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P. 자력 능력자성흔의디아나

Eclipse Vol.31 드로스트 家 정보 제공자 : 델로이 그레이¹⁾

파양 당하기 전까지 드로스트 가의 일원이었다고 밝힌 델로이 그레이는 한쪽 팔에 아주 가는 인공 팔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능력은 작은 물체를 힘겹게 들어올릴 수 있는 정도였고, 드로스트 가문의 사람들 모두 엄청난 능력을 가진 사이퍼라는 것과는 비교되었다.
이런 이유로 편집회의에서 그녀와의 인터뷰가 신뢰할만한 수준의 것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드로스트에 관련된 이야기는
설령 그것이 픽션이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흥미를 끌 수 있을만한 소재이므로 본지에 싣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 편집장

파양

어느 순간 나는 그녀, 디아나 드로스트에 대해 의심을 품었습니다. 의심은 나의 눈빛과 태도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새어 나오게 했습니다.
이런 나를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나는 진실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더더욱 위험하다는 것도요.
내 등에 꽂히던 시선이 노골적인 암시가 되어갈 무렵, 그녀는 나를 파양했습니다.
드로스트 가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던 나를 …… 말입니다.

입양

처음 드로스트 가의 일원이 되었을 때, 모든 것이 신기했습니다. 사람들은 먼저 내게 말을 걸어주었고 친절하게 인사해주었습니다.
말 한마디조차 나누기 힘든, 끔찍했던 보호소의 생활과 나를 그 곳에 보내버린 무책임한 이모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드로스트 가문의 사람이었던 것처럼 그들과 비슷한 말투와 격식 있고 예의 바른 몸가짐을 가지게 되었지만 어떤 거부감도 없었습니다.
내 곁에서 나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축하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과 가족이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뻤습니다.
…그 가운데 디아나 드로스트가 있었습니다. 예의 바르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디아나는 내게 완벽한 가족이 되어주었습니다.

나는 기꺼이 원래의 성(姓)을 버렸고, 새로운 이름을 받아들였습니다.

교육

가문에 적응하면 할수록 외부와는 더 높은 벽이 생겼고, 가문 이외의 사람과는 단절되었지만, 드로스트 가문의 사회적인 입지나 위상은
가문의 한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했습니다.

나는 본격적으로 훈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교육은 신체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문화, 경제, 예술 등 다양한 커리큘럼의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TV나 신문에서 보던 저명한 드로스트 가의 인사들이 직접 교육을 해주었습니다.
디아나는 수업에 들어왔던 선생님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선생님이었지만 가장 완벽한 수업을 해주었습니다. 누구 하나 낙오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항상 수업의 끝에는 테스트가 이루어졌습니다. 테스트를 통해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걸 “서열”이라고 표현했고,
서열은 들어온 순서나 나이 기준이 아닌 철저히 능력에 기인하되, 사회적 지위라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서열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수업을 같이 듣고 있던 사람들이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지 그 당시에는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내 눈 앞에 있는 멋진 사람들을 보며 그들처럼 되길 꿈꾸었을 뿐입니다.

벌

여느 때처럼 수업을 들으러 가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비명이 들렸습니다. 나는 그 소리를 따라갔습니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

누군가에게서 읊어지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이 반복되는 숫자와 그 숫자에 맞춰 울려 퍼지는 듣기 싫은 마찰음.

나는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누군가 나처럼 저 공간의 일을 궁금해하며 함께 문을 열어 주길 바라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 소리가 마치 나에게만 들리는 것처럼, 사람들은 나를 지나쳐갔습니다. 한 명, 그리고 또 한 명, 다음엔 몇 명의 무리들이……
결국 나는 혼자 그 은밀한 공간의 문을 열고, 그 곳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나는 디아나와 마주했습니다.
디아나는 차갑고 섬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가벼운 손짓으로 작은 조각들을 띄워 나와 그 곳에 있던 아이를 향해 던졌습니다.

