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P. 증폭 능력자증폭의헬레나

Eclipse Vol.33 종착역 정보제공자, 헬레나 하스¹⁾ (연구원, 증폭능력자)

ESPER

ESPER는 순수한 연구단체였다. 연구원이 스스로 정한 목표와 스케줄에 따라 실험이 충분히 이루어진 후 상부에 보고되었다.
처음 나에게 주어진 일은 사이퍼들의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ESPER의 사이퍼 등급 기준에 따라 그들을 분류했다.
분류된 사이퍼 등급이 정확히 어떤 곳에 쓰이는지는 훗날 알게 되었지만, 그 때는 그저 ESPER의 정보력에 감탄할 뿐이었다.
사이퍼 개개인의 능력 변화가 실시간으로 분석되어 전송됐다.

내게 처음 주어진 사이퍼들의 샘플은 단지 100개였지만, 나는 이 샘플들로 이전에 그들이 작업한 것보다 훨씬 높은 확률로
그들의 유전자에서 능력 일부를 분해할 수 있는 화학적 구조를 밝혀내는 실험에 성공했다.
나는 실험 결과를 보고한 후 한 시간 만에, ESPER의 비밀 부서 Salvation의 소속이 되어 있었다.

Salvation

Salvation은 ESPER와는 달랐다. 모든 연구는 철저하고, 면밀한 분석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막강한 후원을 받아 연구가 진행된다고 했지만, 그들이 과연 누구인지 정확한 실체를 궁금해하는 연구원들은 아무도 없었다.

연구의 성과는 쉽게 나질 않았다. 같은 연구를 수없이 반복했지만, 시행착오로 이어졌다.
우리에게는 소명 같은 것이 있었다. 올바른 기준만 있다면, 능력의 추출은 능력자들을 자유롭게 해줄 것이다.
전쟁에서, 정치에서, 사회에서 ……
시간이 날 때마다 동료들과 함께 내 증폭 능력에 대해서도 연구를 했다.
그들은 내 능력이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추측했다고 했지만, 정확히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TESTCASE-302²⁾. 리사 스트라우스

일관된 조건으로 연구 결과를 내기엔 변수가 너무나 많았다.
능력의 발현 시점부터 잠재된 능력의 한계치, 능력자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성질 등.
나는 가장 순수한 샘플이 필요했고, 부모의 유전자를 검사해 사이퍼가 태어날 확률을 분석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을 리스트에 올렸다. 그 중엔 내가 찾던 증폭 능력을 가진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 대부분은 능력이 발현되지 않거나 미약하게 발현된 채 태어난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능력의 발현은
때론 죽음이 동반되는 끔찍한 상황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지만, 실험을 미룰 순 없었다.

나는 직접 그 아이가 태어날 병원을 향했다. 미리 도착해 있는 연구원들을 비집고 들어가 그 아이를 만났다.
순간, 그 아이는 갓난 아이 같지 않은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댔다. 나로 인해 그 아이의 능력이 발현된 것이다.

나는 먼저 그 아이의 생사를 확인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인위적인 상태였기 때문일까? 이후 겪게 되었던 일련의 위험한 실험 과정 때문이었을까. 그 아인 정신적으로 나약했다.
나는 오랜 시간 그 아이 곁을 맴돌면서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리사…… 그 아인 자신이 갇혀 있는 그 세계에서 나오지 못했다.
내 증폭 능력은 리사에게 어떤 충격도 주지 못했다.

불완전한 아이가 아닌 온전한 대상이 필요했다. 우린 더 많은 리스트들을 추출했고,
나는 갓난 아기들의 능력 발현을 위해 증폭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좋은 샘플이 되어주었고, 우린 그 샘플들로 지속적인 성과를 냈다. 나의 직위는 상승했다.

결혼

미하엘 하스는 Salvation에서 만난 동료였다. 그는 한 달 만에 salvation을 그만 두었지만 우리의 인연은 지속되었고, 결혼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몸 속엔 축복 받은 새 생명이 생겼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날 즈음 나는 내 아이가 리스트에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아이의 예상 사이퍼 등급은 꽤 높았다.
이렇게 된다면 특별 관리 대상이 될 것이고, 위험한 실험에도 참여해야 할 것이다.
나는 부서장에게 항의했다. 항의는 설득으로, 설득은 애원으로 변했을 뿐. 그것 이외에 묵묵부답인 부서장에게 맞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기다림 끝에 부서장은 내게 아이를 리스트에서 빼는 조건으로 내 증폭 능력의 최대치에 도달할 것을 요구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지만, 결과에 대한 고민을 할 순 없었다. 어떤 조건도 내가 얻을 수 있는 결과와 비교할 수 없으리라.

