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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의아이오로스 [52급]

2015-10-21 01:45:22

* 올릴까말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썼으니 올려봅니다.

* 하랑 생일 축하한다!!!!!!!!!!!!!!!!!










마틴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벽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10월 21일’이라는 날짜였다. 그 날은 그랑플람의 막내인 하랑의 생일이었다. 그는 ‘21’이라는 숫자를 보며 흐음,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 달 전부터 하랑 몰래, 브루스와 티엔에게 어떤 선물을 주면 좋을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록, 그리고 하랑의 생일이 바로 코앞에 다가온 지금까지 ‘선물’ 리스트는커녕 어떤 ‘선물’을 챙겨줄 지 제대로 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없었다. 조금 전만 해도 그랬다. 이제 슬슬 하랑의 선물을 챙겨줘야 하지 않겠냐는 마틴의 말에, 요새 외근이 잦았던 브루스는 아, 그랬었지, 라며 지금부터 생각하는 눈치였고, 티엔은 케이크 하나면 충분하지 않겠냐며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애초에 남자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남자」에게 줄 서프라이즈한 ‘생일 선물’을 준비해보자는 생각 자체가 잘못이었다.

21일.

앞으로 이틀 뒤였다.

마틴은, 책상에 앉아서 손톱을 깎고 있는 하랑에게 말했다.


“하랑. 생일선물로 가지고 싶은 것 있어요?”


마틴의 올곧은 직구에, 하랑은 손톱을 깎다 말고 눈을 꿈뻑거리며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마틴을 바라보았다.


“내일 모레 생일이잖아요. 예전부터 가지고 싶은 선물 있으면 챙겨줄게요.”


다시 한 번 하랑에게로 직구가 날아들었다. 어떤 선물을 주면 좋을지 고민하던 브루스와 티엔은 구원투수 마틴 챌피의 직구에 묻어가기로 했다. 뜻밖의 직구를 맞은 하랑은 이제 막 깎아 잔날이 서 있는 짧은 손톱으로 볼을 긁적였다.


“글세-,”


짧게 운을 떼며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내 말을 덧붙였다.


“딱히...? 생각해 본 적 없는걸.”


그러면서 아직 깎지 못한 새끼손가락 손톱을 마저 깎았다.

하랑에게 있어, ‘생일’은 다른 날처럼 가만히 있다 보면 지나가는 날짜였다. 10월 21일은, 10월 21일이었다.

고향에 있을 때도 그랬다. 부잣집 도련님처럼 잔칫상을 차리고, 동네 친구들 불러다 같이 밥 먹는 일 같은 건 없었다. 생일날 아침에 먹는다는 그 흔한 미역국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저, 김치 몇 조각을 반찬 삼아 찬밥을 대충 먹고, 지나간 전날처럼 친구들과 같이 술래잡기를 하거나, 마을 외곽의 과수원으로 서리하러 다니거나, 뒷산에 올라가 밤을 따서 구워먹고, 부쩍 짧아진 하루를 아쉬워하며 집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생일’이라고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느 날처럼 평범하게 지나가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날이었다. 그렇기에 ‘생일’에 대해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고향을 떠난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틴이 ‘생일’이라는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래도 생일인데. 먹고 싶은 거 있음 사줄게요. 먹고 싶은 건 있어요?”

“먹고 싶은 것-”


-도 없다고 말하려던 하랑은,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음식이 있어서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그 음식이 영국에 있을 리 없었다.


“-에이, 됐어.”


하랑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마지막 남은 손톱을 마저 깎았다. 마틴은 그런 하랑의 목소리에 담긴 아쉬움을 놓치지 않았다.


“있죠? 먹고 싶은 거.”


마틴의 말에, 하랑은 고개를 들고서 약간 기대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말하면 만들어줄 거야?”


사달라는 것이 아닌 만들어달라는 말에, 마틴은 조금 당황했다.


“어, 음... 노력은, ...티엔 정이 할 거예요. 그렇죠?”


마틴은 케이크를 준비하자고 말했던 티엔에게 변화구를 던졌다. 티엔은 뜻밖의 변화구를 받았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


“노력해보지.”


마틴은 그나마 비슷한 동양권에 사는 티엔이라면 하랑이 먹고 싶은 음식쯤이야 알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미역국.”


‘BOB’으로 끝나는 음식은 들어봤지만, ‘KOK'으로 끝나는 음식 이름은 처음 들어본 마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을 구하기 위해 티엔을 바라보았다.

티엔 역시, 마틴과 같은 표정으로 마틴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예...?”


린은 당황해하며, 자신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미역국...말이옵니까?”


린의 되물음에, 마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린 씨라면 그... 뭐냐... 미... 암튼, 그 레시피를 알려줄 수 있겠지 싶어서요.”

“그야... 소녀, 알고 있사옵니다만...”


린의 말에, 마틴과 티엔, 그리고 브루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티엔은 그 말을 듣는 즉시, 여기까지 온 목적을 밝혔다.