모든 것이 고요해진 후 나는 그 곳을 벗어나고자 문을 열었습니다. 문 앞에는 검은 머리의 여자 아이만이 고개를 숙인 채로 서 있었습니다.

“규율을 어긴 것이옵니다.”
“규율?”

나는 돌아가려던 그 아이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나를 향해 고개를 든 아이는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당신이 이미 알고,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 아이는 가족이 되어준 드로스트를 버리고 원래의 가족에게 돌아가려 했고,
당신은 규율을 어겨 벌을 받는 저 아이를 도와주려 했지요. 잘못된 행동을 도와주는 것은 규율을 어기는 행동입니다.”

나는 그 정도의 대가라면 치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디아나라면 불필요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까요.
나와 그 아이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해 그녀를 불편하게 했고, 분명한 사람인 그녀는 상황을 정리해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날 이후 그들과 내가 온전한 가족이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왠지 모를 두려움이 디아나가 던진 조각들 때문에 생긴
수십 개의 작은 흔적들보다 더 나를 괴롭혔습니다.

로벤 드로스트

드로스트 가의 수장 로벤이 차석의원 제퍼슨 드로스트와 함께 이 곳을 방문했습니다. 내가 가진 불안감 때문일까요?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그들이 향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들은 디아나와 다이나를 수행하는 헹크를 함께 만났습니다.

“수장님, 총리의 사망은 확인했습니다. 여왕은 어떻게 할까요?”

제퍼슨의 시선은 이상하게도 로벤이 아닌 디아나를 향하고 있었고, 이야기하는 내내 디아나를 수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여왕은 비위를 잘 맞춰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왕을 사랑하지요. 우연이 지나치면 사람들은 의심을 하기 시작한답니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다음 총리는 제퍼슨 당신입니다.”

제퍼슨은 그녀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수장님, 후원을 확대했습니다. 지원금이 더 필요합니다.”

로벤 역시 디아나를 수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사회 환원은 아끼지 마세요. 그리고 당신은 특히나 이곳에서조차 나를 수장이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외부에서 드로스트의 수장은 로벤, 당신이니까요. 당신은 천성이 착한 자입니다. 앞으로도 그래야 하고 ……
당신은 외부 사람들이 이 곳을 안식처로 생각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당신의 행동이 위선이 되는 순간, 우린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우리에게 긴 설명은 불필요하지요. 다음 타겟은 누구입니까?”
“버지니아 군사학교 전 총장, 제프 케이트입니다. 그가 만든 비밀 단체를 통해 연합정부는 능력자의 몸 속에 특별한 인식장치를 삽입할
플랜을 실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시한 폭탄을 부착할 생각인가보군요. 하지만 아직 그를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먼저 그 작전에 반드시 필요한 그의 조직원들을 순차적으로 제거하세요. 우리에겐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그 때까지 우리의 적은 정부도, 그 누구도 되어선 안 됩니다. 역으로 필요에 따라선 안타리우스와 손 잡는 일도 주저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지만, 나는 그 곳을 빠져나왔습니다.
나는 들어선 안 되는 것들을 들었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을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있는 이 곳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일 수 있다는 생각, 이 곳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린 드로스트

아침부터 드로스트 가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모여들었습니다. 그 곳에 검은 머리의 아이와 디아나가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 아인 장벽으로 디아나의 공격을 막거나 강력한 염력으로 디아나를 공격했습니다.
디아나는 자력으로 조각들을 이어 자유자재로 움직였고, 그것은 닿는 곳마다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디아나의 손 끝이 우아하게 움직일 때마다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은 공포를 느껴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디아나의 전투는 여전히 여유로워 보였던 반면, 검은 머리의 아이, 린은 다급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틈타 디아나는 수백 개의 파편들로 린을 휘감은 뒤, 그녀를 집어삼켰습니다. 린은 그 자리에 주저 앉았습니다.