빅터 하스

아이의 능력이 발현되지 않도록 빅터는 태어나자마자 나와 분리되었다. 한 번만 안아볼 수 있다면, 작은 손을 잡아볼 수만 있다면 ……

실험을 통해 내 증폭 능력은 강해졌지만, 동시에 난 끔찍한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다. 실험 끝엔 생사를 오가는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찾아왔다.
동료들은 내게서 많은 샘플을 추출했다. 증폭 능력은 능력을 샘플화하는데 적합한 생화학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능력을 추출하여 실험 대상에 주입하면 능력이 소멸되었지만, 내 증폭 능력을 매개체로 사용하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대로라면 연구를 마무리하고 빅터를 리스트에서 완벽히 삭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부서장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부서장과의 마지막 면담에서 Salvation은 능력을 병기로 사용하려는 사람들의 후원을 받아왔고,
그들을 위해 일해왔다는 말을 들었다. …… 능력자들은 절대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다는 말도 함께.
Salvation 조직은 붕괴되었지만, 믿지 않았다. 그들은 그 당시 어떤 연구단체보다 좋은 성과를 내고 있었고,
그 동안 낸 결과물들은 모두가 탐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매일 밤, 누군가에게 빅터를 빼앗기는 꿈을 꾸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그 아이를 끌어안았지만 그럴수록 그 아이는 모래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빅터를 평범한 아이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TESTCASE-509. 빅터 하스

안타리우스와 손잡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들은 날 환영했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미하엘이 빅터를 맡기로 했다. 아이가 ‘엄마’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 엄마에 대한 기억을 할 수 있기 전까지 모든 것을 끝내고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 곁으로 돌아가리라 결심했다.

나는 증폭 능력의 구조를 역으로 이용할 계획이었다. 실험하기 전 나는 아들의 능력을 완벽하게 분석해야만 했다.
그 아이의 능력을 내 몸에 주입하면서 문득, 바람을 사용하면서 좋아할 개구쟁이 소년이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일순간의 즐거움에 지나지 않으리라.

훈련

안타리우스는 내게 특수한 훈련을 받을 것을 권유했다. 연구원들도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소속된 연구원들은 자신의 신체적인 특징과 연구 분야에 적합한 개별 훈련을 짜주었다.
그들은 내게 아돌프 박사를 소개해주었고, 박사는 내가 만든 앰플을 장착할 수 있는 보우건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내가 추출한 앰플을 보우건에 장착해 전투할 수 있는 훈련을 받았다.

TESTCASE-510. 헬레나 하스

능력의 완벽한 제거는 불가능했다. 능력의 제거에는 성공했지만, 일순간이었다. 분해된 세포들은 시간이 지나자 자가 합성을 통해
다시 같은 형태로 만들어졌다.

그동안 일부 능력자들이 보여준 능력의 소멸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었다.
충격이나 특별한 환경에 기인한 것이었고, 특정 계기를 통해 다시 능력이 생성될 수 있었기 때문에 능력의 완벽한 제거라고 보기엔 힘들었다.

내 증폭 능력이 화학적 반응을 매개하는 중요한 단서였기에, 중요한 실험에 주효하게 쓰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능력의 추출이 불가능했다. 능력이 소멸되지는 않았지만 추출은 불가능한 상태가 지속되었고,
나는 원인을 찾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나는 불안해졌다.

아돌프 박사는 내게 원래대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대안

안타리우스는 내게 증폭 능력을 가진 강화인간을 만들 것을 요구했지만, 이미 내 능력의 추출은 불가능한 상태였기에
다른 대안이 있어야 했다. 나는 리사에게서 추출한 능력으로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내기로 했다.

TESTCASE-777. 미니와 앰피

그 즈음 아돌프 박사 또한 다른 형태의 강화인간을 고민하던 중이었다.
아돌프 박사는 강화인간은 완벽한 인격 배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세 가지 경우를 생각했다.
내 능력을 대체해줄 수 있는 존재. 만약을 위해 내가 완벽하게 통제 가능한 존재. 그리고 나 대신 빅터를 도와줄 수 있는 존재 ……

통제 가능한 인격의 형성이라는 합의점이 있었기에 박사는 나를 도와주기로 했다.
나는 고민 끝에 세 가지 경우의 수를 모두 포함하기 위해선 또 다른 가족의 형태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고,
인공 수정을 통해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능력을 증폭 시키는 앰피 그리고 능력을 약화시키는 미니. 쌍둥이 자매는 그렇게 태어났다.
이들은 강한 병력이 되어주었지만, 불행히도 인격의 성장은 멈춰 있었다.

쌍둥이 아이들은 너무나 위험했다. 아이들은 멈춰 버린 인격의 나이에 맞춰 모든 것을 판단한다.
좋은 사람과 싫은 사람이 극명했고, 복잡한 말 대신 울음과 웃음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나는 작전 이후, 아이들을 인큐베이터 안에 넣어놨다. 아이들은 그 속에서 인위적으로 인격을 배양 받고 있다.
결국, 난, 아무 것도 해내지 못했다. 이제와서 내가 빅터에게 ……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TESTCASE. 루드빅

“난 늘 그랬듯, 네 선택을 존중해. 헬레나.”

옥사나의 말이 뇌리에 박혀 지워지질 않았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내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무엇일까.
내게 남은 기회는 몇 번일까.

안타리우스에게 미니와 앰피를 만들어주었으니 이제 내 증폭능력은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연구원으로서의 내 가치는 남아 있는 것일까.

나는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루드빅을 찾아 나섰다. 그 자의 빛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였다.
오랜 추적 끝에 루드빅을 만났지만, 정면 대결하지는 않았다.
그 자의 빛이 내가 찾은 신경 물질에 가장 부합하는 성질인지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죽게 해서도 다치게 해서도 안 된다.
온 힘을 다해 그 자와 싸웠고, 그 자에게서 벗어났다. 내 손에는 그 자의 샘플이 들려 있었다.

그 빛은 대단한 것이었다.

나는 빅터의 능력을 제거하는 대신, 그 빛으로 빅터를 더 강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