탕 했거든. 씨이. 안 봐도 뻔하지. 그 총질하는 변태....."
이글은 분을 삭이지 못한 듯 목소리에 짜증을 섞어 뱉었다. 앤지는 그에게도 빙긋 웃으며 감사를 표하고, 나에게 손짓을 해 저를 따라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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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게?"
앤지는 옆방의 도어를 살며시 열며 '잉게'라는 이름을 작게 불렀다.
"으응, 앤지......?"
방 안에서는 막 잠에서 깬 듯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혹시라도 무례가 될까, 조심스럽게 문 뒤에 서 있었다.
"밤새 여기서 계셨던 거에요? 맙소사. 감기 걸릴라.."
앤지가 선택한 단어들은 형식적이었지만, 그녀의 진심은 우러나는 걱정되는 마음을 그런 그릇들 안에 담아놓았다. 하지만 방 안에서는 가문 밭처럼 갈라진 잠꼬대같은 소리만 몇 번 들려올 뿐이었다.
나는 그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무례인걸 알면서도, 못된 호기심에 나는 빼꼼히, 발 뒤꿈치를 들어 앤지의 너머로 흘끗 쳐다보았다. 그녀는 전날 술을 진탕 마시고 뻗어버렸는지 식탁에 붙어있다시피 했다. 풀어헤친, 신선한 맥주거품같이 하얀 머리칼이 보였다. 끄트머리는 멋을 냈는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조금 더 호기심을 발동해, 나는 조금 더 들여다보려 애를 썼다. 조금 더 선명히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여전히 식탁에 붙은 채로 거친 손등으로 눈을 석석 비볐다. 게슴츠레 뜬 눈은 크랜베리처럼 붉었고, 건강한 피부는 올리브-오일처럼 지중해의 풍경이 있는 듯 했다.
그녀는 하품을 한 번 크게 하더니, 다시 식탁에 얼굴을 묻었다.
"..급한 일 아니면 좀 더 자게 해줄래? 일은 나중에라도 할테니깐.. 그리고 엘리는 이글.. 아니, 토마스 한테 잠시 맡겨줘.. 졸려."
그녀의 목소리에는 진한 하품이 섞여나왔다. 자칭 타칭 눈의 여왕이라던 앤지가 갑자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저기, 일 때문이 아니라 저......"
그 때, 그녀가 엎드린 채로 갑자기 내 쪽을 돌아보았다.
"......앤지...... 근데 네 어깨에 그 분홍색은 뭐야?"
내 머리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몰래 본다고 했는데도 어깨 뒤로 살짝 삐져나왔었나보다. 화들짝 놀라 다시 앤지 뒤로 숨었다. 앤지는 곧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얌전하게 픽 웃으며, 옆으로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얼굴이 달아올라 아무 말 하지 않고 열중 쉬어 자세로 앤지 옆에 섰다.
"잉게, 아까 다 전해드린다고 했는데 전달이 제대로 안 되었나봐요.오늘 새로운 능력자가 왔어요. 레베카, 이쪽은 잉게 나이오비, 그리스 출신 불 능력자에요."
잉게 나이오비. 인상적인 이름이었다. 문자에도 첫 인상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잉게, 혀 끝이 입천장에 살포시 붙으면 '잉'이 된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혀를 치듯 내리면 '게'가 완성된다. 너무도 입에 달라붙어 입속으로 잉게, 잉게를 계속해서 되뇌었다. 나이오비는 또 어떤가? 나이오비(Niobe)는 니오베의 영국식 발음이다. 니오베는 그리스 신화 속의 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자식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여신의 노여움을 사 자식들을 모두 잃고 울다 돌이 된 여자다. 그리스 사람으로서 그런 불길한 성을 쓰는 사람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잉게'와 '나이오비'는 그 자체로 차라리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이름도 잘 기억해두길 바란다. 이것이 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두 번째 이름이다.
"이 쪽은.."
나는 앤지가 나를 소개하기도 전에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아까도 그랬지만 본디 남이 나를 소개할 때 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성미였다. 그녀는 흠칫 놀라며 구겨진 표정으로 나를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신입 레베카 러쉬톤 입니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씩씩하게 손을 척 내밀었다. 그 때 앤지의 표정을 좀 일찍 봤었다면 좋았을 것을.. 나이오비는 그 구겨진 표정을 잠시간 유지하더니 다시 식탁에 얼굴을 묻었다.
"..으응, 그래...."
귀찮음이 덕지덕지 붙은, 어찌보면 비웃는 듯 하기도 한 성의 없는 대답. 불쾌해졌다. 잘잘못을 따지자면야, 피곤하다는 사람한테 와서는 귀찮게 한 내 잘못이 백 배 크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생각 보다는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푹 꺾이는 것 같았다. 사람이 손을 내밀면 예의상으로라도 잡아줘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 대고 다 썩어가는 표정으로 마지못해 한 마디를 던지는 꼴이라니. 나는 영국 신사처럼 고상한 격식을 차리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건 있다고 믿는 주의(主義)였다. 나는 최대한 얼굴을 펴고 웅크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저어, 잉게 나이오비씨. 악수 한 번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지만 목소리만큼은 최대한 단호하게 끊었다. 내가 느낀 불쾌감이 잘 전달되도록. 그녀는 눈만 빼꼼 내밀었다.
