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서오세요, 그랑플람 탐정사무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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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9 10: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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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밥먹다가 생각나서 써봤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
오늘도 트와일라잇은 평온했다.
크림소다처럼 연하고 푸른 하늘과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를 하얀 조각구름들, 먼지가 뽀얗게 쌓인 브루스의 책상 위로 내려앉는 아침의 따스한 햇살과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선선하고 보드라운 바람 속에서 천장에 매달린 널찍한 팬의 선풍기가 훙훙훙, 돌아가는 소리만이 유일한 소음이었다.
모든 것이 평온했다.
아침의 모든 것처럼 모든 사람이 평온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련만, 이렇다 할 사건이 없다는 것, 그것은 그랑플람 탐정사무소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나날들이었다.
일이 들어왔던 적이 언제였던가. 마틴은 소파에 드러누워 창 밖 너머로 흘러가는 구름을 세어보았다. 그것이 그의 하루 일과였다. 그랑플람 사무소의 팀장인 브루스는 새벽부터 일거리를 찾는다고 나가긴 하지만, 이렇다 할 일거리를 찾아오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맨홀 구멍에 빠진다거나, 발이 삐끗한다거나 하는, 이런 저런한 별일 없으면 오늘도 빈손으로 올 터였다. 그것은 마틴만의 ‘느낌’은 아니었다.
“이봐아, 마티인…. 이러다가 굶어죽는 거 아냐?”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있던 하랑은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기운이 빠진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일거리 하나 없는 책상에 앉아있는 것은 꽤 지루한 일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니, 오래 전 같았으면 책상 위에는 사건과 관련된 파일들과 종잇장들로 가득해서 그거 하나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바빴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하랑의 책상 위에는 읽다 만 책만이 있을 뿐이었다.
“하랑. 똑바로 앉아라. 그래서는 책을 읽을 수 없다.”
“...예이, 예이.”
의자를 까딱까딱 대던 하랑은 추욱 늘어졌던 상체를 일으키더니, 그대로 책을 베개 삼아 책상 위로 엎드렸다.
티엔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든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하루의 1분 1초도 허투루 낭비하고 싶지 않은 티엔이었기에 할 일이 없는 시간에는 책을 읽었다. 그렇게 그는 사무소에 구비된 한 질(帙)의 마지막 권수까지 다다랐다. 티엔에게 약간의 근심이 있다면, 이걸 다 읽으면 무얼 읽어야 할지에 대한 것이었다. 서점이라도 가야 하나. 그렇기엔 요 근래에 들어온 돈이 없었다. 의뢰가 없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돈과 관련된 문제라면 마틴도 잘 알고 있었다. 복잡한 의뢰가 들어와서 밤을 샐 때마다 야식으로 가끔 먹었던 라면도 이제 하나의 번들만 남았다. 하나의 번들-바로 네 명의 건장한 남자들의 오늘 한 끼 식사였다. 배부른 아침을 선택하자니 점심과 저녁, 그리고 앞으로의 나날이 걱정이고, 물 한 잔의 위로와 함께 굶주린 아침을 선택하자니… 그래야 하는 인생이 참 고달팠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마틴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자신의 책상에 다가가, 서랍 속의 서류 파일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밥 먹기 전에 하릴없이 구름만 세던 마틴이었다. 그랬던 그가 밥 먹기도 전에 움직이자, 엎드려 있던 하랑과 티엔은 자연스레 마틴에게로 시선을 두었다.
마틴은 파일들을 꺼내더니, 책상 앞 의자에 앉아서 하나하나 순서대로 놓았다. 트와일라잇의 여러 집단과 그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을 정리한 리스트 파일들이었다.
“…그건 왜?”
하랑은 책상에 여전히 엎드린 채로 마틴에게 물었다.
"사건이 없으면 만들면 되니까요. …어디 한 번 한타를 일으켜볼까."
“관둿.”
하랑이 책상에서 반쯤 몸을 일으키며 정색했다. 지하연합이나 헬리오스는 인원발로 밀려도 한참 밀렸다. 하랑이나 마틴이야, 뒤에서 깔짝깔짝 도와주는 정도였지만, 티엔의 경우는 달랐다. 티엔은 무표정한 얼굴로 읽던 책을 덮고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래. 관둬라, 마틴. 파스 살 돈도 없으니.”
“파스 살 돈이 없으면 그냥 뒤지면 됩니다.”
마틴 역시 무덤덤한 목소리로 응수했다. 하랑은 요새 좀 조용하나 싶었더니 또 시작인가, 하는 마음으로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랑의 한숨이 잦아들기도 전에, 갑자기 문이 쾅! 하고 열렸다. 브루스였다. 생각보다 빨리 온 그의 등장에, 한타거리(?)를 찾으려 파일을 뒤적이던 마틴도, 책상에 엎드려 있던 하랑도, 책을 다시 펼치려던 티엔도 브루스를 바라보았다. 브루스는 사무소 팀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씨익 웃었다.
“나갈 준비해라, 의뢰 받아왔다.”
그의 웃음 따라 ‘ㅅ’자로 굳게 자란 수염 끝도 따라 올라갔다. 간만의 의뢰에 모두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훙훙훙.
천장의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침묵을 헤저었다. 하랑은 그 침묵을 조심스레 깨보기로 했다.
“할아범, 설마 지난번처럼 길 잃은 고양이를 찾아달라거나... 그런 건 아니겠죠?”
티엔은 평소대로 할아범이 뭐냐며 ‘팀장’이라는 칭호를 똑바로 붙이라고 잔소리 하려 했지만, 일단 그 잔소리는 제쳐두고 브루스의 대답을 먼저 듣기로 했다. 브루스는 가뜩이나 넓은 가슴을 크게 펼치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의뢰처는, 홀든 가(家)다.”
홀든 가라면 트와일라잇 내에서 검술로 유명한 가문이었다. 그 가문의 세 형제 모두 뛰어난 검술실력을 갖추고 있고, 특히 장남은 검사이기 이전에 은행원이기도 했다. 그 정도의 재력이라면 이번 의뢰의 보수비는 엄청날 것이 틀림없었다.
“예!!!!!!!!!!!!!!!!”
하랑이 두 팔을 벌리며 크게 환호했다. 티엔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없이 읽던 책을 덮었다. 마틴 역시 책상 위에 늘어놓았던 파일들을 모아 서랍에 아무렇게나 쳐박아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어, 명문가의 의뢰라면 당연히 받아줘야죠.”
마틴은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허세를 잔뜩 부렸다. 명문가인 홀든 가의 의뢰라면,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그것이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한 자루의 검이라거나)을 둘러싼 권력다툼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틴은 머릿속으로 홀든 가의 삼형제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장남인 다이무스 홀든. 가족과의 거래는 하지 않을뿐더러 그 어떤 거래라도 확실히 하는 그였다. 마틴은 다이무스 홀든을 믿어보기로 했다. 어떤 의뢰를 맡겼던 간에 보수는 확실히 해주겠지.
마틴은 한쪽 구석에 놓인 라면과 MSG로부터 작별을 고하고, 옷걸이에 걸린 모자를 들었다.