“그 레시피를 우리에게 알려주었으면 한다. 물론 그에 대한 비용은 지불하지.”

“알려드리는 것쯤이야 문제 되지 않사옵니다만...”


오래 전부터 드로스트 가문과 그랑플람은 무역거래와 관련된 사업적인 관계로 지내왔다. 그렇기에 거래 관련 아니면 서로를 만날 이유 같은 건 없었다. 린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랑플람에서 사람이 찾아왔기로서니, 새로운 무역과 관련된 거래 제안 때문에 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미역국 레시피라니.

그랑플람에서 동양의 음식과 관련된 새로운 사업 계획이라도 진행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레시피’를 둘러싼 어떤 중대한 사안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린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고작 레시피를 묻고자, 그랑플람에서 찾아온 것이옵니까?”


린의 질문에 가만히 무게잡고 있던 브루스는 커흠, 헛기침으로 운을 떼었다.


“실은 말일세,”


브루스는 이틀 후에 하랑의 생일이라는 것과, 하랑이 생일날에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 ‘미역국’이라는 것, 그 ‘미역국’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하랑과 같은 국적 출신인 린에게 도움을 구하고자 드로스트 가문까지 찾아온 기나긴 여정(?)을 나지막이 말했다.


“그렇사옵니까-.”


브루스의 이야기에 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미소 지으며 그랑플람에서 찾아온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런 이유라면 더욱이 알려드려야겠지요. 하지만 드로스트 가문은 오래전부터 그랑플람과 거래로 이어진 비즈니스 관계 아니겠사옵니까. 그러니, 소녀와 거래 하는 것은 어떠하실는지요.”


다소곳이 앉은 소녀의 입에서 단호하게 내뱉어진 ‘거래’라는 말에, 브루스와 마틴, 티엔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거래는 곧 신용과도 이어지는 것이라,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레시피’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서 놓칠 수도 없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는지, 서로의 시선을 교환한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브루스는 린을 마주보며 묵직하게 답했다.


“좋소.”


긍정적인 답변에, 린은 얼굴에 미소 가득 띠며 말했다.


“소녀가 드리는 부탁을 들어주셨으면 하옵니다.”



*     *     *



하랑의 기억이 맞다면, ‘그 일’을 맡게 된 것은 이틀 전이었다. 어딘가에 다녀온 브루스와 티엔, 마틴은 조금 굳은 얼굴이었다. 무슨 일 있었냐는 하랑의 말에, 조금 어려운 ‘일’을 맡게 되었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하랑은 ‘일’에 관해서라면 신경 쓰고 싶지 않았기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다음날, 이번에 맡게 된 ‘일’ 때문에 새벽부터 나가는 세 사람을 보면서 하랑은 조금 궁금해졌다. 세 사람이 같은 ‘일’을 맡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였다. 그 한 번이 이번 ‘일’인 셈이었다. 그런데 얼마나 힘든 ‘일’이기에, 밤늦게 돌아온 세 사람의 몰골은 수척하기 그지없었다. 손가락 여기저기 생채기도 나 있었다. 하랑은 하루 만에 주근깨가 더욱 짙어진 마틴에게 꼬치꼬치 캐물어보았다. 그리고 주거래처인 드로스트 가문에서 조금 어려운 거래를 제안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말에 하랑은 아, 그러쇼, 라며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일’이라고 하니, 더 캐물었다간 자신도 얽힐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했던가.

하랑은 드로스트 저택에서 일하는 집사의 뒤를 따라 걸으며 연신 궁시렁댔다. 도대체 무슨 거래를 했길래 자신까지 동원이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일에 관해서라면, 웬만해선 자신까지 내려오는 경우는 없었다. 대체적으로 티엔 선에서 끝내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여기입니다.”


집사는 거대한 문 앞에서 옆으로 비켜서며 조용히 허리를 숙였다. 그런 ‘극진한’ 대접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어, 음... 거, 고맙수다. 어, 흠, 흠!”


어떻게 해야할 지 망설이던 하랑은 브루스가 손님 앞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브루스의 헛기침을 흉내 내며 문고리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문고리를 잡는 것은 집사의 손이었다.


“들어가시죠.”


집사의 말에, 하랑은 문고리로 뻗으려던 손을 어색하게 거둬들어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그리고는 집사를 힐끗힐끗 쳐다보다가, 쭈뼛거리며 목례를 하고는 안으로 걸음을 디뎠다.


“아, 뭔데 나까지 이곳으로 오라는 거-”


괜히 머쓱한 나머지, 하랑은 일부러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며 들어갔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끝까지 내지 못했다. 극진한 대접도 받았겠다, 허세 한 번 펼쳐보려던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자신을 여기까지 불러낸 ‘형씨’들과, 테이블에 펼쳐진 진수성찬이었다. 그것도 늘 봐왔던 서양 음식이 아니었다. 부잣집 도련님이 사는 기와집 담벼락 너머로 흘러나오는 냄새로나마 맛보았던, 살아가면서 한 번은 먹어볼 수 있을까 싶었던, 고향의 음식들이었다.