"......다음에. 귀찮게 하지 말아줘."
그렇게 그녀는 다시 얼굴을 묻었다. 오라, 이것 봐라, 싶은 생각에 더 오기가 생겼다. 제 까짓게 뭐라고? 어떻게든 악수를 받아내고야 말겠다...... 그렇게 다시 저기.. 하고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을 붙이려는 순간, 그녀의 등 쪽에서 갑자기 기름을 부은 듯 불이 올라와 순식간에 나의 팔을 덮쳤다.
"내가.......내가 귀찮게 하지 말라고 했잖아!"
비명과 같은 내지름에 나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마치 비명과도 같은.. 순간적으로 테라듀를 끌어올려 화상은 막았지만 엄청난 고열에 손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눈으로 본 것은 주먹을 꽉 쥐고 씩씩대며 일어나 있는, 몸이 활활 타고 있는 그녀. 불은 그녀의 식탁의 귀퉁이를 핥고 있었다. 나는 묘한 두려움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어느새 뒤에 와 있던 앤지의 손이 나를 받쳤다. 앤지는 손을 앞으로 내밀고 큰 소리로 타이르듯 말했다.
"침착해요, 진정해요, 잉게!"
앤지의 손에서 검은 불꽃이 일어 나이오비의 주변을 감싸고 높이 솟더니, 곧 잦아들었다. 검은 불꽃은 잉게의 불꽃을 잡아먹듯 야금야금 삼켜갔다. 나이오비는 지친 듯 쌕쌕거리더니, 다시 까맣게 그을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는 나를 째려보듯 올려다보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녀의 눈을 피했다.
"..미안해요, 잉게. 제가 잘 말해드릴게요. 방에 들어가서 푹 주무세요. 일은 오늘 쉬셔도 되니깐..."
앤지는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토닥이며 가볍게 포옹했다. 그리곤 나에게 와서 작게 속삭였다.
"자세한 건 다른 분들에게 듣도록 하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세요. 아셨죠? 전 잉게씨를 데려다주고 올테니까.. 나머지 안내는 트리비아씨나 토마스씨가 해주실 거에요."
그러고선 그녀를 부축하여 데리고 갔다. 그녀의 눈빛이 계속 나의 등에 칼처럼 꽂혀있는 것 같았다.
다음날, 나와 나이오비는 서로 사과와 통성명을 하고 어색하게 헤어졌다. 그리고 나름 그녀와 가까워 뵈는 이글에게 어제 일을 물었다. 그는 귀찮다면서도 하나하나 다 얘기해 주었는데, 그것이 제법 흥미로웠다. 그러니까 이글에게 들은 사건의 전말은 대충 이러했다. 그러니까 나이오비가 예전에 모종의 일로 카인 스타이거라는 늙은 총잡이(그는 변태라는 말도 더했다.)를 만났는데, 나중에도 어찌어찌 만나 계속 얘기하다 나이오비가 그에게 반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총잡이는 이미 예전에 잃어버린 애인이 있고, 그는 애인을 찾아 계속 방랑하고 있다는 일이었다.
"그 잃어버렸다는 애인도 나이가 몇인지 알아? 그 자식이랑 12살 차이란다! 하이고야, 도둑놈도 정도가 있지......"
이글은 끝에 이런 말도 덧붙였다. 그래서 나이오비가 매번 그를 만나고 올 때면 항상 눈이 퉁퉁 부어 돌아오고, 꼭 그날밤은 혼자 술을 쓰러질 때까지 처마시고는 다음날 저렇게 하루종일 뻗어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퍽 흥미가 돋았다. 원래 남의 이야기란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조마조마하니 재밌는 맛이 있는 것이지만, 이건 그것과는 조금 더 다른 느낌이었다. 이글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꽤나 멍청하지 않은가? 다 늙어빠진 총잡이를, 그것도 자기한테는 눈길 히나 주지 않는 남자를 저렇게나 좋아하고, 연적이 있음에도 어찌 해보려는 생각도 없이 술을 퍼마시고 울 생각만 하는 짓거리는 나의 사고로는 도무지 이해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멍청한 짓거리에 드는 나의 느낌은 답답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것은 호기심ㅡ 호기심에 가까웠다. 그녀가 누구인지 점점 더 궁금해졌다. 그녀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녀의 진심은 무엇인지....... 그것은 어릴적 백과사전에서 길다란 꼬리의 천인조(天人鳥)를 보고 느꼈던 호기심과도 엇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호기심을 위한 탐구가 시작되었다.
잠깐, 물 ,물. 물이 떨어졌잖느냐. 얼음도 이제 다 녹아빠졌다. 더, 더. .......물은 인제 되었으니 레모네이드, 그래. 레모네이드를 한 잔 사준다면 계속 이야기하도록 하지. 그녀가 레모네이드를 참 잘 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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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검은황새입니다. 요즘 바빠서 글을 못 올리네요.. 다음편은 아마 담주는 지나야 올라올 듯 싶네요. 아니면 더 오래 걸릴지도.. 재밌게 봐주시는 분들께 언제나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