나는 쓰러져 있는 그 아이에게 갔습니다.

“당신은 어떤 규율을 어겼습니까?”
“아무 것도…… 아무 것도요……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저는 벌을 받게 될 겁니다.”

규율

나는 대저택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쫓아다니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레 그 검은 머리의 여자아이가 말하던 드로스트 가의 규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의 말대로 규율은 이미 내가 알고 있던 것, 어떤 수단을 통해서 전달 되는 것이 아닌 관습이나 습관처럼
오랜 기간 몸으로, 머리로, 마음으로 퍼져 형성되어 있는 드로스트의 가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국가의 법보다 강압적이고 위협적이었습니다.

드로스트 가의 사람들은 위협적인 그 가풍 앞에서 암묵적인 동의로 침묵을 선택하고 있었습니다.
드로스트는 경이로운 밀실이었고 디아나는 그 밀실에 어울리는 수장이었습니다.
그녀는 많은 일에 가담했지만 그것은 가문의 목적을 위한 일이었고, 가문을 위해 싸웠으니
그녀의 어떤 행동도 폭력적이거나 정의롭지 않은 행동은 없었습니다.

나는 왜, 무엇을 위하여 이들이 이런 선택을 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내가 모르는 진실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 이전 수장이었던 안나 드로스트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나의 결정이 그리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지만 말입니다.

안나 드로스트²⁾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조심성이 없는 사람이군요.”
“당신은 ……”
“알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난, 안나 드로스트입니다. 무엇이 궁금해서 왔습니까? 드로스트 가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디아나 드로스트는 누구입니까?”
“드로스트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입양되었지만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의 이름도 모른 채 기관을 통해 들어온 자들부터,
좋은 가문의 자제지만 부모의 허락 하에 입양되어 온 자,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의해 드로스트에 들어온 사람까지 다양합니다.
가문의 사람들 대부분이 염력을 기반으로 한 능력을 사용하는 자라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습니다.
디아나는 그리스 태생으로 좋은 가문의 자제이지요. 그리고 부모의 허락 하에 입양되었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우리와 뜻을 같이 하기에 우리에게 귀한 자식을 내어 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위험하지만 평화로운 모습을 하고 있고,
자신이 아닌 가문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아이입니다.”

“우리의 적은 누구입니까?”
“우리의 적은 능력자들을 배척하는 세계의 정부입니다. 나는 앤더스빌에서 정부의 가학적인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앤더스빌을 나오고 나서야 나와 내 곁에서 죽어간 자들에 대한 죄목이 ‘능력자’라는 것을 알았지요.
하지만 내가 정부를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내 능력은 그들의 힘에 비해 너무나 보잘것없었으니까요.
가족을 잃은 나는 혈연관계보다 더 진한 관계가 필요했습니다. 나는 드로스트 가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지요.
그리고 결국 수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우린 가문의 뜻으로 세상을 움직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건 디아나도 마찬가지이지요.”

절망

파양 당하기 하루 전날, 디아나는 나를 불렀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원합니까?”
“세상으로 나가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을 드로스트 테두리 밖에서도 안전해 질 수 있게 만들어 드리지요.
우리 가문의 사람을 다른 자의 먹잇감이 되도록 두어선 안되지요.”

그녀는 나를 아돌프 박사에게 넘겼습니다. 그 자는 온전했던 내 팔을 가져갔고 대신 아무 힘 없는 고철덩어리를 달아놨습니다.

손가락을 까닥하기만 해도 거대한 물체를 움직일 수 있었던 내 힘은 작은 돌덩이조차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잃은 건 한쪽 팔이 아닌 나의 전부였습니다.

진실

나는 그곳을 나오고 나서야 진실은 마주해본 사람의 것이 아니라, 힘이 있는 자의 것으로 남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실에 관심이 없다는 것도 말입니다.
나는 나를 도와줄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나는 내 능력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