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서오세요, 그랑플람 탐정사무소입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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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1 22:43:51
*이번 이야기는 조금 깁니다. 그래도 이번 편도 재밌게 읽어주세요:D
*추천과 댓글 언제나 감사합니다!
▶ 1편 http://cyphers.playnetwork.co.kr/cyphers/article/bestart/topics/19364040
▶ 2편 http://cyphers.playnetwork.co.kr/cyphers/article/bestart/topics/19533338
▶ 3편 http://cyphers.playnetwork.co.kr/cyphers/article/bestart/topics/19773612
▶ 번외편 http://cyphers.playnetwork.co.kr/cyphers/article/bestart/topics/20178001
▶ 4편 http://cyphers.playnetwork.co.kr/cyphers/article/bestart/topics/20735481
엘리노어 러브 캠벨.
마틴도 ‘엘리’의 이름을 들어본 적 있었다. 지금은 지하연합 소속이자,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알려진 능력자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린 능력자라고 알려진 이름이지만, 마틴이 작은 소녀의 이름을 접한 것은 능력자들 입에 오르내리기 전인 어느 신문에서였다.
그날도 마틴은 바게트 빵을 우물거리면서 신문을 펼쳐들었다. 사건이 없을 때는 신문을 읽으면서 의뢰가 들어올 만한 일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물론 신문에 실리는 사건사고들이야 경찰 쪽에서 해결하는 일들이었지, 신문에 실린 사건이 그랑플람 탐정사무소까지 흘러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경찰 쪽에서 비공식으로 의뢰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기에 마틴이 신문을 읽는다는 것은, 마틴에게 있어서 ‘의뢰를 해결하느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보지 못했던 것들의 흐름을 읽는 시간’이자, 하랑의 직설법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시간 때우기’였다. 몇몇 소소한 의뢰들이 있었지만, 이미 다 끝내놓고 의뢰비 지급을 기다리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의뢰자의 요청으로 의뢰받은 일을 중단한 것도 있었다. 그래서 마틴은 다음 의뢰자를 기다릴 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흐름’을 읽기 위해 신문을 읽어가다가, 사건사고 페이지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도시 외곽에 살고 있던 어느 부부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사건이었다. 흥미로운 눈빛으로 기사를 읽어가던 마틴의 입에서 바게트빵을 오물거리던 소리는 점점 띄엄띄엄해지다가, 일순 멈추었다. 기사 중간에 적혀있는 행방불명된 부부의 이름에서였다. 그 부부의 이름은 마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랑플람 탐정사무소에 의뢰했다가 개인적인 사정이 생겼다며 의뢰한 것을 취소한 부부였다. 그동안의 의뢰비는 지불했기에, 그랑플람 탐정사무소의 그 누구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들이 의뢰비 지불을 위해 그랑플람 탐정사무소를 다녀가고 난 뒤 행방불명된 것이었다. 신문기사는 부부의 행방불명으로 인해 여섯 살된 딸만 홀로 남았다며 안타까운 분위기로 기사를 마무리지었다.
분명, 그 부부의 성姓은 캠벨이었다. 세상에 ‘캠벨’이란 성씨를 쓰는 사람이야 많겠지만, 적어도 마틴이 아침마다 읽는 지역신문《트와일라잇》에 실릴만한 ‘캠벨’의 성을 지닌 사람은, 행방불명되었다는 그 부부밖에 없었다.
마틴은 우유없이 삼킨 바게트빵이 얹힌 것처럼 아무래도 찝찝한 마음이 들어, 개인적으로 그들의 딸을 뒷조사했다. 부부의 행방불명을 다룬 신문기사 이후에, 이렇다 할 목격자가 없어서 미제사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경찰관계자의 말을 실은 짧은 기사가 끝이었다. 그들의 딸이 능력자라는 것도, 이름이 ‘엘리노어 러브 캠벨’이라는 것도, 신문기사에서 그들의 딸을 보살피겠다고 나선 후원자가 지하연합의 ‘나이오비 잉게’라는 것도, 그렇게 지하연합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도 마틴이 뒷조사하면서 알게 된 정보였다. 아마 부부의 딸이 능력자라는 사실이 기사화되지 않고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 것은, 연합 측에서 ‘입막음용 거래’를 했으리라. 어디까지나 추측이었다. 물론 지금에야, ‘캠벨’이란 성을 가진 사람은 지하연합의 축포능력자 엘리노어 러브 캠벨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되었지만 말이다.
