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팬픽] 물의 아이들-prologue '가출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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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9 19:30:46
-와장창창
르 블랑가의 저택, 그것도 공작부인의 방에서 무언가 뒤엎어지는 소리가 중앙 홀을 울렸다. 이 저택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무엇 때문에 나는지 알 법한 소리다.
'이번에는 도자기라도 깨엎었나'
공작부인의 옆방을 청소하던 하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쿠당탕탕
'테이블을 엎었구만. 이번에는 카펫에 와인이 안쏟아졌으면 좋겠다.'
지난번에 실수로 배달부가 와인병을 비싼 동방에서온 카펫에 떨어뜨려서 얼마나 고생했었던가,
이번에는 그냥 잡동사니만 엎었으면 좋겠다고 하녀는 하나님에게 기도했다.
물론 아직까지 기도가 이루어진 적은 없지만 말이다.
-쨍그랑
".........."
기도고 뭐고 이놈의 집구석은 하나님의 구역이 아닌가 보다고 하녀는 중얼거렸다.
저 저택을 뒤집어 깨부수는 소리가 뭐냐하면 이 저택의 꼬마숙녀-말이 좋아 숙녀지 하녀들 사이에선 꼬마 물귀신이라고 불리는-마를렌 르 블랑이 저택을 온통 물바다로 만들고 공작부인이랑 한바탕 싸움질 하는 소리다.
물론 물건을 깨부수는 상황은 오늘이 처음이긴 하지만.
하녀는 일주일에 한번씩 집안을 지옥으로 만드는 꼬마 물귀신과 무슨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물건을 집어던지는 공작부인을 속으로 욕하며 닦던 도자기를 마저 닦기 시작했다.
".........아직도 잘못했다는 생각이 안드니?"
난장판이 된 방 안에서 공작부인이 욹으락붉으락한 얼굴로 마를렌을 쏘아보았다.
테이블은 물구나무를 서고있고. 와인병은 -어떤 하녀의 기도에도 불구하고-반토막이 난채로 카펫에 부쉬져 있었다.
예절을 중시하는 귀족가문에서 이정도로 난리법석을 칠 정도면 보통일은 아니리라.
한쪽 구석에서 이를 지켜보던-실상은 공중제비 도는 테이블을 피해있던거지만-집사장 윌슨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공작부인이 이 정도로 화를내는건 처음보기 때문이다.
윌슨도 속으로 마를렌이 공작부인에게 용서를 구하기를 신에게 간절히 빌었다. 물론 소용없다는건 알고있지만.
".........제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요?!"
윌슨의 기대를 져버리고 당돌한 얼굴로 공작부인을 쏘아보며 마를렌이 대꾸했다.
"팽송백작에게 선물로 줄 그림을 전부 물로 적셔서 망쳐놓고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잘못이 없다고 말할셈이니 마를렌?!"
팽송백작은 르 블랑 공작의 오랜친구이자 르 블랑가의 중요한 사업파트너이다.
그런 백작이 50번째 생일을 맞아서 공작부인은 선물로 공작부인이 한달동안 손수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그림을 마를렌이 비눗방울 놀이를 한답시고 방안을 물바다로 만들어 버려서 망쳐놓은 것이다.
하지만 팽송백작이 중요한 사업파트너라는 사실이고 뭐고 마를렌에게 관심거리가 될 리 없었다.
열 몇살짜리 여자아이에게는 팽송백작은 그저 가끔 집에 놀러오는 아저씨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으니까.
"그 아저씨 그림이야 화가 구해서 다시 그리라고 하면 되지뭘,
엄마가 그린건 너~~~무 못그려서 내가 다 지워버렸으니까 팽송아저씨는 나한테 고마워 해야될껄요?!"
말을 마치자 마자 얼굴이 시뻘게진 공작부인을 뒤로하고 마를렌은 방문을 세게 닫아버리고 나갔다.
".....윌슨??"
".........넵?!!"
멍청히 있던 윌슨에게 백작부인이 말을하자 잔뜩 긴장한 윌슨이 대답했다.
"마를렌에게 한달동안 외출금지 명령을 내리겠어요. 그리고 그동안 절.대.로 비눗방울 놀이는 금지입니다. 알겠어요?!"
".........예!!!"
대답을 마치자 마자 총알처럼 윌슨이 튀어 나갔다.
".....하아....."
난장판이 된 방안에서 그나마 멀쩡한 소파에 대충 걸터앉은 공작부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를렌의 아버지인 라울 르 블랑이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자 자신도 변하고, 마를렌도 변한것을, 공작부인은 알고있었다.
마를렌이 굳이 집안에서 비눗방울 놀이를 하는 이유도 아빠와 같이 놀았던 그 추억을 잊지못해서 그런것이라는 것도,
자신과 자꾸 부딪치는 이유도 아빠와는 다르게 딱딱하게 가르치려고만 하는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 때문이란 것도 공작부인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먼저 가버린 라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는 강해질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그녀기에,
이런 일들은 불가피한것이라고 단정지었지만 마를렌의 저런 모습을 볼때마다 참았던 눈물이 솟구치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그 눈물을 감추기 위해 계속해서 마를렌을 혼내고, 야단치는 자신은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못된 엄마라고 공작부인은 생각했다.
"........라울.....보고싶어...."
두손으로 감싼 그녀의 얼굴위로 한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야심한 밤. 르블랑 저택의 뒤쪽 울타리에 조그만 검은 그림자가 담벼락에 난 개구멍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흥, 잘 먹고 잘 살라지."
빵빵한 가방을 짊어지고 르 블랑가의 저택을 빠져나온 마를렌은 공작부인의 방쪽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외출금지에다 비눗방울 놀이 금지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다. 유일한 자유시간을 다 뺏어버리면 하루종일 예절교육이나 받으라는 소리 아닌가.
맨날 만나는 사람마다 이거하지마라, 저거 하지마라. 이거해라. 저건 안된다...
"으으으....짜증나!!"
마를렌은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사람이고. 저사람이고. 딱딱대는데에는 이제 질렸어. 이제 안할거야."
마를렌은 무엇을 집어넣었는지 터질것 같은 배낭을 등에 짊어지었다.
"흐음.....그나저나 어디로 간다...."
막상 집을 나오니 마땅히 갈곳이 없었다.
그러다 머릿속을 스치는 사람이 있었다.
아빠가 살아있을때 같이 술이나 먹자고 자주 찾아오곤 했던 삼촌.
사람들은 삼촌을 명왕이라고 불렀지만 난 삼촌이라는 말이 더 좋아서 그렇게 불렀다.
삼촌이 집에 안와서 마침 보고싶기도 했고, 또 하루죙일 인사만 시키려는 악마같은 집구석에서도 벗어나야겠으니 삼촌네 집이나 놀러가야 겠다고 결정했다.
삼촌 옆에서 맨날 잔소리만 하는 타라 아줌마-언니라고 부르라고 했는데 언니는 아닌거 같다-하고 가끔 와서 과자를 구워주던 앨리셔 언니, 모두 보고싶어졌다.
"좋아, 삼촌네로 가자."
마를렌은 당돌한 표정으로 파리 시내를 향해 씩씩하게 걸어갔다.
영국에 있다는 삼촌의 '헬리오스'라는 회사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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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펜게 오랜만에 보다가 글하나 싸지르고 싶어서 카페에 쓰던 글 투척
사이퍼즈 팬아트 카페입니다. 오실분 오십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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