“이게 왠...”


하랑은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아 버벅거리며 테이블에 이미 앉아있는 그랑플람 식구들을 바라보았다. 마틴은 앉은 자리에서 하랑을 돌아보며 말했다.


“하랑 씨 생일이라고 해서, 린 씨가 특별히 만든 음식이에요.”

“정확히는 소녀와 그랑플람 분들이 하랑 씨의 생일을 위해 함께 만든 음식이지요.”

“생일...?”


그제야 하랑은, 이틀 전에 마틴이 ‘먹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어봤던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 때 말했던 것은 테이블에 놓여진 갈비라거나 잡채라거나, 잔칫상에 올라갈 법한 음식들이 아니었다. 하랑은 어리둥절한 나머지, 괜히 목덜미를 매만지기만 했다.


“어허, 언제까지 거기 서 있을텐가, 하랑.”


브루스의 말에, 드로스트 가문의 하녀가 하랑에게 다가갔다. 하녀는 허리를 반쯤 숙이며 손으로 테이블의 한 쪽을 가리켰다.


“저 쪽이옵니다.”


하랑은 하녀의 손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기나긴 테이블의 가장 위쪽, 흔히 말하는 ‘상석’이었다. 얼결에 하녀의 안내를 받은 하랑은 테이블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영국에 온 뒤로 구경조차 못했던 밥이 그릇에 한 가득 담겨 있었다. 고향에서도 이렇게 많이 먹어본 적은 없었다. 게다가,

미역국이, 있었다.


“어서 드시지요.”


하랑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린이 온화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의자에 앉아있는 마틴도, 티엔도, 브루스도 하랑을 바라보았다. 하랑은 말없이 미역국을 바라보기만 했다. 머릿속에 ‘미역국’이라는 단어로만 존재하던 그 미역국이었다.


“그러다 식겠어요. 한 번 맛 봐요. 브루스 씨가 구하러 다니느라 고생한 미역이에요.”

“어? 어어... 어...”


하랑은 얼결에 대답하면서 조용히 수저를 들었다. 그리고 미역국을 한 수저 떴다. 미역의 초록빛을 담은 뽀얀 국물 한 숟갈을 입에 넣은 하랑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무리 뜨거운 것을 먹어도 눈물이 흐른 적은 없었다. 하랑은 수저를 든 손등으로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애써 웃었다.


“야, 이거, 꽤, 맛있잖아?”


그리고 수저로 작은 미역을 떠서, 국물과 함께 입에 담았다.

‘생일’이면 한 번은 먹어보고 싶었던 미역국이었다.

미역국을 먹으면서 나에게도 ‘생일’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다.

비록 신선한 쇠고기가 들어가 있지 않아도,

미역만 덩그러니 놓인 국이더라도,

‘생일’ 때마다 먹고 싶었던,

미역국이었다.

입 안에서, 목구멍으로, 마음 가득, 미역국의 담백하면서도 따스한 기운이 퍼졌다.

단지 미역국을 먹었을 뿐인데, 한 번도 그리워한 적이 없었던 어머니가,



너무나 그리웠다.



생일마다 생각했다.

아침이면 미역국을 만들어주셨을 어머니를.

하지만 미역국은 없었다. 

어머니도, 없었다.

나를 낳고 돌아가셨다던 어머니가 돌아와서 미역국을 차려줄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미역국이 먹고 싶었다.

내가 태어나던 날, 나의 첫 생일날에 어머니도 미역국을 드셨을까.

나를 낳고... 나를... 낳고...


하랑은 수저를 놓았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생일날, 이렇게도 좋은 날에, 모두가 준비한 맛좋은 음식 앞에서 소리 내어 울기 싫었다. 그러나 꽉 다문 입술 사이로 울음소리가 자꾸만 새어나갔다. 그 울음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지 못한 어깨가 들썩였다.

하랑은 끅, 끅, 울음소리 사이로 겨우 말을 이었다.


“고...마워... 고마워...요...”




느아아아

뭔가 급박하게 끝낸 느낌이지만, 그래도 쓴 것에 의의를 두겠습니다.

글 내용에 쓰려다가 안썼는데, 린이 부탁한 '거래'라 하는 것은,

음식 만드는 데에 필요한 음식 재료를 사와서 같이 음식을 만들자는, 그런 거였습니다.

그래서 저런 음식을 만들었죠...


제목을 뭘로 할까 하다가... 딱히 생각나는게 없어서...

그냥 평소대로의 제목처럼 써봤습니다... ㅋㅋ...ㅋㅋ...



쨌든,

하랑아, 생일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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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소! 감탄했습니다. 흐음 후회할거요! 감사합니다. 놀랐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정색) 축하드립니다. 칭찬해 드립니다. 놀랍군요. 매우 화가 나네요. 큰 충격입니다. 놀랍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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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못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매우 화가 나는군요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좌절상태입니다 감탄했습니다 칭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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