마틴은 내색하지 않았다. 엘리의 이름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을, 엘리의 ‘의뢰’가 들어주기 난처한 의뢰라는 것을.
“잃어버린 부모님을 찾고 싶다...라...”
마틴은 그저 말없이 손에 든 물잔을 흔들어 얼음소리만 냈다. 의자 등받이에 팔을 걸치고서 턱을 괴고 있던 하랑은 뭔가 떠올랐는지 입을 열었다.
“어이, 형씨. 형씨 능력으로 꼬마 머릿속 읽어서 쟤네 엄마아빠 이미지 스캐닝하면 안되나?”
“...지형을 읽는다거나 생각은 읽을 수는 있어도, 머릿속의 이미지를 스캐닝 할 수는 없습니다.”
마틴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얼음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마틴의 말에, 하랑은 자신의 뛰어난 아이디어가 소용없어지자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뭐야, 은근 쓸데없는 능력이네.”
“활용도가 의외로 적군.”
잠자코 있던 티엔이 하랑의 중얼거림에 동조했다. 마틴은 울컥하는 감정을 누르고, 애써 담담하게 받아쳤다.
“미안하군요. 지나치게 쓸데없는 능력이라서.”
“근데 꼬마. 그냥 네가 가진 상상력으로 너네 엄마아빠도 나타낼 수 있는 거 아냐?”
하랑의 말에, 브루스의 어깨 위로 목마를 타고 있던 엘리가 브루스가 쓰고 있는 모자를 잡고 말했다.
“아냐! 그건 가짜 엄마아빠야! 엘리눈... 진짜 엄마아빠가 보구시퍼. 이글아찌가 그래쪄! 여기 오면 잃어버린 거 찾아준다구! 그니까 엘리네 진짜 엄마아빠도 찾아줄 수 이찌?”
마틴은 브루스의 모자 위에 얼굴을 올려두고 울망울망하게 쳐다보는 엘리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중얼거렸다.
“하여간 이글 홀든. 정말이지 도움이라고는 뇌안도로 튕겨내는 먼지 한 톨만큼도 안주는 사람이군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난처한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는지, 엘리가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히잉. 엘리 소원 못 들어주는 고야...?”
“아..., 뭐, 그런 건 아닌데,”
마틴은 머리를 긁적이며, 어떻게 말해야할지 고민하는데, 엘리가 타고 온 날라봉을 그대로 내던지듯이 직구를 날렸다.
“무능력해.”
6살의 어린아이 입에서 나온 말치고, 꽤나 고급진(?) 단어선택이었다. 그 말에, 하랑은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브루스는 그런 말마저도 귀엽게 들리는지 사람 좋은 웃음만 지었다. 오로지 직구 맞은 마틴만이 입꼬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그런 말... 어디서 듣고 온 겁니까...?”
“나비 온니가 이글 아찌한테 그래쪄!”
“...백수인 이글 홀든과 동급 취급당하니 기분 나쁘군요.”
마틴은 ‘꿀맛과자 실종사건’을 떠올리며 떨떠름하게 말했다.
“아냐! 이글아찌 백수 아냐! 이글아찌는, 이글아찌야!”
엘리는 브루스의 모자챙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마틴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의뢰를 받지 않으면 이글 홀든과 동급이 될 테니, 작은 숙녀의 의뢰를 받아보죠.”
“와아! 진짜? 진짜지? 엘리 소원 들어주는 거징?”
“그러죠.”
자신은 없지만.
마틴은 그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목마 탄 엘리는 브루스의 얼굴을 끌어안고, 와아, 하며 즐거워했다. 브루스의 어깨 아래로 엘리의 작은 다리가 까닥였다. 브루스는 엘리의 다리를 잡고서 허허 웃었다. 웃음인지, 기침인지 모를, 그런 웃음이었다. 팔짱을 끼고 있던 티엔이 나지막이 말했다.
“쉽진 않겠군.”
그럴 거라는 건, 엘리의 의뢰를 들을 때부터 짐작한 바였다. 마틴은 벌써부터 피곤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앉아있던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일단은, 인맥 좀 이용해볼까요.”
“형씨 우리 말고 인맥이 있어?”
“있죠. 아마 하랑군도 알고 있을 걸요.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사람이니.”
조금 지친 얼굴의 마틴은 저만치 앉아있는 하랑을 바라보았다. 티엔은 짐작 가는 바가 있는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전에 도와준 것도 있고하니, 쨌든! 이걸로 빚은 갚은 거다?”
“네에, 네, 네.”
마틴은 건성으로 대답하며, 레베카에게서 받은 서류종이를 읽어보았다. 레베카는 마틴의 건성어린 대답을 듣고서야, 마틴에게 받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고도 어두운 골목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한적한 골목에서 커피를 나눠 마시는 두 사람의 모습은 얼핏 봐도 튀어보였다. 오히려 카페나 거리라면 모를까. 그러나 마틴은 골목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로부터 멀어질 필요가 있었다.
“근데 이게 답니까?”
“야,”
레베카는 빨대에서 입을 떼더니 켁켁, 거렸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거 어렵게 가지고 나온 거라고? 사본이지만, 몰래 찍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거~”
“사본 찍어온 건 레베카 씨의 선배겠지만요.”
“물론 그렇지. 야, 그래도 전직 경찰이 이렇게 해주는데 목숨값 치고 아메리카노는 너무하지 않냐?”
그러면서도 레베카는 아메리카노를 홀짝였다. 호로록. 빨대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소리와, 종이가 팔락팔락 넘어가는 소리가 섞였다. 시크릿 문서라 하기에는, 마틴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다. 마틴이 뒷조사하면서 알게 된 내용들, 그러니까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엘리의 소속이나 현재거주지 같은 개인 신변정보가 적혀있었다. 마틴은 서류종이 첫 페이지를 다시 보았다. 상단에는 2급 비밀정보문서를 뜻하는 도장이 찍혀있었다.
“이것보다 상위 문서가 있을 텐데요.”
“이봐.”
레베카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빨대에서 입을 떼었다. 장난기 섞인 좀 전의 목소리와는 사뭇 다른 무거운 목소리였다.
“비즈니스적 예의라고 한다지? 니가 찾고자 하는 게 뭔진 모르겠지만, 그 이상의 정보를 원한다는 건, 내 선배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냐?”
레베카의 눈매가 날카롭게 날섰다. 그런다고 해서 기죽을 마틴은 아니었다. 마틴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뭐, 레베카 씨와 저와의 비즈니스적 관계도 딱 거기까지겠지만요.”
그제야 레베카도 어느 정도 인상을 풀었다. 마틴은 서류 종이를 레베카에게 다시 건넸다.
“차라리 관계자한테 물어보는 게 빠르지 않겠어? -멀리 안가도 될 거 같지만.”
레베카의 시선이 마틴 너머를 바라보았다. 마틴은 굳이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아도 누가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마틴의 뒤에서 나타난 사람은 마틴을 지나치고는, 그가 레베카에게 건네려던 서류를 낚아챘다. 낚아챈 손에서 서류가 활활 타올라, 재가 되어 흩날렸다.
“어째서 탐정이 꼬맹이 뒷조사를 하고 있는지, 내가 먼저 물어봐도 될까.”
마틴은 흩날리는 잿바람 사이로, 레베카와 자신의 사이에 나타난 인물의 이름을 조용히 읊조렸다.
“―나이오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